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대유(大有)
【傳】 大有는 序卦에 與人同者는 物必歸焉이라 故受之以大有라 하니라 夫與人同者는 物之所歸也니 大有所以次同人也라 爲卦 火在天上하니 火之處高면 其明及遠하여 萬物之衆이 无不照見하니 爲大有之象이요 又一柔居尊하고 衆陽竝應하니 居尊執柔는 物之所歸也라 上下應之 爲大有之義하니 大有는 盛大豊有也라.
대유괘(大有卦)는 〈서괘전(序卦傳)〉에 “남과 함께 하는 이는 사물이 반드시 돌아온다. 그러므로 대유괘(大有卦)로 받았다.” 하였다. 남과 함께 하는 이는 물건이 돌아오는 바이니, 대유괘(大有卦)가 이 때문에 동인괘(同人卦)의 다음이 된 것이다. 괘(卦)됨이 불이 하늘 위에 있으니, 불이 높은 곳에 있으면 밝음이 먼 곳에까지 미쳐서 만물의 무리가 비춰 보이지 않음이 없으니 대유(大有)의 상(象)이 되고, 또 하나의 음유(陰柔)가 존위(尊位)에 거하고 여러 양(陽)이 함께 응하니, 존위(尊位)에 거하여 유순함을 잡음은 사물이 돌아오는 바이다. 상하(上下)가 응함이 대유(大有)의 뜻이 되니, 대유(大有)는 성대하고 풍성하게 소유한 것이다.
大有는 元亨하니라.
대유(大有)는 크게 선(善)하여 형통하다.
【傳】 卦之才可以元亨也라 凡卦德은 有卦名自有其義者하니 如比吉謙亨이 是也요 有因其卦義하여 便爲訓戒者하니 如師貞丈人吉, 同人于野亨이 是也요 有以其卦才而言者하니 大有元亨이 是也라 由剛健文明應天時行이라 故能元亨也라.
괘(卦)의 재질이 크게 선(善)하여 형통할 수 있는 것이다. 무릇 괘(卦)의 덕(德)은 괘명(卦名)에 저절로 그 뜻이 들어있는 것이 있으니, ‘비(比)는 길(吉)하다’는 것과 ‘겸(謙)은 형통하다’는 것이 이것이요, 괘(卦)의 뜻을 따라서 곧 훈계(訓戒)를 삼은 것이 있으니, 〈사괘(師卦)의〉 ‘사(師)는 올바르게 하여야 하니 장인(丈人)이어야 길(吉)하다’는 것과 〈동인괘(同人卦)의〉 ‘사람과 함께 들에서 하면 길(吉)하다’는 것이 이것이요, 괘(卦)의 재질을 가지고 말한 것이 있으니, ‘대유괘(大有卦)는 크게 선(善)하여 형통하다’는 것이 이것이다. 강건(剛健)하고 문명(文明)하며 하늘에 응하고 때에 맞게 행한다. 이 때문에 원형(元亨)한 것이다.
【本義】 大有는 所有之大也라 離居乾上하니 火在天上하여 无所不照하고 又六五一陰이 居尊得中而五陽應之라 故爲大有라 乾健離明하고 居尊應天하니 有亨之道라 占者有其德이면 則大善而亨也라.
대유(大有)는 소유함이 큰 것이다. 이(離)가 건(乾) 위에 거하였으니, 불이 하늘 위에 있어서 비추지 않는 것이 없고, 또 육오(六五) 한 음(陰)이 존위(尊位)에 거하고 중(中)을 얻고 다섯 양(陽)이 응한다. 그러므로 대유(大有)라 한 것이다. 건(乾)은 굳세고 이(離)는 밝으며 존위(尊位)에 거하고 하늘에 응하니, 형통할 도(道)가 있는 것이다. 점치는 이가 이러한 덕(德)이 있으면 크게 선(善)하여 형통할 것이다.
彖曰 大有는 柔得尊位하고 大中而上下應之할새 曰大有니,
〈단전(彖傳)〉에 말하였다. “대유(大有)는 유(柔)가 존위(尊位)를 얻고 크게 중(中)하며 상하(上下)가 응하므로 대유(大有)라 하였다.
【傳】 言卦之所以爲大有也라 五以陰居君位는 柔得尊位也요 處中은 得大中之道也요 爲諸陽所宗은 上下應之也라 夫居尊執柔면 固衆之所歸也요 而又有虛中文明大中[一无大中字]之德이라 故上下同志應之하니 所以爲大有也라.
