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관(觀)
【傳】 觀은 序卦에 臨者는 大也니 物大然後可觀이라 故受之以觀이라 하니 觀所以次臨也라 凡觀은 視於物則爲觀이요 爲觀於下則爲觀이니 如樓觀을 謂之觀者는 爲觀於下也라 人君이 上觀天道하고 下觀民俗則爲觀이요 修德行政하여 爲民瞻仰則爲觀이라 風行地上하여 觸萬類는 周觀之象也요 二陽在上하고 四陰在下하여 陽剛居尊하여 爲群下所觀은 仰觀之義也라 在諸爻則唯取觀見하니 隨時爲義也라
관괘(觀卦)는 〈서괘전(序卦傳)〉에 “임(臨)은 큼이니, 사물이 큰 뒤에 볼 만하므로 관괘(觀卦)로 받았다.” 하였으니, 관괘(觀卦)가 이 때문에 임괘(臨卦) 다음이 된 것이다. 무릇 관(觀)은 사물을 보면 보는 것이 되고, 아래에 보여줌이 되면 보여줌이 되니, 누관(樓觀)을 관(觀)이라고 이르는 것은 아래에 보여줌이 되기 때문이다. 인군(人君)이 위로 천도(天道)를 보고 아래로 민속(民俗)을 보면 봄이 되고, 덕(德)을 닦고 정사(政事)를 행하여 백성들이 우러러보는 바가 되면 보여줌이 된다. 바람이 지상(地上)에 행하여 만물을 두루 저촉함은 두루 보는 상(象)이요, 두 양(陽)이 위에 있고 네 음(陰)이 아래에 있어서 양강(陽剛)이 존위(尊位)에 거하여 여러 아랫사람들에게 봄이 됨은 우러러보는 뜻이다. 여러 효(爻)에 있어서는 오직 보는 뜻만을 취하였으니, 때에 따라 뜻을 삼은 것이다.
觀은 盥而不薦이면 有孚하여 顒若하리라
관(觀)은 손만 씻고 제수(祭需)를 올리지 않았을 때처럼 하면 정성을 다하여 우러러 존경하리라.
【본의】 제수를 올리지 않으면 정성이 있어서.
【傳】 予聞之胡翼之先生하니 曰 君子居上하여 爲天下之[一无之字]表儀하여 必極其莊敬이면 則下觀仰而化也라 故爲天下之觀이니 當如宗廟之祭始盥之時요 不可如旣薦之後니 則下民盡其至誠하여 顒然瞻仰之矣라 하니라 盥은 謂祭祀之始에 盥手酌鬱鬯於地하여 求神之時也요 薦은 謂獻腥獻熟之時也라 盥者는 事之始니 人心方盡其精誠하여 嚴肅之至也요 至旣薦之後에 禮數繁縟이면 則人心散하여 而精一이 不若始盥之時矣라 居上者正其表儀하여 以爲下民之觀인댄 當[一作常]莊嚴을 如始盥之初하여 勿使誠意少散하여 如旣薦之後면 則天下之人이 莫不盡其孚誠하여 顒然瞻仰之矣라 顒은 仰望也라.
내가 호익지(胡翼之) 선생(先生)에게 들으니 말씀하기를 “군자(君子)가 위에 거하여 천하(天下)의 의표(儀表)가 되어서 반드시 장경(莊敬)함을 지극히 하면 아랫사람들이 우러러보아 교화(敎化)된다. 그러므로 천하(天下)의 봄이 되는 것이니, 마땅히 종묘(宗廟)의 제사(祭祀)에 처음 손을 씻을 때와 같이 할 것이요, 이미 제수(祭需)를 올린 뒤와 같이 해서는 안 되니, 그러면 하민(下民)들이 지성(至誠)을 다하여 옹연(顒然)히 우러러 볼 것이다.” 하였다. 관(盥)은 제사하는 초기에 손을 씻고 울창주(鬱鬯酒)를 땅에 부어 신(神)을 구하는 때를 이르고, 천(薦)은 날고기를 올리고 익은 고기를 올리는 때를 이른다. 관(盥)은 일의 시작이니 인심(人心)이 막 정성을 다하여 엄숙함이 지극하고, 이미 제수(祭需)를 올린 뒤에 예수(禮數)가 번다함에 이르면 인심(人心)이 흩어져 정일(精一)한 마음이 처음 손을 씻을 때만 못하다. 위에 있는 이가 의표(儀表)를 바루어 하민(下民)의 우러러봄이 될진댄 마땅히 장엄히 하기를 제사에 처음 손을 씻는 초기와 같이 하여, 성의(誠意)가 조금이라도 흩어져 이미 제수(祭需)를 올린 뒤와 같이 하지 말아야 하니, 이렇게 하면 천하(天下) 사람들이 부성(孚誠)을 다하여 옹연(顒然)히 우러르지 않는 이가 없을 것이다. 옹(顒)은 우러러 바라봄이다.
