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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례헌

어제 밤에는 내가 모처럼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세상이 변하는 줄도 모르고 꿈 속을 헤매고 있었으니........ 국보 1호가 사라지는 줄은 까맣게 몰랐을 것은 당연지사, 그보다 더 중요한 일, 부회장님의 공지.
 
활빈당(김진철)   08.02.10 23:29   답글
개감수가 한창 피기 시작 시했습니다 .때가 조금 이른감은 있지만 11일 내일은 작년도 26일에 보았던 복수초와 백양사 근교에 개감수를 보러 갈 계획입니다. 함께 가실분은 연락 바랍니다 북하면에서 10시 출발
 
이걸 내가 봤을 리 만무. 아침에 일어나 어쩐지 예감이 찜찜. 혹시나 하고 카페를 열었더니 아니나 다를까. 복수초란다. 거기다 개감수까지 덤으로 볼 수 있다니. 아침에 이걸 안 열었더라면 천추의 한(?)이 될 뻔하지 않았는가. 이건 좀 과장이 심한가?
 
우리 가정 이야기를 좀 곁들여야 할 것 같다. 오늘은 아내가 상경하기로 한 날이다. 아내에게 오늘 산행 간다 했더니, 나를 바라보는 아내의 표정이 예사가 아니다. 나를 빤히 바라보더니 "그렇게도 좋아요?"다. 왜냐니까, 대답이 나를 멍하게 하고 만다. 내 얼굴에서 빛이 난단다. 그러면서 그렇게 좋아하는 일이 있으니 참 다행이란다. 소풍을 앞둔 아이처럼 들떠 있는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아 무안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마침 버스 시간이 9시 반. 아내를 배웅하고 부리나케 북하면 행.
 
이사간 면사무소 기천만 원짜리 육송 곁에 주차를 시키고 백양사 가는 길 야산에 올랐다. 아 그런데 그곳에 하느님의 신비가 또아리를 틀고 막 기지개를 켜려 하고 있지 않은가! 여기도 붉은 새싹이 불쑥, 저기도 샛노란 새싹이 불쑥. 도대체 어느것을 먼저 구경하고 눈도장을 찍고 렌즈를 가져다 대야 할지 정신이 없다. 마치 남편과 아내가 꼭 기대서서 서로를 포옹하고 사랑을 속삭이는 것 같지를 않은가. 앞에 삐져나온 한 녀석이 시샘을 하는 양.

bogsu1.gif

전생에 우린 부부 이생도 가시버시
한껏은 진한 사랑 속으로 머금다가
이제야 꺼릴 것 없어 나란히도 엉키네.

두 내외가 서로 만나 해로를 하고 나니 자손이 무려 아홉이라는 듯 무성히도 돋아 한껏 자랑하는도다.

내려오는 밭둑에 뒤엉켜 이 한겨울에도 꽃을 피우는 놈이 있어 들여다보니, 부회장님 왈. "한 번 당겨 보시지요." "그럴까요?"

그래서 접사 한 컷. 그 이름도 큰개불알꽃.

내려와 차를 타고 다시 백양사 가는 길로 접어들었다. 부회장님 덕에 난 처음으로 쌍계루까지 차를 타고 가는 행운을 안을 수 있었다. 이제까지는 늘상 주차장에서 다리 아프게 걸어야 했으니까. 그것도 입장료까지 내면서 말이다. 오늘은 물론 부회장님 빽으로 무료. 기분이 삼삼하다. 공짜는 누구에게나 기분 좋은 것인가 보다.

내장사로 넘어가는 길로 접어 들어 조금 오르자 눈에 덮인 길이 길게 늘어져 있다. 한 곳에 주차를 하고 걷기 시작. 한 사오백 미터를 가면 그곳에 변산바람꽃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 속에 헤매기를 한 시간 정도. 별무소득. 눈에 들어오는 것이란 푸르름을 저 혼자 자랑하고픈 석산뿐. 다음에 또 인연이 있으면 만나겠지. 그러면서 하산할 수밖에.

내려오니 백양사 주차장에 꽃잔디님이 모란꽃보다 더 환히 웃으며 우리를 맞아 준다. 셋이서 다시 복수초를 찾아 산행에 나선다. 목적지가 남도를 벗어나 북도의 고도가 110미터나 더 높은 순창의 어느 야산. 헤매기를 거의 한 시간. 양지바른 무덤 군에도 가보고, 여기 저기 낙엽을 들쳐보지만 전혀 기미가 안 보인다. 실망, 아니 그렇게 쉽게 이 계절에 그놈들을 만날 수 있다면 재미가 없을 터. 초자인 우리들은 건성건성, 대충대충이다. 그런데 역시 베테랑이신 우리 부회장님 개울가를 여기저기 기웃거리시더니 한 곳의 눈을 걷어 내기 시작하신다.  그래서 우리의 낙담을 한 순간에 날려버린 놈이 이놈이다. 왈 복수초 1호.

