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이(頤)
【傳】 頤는 序卦에 物畜然後可養이라 故受之以頤라 하니라 夫物旣畜聚면 則必有以養之니 无養則不能存息이니 頤所以次大畜也라 卦上艮下震하여 上下二陽爻가 中含四陰하고 上止而下動하며 外實而中虛하니 人頤頷之象也라 頤는 養也니 人口는 所以飮食하여 養人之身이라 故名爲頤라 聖人設卦하여 推養之義 大至於天地養育萬物하고 聖人養賢以及萬民하며 與人之養生, 養形, 養德, 養人이 皆頤養之道也라 動息節宣은 以養生也요 飮食衣服은 以養形也요 威儀行義는 以養德也요 推己及物은 以養人也라.
이괘(頤卦)는 〈서괘전(序卦傳)〉에 “사물이 모인 뒤에 기를 수 있으므로 이괘(頤卦)로 받았다.” 하였다. 사물이 이미 모이면 반드시 길러줌이 있어야 하니, 길러줌이 없으면 생존하고 번식할 수 없으니, 이괘( 卦)가 이 때문에 대축괘(大畜卦)의 다음이 된 것이다. 괘(卦)가 위는 간(艮)이고 아래는 진(震)이어서 위아래의 두 양효(陽爻)가 가운데에 네 음(陰)을 포함하고 있고, 위는 멈추고〔艮〕 아래는 동하며〔震〕 밖은 충실하고 안은 비었으니, 사람의 턱의 상(象)이다. 이(頤)는 길러줌이니, 사람의 입은 마시고 먹어서 사람의 몸을 기르는 것이므로 이(頤)라 이름하였다. 성인(聖人)이 괘(卦)를 만들어서 기르는 뜻을 미룸이 크게는 천지(天地)가 만물(萬物)을 양육(養育)하고 성인(聖人)이 현자(賢者)를 길러 만민(萬民)에 미치는 데에까지 이르며, 또는 사람이 생명을 기르고 형체를 기르며 덕(德)을 기르고 사람을 길러줌이 모두 이양( 養)의 도(道)인 것이다. 동식(動息)을 절제하고 폄은 생명을 기름이요, 음식과 의복은 형체를 기름이요, 위의(威儀)와 행의(行義)는 덕(德)을 기름이요, 자기 마음을 미루어 남에게 미침은 사람을 길러주는 것이다.
頤는 貞하면 吉하니 觀頤하며 自求口實이니라.
이(頤)는 정(貞)하면 길(吉)하니, 길러주며 스스로 음식을 찾는 것을 살펴보아야 한다.
【傳】 頤之道以正則吉也라 人之養身, 養德, 養人, 養於人을 皆以正道則吉也라 天地造化가 養育萬物하여 各得其宜者亦正而已矣라 觀頤自求口實은 觀人之所頤와 與其自求口實之道면 則善惡吉凶을 可見矣라.
이(頤)의 도(道)는 정도(正道)로 하면 길(吉)하다. 사람이 몸을 기르고 덕(德)을 기르며 남을 길러주고 남에게 길러지는 것을 모두 정도(正道)로 하면 길(吉)하다. 천지(天地)의 조화(造化)가 만물(萬物)을 양육해서 각각 마땅함을 얻게 하는 것 역시 정도(正道)일 뿐이다. ‘관이자구구실(觀頤自求口實)’은 사람이 길러주는 바와 스스로 구실(口實)을 찾는 도(道)를 보면 선악(善惡)과 길흉(吉凶)을 볼 수 있는 것이다.
【本義】 頤는 口旁也니 口食物以自養이라 故爲養義라 爲卦上下二陽이 內含四陰하여 外實內虛하고 上止下動하니 爲頤之象, 養之義也라 貞吉者는 占者得正則吉이라 觀頤는 謂觀其所養之道요 自求口實은 謂觀其所以養身之術이니 皆得正則吉也라.
이(頤)는 입가이니, 입은 음식물을 먹어서 스스로 기르는 것이므로 길러주는 뜻이 된다. 괘(卦)됨이 위아래의 두 양(陽)이 안에 네 음(陰)을 포함하여 밖은 충실하고 안은 비었으며, 위는 멈추고 아래는 동하니, 턱의 상(象)과 기르는 뜻이 된다. ‘정길(貞吉)’은 점치는 이가 정도(正道)를 얻으면 길(吉)한 것이다. ‘관이(觀頤)’는 길러주는 바의 도(道)를 보는 것이요, ‘자구구실(自求口實)’은 자신을 기르는 바의 방법을 보는 것이니, 두 가지 모두 정도(正道)를 얻으면 길(吉)하다.
彖曰 頤貞吉은 養正則吉也니 觀頤는 觀其所養也요 自求口實은 觀其自養也라.
