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소축(小畜)
【傳】 小畜은 序卦에 比必有所畜이라 故受之以小畜이라 하니라 物相比附則爲聚니 聚는 畜也요 又相親比則志相畜하니 小畜所以次比也라 畜은 止也니 止則聚矣라 爲卦 巽上乾下하니 乾은 在上之物이어늘 乃居巽下하니 夫畜止剛健은 莫如巽順이니 爲巽所畜이라 故爲畜也라 然巽은 陰也라 其體柔順하니 唯能以巽順으로 柔其剛健이요 非能力止之也니 畜道之小者也라 又四以一陰得位하여 爲五陽所說하니 得位는 得柔巽之道也니 能畜群陽之志라 是以爲畜也라 小畜은 謂以小畜大하여 所畜聚者小니 所畜之事小는 以陰故也라 彖은 專以六四畜諸陽으로 爲成卦之義하고 不言二體하니 蓋擧其重者라.
소축괘(小畜卦)는 〈서괘전(序卦傳)〉에 “친비(親比)하면 반드시 모이는 바가 있다. 그러므로 소축괘(小畜卦)로 받았다.” 하였다. 사물이 서로 친하고 따르면 모이게 되니 모임은 축(畜)이요, 또 서로 친비(親比)하면 뜻이 서로 모이니 소축괘(小畜卦)가 비괘(比卦)의 다음이 된 이유이다. 축(畜)은 그침이니, 그치면 모인다. 괘(卦)됨이 손(巽)이 위에 있고 건(乾)이 아래에 있으니, 건(乾)은 위에 있는 물건인데 마침내 손(巽)의 아래에 있으니, 강건(剛健)함을 저지함은 손순(巽順)함보다 더한 것이 없으니, 손(巽)에게 저지당하였으므로 축(畜)이 된 것이다. 그러나 손(巽)은 음(陰)이라서 그 체(體)가 유순하니, 오직 손순(巽順)함으로 강건함을 회유한 것이요 능히 힘으로 저지한 것은 아니니, 축(畜)의 도(道)에 작은 것이다. 또 육사(六四)가 하나의 음(陰)으로서 지위를 얻어 다섯 양(陽)에게 좋아하는 바가 되었으니, 자리를 얻음은 유순의 도를 얻음이 되니, 여러 양(陽)의 뜻을 저지하였다. 이 때문에 축(畜)이 된 것이다. 소축(小畜)은 소(小)로서 대(大)를 저지하여 모인 것이 작으니, 모인 일이 작음은 음(陰)이기 때문이다. 〈단전(彖傳)〉은 오로지 육사(六四)가 여러 양(陽)을 저지하는 것으로 성괘(成卦)의 뜻을 삼고 두 체(體)를 말하지 않았으니, 이는 그 중한 것을 든 것이다.
小畜은 亨하니 密雲不雨는 自我西郊일새니라.
소축(小畜)은 형통하니 구름이 빽빽히 끼었으나 비가 내리지 않음은 나의 서교(西郊)로부터 왔기 때문이다.
【本義】 小畜은 亨하나 密雲不雨 自我西郊로다.
【본의】 소축(小畜)은 형통하나 구름이 빽빽이 끼고 비가 내리지 않는 것이 우리 서교(西郊)에 하도다.
【傳】 雲은 陰陽之氣니 二氣交而和면 則相畜固而成雨라 陽倡而陰和는 順也라 故和요 若陰先陽倡이면 不順也라 故不和니 不和則不能成雨라 雲之畜聚雖密이나 而不[一有能字]成雨者는 自西郊故也라 東北은 陽方이요 西南은 陰方이니 自陰倡이라 故不和而不能成雨라 以人觀之하면 雲氣之興이 皆自四遠이라 故云郊요 據四而言이라 故云自我라 畜陽者는 四니 畜之主也라.
구름은 음양(陰陽)의 기운이니, 두 기운이 사귀어 화(和)하면 서로 쌓이고 굳어져 비를 이룬다. 양(陽)이 선창하면 음(陰)이 화답함은 순리이므로 화하는 것이고, 만일 음(陰)이 양(陽)보다 먼저 선창하면 순리가 아니므로 화하지 못하는 것이니, 화하지 못하면 비를 이루지 못한다. 구름이 모인 것이 비록 빽빽하나 비를 이루지 못함은 서교(西郊)로부터 왔기 때문이다. 동북(東北)은 양방(陽方)이고 서남(西南)은 음방(陰方)이니, 음(陰)으로부터 선창하였으므로 화하지 못하여 비를 이루지 못한 것이다.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구름 기운이 모두 사방의 먼 곳으로부터 일어나므로 교(郊)라 한 것이고, 육사(六四)를 근거하여 말하였으므로 ‘자아(自我)’라고 한 것이다. 양(陽)을 저지하는 것은 육사(六四)이니, 축(畜)의 주체이다.
