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한 해 아니 두 해도 더 됐을 거다. 태경이 혼례식에서 내외를 만났던 기억 다음은 없으니 세월이 그렇게 흘렀을 거다. 그때도 서울역에서 기차를 타러 들어가는 두 내외를 보내면서 참도 아쉽고 섭섭하기만 하더니, 두고두고 붙잡지 못한 것을 우리 내외는 후회를 했었다.
"하루 밤이라도 따뜻하게 정분을 쌓고 보낼 것을........... ."
떠나는 이들의 마음은 우리보다 더했으려니 했었다.
그래서 우리 내외는 이번에는 하고 별렀다. 그리고는 미리 따르릉으로 일러두었다. 그때처럼 그 길로 내려가는 차표를 제발 사 오지 말라고.
어제사 말고 토요일인데도 성수대교 차들이 왜 그렇게도 밀리는지? 우리가 바쁜 줄을 알고나 있다는 듯이 그렇게 시간은 자꾸 흐르는데 141번 버스는 굼벵이다. 마음은 바쁘지 시간은 흐르지, 아니 곁에서 한강물도 흐르기는 했다. 겨우겨우 영동전화국에 내려 상록회관을 찾아 들어가니 3분이나 지나 있다. 혼주가 서 있을 자리에는 그래도 태경이 내외가 우리를 반갑게 맞아준다. 식은 이미 시작이 되었고. 문규 내외는 하객 어느 자리에 박혀 있는지는 깜깜하고. 두리번거려 봐야 그건 허사다.
식이 진행되면서 세월이 참 빠르다는 걸 실감한다. 미연이가 신부라니? 참 귀엽다. 사회자의 짓궂은 놀림에 일일히 답하는 신혼부부. 미연이는 아들을 더 원한단다. 알콩달콩 잘 살기를...........
식이 끝나고 하객들 사이를 헤치니 문규 내외도, 주영이 부모 내외도, 건석이 형 내외도 우리를 반갑게 맞아준다. 인사를 나누고는 같이 식당에 올라가 그 촌스런(?) 갈비탕을 앞에 놓고 맛있게 먹는다. 그 바쁜 중에도 성대댁은 문규와 나를 챙긴다. 금일봉까지 내민다. 그 정성이 눈물겹다. 감사.
소정은 글짓기 강의차 떨어지지 않는 걸음을 안양으로. 우리는 택시를 집어타고 성수대교를 거쳐 우리집으로 해서 안국동 입구에 내린다. 안국동 인파를 구경하러 간 건 아닌데 그만 인파에 묻히고 만다. 거리에는 전통 멋은 저리 가라고, 온통 사람과, 중국에서 건너온 어설픔이 가득해서 참 아쉽다. 우리 것은 드물고 남의 것이 와서 주인 행세를 하는 처지라니............. 이것도 세월이 가면 바로잡아져서 한국의 멋이 물씬 묻어나는 거리가 되기를............
문규댁은 높은 돌담이 뭐냔다. 일본대사관이 그런 걸. 왜 그들은 참 보기 싫게도 히끄무레한 돌담을 그렇게 도로가에 높이 쌓아서 흉물스럽게 했을까? 뭘 그리도 가리고 싶은 걸까? 멀리 삼각산이 내려다보고 있었다.
광화문 통에 가까와오니 저멀리 새로 복원한 광화문이 우뚝하다. 뒤에는 청화대가 쑥 드러가 있다. 전에 청와대 위치에 들어앉으면 사방이 하나도 안 보여 안에서 짓까불기만 한다고 하시던 용전 선생님. 그러니 하루라도 빨리 옮겨야 진취적인 나라가 될 거라고 하시던 말씀이 귓전에 생생하다.
인파에 떠밀려 광화문 현판 아래 서니 들은 대로 백일도 채 되지 않은 현판이 균열도 선명하다. 일부러야 그랬겠느냐만 참 아쉽다. 기술이, 아니 정성이 모자란 걸 어쩌란 말인가? 세상사 뭐든 서두른다고 좋은 건 아니지 않은가? 뭐가 그리 바빠 815에맞추느라고, 그래서 생색내려고 서두른 게 원인은 아닌지?