괘(卦)가 대유(大有)가 된 이유를 말하였다. 오(五)가 음(陰)으로 군위(君位)에 거함은 유(柔)가 존위(尊位)를 얻은 것이요, 중(中)에 처함은 대중(大中)의 도(道)를 얻은 것이요, 여러 양(陽)에게 높이는 바가 됨은 상하(上下)가 응(應)하는 것이다. 존위(尊位)에 거하여 유(柔)를 잡으면 진실로 사람들이 돌아오는 바이며, 또 중(中)이 비어 문명(文明)하고 대중(大中)한 덕(德)이 있으므로 상하(上下)가 뜻을 함께 하여 응(應)하니, 이 때문에 대유(大有)가 된 것이다.
【本義】 以卦體로 釋卦名義라 柔는 謂六五요 上下는 謂五陽이라.
괘체(卦體)로 괘명(卦名)의 뜻을 해석하였다. 유(柔)는 육오(六五)를 이르고, 상하(上下)는 다섯 양(陽)을 이른다.
其德이 剛健而文明하고 應乎天而時行이라 是以元亨하니라.
그 덕(德)이 강건(剛健)하고 문명(文明)하며 하늘에 응하여 때에 맞게 행한다. 이 때문에 크게 선(善)하고 형통한 것이다.”
【傳】 卦之德이 內剛健而外文明이라 六五之君이 應於乾之九二하니 五之[一有體字]性은 柔順而明하여 能順應乎二하니 二는 乾之主也니 是應乎乾也라 順應乾行은 順乎天時也라 故曰應乎天而時行이라 하니 其德如此라 是以元亨也라 王弼云 不大通이면 何由得大有乎아 大有則必元亨矣라 하니 此不識卦義라 離乾이 成大有之義하니 非大有之義에 便有元亨이요 由其才라 故得元亨이니 大有而不善者와 與不能亨者有矣니라 諸卦에 具元亨利貞이면 則彖에 皆釋爲大亨하니 恐疑與乾坤同也요 不兼利貞이면 則釋爲元亨하여 盡元義也하니 元有大善之義라 有元亨者四卦니 大有, 蠱, 升, 鼎也라 唯升之彖은 誤隨他卦作大亨하니라 曰 諸卦之元이 與乾不同은 何也오 曰 元之在乾은 爲元始之義하고 爲首出庶物之義요 他卦則不能有此義하여 爲善爲大而已니라 曰 元之爲大는 可矣어니와 爲善은 何也오 曰 元者는 物之先也니 物之先에 豈有不善者乎아 事成而後有敗하니 敗非先成者也요 興而後有衰하니 衰固後於興也요 得而後有失하니 非得則何以有[一作爲]失也리오 至於善惡治亂是非하여도 天下之事 莫不皆然하여 必善爲先이라 故文言曰 元者善之長也라 하니라.
괘(卦)의 덕(德)이 안은 강건(剛健)하고 밖은 문명(文明)하다. 육오(六五)의 군주가 건(乾)의 구이(九二)에 응하니, 오(五)의 성질이 유순하고 밝아서 이(二)에 순응한다. 이(二)는 건(乾)의 주체이니, 이는 건(乾)에 응하는 것이다. 건(乾)의 운행(運行)에 순응함은 천시(天時)에 순응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늘에 응하여 때에 맞게 행한다’ 하였으니, 그 덕(德)이 이와 같기 때문에 크게 선(善)하고 형통한 것이다. 왕필(王弼)은 이르기를 “크게 형통하지 않으면 어찌 대유(大有)를 얻을 수 있겠는가. 크게 소유하면 반드시 크게 형통한다.” 하였는데, 이는 괘(卦)의 뜻을 알지 못한 것이다. 이(離)와 건(乾)이 대유(大有)의 뜻을 이루었으니, 대유(大有)의 뜻에 곧 원형(元亨)이 있는 것이 아니요, 그 재질로 말미암아 원형(元亨)을 얻은 것이니, 크게 소유하고도 선(善)하지 못한 이와 형통하지 못한 이가 있는 것이다. 여러 괘(卦)에 ‘원형이정(元亨利貞)’이 갖추어져 있으면 〈단전(彖傳)〉에 모두 〈원형(元亨)을〉 ‘크게 형통함’으로 해석하였으니, 건괘(乾卦)나 곤괘(坤卦)와 같다고 의심할까 염려해서이다. 이정(利貞)을 겸하지 않았으면 ‘크게 선(善)하고 형통함’으로 해석하여 원(元)의 뜻을 다하였으니, 원(元)에 ‘대선(大善)’의 뜻이 있다. 원형(元亨)이 있는 것이 네 괘(卦)이니, 대유(大有), 고(蠱), 승(升), 정(鼎)인데, 오직 승괘(升卦)의 〈단전(彖傳)〉은 잘못 다른 괘(卦)를 따라 대형(大亨)으로 되어 있다.