【本義】 巽亦三畫卦之名이라 一陰이 伏於二陽之下라 故其德이 爲巽, 爲入이요 其象이 爲風, 爲木이라 小는 陰也요 畜은 止之之義也라 上巽下乾하여 以陰畜陽하고 又卦唯六四一陰에 上下五陽이 皆爲所畜이라 故爲小畜이라 又以陰畜陽하여 能係而不能固하니 亦爲所畜者小之象이요 內健外巽하며 二五皆陽으로 各居一卦之中而用事하니 有剛而能中其志得行之象이라 故其占이 當得亨通이라 然畜未極而施未行이라 故有密雲不雨自我西郊之象이라 蓋密雲은 陰物이요 西郊은 陰方이요 我者는 文王自我也라 文王이 演易於羑里에 視岐周爲西方이니 正小畜之時也라 筮者得之면 則占亦如其象云이라.
손(巽) 또한 3획괘의 이름이다. 하나의 음(陰)이 두 양(陽)의 아래에 엎드려 있다. 그러므로 그 덕(德)이 공손함이 되고 들어감이 되며, 그 상(象)이 바람이 되고 나무가 된다. 소(小)는 음(陰)이고 축(畜)은 그치는 뜻이다. 위는 손(巽)이고 아래는 건(乾)이어서 음(陰)으로서 양(陽)을 저지하고, 또 괘(卦)가 오직 육사(六四) 한 음(陰)에게 위아래의 다섯 양(陽)이 모두 저지를 당한다. 그러므로 소축(小畜)이라 한 것이다. 또 음(陰)으로 양(陽)을 저지하여 능히 매어 놓았으나 견고하지 못하니, 역시 저지함이 작은 상(象)이 되며, 안은 건(健)이고 밖은 손(巽)이며 구이(九二)와 구오(九五)가 모두 양(陽)으로 각각 한 괘(卦)의 가운데에 거하여 용사(用事)하니, 강(剛)하나 능히 중도(中道)에 맞고 그 뜻이 행해지는 상(象)이 있다. 그러므로 그 점(占)이 마땅히 형통함을 얻는 것이다. 그러나 모임이 지극하지 못하여 베풂이 행해지지 못하므로 ‘밀운불우자아서교(密雲不雨自我西郊)’의 상(象)이 있는 것이다. 빽빽한 구름은 음물(陰物)이고 서교(西郊)는 음방(陰方)이며 아(我)는 문왕(文王) 자신이다. 문왕(文王)이 역(易)을 유리(羑里)의 옥(獄)에서 연역할 때에 기주(岐周)를 보면 서방(西方)이 되니, 바로 소축(小畜)의 때였다. 점치는 이가 이 괘(卦)를 얻으면 점괘 또한 그 상(象)과 같을 것이다.
彖曰 小畜은 柔得位而上下應之할새 曰小畜이라.
〈단전(彖傳)〉에 말하였다. “소축(小畜)은 유(柔)가 지위를 얻고 상하(上下)가 응하므로 소축(小畜)이라 한 것이다.”
【傳】 言成卦之義也라 以陰居四하고 又處上位하니 柔得位也요 上下五陽이 皆應之하니 爲所畜也라 以一陰而畜五陽하여 能係而不能固라 是以爲小畜也라 彖解成卦之義而加曰字者는 皆重卦名이니 文勢當然이라 單名卦엔 惟革에 有曰字하니 亦文勢然也라.
성괘(成卦)의 뜻을 말하였다. 음(陰)으로서 사(四)에 거하고 또 상위(上位)에 처하였으니 유(柔)가 지위를 얻은 것이요, 상하(上下)의 다섯 양(陽)이 모두 응하니 저지당한 것이 된다. 하나의 음(陰)으로서 다섯 양(陽)을 저지하여 능히 매어 놓았으나 견고하지 못하다. 그러므로 소축(小畜)이 된 것이다. 〈단전(彖傳)〉에 성괘(成卦)의 뜻을 해석하면서 ‘왈(曰)’자를 가(加)한 것은 모두 중괘(重卦)의 이름이니, 문세(文勢)가 당연하다. 단명(單名)의 괘(卦)에는 오직 혁괘(革卦)에만 ‘왈(曰)’자(字)가 있으니, 또한 문세(文勢)가 그러해서이다.
【本義】 以卦體로 釋卦名義라 柔得位는 指六居四요 上下는 謂五陽이라.
괘체(卦體)로 괘명(卦名)의 뜻을 해석하였다. ‘유득위(柔得位)’는 육(六)이 사(四)에 거함을 가리키고 ‘상하(上下)’는 〈위아래의〉 다섯 양(陽)을 이른다.
健而巽하며 剛中而志行하여 乃亨하니라.
굳세고 공손하며 강(剛)이 중(中)에 있고 행함에 뜻을 두어 마침내 형통한 것이다.
【本義】 剛中而志行이라 乃亨하리라.
【본의】 강(剛)이 중도(中道)에 맞고 뜻이 행해지므로 마침내 형통하리라.
