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명이(明夷)
【傳】 明夷는 序卦에 晉者는 進也니 進必有所傷이라 故受之以明夷하니 夷者는 傷也라 하니라 夫進之[一作而]不已면 必有所傷은 理自然也니 明夷所以次晉也라 爲卦 坤上離下하니 明入地中也라 反晉이면 成明夷라 故義與晉正相反하니 晉者는 明盛之卦니 明君在上하여 群賢竝進之時也요 明夷는 昏暗之卦니 暗君在上하여 明者見傷之時也라 日入於地中이면 明傷而昏暗也라 故爲明夷라.
명이괘(明夷卦)는 〈서괘전(序卦傳)〉에 “진(晉)은 나아감이니, 나아가면 반드시 상(傷)하는 바가 있으므로 명이괘(明夷卦)로 받았으니, 이(夷)는 상(傷)함이다.” 하였다. 나아가기를 그치지 않으면 반드시 상(傷)하는 바가 있음은 이치에 자연(自然)함이니, 명이괘(明夷卦)가 이 때문에 진괘(晉卦) 다음이 된 것이다. 괘(卦)됨이 곤(坤)이 위에 있고 이(離)가 아래에 있으니, 밝음이 지중(地中)으로 들어간 것이다. 진(晉)을 뒤집으면 명이(明夷)가 되므로 뜻이 진(晉)과 정반대이니, 진(晉)은 밝음이 성한 괘(卦)이니 명군(明君)이 위에 있어 여러 현자(賢者)가 함께 나아가는 때이고, 명이(明夷)는 혼암(昏暗)의 괘(卦)이니 혼암(昏暗)한 군주가 위에 있어 밝은 이가 상(傷)함을 당하는 때이다. 해가 지중(地中)으로 들어가면 밝음이 상(傷)하여 혼암(昏暗)하기 때문에 명이(明夷)라 한 것이다.
明夷는 利艱貞하니라.
명이(明夷)는 어려울 때에 정(貞)함이 이롭다.
【본의】 어렵게 여겨 정(貞)함이 이롭다.
【傳】 君子當明夷之時하여 利在知艱難而不失其貞正也라 在昏暗艱難之時하여 而能不失其正은 所以爲明이니[一有爲字] 君子也라.
군자(君子)가 명이(明夷)의 때를 당하여 이로움이 어려움을 알아 그 정정(貞正)을 잃지 않음에 있다. 혼암(昏暗)하고 어려운 때에 바름을 잃지 않음은 밝음이 되는 것이니, 군자(君子)이다.
【本義】 夷는 傷也라 爲卦下離上坤하니 日入地中하여 明而見傷之象이라 故爲明夷요 又其上六이 爲暗之主어늘 六五近之라 故占者利於艱難以守正하여 而自晦其明也라.
이(夷)는 상(傷)함이다. 괘(卦)됨이 아래는 이(離)이고 위는 곤(坤)이니, 해가 지중(地中)으로 들어가서 밝으나 상(傷)함을 당하는 상(象)이다. 그러므로 명이(明夷)라 한 것이요 또 상육(上六)이 혼암(昏暗)의 주체가 되었는데 육오(六五)가 가까이 있다. 그러므로 점치는 이가 어렵게 여겨 바름을 지켜서 스스로 그 밝음을 감춤이 이로운 것이다.
彖曰 明入地中이 明夷니,
〈단전(彖傳)〉에 말하였다. “밝음이 지중(地中)으로 들어감이 명이(明夷)이니,
【本義】 以卦象으로 釋卦名이라.
괘상(卦象)으로 괘명(卦名)을 해석하였다.
內文明而外柔順하여 以蒙大難이니 文王이 以之하니라.
안은 문명(文明)하고 밖은 유순(柔順)하여 큰 환난(患難)을 무릅썼으니, 문왕(文王)이 이것을 사용하였다.