“여러 괘(卦)의 원(元)이 건괘(乾卦)와 같지 않음은 어째서인가?” “원(元)이 건괘(乾卦)에 있어서는 원시(元始)의 뜻이 되고 서물(庶物) 중에 으뜸으로 나오는 뜻이 되며, 다른 괘(卦)에서는 이 뜻을 갖지 못하여 선(善)이 되고 대(大)가 될 뿐이다.” “원(元)이 대(大)가 됨은 가(可)하거니와 선(善)이 됨은 어째서인가?” “원(元)은 사물의 먼저이니, 사물의 먼저에 어찌 불선(不善)이 있겠는가. 일이 이루어진 뒤에 패(敗)함이 있으니 패(敗)함이 선(善)보다 먼저 있는 것이 아니요, 흥(興)한 뒤에 쇠(衰)함이 있으니 쇠함이 진실로 흥함보다 뒤에 있는 것이요, 득(得)이 있은 뒤에 실(失)이 있으니 득(得)이 아니면 어찌 실(失)이 있겠는가. 선(善)과 악(惡), 치(治)와 난(亂), 시(是)와 비(非)에 이르러서도 천하(天下)의 일이 모두 그렇지 않음이 없으니, 반드시 선(善)이 먼저이다. 그러므로 〈문언전(文言傳)〉에 이르기를 ‘원(元)은 선(善)의 으뜸이다.’라고 한 것이다.”
【本義】 以卦德卦體로 釋卦辭라 應天은 指六五也라.
괘덕(卦德)과 괘체(卦體)로 괘사(卦辭)를 해석하였다. 하늘에 응한다는 것은 육오(六五)를 가리킨 것이다.
象曰 火在天上이 大有니 君子以하여 遏惡揚善하여 順天休命하나니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불이 하늘 위에 있는 것이 대유(大有)이니, 군자(君子)가 이로써 악(惡)을 막고 선(善)을 드날려 하늘의 아름다운 명(命)을 순종한다.”
【傳】 火高在天上하여 照見萬物之衆多라 故爲大有니 大有는 繁庶之義라 君子觀大有之象하여 以遏絶衆惡하고 揚明善類하여 以奉順天休美之命하나니 萬物衆多면 則有善惡之殊라 君子享大有之盛인댄 當代天工하여 治養庶類니 治衆之道는 在遏惡揚善而已라 惡懲善勸은 所以順天命而安群生也라.
불이 높이 하늘 위에 있어서 수많은 만물들을 비춰 보인다. 그러므로 대유(大有)라 한 것이니, 대유(大有)는 많다는 뜻이다. 군자(君子)가 대유(大有)의 상(象)을 보고서 여러 악(惡)을 막아 끊고 선(善)한 유(類)를 드날려 밝혀서 하늘의 아름다운 명을 받들어 순종하니, 만물이 많으면 선악(善惡)의 다름이 있게 마련이다. 군자(君子)가 대유(大有)의 풍성함을 누릴진댄 마땅히 하늘의 일을 대신하여 여러 무리를 다스리고 길러야 하니, 무리를 다스리는 방법은 악(惡)을 막고 선(善)을 드날림에 있을 뿐이다. 악(惡)이 징계되고 선(善)이 권면(勸勉)됨은 하늘의 명(命)을 순종하여 여러 생물(生物)들을 편안히 하는 것이다.
【本義】 火在天上하여 所照者廣하니 爲大有之象이라 所有旣大에 无以治之면 則釁蘖이 萌於其間矣라 天命은 有善而无惡이라 故遏惡揚善이 所以順天이니 反之於身에도 亦若是而已矣니라.
불이 하늘 위에 있어서 비추는 바가 넓으니, 대유(大有)의 상(象)이 된다. 소유한 것이 이미 큰데 다스림이 없으면 재앙(災殃)이 그 사이에서 싹트기 마련이다. 천명(天命)은 선(善)만 있고 악(惡)이 없다. 그러므로 악(惡)을 막고 선(善)을 드날림이 하늘을 순종하는 것이니, 자신에게 돌이킴에도 역시 이와 같을 뿐이다.
初九는 无交害니 匪咎나 艱則无咎리라.
초구(初九)는 해(害)에 간섭됨이 없으니, 허물이 있는 것이 아니나 어렵게 여기고 조심하면 허물이 없으리라.
