괘변도(卦變圖)
彖傳에 或以卦變으로 爲說하니 今作此圖하여 以明之라 蓋易中之一義요 非畫卦作易之本指也니라
〈단전(彖傳)〉에 혹 괘변(卦變)으로써 설명한 것이 있으므로 지금 이 그림을 만들어 밝혔다. 《주역(周易)》 가운데 한 가지의 뜻이고, 괘(卦)를 긋고 역(易)을 지은 본뜻은 아니다.
右는 易之圖九라 有天地自然之易하며 有伏羲之易하며 有文王周公之易하며 有孔子之易하니 自伏羲以上으로는 皆无文字하고 只有圖畫하여 最宜深玩하니 可見作易本原精微之意요 文王以下는 方有文字하니 卽今之周易이라 然讀者亦宜各就本文消息이요 不可便以孔子之說로 爲文王之說也니라
이상은 역(易)의 도식 아홉 가지이다. 천지자연(天地自然)의 역(易)이 있고 복희(伏羲)의 역(易)이 있고 문왕(文王)·주공(周公)의 역(易)이 있고 공자(孔子)의 역(易)이 있으니, 복희(伏羲) 이전에는 모두 문자(文字)가 없고 다만 획을 그린 것만 있어서 가장 깊이 완미해야 역(易)을 지은 본원의 정미(精微)한 뜻을 알 수 있으며, 문왕(文王) 이후에야 비로소 문자가 있었으니, 곧 지금의 《주역(周易)》이다. 그러나 읽는 이가 역시 각기 본문(本文)을 가지고 이리저리 연구해야 할 것이요, 곧 공자(孔子)의 말씀을 문왕(文王)의 말씀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附錄】 董銖問 近略考卦變컨대 以彖辭考之하면 說卦變者 凡九卦니 蓋言成卦之由하니 凡彖辭는 不取成卦之由면 則不言所變之爻라 程子는 專以乾坤言變卦나 然只是上下兩體皆變者可通이요 若只一體變者則不通이라 兩體變者는 凡七卦니 隨, 蠱, 賁, 咸, 恒, 漸, 渙이 是也요 一體變者는 兩卦니 訟, 无妄이 是也라 七卦中에 取剛來下柔, 剛上柔下之類者는 可通이요 至一體變者則以來爲自外來라 故로 說得有礙라 大凡卦變은 須觀兩體上下爲變이라야 方知其所由以成之卦니이다
동수(董銖)가 다음과 같이 물었다.
“근간에 대략 괘변(卦變)을 상고해보니, 단사(彖辭)를 가지고 살펴보면 괘변(卦變)을 말한 것이 모두 아홉 괘(卦)인 바, 성괘(成卦)의 이유를 말하였으니, 무릇 단사(彖辭)는 성괘(成卦)의 이유를 취하지 않았으면 변한 효(爻)를 말하지 않았습니다. 정자(程子)는 오로지 건(乾)·곤(坤)을 가지고 괘변(卦變)을 말씀하였으나 다만 상(上)·하(下)의 두 체(體)가 모두 변한 것이라야 통할 수 있고 만약 다만 한 체(體)만 변하면 통하지 않습니다. 두 체(體)가 변한 것은 모두 일곱 괘(卦)이니 수(隨)·고(蠱)·비(賁)·함(咸)·항(恒)·점(漸)·환(渙)이 이것이며, 한 체(體)만 변한 것은 두 괘(卦)이니 송(訟)·무망(无妄)이 이것입니다. 일곱 괘(卦) 중에 강(剛)이 와서 유(柔)에게 낮추거나 강(剛)이 올라가고 유(柔)가 내려온 것을 취한 유(類)는 통할 수 있으나, 한 체(體)만 변한 것에 이르러서는 오는 것을 밖으로부터 왔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설명이 막힘이 있습니다. 대체로 괘변(卦變)은 모름지기 상(上)·하(下) 두 체(體)가 변한 것을 보아야 비로소 말미암아 이루어진 괘(卦)를 알 수 있습니다.”
朱子曰 便是此處說得有礙라 且程傳賁卦所云 豈有乾坤重而爲泰하고 又自泰而變爲賁之理리오 하시니 若其說果然이면 則所謂乾坤變而爲六子와 八卦重而爲六十四가 皆由乾坤而變者리니 其說이 不得而通矣라 蓋有則俱有니 自一畫而二요 二而四요 四而八而八卦成이요 八而十六이요 十六而三十二요 三十二而六十四而重卦備라 故로 有八卦則有六十四矣니 此康節所謂先天者也라.
