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전서(易傳序)
易은 變易也니 隨時變易以從道也라 其爲書也廣大悉備하여 將以順性命之理하며 通幽明之故하며 盡事物之情하여 而示開物成務之道也니 聖人之憂患後世 可謂至矣신저 去古雖遠이나 遺經尙存이라 然而前儒는 失意以傳言하고 後學은 誦言而忘味하니 自秦而下로 蓋无傳矣라 予生千載之後하여 悼斯文之湮晦하여 將俾後人으로 沿流而求源케 하니 此傳所以作也라.
역(易)은 변역(變易)함이니 때에 따라 변역하여 도(道)를 따르는 것이다. 《주역(周易)》 책은 광대하여 모두 갖추어져 있어 장차 성명(性命)의 이치를 순히 하고 유명(幽明)의 연고를 통달하고 사물의 정(情)을 다하여, 사물을 열어주고 일을 이루는 도(道)를 보여주었으니, 성인(聖人)이 후세를 근심하심이 지극하다고 이를 만하다. 지나간 날은 비록 까마득하나 남아있는 경(經)은 아직 보존되어 있으나 선유(先儒)들은 말만 전하여 뜻을 잃고 후학(後學)들은 말만 암송하여 의미를 잃었으니, 진(秦)나라 이래로는 전함이 없었다. 나는 천년 후에 태어나서 사문(斯文)이 없어짐을 안타깝게 여겨 장차 후인(後人)들에게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 근원(根源)을 찾게 하였으니, 이것이 《역전(易傳)》을 짓게 된 이유이다.
易有聖人之道四焉하니 以言者尙其辭하고 以動者尙其變하고 以制器者尙其象하고 以卜筮者尙其占하니 吉凶消長之理와 進退存亡之道 備於辭하니 推辭考卦하면 可以知變이니 象與占은 在其中矣라. 君子居則觀其象而玩其辭하고 動則觀其變而玩其占하나니 得於辭요 不達其意者는 有矣어니와 未有不得於辭而能通其意者也라 至微者는 理也요 至著者는 象也니 體用一源이요 顯微无間이니 觀會通하여 以行其典禮하면 則辭无所不備라 故로 善學者는 求言을 必自近하나니 易(이)於近者는 非知言者也라 予所傳者는 辭也니 由辭以得其意는 則在乎人焉이니라.
有宋元符二年己卯正月庚申에 河南程頤正叔은 序하노라.
역(易)에는 성인(聖人)의 도(道)가 넷이 있으니, 이것으로 말하는 이는 그 말〔辭〕을 숭상하고, 이것으로 동(動)하는 이는 그 변화〔變〕를 숭상하고, 이것으로 기물을 만드는 이는 그 모양〔象〕을 숭상하고, 이것으로 점을 치는 이는 그 점괘를 숭상한다. 길흉(吉凶)·소장(消長)의 이치와 진퇴(進退)·존망(存亡)의 도(道)가 말에 갖추어져 있으니, 말을 미루어 괘(卦)를 상고하면 변화를 알 수 있으니, 상(象)과 점(占)이 그 가운데에 들어 있다. 군자가 거처할 때에는 그 상(象)을 관찰하여 말을 살펴보고 동(動)할 때에는 변화를 관찰하여 점(占)을 살펴보니, 말을 알고도 뜻을 통달하지 못한 이는 있지만 말을 알지 못하고서 뜻을 통달할 수 있는 이는 있지 않다. 지극히 은미한 것은 이치이고 지극히 드러난 것은 상(象)이다. 체(體)와 용(用)이 한 근원이요 드러남과 은미함이 간격이 없으니, 회통(會通)을 보아 전례(典禮)를 행하면 말이 갖추어지지 않음이 없다. 그러므로 잘 배우는 이는 반드시 가까운 데서 말을 구하니, 가까운 것을 쉽게 여기는 자는 말을 아는 이가 아니다. 내가 전(傳)하는 것은 말이니, 말로 말미암아 뜻을 아는 것은 사람에게 달려있다.
송(宋)나라 원부(元符) 2년[1099] 기묘(己卯) 정월(正月) 경신일(庚申日)에 하남(河南)의 정이(程頤) 정숙(正叔)이 머리말을 쓰다.
역서(易序)
易之爲書 卦爻彖象之義備而天地萬物之情見(현)하니 聖人之憂天下來世 其至矣신저 先天下而開其物하고 後天下而成其務라 是故로 極其數하여 以定天下之象하고 著其象하여 以定天下之吉凶하니 六十四卦, 三百八十四爻는 皆所以順性命之理하고 盡變化之道也라 散之在理則有萬殊하고 統之在道則无二致하니 所以易有太極是生兩儀하니 太極者는 道也요 兩儀者는 陰陽也니 陰陽은 一道也요 太極은 无極也라 萬物之生에 負陰而抱陽하여 莫不有太極하며 莫不有兩儀하니 絪縕交感하여 變化不窮이라.