〈단전(彖傳)〉에 말하였다. “‘이정길(頤貞吉)’은 기름이 바르면 길(吉)한 것이니, ‘관이(觀頤)’는 길러주는 바를 관찰하는 것이요, ‘자구구실(自求口實)’은 스스로 기름을 관찰하는 것이다.
【傳】 貞吉은 所養者正則吉也라 所養은 謂所養之人과 與養之之道요 自求口實은 謂其自求養身之道니 皆以正則吉也라.
‘정길(貞吉)’은 기르는 바가 바르면 길(吉)한 것이다. 기르는 바는 길러주는 바의 사람과 기르는 방도를 이르고, ‘자구구실(自求口實)’은 스스로 몸을 기르는 것을 구하는 방도를 이르니, 모두 정도(正道)로써 하면 길(吉)하다.
【本義】 釋卦辭라.
괘사(卦辭)를 해석하였다.
天地養萬物하면 聖人이 養賢하여 以及萬民하나니 頤之時大矣哉라.
천지(天地)가 만물(萬物)을 기르면 성인(聖人)이 현자(賢者)를 길러 만민(萬民)에게 미치게 하니, 이(頤)의 때가 크다.”
【傳】 聖人이 極言頤之道而贊其大라 天地之道則養育萬物이요 養育萬物之道는 正而已矣라 聖人則養賢才하여 與之共天位하고 使之食天祿하여 俾施澤於天下하니 養賢以及萬民也니 養賢은 所以養萬民也라 夫天地之中, 品物之衆이 非養則不生이니 聖人裁成天地之道하고 輔相天地之宜하여 以養天下하여 至於鳥獸草木히 皆有養之之政하여 其道配天地라 故夫子推頤之道하사 贊天地與聖人之功曰 頤之時大矣哉라 하시니라 或云義, 或云用, 或止云時는 以其大者也니 萬物之生與養이 時爲大라 故云時라.
성인(聖人)이 이(頤)의 도(道)를 극언(極言)하고 그 큼을 찬미하였다. 천지(天地)의 도(道)는 만물(萬物)을 양육하고, 만물(萬物)을 양육하는 도(道)는 정도(正道)일 뿐이다. 성인(聖人)은 현자(賢者)와 재주있는 이를 길러 더불어 천위(天位)를 함께 하고 그가 천록(天祿)을 먹게 하여 천하(天下)에 은택(恩澤)을 베풀게 하니, 현자(賢者)를 길러 만민(萬民)에게 미치게 하는 것이니, 현자(賢者)를 기름은 만민(萬民)을 기르는 것이다. 천지(天地)의 가운데에 품물(品物)의 무리가 길러줌이 아니면 살지 못하니, 성인(聖人)이 천지(天地)의 도(道)를 재성(裁成)하고 천지(天地)의 마땅함을 보상(輔相)하여 천하(天下)를 길러서 조수(鳥獸)와 초목(草木)에 이르기까지 모두 기르는 정사(政事)가 있어 그 도(道)가 천지(天地)에 배합(配合)한다. 그러므로 부자(夫子)가 기르는 도(道)를 미루어 천지(天地)와 성인(聖人)의 공(功)을 찬미하기를 “이(頤)의 때가 크다.”고 하신 것이다. 혹은 의(義)라 말하고 혹은 용(用)이라 말하고 혹은 다만 때〔時〕라고만 말한 것은 그 큰 것을 가지고 말한 것이니, 만물(萬物)을 낳음과 길러줌은 때가 크기 때문에 때라고 말한 것이다.
【本義】 極言養道而贊之라.
기르는 도(道)를 극언(極言)하고 찬미한 것이다.
象曰 山下有雷頤니 君子以하여 愼言語하며 節飮食하나니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산(山) 아래에 우레가 있음이 이(頤)이니, 군자가 보고서 언어(言語)를 삼가며 음식(飮食)을 절제한다.”
【傳】 以二體言之하면 山下有雷하니 雷震於山下에 山之生物이 皆動其根荄 하고 發其萌芽하여 爲養之象이요 以上下之義言之하면 艮止而震動하니 上止下動은 頤頷之象[一有也字]이요 以卦形言之하면 上下二陽이 中含[一无含字]四陰하니 外實中虛는 頤口之象이니 口는 所以養身也라 故君子觀其象하여 以養其身하여 愼言語以養其德하고 節飮食以養其體라 不唯就口取養[一无養字]義라 事之至近而所係至大者 莫過於言語飮食也라 在身爲言語요 於天下則凡命令政敎出於身者皆是니 愼之則必當而无失이며 在身爲飮食이요 於天下則凡貨資財用養於人者皆是니 節之則適宜而无傷이라 推養之道하면[一有則字] 養德, 養天下 莫不然也라.
