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박(剝)
【傳】 剝은 序卦에 賁者는 飾也니 致飾然後亨則盡矣라 故受之以剝이라 하니라 夫物至於文飾이면 亨之極也니 極則必反이라 故賁終則剝也라 卦五陰而一陽이요 陰始自下生하여 漸長至於盛極하여 群陰이 消剝於陽이라 故爲剝也라 以二體言之하면 山附於地하니 山高起地上이어늘 而反附著於地하니 頹剝之象也라.
박괘(剝卦)는 〈서괘전(序卦傳)〉에 “비(賁)는 꾸밈이니, 꾸밈을 지극히 한 뒤에 형통(亨通)하면 다한다. 그러므로 박괘(剝卦)로 받았다.” 하였다. 사물이 문식(文飾)에 이르면 형통(亨通)함이 지극한 것이니, 지극하면 반드시 뒤집어지므로 비(賁)가 끝나면 박(剝)이 되는 것이다. 괘(卦)가 다섯 음(陰)에 하나의 양(陽)이 있고, 음(陰)이 처음 아래로부터 생겨서 점점 자라 성극(盛極)함에 이르러서 여러 음(陰)이 양(陽)을 사라지게 한다. 그러므로 박(剝)이라 한 것이다. 두 체(體)로 말하면 산(山)이 땅〔地〕에 붙어 있으니, 산(山)은 땅 위에 높이 솟아 있는 것인데 도리어 땅에 붙어 있으니, 무너지는 상(象)이다.
剝은 不利有攸往하니라.
박(剝)은 가는 바를 둠이 이롭지 않다.
【傳】 剝者는 群陰長盛하여 消剝於[一无於字]陽之時니 衆小人이 剝喪於[一无於字]君子라 故君子不利有所往이요 唯當巽言晦迹하여 隨時消息하여 以免小人之害也라.
박(剝)은 여러 음(陰)이 자라나고 성하여 양(陽)을 사라지게 하는 때이니, 여러 소인(小人)이 군자(君子)를 박해한다. 그러므로 군자(君子)가 가는 바를 둠이 이롭지 않으며, 오직 말을 공손히 하고 자취를 숨겨서 때에 따라 진퇴(進退)하여 소인(小人)의 해를 면하여야 한다.
【本義】 剝은 落也라 五陰在下而方生하고 一陽在上而將盡하여 陰盛長而陽消落하니 九月之卦也라 陰盛陽衰하니 小人壯而君子病이요 又內坤而外艮하니 有順時而止之象이라 故占得之者不可有所往也라.
박(剝)은 떨어짐이다. 다섯 음(陰)이 아래에 있으면서 막 자라나고 하나의 양(陽)이 위에 있으면서 장차 다하려고 하여 음(陰)은 성하게 자라나고 양(陽)은 사라져 떨어지니, 9월의 괘(卦)이다. 음(陰)이 성하고 양(陽)이 쇠하니 소인(小人)이 건장하고 군자(君子)가 병든 것이며, 또 안은 곤(坤)이고 밖은 간(艮)이니 때에 순히 하여 그치는 상(象)이 있다. 그러므로 점쳐서 이 괘(卦)를 얻은 이는 가는 바를 두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彖曰 剝은 剝也니 柔變剛也니,
〈단전(彖傳)〉에 말하였다. “박(剝)은 박락(剝落)이니, 유(柔)가 강(剛)을 변화시킨 것이니,
【本義】 以卦體로 釋卦名義라 言柔進于陽하여 變剛爲柔也라.
괘체(卦體)로 괘명(卦名)의 뜻을 해석하였다. 유(柔)가 양(陽)에게 나아가 강(剛)을 변화시켜 유(柔)로 만듦을 말한 것이다.
不利有攸往은 小人이 長也일새라.
가는 바를 둠이 이롭지 않음은 소인(小人)이 자라나기 때문이다.