【傳】 明入於地는 其明滅也라 故爲明夷라 內卦離니 離者는 文明之象이요 外卦坤이니 坤者는 柔順之象이니 爲人內有文明之德而外能柔順也라 昔者文王如是라 故曰文王以之라 하니라 當紂之昏暗하니 乃明夷之時어늘 而文王內有文明之德하고 外柔順以事紂하여 蒙犯大難而內不失其明聖하고 而外足以遠禍患[一作害]하니 此文王所用之道也라 故曰文王以之라 하니라.
밝음이 땅으로 들어감은 그 밝음이 멸(滅)하는 것이므로 명이(明夷)라 하였다. 내괘(內卦)는 이(離)이니 이(離)는 문명(文明)의 상(象)이요, 외괘(外卦)는 곤(坤)이니 곤(坤)은 유순(柔順)한 상(象)이니, 사람이 안은 문명(文明)한 덕(德)이 있고 밖은 유순함이 된다. 옛날 문왕(文王)이 이와 같이 하셨기 때문에 문왕(文王)이 사용했다고 말한 것이다. 주(紂)의 혼암(昏暗)함을 당하였으니, 바로 명이(明夷)의 때인데 문왕(文王)이 안에는 문명(文明)한 덕(德)이 있고 밖은 유순하여 주(紂)를 섬겨서 큰 환난(患難)을 무릅쓰고 범하였으나 안으로는 밝고 성스러움을 잃지 않고 밖으로는 화(禍)와 환(患)을 멀리하였으니, 이는 문왕(文王)이 사용하신 도(道)이다. 그러므로 문왕(文王)이 사용하였다고 말한 것이다.
【本義】 以卦德으로 釋卦義라 蒙大難은 謂遭紂之亂而見囚也라.
괘덕(卦德)으로 괘(卦)의 뜻을 해석하였다. ‘몽대난(蒙大難)’은 주(紂)의 난(亂)을 만나 갇힘을 당함을 이른다.
利艱貞은 晦其明也라 內難而能正其志하니 箕子以之하니라.
어려울 때에 정(貞)함이 이로움은 그 밝음을 감춘 것이다. 안에 있어 어려우나 그 뜻을 바르게 하였으니, 기자(箕子)가 이것을 사용하였다.”
【傳】 明夷之時엔 利於處艱厄而不失其貞正이니 謂能晦藏其明也라 不晦其明이면 則被禍患이요 不守其正이면 則非賢明이라 箕子當紂之時하여 身處其國內하여 切近其難이라 故云內難이라 然箕子能[一无能字]藏晦其明而自守其正志하니 箕子所用之道也라 故曰箕子以之라 하니라.
명이(明夷)의 때에는 간액(艱厄)에 처하더라도 정정(貞正)을 잃지 않음이 이로우니, 그 밝음을 감춤을 이른다. 그 밝음을 감추지 않으면 화환(禍患)을 입을 것이요, 그 바름을 지키지 않으면 현명함이 아니다. 기자(箕子)가 주(紂)의 때를 당하여 몸이 국내(國內)에 처하여 환난(患難)에 매우 가까웠으므로 내난(內難)이라 이른 것이다. 그러나 기자(箕子)가 그 밝음을 감추어 스스로 바른 뜻을 지켰으니, 기자(箕子)가 사용한 도(道)이다. 그러므로 기자(箕子)가 사용하였다고 말한 것이다.
【本義】 以六五一爻之義로 釋卦辭라 內難은 謂爲紂近親하여 在其國內니 如六五之近於上六也라.
육오(六五) 한 효(爻)의 뜻으로 괘사(卦辭)를 해석하였다. 내난(內難)은 주(紂)의 가까운 친척이 되어 국내(國內)에 있음을 이르니, 육오(六五)가 상육(上六)에 가까운 것과 같은 것이다.
象曰 明入地中이 明夷니 君子以하여 莅衆에 用晦而明하나니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밝음이 지중(地中)으로 들어감이 명이(明夷)이니, 군자(君子)가 이로써 무리를 대할 때에 어둠을 써서 밝게 한다.”
