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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례헌

갈등     -수필가 김경내-

 

공원에서 돈다발을 주웠다. 돈을 묶은 띠에는 K은행의 도장이 선명하다. 100만 원 가량 돼 보인다. 얼른 주위를 둘러보았다. 마침 새벽에 가까운 이른 아침이라 공원에는 운동하러 나온 사람도 없고, 수질 문제가 불거지고 난 후부터 공원 약수터에조차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겼다. 느긋한 마음으로 돈다발을 주워든 나는 조그만 바위에 걸터앉아 생각에 잠겼다.

 

 

‘요즘 세상에 수표도 아닌 현금을 찾아서 갖고 다니는 사람도 있네! 흠, 아파트가 많기는 하지만 그만그만한 서민이 사는 아파트들이고, 주택도 머잖아 재개발이 될 그런 동넨데 이 돈 주인은 이 돈을 과연 어디에 쓰려고 했을까?’

 

생각에서 빠져나와 다시 주위를 살펴도 사람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다. 이번에는 본격적인 갈등 모드로 돌입했다.

 

‘가까운 파출소(파출소에서 지구대로, 지구대에서 지난 5월부터 다시 파출소로 바뀜)에 가지고 갈까? 아니면 현금인데, 조회를 당할 일도 없는데 그냥써? 만약에 쓴다면 어디에 쓴다?’

갑자기 생각지도 못했던 일들이 기억 밖으로 마구 몰려나오며 ‘나요, 나요’ 하고 손을 든다.

일자리가 시원찮아 방황하는 아들의 다 떨어진 운동화가 제일 먼저 눈앞에 알짱거린다. 뒤이어 앞뒤의 범퍼가 긁혀서 시커먼 몰골을 한 내 애마도, 맞아, 동호회 사람들이 좋은 악기로 바꾸는 게 유행병처럼 번지던데 나도 이참에 색소폰을 바꿔 봐? 아니지 그것보다 이 게 더 급한데… 아니 저 게 더…!

주운 돈은 백만 원인데 쓴 돈은 벌써 천만 원이 훨씬 웃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이마가 따가워서 하늘을 보니 초여름의 아침 태양이 아차산을 막 벗어나려고 한다. 불현듯 나도 혼란스러운 망상에서 빠져나와 사방을 둘러보니 공원 위쪽에서 허술한 차림의 남정네가 내려오고 있다. 슬그머니 무서운 생각이 들어서 내 손에 돈 다발이 들려 있다는 사실을 잊은 채 공원을 벗어나려고 바삐 걸었다. 얼마를 걷다가 뒤를 돌아보니 그 남정네는 보이지 않았다. 긴장이 풀어지니 손에 있는 돈이 보였다. 입가에 쓴 웃음이 돌았다. 과연 이 돈이 내 손에 없었더라도 내가 그 남정네가 무서웠을까?

귓가에 남편의 음성이 들렸다.

‘도둑질 한 돈으로 자식을 공부 시키고 싶을까!’ ‘부정한 돈으로 먹은 밥이 소화가 될까?’

남편은 교직에 있었다. 어느 때던가, 반의 임원 회비를 낼 형편이 안 되는 학부모의 사정을 알고 회비를 임원들 몰래 대신 낸 사람, 한 번은, 임원회비 낼 돈이 없어도 돈 없는 티를 안 내고 자식을 위해 자가용을 팔아서 임원 회비를 낸 학부모의 사정을 알고 그 후로 다시는 담임을 맡지 않았던 사람!

나는 그런 사람의 아내다. 이 돈으로 내 자식의 신을 살 수는 없지, 그 밖의 어떤 것도 할 수가 없다는 사실을 자각한 순간 거짓말처럼 내 마음의 갈등은 사라졌다.

나는 돈을 주웠던 쪽을 보았다. 그 남정네가 그 주위를 빙빙 돌고 있었다. 무엇인가를 찾고 있는 게 분명했다. 돈을 품에 감추고 남정네에게 갔다.

“뭘 찾으세요?”

“예, 돈을 잃어버려서…!”

그의 입에서 약간의 술 냄새가 났다. 하지만 얼굴 표정은 난감을 넘어서 곧 죽을 것만 같았다.

“어머 그래요? 얼마나 잃어버리셨어요?”

“백만 원이요, 우리 딸내미 시집가는 데 돈이 모자란다고 지 에미가 하도 고시랑거려서 다믄 백만 원이나마 친구한테 빌린 건데.”

“그런데 어떻게 공원에서 잃어버리셨어요?”

“돈 빌려준 친구가 고마워서 여기서 같이 소주 한 잔했어요. 에고 이노무 술이 문제야. 내가 이노무 술을 다시 마시나 봐라. 에고 이노무 정신머리!”

그는 맨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곧 울상이다. 그 상황에서도 내 장난기는 여지없이 발동했다.

“아저씨, 저한테 돈 봤냐고 왜 안 물어 보세요?”

“예?”

“빨리 물어보세요.”

그는 ‘별 미친년 다 보겠네. 멀쩡한 줄 알았더니 미친년이구만.’하는 눈으로 나를 보더니 짜증을 확 내면서,

“아 가던 길이나 가요.” 한다.

 

속이 후련했다.

버리면 되는 것을!

조회 수 :
576
등록일 :
2010.09.20
21:37:16 (*.178.12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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