【本義】 觀者는 有以中正示人而爲人所仰也라 九五居上에 四陰仰之하고 又內順外巽하며 而九五以中正示天下하니 所以爲觀이라 盥은 將祭而潔手也요 薦은 奉酒食以祭也라 顒然은 尊敬之貌라 言致其潔淸而不輕自用이면 則其孚信在中而顒然可仰이니 戒占者當如是也라 或曰 有孚顒若은 謂在下之人이 信而仰之也라 此卦는 四陰長而二陽消하니 正爲八月之卦로되 而名卦繫辭는 更取他義하니 亦扶陽抑陰之意라
관(觀)은 중정(中正)함을 남에게 보여주어 남이 우러러보게 되는 것이다. 구오(九五)가 위에 거함에 네 음(陰)이 우러르고, 또 안은 순하고 밖은 공손하며 구오(九五)가 중정(中正)함으로써 천하(天下)에 보여주니, 관(觀)이 되는 까닭이다. 관(盥)은 장차 제사(祭祀) 지내려 하면서 손을 깨끗이 씻는 것이요, 천(薦)은 술과 밥을 받들어 제사하는 것이다. 옹연(顒然)은 존경하는 모양이다. 깨끗함을 지극히 하고 가볍게 스스로 행동하지 않으면 부신(孚信)이 마음속에 있어서 옹연(顒然)히 우러를 만함을 말한 것이니, 점치는 이가 마땅히 이와 같이 해야 한다고 경계한 것이다. 혹자는 말하기를 “‘유부옹약(有孚顒若)’은 아래에 있는 사람이 믿고 우러르는 것이다.”라고 한다. 이 괘(卦)는 네 음(陰)이 자라나고 두 양(陽)이 사라지니 바로 8월의 괘(卦)인데, 괘(卦)를 이름한 것과 말을 단 것은 다시 다른 뜻을 취하였으니, 이 역시 양(陽)을 붙들어주고 음(陰)을 억제하는 뜻이다.
彖曰 大觀으로 在上하여 順而巽하고 中正으로 以觀天下니,
〈단전(彖傳)〉에 말하였다. “큰 볼 것으로 위에 있어 순하고 공손하며 중정(中正)함으로 천하(天下)에 보여주니,
【傳】 五居尊位하여 以剛陽中正之德으로 爲下所觀하여 其德甚大라 故曰大觀在上이라 下坤而上巽하니 是能順而巽也요 五居中正하니 以巽順中正之德으로 爲觀於天下也라
오(五)가 존위(尊位)에 거하여 강양중정(剛陽中正)의 덕(德)으로 아랫사람들이 우러러보게 되어 그 덕(德)이 심히 크다. 그러므로 ‘큰 볼 것으로 위에 있다’고 말한 것이다. 아래는 곤(坤)이고 위는 손(巽)이니 이는 순하고 공손함이며, 오(五)가 중정(中正)에 거하니, 손순중정(巽順中正)의 덕(德)으로 천하(天下)에 보여줌이 되는 것이다.
【本義】 以卦體卦德으로 釋卦名義라.
괘체(卦體)와 괘덕(卦德)으로 괘명(卦名)의 뜻을 해석하였다.
觀盥而不薦有孚顒若은 下觀而化也라.
