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수(隨)
【傳】 隨는 序卦에 豫必有隨라 故受之以隨라 하니라 夫悅豫之道는 物所隨也니 隨所以次豫也라 爲卦兌上震下하니 兌爲說하고 震爲動하니 說而動하고 動而說이 皆隨之義라 女는 隨人者也니 以少女從長男은 隨之義也요 又震爲雷하고 兌爲澤하니 雷震於澤中에 澤隨而動은 隨之象也라 又以卦變言之하면 乾之上이 來居坤之下하고 坤之初 往居乾之上하여 陽來下於陰也니 以陽下陰이면 陰必說隨니 爲隨之義라 凡成卦旣取二體之義하고 又有取爻義者하며 復有更取卦變之義者하니 如隨之取義 尤爲詳備라.
수괘(隨卦)는 〈서괘전(序卦傳)〉에 “좋아하면 반드시 따름이 있다. 그러므로 수(隨)로 받았다.” 하였다. 열예(悅豫)의 도(道)는 사물이 따르는 바이니, 수괘(隨卦)가 이 때문에 예괘(豫卦) 다음이 된 것이다. 괘(卦)됨이 태(兌)가 위에 있고 진(震)이 아래에 있으니, 태(兌)는 기뻐함이 되고 진(震)은 동함이 되니, 기뻐하고 동하며 동하고 기뻐함이 모두 수(隨)의 뜻이다. 여자(女子)는 사람을 따르는 이이니 소녀(少女)로 장남(長男)을 따름은 수(隨)의 뜻이며, 또 진(震)은 우레가 되고 태(兌)는 못이 되니 우레가 못 속에서 진동함에 못이 따라 움직임은 수(隨)의 상(象)이다. 또 괘변(卦變)으로 말하면 건(乾)의 상구(上九)가 와서 곤(坤)의 아래에 거하고 곤(坤)의 초효(初爻)가 가서 건(乾)의 위에 거하여 양(陽)이 와서 음(陰)에게 낮추니, 양(陽)으로서 음(陰)에게 낮추면 음(陰)이 반드시 좋아하여 따르므로 수(隨)의 뜻이 된다. 무릇 괘(卦)를 이룸은 두 체(體)의 뜻을 취하고 또 효(爻)의 뜻을 취한 경우가 있으며, 다시 괘변(卦變)의 뜻을 취한 경우가 있으니, 수(隨)가 뜻을 취함 같은 것은 더더욱 자세히 구비된 것이다.
隨는 元亨하니 利貞이라 无咎리라.
수(隨)는 크게 형통(亨通)하니 정(貞)함이 이롭다. 허물이 없으리라.
【本義】 元亨하나,
【본의】 크게 형통하나,
【傳】 隨之道可以致大亨也라 君子之道 爲衆所隨와 與己隨於人과 及臨事擇所隨 皆隨也니 隨得其道면 則可以致大亨也라 凡人君之從善과 臣下之奉命과 學者之徙義에 臨事而從長이 皆隨也라 隨之道는 利在於貞正이니 隨得其正然後能大亨而无咎요 失其正則有咎矣니 豈能亨乎아.
수(隨)의 도(道)는 크게 형통(亨通)함을 이룰 수 있다. 군자(君子)의 도(道)가 무리에게 따르는 바가 됨과 자기가 남을 따름과 일을 당하여 따를 바를 선택함이 모두 따름이니, 따름이 그 도(道)를 얻으면 크게 형통(亨通)함을 이룰 수 있다. 무릇 인군(人君)이 선(善)을 따름과 신하(臣下)가 명령을 받듦과 학자(學者)가 의(義)로 옮겨가는 등 일에 임하여 장점을 따르는 것이 모두 따름이다. 따르는 도(道)는 이로움이 정정(貞正)함에 있으니, 따름이 그 바름을 얻은 뒤에야 크게 형통(亨通)하여 허물이 없을 것이요, 바름을 잃으면 허물이 있으니, 어찌 형통(亨通)하겠는가.
【本義】 隨는 從也라 以卦變言之하면 本自困卦九來居初하고 又自噬嗑九來居五요 而自未濟來者는 兼此二變하니 皆剛來隨柔之義요 以二體言之하면 爲此動而彼說이니 亦隨之義라 故爲隨라 己能隨物하고 物來隨己하여 彼此相從하면 其通이 易矣라 故其占爲元亨이나 然必利於貞이라야 乃得无咎니 若所隨不貞이면 則雖大亨而不免於有咎矣리라 春秋傳에 穆姜曰 有是四德이라야 隨而无咎어늘 我皆无之하니 豈隨也哉아 하니 今按四德이 雖非本義나 然其下云云은 深得占法之意하니라.
