曰 其七八九六之數不同은 何也오 曰 河圖는 六七八九 旣附於生數之外矣니 此는 陰陽老少進退饒乏之正也라 其九者는 生數一三五之積也라 故自北而東, 自東而西하여 以成于四之外하고 其六者는 生數二四之積也라 故自南而西, 自西而北하여 以成于一之外하며 七則九之自西而南者也요 八則六之自北而東者也니 此又陰陽老少互藏其宅之變也라 洛書之縱橫十五而七八九六이 迭爲消長하고 虛五分十而一含九, 二含八, 三含七, 四含六하니 則參伍錯綜하여 无適而不遇其合焉하니 此는 變化无窮之所以爲妙也니라
“7·8·9·6의 수(數)가 같지 않음은 왜인가?”
“하도(河圖)는 6·7·8·9가 이미 생수(生數)의 밖에 붙어 있으니, 이는 음양(陰陽)의 노소(老少)가 나아가고 물러남과 남고 부족함의 바름이다. 9는 생수(生數)의 1·3·5가 모인 것이므로 북쪽[1]으로부터 동쪽[3]으로 가고 동쪽으로부터 서쪽[4]으로 가서 4의 밖에서 이루어지고, 6은 생수(生數)의 2와 4가 모인 것이므로 남쪽[2]으로부터 서쪽[4]으로 가고 서쪽으로부터 북쪽[1]으로 가서 1의 밖에서 이루어지며, 7은 9가 서쪽으로부터 남쪽으로 간 것이고, 8은 6이 북쪽으로부터 동쪽으로 간 것이니, 이는 또 음양(陰陽)의 노소(老少)가 서로 그 집에 저장하는 변화이다.
낙서(洛書)는 가로와 세로가 15인데 7·8·9·6이 번갈아 소장(消長)이 되며 5를 비우고 10으로 나누어 1이 9를 머금고 2가 8을 머금고 3이 7을 머금고 4가 6을 머금으니, 삼오(參伍)하고 착종(錯綜)하여 가는 곳마다 그 합(合)[10]을 만나지 않음이 없으니, 이것이 변화가 무궁하여 묘함이 되는 이유이다.”
然則聖人之則之也는 奈何오 曰 則河圖者는 虛其中이요 則洛書者는 總其實也라 河圖之虛五與十者는 太極也요 奇數二十, 偶數二十者는 兩儀也요 以一二三四로 爲六七八九者는 四象也요 析四方之合하여 以爲乾坤離坎하고 補四隅之空하여 以爲兌震巽艮者는 八卦也라 洛書之實은 其一은 爲五行이요 其二는 爲五事요 其三은 爲八政이요 其四는 爲五紀요 其五는 爲皇極이요 其六은 爲三德이요 其七은 爲稽疑요 其八은 爲庶徵이요 其九는 爲福極이니 其位與數 尤曉然矣니라
“그렇다면 성인(聖人)이 본받았다는 것은 무엇인가?”
“하도(河圖)는 중앙을 비웠고 낙서(洛書)는 실수(實數)를 총괄하였다. 하도(河圖)에 5와 10을 비운 것은 태극(太極)이고, 기수(奇數) 20과 우수(偶數) 20은 양의(兩儀)이며, 1·2·3·4로 6·7·8·9를 만든 것은 사상(四象)이고, 사방(四方)의 합(合)을 나누어 건(乾)·곤(坤)·이(離)·감(坎)을 만들고 사우(四隅)의 빈 곳을 메워서 태(兌)·진(震)·손(巽)·간(艮)을 만든 것은 팔괘(八卦)이다.
낙서(洛書)의 실제는 첫 번째는 오행(五行)이고 두 번째는 오사(五事)이고 세 번째는 팔정(八政)이고 네 번째는 오기(五紀)이고 다섯 번째는 황극(皇極)이고 여섯 번째는 삼덕(三德)이고 일곱 번째는 계의(稽疑)이고 여덟 번째는 서징(庶徵)이고 아홉 번째는 복극(福極)이니, 위치와 수(數)가 더욱 분명하다.”