‘관관이불천유부옹약(觀盥而不薦有孚顒若)’은 아랫사람들이 보고 교화(敎化)되는 것이다.
【傳】 爲觀之道는 嚴敬을 如始盥之時면 則下民至誠瞻仰[一作仰觀]而從化也라 不薦은 謂不使誠意少散也라.
보여줌이 되는 도(道)는 엄하고 공경하기를 제사에 처음 손을 씻을 때와 같이 하면 하민(下民)들이 지성(至誠)으로 우러러보고 따라서 교화(敎化)되는 것이다. 제수를 올리지 않았을 때처럼 한다는 것은 성의(誠意)가 조금도 흩어지지 않게 하는 것을 말한다.
【本義】 釋卦辭라.
괘사(卦辭)를 해석하였다.
觀天之神道而四時不忒하니 聖人이 以神道設敎而天下服矣니라.
하늘의 신도(神道)를 봄에 사시(四時)가 어그러짐이 없으니, 성인(聖人)이 신도(神道)로 가르침을 베풂에 천하(天下)가 복종한다.”
【傳】 天道至神이라 故曰神道라 觀天之運行에 四時无有差忒이면 則見其神妙하니 聖人見天道之神하고 體神道以設敎라 故天下莫不服也라 夫天道至神이라 故運行四時하고 化育萬物하여 无有差忒하니라 至神之道는 莫可名言이요 唯聖人默契하여 體其妙用하여 設爲政敎라 故天下之人이 涵泳其德而不知其功하고 鼓舞其化而莫測其用하여 自然仰觀而戴服이라 故曰以神道設敎而天下服矣라 하니라.
천도(天道)가 지극히 신묘(神妙)하기 때문에 ‘신도(神道)’라고 말한 것이다. 하늘의 운행을 살펴봄에 사시(四時)가 어그러짐이 없으면 그 신묘(神妙)함을 볼 수 있으니, 성인(聖人)이 천도(天道)의 신묘(神妙)함을 보고 신도(神道)를 체행(體行)하여 가르침을 베풀기 때문에 천하(天下)에 복종하지 않는 이가 없는 것이다. 천도(天道)는 지극히 신묘(神妙)하므로 사시(四時)를 운행하고 만물(萬物)을 화육(化育)하여 어그러짐이 없는 것이다. 지극히 신묘(神妙)한 도(道)는 명명(命名)하여 말할 수 없고, 오직 성인(聖人)만이 묵묵히 합하여 그 묘용(妙用)을 체행(體行)하여 정교(政敎)를 베푼다. 그러므로 천하(天下) 사람들이 덕(德)에 무젖어 있으면서도 그 공(功)을 알지 못하고, 교화(敎化)에 고무(鼓舞)되면서도 그 쓰임을 측량하지 못하여 자연히 우러러보고 떠받들며 복종한다. 그러므로 ‘신도(神道)로 가르침을 베풂에 천하(天下)가 복종한다’고 말한 것이다.
【本義】 極言觀之道也라 四時不忒은 天之所以爲觀也요 神道設敎는 聖人之所以爲觀也라.
관(觀)의 도(道)를 극언(極言)하였다. 사시(四時)가 어그러지지 않음은 하늘이 보여주는 것이요, 신도(神道)로 가르침을 베풂은 성인(聖人)이 보여주는 것이다.
象曰 風行地上이 觀이니 先王이 以하여 省方觀民하여 設敎하니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바람이 지상(地上)에 행함이 관(觀)이니, 선왕(先王)이 이로써 지방을 살펴 백성을 관찰하여 가르침을 베푼다.”
【傳】 風行地上하여 周及庶物하니 爲由歷周覽之象이라 故先王體之하여 爲省方之禮하여 以觀民俗而設政敎也라 天子巡省四方하여 觀視民俗하여 設爲政敎하니 如奢則約之以儉하고 儉則示之以禮是也라 省方은 觀民也요 設敎는 爲民觀也라.
