아침 7시 마을회관앞에서 버스출발.40여 주민.
호남고속도로를 질주하던 버스는 곡성에서 아침을 먹자고 섰다. 버스 안도 처음에는 조용하다. 예상컨대 이 버스 안이 온통 소음으로 가득찰 것이다. 오후에는 아마도 쉴 새도 없이 그렇게 시끌벅적하다 못해 온 몸까지 쿵쾅거릴 것이다. 분명 서너 시간 동안 그럴 건데 어찌 견길지 막막하다. 그래도 어쩔 것인가?

출발은 조용한 버스 안

우리를 하루 동안 싣고 다닐 버스
곡성휴게소에서 아침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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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달리고 달려서 사천휴게소에 잠시 들러 용변들을 보고 출발

봉화마을에 들어서니 마을 좌향이 예사롭지가 않았다. 이곳에서 농사를 짓고 살겠다던 노대통령의 생각이 떠오른다.


생가를 돌아보는 발길이 무겁다.








방문객을 배려한 이런저런 시설물들이 정갈하지만 이게 무슨 의미가 있을지?



사람은 한 번 잠들면 그만이다. 저승이 있기는 할까? 인간이 만든 상상의 세계일 뿐이다.









그는 이미 가고 없지만 찾아오는 우리들을 보고 그가 살아있다면 무슨 말을 할까?
그가 투신했다는 부엉이바위다. 위 너럭바위가 있기는 하던데 갈 길을 막아놓았다. 투신을 하기는 정말 한 걸까? 피 한 방울이 없었다니?

우리는 그가 묻힌 곳에서, 그가 투신했다는 곳을 배경으로 찰칵을 하고 있다.





현장이라고 해서 올라가 보기로 했다. 부엉이바위를 거쳐 절, 그리고 사자바위까지 거쳐서 내려와 추기관엘 들렀다. 그곳에 그의 흔적이 남아 있었고, 까만 고양이 한 마리가 그의 흉상 앞에 누워 그의 현신인 양 편안하다.


아방군이라 비양거렸던 그 집이다.












사자바위에서 내려다본 봉하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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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하마을을 뒤로 하고 다시 순천행. 떠나기 전 생가와 거쳐를 찰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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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우리는 봉하마을을 떠났다. 언제 다시 올지는 모른다. 말로만 정의로운 사회는 언제나 있었다. 그러나 현실은 언제나 불의와 협잡의 사회였다. 그리고 그들은 늘상 사회정의를 외쳤고 언행일치를 외쳤다.
함안휴게소에 내려 점심을 챙겼다. 진양단감도 두 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누군가의 아들이 준 선물이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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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 국가정원에 도착하니 賞秋客들로 붐비다 못해 난장판이다. 어렵사리 입장을 해서 순환차를 타렸더니 두 시간을 기다려야 겨우 탑습이 가능하단다. 그냥 포기. 그리고는 저 안쪽의 하늘열차를 타기로 했다. 줄을 서서 기다리기 30여 분. 8명이 탑승한 skycube는 한 10분 달리니 내리란다. 경치라고는 개울(?)가 갈대가 다다. 내렸다가 다시 그냥 그 자리에서(문학관역이라고 걸려 있었다) 되돌아 타고 복귀. 뭘 보려고 7000원씩이나 주었는지? 그래도 그거라도 타 봤다고 해야 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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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돌아나오는 길에서 수련을 찰칵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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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을 떠나 호남고속도로를 한참이나 달려 어두워진 속에서 저녁 끼리늘 떼우러 어느 집엔가를 들렀다. 그냥 부질한 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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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나 다를까? 버스에 올라타자마자 온통 난리굿이다. 이렇게 이해하면 될 거 같다. 어디 가서 그들이 그렇게 스트레스를 풀 것인가? 일 년에 기회는 단 두 번뿐. 이것이 우리네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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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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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해 앞에서 일부는 내리고 우리는 마을 회관 앞에서 내려 뿔뿔이 헤어져 집으로. 고단한 하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