주자(朱子)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곧 이러한 부분에서 설명이 막힌다. 또 《정전(程傳)》의 비괘(賁卦)에 이르기를 ‘어찌 건(乾)·곤(坤)이 거듭하여 태괘(泰卦)가 되고 또 태괘(泰卦)에서 변하여 비괘(賁卦)가 될 리가 있겠는가.’ 하였으니, 만약 그 말씀이 과연 옳다면 이른바 ‘건(乾)·곤(坤)이 변하여 육자(六子)가 되었다’는 것과 ‘팔괘(八卦)가 거듭하여 64괘(卦)가 되었다’는 것이 모두 건(乾)·곤(坤)으로 말미암아 변한 것일 것이니, 그 말씀이 통할 수 없다. 있으면 함께 있는 것이니, 한 획에서 2가 되고 2에서 4가 되고 4에서 8이 되어 팔괘(八卦)가 이루어지고, 8에서 16이 되고 16에서 32가 되고 32에서 64가 되어 중괘(重卦)가 갖추어졌다. 그러므로 팔괘(八卦)가 있으면 64괘(卦)가 있는 것이니, 이는 강절(康節)의 이른바 선천(先天)이라는 것이다.
若震一索而得男以下는 乃是已有此卦了에 就此卦生出此義니 皆所謂後天之學也라 今所謂卦變者는 亦是有卦之後에 聖人見得有此象이라 故로 發於彖辭하시니 安得謂之乾坤重而爲是卦하면 則更不可變而爲他卦耶아 若論先天하면 一卦亦无요 旣畫之後에 乾一, 兌二, 離三, 震四로 至坤居末하니 又安有乾坤變而爲六子之理리오 凡今易中所言은 皆是後天之易耳라 以此로 見得康節先天後天之說이 最爲有功이니라.
진(震)이 첫 번째 구하여 남자를 얻었다는 것과 같은 것 이하는 바로 이미 이 괘(卦)가 있음에 이 괘(卦)에 나아가 이러한 뜻을 낸 것이니, 모두 이른바 후천(後天)의 학(學)이라는 것이다. 이제 소위 ‘괘변(卦變)’이라는 것 역시 이 괘(卦)가 있은 뒤에 성인(聖人)이 이러한 상(象)이 있음을 보신 것이다. 그러므로 단사(彖辭)에 말씀하신 것이니, 어찌 ‘건(乾)·곤(坤)이 거듭하여 이 괘(卦)가 되었으면 다시 변하여 딴 괘(卦)가 될 수 없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만약 선천(先天)을 논한다면 한 괘(卦)도 없으며, 이미 괘(卦)를 그은 뒤에는 건(乾)이 1, 태(兌)가 2, 이(離)가 3, 진(震)이 4에서 곤(坤)이 끝에 위치하는 데에 이르니, 또 어찌 건(乾)·곤(坤)이 변하여 육자(六子)가 될 리가 있겠는가. 무릇 지금 《주역(周易)》 가운데에 말한 것은 모두 후천(後天)의 역(易)이다. 이로써 강절(康節)의 선천(先天)·후천(後天)의 말씀이 가장 공(功)이 있음을 알 수 있다.”
○ 太極, 兩儀, 四象, 八卦者는 伏羲畫卦之法也니 說卦의 天地定位로 至坤以藏之는 以見伏羲所畫八卦之位也요 帝出乎震以下는 文王이 卽伏羲已成之卦하여 而推其義類之辭也라 如卦變圖의 剛來柔進之類는 亦是就卦已成後에 用意推說하여 以見此爲自彼卦而來耳요 非眞先有彼卦而後에 方有此卦也라.
태극(太極)·양의(兩儀)·사상(四象)·팔괘(八卦)는 복희(伏羲)가 괘(卦)를 그은 법이니, 〈설괘전(說卦傳)〉의 ‘천지정위(天地定位)’에서 ‘곤이장지(坤以藏之)’에 이르기까지는 복희(伏羲)가 그은 팔괘(八卦)의 자리를 나타낸 것이요, ‘제출호진(帝出乎震)’ 이하는 문왕(文王)이 복희(伏羲)가 이미 만들어 놓은 괘(卦)를 가지고 그 의(義)와 유(類)를 미루어 말씀한 것이다. 괘변도(卦變圖)에 강(剛)이 오고 유(柔)가 나아갔다는 유(類)와 같은 것 역시 괘(卦)가 이미 이루어진 뒤에 뜻을 미루어 말씀하여 이 괘(卦)가 저 괘(卦)에서 왔음을 나타냈을 뿐이요, 참으로 먼저 저 괘(卦)가 있은 뒤에 비로소 이 괘(卦)가 있다는 것이 아니다.
古註에 說賁卦自泰卦而來라 한대 先儒非之하여 以爲乾坤合而爲泰하니 豈有泰復變爲賁之理리오 하니 殊不知若論伏羲畫卦면 則六十四卦一時俱了하여 雖乾坤이라도 亦无能生諸卦之理요 若如文王孔子之說이면 則縱橫曲直이 反覆相生하여 无所不可라 要在看得活絡하여 无所拘泥하니 則无不通耳니라.