바람이 지상(地上)에 행하여 여러 물건에 두루 미치니, 여러 지역을 경유하여 두루 관람하는 상(象)이 된다. 그러므로 선왕(先王)이 이를 체행(體行)하여 지방을 살펴보는 예(禮)를 만들어서 민속(民俗)을 관찰하여 정교(政敎)를 베푸는 것이다. 천자(天子)가 사방을 순행(巡行)하여 민속(民俗)을 살펴서 정교(政敎)를 베푸니, 사치하면 검소함으로 묶고 검소하면 예(禮)를 보여주는 것이 이것이다. ‘성방(省方)’은 백성을 관찰하는 것이요, ‘설교(設敎)’는 백성들의 봄이 되는 것이다.
【本義】 省方以觀民하고 設敎以爲觀이라.
지방을 살펴 백성을 관찰하고 가르침을 베풀어 보여줌이 되는 것이다.
初六은 童觀이니 小人은 无咎요 君子는 吝이리라.
초육(初六)은 동자(童子)의 봄이니, 소인(小人)은 허물이 없고 군자(君子)는 부끄러우리라.
【傳】 六以陰柔之質로 居遠於陽이라 是以[一作其]觀見者淺近하여 如童稚然이라 故曰童觀이라 陽剛中正在上은 聖賢之君也니 近之則見其道德之盛하여 所觀深遠이어늘 初乃遠之하여 所見不明하니 如童蒙之觀也라 小人은 下民也니 所見昏淺하여 不能識君子之道는 乃常分也니 不足謂之過咎어니와 若君子而如是면 則可鄙吝也라.
초육(初六)은 음유(陰柔)한 재질로 거한 자리가 양(陽)과 멀다. 이 때문에 보는 것이 천근하여 어린아이와 같으므로 ‘동관(童觀)’이라 한 것이다. 양강중정(陽剛中正)으로 위에 있음은 성현(聖賢)의 군주(君主)이니, 그와 가까이 있으면 도덕(道德)의 성함을 보아서 보는 바가 깊고 원대할 터인데, 초(初)가 마침내 오(五)와 멀리 있어서 보는 바가 밝지 못하니, 동몽(童蒙)의 봄과 같은 것이다. 소인(小人)은 하민(下民)이니, 보는 바가 어둡고 천근하여 군자(君子)의 도(道)를 알지 못함은 바로 떳떳한 분수이므로 과구(過咎)라고 이를 수 없거니와 만약 군자(君子)이면서 이와 같다면 더럽고 부끄러울 만한 것이다.
【本義】 卦는 以觀示爲義하니 據九五爲主也요 爻는 以觀瞻爲義하니 皆觀乎九五也라 初六은 陰柔在下하여 不能遠見하여 童觀之象이니 小人之道요 君子之羞也라 故其占在小人則无咎요 君子得之則可羞矣라.
괘(卦)는 관시(觀示)로 뜻을 삼았으니 구오(九五)를 근거하여 주장을 삼은 것이요, 효(爻)는 관첨(觀瞻)으로 뜻을 삼았으니 모두 구오(九五)를 보는 것이다. 초육(初六)은 음유(陰柔)로서 아래에 있어 멀리 보지 못하여 동관(童觀)의 상(象)이니, 소인(小人)의 도(道)이고 군자(君子)의 부끄러움이다. 그러므로 그 점이 소인(小人)에게 있어서는 허물이 없고, 군자(君子)가 얻으면 부끄러울 만한 것이다.
象曰 初六童觀은 小人道也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초육동관(初六童觀)’은 소인(小人)의 도(道)이다.”
【傳】 所觀不明하여 如童稚하니 乃小人之分이라 故曰小人道也라.
보는 바가 밝지 못하여 동치(童稚)와 같으니, 이는 바로 소인(小人)의 분수이므로 소인(小人)의 도(道)라 한 것이다.
六二는 觀이니 利女貞하니라.
육이(六二)는 엿봄이니, 여자의 정(貞)함이 이롭다.
