龍田 스승 省墓記
26년 2월 26일 목요일 우리 칠우회 회원 넷이 용전 스승 성묘를 하기로 한 날이었다. 전날 장성에서 부랴부랴 상경해서 마음의 준비를 하고 예매했던 기차표를 점검하면서 혹시 몰라 원관 형께 상기시키려고 전화를 했으나 통화가 되지 않아서 걱정은 되었지만 설마 잊었으랴 했다. 그래도 몰라서 밤늦게 또 통화를 시도했으나 불통.
그리고 아침이 되어 응봉역에서 전철을 기다리면서 통화 시도. 그때는 웬일로 전화를 받아서 출발했냐니까 세상에나아! 까맣게 잊고 계시지를 않는가!
“오늘 가기로 한 거야?”
하! 기가 막혀서 나 뻥! 청량리역에서 9시 18분 출발 열찬데, 그때 시간이 8시 50분. 서초구 염곡동에서 출발해서 가능하지가 않은 상황. 그래서 나만 출발한다고 말씀드리고 전화 종결.
청량리에 도착해서 어렵게어렵게 예매표 하나를 취소하고는 안동행 열차에 탑승. 도중에 원관 형께서 버스로 출발하신다는 연락을 받고. 안동에서 합류하기로 함.
응봉역 내가 한 말 원관 형 출발하셨남
가기로 한 날이 오늘이란 말인가?
기막혀 나 진우 뻐엉 세상에나 혼자말
기차는 원주를 지나 제천을 거쳐서 영주를 달리는데 내 처가가 있는 고장이라 반가운 마음에 눈이 번쩍. 15분을 더 가니 안동역이었다. 11시 11분. 그곳에는 이미 우산과 제헌이 도착해 있었다. 반갑게 손을 마주잡고.
문화수도라고 자랑하는 안동이니 역사의 현판도 격에 어울리게 한자로 ‘安東驛’이라고 떡하니 걸려 있었다. 퍽 인상적이었다. 이때부터 우리가 할 일은 원관 형을 기다리는 일. 역사 안에 있는 카페에 들어가 커피를 마시는 일. 12시 45분까지 지루한 시간.
다행히도 버스터미널이 역사 바로 건너편에 있었다. 이약이약하다가 건너가 원관 형을 마중해서 그곳 식당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그날은 내가 유사라서 밥값을 지불하고 안동시 녹전면으로 출발. 우산이 진주에서 몰고온 승용차에 탑승 30분쯤 달려가니 녹전면사무소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더듬더듬 찾으려니 아무도 묘소 위치를 정확히 모른다는 거다. 더듬고 면사무소에 가서 묻고 또 헤어져서 20여 분을 찾아도 모름이다. 결국 우산이 왈,
“망배로 대신합시다.”
그래서 우산이 정성껏 준비한 제물을 산 쪽으로 진설하고 망배로 성묘를 대신하면서 마음을 달래고 돌아섰다. 이유인즉, 원관 형이 허비한 80분으로 기차 시간이 촉박해서다. 3시 20분 안동역 출발.
여기도 기웃기웃 저기를 더듬어도
익은 비석 어디에도 보이질 않았느니
방향만 가늠해설랑 진설코서 망배로
다음을 기약하고 출발해서 우산이 원관 형과 나를 안동역에 내려주고 제헌과 둘이서 떠났다.
원관 형과 나는 3시 20분 청량리행에 몸을 싣고 출발.
청량리역에 도착하니 5시 25분. 역사에서 원관 형이 미안타고 저녁을 거하게 사셨다. 그리고 우리 둘은 경의선 전철을 타고 귀가. 나는 응봉역에서 내리고, 원관 형을 계속 가시고. 아마도 옥수역에서 3호선을 갈아타셨을 거다.
그렇게 1차 성묘행사는 실패(?)로 마감.
제헌이 다시 연락해서 2차 성묘 날짜를 5월 27일로 정함. 이번에는 용전 스승의 차자 정로 씨도 동행하겠단다. 묘소를 못 찾을 리는 없겠다.
