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西山蔡氏曰 古今傳記에 自孔安國劉向父子班固는 皆以爲河圖授羲하고 洛書錫禹라 하고 關子明, 邵康節은 皆以爲十爲河圖하고 九爲洛書라 하니 蓋大傳에 旣陳天地五十有五之數하고 洪範에 又明言天乃錫禹洪範九疇하니 而九宮之數는 戴九履一하고 左三右七하고 二四爲肩하고 六八爲足하니 正龜背之象也라 唯劉牧意見은 以九爲河圖하고 十爲洛書하여 託言出於希夷라 하니 旣與先儒舊說不合이요 又引大傳하여 以爲二者 皆出於伏羲之世라 하니 其易置圖書 竝无明驗이라 但謂伏羲兼取圖書는 則易範之數 誠相表裏하니 爲可疑耳나 其實은 天地之理 一而已矣니 雖時有古今先後之不同이나 而其理則不容有二也라 故로 伏羲但據河圖以作易하니 則不必預見洛書로되 而已逆與之合矣요 大禹但據洛書以作範하니 則亦不必追考河圖로되 而已暗與之符矣라 其所以然者는 何哉오 誠以此理之外에 无復它理故也니라
서산채씨(西山蔡氏)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고금(古今)의 전해오는 기록에 공안국(孔安國)과 유향(劉向) 부자와 반고(班固)는 모두 ‘하도(河圖)는 복희(伏羲)에게 주었고 낙서(洛書)는 우왕(禹王)에게 주었다.’ 하였고, 관자명(關子明)과 소강절(邵康節)은 모두 ‘10을 하도(河圖)라 하고 9를 낙서(洛書)라 한다’ 하였다. 《대전(大傳)》에 이미 천지(天地) 55의 수를 열거하였고 〈홍범(洪範)〉에 또 ‘하늘이 마침내 우왕(禹王)에게 홍범(洪範) 구주(九疇)를 주었다.’고 분명히 말하였으니, 구궁(九宮)의 수는 9를 위에 이고 1을 아래에 밟으며 좌(左)가 3이고 우(右)가 7이며 2와 4가 어깨가 되고 6과 8이 발이 되니, 이는 바로 거북 등의 상(象)이다.
오직 유목(劉牧)의 의견은 9를 하도(河圖)라 하고 10을 낙서(洛書)라 하면서 희이(希夷)에게서 나왔다고 칭탁하여 말하는데 이미 선유(先儒)들의 구설(舊說)과 합치하지 않으며, 또 《대전(大傳)》을 인용하여 ‘하도(河圖)와 낙서(洛書) 두 가지가 모두 복희(伏羲)의 세대에 나왔다’ 하니, 하도(河圖)와 낙서(洛書)를 바꿔 둔 것은 나란히 분명한 증거가 없다. 다만 ‘복희(伏羲)가 하도(河圖)와 낙서(洛書)를 겸하여 취했다’고 말한 것은 역(易)과 〈홍범(洪範)〉의 수(數)가 진실로 서로 표리가 되니 의심스러울 만하나, 그 실제는 천지의 이치가 하나일 뿐이니, 비록 때가 고금(古今) 선후(先後)가 같지 않으나 이치는 두 가지를 용인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복희(伏羲)는 하도(河圖)만을 근거하여 역(易)을 지었으니, 또한 굳이 낙서(洛書)를 미리 보지 않았으나 이미 미리 서로 부합된 것이고, 대우(大禹)는 낙서(洛書)만을 근거하여 〈홍범(洪範)〉을 지었으니, 역시 이 하도(河圖)를 추고하지 않았으나 이미 은연 중에 서로 부합된 것이다. 그러한 까닭은 왜인가? 진실로 이 이치의 이외에는 다시 다른 이치가 없기 때문이다.
然不特此耳라 律呂有五聲十二律而其相乘之數 究於六十하고 日名有十幹十二支而其相乘之數 亦究於六十하니 二者皆出於易之後요 其起數又各不同이나 然與易之陰陽策數老少 自相配合하여 皆爲六十者로 无不若合符契也라 下至運氣, 參同, 太一之屬하여는 雖不足道나 然亦无不相通하니 蓋自然之理也라 假令今世에 復有圖書者出이라도 其數亦必相符하리니 可謂伏羲有取於今日而作易乎아 大傳所謂河出圖, 洛出書, 聖人則之者 亦汎言聖人作易作範이 其原皆出於天之意니 如言以卜筮者尙其占과 與莫大乎蓍龜之類니 易之書豈有龜與卜之法乎아 亦言其理無二而已爾니라
그러나 이 뿐만이 아니다. 율려(律呂)에는 오성(五聲)과 십이율(十二律)이 있는데 그 상승(相乘)한 수(數)가 60에 이르고, 날짜의 이름은 십간(十干)과 십이지(十二支)가 있는데 상승(相乘)한 수가 또한 60에 이르니, 두 가지 모두 역(易)의 뒤에 나왔고 수(數)를 일으키는 것 역시 각기 같지 않으나 역(易)의 음양(陰陽)의 책수(策數)와 노소(老少)가 서로 배합되어 모두 60이 되는 것과 부절(符節)을 합한 것과 같지 않음이 없다. 아래로 운기(運氣)와 참동(參同), 태일(太一) 등에 이르러서는 비록 말할 것이 못되나 역시 서로 통하지 않음이 없으니, 이는 자연의 이치이다.
가령 지금 세상에 다시 하도(河圖)와 낙서(洛書)가 나온다 하더라도 그 수(數)가 역시 반드시 서로 부합될 것이니, 복희(伏羲)가 오늘날에 취하여 역(易)을 지었다고 이를 수 있겠는가. 《대전(大傳)》에 이른바 ‘하수(河水)에서 하도(河圖)가 나오고 낙수(洛水)에서 낙서(洛書)가 나오자 성인(聖人)이 본받았다’는 것은 역시 성인(聖人)이 역(易)을 짓고 〈홍범(洪範)〉을 지은 것이 그 근원이 모두 하늘에서 나온 뜻을 범연히 말한 것이다. 예컨대 ‘이로써 복서(卜筮)하는 자는 그 점(占)을 숭상한다’는 것과 ‘시초와 거북점보다 더 큰 것이 없다’고 말한 것과 같은 따위이니, 《주역(周易)》 책에 어찌 거북점과 거북점을 치는 법이 있겠는가. 역시 그 이치가 두 가지가 없음을 말한 것일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