【傳】 二應於五하니 觀於五也라 五剛陽中正之道는 非二陰暗柔弱의 所能觀見也라 故但如闚覘之觀耳니 闚覘之觀은 雖少見而不能甚[一作盡]明也라 二旣不能明見剛陽中正之道면 則利如女子之貞하니 雖見之不能甚明이나 而能順從者는 女子之道也니 在女子엔 爲貞也라 二旣不能明見九五之道인댄 能如女子之順從이면 則不失中正하니 乃爲利也라.
이(二)는 오(五)와 응(應)하니, 오(五)를 보는 것이다. 구오(九五)의 강양중정(剛陽中正)한 도(道)는 음암유약(陰暗柔弱)한 육이(六二)가 볼 수 있는 바가 아니다. 그러므로 단지 엿보는 것과 같을 뿐이니 엿봄은 비록 다소 보기는 하나 심히 밝지는 못하다. 육이(六二)가 이미 구오(九五)의 강양중정(剛陽中正)한 도(道)를 밝게 보지 못한다면 여자(女子)의 정(貞)과 같이 함이 이로우니, 비록 봄이 심히 밝지는 못하나 능히 순종(順從)하는 것은 여자(女子)의 도(道)이니, 여자에게 있어서는 바름이 되는 것이다. 육이(六二)가 구오(九五)의 도(道)를 밝게 보지 못할진댄 여자의 순종함과 같이 하면 중정(中正)함을 잃지 않을 것이니, 이것이 바로 이로운 것이다.
【本義】 陰柔居內而觀乎外는 闚觀之象이니 女子之正也라 故其占如此요 丈夫得之則非所利矣라.
음유(陰柔)로 안에 있으면서 밖을 봄은 엿보는 상(象)이니, 여자(女子)의 정도(正道)이다. 그러므로 그 점(占)이 이와 같으며, 장부(丈夫)가 얻으면 이로운 바가 아니다.
象曰 闚觀女貞이 亦可醜也니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규관여정(闚觀女貞)’이 역시 부끄러울 만하다.”
【傳】 君子不能觀見剛陽中正之大道하고 而僅[一有能字]闚覘其彷彿하니 雖能順從이나 乃同女子之貞이니 亦可羞醜也라.
군자(君子)가 강양중정(剛陽中正)한 대도(大道)를 보지 못하고 겨우 그 방불(彷佛)한 것을 엿보니, 비록 순종하나 이는 여자의 정(貞)과 같으므로 역시 부끄럽고 추한 것이다.
【本義】 在丈夫則爲醜也라.
장부(丈夫)에게 있어서는 추악함이 되는 것이다.
六三은 觀我生하여 進退로다.
육삼(六三)은 내가 내는 것을 보아서 나아가고 물러가도다.
【傳】 三은 居非其位나 處順之極하니 能順時以進退者也라 若居當其位면 則无進退之義也라 觀我生은 我之所生은 謂動作施爲出於己者라 觀其所生而隨宜進退하니 所以處雖非正이나 而未至失道也라 隨時進退하여 求不失道라 故无悔咎[一作吝]하니 以能順也일새라.
삼(三)은 거함이 제자리가 아니나 순(順)의 극(極)에 처하니, 때에 순응하여 진퇴(進退)하는 것이다. 만약 거함이 제자리에 마땅하다면 진퇴(進退)의 뜻이 없을 것이다. ‘관아생(觀我生)’은 내가 낸다는 것은 자기에게서 나오는 동작(動作)과 시위(施爲)를 이른다. 내는 바를 보아 마땅함에 따라 진퇴(進退)하니, 이 때문에 처함이 비록 정도(正道)가 아니나 도(道)를 잃음에 이르지 않는 것이다. 때에 따라 진퇴(進退)하여 도(道)를 잃지 않기를 구하므로 후회와 허물이 없으니, 순종하기 때문이다.
【本義】 我生은 我之所行也라 六三이 居下之上하여 可進可退라 故不觀九五而獨觀己所行之通塞하여 以爲進退하니 占者宜自審也라.
‘아생(我生)’은 내가 행하는 바이다. 육삼(六三)이 하괘(下卦)의 위에 거하여 나아갈 수도 있고 물러날 수도 있다. 그러므로 구오(九五)를 보지 않고 홀로 자기가 행하는 바의 통하고 막힘을 보아 진퇴(進退)하는 것이니, 점치는 이가 마땅히 스스로 살펴야 할 것이다.