【傳】 剝剝也는 謂剝落也요 柔變剛也는 柔長而剛變也라 夏至에 一陰生而漸長하니 一陰長則一陽消하여 至於[一无於字]建戌이면 則極而成剝하니 是陰柔變剛陽也라 陰은 小人之道어늘 方長盛而剝消於[一作剛]陽이라 故君子不利有所往也라
‘박박야(剝剝也)’는 박락(剝落)을 이르고, ‘유변강야(柔變剛也)’는 유(柔)가 자라나 강(剛)이 변한 것이다. 하지(夏至)에 하나의 음(陰)이 생겨나서 점점 자라니, 하나의 음(陰)이 자라면 하나의 양(陽)이 소멸(消滅)되어 9월에 이르면 지극하여 박괘(剝卦)를 이루니, 이는 음유(陰柔)가 강양(剛陽)을 변하게 한 것이다. 음(陰)은 소인(小人)의 도(道)인데, 막 장성(長盛)하여 양(陽)을 소박(消剝)하므로 군자(君子)가 가는 바를 둠이 이롭지 않은 것이다.
順而止之는 觀象也니 君子尙消息盈虛 天行也라.
순히 하여 멈춤은 상(象)을 보고서 하는 것이니, 군자(君子)가 소식(消息)과 영허(盈虛)를 숭상함이 천행(天行)이다.”
【傳】 君子當剝之時하여 知不可有所往하고 順時而止는 乃能觀剝之象也라 卦有順止之象하니 乃處剝之道니 君子當觀而體之라 君子尙消息盈虛天行也는 君子存心消息盈虛之理而能順之라야 乃合乎天行也라 理는 有消衰, 有息長하고 有盈滿, 有虛損하니 順之則吉하고 逆之則凶하나니 君子隨時敦尙은 所以事天也라.
군자(君子)가 박(剝)의 때를 당하여 나아가서는 안 됨을 알고 때를 순히 하여 멈춤은 박(剝)의 상(象)을 본 것이다. 괘(卦)가 순히 하여 멈추는 상(象)이 있으니, 이는 박(剝)에 대처하는 도(道)이므로 군자(君子)가 마땅히 이를 보고 체행(體行)하여야 한다. ‘군자상소식영허천행야(君子尙消息盈虛天行也)’는 군자(君子)가 소식(消息)과 영허(盈虛)의 이치에 마음을 두어 순히 하여야 천행(天行)에 합하는 것이다. 이(理)는 소쇠(消衰)와 식장(息長)이 있고 영만(盈滿)과 허손(虛損)이 있는데, 이를 순히 하면 길(吉)하고 거스르면 흉(凶)하니, 군자(君子)가 때에 따라 도타이 숭상함은 하늘을 섬기는 것이다.
【本義】 以卦體卦德으로 釋卦辭라.
괘체(卦體)와 괘덕(卦德)으로 괘사(卦辭)를 해석하였다.
象曰 山附於地剝이니 上이 以하여 厚下하여 安宅하나니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산(山)이 땅에 붙어 있는 것이 박(剝)이니, 윗사람이 이로써 아래를 후(厚)하게 하여 집을 편안히 한다.”
【傳】 艮重於坤은 山附於地也니 山高起於地而反附著(착)於地는 圮剝之象也라 上은 謂人君與居人上者니 觀剝之象而厚固其下하여 以安其居也라 下者는 上之本이니 未有基本固而能剝者也라 故上[一作山]之剝은 必自下하나니 下剝則上危矣라 爲人上者 知理之如是면 則安養人民하여 以厚其本하니 乃所以安其居也라 書曰 民惟邦本이니 本固邦寧이라 하니라.
간(艮)이 곤(坤)에 겹쳐 있음은 산(山)이 땅에 붙어 있는 것이니, 산(山)은 땅에서 높이 솟아 있는데 도리어 땅에 붙어 있음은 무너지는 상(象)이다. 상(上)은 인군(人君)이나 또는 백성의 위에 있는 이를 이르니, 박괘(剝卦)의 상(象)을 보고서 아래를 후하게 하고 견고히 하여 그 거함을 편안히 하는 것이다. 아래는 위의 근본이니, 기본(基本)이 튼튼하고서 무너지는 경우는 있지 않다. 그러므로 위가 무너짐은 반드시 아래로부터 시작되니, 아래가 무너지면 위가 위태롭다. 백성의 위에 있는 이가 이치가 이와 같음을 알면 인민(人民)을 편안히 길러서 그 근본을 후하게 할 것이니, 이것이 바로 거함을 편안히 하는 것이다. 《서경(書經)》에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니, 근본이 튼튼하여야 나라가 편안하다.” 하였다.