【傳】 以卦才言也라 內健而外巽하니 健而能巽也요 二五居中하니 剛中也요 陽性上進하고 下復乾體니 志在於行也라 剛居中은 爲剛而得中이요 又爲中剛이라 言畜陽則以柔巽이요 言能亨則由剛中이며 以成卦之義言하면 則爲陰畜陽이요 以卦才言하면 則陽爲剛中이니 才如是라 故畜雖小而能亨也라.
괘재(卦才)로 말하였다. 안은 건(健)이고 밖은 손(巽)이니 굳세고 공손한 것이요, 이(二)와 오(五)가 중(中)에 거하였으니 강(剛)이 중도(中道)에 맞는 것이요, 양(陽)의 성질(性質)은 위로 올라가고 아래는 다시 건체(乾體)이니 뜻이 행함에 있는 것이다. 강(剛)이 중(中)에 거함은 강(剛)하면서 중(中)을 얻음이 되고 또 중(中)이 강(剛)한 것이 된다. 양(陽)을 저지함을 말하면 유순함 때문이요, 능히 형통함을 말하면 강중(剛中)하기 때문이며, 성괘(成卦)의 뜻으로 말하면 음(陰)이 양(陽)을 저지한 것이고, 괘재(卦才)로 말하면 양(陽)이 강중(剛中)이 되니, 재질이 이와 같기 때문에 모임이 비록 작으나 형통한 것이다.
【本義】 以卦德卦體而言陽猶可亨也라.
괘덕(卦德)과 괘체(卦體)로 양(陽)이 오히려 형통할 수 있음을 말한 것이다.
密雲不雨는 尙往也요 自我西郊는 施未行也라.
‘밀운불우(密雲不雨)’는 오히려 가기 때문이요 ‘자아서교(自我西郊)’는 베풂이 행해지지 못하기 때문이다.”
【본의】 위로 올라가기 때문이요.
【傳】 畜道不能成大하니 如密雲而不成雨라 陰陽交而和하면 則相固而成雨하나니 二氣不和어늘 陽尙往而上이라 故不成雨라 蓋自我陰方之氣先倡이라 故不和而不能成雨하니 其功施未行也라 小畜之不能成大는 猶西郊之雲이 不能成雨也라.
축(畜)의 도(道)가 큼을 이루지 못하였으니, 마치 구름이 빽빽하나 비를 이루지 못함과 같다. 음양(陰陽)이 사귀어 화하면 서로 견고해져서 비를 이루니, 두 기운이 화하지 못한데도 양(陽)이 오히려 가서 올라가므로 비를 이루지 못한 것이다. 나의 음방(陰方)의 기(氣)가 선창하였기 때문에 화하지 못하여 비를 이루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 공의 베풂이 행해지지 못한 것이다. 소축(小畜)이 큼을 이루지 못함은 서교(西郊)의 구름이 비를 이루지 못함과 같은 것이다.
【本義】 尙往은 言畜之未極하여 其氣猶上進也라.
상왕(尙往)은 저지함이 지극하지 아니하여 그 기운이 아직도 위로 나아감을 말한 것이다.
象曰 風行天上이 小畜이니 君子以하여 懿文德하나니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바람이 하늘 위에 행함이 소축(小畜)이니, 군자(君子)가 이로써 문덕(文德)을 아름답게 한다.”
【傳】 乾之剛健而爲巽所畜하니 夫剛健之性은 惟柔順爲能畜止之라 雖可以畜止之나 然非能固制其剛健也요 但柔順以擾係之耳라 故爲小畜也라 君子觀小畜之義하여 以懿美其文德하나니 畜은 聚니 爲蘊畜之義라 君子所蘊畜者는 大則道德經綸之業이요 小則文章才藝니 君子觀小畜之象하여 以懿美其文德이라 文德을 方之道義하면 爲小也라.
건(乾)은 강건(剛健)한데 손(巽)에게 저지당하니, 강건(剛健)한 성질은 오직 유순(柔順)함만이 저지할 수 있다. 비록 저지할 수 있으나 그 강건(剛健)함을 굳게 제어한 것은 아니요, 다만 유순함으로써 길들이고 매어 놓았을 뿐이다. 그러므로 소축(小畜)이라 한 것이다. 군자(君子)는 소축(小畜)의 뜻을 보고서 문덕(文德)을 아름답게 하니, 축(畜)은 모음이니 온축(蘊畜)의 뜻이 된다. 군자(君子)가 온축(蘊畜)하는 것은 큰 것은 도덕(道德)과 경륜(經綸)의 사업이고 작은 것은 문장(文章)과 재예(才藝)이니, 군자(君子)가 소축(小畜)의 상(象)을 관찰하여 문덕(文德)을 아름답게 한다. 문덕(文德)을 도의(道義)에 비교하면 작은 것이 된다.
【本義】 風은 有氣而无質하니 能畜而不能久라 故爲小畜之象이라 懿文德은 言未能厚積而遠施也라.
바람은 기운은 있으나 질(質)이 없으니, 쌓이나 오래가지 못한다. 그러므로 소축(小畜)의 상(象)이 된다. 문덕(文德)을 아름답게 함은 후하게 쌓으나 멀리 베풀지 못함을 말한 것이다.