【傳】 明은 所以照니 君子无所不照나 然用明之過則傷於察이요 太察則盡事而无含弘之度라 故君子觀明入地中之象하여 於莅衆也에 不極其明察而用晦니 然後에 能容物和衆하여 衆親而安하나니 是用晦乃所以爲明也라 若自任其明하여 无所不察이면 則已不勝其忿疾而无寬厚含容[一作弘]之德하여 人情睽疑而不安하여 失莅衆之道니 適所以爲不明也라 古之聖人이 設前旒屛樹者는 不欲明之盡乎隱也니라.
밝음은 비추는 것이니, 군자(君子)는 비추지 않는 바가 없으나 밝음을 씀이 지나치면 살핌에 상(傷)하고, 너무 살피면 일을 다하여 함홍(含弘)하는 도량(度量)이 없다. 그러므로 군자(君子)가 밝음이 지중(地中)으로 들어가는 상(象)을 보아 무리를 대할 적에 밝음과 살핌을 지극히 하지 않고 어둠을 쓰는 것이니, 이렇게 한 뒤에야 남을 용납하고 무리를 화합(和合)하여 무리가 친애(親愛)하고 편안하니, 이는 어둠을 쓰는 것이 바로 밝음이 되는 것이다. 만일 그 밝음을 자임(自任)하여 살피지 않는 바가 없으면 이미 분함과 미워하는 마음을 이기지 못하여 관후(寬厚)하고 함용(含容)하는 덕(德)이 없어서 인정(人情)이 반목(反目)하고 의심하여 불안해서 무리를 대하는 도리를 잃을 것이니, 다만 밝지 못함이 될 뿐이다. 옛 성인(聖人)이 면류관의 앞에 술을 달고 문 앞을 가리개로 가린 것은 밝음을 숨겨진 곳에 다하지 않고자 한 것이다.
初九는 明夷于飛에 垂其翼이니 君子于行에 三日不食하여 有攸往에 主人이 有言이로다.
초구(初九)는 명이(明夷)에 날 때에 날개를 늘어뜨림이니, 군자(君子)가 떠나감에 3일 동안 먹지 못하여 가는 바를 둠에 주인이 나무라는 말을 하도다.
【傳】 初九는 明體而居明夷之初하니 見傷之始也라 九는 陽明上升者也라 故取飛象이라 昏暗在上하여 傷陽之明하여 使不得上進하니 是于飛而傷其翼也라 翼見傷이라 故垂朶하니 凡小人之害君子는 害其所以行者라 君子于行三日不食은 君子明照하여 見事之微하니 雖始有見傷之端하여 未顯也나 君子則能見之矣라 故行去避之라 君子于行은 謂去其祿位而退藏也요 三日不食은 言困窮之極也라 事未顯而處甚艱하니 非見幾之明이면 不能也라 夫知幾者는 君子之獨見이요 非衆人所能識也라 故明夷之始에 其見傷未顯而去之면 則世俗孰不疑怪리오 故有所往適則主人有言也라 然君子不以世俗之見怪而遲疑其行也라 若俟衆人盡識이면 則傷已及而不能去矣니 此는 薛方所以爲明而揚雄所以不獲其去也라.
초구(初九)는 밝음의 체(體)인데 명이(明夷)의 초(初)에 거하였으니, 상(傷)함을 당하는 시초이다. 구(九)는 양명(陽明)으로 상승(上升)하는 것이기 때문에 나는 상(象)을 취한 것이다. 혼암(昏暗)하면서 위에 있어 양(陽)의 밝음을 상(傷)해서 위로 나아가지 못하게 하니, 이는 낢에 그 날개를 상(傷)한 것이다. 날개가 상(傷)함을 당했기 때문에 늘어뜨리는 것이니, 무릇 소인(小人)이 군자(君子)를 해침은 감을 해치는 것이다. ‘군자우행(君子于行) 삼일불식(三日不食)’은 군자(君子)는 밝게 비추어 일의 기미를 보니, 비록 처음 상(傷)함을 당하는 단서가 있어 아직 드러나지 않았으나 군자(君子)는 능히 이것을 보기 때문에 떠나가 피하는 것이다. 군자(君子)가 떠나간다는 것은 그 녹(祿)과 지위를 버리고 물러가 감춤이요, 3일 동안 먹지 못한다는 것은 곤궁함이 지극함을 말한 것이다. 일이 아직 드러나지 않았고 처함이 매우 어려우니, 기미를 보는 밝음이 아니면 능하지 못하다. 기미를 아는 것은 군자(君子)만 홀로 보는 것이요 중인(衆人)은 알 수 있는 바가 아니다. 그러므로 명이(明夷)의 시초(始初)에 상(傷)함을 당함이 드러나기 전에 떠나가면 세속에서 누가 의심하고 괴이하게 여기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가는 바를 두면 주인(主人)이 나무라는 말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군자(君子)는 세속에서 괴이하게 여긴다고 하여 그 떠나감을 지체하고 의심하지 않는다. 만일 중인(衆人)들이 다 알기를 기다린다면 상(傷)함이 이미 미쳐서 떠날 수 없을 것이니, 이는 설방(薛方)은 현명함이 되고 양웅(揚雄)은 그 떠나감을 얻지 못함이 되는 것이다.