두 체(體)로 말하면 산(山) 아래에 우레가 있으니, 우레가 산(山) 아래에서 진동함에 산(山)에서 자라는 물건이 모두 뿌리가 움직이고 싹이 돋아나와 길러주는 상(象)이 되며, 상하괘(上下卦)의 뜻으로 말하면 간(艮)은 멈추고 진(震)은 동하니 위는 멈추고 아래는 움직임은 턱의 상(象)이며, 괘(卦)의 형체로 말하면 위아래 두 양(陽)이 가운데에 네 음(陰)을 포함하고 있으니, 밖은 충실하고 안이 빈 것은 턱과 입의 상(象)이니, 입은 몸을 기르는 것이다. 그러므로 군자가 이 상(象)을 보고서 몸을 길러서 언어(言語)를 삼가 덕(德)을 기르고 음식을 절제하여 육체를 기르는 것이다. 다만 입에 나아가 길러주는 뜻을 취하였을 뿐만 아니라, 일 중에 지극히 가깝고 관계되는 바가 지극히 큰 것은 언어(言語)와 음식(飮食)보다 더한 것이 없다. 몸에 있어서는 언어(言語)가 되고, 천하(天下)에 있어서는 모든 명령과 정교(政敎)로 몸에서 나오는 것이 모두 해당되니 삼가면 반드시 마땅하여 실수가 없을 것이며, 몸에 있어서는 음식이 되고 천하(天下)에 있어서는 모든 화자(貨資)와 재용(財用)으로 사람을 길러주는 것이 모두 해당되니 절제하면 적당하여 상함이 없다. 기르는 도(道)를 미루면 덕(德)을 기르고 천하(天下)를 기름이 그렇지 않음이 없는 것이다.
【本義】 二者는 養德養身之切務라.
두 가지는 덕(德)을 기르고 몸을 기름에 간절한 일이다.
初九는 舍爾靈龜하고 觀我하여 朶頤니 凶하니라.
초구(初九)는 너의 신령스런 거북을 버리고 나를 보고서 턱을 늘어뜨리니, 흉하다.
【傳】 蒙之初六은 蒙者也니 爻乃主發蒙而言하고 頤之初九도 亦假外而言하니라 爾는 謂初也라 舍爾之靈龜하고 乃觀我而朶頤는 我는 對爾而設이라 初之所以朶頤者는 四也라 然非四謂之也요 假設之辭爾라 九는 陽體剛明하여 其才智足以養正者也라 龜能咽息不食하니 靈龜는 喩其明智而可以不求養於外也라 才雖如是나 然以陽居動體而在頤之時하니 求頤는 人所欲也라 上應於四하여 不能自守하고 志在上行하니 說所欲而朶頤者也라 心旣動이면 則其自失必矣니 迷欲而失己하고 以陽而從陰이면 則何所不至리오 是以凶也라 朶頤는 爲朶動其頤頷이니 人見食而欲之면 則動頤垂涎이라 故以爲象하니라.
몽괘(蒙卦)의 초육(初六)은 몽매한 것이니, 효사(爻辭)에는 발몽(發蒙)을 위주로 하여 말하였고, 이괘(頤卦)의 초구(初九) 역시 밖을 빌어 말하였다. 이(爾)는 초(初)를 이른다. 너의 영구(靈龜)를 버리고 나를 보고서 턱을 늘어뜨린다는 것의 나는 너〔爾〕를 상대하여 가설(假設)한 것이다. 초(初)가 턱을 늘어뜨리는 까닭은 사(四) 때문이다. 그러나 사(四)가 그렇다고 말한 것이 아니요, 가설(假設)한 말일 뿐이다. 구(九)는 양체(陽體)이고 강명(剛明)이어서 재주와 지혜가 기르기를 바르게 할 수 있는 것이다. 거북은 목구멍으로 숨만 쉬고 먹지 않을 수 있으니, 신령스러운 거북은 밝고 지혜로워 밖에 길러주기를 구하지 않음을 비유한 것이다. 재주가 비록 이와 같으나 양(陽)으로서 동(動)의 체(體)에 거하고 이(頤)의 때에 있으니, 길러주기를 구함은 사람이 바라는 바이다. 위로 사(四)에 응(應)하여 스스로 지키지 못하고 뜻이 위로 감에 있으니, 하고자 하는 바를 좋아하여 턱을 늘어뜨리고 있는 것이다. 마음이 이미 움직이면 스스로 잃을 것이 틀림없으니, 욕심에 어두워 자기 지조를 잃고 양(陽)으로서 음(陰)을 따른다면 무슨 짓인들 하지 않겠는가. 이 때문에 흉한 것이다. ‘타이(朶頤)’는 턱을 늘어뜨리고 움직이는 것이니, 사람이 음식을 보고 먹고 싶어 하면 턱을 움직이고 침을 흘리므로 상(象)을 삼은 것이다.
【本義】 靈龜는 不食之物이라 朶는 垂也니 朶 는 欲食之貌라 初九陽剛在下하여 足以不食이어늘 乃上應六四之陰而動於欲하니 凶之道也라 故其象占如此하니라.