初九는 復이 自道어니 何其咎리오 吉하니라.
초구(初九)는 돌아옴이 도(道)로부터 함이니, 어찌 허물이 있겠는가. 길(吉)하다.
【傳】 初九는 陽爻而乾體라 陽은 在上之物이요 又剛健之才니 足以上進이요 而復與在上同志하니 其進復於上이 乃其道也라 故云復自道라 復旣自道어니 何過咎之有리오 无咎而又有吉也라 諸爻에 言无咎者는 如是則无咎矣라 故云无咎者善補過也라 하니라 雖使爻義本善이나 亦不害於不如是則有咎之義라 初九乃由其道而行하니 无有過咎라 故云何其咎리오 하니 无咎之甚明也라.
초구(初九)는 양효(陽爻)이고 건체(乾體)이다. 양(陽)은 위에 있는 사물이고 또 강건(剛健)한 재질이니, 족히 위로 나아갈 수 있고 또 위에 있는 것과 뜻을 함께 한다. 위로 나아가 돌아옴이 바로 그 도(道)이므로 ‘복자도(復自道)’라고 말한 것이다. 돌아오기를 이미 도(道)로부터 하였으니, 무슨 허물이 있겠는가. 허물이 없고 또 길(吉)함이 있다. 여러 효(爻)에 무구(无咎)라고 말한 것은 이와 같이 하면 허물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무구(无咎)란 허물을 잘 보충하는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가령 효(爻)의 뜻이 본래 좋다 하더라도 역시 이와 같이 하지 않으면 허물이 있다는 뜻에 무방하다. 초구(初九)는 바로 도(道)에 따라 행하였으니, 허물이 없다. 그러므로 ‘어찌 그 허물이 있겠는가’ 하였으니, 허물이 없음이 매우 분명하다.
【本義】 下卦乾體라 本皆在上之物이니 志欲上進而爲陰所畜이라 然初九體乾이요 居下得正하고 前遠於陰하여 雖與四爲正應이나 而能自守以正하여 不爲所畜이라 故로 有進復自道之象이라 占者如是면 則无咎而吉也라.
하괘(下卦)는 건체(乾體)라서 본래 모두 위에 있는 사물이니, 뜻이 위로 나아가고자 하나 음(陰)에게 저지당한다. 그러나 초구(初九)는 건체(乾體)이고 아래에 거하여 정(正)을 얻었으며, 앞에 음(陰)과 멀리 떨어져 있어서 비록 육사(六四)와 정응(正應)이 되나 스스로 정도(正道)를 지켜 저지당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위로 나아가 돌아오기를 도(道)로부터 하는 상(象)이 있는 것이다. 점치는 이가 이와 같이 하면 허물이 없고 길(吉)할 것이다.
象曰 復自道는 其義吉也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돌아오기를 도(道)로부터 함은 의리상 길(吉)한 것이다.”
【傳】 陽剛之才 由其道而復하니 其義吉也라 初與四爲正應이로되 在畜時엔 乃相畜者也라.
양강(陽剛)의 재질이 도(道)를 따라 돌아오니, 의리상 길(吉)하다. 초(初)는 사(四)와 정응(正應)이 되나 축(畜)의 때에 있어서는 바로 서로 저지하는 자이다.
九二는 牽復이니 吉하니라.
구이(九二)는 끌어서 회복함이니, 길(吉)하다.
【傳】 二以陽居下體之中하고 五以陽居上體之中하여 皆以陽剛居中하여 爲陰所畜하여 俱欲上復이라 五雖在四上이나 而爲其所畜則同하니 是同志者也라 夫同患相憂하나니 二五同志라 故相牽連而復이라 二陽竝進則陰不能勝하여 得遂其復矣라 故吉也라 曰 遂其復則離畜矣乎아 曰 凡爻之辭는 皆謂如是則可以如是라 若已然則時已變矣니 尙何敎誡乎아 五爲巽體니 巽畜於乾而反與二相牽은 何也오 曰 擧二體而言이면 則巽畜乎乾이요 全卦而言이면 則一陰畜五陽也니 在易에 隨時取義 皆如此也라.
이(二)는 양(陽)으로서 하체(下體)의 가운데에 거하고 오(五)는 양(陽)으로서 상체(上體)의 가운데에 거하여, 모두 양강(陽剛)으로 중(中)에 거하여 음(陰)에게 저지당해서 함께 위로 올라가 회복하고자 한다. 오(五)는 비록 사(四)의 위에 있으나 저지당함은 똑같으니, 이는 이(二)와 뜻이 같은 것이다. 환난을 함께 당하면 서로 근심해주니, 이(二)와 오(五)는 뜻이 같기 때문에 서로 연결하여 회복하는 것이다. 두 양(陽)이 함께 나아가면 음(陰)이 이겨내지 못하여 회복함을 이루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길(吉)한 것이다. “그 회복함을 이루면 축(畜)에서 떠나가는 것인가?” “무릇 효(爻)의 말은 모두 이와 같이 하면 이와 같다고 말한 것이다. 만일 이미 그렇다면 때가 이미 변한 것이니 오히려 무슨 가르침과 경계가 되겠는가?” “오(五)는 손(巽)의 체(體)이니, 손(巽)이 건(乾)을 저지하는데 도리어 이(二)와 함께 서로 연결함은 어째서인가?” “두 체(體)를 들어 말하면 손(巽)이 건(乾)을 저지하는 것이고, 괘(卦)의 전체를 들어 말하면 하나의 음(陰)이 다섯 양(陽)을 저지하는 것이니, 역(易)에 있어서는 때에 따라 뜻을 취함이 모두 이와 같다.”