【傳】 九居大有之初하여 未至於盛하고 處卑无應與하여 未有驕盈之失이라 故无交害하니 未涉於害也라 大凡富有면 鮮不有害하나니 以子貢之賢으로도 未能盡免커든 況其下者乎아 匪咎艱則无咎는 言富有本匪有咎也나 人因富有하여 自爲咎耳니 若能享富有而知難處면 則自无咎也라 處富有而不能思艱兢畏면 則驕侈之心生矣리니 所以有咎也라.
구(九)가 대유(大有)의 초(初)에 거하여 성대함에 이르지 않았고, 낮은 자리에 처하고 응여(應與)가 없어서 교만하고 넘치는 잘못이 없다. 그러므로 해(害)에 사귐이 없으니, 해(害)에 간섭됨이 없는 것이다. 대체로 풍부(豊富)하게 소유하면 해(害)가 있지 않은 경우가 드무니, 자공(子貢)의 어짊으로도 다 면하지 못하였는데 하물며 그보다 아래인 이에 있어서랴. ‘비구간즉무구(匪咎艱則无咎)’는 부유(富有)함이 본래 허물이 있는 것이 아니나, 사람이 부유함으로 인하여 스스로 잘못을 저지를 뿐이니, 만약 부유함을 누리면서도 간난(艱難)하게 대처할 줄을 알면 스스로 허물이 없음을 말한 것이다. 부유함에 처하여 간난(艱難)함을 생각하여 조심하고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교만하고 사치한 마음이 생길 것이니, 이는 허물이 있는 것이다.
【本義】 雖當大有之時나 然以陽居下하고 上无係應하며 而在事初하여 未涉乎害者也니 何咎之有리오 然亦必艱以處之則无咎니 戒占者宜如是也라.
비록 대유(大有)의 때를 당하였으나, 양(陽)으로서 아래에 거하고 위에 계응(係應)이 없으며 일의 초기에 있어서 아직 해(害)에 간섭되지 않는 것이니, 무슨 허물이 있겠는가. 그러나 또한 반드시 간난(艱難)하게 대처하면 허물이 없을 것이니, 점치는 이에게 마땅히 이와 같이 하라고 경계한 것이다.
象曰 大有初九는 无交害也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대유(大有)의 초구(初九)는 해(害)에 간섭됨이 없는 것이다.”
【傳】 在大有之初하여 克念艱難이면 則驕溢之心이 无由生矣니 所以不交涉於害也라.
대유(大有)의 초기(初期)에 있어서 능히 어려움을 생각하면 교만하고 넘치는 마음이 말미암아 생길 수 없으니, 이 때문에 해(害)에 교섭되지 않는 것이다.
九二는 大車以載니 有攸往하여 无咎리라.
구이(九二)는 큰 수레로써 실음이니, 갈 바를 두어 허물이 없으리라.
【本義】 有攸往이면,
【본의】 갈 바를 두면,
【傳】 九以陽剛居二하여 爲六五之君所倚任하니 剛健則才勝하고 居柔則謙順하고 得中則无過하니 其才如此라 所以能勝大有之任하니 如大車之材强壯하여 能勝載重物也니 可以任重行遠이라 故有攸往而无咎也라 大有豊盛之時에 有而未極이라 故로 以二之才로 可往而无咎니 至於盛極이면 則不可以往矣라.
구(九)가 양강(陽剛)으로서 이(二)에 거하여 육오(六五)의 군주에게 의지하고 신임하는 바가 되었으니, 강건(剛健)하면 재주가 감당해내고 유(柔)에 거하면 겸손하고 중(中)을 얻으면 허물이 없다. 그 재질이 이와 같으므로 대유(大有)의 임무를 감당하는 것이니, 큰 수레의 재목이 강장(强壯)하여 무거운 물건을 감당하여 실을 수 있는 것과 같다. 무거운 짐을 맡아서 멀리 갈 수 있으므로 갈 바를 두어 허물이 없는 것이다. 대유(大有) 풍성(豊盛)의 때에 소유하되 극(極)에 이르지 않았다. 그러므로 이(二)의 재질로 가서 허물이 없는 것이니, 성함이 극에 이르면 갈 수가 없다.
【本義】 剛中在下하여 得應乎上하니 爲大車以載之象이니 有所往而如是면 可以无咎矣라 占者必有此德이라야 乃應其占也라.
강중(剛中)으로 아래에 있으면서 위에 응(應)을 얻었으니, 큰 수레로 싣는 상(象)이 되니, 갈 바를 둠에 이와 같으면 허물이 없을 것이다. 점치는 이가 반드시 이러한 덕(德)이 있어야 비로소 이 점괘에 응할 것이다.
象曰 大車以載는 積中不敗也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큰 수레로 실음은 가운데에 많이 쌓아도 무너지지 않는 것이다.”