신령스런 거북은 먹지 않고 사는 물건이다. 타(朶)는 늘어뜨림이니, ‘타이(朶 )’는 먹고 싶어 하는 모양이다. 초구(初九)는 양강(陽剛)으로 아래에 있어서 먹지 않고 살 수 있는데 마침내 위로 육사(六四)의 음(陰)에 응(應)하여 욕심에 동요되니, 흉한 도(道)이다. 그러므로 그 상(象)과 점이 이와 같은 것이다.
象曰 觀我朶頤하니 亦不足貴也로다.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나를 보고서 턱을 늘어뜨리니, 또한 귀하게 여길 만하지 못하다.”
【傳】 九는 動體니 朶頤는 謂其說陰而志動이라 旣爲欲所動이면 則雖有剛健明智之才라도 終必自失이라 故其才亦不足貴也라 人之貴乎剛者는 爲其能立而不屈於欲也요 貴乎明者는 爲其能照而不失於正也니 旣惑所欲而失其正이면 何剛明之有리오 爲可賤也라.
구(九)는 동체(動體)이니, 턱을 늘어뜨림은 음(陰)을 좋아하여 마음이 동함을 이른다. 이미 욕심에 동요되었다면 비록 강건(剛健)하고 명지(明智)한 재주가 있더라도 끝내 반드시 스스로 잃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 재주가 역시 귀하게 여길 만하지 못한 것이다. 사람이 강(剛)함을 귀하게 여기는 까닭은 능히 서서 욕심에 굽히지 않기 때문이요, 밝음을 귀하게 여기는 까닭은 능히 비추어 바름을 잃지 않기 때문이다. 이미 하고자 하는 바에 혹하여 바름을 잃었다면 무슨 강명(剛明)함이 있겠는가. 천하게 여길 만한 것이다.
六二는 顚頤라 拂經이니 于丘에 頤하여 征하면 凶하리라.
육이(六二)는 전도(顚倒)되어 길러주기를 구하므로 경도(經道)에 위배되니, 언덕에게 길러주기를 구하여 가면 흉하리라.
【本義】 顚頤면 拂經이요 于丘頤면 征하여 凶하리라.
【본의】 전도(顚倒)되어 길러주기를 구하면 경도(經道)에 위배되고, 언덕에 길러주기를 구하면 가서 흉하리라.
【傳】 女不能自處하여 必從男하고 陰不能獨立하여 必從陽하나니 二陰柔로 不能自養하여 待養於人者也라 天子養天下하고 諸侯養一國하며 臣食君上之祿하고 民賴司牧之養은 皆以上養下니 理之正也라 二旣不能自養하니 必求養於剛陽이로되 若反下求於初則爲顚倒라 故云顚頤니 顚則拂違經常하여 不可行也라 若求養於丘면 則往必有凶하니 丘는 在外而高之物이니 謂上九也라 卦止二陽하니 旣不可顚頤于初요 若求頤于上九하여 往則有凶이라 在頤之時하여 相應則相養者也어늘 上非其應而往求養이면 非道妄動이라 是以凶也라 顚頤則拂經하여 不獲其養爾요 妄求於上하여 往則得凶也라 今有人이 才不足以自養이요 見在上者勢力足以養人하고 非其族類어늘 妄往求之하면 取辱得凶이 必矣라 六二中正하니 在他卦엔 多吉而凶은 何也오 曰時然也라 陰柔로 旣不足以自養하고 初上二爻 皆非其與라 故往求則悖理而得凶也라.
여자는 스스로 살지 못하여 반드시 남자를 따르고, 음(陰)은 독립하지 못하여 반드시 양(陽)을 따르니, 이(二)는 음유(陰柔)로서 스스로 기르지 못하여 남에게 길러주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천자(天子)가 천하(天下)를 기르고 제후(諸侯)가 한 나라를 기르며, 신하(臣下)가 군상(君上)의 녹(祿)을 먹고 백성(百姓)이 사목(司牧)의 기름에 의뢰함은 모두 위로서 아래를 길러주는 것이니, 바른 이치이다. 이(二)는 스스로 기르지 못하니, 반드시 강양(剛陽)에게 길러지기를 구해야 할 것이나, 만약 도리어 아래로 초구(初九)에게 구하면 전도(顚倒)가 되므로 ‘전이(顚頤)’라 이른 것이니, 전도(顚倒)되면 경상(經常)의 도(道)에 위배되어 행할 수가 없다. 만약 언덕에게 길러지기를 구한다면 감에 반드시 흉함이 있을 것이니, 구(丘)는 밖에 있으면서 높은 물건이므로 상구(上九)를 이른다. 괘(卦)는 다만 두 양효(陽爻) 뿐이니, 이미 전도(顚倒)되어 초구(初九)에게 길러지기를 바라도 안 되며, 만약 상구(上九)에게 길러지기를 구하여 가면 흉함이 있을 것이다. 이(頤)의 때에 있어서는 서로 응(應)하면 서로 길러주는 것이나 상(上)은 응(應)이 아닌데 가서 길러지기를 구한다면 도(道)가 아니고 망령되이 동하는 것이므로 흉하다. 전도(顚倒)되어 길러지기를 구하면 경도(經道)에 위배되어 기름을 얻지 못하고, 망령되이 위에 구하여 가면 흉함을 얻는 것이다. 지금 어떤 사람이 자기 재주가 스스로 기를 수 없고, 위에 있는 이의 세력이 남을 길러줄 수 있음을 보고는 족류(族類)가 아닌데도 망령되이 가서 구한다면 욕을 취하고 흉함을 얻음이 필연적이다. “육이(六二)는 중정(中正)하니, 다른 괘(卦)에 있어서는 길(吉)함이 많은데 여기서는 흉함은 어째서인가?” “때가 그러하기 때문이다. 음유(陰柔)로서 이미 스스로 기르지 못하고, 초구(初九)와 상구(上九) 두 효(爻)가 다 응여(應與)가 아니므로 가서 구하면 이치를 어겨 흉함을 얻는 것이다.”