【本義】 三陽志同而九二漸近於陰이로되 以其剛中이라 故能與初九로 牽連而復하니 亦吉道也라 占者如是則吉矣라.
건(乾)의 세 양(陽)이 뜻이 같으며, 구이(九二)는 점점 음(陰)과 가까워지나 강중(剛中)이기 때문에 초구(初九)와 연결하여 회복하는 것이니, 역시 길(吉)한 도(道)이다. 점치는 이가 이와 같이 하면 길(吉)할 것이다.
象曰 牽復은 在中이라 亦不自失也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끌어서 회복함은 중(中)에 있어서 역시 스스로 잃지 않기 때문이다.”
【傳】 二는 居中得正者也니 剛柔進退를 不失乎中道也라 陽之復에 其勢必强이나 二以處中이라 故雖强於進이나 亦不至於過剛이니 過剛은 乃自失也라 爻는 止言牽復而吉之義하고 象은 復(부)發明其在中之美하니라.
이(二)는 중(中)에 거하고 정(正)을 얻은 것이니, 강유(剛柔)와 진퇴(進退)에 중도(中道)를 잃지 않는 것이다. 양(陽)이 회복됨에 그 형세가 반드시 강할 것이나 이(二)는 중(中)에 처하였으므로 비록 나아감에 강하더라도 역시 지나치게 강함에는 이르지 않는 것이니, 지나치게 강함은 바로 스스로 잃는 것이다. 효(爻)에서는 다만 견복(牽復)하여 길(吉)한 뜻만을 말하였고, 〈상전(象傳)〉에서는 다시 그 중도(中道)에 처하는 아름다움을 발명하였다.
【本義】 亦者는 承上爻義라.
역(亦)이란 위 효(爻)의 뜻을 이은 것이다.
九三은 輿說(脫)輻이며 夫妻反目이로다.
구삼(九三)은 수레에 바퀴통이 빠지며 부부간에 반목하도다.
【傳】 三以陽爻로 居不得中하고 而密比於四하니 陰陽之情은 相求也요 又暱比而不中하니 爲陰畜制者也라 故不能前進하니 猶車輿說去輪輻이니 言不能行也라 夫妻反目은 陰은 制於陽者也어늘 今反制陽하니 如夫妻之反目也라 反目은 謂怒目相視니 不順其夫而反制之也라 婦人이 爲夫寵惑이면 旣而遂反制其夫하나니 未有夫不失道而妻能制之者也라 故說輻反目은 三自爲也니라.
삼(三)은 양효(陽爻)로서 거함이 중(中)을 얻지 못하였고 사(四)와 매우 가까이 있다. 음양(陰陽)의 정(情)이 서로 구하고 또 가까이 있으면서 중(中)하지 못하니, 음(陰)에게 저지당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전진하지 못하니, 수레에 바퀴통이 빠진 것과 같으니, 능히 가지 못함을 말한 것이다. ‘부처반목(夫妻反目)’은 음(陰)은 양(陽)에게 제재당하는 것인데 지금 도리어 양(陽)을 제재하니, 부부간에 반목하는 것과 같다. 반목(反目)은 눈을 부릅뜨고 보는 것이니, 부인이 남편에게 순종하지 않고 도리어 제재하는 것이다. 부인이 남편에게 총애받고 미혹되면 이윽고 마침내 도리어 그 남편을 제재하니, 남편이 남편으로서의 도(道)를 잃지 않고서 아내가 남편을 제재하는 경우는 있지 않다. 그러므로 수레에 바퀴통이 빠지고 부부간에 반목함은 구삼(九三)이 제 스스로 한 것이다.
【本義】 九三이 亦欲上進이나 然剛而不中하고 迫近於陰而又非正應이요 但以陰陽相說而爲所係畜하여 不能自進이라 故有輿說輻之象이라 然以志剛이라 故又不能平而與之爭이라 故又爲夫妻反目之象이니 戒占者如是면 則不得進而有所爭也라.
구삼(九三) 역시 위로 나아가고자 하나 강(剛)하고 중(中)하지 못하며, 음(陰)과 매우 가까이 있으나 또 정응(正應)이 아니고, 다만 음(陰)과 양(陽)이 서로 좋아하여 매이고 저지되어 스스로 전진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수레에 바퀴통이 빠진 상(象)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뜻이 강(剛)하기 때문에 또 화평하지 못하여 그와 다툰다. 그러므로 또 부부간에 반목하는 상(象)이 되니, 점치는 이가 이와 같으면 나아가지 못하고 다투는 바가 있다고 경계한 것이다.