曰 洛書而虛其中五하면 則亦太極也요 奇偶各居二十하면 則亦兩儀也요 一二三四而含九八七六하여 縱橫十五而互爲七八九六하면 則亦四象也요 四方之正으로 以爲乾坤離坎하고 四隅之偏으로 以爲兌震巽艮하면 則亦八卦也라 河圖之一六爲水, 二七爲火, 三八爲木, 四九爲金, 五十爲土는 則固洪範之五行이요 而五十五者는 又九疇之子目也니 是則洛書 固可以爲易이요 而河圖亦可以爲範矣니 又安知圖之不爲書, 書之不爲圖也耶아.
“낙서(洛書)에서 중앙의 5를 비우면 역시 태극(太極)이고, 기수(奇數)와 우수(偶數)가 각기 20을 차지하면 역시 양의(兩儀)이며, 1·2·3·4가 9·8·7·6을 머금어서 종횡으로 15가 되어 서로 7·8·9·6이 되면 역시 사상(四象)이고, 사방(四方)의 정위(正位)로 건(乾)·곤(坤)·이(離)·감(坎)을 삼고 사우(四隅)의 편위(偏位)로 태(兌)·진(震)·손(巽)·간(艮)을 삼으면 역시 팔괘(八卦)이다.
하도(河圖)의 1·6이 수(水)가 되고 2·7이 화(火)가 되고 3·8이 목(木)이 되고 4·9가 금(金)이 되고 5·10이 토(土)가 되는 것은 진실로 홍범(洪範)의 오행(五行)이며, 55 역시 구주(九疇)의 자목(子目)[작은 세목(細目)]이다. 이는 낙서(洛書)가 진실로 역(易)이 될 수 있고 하도(河圖) 역시 홍범(洪範)이 될 수 있는 것이니, 또 어찌 하도(河圖)가 낙서(洛書)가 되지 않고 낙서(洛書)가 하도(河圖)가 되지 않음을 알겠는가.”
曰 是其時雖有先後하고 數雖有多寡나 然其爲理則一而已라 但易은 乃伏羲之先得乎圖而初无所待於書요 範則大禹之所獨得乎書而未必追考於圖爾라 且以河圖而虛十이면 則洛書四十有五之數也요 虛五면 則大衍五十之數也요 積五與十이면 則洛書縱橫十五之數也요 以五乘十하고 以十乘五하면 則又皆大衍之數也요 洛書之五 又自含五면 則得十而通爲大衍之數矣요 積五與十이면 則得十五而通爲河圖之數矣니 苟明乎此하면 則橫斜曲直이 无所不通이니 而河圖洛書 又豈有先後彼此之間哉아
“때는 비록 선후(先後)가 있고 수(數)는 비록 다과(多寡)가 있으나 이치가 됨은 하나일 뿐이다. 다만 역(易)은 복희(伏羲)가 먼저 하도(河圖)에서 얻어서 애당초 낙서(洛書)를 기다릴 필요가 없었고, 홍범(洪範)은 대우(大禹)가 홀로 낙서(洛書)에서 얻어서 굳이 하도(河圖)에 추고(追考)하지 않았을 뿐이다.
또 하도(河圖)에서 10을 비우면 낙서(洛書)의 45의 수(數)이고, 5를 비우면 대연(大衍)의 50의 수(數)이다. 그리고 5와 10을 모으면 낙서(洛書)의 종횡(縱橫) 15의 수(數)이며, 5를 10으로 곱하고 10을 5로 곱하면 역시 모두 대연(大衍)의 수(數)이다.
낙서(洛書)의 5가 또 스스로 5를 머금고 있으면 10이 되어 대연(大衍)의 수(數)와 통하며, 5와 10을 모으면 15가 되어 하도(河圖)의 수(數)와 통하니, 진실로 이것을 잘 안다면 횡사(橫斜)와 곡직(曲直)이 통하지 않는 바가 없을 것이니, 하도(河圖)와 낙서(洛書)가 또 어찌 선후(先後)와 피차(彼此)의 틈이 있겠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