광화문 지나 경복궁에 들어서니 근정전이 저만큼 보인다. 정도전이 어쨌느니, 무학대사가 어쨌느니 한참을 얘기하며 둘어가는데 근정전앞에서 더는 갈 수가 없다. 공개하는 시간이 임박해서 입장이 안 된단다. 우리는 뭐 그렇게 아쉬울 것도 없다는 듯 미련없이 돌아서 나온다. 이름하여 육조거리로 조성된 곳을 걸어나오며 뭐가 그들은 그렇게 두려워 광장을 그렇게 만들어 놓고도 사용을 못하게 했을까 하는 생각으로 착잡하기만 하다. 추석 전의 그 물난리. 둘러보니 그럴 수밖에 없게 되어 있음을 문외한이 보아도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배수구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이다. 설계자는 전문가였을 터인데, 어쩌다가 이렇게 만들어 놓았을까?
광화문 네거리를 비각 앞으로 건너 청계천에 이르니 아직은 시간이 일러 세계등축제 점등 전이었다. 우리는 기다리고 기다려서 길게 늘어선 줄을 따라 입장하면서 실망이다. 그저 평범하기만 하다. 우리 기대가 너무나 컸던 거 같다. 모전교 광통교 삼일교를 지나 우리는 그만 지상으로 올라오고 말았다. 많이도 걸어서 다리도 피곤하고 마음도 지쳐 있었다. 커피샵에 들어가 화장도 고치고 향그런 커피향을 즐기며 행복하다. 소정이 전철을 안양에서 타는 중이란다. 시간을 맞추어 프레스센터 앞에서 만나기로.
삼일빌딩앞에서부터 걸어서 그곳에 이르니 딱 제 시간이다. 6시 40분. 소정은 먼저 와서 돌의자에 앉아서 반갑다고 손을 흔든다. 삼청각행은 6시 43분. 그런데 인파덕에 기다리던 셔틀버스는 감감무소식이다. 평소같으면 목적지 삼청각에 도착하고도 남았을 즈음에서야 차가 온다. 삼청동 길을 구불구불 오르면서 우리는 감탄한다. 참 좋은 거리다. 저녁을 먹고 걸어내려가면 어떨까 하고.
내 오랜 제자인 은선이가 우리가 머무를 자리를 정성을 다해 준비를 마쳐놓고는 잠깐 외출해야 하니 다녀오겠단다. 밤은 밤대로 삼청각의 분위기를 기가 막힌다. '화요'를 한 병 시켜서는 홀짝거리는데 외출에서 은선이가 돌아와 또 만난 막걸리를 내 온다. 우리 다섯. 스승과 제자. 문규와 나는 은선이를 한 서른다섯 해 전에 사대부여중에서 가르쳤다. 그렇게 우리는 사제간이다. 그러니 그 짓궂은 중삼시절 나를 골탕먹이던 일을 포함해서 만단정회를 풀어놓았으니 시간 가는 줄을 알 턱이 없다. 주방이 문을 닫을 때가 되어서야 우리는 일어선다. 푸짐하게 편안하게 대접을 잘 받은 우리를 은선이는 행당동 집에 데려다까지 준다.
내가 내일 아침은 사우나후에 맛있는 추어탕이랬더니 은선이가 저도 오겠단다. 응봉 삼거리에서 내리면서 약속 9시. 그는 가고 우리는 우리 거실에서 판을 벌린다. 술은 '水井坊' - 이호균 선생이 가훈을 내게 받았다고 어제 건네준 선물이다. 그렇게 좋은 술인 줄을 까맣게 모르다가 맛을 보고는, 딸아이의 얘기를 듣고는 화들짝 놀란다. 새벽 3시까지 이약이약. 이제는 자자니 문규 왈.