【傳】 壯大之車는 重積載於其中而不損敗하니 猶九二材力之强하여 能勝大有之任也라.
튼튼하고 큰 수레는 가운데에 많이 적재하여도 부서지고 망가지지 않으니, 구이(九二)가 재력(材力)이 강하여 대유(大有)의 임무를 감당하는 것과 같다.
九三은 公用亨于天子니 小人은 弗克이니라.
구삼(九三)은 공(公)이 천자(天子)께 형통하게 함이니, 소인(小人)은 능하지 못하다.
【本義】 公用亨[享]于天子니,
【본의】 공(公)이 천자(天子)께 물건을 올림이니,
【傳】 三居下體之上하니 在下而居人上은 諸侯人君之象也라 公侯는 上承天子하니 天子는 居天下之尊하여 率土之濱이 莫非王臣이니 在下者何敢專其有리오 凡土地之富와 人民之衆이 皆王者之有也니 此理之正也라 故三當大有之時하여 居諸侯之位하여 有其富盛이면 必用亨通乎天子니 謂以其有로 爲天子之有也니 乃人臣之常義也라 若小人處之면 則專其富有하여 以爲私하여 不知公己奉上之道라 故曰小人弗克也라 하니라.
삼(三)이 하체(下體)의 위에 거하였으니, 아래에 있으면서 사람의 위에 거함은 제후(諸侯) 인군(人君)의 상(象)이다. 공후(公侯)는 위로 천자(天子)를 받드니, 천자(天子)는 천하의 높은 지위에 거하여 온 천하가 모두 왕(王)의 신하이다. 아래에 있는 이가 어찌 감히 그 소유함을 독점하겠는가. 무릇 토지(土地)의 풍부함과 인민(人民)의 많음은 모두 왕자(王者)의 소유이니, 이것이 올바른 이치이다. 그러므로 삼(三)이 대유(大有)의 때를 당하여 제후(諸侯)의 지위에 거해서 풍부하고 성함을 소유하였으면, 반드시 이로써 천자(天子)를 형통하게 하여야 한다. 이는 자기의 소유를 천자(天子)의 소유로 여김을 말한 것이니, 이것이 신하의 떳떳한 의리이다. 만약 소인(小人)이 여기에 처하면 그 부유함을 독점하여 사유물(私有物)로 여겨서 자신을 공변되게 하고 위를 받드는 도리를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소인(小人)은 능하지 못하다’라고 한 것이다.
【本義】 亨은 春秋傳에 作享하니 謂朝獻也라 古者에 亨通之亨과 享獻之享과 烹飪之烹을 皆作亨字하니라 九三이 居下之上하니 公侯之象이요 剛而得正하고 上有六五之君이 虛中下賢이라 故爲享于天子之象이라 占者有其德이면 則其占如是요 小人无剛正之德이면 則雖得此爻나 不能當也라.
형(亨)은 《춘추전(春秋傳)》에 ‘향(享)’으로 되어 있으니, 조회(朝會)하여 물건을 올림을 이른다. 옛날에 형통(亨通)의 형자(亨字)와 향헌(享獻)의 향자(享字)와 팽임(烹飪)의 팽자(烹字)를 모두 형자(亨字)로 썼다. 구삼(九三)이 하괘(下卦)의 위에 거하였으니 공후(公侯)의 상(象)이요, 강(剛)하고 정(正)을 얻었으며 위에 육오(六五)의 군주가 마음을 비우고 현자(賢者)에게 낮춤이 있다. 그러므로 천자(天子)에게 올리는 상(象)이 된 것이다. 점치는 이가 이러한 덕(德)이 있으면 그 점(占)이 이와 같을 것이요, 소인(小人)이 강정(剛正)의 덕(德)이 없으면 비록 이 효(爻)를 얻더라도 능히 감당하지 못할 것이다.
象曰 公用亨于天子는 小人은 害也리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공용형우천자(公用亨于天子)’는 소인(小人)은 해로우리라.”
【傳】 公은 當用[一无用字]亨于天子니 若小人處之면 則爲害也라 自古로 諸侯能守臣節하여 忠順奉上者는 則蕃養其衆하여 以爲王之屛翰하고 豊殖其財하여 以待上之徵賦라 若小人處之면 則不知爲臣奉上之道하여 以其爲己之私하여 民衆財豊이면 則反擅其富强하여 益爲不順하니 是는 小人大有則爲害요 又大有爲小人之害也라.