初六은 剝牀以足이니 蔑貞이라 凶하도다,
초육(初六)은 상(牀)을 깎되 발로써 함이니, 정도(貞道)를 멸하여 흉하도다.
【本義】 蔑貞이면 凶하리라.
【본의】정도(貞道)를 멸하면 흉하리라.
【傳】 陰之剝陽이 自下而上이라 以牀爲象者는 取身之所處也니 自下而剝하여 漸至於身也라 剝牀以足은 剝牀之足也니 剝始自下라 故爲剝足이라 陰自下進하여 漸消蔑於[一无於字]貞正하니 凶之道也라 蔑은 无也니 謂消亡於正道也[一作消亡正道也 一作消亡於正也]라 陰剝陽, 柔變剛은 是邪侵正, 小人消君子니 其凶可知라,
음(陰)이 양(陽)을 사라지게 함은 아래로부터 올라간다. 상(牀)을 상(象)으로 삼은 것은 몸이 처한 곳을 취한 것이니, 아래로부터 깎아서 점점 몸에까지 이르는 것이다. ‘박상이족(剝牀以足)’은 상(牀)의 발을 깎음이니, 깎음이 아래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에 발을 깎음이 되는 것이다. 음(陰)이 아래로부터 나아가서 점점 정정(貞正)을 소멸(消蔑)하니, 흉한 도(道)이다. 멸(蔑)은 없앰이니, 정도(正道)를 없앰을 이른다. 음(陰)이 양(陽)을 소멸(消蔑)시키고 유(柔)가 강(剛)을 변화시킴은 사(邪)가 정도(正道)를 침해하고 소인(小人)이 군자(君子)를 사라지게 하는 것이니, 그 흉함을 알 수 있다.
【本義】 剝自下起하여 滅正則凶이라 故其占如此하니라 蔑은 滅也라.
깎임이 아래로부터 일어나서 정도(正道)를 멸하면 흉하다. 그러므로 그 점이 이와 같은 것이다. 멸(蔑)은 멸함이다.
象曰 剝牀以足은 以滅下也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박상이족(剝牀以足)’은 아래에서 멸하는 것이다.”
【傳】 取牀足爲象者는 以陰侵沒陽於下也라 滅은 沒也니 侵滅正道하여 自下而上也라.
상(牀)의 발을 취하여 상(象)을 삼은 것은 음(陰)이 아래에서 양(陽)을 침몰(侵沒)시키기 때문이다. 멸(滅)은 없앰이니, 정도(正道)를 침멸(侵滅)하여 아래로부터 올라가는 것이다.
六二는 剝牀以辨이니 蔑貞이라 凶토다.
육이(六二)는 상(牀)을 깎되 변(辨)에 이름이니, 정도(正道)를 멸(蔑)하여 흉하도다.
【本義】 蔑貞이면,
【본의】 정도(正道)를 멸하면,
【傳】 辨은 分隔上下者니 牀之幹也라 陰漸進而上하여 剝至於辨이면 愈蔑於正也니 凶益甚矣라.
변(辨)은 위아래를 나누어 막는 것이니, 상(牀)의 근간(根幹)이다. 음(陰)이 점점 나아가 올라가서 깎음이 변(辨)에 이르면 더욱 정도(正道)를 멸(蔑)하니, 흉함이 더욱 심하다.
【本義】 辨은 牀幹也니 進而上矣라.
변(辨)은 상(牀)의 근간(根幹)이니, 나아가 위로 올라간 것이다.
象曰 剝牀以辨은 未有與也일새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박상이변(剝牀以辨)’은 응여(應與)가 없기 때문이다.”