象曰 夫妻反目은 不能正室也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부처반목(夫妻反目)’은 집안을 바로잡지 못하기 때문이다.”
【傳】 夫妻反目은 蓋由不能正其室家也라 三이 自處를 不以道라 故四得制之하여 不使進하니 猶夫不能正其室家라 故致反目也라.
부부간에 반목함은 집안을 바로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삼(三)이 자처하기를 도리대로 하지 못하므로 육사(六四)가 제재하여 나오지 못하게 하니, 남편이 집안을 바로잡지 못하기 때문에 반목을 이루는 것과 같다.
【本義】 程子曰 說輻反目은 三自爲也라 하시니라.
정자(程子)가 말씀하기를 “수레에 바퀴통이 빠지고 부부간에 반목함은 삼(三)이 제 스스로 한 것이다.” 하였다.
六四는 有孚면 血去하고 惕出하여 无咎리라.
육사(六四)는 정성을 두면 피가 제거되고 두려움에서 벗어나 허물이 없으리라.
【本義】 有孚하여 血去하고 惕出이니,
【본의】 정성이 있어서 피가 제거되고 두려움에서 벗어나니,
【傳】 四於畜時에 處近君之位하여 畜君者也니 若內有孚誠이면 則五志信之하여 從其畜也라 卦獨一陰이 畜衆陽者也라 諸陽之志 係于四하니 四苟欲以力畜之면 則一柔敵衆剛하니 必見傷害요 惟盡其孚誠以應之면 則可以感之矣라 故로 其傷害遠하고 其危懼免也라 如此則可以无咎요 不然則不免乎害矣니 此는 以柔畜剛之道也라 以人君之威嚴으로 而微細之臣이 有能畜止其欲者는 蓋有孚信以感之也일새라.
육사(六四)는 축(畜)의 때에 군주와 가까운 자리에 있어서 군주의 욕망을 저지하는 이이니, 만약 안에 정성이 있으면 오(五)가 마음으로 믿어서 그의 저지를 따를 것이다. 괘(卦)에 홀로 하나의 음(陰)이 여러 양(陽)을 저지하고 있다. 여러 양(陽)의 뜻이 사(四)에게 매여 있으니, 사(四)가 만일 힘으로 저지하려고 한다면 하나의 유(柔)가 여러 강(剛)을 상대하니 반드시 상해를 입을 것이요, 오직 부성(孚誠)을 다하여 응하면 감동시킬 수 있다. 그러므로 상해(傷害)가 멀어지고 위태로움과 두려움을 면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하면 허물이 없을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해를 면하지 못할 것이니, 이는 유(柔)로써 강(剛)을 제재하는 방도(方道)이다. 임금의 위엄으로도 미천한 신하가 군주의 욕망을 저지함이 있는 것은 정성으로 감동시켰기 때문이다.
【本義】 以一陰畜衆陽하여 本有傷害憂懼로되 以其柔順得正하고 虛中巽體로 二陽助之하니 是는 有孚而血去惕出之象也니 无咎宜矣라 故로 戒占者亦有其德則无咎也라.
하나의 음(陰)이 여러 양(陽)을 저지하여 본래 상해(傷害)와 우구(憂懼)가 있을 것이나 유순(柔順)함으로 정(正)을 얻고 중심(中心)을 비우며 손(巽)의 체(體)로서 두 양(陽)이 도우니, 이는 정성이 있어서 해가 제거되고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상(象)이니, 허물이 없음이 당연하다. 그러므로 점치는 이가 역시 이러한 덕(德)이 있으면 허물이 없다고 경계한 것이다.
象曰 有孚惕出은 上合志也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유부척출(有孚惕出)’은 위와 뜻이 합하기 때문이다.”
【傳】 四旣有孚면 則五信任之하여 與之合志리니 所以得惕出而无咎也라 惕出則血去를 可知니 擧其輕者也라 五旣合志하면 衆陽皆從之矣리라.
사(四)가 이미 부성(孚誠)이 있으면 오(五)가 그를 신임하여 더불어 뜻이 합할 것이니, 이 때문에 두려움에서 벗어나 허물이 없는 것이다. 두려움에서 벗어나면 해가 제거됨을 알 수 있으니, 그 가벼운 것을 든 것이다. 오(五)가 이미 뜻을 합하였다면 여러 양(陽)이 모두 따를 것이다.
九五는 有孚라 攣如하여 富以其隣이로다.
구오(九五)는 부신(孚信)이 있는지라 연결하여 부자가 그 이웃들을 도와주도다.