수(隨)는 따름이다. 괘변(卦變)으로 말하면 본래 곤괘(困卦)[ ]의 구(九)가 와서 초(初)에 거하였고, 또 서합괘(噬嗑卦)[ ]의 구(九)가 와서 오(五)에 거하였으며, 미제괘(未濟卦)[ ]로부터 온 것은 이 두 변(變)을 겸하였으니, 모두 강(剛)이 와서 유(柔)를 따르는 뜻이다. 두 체(體)로 말하면 이것이 동함에 저것이 좋아함이 되니, 역시 수(隨)의 뜻이다. 그러므로 수(隨)라 한 것이다. 자기가 남을 따르고 남이 와서 자기를 따라 피차(彼此)가 서로 따르면 통하기가 쉽다. 그러므로 그 점(占)이 크게 형통(亨通)함이 된다. 그러나 반드시 정(貞)함이 이로워야 비로소 허물이 없을 수 있으니, 만약 따르는 바가 바르지 못하면 비록 크게 형통(亨通)하더라도 허물이 있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 《춘추전(春秋傳)》에 목강(穆姜)이 말하기를 “이 네 가지 덕(德)이 있어야 따름에 허물이 없을 텐데 나는 모두 없으니, 어찌 수괘(隨卦)에 해당되겠는가?” 하였으니, 지금 살펴보건대 네 가지 덕(德)은 비록 본래의 뜻이 아니나 그 아래에 운운한 것은 점치는 뜻을 깊이 알았다 하겠다.
彖曰 隨는 剛來而下柔하고 動而說이 隨니,
〈단전(彖傳)〉에 말하였다. “수(隨)는 강(剛)이 와서 유(柔)에게 낮추며 동하고 기뻐함이 수(隨)이니,
【本義】 以卦變卦德으로 釋卦名義라.
괘변(卦變)과 괘덕(卦德)으로 괘명(卦名)의 뜻을 해석하였다.
大亨하고 貞하여 无咎하여 而天下隨時하나니,
크게 형통(亨通)하고 정(貞)하여 허물이 없어서 천하(天下)가 때를 따르니,
【本義】 而天下隨(時)[之]하나니,
【본의】 천하(天下)가 따르게 되니,
【傳】 卦所以爲隨는 以剛來而下柔하고 動而說也일새니 謂乾之上九來居坤之下하고 坤之初六이 往居乾之上하여 以陽剛으로 來下於陰柔하니 是는 以上下下요 以貴下賤이니 能如是면 物之所說隨也라 又下動而上說은 動而可悅也니 所以隨也라 如是則可[一有以字]大亨而得正이니 能大亨而得正則爲无咎라 不能亨, 不得正이면 則非可隨之道니 豈能使天下隨之乎아 天下所隨者는 時也라 故云天下隨時라 하니라.
괘(卦)가 수(隨)가 된 까닭은 강(剛)이 와서 유(柔)에게 낮추며 동하고 기뻐하기 때문이니, 건(乾)의 상구(上九)가 와서 곤(坤)의 아래에 거하고 곤(坤)의 초육(初六)이 가서 건(乾)의 위에 거하여 양강(陽剛)이 와서 음유(陰柔)에게 낮추니, 이는 윗사람으로서 아랫사람에게 낮추고 귀한 사람으로서 천한 사람에게 낮추는 것이니, 이와 같이 하면 사물이 기뻐하여 따른다. 또 아래가 동하고 위가 기뻐함은 동함에 기뻐할 수 있는 것이니, 이 때문에 따르는 것이다. 이와 같으면 크게 형통(亨通)하여 정(正)을 얻을 수 있으니, 크게 형통(亨通)하여 정(正)을 얻으면 허물이 없게 된다. 형통(亨通)하지 못하고 정(正)을 얻지 못하면 따를 만한 도(道)가 아니니, 어찌 천하(天下)로 하여금 따르게 하겠는가. 천하(天下)가 따르는 것은 때이므로 ‘천하(天下)가 때를 따른다’고 말한 것이다.
【本義】 王肅本에 時를 作之하니 今當從之라 釋卦辭하니 言能如是則天下之所從也라.