【本義】 求養於初면 則顚倒而違於常理요 求養於上이면 則往而得凶이라 丘는 土之高者니 上之象也라.
초구(初九)에게 길러지기를 구하면 전도(顚倒)되어 상리(常理)에 위배되고, 상구(上九)에게 길러지기를 구하면 가서 흉함을 얻는다. 구(丘)는 흙이 높은 것이니, 상구(上九)의 상(象)이다.
象曰 六二征凶은 行이 失類也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육이(六二)가 가면 흉한 것은 감이 족류(族類)를 잃었기 때문이다.”
【傳】 征而從上則凶者는 非其類故也라 往求而失其類면 得凶宜矣라 行은 往也라.
가서 상(上)을 따르면 흉한 것은 족류(族類)가 아니기 때문이다. 가서 구하되 족류(族類)를 잃는다면 흉함을 얻음이 당연하다. 행(行)은 감이다.
【本義】 初上이 皆非其類也라.
초구(初九)와 상구(上九)가 모두 족류(族類)가 아니다.
六三은 拂頤貞이라 凶하여 十年勿用이라 无攸利하니라.
육삼(六三)은 기름의 정도(正道)에 위배되는지라 흉하여 10년이 되어도 쓰지 못하니, 이로운 바가 없다.
【本義】 拂頤면 貞이라도 凶하여,
【본의】 기름에 위배되면 바르더라도 흉하여,
【傳】 頤之道는 唯正則吉이라 三以陰柔之質而處[一有又字]不中正하고 又在動之極하니 是柔邪不正而動者也라 其養如此면 拂違於頤之正道라 是以凶也라 得頤之正이면 則所養皆吉하여 求養養人則合於義요 自養則成其德이어늘 三乃拂違正道라 故戒以十年勿用이라 十은 數之終이니 謂終不可用이니 无所往而利也라.
기르는 도(道)는 오직 바르게 하면 길(吉)하다. 삼(三)은 음유(陰柔)의 자질(資質)로 처함이 중정(中正)하지 못하고 또 동(動)의 극(極)에 있으니, 이는 유사(柔邪)로 바르지 못하면서 동(動)하는 것이다. 그 기름이 이와 같으면 기름의 정도(正道)에 위배되기 때문에 흉한 것이다. 기름의 정도(正道)를 얻으면 기르는 바가 모두 길(吉)하여, 남에게 길러지기를 구하거나 남을 길러주면 의(義)에 합하고, 스스로 기르면 그 덕(德)을 이룰 수 있는데, 삼(三)은 마침내 정도(正道)에 위배되기 때문에 10년이 되어도 쓰지 말라고 경계한 것이다. 십(十)은 수(數)의 마지막으로 끝내 쓸 수 없음을 말한 것이니, 가는 바마다 이로움이 없다.
【本義】 陰柔不中正하여 以處動極하니 拂於頤矣라 旣拂於頤면 雖正이나 亦凶이라 故其象占如此하니라.
음유(陰柔)로 중정(中正)하지 못하면서 동(動)의 극(極)에 처하였으니, 기름에 위배된다. 이미 기름에 위배되었으면 비록 바르더라도 역시 흉하다. 그러므로 그 상(象)과 점(占)이 이와 같은 것이다.
象曰 十年勿用은 道大悖也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10년이 되어도 쓰지 못한다는 것은 도(道)가 크게 어그러졌기 때문이다.”
【傳】 所以戒終不可用은 以其所由之道 大悖義理也일새라.
끝내 쓸 수 없다고 경계한 까닭은 행하는 바의 도(道)가 의리(義理)에 크게 어그러졌기 때문이다.
六四는 顚頤나 吉하니 虎視耽耽하며 其欲逐逐하면 无咎리라.
육사(六四)는 전도(顚倒)되어 길러주기를 구하나 길(吉)하니, 범이 상대를 탐탐(耽耽)히 노려보듯이 하며 그 하고자함이 쫓고 쫓아 계속되면 허물이 없으리라.