【本義】 有孚攣如하여,
【본의】 부신(孚信)이 있어서 연결하여
【傳】 小畜은 衆陽이 爲陰所畜之時也라 五以中正으로 居尊位而有孚信하니 則其類皆應之矣라 故曰攣如라하니 謂牽連相從也라 五必援挽하여 與之相濟리니 是富以其隣也라 五以居尊位之勢하니 如富者推其財力하여 與隣比共之也라 君子爲小人所困하고 正人爲群邪所厄이면 則在下者必攀挽於上하여 期於同進하고 在上者必援引於下하여 與之戮力이니 非獨推己力以及人也라 固資在下之助하여 以成其力耳니라.
소축(小畜)은 여러 양(陽)이 음(陰)에게 저지당하는 때이다. 오(五)가 중정(中正)으로 존위(尊位)에 거하고 부신(孚信)이 있으니, 그 동류들이 모두 응한다. 그러므로 ‘연여(攣如)’라 하였으니, 견련(牽連)하여 서로 따름을 이른다. 오(五)가 반드시 끌어당겨서 더불어 서로 구제할 것이니, 이것이 부자가 그 이웃을 도와주는 것이다. 오(五)가 존위(尊位)의 세력에 거하였으니, 이는 마치 부자가 그 재력(財力)을 미루어 이웃과 함께 하는 것과 같다. 군자(君子)가 소인(小人)에게 곤궁을 당하고 정인(正人)이 여러 간사한 이에게 곤액을 당하면 아래에 있는 이는 반드시 윗사람을 잡아끌어 함께 나아가기를 기약하고, 위에 있는 이는 반드시 아랫사람을 끌어당겨 더불어 힘을 다해야 하니, 이는 비단 자기의 힘을 미루어 남에게 미칠 뿐만 아니라, 진실로 아래에 있는 이의 도움에 힘입어 그 힘을 이루는 것이다.
【本義】 巽體三爻 同力畜乾하니 隣之象也요 而九五居中處尊하여 勢能有爲하여 以兼乎上下라 故爲有孚攣固하여 用富厚之力而以其隣之象이라 以는 猶春秋以某師之以니 言能左右之也라 占者有孚면 則能如是也라.
손체(巽體)의 세 효(爻)가 힘을 함께 하여 건(乾)을 저지하니 이웃의 상(象)이요, 구오(九五)가 중(中)에 거하고 존위(尊位)에 처하여 세력이 능히 훌륭한 일을 할 수 있어서 상하(上下)를 겸한다. 그러므로 부신(孚信)이 있어 견련(牽連)함이 견고하여, 부후(富厚)한 힘을 써서 그 이웃을 좌지우지하는 상(象)이 된다. 이(以)는 《춘추(春秋)》에 ‘이모사(以某師)’의 이(以)와 같으니, 좌지우지(左之右之)함을 말한다. 점치는 이가 성실함이 있으면 이와 같을 것이다.
象曰 有孚攣如는 不獨富也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유부연여(有孚攣如)’는 혼자 부유(富有)하지 않는 것이다.”
【傳】 有孚[一有而字]攣如는 蓋其隣類 皆牽攣而[一无而字]從之니 與衆同欲하고 不獨有其富也라 君子之處難厄에 惟其至誠이라 故得衆力之助하여 而能濟其衆也라.
‘유부연여(有孚攣如)’는 그 이웃과 동류들이 모두 끌려서 따름이니, 사람들과 하고자 함을 함께 하고 홀로 그 부유(富有)함을 소유하지 않는 것이다. 군자(君子)는 어려움과 곤액에 처함에 오직 그 지성으로 한다. 이 때문에 여러 힘의 도움을 얻어 사람들을 구제하는 것이다.
上九는 旣雨旣處는 尙德하여 載니 婦貞이면 厲하리라.
상구(上九)는 이미 비오고 이미 그침은 덕(德)을 숭상하여 쌓여 가득한 것이니, 부인이 견고하게 이것을 지키면 위태로우리라.
【本義】 婦貞이라도 厲하리니,
【본의】 부인은 바르더라도 위태로우리니,
【傳】 九以巽順之極으로 居卦之上하고 處畜之終하니 從畜而止者也니 爲四所止也라 旣雨는 和也요 旣處는 止也라 陰之畜陽에 不和則不能止하니 旣和而止면 畜之道成矣[一作畜道之成也] 라 大畜은 畜之大라 故極而散하고 小畜은 畜之小라 故極而成이라 尙德載는 四用柔巽之德하여 積滿而至於成也라 陰柔之畜剛은 非一朝一夕能成이요 由積累而至니 可不戒乎아 載는 積滿也니 詩云 厥聲載路라 하니라 婦貞厲는 婦는 謂陰이니 以陰而畜陽하고 以柔而制剛은 婦若貞固守此면 危厲之道也라 安有婦制其夫, 臣制其君而能安者乎아.