내가 할 일. 차표 예매. 청량리역 9시 18분 KTX 3장 안동행. 그리고 안동역 발 3시 20분 KTX 3장. 한 달 전인데도 벌써 표가 2/3가 예매 중이었다. 게으름을 피웠더라면 낭패였으리라.
그리고 세월이 흘러 5월 26일 싱경. 정로 씨에게 통화 시도. 그러나 불통. 제헌에게 연락 부탁. 그리고 9시에 청량리역 대합실에서 뵙자고 문자 발송. 전화도 문자도 답이 없어서 심정 답답.
27일 당일 청량리역 대합실에서 다행히 원관 형, 정로 씨 상봉. 예정대로 9시 18분 안동행 탑승 출발. 11시 11분 안동역 도착. 우산과 제헌의 영접을 받음.
안동이니 안동찜닭을 먹어야 한다는 정로 씨의 주장으로 안동 시장행. 찜닭집을 찾느라 시장을 헤매고 다니다 되돌아와서 어느 집에 들어가 안동찜닭으로 점심을 안동막걸리를 곁들여 마침. 알려진 만큼 음식의 맛깔은 내세울 게 없다는 생각이 듦.
공용주자장으로 되돌아와서 녹전면으로 출발. 녹전면 모란 삼거리에 도착해 보니 지난 1차 때는 전혀 엉터리없는 데를 갔었다는 생각이 듦. 그런데 지형이 이상하리만치 두 곳이 유사함. 다리가 있는 것도 그렇고 개울이 있는 것도 그렇고 산등성이도 그렇고. 혼동할 만해서 우리 모두 껄껄 껄.
차에서 내려 제물을 나눠 들고 출발. 날씨는 흐렸지만 비는 그쳐 있었다. 산소 가는 길이 돌고 돌아 구불구불 생각보다 멀었다. 산소에는 낯익은 글씨의 비가 우뚝 서 있었고, 산소도 잘 손질되어 있었다. 제물을 진설하고 막 성묘 인사를 드리려는데 웬걸 비가 추적이기 시작하지 않은가! 내가 왈,
“선생님께서 우리 왔다고 반갑다고 눈물 흘리시나 봐!”
묘 앞에 늘어선 우리. 원관 우산 제헌 나 정로 씨.
우산이 지어온 祭龍田先生墓文 읽고 제를 올리는 동안 내리던 비는 거짓말같이 그쳐 있었다.
지난날 스무 해를 낭낭히 읊으시던
그 많던 사랑으로 담고담던 사서옥음
이제는 어디를 가도 들을 수도 없다네
손가락 짚으시며 하시던 사주팔자
하루만 빗겨서는 낳았더면 앞뒤로
하시고 애석해하던 용안용안 선하네
내려와 모란 삼거리에 이르니 그곳에 버스정류장이 있었다. 그곳에서 제수로 음복을 하고 덕담도 나누고 그러다 기차 시간을 요량해서 출발. 이제 또 올 날이 있기는 할까?
안동역에 도착하니 한 15분 남았다. 우산과 제헌은 먼저 출발하고 우리도 역사로 들어가 승차 대기.
3시 20분 예정대로 안동역을 출발해서 차 안에서 원관 형과 이약이약하면서 오다가 청량리역
에 도착.
저녁을 해결하고 가제서 ‘한국집’엘 갔다.





두 분은 순두부찌게, 나는 낙지돌솥밥.
원관 형이 저녁을 샀다고 정로 씨가 커피를 또 사서, 마시며 이약이약하다가 정로 씨는 1호선을 타러 가시고, 원관 형과 나는 경인선 전철 탑승, 나는 응봉역에서 내리고 원관 형은 계속 가시고. 그렇게 2차 성묘가 무사히 끝났다. 하늘에 감사. 비가 많이 올 거라는 예보에 많이 걱정했었거든요.
원관 진우 우산 제헌 칠우회 넷이서는
스승님 그리워서 벼르다 벼르다가
찾아간 스승님 묘비 그 앞에서 그리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