【傳】 四在人上하니 大臣之位어늘 六以陰居之하니 陰柔不足以自養이온 況養天下乎아 初九以剛陽居下하니 在下之賢也어늘 與四爲應하고 四又柔順而正하니 是能順於初하여 賴初之養也라 以上養下則爲順이어늘 今反求下之養하니 顚倒也라 故曰顚頤라 然己不勝其任에 求在下之賢而順從之하여 以濟其事면 則天下得其養하고 而己无曠敗之咎라 故爲吉也라 夫居上位者 必有[一作其]才德威望하여 爲下民所尊畏면 則事行而衆心服從이요 若或下易其上이면 則政出而人違하고 刑施而怨起하여 輕於陵犯하니 亂之由也라 六四雖能順從剛陽하여 不廢厥職이나 然質本陰柔하여 賴人以濟하니 人之所輕이라 故必養其威嚴하여 耽耽然如虎視면 則能重其體貌하여 下不敢易라 又從於人者는 必有常이니 若間或无繼면 則其政敗矣라 其欲은 謂所須用者니 必逐逐相繼而不乏이면 則其事可濟요 若取於人而无繼면 則困窮矣라 旣有威嚴하고 又所施不窮이라 故能无咎也라.
사(四)는 사람의 위에 있으니, 대신(大臣)의 자리인데 육사(六四)가 음(陰)으로 여기에 처하였으니, 음유(陰柔)로서 제자신도 기르지 못하는데 하물며 천하(天下)를 기르겠는가. 초구(初九)는 강양(剛陽)으로 아래에 처하였으니 아래에 있는 현자(賢者)인데, 사(四)와 응(應)이 되고 사(四)가 또 유순하고 바르니, 이는 초(初)에게 순종(順從)하여 초(初)의 길러줌에 의뢰하는 것이다. 위에서 아래를 길러주면 순함이 되는데 이제 도리어 아랫사람에게 길러지기를 구하니, 이는 전도(顚倒)된 것이다. 그러므로 ‘전이(顚頤)’라 한 것이다. 그러나 자기가 임무를 감당하지 못함에 아래에 있는 현자(賢者)를 구하여 순종해서 그 일을 이룬다면 천하(天下)가 길러짐을 얻고 자신은 임무를 버리거나 실패하는 허물이 없으므로 길(吉)함이 된다. 윗자리에 처한 이가 반드시 재덕(才德)과 위망(威望)이 있어서 하민(下民)들에게 존경과 두려움을 받는다면 일이 행해져서 사람들의 마음이 복종할 것이요, 만약 혹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함부로 여기면 정사(政事)가 나옴에 백성들이 어기고 형벌이 베풀어짐에 원망이 일어나서 능멸하고 범하기를 가볍게 여길 것이니, 난(亂)이 일어나는 이유이다. 육사(六四)가 비록 강양(剛陽)에게 순종하여 그 직책을 폐하지 않으나 자질이 본래 음유(陰柔)여서 사람에게 의뢰하여 이루니, 사람들이 경멸하는 바이다. 그러므로 반드시 위엄을 길러서 탐탐(耽耽)히 범이 노려보듯이 한다면 그 체모(體貌)를 중히 하여 아랫사람들이 감히 함부로 대하지 못할 것이다. 또 남을 따르는 이는 반드시 항상함이 있어야 하니, 만약 혹 계속하지 못하면 정사(政事)가 무너진다. ‘기욕(其欲)’은 필요하여 쓰는 것이니, 반드시 쫓고 쫓아 서로 계속되고 다하지 않으면 일이 이루어질 것이요, 만약 남에게 취하되 계속되지 못하면 곤궁해질 것이다. 이미 위엄이 있고 또 베푸는 바가 다하지 않으므로 허물이 없는 것이다.
二顚頤則拂經이어늘 四則吉은 何也오 曰 二는 在上而反求養於下하니 下非其應類라 故爲拂經이요 四則居上位하여 以貴下賤하여 使在[一无在字]下之賢으로 由己以行其道하여 上下之志가 相應而[一有澤字]施於民하니 何吉如之리오 自三以下는 養口體者也요 四以上은 養德義者也라 以君而資養於臣하고 以上位而賴養於下는 皆養德也라.
“이(二)는 전도(顚倒)되어 길러주기를 구하면 경도(經道)에 위배되는데 사(四)는 길(吉)함은 어째서인가?” “이(二)는 위에 있으면서 도리어 아래에게 길러지기를 구하니, 아래가 응류(應類)가 아니기 때문에 경도(經道)에 위배되는 것이요, 사(四)는 윗자리에 거하여 귀한 신분으로 천한 이에게 낮추어 아래에 있는 현자(賢者)가 자기로 말미암아 그 도(道)를 행하게 해서 상하(上下)의 뜻이 서로 응(應)하여 백성에게 베풀어지니, 어떤 길(吉)함이 이만 하겠는가.”