왕숙본(王肅本)에 시자(時字)를 지자(之字)로 썼으니, 이제 마땅히 이것을 따라야 한다. 괘사(卦辭)를 해석하였으니, 이와 같이 하면 천하(天下)가 따르게 됨을 말한 것이다.
隨時之義 大矣哉라.
때를 따르는 의(義)가 크다.
【本義】 隨(時)[之時]義大矣哉라.
【본의】 수(隨)의 때와 의(義)가 크다.
【傳】 君子之道隨時而動하여 從宜適變하여 不可爲典要니 非造道之深하여 知幾能權者면 不能與於此也라 故贊之曰 隨時之義大矣哉라 하니 凡贊之者는 欲人知其義之大하여 玩而識之也라 此贊隨時之義大는 與豫等諸卦不同하니 諸卦는 時與義니 是兩事라.
군자(君子)의 도(道)는 때를 따라 동하여 마땅함을 따르고 변화에 적응해서 일정한 법칙을 삼을 수 없으니, 도(道)에 조예(造詣)가 깊어서 기미를 알아 저울질할 수 있는 이가 아니면 여기에 참여할 수 없다. 그러므로 찬양하기를 ‘때를 따르는 뜻이 크다’ 하였으니, 무릇 찬양한 것은 사람들이 그 의(義)가 큼을 알아 살펴보아 알게 하고자 한 것이다. 여기에서 때를 따르는 뜻이 큼을 찬양한 것은 예괘(豫卦) 등의 여러 괘(卦)와 같지 않으니, 여러 괘(卦)는 때와 의(義)이니, 두 가지 일이다.
【本義】 王肅本에 時字在之字下하니 今當從之라.
왕숙본(王肅本)에 시자(時字)가 지자(之字) 아래에 있으니, 이제 마땅히 이것을 따라야 한다.
象曰 澤中有雷 隨니 君子以하여 嚮晦入宴息하나니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못 가운데에 우레가 있는 것이 수(隨)이니, 군자(君子)가 이로써 날이 어둠을 향하거든 들어가 편안히 쉰다.”
【傳】 雷震於澤中에 澤隨震而動이 爲隨之象이니 君子觀象하여 以隨時而動이라 隨時之宜는 萬事皆然이나 取其最明且近者言之라 君子以嚮晦入宴息은 君子晝則自强不息이라가 及嚮昏晦則入居於內하여 宴息以安其身하니 起居隨時하여 適其宜也라 禮에 君子晝不居內하고 夜不居外하니 隨時之道也라.
우레가 못 가운데에서 진동함에 못이 진동을 따라 움직임이 수(隨)의 상(象)이니, 군자(君子)가 이 상(象)을 보고서 때에 따라 동한다. 때에 따르는 마땅함은 만사(萬事)가 다 그러하나 가장 분명하고 또 가까운 것을 취하여 말하였다. ‘군자이향회입연식(君子以嚮晦入宴息)’은 군자(君子)가 낮에는 스스로 힘쓰고 쉬지 않다가 날이 어둠을 향하면 안에 들어가 거처하여 편안히 쉬어서 몸을 편안히 하니, 일어남과 앉음을 때에 따라 마땅함에 맞게 하는 것이다. 예(禮)에 “군자(君子)가 낮에는 안에 거처하지 않고 밤에는 밖에 거처하지 않는다.” 하였으니, 때를 따르는 도(道)이다.
【本義】 雷藏澤中하니 隨時休息이라.
우레가 못 가운데에 감춰 있으니, 때에 따라 휴식하는 것이다.
初九는 官有渝니 貞이면 吉하니 出門交면 有功하리라.
초구(初九)는 주장하여 지킴이 변함이 있으니, 정(貞)하면 길(吉)하니 문을 나가 사귀면 공(功)이 있으리라.
【본의】 주장하여 변함이 있음이니,
【傳】 九居隨時而震體요 且動之主니 有所隨者也라 官은 主守也니 旣有所隨면 是其所主守有變易也라 故曰 官有渝라 貞吉은 所隨得正則吉也니 有渝而不得正이면 乃過動也라 出門交有功은 人心所從이 多所親愛者也니 常人之情은 愛之則見其是하고 惡之則見其非라 故妻孥之言은 雖失而多從하고 所憎之言은 雖善爲惡也니 苟以親愛而隨之면 則是私情所與니 豈合正理리오 故出門而交則有功也라 出門은 謂非私暱이니 交不以私라 故其隨當而有功이라.