象曰 觀我生進退하니 未失道也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내가 내는 것을 보아 진퇴(進退)하니, 도(道)를 잃지 않다.”
【傳】 觀己之生而進退하여 以順乎宜라 故未至於失道也라.
자신이 내는 것을 보아 진퇴(進退)하여 마땅함에 따른다. 이 때문에 도(道)를 잃음에 이르지 않는 것이다.
六四는 觀國之光이니 利用賓于王하니라.
육사(六四)는 나라의 빛남을 봄이니, 왕(王)에게 손님이 됨이 이롭다.
【傳】 觀莫明於近하니 五以剛陽中正으로 居尊位하니 聖賢之君也어늘 四切近之하여 觀見其道라 故云觀國之光이니 觀見國之盛德光輝也라 不指君之身而云國者는 在人君而言하면 豈止觀其行一身乎아 當觀天下之政化니 則人君之道德을 可見矣라 四雖陰柔나 而巽體居正하고 切近於五하니 觀見而能順從者也라 利用賓于王은 夫聖明在上이면 則懷抱才德之人이 皆願進於朝廷하여 輔戴之以康濟天下라 四旣觀見人君之德과 國家之治 光華盛美하니 所宜賓于王朝하여 效其智力하여 上輔於君하여 以施澤天下라 故云利用賓于王也라 古者有賢德之人이면 則人君賓禮之라 故士之仕進於王朝를 則謂之賓이라.
봄은 가까이 보는 것보다 더 밝음이 없다. 구오(九五)가 강양중정(剛陽中正)으로 존위(尊位)에 거하였으니 성현(聖賢)의 군주(君主)인데, 육사(六四)가 구오(九五)와 매우 가까이 있어 그 도(道)를 보기 때문에 ‘나라의 빛남을 본다’고 말한 것이니, 나라의 성한 덕(德)이 빛남을 보는 것이다. 군주(君主)의 몸을 가리키지 않고 나라라고 말한 것은 인군(人君)의 입장에서 말하면 어찌 다만 한 몸에 행함을 볼 뿐이겠는가. 마땅히 천하(天下)의 정치(政治)와 교화(敎化)를 보아야 할 것이니, 이렇게 하면 인군(人君)의 도덕(道德)을 볼 수 있다. 육사(六四)가 비록 음유(陰柔)이나 손체(巽體)로 정위(正位)에 거하고 구오(九五)와 매우 가까이 있으니, 보고서 순종하는 이이다. ‘이용빈우왕(利用賓于王)’은 성명(聖明)한 군주가 위에 있으면 재주와 덕(德)을 품은 이들이 다 조정에 나아가 보필(輔弼)하고 떠받들어 천하(天下)를 편안히 구제하기를 원한다. 육사(六四)가 이미 인군(人君)의 덕(德)과 국가(國家)의 정치(政治)가 빛나고 성대하고 아름다움을 보았으니, 마땅히 왕조(王朝)에 손님이 되어 그 지혜와 힘을 바쳐서 위로 군주(君主)를 보필하여 천하(天下)에 은택을 베풀어야 한다. 그러므로 ‘왕조(王朝)에 손님이 되는 것이 이롭다’고 말한 것이다. 옛날 현덕(賢德)의 사람이 있으면 인군(人君)이 손님으로 예우하였으므로 선비가 왕조(王朝)에 벼슬함을 빈(賓)이라 이른 것이다.
【本義】 六四最近於五라 故有此象하니 其占이 爲利於朝覲仕進也라.
육사(六四)가 오(五)와 가장 가까이 있기 때문에 이러한 상(象)이 있으니, 그 점(占)이 조근(朝覲)하고 사진(仕進)함에 이롭다.
象曰 觀國之光은 尙賓也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나라의 빛남을 봄은 손님이 되려는 뜻을 숭상하는 것이다.”