삼(三)으로부터 이하는 구체(口體)를 기르는 이이며, 사(四) 이상은 덕의(德義)를 기르는 이이다. 군주(君主)로서 신하(臣下)에게 기름을 의뢰하고, 윗자리에 있으면서 아래에게 기름을 의뢰함은 모두 덕(德)을 기르는 것이다.
【本義】 柔居上而得正하고 所應又正而賴其養하여 以施於下라 故雖顚而吉이라 虎視耽耽은 下而專也요 其欲逐逐은 求而繼也니 又能如是則无咎矣라.
유(柔)가 위에 거하여 바름을 얻고 응(應)하는 바가 또 바르며 그 기름을 의뢰하여 아래에 베풀기 때문에 비록 전도(顚倒)되나 길(吉)한 것이다. ‘호시탐탐(虎視眈眈)’은 아래에다가 전일(專一)함이요, ‘기욕축축(其欲逐逐)’은 구하기를 계속함이니, 또 이와 같이 하면 허물이 없을 것이다.
象曰 顚頤之吉은 上施光也일새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전이(顚頤)의 길(吉)함은 위의 베풂이 빛나기 때문이다.”
【傳】 顚倒求養而所以吉者는 蓋得剛陽之應하여 以濟其事하고 致己居上之德施하여 光明被于天下하니 吉孰大焉이리오.
전도(顚倒)되어 길러지기를 구하나 길(吉)한 까닭은 강양(剛陽)의 응(應)을 얻어서 그 일을 이루고 지위에 거한 자신의 덕시(德施)를 이루어 광명(光明)이 천하(天下)에 입혀지기 때문이니, 길(吉)함이 무엇이 이보다 크겠는가.
六五는 拂經이나 居貞하면 吉하려니와 不可涉大川이니라.
육오(六五)는 경도(經道)에 위배되나 정고(貞固)함에 거하면 길(吉)하거니와 대천(大川)을 건너서는 안 된다.
【傳】 六五는 頤之時에 居君位하니 養天下者也라 然其陰柔之質로 才不足以養天下하고 上有剛陽之賢이라 故順從之하여 賴其養己以濟天下라 君者는 養人者也어늘 反賴人之養하니 是違拂於經常이라 旣以己之不足而順從於賢師傅하니 上은 師傅之位也니 必居守貞固하여 篤於委信이면 則能輔翼其身하여 澤及天下라 故吉也라 陰柔之質로 无貞剛之性이라 故戒以能居貞則吉이요 以陰柔之才로 雖倚賴剛賢이나 能持循於平時요 不可處艱難變故之際라 故云不可涉大川也라 以成王之才로 不至甚柔弱也로되 當管蔡之亂하여 幾不保於周公이온 況其下者乎아 故書曰 王亦未敢誚公이라하니 賴二公하여 得終信이라 故艱險[一作難]之際는 非剛明之主면 不可恃也요 不得已而濟艱險者則有矣라 發此義者는 所以深戒於爲君也요 於上九則據爲臣致身盡忠之道言이라 故不同也라.
육오(六五)는 이(頤)의 때에 군위(君位)에 거하였으니, 천하(天下)를 기르는 이이다. 그러나 음유(陰柔)한 자질로 재주가 천하(天下)를 기를 수 없고, 위에 강양(剛陽)의 현자(賢者)가 있으므로 그에게 순종하여 자기를 길러줌을 의뢰해서 천하(天下)를 구제한다. 군주(君主)는 사람을 길러주는 이인데 도리어 다른 사람의 길러줌에 의뢰하니, 이는 경상(經常)에 위배되는 것이다. 이미 자기가 부족하여 어진 사부(師傅)에게 순종하니, 상(上)은 사부(師傅)의 자리이니, 반드시 정고(貞固)함에 거하고 지켜서 돈독히 위임하고 신임하면 그 몸을 보익(輔翼)하여 천하(天下)에 은택이 미치므로 길(吉)한 것이다. 음유(陰柔)한 재질로 바르고 강(剛)한 성질이 없기 때문에 정(貞)에 거하면 길(吉)하다고 경계한 것이며, 음유(陰柔)한 재질로 비록 강한 현자(賢者)에게 의뢰하나 평상시에나 따를 수 있을 뿐이요, 어렵고 변고가 있는 즈음에는 대처할 수 없기 때문에 대천(大川)을 건너서는 안 된다고 말한 것이다. 성왕(成王)의 재질은 심히 유약함에 이르지 않았으나 관숙(管叔)과 채숙(蔡叔)의 난(亂)을 당하여 거의 주공(周公)을 보존하지 못하였는데, 하물며 그보다 못한 이에 있어서랴. 그러므로 《서경(書經)》에 “왕(王) 또한 감히 공(公)을 꾸짖지 못했다.”라고 말하였으니, 두 공(公)을 의뢰하여 끝내 믿음을 얻은 것이다. 이 때문에 간험(艱險)의 즈음은 강명(剛明)한 군주가 아니면 믿을 수 없으며, 부득이하여 간험(艱險)을 구제한 이가 있는 것이다. 이 뜻을 말한 것은 군주된 이를 깊이 경계하기 위한 것이고, 상구(上九)에 있어서는 신하(臣下)가 되어 몸을 바쳐 충성(忠誠)을 다하는 도(道)를 근거하여 말했으므로 이와 같지 않은 것이다.