구(九)는 수(隨)의 때에 거하였고 진(震)의 체(體)이며 또 동(動)의 주체이니, 따르는 바가 있는 것이다. 관(官)은 주장하여 지킴이니, 이미 따르는 바가 있으면 이는 주장하여 지킴이 변역(變易)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관유투(官有 )’라 말하였다. ‘정길(貞吉)’은 따르는 바가 정(正)을 얻으면 길하니, 변함이 있으나 바름을 얻지 못하면 이는 지나치레 동한 것이다. 문을 나가 사귀면 공이 있다는 것은 인심(人心)의 따름은 친애하는 이에게 하는 경우가 많으니, 상인(常人)의 정(情)은 사랑하면 그 옳음을 보고 미워하면 그 그름을 본다. 그러므로 처노(妻孥)의 말은 비록 잘못된 것이라도 많이 따르고, 미워하는 사람의 말은 비록 선(善)하더라도 악(惡)하게 여기니, 만일 친애한다 하여 따르면 이는 사사로운 정(情)으로 더부는 것이니, 어찌 정리(正理)에 합하겠는가. 그러므로 문을 나가 사귀면 공(功)이 있는 것이다. 문을 나감은 사사로이 친함이 아님을 말한 것이니, 사귐을 사사로이 하지 않으므로 그 따름이 마땅하여 공(功)이 있는 것이다.
【本義】 卦는 以物隨爲義하고 爻는 以隨物爲義하니라 初九以陽居下하여 爲震之主하니 卦之所以爲隨者也라 旣有所隨면 則有所偏主而變其常矣니 惟得其正則吉이요 又當出門以交하여 不私其隨則有功也라 故其象占如此하니 亦因以戒之라.
괘(卦)는 남이 따름을 뜻으로 삼았고, 효(爻)는 남을 따름을 뜻으로 삼았다. 초구(初九)는 양(陽)으로서 아래에 거하여 진(震)의 주체가 되었으니, 괘(卦)가 수(隨)가 된 연유이다. 이미 따르는 바가 있으면 편벽되이 주장하는 바가 있어서 떳떳함을 변하게 하니, 바름을 얻으면 길하고, 또 마땅히 문을 나가 사귀어서 따름을 사사로이 하지 않으면 공(功)이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 상(象)과 점이 이와 같으니, 역시 인하여 경계한 것이다.
象曰 官有渝에 從正이면 吉也니,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주장하여 지킴이 변함에 바름을 따르면 길하니,
【傳】 旣有隨而變하니 必所從得正則吉也요 所從不正則有悔吝이라.
이미 따름이 있어 변하니, 반드시 따르는 바가 바름을 얻으면 길할 것이요, 따르는 바가 바르지 못하면 뉘우침과 부끄러움이 있을 것이다.
出門交有功은 不失也라.
문을 나가 사귀면 공(功)이 있다는 것은 잘못하지 않는 것이다.
【傳】 出門而交는 非牽於私니 其交必正矣니 正則无失而有功이라.
문을 나가 사귐은 사정(私情)에 끌리지 않음이니, 사귐이 반드시 바를 것이니, 바르면 잘못이 없어서 공(功)이 있을 것이다.
六二는 係小子면 失丈夫하리라.
육이(六二)는 소자(小子)에 얽매이면 장부(丈夫)를 잃으리라.
【本義】 係小子요 失丈夫로다.
【본의】 소자(小子)에 얽매이고 장부(丈夫)를 잃는다.
【傳】 二應五而比初하니 隨先於近이요 柔不能固守라 故爲之戒云 若係小子則失丈夫也라 初陽在下하니 小子也요 五正應在[一作居]上하니 丈夫也라 二若志係於初면 則失九五之正應하니 是失丈夫也[一无也字]라 係小子而失丈夫는 捨正應而從不正이니 其咎大矣라 二有中正之德하니 非必至如是也로되 在隨之時엔 當爲之戒也라.