공(公)은 마땅히 천자(天子)를 형통하게 하여야 하니, 만약 소인(小人)이 여기에 처하면 해가 되는 것이다. 예로부터 제후(諸侯)가 신하의 예절을 지켜서 충순(忠順)으로 위를 받드는 이는 무리를 많이 길러서 왕(王)의 울타리로 삼고 재물을 많이 증식하여 윗사람의 징부(徵賦)에 대비하였다. 만약 소인(小人)이 여기에 처하면 신하가 되어 윗사람을 받드는 도리를 알지 못하여 자기의 사유물(私有物)로 생각해서 백성이 많고 재물이 풍성하면 도리어 부강(富强)함을 독단하여 더욱 불순(不順)한 짓을 하니, 이는 소인(小人)이 크게 소유하면 해(害)가 되고 또 대유(大有)가 소인(小人)의 해(害)가 되는 것이다.
九四는 匪其彭(방)이면 无咎리라.
구사(九四)는 지나치게 성하게 하지 않으면 허물이 없으리라.
【本義】 匪其彭이니,
【본의】 지나치게 성하게 하지 않음이니,
【傳】 九四居大有之時하여 已過中矣니 是는 大有之盛者也니 過盛則凶咎所由生也라 故處之之道 匪其彭則得无咎니 謂能謙損하여 不處其太盛이면 則得无咎也라 四는 近君之高位니 苟處太盛이면 則致凶咎라 彭은 盛多之貌라 詩載驅云 汶水湯湯(상상)이어늘 行人彭彭이라 하니 行人盛多之狀이요 雅大明云 駟騵彭彭이라 하니 言武王戎馬之盛也라.
구사(九四)는 대유(大有)의 때에 거하여 이미 중(中)을 지났으니, 이는 대유(大有)가 성한 것이니, 지나치게 성(盛)하면 흉구(凶咎)가 이로 말미암아 생긴다. 그러므로 이에 대처하는 도(道)는 지나치게 성하게 하지 않으면 허물이 없는 것이니, 능히 겸손하여 너무 성함에 처하지 않으면 허물이 없을 수 있음을 말한 것이다. 사(四)는 인군(人君)과 가까운 높은 자리이니, 만일 너무 성함에 처하면 흉구(凶咎)를 이룬다. 방(彭)은 성하고 많은 모양이다. 《시경(詩經)》〈재구편(載驅篇)〉에 “문수(汶水)가 넘실넘실 흐르는데 행인(行人)들이 방방(彭彭)하다.” 하였으니, 행인(行人)들이 많은 모양이요, 대아(大雅) 〈대명편(大明篇)〉에 “사원(駟騵)이 방방(彭彭)하다.” 하였으니, 무왕(武王)의 융마(戎馬)가 성함을 말한 것이다.
【本義】 彭字는 音義未詳이라 程傳曰 盛貌라 하니 理或當然이라 六五는 柔中之君이니 九四以剛近之하여 有僭偪之嫌이나 然以其處柔也라 故有不極其盛之象而得无咎하니 戒占者宜如是也라.
방자(彭字)는 음과 뜻이 미상(未詳)이다. 《정전(程傳)》에 “성한 모양이다.” 하였으니, 이치가 혹 마땅할 듯하다. 육오(六五)는 유중(柔中)의 군주이니, 구사(九四)가 강(剛)으로 가까이 있어서 참람하고 핍박하는 혐의가 있으나, 유(柔)에 처했기 때문에 성함을 지극히 하지 않는 상(象)이 있어서 허물이 없는 것이니, 점치는 이에게 마땅히 이와 같이 하라고 경계한 것이다.
象曰 匪其彭无咎는 明辨晢也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지나치게 성하게 하지 않으면 허물이 없다는 것은 명변(明辨)한 지혜이다.”
【본의】 명변(明辨)함이 분명하다.
【傳】 能不處其盛而得无咎者는 蓋有明辨之智也니 晢는 明智也라 賢智之人은 明辨物理하여 當其方盛이면 則知咎之將至라 故能損抑하여 不敢至於滿極也라.
지나치게 성함에 처하지 않아 허물이 없는 것은 명변(明辨)의 지혜가 있기 때문이니, 절(晢)은 밝은 지혜이다. 어질고 지혜로운 사람은 사물의 이치를 밝게 분변하여 성할 때를 당하면 허물이 장차 이를 줄을 안다. 그러므로 덜고 억제하여 감히 가득하고 지극함에 이르지 않는 것이다.
【本義】 晢은 明貌라.
절(晢)은 밝은 모양이다.
六五는 厥孚交如니 威如면 吉하리라.
육오(六五)는 그 믿음이 서로 사귀니, 위엄이 있으면 길(吉)하리라.