【傳】 陰之侵剝於[一作剛]陽하여 得以益盛하여 至於剝辨者는 以陽未有應與故也라 小人侵剝君子에 若君子有與면 則可以勝小人하여 不能爲害矣어늘 唯其无與일새 所以被蔑而凶이라 當消剝之時하여 而无徒與면 豈能自存也리오 言未有與는 剝之未盛엔 有與면 猶可勝也니 示人之意深矣로다.
음(陰)이 양(陽)을 침박(侵剝)하여 더욱 성해져서 변(辨)을 깎음에 이른 것은 양(陽)이 응여(應與)가 없기 때문이다. 소인(小人)이 군자(君子)를 침박(侵剝)함에 만약 군자(君子)가 응여(應與)가 있다면 소인(小人)을 이겨서 해칠 수가 없는데, 오직 응여(應與)가 없기 때문에 멸함을 당하여 흉한 것이다. 소박(消剝)의 때를 당하여 도와주는 무리가 없다면 어찌 스스로 보존하겠는가. ‘미유여(未有與)’라고 말한 것은 박(剝)이 성하지 않을 때에는 응여(應與)가 있으면 오히려 이겨낼 수 있기 때문이니, 사람에게 보여준 뜻이 깊다.
【本義】 言未大盛이라.
크게 성하지 않음을 말한 것이다.
六三은 剝之无咎니라.
육삼(六三)은 박(剝)의 때에 허물이 없다.
【傳】 衆陰剝陽之時而三獨居剛應剛하니 與上下之陰異矣라 志從於正하니 在剝之時하여 爲无咎者也라 三之爲는 可謂善矣어늘 不言吉은 何也오 曰 方群陰剝陽하고 衆小人害君子하여 三雖從正이나 其勢孤弱하고 所應이 在无位之地하니 於斯時也에 難乎免矣라 安得吉也리오 其義爲无咎耳니 言其无咎는 所以勸也라.
여러 음(陰)이 양(陽)을 침멸(侵蔑)할 때에 삼(三)이 홀로 강위(剛位)에 거하고 강(剛)과 응(應)하니 상하(上下)의 음(陰)과는 다르다. 뜻이 정도(正道)를 따르니, 박(剝)의 때에 있어서 무구(无咎)함이 된다. “삼(三)의 행위는 선(善)하다고 이를 만한데 길(吉)하다고 말하지 않음은 어째서인가?” “여러 음(陰)이 양(陽)을 소멸(消蔑)하고 여러 소인(小人)이 군자(君子)를 해칠 때를 당하여, 삼(三)이 비록 정도(正道)를 따르나 형세가 고약(孤弱)하고 응(應)하는 바가 지위가 없는 처지에 있으니, 이 때에 화를 면하기 어렵다. 어찌 길(吉)하겠는가. 그 의(義)가 무구(无咎)가 될 뿐이니, 무구(无咎)라고 말함은 선(善)을 권면(勸勉)한 것이다.”
【本義】 衆陰方剝陽而己獨應之하여 去其黨而從正하니 无咎之道也라 占者如是則得无咎리라
여러 음(陰)이 양(陽)을 소멸(消蔑)하고 있는데 자기만이 홀로 양(陽)과 응하여 그 무리를 버리고 정도(正道)를 따르니, 무구(无咎)의 도(道)이다. 점치는 자가 이와 같이 하면 무구(无咎)를 얻을 것이다.
象曰 剝之无咎는 失上下也일새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박지무구(剝之无咎)’는 상하(上下)를 잃기 때문이다.”
【傳】 三居剝而无咎者는 其所處與上下諸陰不同하니 是與其同類相失이니 於處剝之道에 爲无咎라 如東漢之呂强이 是也라.
삼(三)이 박(剝)의 때에 거하면서도 무구(无咎)인 것은 처한 바가 상하(上下)의 여러 음(陰)과 같지 않기 때문이니, 이는 그 동류(同類)와 서로 잃는 것이니, 박(剝)을 대처하는 도(道)에 있어 무구(无咎)가 된다. 동한(東漢)의 여강(呂强)과 같은 경우가 이것이다.
【本義】 上下는 謂四陰이라.
상하(上下)는 네 음(陰)을 이른다.
六四는 剝牀以膚니 凶하니라.
육사(六四)는 상(牀)을 깎아 살갗에 미침이니, 흉하다.