이(二)는 오(五)와 응(應)하는데 초(初)와 가까우니, 따름은 가까움을 먼저 하고 유(柔)는 굳게 지키지 못한다. 그러므로 경계하기를 “만약 소자(小子)에 매이면 장부(丈夫)를 잃는다.”고 한 것이다. 초양(初陽)은 아래에 있으니 소자(小子)이고, 오(五)는 정응(正應)으로 위에 있으니 장부(丈夫)이다. 이(二)가 만약 뜻이 초(初)에 매어 있으면 구오(九五)의 정응(正應)을 잃으니, 이는 장부(丈夫)를 잃는 것이다. 소자(小子)에 얽매여 장부(丈夫)를 잃음은 정응(正應)을 버리고 부정(不正)을 따르는 것이니, 잘못이 크다. 이(二)는 중정(中正)의 덕(德)이 있으니, 반드시 이와 같음에 이르지 않을 것이나 수(隨)의 때에 있어서는 마땅히 경계하여야 한다.
【本義】 初陽은 在下而近하고 五陽은 正應而遠하니 二陰柔로 不能自守以須正應이라 故其象如此하니 凶吝可知니 不假言矣라.
초양(初陽)은 아래에 있어서 가깝고 오양(五陽)은 정응(正應)인데 머니, 이(二)는 음유(陰柔)여서 스스로 지켜 정응(正應)을 기다리지 못한다. 그러므로 그 상(象)이 이와 같으니, 흉린(凶吝)을 알 수 있으니, 굳이 말할 것이 없다.
象曰 係小子면 弗兼與也리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소자(小子)에 얽매이면 겸하여 친할 수가 없으리라.”
【本義】 係小子는 弗兼與也라.
【본의】 소자(小子)에 얽매인 이는 겸하여 친할 수가 없는 것이다.
【傳】 人之所隨 得正則遠邪하고 從非則失是하니 无兩從之理라 二苟係初則失五矣리니 弗能兼與也라 所以戒人從正에 當專一也라.
사람의 따르는 바가 바름을 얻으면 사(邪)를 멀리하고 그름을 따르면 옳음을 잃으니, 두 가지를 다 따르는 이치는 없다. 이(二)가 만약 초(初)에 얽매이면 오(五)를 잃을 것이니, 겸하여 친하지 못하는 것이다. 사람이 바름을 따름에 마땅히 전일(專一)하여야 함을 경계한 것이다.
六三은 係丈夫하고 失小子하니 隨에 有求를 得하나 利居貞하니라.
육삼(六三)은 장부(丈夫)에 얽매이고 소자(小子)를 잃으니, 따름에 구함을 얻으나 정(貞)에 거함이 이롭다.
【本義】 隨하여,
【본의】 따라서,
【傳】 丈夫는 九四也요 小子는 初也니 陽之在上者는 丈夫也요 居下者는 小子也라 三雖與初同體나 而切近於四라 故係於四也라 大抵陰柔不能自立하여 常親係於所近者라 上係於四라 故下失於初하니 舍初從上은 得隨之宜也니 上隨則善也라 如昏之隨明과 事之從善은 上隨也요 背是從非하고 舍明逐暗은 下隨也라 四亦无應하니 无隨之者也니 近得三之隨면 必與之親善이라 故三之隨四에 有求必得也라 人之隨於上而上與之면 是得所求也요 又凡所求者를 可得也라 雖然이나 固不可非理枉道以隨於上하고 苟取愛說以遂所求니 如此면 乃小人邪諂趨利之爲也라 故云利居貞이라 自處於正이면 則所謂有求而必[一无必字]得者乃正事니 君子之隨也라.
장부(丈夫)는 구사(九四)이고 소자(小子)는 초구(初九)이니, 양효(陽爻)가 위에 있는 것은 장부(丈夫)이고 아래에 거한 것은 소자(小子)이다. 육삼(六三)은 비록 초구(初九)와 동체(同體)이나 사(四)와 매우 가깝기 때문에 사(四)에 얽매인 것이다. 대저 음유(陰柔)는 자립(自立)하지 못하여 항상 가까운 바에 친하고 얽매인다. 위로 사(四)에 매이기 때문에 아래로 초(初)를 잃는 것이니, 초구(初九)를 버리고 위를 따름은 따름의 마땅함을 얻은 것이므로, 위로 따르면 선(善)하다. 어두운 이가 밝음을 따름과 일에 있어서 선(善)을 따름은 위로 따름이요, 옳음을 버리고 그름을 따름과 밝음을 버리고 어둠을 따름은 아래로 따르는 것이다. 사(四) 역시 응(應)이 없어서 따르는 이가 없으니, 가까이 삼(三)이 따름을 얻으면 반드시 더불어 친선(親善)한다. 그러므로 삼(三)이 사(四)를 따름에 구함을 반드시 얻는 것이다. 사람이 위를 따라 위가 친히 상대하면 이는 구하는 바를 얻는 것이며, 또 모든 구하는 바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진실로 이치가 아니고 도리(道理)에 어긋나게 위를 따르거나 구차히 사랑과 기쁨을 취하여 구하는 바를 이루지 말 것이니, 이와 같으면 바로 소인(小人)들이 간사하게 아첨하여 이익을 따르는 행위이다. 그러므로 ‘정(貞)에 거함이 이롭다’고 말한 것이다. 스스로 바름에 처하면 이른바 ‘구하는 것을 반드시 얻는다’는 것이 곧 올바른 일이 될 것이니, 군자(君子)의 따름이다.