【傳】 六五當大有之時하여 居君位虛中하니 爲孚信之象이라 人君이 執柔守中而以孚信接於下면 則下亦盡其信誠하여 以事於上이니 上下孚信相交也라 以柔居尊位하니 當大有之時하여 人心安易하나니 若專尙柔順이면 則陵慢生矣라 故必威如則吉이니 威如는 有威嚴之謂也라 旣以柔和孚信으로 接於下하여 衆志說從하고 又有威嚴하여 使之有畏면 善處有者也니 吉可知矣라.
육오(六五)가 대유(大有)의 때를 당해서 군위(君位)에 거하여 마음을 비우니, 부신(孚信)의 상(象)이 된다. 인군(人君)이 유(柔)를 잡고 중(中)을 지키며 부신(孚信)으로 아랫사람을 대하면 아랫사람 역시 신성(信誠)을 다하여 윗사람을 섬길 것이니, 상하(上下)가 믿음으로 서로 사귀는 것이다. 유(柔)로서 존위(尊位)에 거하였으니, 대유(大有)의 때를 당하여 사람들의 마음이 안이해지는데 만약 오로지 유순함만을 숭상하면 능멸과 업신여김이 생긴다. 그러므로 반드시 위엄이 있으면 길(吉)한 것이니, ‘위여(威如)’는 위엄이 있음을 이른다. 이미 유화(柔和)와 부신(孚信)으로 아랫사람을 대하여 사람들의 마음이 기뻐하여 따르고, 또 위엄이 있어서 두려워함이 있게 하면 잘 처하는 이이니, 길(吉)함을 알 수 있다.
【本義】 大有之世에 柔順而中하여 以處尊位하고 虛己以應九二之賢하여 而上下歸之하니 是其孚信之交也라 然君道貴剛하니 太柔則廢니 當以威濟之則吉이라 故其象占如此하니 亦戒辭也라.
대유(大有)의 세상에 유순하고 중(中)하여 존위(尊位)에 처하고, 자기 몸을 비워 구이(九二)의 현자(賢者)에게 응하여 상하(上下)가 그에게 돌아오니, 이는 부신(孚信)으로 사귀는 것이다. 그러나 군주의 도(道)는 강함을 귀하게 여기므로 너무 유순하면 폐지되니, 마땅히 위엄으로써 구제하면 길(吉)하다. 그러므로 그 상(象)과 점(占)이 이와 같은 것이니, 역시 경계한 말이다.
象曰 厥孚交如는 信以發志也요.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그 믿음이 서로 사귐은 신(信)으로써 뜻을 계발(啓發)함이요,
【본의】 신(信)이 뜻을 계발(啓發)함이요.
【本義】 一人之信이 足以發上下之志也라.
한 사람의 믿음이 족히 상하(上下)의 뜻을 계발하는 것이다.
威如之吉은 易而无備也일새라.
위엄이 있으면 길(吉)한 것은 쉽게 여겨 대비함이 없기 때문이다.”
【傳】 下之志는 從乎上者也니 上以孚信接於下하면 則下亦以誠信事其上이라 故厥孚交如하니 由上有孚信하여 以發其下孚信之志하니 下之從上은 猶響之應聲也라 威如之所以吉者는 謂若无威嚴이면 則下易慢而无戒備也니 謂无恭畏備上之道라 備는 謂備上之求責也라.
아래의 뜻은 위를 따르는 것이니, 윗사람이 부신(孚信)으로 아랫사람을 대하면 아랫사람 역시 성신(誠信)으로 윗사람을 섬긴다. 그러므로 그 믿음이 서로 사귀는 것이니, 윗사람이 부신(孚信)이 있어서 아랫사람의 부신(孚信)의 뜻을 계발하기 때문이니,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따름은 메아리가 소리에 응함과 같다. 위엄이 있으면 길(吉)한 까닭은 만약 위엄이 없으면 아랫사람들이 함부로 하고 업신여겨 경계하고 대비함이 없음을 이르니, 공손하고 두려워하여 위에 대비하는 도(道)가 없음을 말한 것이다. 비(備)는 윗사람의 요구와 바람에 대비함을 이른다.
【本義】 太柔則人將易之而无畏備之心이라.
너무 유순하면 사람들이 장차 쉽게 여겨서 두려워하고 대비하는 마음이 없게 된다.
上九는 自天祐之라 吉无不利로다.
상구(上九)는 하늘로부터 도우므로 길(吉)하여 이롭지 않음이 없다.