或曰 傷至於垂翼이면 傷已明矣니 何得衆人猶未識也리오 曰 初는 傷之始也라 云垂其翼은 謂傷其所以飛爾니 其事則未顯也라 君子見幾라 故亟去之요 世俗之人은 未能見也라 故異而非之라 如穆生之去楚에 申公, 白公도 且非之어든 況世俗之人乎아 但譏其責小禮而不知穆生之去 避胥靡之禍也니 當其言曰不去면 楚人將鉗我於市하여 雖二儒者라도 亦以爲過甚之言也라 又如袁閎이 於黨事未起之前에 名德之士 方鋒起而獨潛身土室이라 故人以爲狂生이나 卒免黨錮之禍하니 所往而人有言을 胡足怪也리오.
혹자가 말하기를 “상(傷)함이 날개를 늘어뜨림에 이르렀으면 상(傷)함이 이미 분명하니, 어찌 중인(衆人)들이 아직도 알지 못하겠는가?” 하기에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초(初)는 상(傷)함의 시초이다. 그 날개를 늘어뜨림은 나는 것을 상(傷)함을 이를 뿐이니, 그 일이 아직 드러나지 않은 것이다. 군자(君子)는 기미를 보기 때문에 빨리 떠나가고, 세속의 사람들은 기미를 보지 못하기 때문에 괴이하게 여겨 비난하는 것이다. 목생(穆生)이 초(楚)나라를 떠날 적에 신공(申公)과 백공(白公)도 비난하였으니, 하물며 세속의 사람에 있어서랴. 다만 그 작은 예(禮)를 책(責)한다고 비난하였고, 목생(穆生)의 떠남이 서미(胥靡)의 화(禍)를 피하려는 것임을 알지 못하였으니, 그가 ‘떠나지 않으면 초(楚)나라 사람이 장차 나를 시장에서 재갈 먹일 것이다’ 라고 말했을 때를 당해서는 비록 두 유자(儒者)라 해도 지나치고 심한 말이라고 여겼었다. 또 원굉(袁閎)은 당고(黨錮)의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때에 명망(名望)과 덕(德)이 있는 선비들은 바야흐로 봉기(蜂起)하였으나 홀로 토실(土室)에 몸을 숨겼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그를 광생(狂生)이라 하였으나 끝내 당고(黨錮)의 화(禍)를 면(免)하였으니, 가는 바에 사람들이 나무라는 말을 함을 어찌 괴이하게 여기겠는가.”
【本義】 飛而垂翼은 見傷之象이니 占者行而不食하고 所如不合하니 時義當然이라 不得而避也니라.
날 적에 날개를 늘어뜨림은 상(傷)함을 당한 상(象)이니, 점치는 이가 떠나감에 먹지 못하고 가는 곳마다 합하지 못하니, 때와 의(義)가 당연하여 피할 수 없는 것이다.
象曰 君子于行은 義不食也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군자(君子)가 떠나감은 의리(義理)에 먹지 않는 것이다.”