《주역(周易)》 책에는 괘(卦)·효(爻)·단(彖)·상(象)의 뜻이 갖추어져 천지만물(天地萬物)의 실정(實情)이 드러나 있으니, 성인(聖人)이 천하후세(天下後世)를 근심하심이 지극하다. 천하에 앞서 사물을 열어주고, 천하에 뒤하여 일을 이루었다. 이 때문에 그 수(數)를 지극히 하여 천하의 상(象)을 정하고 그 상(象)을 드러내어 천하의 길흉(吉凶)을 정하였으니, 64괘(卦)와 384효(爻)는 모두 성명(性命)의 이치를 순히 하고 변화(變化)의 도(道)를 다한 것이다. 흩어져서 이치에 맞으면 만 가지가 다르고, 통합하여 도(道)에 맞으면 두 가지 이치가 없다. 이 때문에 역(易)에 태극(太極)이 있어 이것이 양의(兩儀)를 생성하는 것이니, 태극(太極)은 도(道)이고 양의(兩儀)는 음양(陰陽)이니, 음양(陰陽)은 하나의 도(道)이며 태극(太極)은 무극(無極)이다. 만물이 태어날 적에 음(陰)을 등지고 양(陽)을 안아 태극(太極)이 있지 않음이 없고 양의(兩儀)가 있지 않음이 없으니, 인온(絪縕)하게 교감(交感)하여 변화가 무궁하다.
形一受其生하고 神一發其智하여 情僞出焉하며 萬緖起焉하나니 易은 所以定吉凶而生大業이라 故로 易者는 陰陽之道也요 卦者는 陰陽之物也요 爻者는 陰陽之動也니 卦雖不同이나 所同者는 奇偶요 爻雖不同이나 所同者는 九六이라 是以로 六十四卦爲其體하고 三百八十四爻互爲其用하여 遠在六合之外하고 近在一身之中하여 暫於瞬息과 微於動靜에 莫不有卦之象焉하며 莫不有爻之義焉하니 至哉라 易乎여 其道至大而无不包하고 其用至神而无不存하니 時固未始有一而卦未始有定象하며 事固未始有窮而爻亦未始有定位라.
형체가 한번 생명을 받고 정신이 한번 지혜를 발하여 진정(眞情)과 거짓이 생겨나며 만 가지 단서가 일어나니, 역(易)은 길흉(吉凶)을 정하여 대업(大業)을 생성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역(易)은 음양(陰陽)의 도(道)이고 괘(卦)는 음양(陰陽)의 사물이고 효(爻)는 음양(陰陽)의 동(動)함이니, 괘(卦)는 비록 같지 않으나 같은 것은 기(奇)와 우(偶)이고, 효(爻)는 비록 같지 않으나 같은 것은 구(九)와 육(六)이다. 이 때문에 64괘(卦)가 체(體)가 되고 384효(爻)가 서로 용(用)이 되어 멀리는 육합(六合)의 밖에 있고 가까이는 한 몸 안에 있어, 순식간과 동정(動靜)의 미미함에도 괘(卦)의 상(象)이 있지 않음이 없고 효(爻)의 뜻이 있지 않음이 없는 것이다. 지극하다, 역(易)이여! 그 도(道)가 지극히 커서 포함하지 않은 것이 없고 그 쓰임이 지극히 신묘하여 있지 않은 것이 없으니, 때는 진실로 애당초 똑같음이 없고 괘(卦)는 애당초 정해진 상(象)이 없으며, 사물은 애당초 다함이 없고 효(爻) 역시 애당초 정해진 위치가 없다.
以一時而索卦면 則拘於无變이니 非易也요 以一事而明爻면 則窒而不通이니 非易也며 知所謂卦爻彖象之義而不知有卦爻彖象之用도 亦非易也라. 故로 得之於精神之運, 心術之動하여 與天地合其德하며 與日月合其明하며 與四時合其序하며 與鬼神合其吉凶然後에 可以謂之知易也라 雖然이나 易之有卦는 易之已形者也요 卦之有爻는 卦之已見者也니 已形已見者는 可以言知어니와 未形未見者는 不可以名求하니 則所謂易者는 果何如哉아 此는 學者所當知也니라
한 때로써 괘(卦)를 찾으면 변화가 없음에 구애되니 역(易)이 아니고, 한 가지 일로써 효(爻)를 밝히면 막혀서 통하지 못하니 역(易)이 아니며, 소위 괘(卦)·효(爻)·단(彖)·상(象)의 뜻만 알고 괘(卦)·효(爻)·단(彖)·상(象)의 쓰임을 알지 못해도 역(易)이 아니다. 그러므로 정신(精神)의 운용과 심술(心術)의 움직임에서 터득하여 천지(天地)와 더불어 덕(德)이 합하고 일월(日月)과 더불어 밝음이 합하고 사시(四時)와 더불어 차례가 합하고 귀신(鬼神)과 더불어 길흉(吉凶)이 합한 뒤에야 역(易)을 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역(易)에 괘(卦)가 있는 것은 역(易)이 이미 나타난 것이고 괘(卦)에 효(爻)가 있는 것은 괘(卦)가 이미 드러난 것이니, 이미 나타나고 이미 드러난 것은 말로써 알 수 있으나, 아직 나타나지 않고 아직 드러나지 않은 것은 명칭으로써 구할 수 없으니, 이른바 역(易)은 과연 어떠한 것인가? 이는 배우는 이가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