【傳】 君子懷負才業하여 志在乎兼善天下라 然有卷懷自守者하니 蓋時无明君하여 莫能用其道하여 不得已也니 豈君子之志哉아 故孟子曰 中天下而立하여 定四海之民을 君子樂之라 하시니라 旣觀見國之盛德光華인댄 古人所謂非常之遇也[一无也字]니 所以志願登進王朝하여 以行其道라 故云觀國之光은 尙賓也라 尙은 謂尙志니 其志意願慕賓于王朝也라.
군자(君子)는 재주와 사업을 품고서 뜻이 천하(天下)를 겸하여 선(善)하게 함에 있다. 그러나 거두고 품어 스스로 지키는 이가 있으니, 이는 당시에 명군(明君)이 없어 그 도(道)를 쓰지 못하여 부득이해서 한 것이니, 어찌 군자(君子)의 뜻이겠는가. 그러므로 맹자(孟子)께서 “천하(天下)의 한 중앙에 서서 사해(四海)의 백성을 안정시킴을 군자(君子)가 즐거워한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미 나라의 성덕(盛德)이 빛남을 보았다면 옛사람의 이른바 ‘비상한 만남’이니, 이 때문에 뜻이 왕조(王朝)에 올라 나아가서 그 도(道)를 행함을 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라의 빛남을 봄은 손님이 되려는 뜻을 숭상하는 것이다’고 말한 것이다. 상(尙)은 뜻을 숭상함을 이르니, 그 뜻이 왕조(王朝)에 손님이 되기를 원하고 사모하는 것이다.
九五는 觀我生호되 君子면 无咎리라.
구오(九五)는 내가 내는 것을 보되 군자(君子)다우면 허물이 없으리라.
【本義】 觀我生이니,
【본의】 내가 내는 것을 볼 것이니,
【傳】 九五居人君之位하니 時之治亂과 俗之美惡이 係乎己而已라 觀己之生하여 若天下之俗이 皆君子矣면 則是己之所爲政化善也니 乃无咎矣요 若天下之俗이 未合君子之道면 則是己之所爲政治未善이니 不[一作未]能免於咎也라.
구오(九五)는 인군(人君)의 지위에 거하였으니, 때의 다스려지고 혼란함과 풍속의 좋고 나쁨이 자기에게 달려 있을 뿐이다. 자기가 내는 것을 보되 만약 천하(天下)의 풍속이 모두 군자(君子)답다면 이는 자기가 행한 정치(政治)와 교화(敎化)가 선(善)한 것이니 바로 허물이 없을 것이요, 만약 천하(天下)의 풍속이 군자(君子)의 도(道)에 합하지 못하다면 이는 자기가 행한 정치(政治)가 선(善)하지 못한 것이니 허물을 면치 못할 것이다.
【本義】 九五陽剛中正으로 以居尊位하여 其下四陰이 仰而觀之하니 君子之象也라 故戒居此位, 得此占者는 當觀己所行이니 必其陽剛中正이 亦如是焉이면 則得无咎也라.
구오(九五)가 양강중정(陽剛中正)으로 존위(尊位)에 거하여 아래에 있는 네 음(陰)이 우러러보니, 군자(君子)의 상(象)이다. 그러므로 이 지위에 거하고 이 점괘를 얻은 이는 마땅히 자기가 행한 바를 보아야 할 것이니, 반드시 양강중정(陽剛中正)함이 역시 이와 같다면 허물이 없을 수 있다고 경계한 것이다.
象曰 觀我生은 觀民也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내가 내는 것을 본다는 것은 백성을 봄이다.”
【傳】 我生은 出於己者니 人君이 欲觀己之施爲善否인댄 當觀於民이니 民俗善則政化善也라 王弼云 觀民以察己之道是也라.
‘아생(我生)’은 자기에게서 나온 것이니, 인군(人君)이 자기가 시행한 것이 선(善)한가 선(善)하지 않은가를 보고자 할진댄 마땅히 백성을 관찰하여야 하니, 백성의 풍속(風俗)이 선(善)하면 정치(政治)와 교화(敎化)가 선(善)한 것이다. 왕필(王弼)이 “백성을 보아 자기의 도(道)를 살핀다.”고 말한 것이 이것이다.