"아직은 4시 안 됐는디요."다.
그래도 아쉬운 걸 접으면서 쿨쿨.
아침에 눈을 뜨니 8시. 은선이에게서 문자가 와 있다.
"아이들 챙겨야 해서 못 가요. 맛있게 드세요."다
저녁에 누울 때는 시원해서 좋더니만 아침에는 더워서 온몸이 땀투성이다. 문규 내외와 나는 사우나로. 문규는 그 사이에도 생명 하나를 살리는 선행을 베풀고. 그 좁은 욕탕에서도 사람이 죽을 수가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지친 어느 어르신께서 허우적거리는 것을 나는 그냥 수영하는 거라고 생각을 하며 저러다 머리를 다치시지나 않을까 걱정을 하고 있는데 탕 안에 있던 문규가 안아 올리니 축 늘어지신다. 조금만 늦었으면 아마도 큰 일을 당했을 상황이다. 밖으로 나가 안정을 취하게 하니, 손을 움직이신다. 곧바로 구급대원이 와서 돠와주는데 영 어르신이 말을 안 듣고 고집을 부리신다. 가족에게 모셔다 드린대도 아니 나가려 하신다. 속사정인즉 워낙 사우나를 좋아하셔서 그 연세에 사우나에 오래 계셔서, 위험하다고 가족이 말렸는데, 듣지를 않은 탓을 들을까 봐서란다. 조심하셔야지. 연세를 생각하시고. 그렇게 문규는 생명 하나를 건지고.
나와서 신촌설렁탕집에서 설렁탕으로 아침을 대신하고 귀가. 커피에 국화차에, 그리고 구삐 물을 갈아주고 우리는 티나가 머물 원룸 탐색에 나섰다. 세상에 입에 딱맞는 떡은 없다. 우리집 주변에서 출발. 행당동을 돌아보고, 무학여고 주변을 탐색하고, 옥수동을 거쳐서 동국대 입구역 주변을 돌아보고 그래도 이곳이 괜찮겠다 싶으면서도 아쉬워 약수동으로, 그리고 금호동. 나머지는 티나 본인에게 맡기기로 하고. 문규왈,
"임무 완수"
점심을 먹기로 하는데 문규 마음이 참 바쁜가 보다. 당연한 얘기. 부산에서 어머니께서 어제 목욕탕에서 쓰러지신 것을 전화로만 대응하고 상황을 티나와 형덕이에게 맡겼으니 그렇다. 전체 상황으롤 보면 염려할 수준은 아니어서 참고 견디면서도 얼마나 걱정이 되겠는가? 나도 맴이 조마조마한데 말이다. 8시 5분 차라던 차표를 형덕이와 연락을 해서 4시반으로 앞당긴다. 나는 듣고도 만류를 못한다. 그게 맞는 것을. 이제 남은 시간 3시간. 점심을 먹고 서울역에 도착해야 한다. 뭘 먹을까 하다가, 해물하다가 '원할머니보쌈'으로 낙착. 제일 가까운 곳에 그럴 듯한 음식점으로 언뜻 생각난 거니까.
다행히 우리 모두 음식에 만족이다. 아쉬운 것 하나라면 해장으로 안성마춤일 콩나물탕이 휴일에는 없고 평일 점심메뉴라 바라만보아야 했다는 것. 그러다가 소정이 아쉬운 듯, 원룸 이야기를 꺼낸다. 우리가 예전에 살던 상왕십리역 바로 위에 깔끔한 것이 있다고. 내가 받아서,
"그럼 당장에 가 보자."
결과는 대만족. 값도 집도 길도 다 적당. 이제는 다만 티나가 결정하는 일만 남았다.
퇴계로늘 거쳐 서울역에 이르러 문규내외는 들어가고 아쉬운 작별. 참 꿈 같은 27시간. 참 행복하다. 감사.

스물일곱 시간이 한 눈에 들어오네요. 티나 아빠 메일로 사진 보내 드리면 좋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