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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례헌

오늘은 27일. 연휴 마지막 날이다. 아침에 눈을 뜨니 꿈자리가 상그럽다. 계절도 날짜도 분명찮은데 내가 이름 하나 떠오르지 않는 야생화에 묻혀 헤매고 있었으니............. 렌즈를 가져다대면 영 초점이 맞지를 않아 애를 먹다가는 깨었으니.......... 나도 어지간한 중증에 빠졌나 보다. 이제 바야흐로 겨울이 날개를 접고 봄이 화알짝 웃으려는 때가 아닌가! 12시 서울행 버스를 타야 하는 내 아내는 가기 싫어 밍그작거린다. 나도 보내기가 싫어서 괜히 짜증을 부리다가 멋적어 밖으로만 돈다. 가져갈 무우를 캔다는 핑게로, 감주를 담는다는 구실로, 밖으로만 돌다가는 그래도 멋적어 장작을 쾅쾅 패고 만다.

아이가, 아니 우리 작은댁 16개월 된 아이가 와서 그만 화알짝 웃는다. 모두 아이에게 집중이다. 아 아이가 바로 꽃이 아닌가! 이보다 더 예쁜 꽃이 있을까? 제 아비 품에 안겨 낯설어 하더니 시간이 지날수록 제 모습을 드러내며 한 사람씩 돌아가며 보고 웃어 주니 그만 황홀하다. 선비께서는 생전에 그러셨다. 자식들은 3살까지 효도를 다하는 거라고. 그러니 자라며 자식에게 뭘 더 바라겠냐고. 그래서 살아 생전에 여덟이나 되는 자식에게 바라시는 게 하나도 없으셨다. 가신 지 십오 년이 넘었으나 생각하면 가슴이 싸아 하다.

아이 재롱을 보고는 문득 찰칵할 생각으로 렌즈를 가져다댄다. 고놈 먹는 입도 크다!

 임시 버스에 아내가 타고는 출발을 한다. 밖에서 손을 흔드나 유리창에 반사되어 전혀 보이지를 않지만 안에서는 보겠거니 하고 그저 뒷걸음질하는 버스를 향해 손만 흔든다. 잘 가라고.

돌아서서는 허전하다. 뭘 할 것인가! 같이 북적대던 아내도 가고 내가 할일이란 자판을 두들기는 일 뿐인데, 그게 오늘은 어쩐지 싫다. 기계가 움직이는 거 같아 싫다. 문제를 만들어내는 기계. 만들기야 잘 하지. 그런데 그게 무슨 재미가 있을꼬. 생각다 어제밤 꿈에서 본 야생화를 이큐가 보러 가잔다. 내 아이큐가 재미 없단다. 혼자 무슨 청승으로? 황고에게 전화. 시간이 어쩌냐고? 시간 많단다. 기다리라고 해 놓고, 두령님께 떼르릉.

과세 잘 하셨습니까? 지누랑이요. 그 동안 엄청 바쁘셨지요?

예. 이제 마무리되었습니다. 어디세요?

집입니다. 장성이요. 아내 배웅하고 버스종점에 있어요. 바쁘지 않으심 오랫만에 얼굴이나 보여주시지요. 점심도 하구요.

그러지요.

개감수가 이때쯤 싻이 올라왔지요?

그렇든가요?

황고 데리고 가겠습니다.

그래서 나는 황고를 데리러 쌩하고 장승백이로 간다.

지금 다 가 가니까 카메라 들고 나와 있게나. 유턴할 테니까.

알았습니다.

벌써 황고는 나와 있다. 꾸벅 절하는 황고의 얼굴 표정이 밝다. 새로 뚫린 길을 달려 보니 상쾌하다. 날씨마저 쾌쾌청.

약수리에 도착할 즈음, 두령님께 떼르릉.

형님, 어디로 갈까요? 농장으로 갈까요? 아니 가게로요.

가게 앞에 차를 불법주차하고는 수퍼문을 살며시 미니, 두령님 내외께서 반갑게 맞아주신다. 새해에도 더 많은 복 받아 누리시기 바랍니다. 그래도 민생고는 해결해야 하니 곧장 '석정'으로. 가는 길에 승용차 하나가 '물따라산따라' 간판을 들이받고는 갓길에 쳐박혀 있다. 아마 승객도 크게 다쳤으리라. 여러분들이 뒷수습에 분주하시다.