구(九)가 손순(巽順)의 극(極)으로서 괘(卦)의 위에 거하고 축(畜)의 종(終)에 처했으니, 저지함을 따라 그친 것이니, 사(四)에게 저지당한 것이다. 기우(旣雨)는 화(和)함이요 기처(旣處)는 그침이다. 음(陰)이 양(陽)을 저지할 때에 화하지 못하면 저지하지 못하니, 이미 화하여 그치면 축(畜)의 도(道)가 이루어진 것이다. 대축(大畜)은 쌓인 것이 크므로 극(極)에 이르면 흩어지고, 소축(小畜)은 쌓인 것이 작으므로 극(極)에 이르면 이루어지는 것이다. ‘상덕재(尙德載)’는 사(四)가 유손(柔巽)의 덕(德)을 사용하여 가득 쌓아서 이룸에 이른 것이다. 음유(陰柔)가 양강(陽剛)을 저지함은 하루아침이나 하루저녁에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요, 쌓이고 여러 번 함으로 말미암아 이르는 것이니, 경계하지 않아서야 되겠는가. 재(載)는 쌓여 가득함이니, 《시경(詩經)》에 “그 소리가 길에 가득하다.〔厥聲載路〕”하였다. ‘부정여(婦貞厲)’는 부(婦)는 음(陰)을 이르니, 음(陰)으로서 양(陽)을 저지하고 유(柔)로서 강(剛)을 제재함은 부인이 만약 정고(貞固)하게 이것을 지키면 위태로운 도(道)이다. 부인이 남편을 제재하고 신하가 군주를 제재하고서 편안한 경우가 어찌 있겠는가.
月幾望이니 君子征이면 凶하리라.
달이 기망(幾望)이니 군자(君子)가 동(動)하면 흉하리라.
【傳】 月望則與日敵矣니 幾望은 言其盛將敵也라 陰이 已能畜陽이어늘 而云幾望은 何也오 此는 以柔巽畜其志也요 非力能制也일새라 然不已則將盛於陽而凶矣니 於幾望而爲之戒曰 婦將敵矣니 君子動則凶也라 하니라 君子는 謂陽이요 征은 動也라 幾望은 將盈之時니 若已望이면 則陽已消矣리니 尙何戒乎아.
달이 보름이 되면 해와 대등해지니, 기망(幾望)은 그 성함이 장차 대등해짐을 말한 것이다. 음(陰)이 이미 양(陽)을 저지하였는데 ‘기망(幾望)’이라고 말한 것은 어째서인가? 이는 유순함으로써 그 뜻을 저지한 것이요, 힘이 능히 억제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치지 않으면 장차 양(陽)보다 성해져서 흉할 것이니, 기망(幾望)에서 이를 경계하기를 “부인이 장차 대등하게 되었으니, 군자(君子)가 동(動)하면 흉하다.”고 한 것이다. 군자(君子)는 양(陽)을 이르고 정(征)은 동(動)함이다. 기망(幾望)은 장차 가득해질 때이다. 만일 이미 보름이 되었다면 양(陽)이 이미 사라졌을 것이니, 오히려 무엇을 경계하겠는가.
【本義】 畜極而成하여 陰陽和矣라 故로 爲旣雨旣處之象이니 蓋尊尙陰德하여 至於積滿而然也라 陰加於陽이라 故로 雖正亦厲라 然陰旣盛而抗陽하니 則君子亦不可以有行矣라 其占如此하니 爲戒深矣로다.
쌓임이 지극하여 이루어져서 음양(陰陽)이 화합하였다. 그러므로 이미 비가 내리고 이미 그치는 상(象)이 되었으니, 음(陰)의 덕(德)을 높이고 숭상하여 가득 쌓임에 이르러 그러한 것이다. 음(陰)이 양(陽)을 침범하였으므로 비록 바르나 역시 위태로운 것이다. 그러나 음(陰)이 이미 성하여 양(陽)에 대항하니, 군자(君子)가 역시 행해서는 안 된다. 그 점(占)이 이와 같으니, 경계함이 깊다.
象曰 旣雨旣處는 德이 積載也요 君子征凶은 有所疑也니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기우기처(旣雨旣處)’는 덕(德)이 쌓여 가득한 것이요 ‘군자정흉(君子征凶)’은 의심하는 바가 있는 것이다.”
【傳】 旣雨旣處는 言畜道積滿而成也라 陰將[一作旣]盛極하니 君子動則有凶也라 陰敵陽則必消陽하고 小人抗君子則必害君子하나니 安得不疑慮乎아 若前知疑慮而警懼하여 求所以制之면 則不至於凶矣리라.
‘기우기처(旣雨旣處)’는 축(畜)의 도(道)가 쌓여 가득해서 이루어짐을 말한 것이다. 음(陰)이 장차 성(盛)하여 지극하게 되었으니, 군자(君子)가 동(動)하면 흉함이 있는 것이다. 음(陰)이 양(陽)에 대적하면 반드시 양(陽)을 사라지게 하고 소인(小人)이 군자(君子)에게 항거하면 반드시 군자(君子)를 해치니, 어찌 의심하고 염려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만일 미리 의심하고 염려할 줄을 알아 경계하고 두려워해서 제재할 바를 찾는다면 흉함에 이르지 않을 것이다.

9. 소축(小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