【本義】 丈夫는 謂九四요 小子는 亦謂初也라 三近係四而失於初하니 其象이 與六二正相反이라 四陽當任而己隨之하니 有求必得이나 然非正應이라 故有不正而爲邪媚之嫌이라 故其占如此하고 而又戒以居貞也라.
장부(丈夫)는 구사(九四)를 이르고, 소자(小子)는 역시 초구(初九)를 이른다. 삼(三)은 가까이 사(四)에 얽매여 초(初)를 잃으니, 그 상(象)이 육이효(六二爻)와 정반대이다. 사양(四陽)이 임무를 담당하였는데 자신이 따르니, 구함을 반드시 얻으나 정응(正應)이 아니기 때문에 바르지 못하여 간사하게 아첨하는 혐의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점이 이와 같고 또 정(貞)에 거하라고 경계한 것이다.
象曰 係丈夫는 志舍下也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장부(丈夫)에 얽매임은 뜻이 아래를 버리는 것이다.
【傳】 旣隨於上이면 則是其志舍下而不從也니 舍下而從上은 舍卑而從高也니 於隨爲善矣라.
이미 위를 따르면 이는 그 뜻이 아래를 버리고 따르지 않는 것이니, 아래를 버리고 위를 따름은 낮은 것을 버리고 높은 것을 따르니, 따름에 있어서 좋음이 된다.
九四는 隨에 有獲이면 貞이라도 凶하니 有孚하고 在道하고 以明이면 何咎리오.
구사(九四)는 따름에 얻음이 있으면 바르더라도 흉하니, 정성이 있고 도(道)에 있고 밝음을 쓰면 무슨 허물이 있겠는가.
【本義】 隨有獲이니,
【본의】 따라서 얻음이 있으니,
【傳】 九四以陽剛之才로 處臣位之極하니 若於隨有獲이면 則雖正亦凶이라 有獲은 謂得天下之心이 隨於己라 爲臣之道는 當使恩威一出於上하여 衆心皆隨於君이니 若人心從己면 危疑之道也라 故凶이라 居此地者는 奈何오 唯孚誠積於中하고 動爲合於道하고 以明哲處之면 則又何咎리오 古之人이 有行之者하니 伊尹, 周公, 孔明이 是也라 皆德及於[一无於字]民而民隨之하니 其得民之隨는 所以成其君之功이요 致其國之安이라 其至誠存乎中은 是有孚也요 其所施爲无不中道는 在道也며 唯其明哲이라 故能如是以明也니 復何過咎之有리오 是以로 下信而上不疑하여 位極而无逼上之嫌하고 勢重而无專强[一作權]之過하니 非聖人大賢則不能也라 其次는 如唐之郭子儀 威震主而主不疑하니 亦由中有誠孚而處无甚失也니 非明哲이면 能如是乎아.