【傳】 上九在卦之終하여 居无位之地하니 是는 大有之極而不居其有者也라 處離之上은 明之極也니 唯至明일새 所以不居其有하여 不至於過極也라 有極而不處면 則无盈滿之災하니 能順乎理者也라 五之孚信而履其上은 爲蹈履誠信之義요 五有文明之德이어늘 上能降志以應之는 爲尙賢崇善之義라 其處如此면 吉道之至也니 自當享其福慶하여 自天祐之리라 行順乎天而獲天祐라 故所往皆吉하여 无所不利也라.
상구(上九)는 괘(卦)의 종(終)에 있어서 지위가 없는 자리에 처했으니, 이는 대유(大有)가 지극하면서도 그 소유함을 자처하지 않는 것이다. 이(離)의 위에 처함은 밝음이 지극한 것이니, 지극히 밝기에 그 소유함을 자처하지 아니하여 지나치게 지극함에 이르지 않는 것이다. 소유함이 지극하더라도 자처하지 않으면 영만(盈滿)의 재앙이 없으니, 이치에 순응하는 이이다. 오(五)가 부신(孚信)인데 그 위를 밟고 있음은 성신(誠信)을 이행하는 뜻이 되고, 오(五)가 문명(文明)한 덕(德)이 있는데 상(上)이 뜻을 낮추어 그에게 응함은, 현자(賢者)를 높이고 선(善)을 숭상하는 뜻이 된다. 그 대처함이 이와 같으면 길(吉)한 도(道)가 지극한 것이니, 스스로 마땅히 복경(福慶)을 누려 하늘로부터 도움을 받을 것이다. 행실이 천도(天道)에 순응하여 하늘의 도움을 얻었다. 그러므로 가는 곳마다 모두 길(吉)하여 이롭지 않은 바가 없는 것이다.
【本義】 大有之世에 以剛居上而能下從六五하니 是能履信思順而尙賢也라 滿而不溢이라 故其占如此하니라.
대유(大有)의 세상에 강(剛)으로서 위에 거하여 아래로 육오(六五)를 따르니, 이는 성신(誠信)을 이행하고 순(順)함을 생각하며 현자(賢者)를 높이는 것이다. 가득하나 넘치지 않으므로 그 점괘(占卦)가 이와 같은 것이다.
象曰 大有上吉은 自天祐也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대유(大有)의 상(上)이 길(吉)한 것은 하늘로부터 돕기 때문이다.”
【傳】 大有之上은 有極當變이로되 由其所爲順天合道라 故天祐助之하여 所以吉也라 君子滿而不溢은 乃天祐也라 繫辭에 復申之云 天之所助者는 順也요 人之所助者는 信也니 履信思乎順하고 又以尙賢也라 是以로 自天祐之吉无不利也라 하니라 履信은 謂履五니 五虛中이 信也요 思順은 謂謙退不居요 尙賢은 謂志從於五라 大有之世엔 不可以盈이니 豊而復處盈焉은 非所宜也라 六爻之中은 皆樂據權位로되 唯初上은 不處其位라 故初九는 无咎요 上九는 无不利라 上九在上하여 履信思順이라 故在上而得吉하니 蓋自天祐也라.
대유(大有)의 상(上)은 소유가 지극하여 마땅히 변할 것이나, 하늘에 순응하고 도(道)에 합하기 때문에 하늘이 도와서 길(吉)한 것이다. 군자(君子)가 가득하나 넘치지 않음은 바로 하늘이 돕는 것이다. 〈계사전(繫辭傳)〉에 다시 이것을 펴서 말하기를 “하늘이 돕는 것은 순응하기 때문이요 사람이 돕는 것은 성신(誠信)하기 때문이니, 성신(誠信)을 이행하고 순함을 생각하며 또 어진이를 숭상한다. 이 때문에 하늘로부터 도와서 길(吉)하여 이롭지 않음이 없는 것이다.” 하였다. 이신(履信)은 오(五)를 밟음을 이르니 오(五)가 중(中)을 비움이 신(信)이요, 사순(思順)은 겸손하여 자처하지 않음을 이르고, 상현(尙賢)은 뜻이 오(五)를 따름을 이른다. 대유(大有)의 세상엔 가득해서는 안 되니, 풍성한데 다시 가득함에 처함은 마땅한 바가 아니다. 여섯 효(爻) 가운데 모두 권세와 지위를 점거하는 것을 좋아하나 오직 초(初)와 상(上)은 그 지위에 처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초구(初九)는 허물이 없고 상구(上九)는 이롭지 않음이 없는 것이다. 상구(上九)가 위에 있어서 성신(誠信)을 이행하고 순함을 생각한다. 그러므로 위에 있으면서 길(吉)함을 얻는 것이니, 이는 하늘이 돕는 것이다.

14. 대유(大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