【傳】 君子遯藏而困窮은 義當然也라 唯義之當然故로 安處而无悶하니 雖不食이라도 可也라.
군자(君子)가 은둔하고 숨어 곤궁함은 의리에 당연한 것이다. 의리에 당연하기 때문에 편안히 처하고 근심함이 없는 것이니, 비록 먹지 않더라도 가(可)하다.
【本義】 唯義所在엔 不食이 可也라.
오직 의리(義理)가 있는 곳에는 먹지 않아야 한다.
六二는 明夷에 夷于左股니 用拯馬壯하면 吉하리라.
육이(六二)는 명이(明夷)에 왼쪽 다리를 상(傷)함이니, 구원하는 말이 건장하면 길(吉)하리라.
【傳】 六二以至明之才로 得中正而體順하니 順時自處는 處之至善也라 雖君子自處之善이나 然當陰闇小人傷明之時하여 亦不免爲其所傷이로되 但君子自處有道라 故不能深相傷害하여 終能違避之爾라 足者는 所以行也니 股는 在脛足之上하여 於行之用에 爲不甚切이요 左는 又非便用者라 手足之用은 以右爲便이요 唯蹶張用左하니 蓋右立爲本也라 夷于左股는 謂傷害其行而不甚切也라 雖然이나 亦必自免有道하니 拯用[一作其]壯健之馬면 則獲免之速而吉也라 君子爲陰闇所傷에 其自處有道라 故其傷不甚하고 自拯有道라 故獲免之疾이니 用拯之道는 不壯이면 則被傷深矣라 故云馬壯則吉也라 二以明居陰闇之下하니 所謂吉者는 得免傷害而已니 非謂可以有爲於斯時也라.
육이(六二)는 지극히 밝은 재주로써 중정(中正)을 얻고 체(體)가 순하니, 때에 순응하여 자처(自處)함은, 처하기를 지극히 잘 하는 것이다. 비록 군자(君子)가 자처(自處)하기를 잘하나 음암(陰闇)한 소인(小人)이 밝음을 상(傷)하는 때를 당하여, 역시 그 상(傷)함을 당함을 면치 못하나 다만 군자(君子)가 자처(自處)함에 도(道)가 있기 때문에 깊이 서로 상해(傷害)하지 못하여 끝내 떠나가 피할 뿐이다. 발은 걸어가는 것이니, 다리는 정강이와 발의 위에 있어서 걸어가는데 씀에 심히 간절하지 않고, 왼쪽은 또 쓰기에 편한 것이 아니다. 수족(手足)을 씀은 오른쪽을 편하게 여기고 오직 발로 쇠뇌를 잡아당길 때에만 왼쪽을 쓰니, 오른쪽으로 섬을 근본으로 삼는다. 왼쪽 다리를 상(傷)했다는 것은 그 감을 상해(傷害)하나 심히 절박하지 않음을 이른다. 그러나 또한 반드시 스스로 면(免)할 길이 있으니, 구원함에 건장한 말을 쓰면 면(免)함을 얻음이 속하여 길(吉)한 것이다. 군자(君子)가 음암(陰闇)에게 상(傷)함을 당할 적에 자처함에 도(道)가 있으므로 그 상(傷)함이 심하지 않고 스스로 구원함에 길이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면(免)함을 얻음이 빠른 것이니, 구원하는 길은 건장하지 않으면 상(傷)함을 입음이 깊다. 그러므로 ‘말이 건장하면 길(吉)하다’고 한 것이다. 이(二)는 밝음으로 음암(陰闇)의 아래에 거하였으니, 이른바 길(吉)하다는 것은 상해(傷害)를 면(免)하는 것일 뿐이니, 이때에 일을 할 수 있다고 말한 것은 아니다.
【本義】 傷而未切하니 救之速則免矣라 故其象占如此하니라.
상(傷)하나 절박하지 않으니, 구원하기를 속히 하면 면(免)한다. 그러므로 그 상(象)과 점(占)이 이와 같은 것이다.
象曰 六二之吉은 順以則也일새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육이(六二)의 길(吉)함은 순하고 법칙(法則)에 맞기 때문이다.”