구사(九四)가 양강(陽剛)의 재주로 신하(臣下)의 지위의 극에 처하였으니, 만약 따름에 얻음이 있으면 비록 올바르더라도 역시한 흉하다. 얻음이 있다는 것은 천하(天下)의 마음이 자신을 따름을 얻음을 이른다. 신하(臣下)가 된 도리는 마땅히 은혜와 위엄이 한결같이 상(上)에게서 나와 사람들의 마음이 모두 군주(君主)를 따르게 하여야 하니, 만약 인심(人心)이 자기를 따른다면 위태롭고 의심받는 방법이므로 흉한 것이다. 이러한 처지에 있는 이는 어찌 하여야 하는가? 오직 부성(孚誠)이 중심에 쌓이고 동위(動爲)가 도(道)에 합하며 명철(明哲)함으로써 대처하면 또 무슨 허물이 있겠는가. 옛사람 중에 이를 행한 이가 있으니, 이윤(伊尹), 주공(周公), 공명(孔明)이 이러한 이들이다. 모두 덕(德)이 백성에게 미쳐 백성들이 따랐으니, 백성의 따름을 얻음은 군주(君主)의 공(功)을 이루고 나라의 편안함을 이루기 위해서였다. 지성(至誠)이 중심에 있음은 이는 부성(孚誠)이 있는 것이요, 시행한 바가 도(道)에 맞지 않음이 없음은 도(道)에 있는 것이요, 명철(明哲)하기 때문에 이와 같이 밝음을 쓴 것이니, 다시 무슨 과구(過咎)가 있겠는가. 이 때문에 아랫사람들이 믿고 윗사람이 의심하지 않아, 지위가 지극하면서도 상(上)을 핍박하는 혐의가 없고, 권세(權勢)가 무거우면서도 제멋대로 강하게 한 허물이 없었으니, 성인(聖人)과 대현(大賢)이 아니면 불가능하다. 그 다음으로 당(唐)나라의 곽자의(郭子儀)와 같은 이는 위엄이 군주(君主)를 진동하였으나 군주(君主)가 의심하지 않았으니, 역시 중심에 부성(孚誠)이 있고 처함에 심한 잘못이 없었기 때문이다. 명철(明哲)한 이가 아니면 이와 같을 수 있겠는가.
【本義】 九四以剛居上之下하여 與五同德이라 故其占이 隨而有獲이나 然勢陵於五라 故雖正而凶하니 惟有孚在道而明이면 則上安而下從之하여 可以无咎也라 占者當時之任이면 宜審此戒니라.
구사(九四)가 강(剛)으로서 상괘(上卦)의 아래에 거하여 오(五)와 덕(德)이 같다. 그러므로 그 점(占)이 따라서 얻음이 있으나 세(勢)가 오(五)를 능멸하기 때문에 비록 올바르더라도 흉하니, 오직 정성이 있고 도(道)에 있고 밝으면 위가 편안하고 아래가 따라서 허물이 없을 수 있다. 점치는 이가 당시의 임무를 맡았으면 마땅히 이 경계를 살펴야 할 것이다.
象曰 隨有獲은 其義凶也요 有孚在道는 明功也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따름에 얻음이 있음은 그 의리상(義理上) 흉하고, 정성이 있고 도(道)에 있음은 명철(明哲)한 공(功)이다.”
【傳】 居近君之位而有獲이면 其義固凶이로되 能有孚而在道則无咎하니 蓋明哲之功也라.
군주(君主)와 가까운 자리에 거하여 얻음이 있으면 의리상(義理上) 진실로 흉할 것이나 정성이 있고 도(道)에 있으면 허물이 없으니, 이는 명철(明哲)한 공(功)이다.
九五는 孚于嘉니 吉하니라.
구오(九五)는 선(善)에 정성스러우니, 길하다.
【傳】 九五居尊得正而中實하니 是其中誠이 在於隨善이니 其吉可知라 嘉는 善也라 自人君至於庶人히 隨道之吉은 唯在隨善而已니 下應二之正中이 爲隨善之義라.
구오(九五)는 존위(尊位)에 거하고 정(正)을 얻었으며 중(中)이 실(實)하니, 이는 그 중성(中誠)이 선(善)을 따름에 있는 것이니, 길함을 알 만하다. 가(嘉)는 선(善)이다. 인군(人君)으로부터 서인(庶人)에 이르기까지 따르는 도(道)의 길(吉)함은 오직 선(善)을 따름에 있을 뿐이니, 아래로 이(二)의 정중(正中)에 응(應)함이 선(善)을 따르는 뜻이 된다.
【本義】 陽剛中正으로 下應中正하니 是信于善也라 占者如是면 其吉宜矣라.
양강(陽剛)·중정(中正)으로 아래로 중정(中正)에 응(應)하니, 이는 선(善)에 진실한 것이다. 점치는 이가 이와 같으면 그 길함이 마땅하다.
象曰 孚于嘉吉은 位正中也일새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선(善)에 정성스러워 길함은 자리가 정중(正中)하기 때문이다.”
【傳】 處正中之位하고 由正中之道하여 孚誠所隨者正中也니 所謂嘉也니 其吉可知라 所孚之嘉는 謂六二也니 隨는 以得中爲善이라 隨之所防者過也니 蓋心所說隨면 則不知其過矣니라.
