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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례헌

이른 아침 고향 친구가 전화를 걸어 왔다. 깜짝 놀랄 만큼 반가운 친구였기에 대뜸 만나자는 말부터 했다. 누구에게나 고향 친구가 있고, 친구들과의 잊지 못할 추억이 있겠지만, 오늘 전화를 한 친구는 내 고향 친구 3총사 중 한 명이다.

대개의 사람들은 절친한 친구를 꼽으라면 우선 초등학교 친구를 꼽고, 아니면 사춘기를 함께 보낸 고등학교 동창을 꼽는다. 하지만 우리 3총사는 중학교 때 친구다. 가만히 더듬어 보니 무려 6년만에 소식이 닿았는데 어찌 반갑지 않으랴.

당장이라도 달려 나가 만나고 싶었지만 서로의 사정을 고려해 몇 시간 후에 보기로 했다. 왜 이렇게 가슴이 두근거리는지 아침도 먹는둥 마는둥 하고 옷장 문을 열고 이 옷을 입을지, 저 옷을 입을지 고민이다. 하여 옷이란 옷은 다 꺼내 놓고 입어 보자니 옛날 생각에 절로 웃음이 난다.

그때가 아마 중학교 3학년쯤 되던 해였던 것 같다. 뽀얀 흙 먼지 뒤로 하고 쏜살같이 달리는 시외 버스를 두 대나 보내고 한 시간을 넘게 걷고 있었다. 바람은 산골짝 구비구비 냉기란 냉기는 다 몰고 와 열여섯 살 단발머리의 작은 몸뚱아리를 사정없이 꼬집었고, 갈 길은 아직 까마득했다.

오늘 따라 버스에 사람이 많은 것을 보니 장날인가 보다. 아! 그래, 조금 전에 학교 앞으로 얼큰하게 술 한 잔 하신 순옥이 아버지께서 두루마기에 중절모를 삐딱하게 눌러 쓰고 불콰한 얼굴에 기분 좋은 걸음으로 지나 가셨지. 또 보따리보따리 이고 진 아주머니들이 모처럼 활짝 핀 모란 꽃 같은 얼굴로 지나가셨지.

그러고 보니 오늘이 영주 장날이야. 꼬마도 아니고 숙녀도 아닌 어중간한 시기에 걸쳐진 나는 그래도 우리 동네에서는 흔치 않은 읍내 유학생이었다. 읍내 고모님 댁에서 학교를 다니다가 오늘은 토요일이라 집으로 돌아가고 있는 중인데, 겨울의 한가운데에서 30리 길을 걷고 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영화를 보지 않는 건데.'

속으로는 후회를 하면서도 입가에는 어느새 미소가 잘팍거린다. 지난 장날 읍내 한 쪽 외진 곳에 가설 극장이 들어왔었다. 영화는 <연산군>을 상영했는데, 우리 3총사는 작당을 해서 영화를 보기로 했다.

혹시 독자중에 기억하실 분들이 계실지 모르겠다. 그 시절의 가설 극장은 유랑 극장으로서 장날에 맞추어 면소재지나 군소재지를 돌아다니며 영화를 상영했다. 그런데 영화보다 더 재미 있는 해프닝이 극장 입구에서 벌어지곤 했다.

시골이라면 어디서나 마찬가지였겠지만 특히 내륙지방에서 농사가 생활의 전부인 시골에서는 장날 곡식이나 닭, 아기 돼지 등을 팔지 않으면 현금이 없는 관계로 영화 한 편을 보려면 벼르고 별러서 간다.

일찌감치 저녁상을 물린 젊은 엄마들은 시부모님 눈치 봐가며 살짜기 빠져 나오려는데 눈치 없는 어린 자식이 엄마 어디가냐며 치마 꼬리를 붙잡고 늘어진다. 어르고 달래서 떼어 놓으면 다행인데 기어이 떨어지지 않으려는 아이는 엄마가 데리고 가야만한다. 영화 볼 돈은 엄마 몫밖에 없어서 하는 수 없이 아이를 업고서는 애기라고 빡빡 우긴다.

마침 아이가 덩치가 작으면 기도가 슬쩍 눈 감아 주기도 하지만 아이의 덩치가 크면 그때부터 '되네 안 되네' 하며 실랑이가 벌어진다. 어디 업기만 하는가 겨울에는 아빠의 두루마기나 코트 속에 바짝 매달려 숨어서 들어 가다가 들키기라도 하면 사정하거나 변명하는 모습이 지금 생각하면 귀하디 귀한 추억이다.

그날도 가설 극장 한 모퉁이에서 만난 우리 3총사는 배꼽을 잡고 박장대소했다. 한 아이는 엄마 치마저고리에 수건으로 얼굴을 반이나 가린 채 쓰고 나왔고, 또 한 아이는 언니의 양장을 훔쳐 입고 빼딱 구두를 신었는데 처음 신어 본 구두가 익숙치 않아 걸을 땐 오리 궁뎅이를 하고 걸었다.

나는 고모 월남치마에 스웨터를 입고 스카프를 뒤집어 썼는데 눈만 빼꼼이 내놓고 있었다. 그 얼마나 우스꽝스러웠겠는가, 지금 생각해 보니 아마 그 <연산군> 영화가 미성년자 관람불가였던 것 같다. 때가 마침 겨울이라 수건을 쓰건 스카프를 쓰든 무엇이든 뒤집어쓰고 얼굴을 가리기엔 딱 좋았다. 그렇게 위장을 하고 거금 10원을 영화 보는 데 탕진(?)을 했으니 집에 갈 때는 걸어서 갈 수밖에.

처음으로 본 활동 사진이 머리 속에서 와글거려 추운 줄도 모르고 걷고 있었는데 어느덧 해가 노루 꼬리만큼밖에 남지 않았다. 마음이 다급해진 나는 종종걸음을 쳤고 그제서야 얼굴과 무릎이 아프도록 시리다는 것을 느꼈다. 버스를 타야 했다. 춥기도 하지만 날이 저물어가고 있었다. 나는 주머니에 있는 돈 5원을 만지작거리며 궁리했다.

'여기서부터 타도 10원은 줘야 할 텐데.'

마침 버스가 왔다. 얼결에 손을 번쩍 들었다. 나는 일단 버스를 타고 차장 언니께 말했다.

"언니요! 단산까지 가야하는데 5원어치만 태워 주소."

그때였다.

"자가 누고? 정미소 집 손녀 아이가. 차장! 가 낭거지(나머지)는 내가 내께 단산까지 태워 주소."

순간 나는 당황했다. 순옥이 아버지였다. '아까 학교 앞에서 뵈었을 때 인사를 안했는데…' 도로 버스에서 내리고 싶었다. 그때였다. 또 다시 들려오는 목소리,

"마, 가 꺼 내가 다 내께 단산까지 태워 주소."

오! 마 이 갓.

"아입니더. 지는 5원어치만 타도 됩니더."

저녁 그림자를 밟으며 버스에서 내렸을 때, 내 주머니에는 5원이 그대로 있었다. 다시 기분이 좋아진 내 머리 속에서는 <연산군> 필름이 계속해서 돌아가고 있었다.

2007년 6월 셋째 날, 한 명이 빠져서 서운하기는 했지만 우리는 지난 얘기를 신나게 하다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극장 앞에서 발이 멈췄고, 서로 얼굴을 마주한 채 그 옛날의 웃음만큼이나 근심 걱정 없는 청량한 웃음을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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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
2008.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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