【傳】 六二之得吉者는 以其順處而有法則也니 則은 謂中正之道라 能順而得中正은 所以處明傷之時而能保其吉也라.
육이(六二)가 길(吉)함을 얻은 것은 순히 처하고 법칙(法則)이 있기 때문이니, 칙(則)은 중정(中正)의 도(道)를 이른다. 순하고 중정(中正)을 얻음은 밝음이 상(傷)하는 때에 처하여 길(吉)함을 보존할 수 있는 것이다.
九三은 明夷于南狩하여 得其大首니 不可疾貞이니라.
구삼(九三)은 명이(明夷)에 남쪽으로 사냥하여 괴수를 얻음이니, 빨리 바로잡아서는 안 된다.
【傳】 九三은 離之上이니 明之極也요 又處剛而進하며 上六은 坤之上이니 暗之極也라 至明이 居下而爲下之上하고 至暗이 在上而處窮極之地하여 正相敵應하니 將以明去暗者也라 斯義也는 其湯武之事乎인저 南은 在前而明方也요 狩는 畋而去害之事也니 南狩는 謂前進而除害也라 當克獲其大首니 大首는 謂暗之魁首니 上六也라 三與上은 正相應이니 爲至明克至暗之象이라 不可疾貞은 謂誅其元惡이요 舊染汚俗은 未能遽革하여 必有其漸이니 革之遽면 則駭懼而不安이라 故酒誥云 惟殷之迪諸臣惟工이 乃湎于酒어든 勿庸殺之하고 姑惟敎之라 하고 至於旣久에도 尙曰餘風未殄이라 하니 是漸漬之俗을 不可以遽革也라 故曰不可疾貞이라 하니 正之를 不可急也라 上六이 雖非君位나 以其居上而暗之極이라 故爲暗之主니 謂之大首라.
구삼(九三)은 이(離)의 위이니 밝음이 지극하고 또 강(剛)에 처하여 나아가며, 상육(上六)은 곤(坤)의 위이니 어둠이 지극하다. 지극히 밝으면서 아래에 거하여 하체(下體)의 위가 되고, 지극히 어두우면서 위에 있어 궁극(窮極)한 자리에 처하여 바로 서로 적(敵)으로 응하니, 장차 밝음으로 어둠을 제거하는 것이다. 이 뜻은 탕(湯)·무(武)의 일일 것이다. 남(南)은 앞에 있어 밝은 방소(方所)이고 수(狩)는 사냥하여 해로움을 제거하는 일이니, 남쪽으로 사냥함은 전진하여 해로움을 제거함을 이른다. 마땅히 대수(大首)를 이겨 사로잡을 것이니, 대수(大首)는 어둠의 괴수를 이르는 바 상육(上六)이다. 삼(三)과 상(上)은 바로 서로 응하니, 지극히 밝음이 지극히 어둠을 이기는 상(象)이 된다. 빨리 바로잡아서는 안 된다는 것은 괴수를 벨 뿐이요, 옛날에 물든 더러운 풍속은 갑자기 고칠 수 없어 반드시 그 점진적으로 하여야 하니, 급히 고치면 놀라고 두려워하여 편안하지 못하다. 그러므로 〈주고(酒誥)〉에 이르기를 “은(殷)나라가 인도한 여러 신하와 백공(百工)들이 마침내 술에 빠지거든 죽이지 말고 우선 가르쳐라.” 하였고, 이미 오램에 이르러도 오히려 ‘남은 풍속이 끊기지 않았다’ 하였으니, 이는 오래 물든 풍속을 갑자기 고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빨리 바로잡아서는 안 된다고 한 것이니, 바로잡기를 급하게 해서는 안 된다. 상육(上六)은 비록 군위(君位)가 아니나 상(上)에 거하고 어둠의 극(極)이기 때문에 어둠의 주체가 되니, 대수(大首)라 이른 것이다.
【本義】 以剛居剛하고 又在明體之上而屈於至暗之下하여 正與上六闇主로 爲應이라 故有向明除害得其首惡之象이나 然不可以極也라 故有不可疾貞之戒라 成湯起於夏臺하고 文王興於羑里는 正合此爻之義요 而小事亦有然者라.