【本義】 六五陰柔不正으로 居尊位而不能養人하고 反賴上九之養이라 故其象占如此하니라.
육오(六五)는 음유부정(陰柔不正)으로 존위(尊位)에 거하여 사람을 길러주지 못하고 도리어 상구(上九)의 기름에 의뢰하기 때문에 그 상(象)과 점(占)이 이와 같은 것이다.
象曰 居貞之吉은 順以從上也일새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거정(居貞)의 길(吉)함은 순히 하여 상구(上九)를 따르기 때문이다.”
【傳】 居貞之吉者는 謂能堅固順從於上九之賢하여 以養天下也라.
거정(居貞)이 길(吉)한 것은 견고히 상구(上九)의 현자(賢者)에게 순종하여 천하(天下)를 기르기 때문임을 말한 것이다.
上九는 由頤니 厲하면 吉하니 利涉大川하니라.
상구(上九)는 자신으로 말미암아 길러지니 위태롭게 여기면 길(吉)하니, 대천(大川)을 건넘이 이롭다.
【傳】 上九以剛陽之德으로 居師傅之任하고 六五之君이 柔順而從於己하여 賴己之養하니 是當天下之任이니 天下由之以養也라 以人臣而當是任이면 必常懷危厲則吉也니 如伊尹周公이 何嘗不憂勤兢畏리오 故得終吉이라 夫以君之才不足하여 以倚賴於己하여 身當天下[一有之字]大任인댄 宜竭其才力하여 濟天下之艱危하고 成天下之治安이라 故曰利涉大川이라 得君如此之專하고 受任如此之重이어늘 苟不濟天下艱危면 何足稱委遇而謂之賢乎아 當盡誠竭力而不顧慮나 然惕厲則不可忘也라.
상구(上九)는 강양(剛陽)의 덕(德)으로 사부(師傅)의 임무에 거하고 육오(六五)의 군주가 유순(柔順)하여 자신을 따라 자신의 길러줌에 의뢰하니, 이는 천하(天下)의 임무를 담당한 것이니, 천하(天下)가 자기로 말미암아 길러지는 것이다. 인신(人臣)으로서 이 임무를 담당하였으면 반드시 항상 위태로운 마음을 품으면 길(吉)하니, 이윤(伊尹)과 주공(周公)과 같은 분이 어찌 일찍이 근심하고 수고로우며 조심하고 두려워하지 않았겠는가. 그러므로 끝내 길(吉)함을 얻은 것이다. 군주(君主)의 재주가 부족한 까닭에 자기에게 의뢰하여 자신이 천하(天下)의 대임(大任)을 감당하였다면 마땅히 재주와 힘을 다해서 천하(天下)의 어려움과 위태로움을 구제하고 천하(天下)의 치안(治安)을 이루어야 한다. 그러므로 ‘대천(大川)을 건넘이 이롭다’고 말한 것이다. 군주의 신임을 얻음이 이와 같이 전일(專一)하고 임무를 맡음이 이와 같이 무거운데, 만일 천하(天下)의 어려움과 위태로움을 구제하지 못한다면 어찌 맡기고 예우함에 걸맞아서 어질다고 이르겠는가. 마땅히 정성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몸을 돌보거나 생각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두려워하고 위태롭게 여김을 잊어서는 안 된다.
【本義】 六五賴上九之養하여 以養人하니 是物由上九以養也라 位高任重이라 故厲而吉이요 陽剛在上이라 故利涉川이라.
육오(六五)는 상구(上九)의 길러줌에 의뢰하여 사람을 기르니, 이는 남이 상구(上九)로 말미암아 길러지는 것이다. 지위가 높고 임무가 무겁기 때문에 위태롭게 여기면 길(吉)하며, 양강(陽剛)이 위에 있기 때문에 내를 건넘이 이로운 것이다.
象曰 由頤厲吉은 大有慶也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유이여길(由頤厲吉)’은 크게 경사(慶事)가 있는 것이다.”
【傳】 若上九之當大任如是하고 能兢畏如是하여 天下被其德澤이면 是大有福慶也라.
만약 상구(上九)가 대임(大任)을 담당하기를 이와 같이 하고 조심하고 두려워하기를 이와 같이 하여 천하(天下)가 덕택(德澤)을 입는다면 이는 크게 복경(福慶)이 있는 것이다.

27. 이(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