옛 주석에 비괘(賁卦)가 태괘(泰卦)에서 왔다고 설명하였는데, 선유(先儒)가 아니라고 하여 “건(乾)·곤(坤)이 합하여 태괘(泰卦)가 되었으니, 어찌 태괘(泰卦)가 다시 변하여 비괘(賁卦)가 될 리가 있겠는가.” 하였으니, 이는 만약 복희(伏羲)가 괘(卦)를 그은 것으로 논한다면 64괘(卦)가 모두 일시에 완료되어 비록 건(乾)·곤(坤)이라도 역시 여러 괘(卦)를 생성할 이치가 없고, 만약 문왕(文王)과 공자(孔子)의 말씀처럼 한다면 종횡(縱橫)과 곡직(曲直)이 반복하여 상생(相生)해서 불가함이 없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한 것이다. 요컨대 원활하게 보아 구애되거나 집착하는 바가 없으면, 통하지 않음이 없다.
○ 伊川은 不取卦變之說하여 至柔來而文剛, 剛自外來而爲主於內諸處에 皆牽强說了하고 王輔嗣卦變은 又變得不自然이러니 某之說은 却覺得有自然氣象하여 只是換了一爻라 非是聖人이 合下作卦如此요 自是卦成了에 自然有此象이니라.
이천(伊川)은 괘변(卦變)의 말씀을 취하지 아니하여 유(柔)가 와서 강(剛)을 문식(文飾)했다는 것과 강(剛)이 밖에서 와서 안에 주(主)가 되었다는 것과 같은 여러 부분에 대하여 모두 견강부회하여 설명하였고, 왕보사(王輔嗣)의 괘변(卦變)은 또 변함이 자연스럽지 못하였는데, 나의 말은 자연스러운 기상이 있음을 깨달아 다만 한 효(爻)만 바꿀 뿐이다. 이는 성인(聖人)이 당초(當初) 괘(卦)를 만들 때에 이와 같이 한 것이 아니요, 저절로 괘(卦)가 이루어진 뒤에 자연히 이러한 기상이 있는 것이다.
○ 朱漢上易卦變은 只變到三爻而止하여 於卦辭에 多有不通處러니 某更推盡去하여 方通이라 如无妄剛自外來而爲主於內는 只是初剛이 自訟二移下來요 晉柔進而上行은 只是五柔自觀四挨上去니 此等類는 按漢上卦變이면 則通不得이니라.
주한상(朱漢上)의 역괘변(易卦變)은 다만 변함이 세 효(爻)에만 그쳐서 괘사(卦辭)에 통하지 않는 부분이 많이 있었는데, 내 다시 미루어 다해서 비로소 통하게 되었다. 무망괘(无妄卦)에 강(剛)이 밖에서 와서 안에 주(主)가 되었다는 것과 같은 것은 다만 초효(初爻)의 강(剛)이 송괘(訟卦)의 이효(二爻)에서 옮겨온 것이며, 진괘(晉卦)에 유(柔)가 나아가 위로 간다는 것은 다만 오효(五爻)의 유(柔)가 관괘(觀卦)의 사효(四爻)에서 밀쳐 올라간 것이니, 이러한 유(類)는 주한상(朱漢上)의 괘변(卦變)을 살펴보면 통하지 않는다.
○ 卦有兩樣生하여 有從兩儀四象加倍生來底하고 有卦中互換自生一卦底하니 互換成卦는 不過換兩爻라 這般變卦는 伊川破之로되 及到那剛來而得中하여는 却推不行이라 大率在就義理上看하면 不過如剛自外來而得中, 分剛上而文柔等處看이요 其餘는 多在占處用也라 賁變節之象은 這雖无緊要나 然後面에 有數處彖辭하니 不如此看이면 无來處하여 解不得이니라.
괘(卦)에는 두 가지의 생겨남이 있어서 양의(兩儀)와 사상(四象)에서 배(倍)를 더하여 생겨난 것이 있고, 괘(卦) 가운데에 호환(互換)하여 스스로 한 괘(卦)를 생성한 것이 있으니, 호환(互換)하여 괘(卦)를 이룬 것은 두 효(爻)를 바꿈에 불과하다. 이러한 변괘(變卦)는 이천(伊川)이 설파하였으나 강(剛)이 와서 중(中)을 얻었다는 부분에 이르러서는 미루어 갈 수가 없다. 대체로 의리상에 나아가 보아야 할 곳은 강(剛)이 밖에서 와서 중(中)을 얻었다는 곳과 강(剛)을 나누어 위로 올라가 유(柔)를 문식했다는 곳 등과 같은 부분을 봄에 불과하고 그 나머지는 대부분 점치는 곳에서 활용한다. 비괘(賁卦)[ ]가 절괘(節卦)[ ]로 변한 상(象)은 비록 긴요한 것은 없으나 후면에 여러 곳의 단사(彖辭)가 있으니, 이처럼 보지 않으면 온 곳이 없어서 해석할 수가 없다.

괘변도로 역본의도는 마치고 이제 역설강령으로 넘어간다. 역시 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