【傳】 始剝於牀足하여 漸至於膚하니 膚는 身之外也라 將滅其身矣니 其凶可知라 陰長已盛하고 陽剝已甚하여 貞道已消라 故更不言蔑貞하고 直言凶也하니라.
처음에 상(牀)의 발을 깎아 점점 살갗에까지 이르니, 살갗은 몸의 밖이다. 장차 그 몸을 멸할 것이니, 흉함을 알 수 있다. 음(陰)의 자람이 이미 성하고 양(陽)의 깎임이 이미 심하여 정도(貞道)가 이미 소멸(消蔑)하였으므로 다시 ‘멸정(蔑貞)’이라 말하지 않고 곧바로 흉하다고 말한 것이다.
【本義】 陰禍切身이라 故不復言蔑貞而直言凶也라.
음(陰)의 화(禍)가 몸에 절실하므로 다시 ‘멸정(蔑貞)’이라 말하지 않고 곧바로 흉하다고 말한 것이다.
象曰 剝牀以膚는 切近災也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박상이부(剝牀以膚)’는 재앙에 매우 가까운 것이다.”
【傳】 五爲君位어늘 剝已及四하니 在人則剝其膚矣라 剝及其膚하여 身垂於亡矣니 切近於災禍也라.
오(五)는 군주(君主)의 자리인데 박(剝)이 이미 사(四)에 미쳤으니, 사람에게 있어서는 살갗을 깎는 것이다. 깎음이 살갗에 미치어 몸이 거의 망함에 이르렀으니, 이는 재화(災禍)에 매우 가까운 것이다.
六五는 貫魚하여 以宮人寵이면 无不利리라.
육오(六五)는 물고기를 꿰듯이 하여 궁인(宮人)이 총애를 받듯이 하면 이롭지 않음이 없으리라.
【本義】 以宮人寵이니,
【본의】 궁인(宮人)의 총애로써 함이니,
【傳】 剝及君位면 剝之極也니 其凶可知라 故更不言剝而別設義하여 以開小人遷善之門이라 五는 群陰之主也요 魚는 陰物이라 故以爲象이라 五能使群陰으로 順序를 如貫魚然하여 反獲寵愛於在上之陽을 如宮人이면 則无所不利也라 宮人은 宮中之人이니 妻妾侍使也라 以陰言하고 且取獲寵[一作親]愛之義하니 以一陽在上하여 衆陰有順從之道라 故發此義라
깎임이 군주(君主)의 자리에 미치면 박(剝)이 지극한 것이니, 그 흉함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다시 깎임을 말하지 않고 별도로 뜻을 내세워서 소인(小人)에게 개과천선(改過遷善)하는 문을 열어준 것이다. 오(五)는 여러 음(陰)의 주체이며 어(魚)는 음물(陰物)이므로 상(象)을 삼은 것이다. 오(五)가 여러 음(陰)에게 순서를 따르기를 물고기를 꿰듯이 하게 하여, 도리어 위에 있는 양(陽)에게 총애를 얻기를 궁인(宮人)처럼 하게 한다면 이롭지 않음이 없는 것이다. 궁인(宮人)은 궁중의 사람이니, 처첩(妻妾)과 모시고 심부름하는 이이다. 음(陰)으로 말하였고 또 총애를 얻는 뜻을 취하였으니, 하나의 양(陽)이 위에 있어 여러 음(陰)이 순종하는 도(道)가 있으므로 이 뜻을 말한 것이다.
【本義】 魚는 陰物이요 宮人은 陰之美而受制於陽者也라 五爲衆陰之長하니 當率其類하여 受制於陽이라 故有此象하니 而占者如是면 則无不利也라.
어(魚)는 음물(陰物)이며, 궁인(宮人)은 음(陰)의 아름다운 것으로 양(陽)에게 제재를 받는 이이다. 오(五)가 여러 음(陰)의 우두머리가 되었으니, 마땅히 그 동류(同類)들을 거느리고 양(陽)에게 제재를 받아야 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상(象)이 있으니, 점치는 이가 이렇게 하면 이롭지 않음이 없을 것이다.