정중(正中)의 자리에 처하고 정중(正中)의 도(道)를 행하여 부성(孚誠)으로 따르는 바가 정중(正中)이니, 이른바 선(善)이란 것이니, 그 길함을 알 만하다. 정성스러운 바의 선(善)은 육이(六二)를 이르니, 따름은 중(中)을 얻음을 선(善)으로 여긴다. 따름에 있어서 막아야 할 것은 지나침이니, 마음에 기뻐하여 따르면 지나침을 알지 못하게 된다.
上六은 拘係之요 乃從維之니 王用亨于西山이로다.
상육(上六)은 붙잡아 묶어놓고 따라서 동여매니, 왕(王)이 서산(西山)에서 형통(亨通)하게 하였다.
【本義】 王用亨[享]于西山이로다.
【본의】 왕(王)이 서산(西山)에 제향(祭享)하도다
【傳】 上六以柔順而居隨之極하니 極乎隨者也라 拘係之는 謂隨之極이 如拘持縻係之요 乃從維之는 又從而維繫之也니 謂隨之固結如此라 王用亨于西山은 隨之極如是라 昔者太王用此道하여 亨王業于西山하니라 太王이 避狄之難하여 去豳來岐한대 豳人老稚 扶携以隨之를 如歸市하니 蓋其人心之隨 固結如此라 用此故로 能亨盛其王業於西山이라 西山은 岐山也니 周王之業이 蓋興於此라 上居隨極하여 固爲太過나 然在得民[一有心字]之隨와 與隨善之固엔 如此乃爲善也요 施於他則過矣니라.
상육(上六)은 유순(柔順)으로 수(隨)의 극에 거하였으니, 따름에 지극한 것이다. ‘구계지(拘係之)’는 따름의 지극함이 붙잡아 묶어놓는 것과 같이 함이요, ‘내종유지(乃從維之)’는 또 따라서 동여매는 것이니, 따르기를 굳게 맺음이 이와 같음을 이른다. ‘왕용형우서산(王用亨于西山)’은 따름의 지극함이 이와 같은 것이다. 옛날에 태왕(太王)이 이 도(道)를 써서 왕업(王業)을 서산(西山)에서 형통(亨通)하게 하였다. 태왕(太王)이 적(狄)의 난을 피하여 빈(豳)을 버리고 기산(岐山)으로 오자, 빈(豳) 땅의 늙은이와 어린이가 붙들고 잡고 따르기를 시장에 돌아가듯 하였으니, 인심의 따름이 굳게 맺음이 이와 같았다. 이 때문에 그 왕업(王業)을 서산(西山)에서 형통(亨通)하고 창성하게 한 것이다. 서산(西山)은 기산(岐山)이니, 주(周)나라의 왕업(王業)이 여기에서 일어났다. 상육(上六)은 수(隨)의 극(極)에 거하여 진실로 너무 과(過)함이 되나, 백성의 따름을 얻음과 선(善)을 따르기를 굳게 함에 있어서는 이와 같이 하여야 선(善)이 되며, 딴 곳에 시행하면 지나침이 된다.
【本義】 居隨之極하여 隨之固結而不可解者也니 誠意之極이 可通神明이라 故其占爲王用亨于西山하니 亨은 亦當作祭享之享이라 自周而言하면 岐山在西라 凡筮祭山川者得之하고 其誠意如是하면 則吉也라.
수(隨)의 극(極)에 거하여 따르기를 굳게 맺어 풀 수 없는 것이니, 성의(誠意)의 지극함이 신명(神明)을 통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그 점괘는 왕(王)이 서산(西山)에서 제향(祭享)함이 되니, 형(亨)은 마땅히 제향(祭享)의 향자(享字)가 되어야 한다. 주(周)나라의 입장에서 말하면 기산(岐山)은 서쪽에 있다. 무릇 산천(山川)에 제사(祭祀)할 것을 점치는 이가 이 효(爻)를 얻고 그 성의(誠意)가 이와 같으면 길하다.
象曰 拘係之는 上窮也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붙잡아 묶어놓음은 올라가 궁극한 것이다.”
【傳】 隨之固如拘係[一无係字]維持[一无持字]하니 隨道之窮極也라.
따름의 견고함이 붙잡아 묶어놓고 다시 동여맴과 같이 하니, 따름의 도(道)에 궁극한 것이다.
【本義】 窮은 極也라.
궁(窮)은 궁극함이다.

17. 수(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