어디에 숨었다가 이제사 드러내나
그 모습 아리따워 얼음 속 연초록빛
태고적 상그러움을 머금다가 나왔네.

나도 하나 찾아야지. 다짐도 야무지게 하고 눈 속, 낙엽 속을 조심조심 혹여나 싹을 다칠세라 긁어내지만, (꽃잔디님왈, 고고학자가 붓으로 땅에 묻힌 도기를 꺼내듯 하라신다) 별무소득. 그런데 꽃잔디님이 제2호를 찾으신다.  고개만 살짝 내민 놈이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잎을 앙다물고 있다.

튼실한 꽃망울로 얼어붙은 대지 뚫고
하늘로 치솟아서 내일은 소망담아
따스한 볕님 벗삼아 그 용자를 펼치리.

한참을 긁어 대도 내게는 인연이 없나 보다. 역시 초자는 할 수 없는 것. 부회장님께서 멋지게 대공도 튼실한 놈으로 제3호를 찾으신다. 아이구, 부러버라. 난 체면이 말이 아니다. 입으로는 이랬다.

"못 찾은 벌로 제가 오늘 점심 사지요."

고놈 참 대공마저 검붉고 튼실하다
눈속에 얼음방울 머리에 이고서는
서둘러 새봄 맞으러 나들이를 왔었나.

아니 조금 있더니 그 곁에서 꽃잔디님이 "이거도 복수초 맞지요?"다. 어이구 쪽팔려. 하느님도 무심하셔. 난 어쩌라구. 그래서 복수초 제4호. 대공도 빨갛고 꽃망울도 실하고 자태도 예쁘기 그지없다. 단연 오늘의 장원 감이다.

돌 사이 얼음 사이 무엇이 그리워서
일찍도 깨어나서 서둘러 나왔나요.
참았다 드는 훈풍을 맞으려고 오시지.

아, 드디어 나도 찾았다. 하느님은 역시 무심하시지 않으셨다. 내가 복수초 제 5호를 찾은 거다. 부회장님, 꽃잔디님이 더 좋아하신다. 체면치례도 못 할까 봐 안타까우셨나 보다. 감사. 이놈은 수줍은 듯 깊이도 숨어 있던 놈이다. 제 분수를 알아서 아직은 때가 아닌 줄을 아는가 보다. 그런데 사진을 찍어 놓고 보니 그 중 가장 굳세고 튼실한 것 같아 보인다. 그런데 실은 그렇지가 않다. 그게 바로 사진의 장난이다. 특히 접사가 그렇다. 무엇보다 힘차 보이지를 않는가. 좋게 말하면 강조되는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과장이 심한 거다. 하느님이 도우시기는 했어도, 어쨌든 나도 한 몫을 한 거다.

조화옹 보내주신 튼실한 복수초 싹
이 하나 없었드면 네 얼굴 붉었으리
이 생명 곱게도 자라 한 우주를 만들라.

꽃잔디님 왈, 사진을 보던 때와는 또 다른 감동이 온단다. 솟아오르는 새 생명을 맞는 그 환희를 가슴에 안고 우린 그 계곡의 복수초를 뒤로 하산 길에 올랐다. 내려오는 길은 발길도 가볍다. 해발 110미터를 더 내려오면 북하면이다. 그곳에 와 정읍에서도 먹으러 온다는 맛이 짱이라는 중국집엘 들러 간짜장으로 점심을 떼우고. 나는 웬 복인지, 덤으로 내 중학교 동기생을 다 만나고. 간짜장 맛이 역시 그만이다.

꽃잔디님 서운하실까 봐, 우리는 또 개감수 밭에 다시 들려 몇 컷의 사진을 얻었다. 그 새 그 개감수들은 양지의 햇볕 덕을 보았는지 지들 키를 늘이고 있었다. 누군가 겁도 없이 우리 부회장님 전용 주차장에 떡 허락도 없이 주차를 하다니, 딱지 끊으시라 했더니 봐 주신댄다. 마음도 참 너그러우시지. 즐거운 산행, 부회장님께 감사. 꽃잔디님께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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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06
14:35:24 (*.149.7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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