象曰 以宮人寵이면 終无尤也리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궁인(宮人)이 총애를 받듯이 하면 끝내 허물이 없으리라.”
【傳】 群陰이 消[一无消字]剝於[一无於字]陽하여 以至於極하니 六五若能長率群陰하고 騈首順序하여 反獲寵愛於陽이면 則終无過尤也라 於剝之將終에 復發此義하니 聖人勸遷善之意 深切之至也라.
여러 음(陰)이 양(陽)을 소박(消剝)하여 극(極)에 이르렀으니, 육오(六五)가 만약 우두머리가 되어 여러 음(陰)을 거느리고 머리를 나란히 하여 순서를 따라서 도리어 양(陽)에게 총애를 받는다면 끝내 허물이 없을 것이다. 박(剝)이 장차 끝나려 할 때에 다시 이 뜻을 발하였으니, 성인(聖人)이 천선(遷善)하기를 권면한 뜻이 지극히 깊고 간절하다.
上九는 碩果不食이니 君子는 得輿하고 小人은 剝廬리라.
상구(上九)는 큰 과일이 먹히지 않음이니, 군자(君子)는 수레를 얻고 소인(小人)은 집을 허물리라.
【傳】 諸陽이 消剝已盡하고 獨有上九一爻尙存하니 如碩大之果不見食하여 將見復生之理하니 上九亦[一作一 一作已]變則純陰矣라 然陽无可盡之理하니 變於上則生於下하여 无間可容息也라 聖人發明此理하여 以見陽與君子之道不可亡也하시니라 或曰 剝盡則爲純坤하니 豈復有陽乎아 曰 以卦配月이면 則坤當十月하니 以氣消息言이면 則陽剝[一有盡字]爲坤이요 陽[一有復字]來爲復하니[一有然字] 陽未嘗盡也라 剝盡於上이면 則復生於下矣라 故十月을 謂之陽月이니 恐疑其无陽也라 陰亦然호되 聖人不言耳라 陰道盛極之時엔 其亂可知니 亂極則自當思治라 故衆心願載於君子하니 君子得輿也니 詩匪風下泉이 所以居變風之終也라 理旣如是하고 在卦에 亦衆陰宗陽하니 爲共載之象이라 小人剝廬는 若小人則當剝之極하여 剝其廬矣니 无所容其身也라 更不論爻之陰陽하고 但言小人處剝極則及其廬矣니 廬는 取在上之象이라 或曰 陰陽之消[一作交]必待盡而後復生於下어늘 此在上에 便有復生之義는 何也오 夬之上六을 何以言終有凶고 曰 上九居剝之極하여 止有一陽하니 陽无可盡之理라 故明其有復生之義하여 見君子之道不可亡也요 夬者는 陽消陰이니 陰은 小人之道也라 故但言其消亡耳니 何用更言却有復生之理乎아.
여러 양(陽)이 소박(消剝)하여 이미 다하고 홀로 상구(上九) 한 효(爻)만이 아직 남아 있으니, 석대(碩大)한 과실이 먹힘을 당하지 않아 다시 생겨날 이치를 보는 것과 같다. 상구(上九)도 변하면 순음(純陰)이 되나 양(陽)은 다할 리가 없으니, 위에서 변하면 아래에서 생겨나 쉼을 용납할 틈이 없다. 성인(聖人)이 이 이치를 발명하여 양(陽)과 군자(君子)의 도(道)가 없을 수 없음을 나타내었다. 혹자는 말하기를 “박(剝)이 다하면 순곤(純坤)이 되니, 어찌 다시 양(陽)이 있겠는가?” 하기에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괘(卦)를 달에 배합하면 곤(坤)은 10월에 해당하니, 기운(氣運)의 소식(消息)으로 말하면 양(陽)이 깎이면 곤괘(坤卦)가 되고 양(陽)이 오면 복괘(復卦)가 되어 양(陽)이 일찍이 다하지 않는다. 위에서 사라져 다하면 다시 아래에서 생기므로 10월을 ‘양월(陽月)’이라 하니, 이는 양(陽)이 없다고 의심할까 두려워해서이다. 음(陰) 역시 그러하나 성인(聖人)이 말하지 않았을 뿐이다.” 