【本義】 此는 夫子以義言之하사 明人君觀己所行에 不但一身之得失이요 又當觀民德之善否하여 以自省察也라.
이는 부자(夫子)가 의리(義理)로써 말씀하여 인군(人君)이 자기가 행한 바를 봄에 단지 일신(一身)의 득실(得失) 뿐만 아니라, 또 마땅히 백성의 덕(德)이 선(善)한가 선(善)하지 않은가를 보아 스스로 성찰(省察)해야 함을 밝힌 것이다.
上九는 觀其生하되 君子면 无咎리라.
상구(上九)는 그 내는 것을 관찰하되 군자(君子)다우면 허물이 없으리라.
【本義】 觀其生이니,
【본의】 그 내는 것을 관찰할 것이니,
【傳】 上九以陽剛之德으로 處於上하여 爲下之所觀而不當位하니 是賢人君子不在於位而道德爲天下所觀仰者也라 觀其生은 觀其所生也니 謂出於己者德業行義也라 旣爲天下所觀仰이라 故自觀其所生하여 若皆君子矣면 則无過咎也어니와 苟未君子면 則何以使人觀仰矜式이리오 是其咎也라.
상구(上九)는 강양(剛陽)한 덕(德)으로 위에 처하여 아랫사람들에게 우러러보는 바가 되었으나 지위를 담당하지 않으니, 이는 현인(賢人)과 군자(君子)가 지위에 있지 않으면서 도덕(道德)이 천하(天下)에 우러러봄을 받는 이이다. ‘관기생(觀其生)’은 그 내는 바를 관찰함이니, 자기에게서 나온 덕업(德業)과 행의(行義)를 이른다. 이미 천하(天下)에 우러러보는 바가 되었으므로 스스로 내는 바를 관찰하되 만약 모두 군자(君子)답다면 과구(過咎)가 없을 것이나, 만일 군자(君子)답지 않다면 어떻게 사람들에게 우러러보고 공경(恭敬)하여 본받게 하겠는가. 이것은 그 허물인 것이다.
【本義】 上九陽剛으로 居尊位之上하여 雖不當事任이나 而亦爲下所觀이라 故其戒辭 略與五同호되 但以我爲其하여 小有主賓之異耳라.
상구(上九)가 양강(陽剛)으로 존위(尊位)의 위에 거하여 비록 일과 임무를 맡지 않았으나 역시 아랫사람들에게 우러러보는 바가 되었다. 그러므로 그 경계하는 말이 대략 구오(九五)와 같으나 다만 ‘나〔我〕’를 ‘그〔其〕’라고 하여 주인과 손님의 차이가 약간 있을 뿐이다.
象曰 觀其生은 志未平也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관기생(觀其生)’은 뜻이 평안하지 않은 것이다.”
【傳】 雖不在位나 然以人觀其德하여 用爲儀法이라 故當自愼省하여 觀其所生하여 常不失於君子면 則人不失所望而化之矣리니 不可以不在於位故로 安然放意하여 无所事也라 是其志意 未得安也라 故云志未平也라 하니 平은 謂安寧也라.
비록 지위에 있지 않으나 사람들이 그 덕(德)을 관찰하여 의표(儀表)와 법(法)으로 삼는다. 그러므로 마땅히 스스로 삼가고 살펴서 그 내는 바를 보되, 항상 군자(君子)다움을 잃지 않는다면 사람들이 소망을 잃지 아니하여 교화(敎化)될 것이니, 지위에 있지 않다는 이유로 안연(安然)히 방심(放心)하여 일하는 바가 없어서는 안 된다. 이는 그 뜻이 편안할 수 없는 것이므로 ‘뜻이 평안하지 않다’고 말하였으니, 평(平)은 안녕(安寧)함을 이른다.
【本義】 志未平은 言雖不得位나 未可忘戒懼也라.
뜻이 편안하지 않다는 것은 비록 지위는 얻지 못하였으나 계구(戒懼)를 잊어서는 안 됨을 말한 것이다.

20. 관(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