찌게에다 맛있는 점심을 먹고는, 내가 즐겨하는 깜밥탕까지 끓여 먹고는 일어선다. 마음이 벌써 개감수 밭에 가 있어서다. 황고 말로는 작년 복수초는 2월 25일이었단다. 눈속에 혹시나 하고 가자는 거다. 어제밤 꿈을 믿고서..............

나오며 계산하려니 벌써 황고가 한 발 앞섰단다. 우리 두령님 왈,

황고가 못된 버릇이 있네. 그러고 나가시길레 황고를 혼내시려는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었던가!

황고, 너 못된 버릇 있구먼. 누가 음식값 계산하랬나? 앞으로 그 못된 버릇 자주 해라 잉.

두령님 짐차를 타고는 백양사쪽으로 부르릉. 곧 내려서는 눈 덮인 야산에 오른다. 기대 반.

그러나 역시나 아직은 때가 이른가 보다. 눈과 나무와 군데군데 바위가 튀어나왔을 뿐이다. 한참을 셋이서 헤맨다. 그러다가 황고가 뭔가 찾았나 보다. 한 곳에 쳐박혀 꿈쩍 않는다. 곁에 두령님도 서서 움직이지 않는다. 나만 멀리 떨어져 동정을 살핀다. 드뎌 황고가 신호를 보낸다.

발견!

두령님께서 먼저 찰칵하고 계신다. 내가 가니 황고가 나 먼저 하란다. 워디 그럴 수가 있담. 황고가 찾은 건디. 절대 아니라고 하고는 한 걸음 뒤로 물러선다. 황고가 찰칵을 들이댄다. 어어서 나도. 그 눈 속에서 저 녀석이 검붉게도 솟아나다니........ 자연의 경이가 아닌가! 황고님 찰칵 하시는 자세가 진지하다.

윗쪽으로 올라가시던 두령님. 뭔가 한 건 하셨나 보다. 움직이지 않고 찰각 준비 중이시다.

두령님, 뭐 하나 건지셨나요?

예, 여기 다섯 개 싻이 한 곳, 한 싻이 한 곳 있습니다.

일행 중 두 사람은 한 건씩 했는데 나만 빈탕이다. 그래서 내 마음은 그냥 바쁘다. 한 건 하려는 욕심이 태산이다. 다행이 뭔가 하나 보인다. 바위 아래 못생긴 싻이 하나 삐죽이 내밀고 있다. 찰칵을 그래도 해야지. 내가 쪽팔리지 않게 해 준 녀석인디. 찰칵 하고는 돌아서는 발길에 웬 횡재? 빛깔도 선명한 녀석이 뽀족히 나와 있다. 그것도 하나가 아니라 둘씩이나. 쌍동이라고 자랑을 해대면서 말이다. 그야말로 감격! 

찰칵을 하고서는 두령님이 찾은 녀석들을 구경하러 위로 오르려는데 두어 걸음 빗지게 올라섰을까? 그곳에 또 두 녀석이 서로 경쟁이나 하듯이 90도 각도로 솟아 있다. 그래서 사진에 하나는 보이지를 않는다. 입면도여서 그렇다.

 

 요 녀석은 눈 더미를 그대로 뚫고 나온 놈이다. 생명의 위대함이여!

 혼자서도 그 연약한 힘으로 세상을 살아가겠다고 저렇게 꿋꿋이 솟아나는데............

 세월이 가서 더 따스한 날을 기약하며 우리는 미끄러운 눈을 밟으며 내려온다. 그곳에는 커다란 발자국이 한 줄로 나 있다.

두령님 왈,

멧돼지발자국이다.

내가 왈,

호랑이 발자국 아닐까? 이렇게 주먹보다 훨 큰데요.

우리들 결론.

눈이 많이 왔을 때 찍혀서 눈이 녹으며 발자국이 커진 걸 거다. 멧돼지발자국이 맞다.

약수리에 내려와서 차  한 잔 더 하고 가자는 두령님을 뒤에 두고 다음에 마시자며 황고와 부르릉. 집에 오니 역시 썰렁하다. 빈 자리는 역시 빈 자리다. 아내는 출발 시간 반이나 지났는데 이제 천안 경부선에 들어설 거란다. 평시 같으면 도착하고 남았을 터인데........

금년의 탐사는 워쨌든 이렇게 시작된 셈이다. 두령님과 황고님께 감사. 누가 꿈을 반대라 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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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
2009.01.27
17:45:02 (*.149.7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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