음도(陰道)가 지극히 성할 때에는 그 혼란함을 알 수 있으니, 혼란함이 극에 달하면 스스로 마땅히 다스릴 것을 생각한다. 그러므로 무리들의 마음이 군자(君子)를 실어주기를 원하니, 군자(君子)가 수레를 얻는 것이다. 《시경(詩經)》의 〈비풍(匪風)〉과 〈하천(下泉)〉이 이 때문에 변풍(變風)의 마지막에 있는 것이다. 이치가 이미 이와 같고 괘(卦)에 있어서도 여러 음(陰)이 양(陽)을 높이니, 함께 실어주는 상(象)이 된다. ‘소인박려(小人剝廬)’는 만약 소인(小人)이면 박(剝)의 극(極)을 당하여 그 집을 허물게 되니, 몸을 용납할 곳이 없다. 다시 효(爻)의 음양(陰陽)을 논하지 않고 다만 소인(小人)이 박(剝)의 극(極)에 처하면 깎음이 그 집에 미치게 됨을 말한 것이니, 여(廬)는 위에 있는 상(象)을 취한 것이다. 혹자는 말하기를 “음양(陰陽)의 사라짐은 반드시 다하기를 기다린 뒤에 다시 아래에서 생기는데, 여기에서는 위에 있는데도 곧 다시 생기는 의(義)가 있음은 어째서인가? 쾌괘(夬卦)의 상육(上六)은 어찌하여 마침내 흉함이 있다고 말하였는가?” 하기에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상구(上九)가 박(剝)의 극(極)에 거하여 다만 한 양(陽)이 있는데, 양(陽)은 다 없어질 이(理)가 없으므로 다시 생기는 의(義)가 있음을 밝혀 군자(君子)의 도(道)가 없을 수 없음을 나타낸 것이다. 쾌(夬)는 양(陽)이 음(陰)을 사라지게 한 것이니, 음(陰)은 소인(小人)의 도(道)이므로 다만 그 소망(消亡)함을 말했을 뿐이다. 어찌 다시 생기는 이치가 있음을 다시 말하겠는가.”
【本義】 一陽在上하여 剝未盡而能復生하니 君子在上이면 則爲衆陰所載요 小人居之면 則剝極於上하여 自失所覆而无復碩果得輿之象矣라 取象旣明이요 而君子小人其占不同하니 聖人之情을 益可見矣라.
한 양(陽)이 위에 있어 박(剝)이 다하지 않았는데 능히 다시 낳으니, 군자(君子)가 위에 있으면 여러 음(陰)에게 실려지는 바가 되고, 소인(小人)이 거하면 깎음이 위에 지극하여 스스로 덮어주는 바를 잃어서 다시는 ‘석과득여(碩果得輿)’의 상(象)이 없게 된다. 상(象)을 취함이 이미 분명하고 군자(君子)와 소인(小人)의 점(占)이 같지 않으니, 성인(聖人)의 심정을 더욱 볼 수 있다.
象曰 君子得輿는 民所載也요 小人剝廬는 終不可用也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군자(君子)가 수레를 얻음은 백성에게 실려지는 바이며, 소인(小人)이 집을 허무는 것은 끝내 쓸 수 없는 것이다.”
【傳】 正道消剝旣極이면 則人復思治라 故陽剛君子爲民所承載也요 若小人處剝之極이면 則小人之窮耳니 終不可用也라 非謂九爲小人이요 但言剝極之時엔 小人如是也라.
정도(正道)의 소박(消剝)이 이미 극에 달하면 사람들이 다시 다스려짐을 생각한다. 그러므로 양강(陽剛)한 군자(君子)가 백성들에게 떠받들리고 실려지는 바가 되는 것이다, 만약 소인(小人)이 박(剝)의 극(極)에 처하면 소인(小人)의 궁극이니, 끝내 쓸 수 없는 것이다. 구(九)가 소인(小人)이라고 말한 것이 아니요, 다만 박(剝)이 지극할 때엔 소인(小人)이 이와 같음을 말한 것이다.

23. 박(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