강(剛)으로 강위(剛位)에 거하고 또 밝은 체(體)의 위에 있으면서 지극히 어두운 아래에 굽혀 바로 상육(上六)의 혼암(昏暗)한 군주와 응(應)이 된다. 그러므로 밝음을 향하고 해를 제거하여 수악(首惡)을 얻는 상(象)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지극히 해서는 안 되기 때문에 빨리 바로잡아서는 안 된다는 경계가 있는 것이다. 성탕(成湯)이 하대(夏臺)에서 일어나고 문왕(文王)이 유리(羑里)에서 일어남은 바로 이 효(爻)의 뜻에 부합하며, 작은 일도 그러한 경우가 있다.
象曰 南狩之志를 乃大得也로다.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남쪽으로 사냥하는 뜻을 크게 얻도다.”
【傳】 夫以下之明으로 除上之暗엔 其志在去害而已니 如商周之湯武 豈有意於利天下乎아 得其大首는 是能去害而大得其志矣니 志苟不然이면 乃悖亂之事也라.
아래의 밝음으로 위의 어둠을 제거함에는 그 뜻이 해(害)를 제거함에 있을 뿐이니, 상(商)나라와 주(周)나라의 탕왕(湯王)과 무왕(武王)이 어찌 천하를 탐함에 뜻이 있었겠는가. 그 대수(大首)를 얻음은 이는 해를 제거하여 그 뜻을 크게 얻은 것이니, 뜻이 만일 그렇지 않다면 패란(悖亂)의 일이다.
六四는 入于左腹하여 獲明夷之心하여 于出門庭이로다.
육사(六四)는 왼쪽 배로 들어가 밝음을 상(傷)할 마음을 얻어서 문정(門庭)에 나오는 것이다.
【本義】 入于左腹이니 獲明夷之心을 于出門庭이로다.
【본의】 왼쪽 배로 들어감이니, 명이(明夷)의 마음을 얻어 문정(門庭)에 나와서 하도다.
【傳】 六四以陰居陰而在陰柔之體하여 處近君之位하니 是陰邪小人이 居高位하여 以柔邪順於君者也라 六五는 明夷之君位니 傷明之主也어늘 四以柔邪順從之하여 以固其交하니 夫小人之事君에 未有由顯明以道合者也요 必以隱僻之道로 自結於上이라 右當用故로 爲明顯之所요 左不當用故로 爲隱僻之所라 人之手足은 皆以右爲用하니 世謂僻所爲僻左라 하니 是左者는 隱僻之所也라 四由[一有是字]隱僻之道하여 深入其君이라 故云入于左腹이니 入腹은 謂其交深也라 其交之深故로 得其心이라 凡姦邪之見信於其君은 皆由奪其心也니 不奪其心이면 能无悟乎아 于出[一作出于]門庭은 旣信之於心[一作旣奪其心]而後行之於外也라 邪臣之事暗君에 必先蠱其心而後能行於外니라.
육사(六四)는 음(陰)으로서 음위(陰位)에 거하고, 음유(陰柔)의 체(體)에 있어 군주와 가까운 자리에 처하였으니, 이는 음사(陰邪)한 소인(小人)이 높은 지위에 있어 유순(柔順)함과 간사함으로 군주(君主)에게 순종하는 것이다. 육오(六五)는 명이(明夷)의 군위(君位)이니, 밝음을 상(傷)하는 주체인데, 사(四)가 유순(柔順)함과 간사함으로 순종하여 그 사귐을 견고히 하니, 소인(小人)이 군주를 섬길 때에 드러나고 밝음을 따라 도(道)로써 합하는 이는 있지 않고, 반드시 은미하고 사벽한 길로 스스로 윗사람에게 결탁한다. 오른쪽은 쓰기에 합당하기 때문에 명현(明顯)한 곳이 되고 왼쪽은 쓰기에 합당하지 않기 때문에 은벽(隱僻)한 곳이 된다. 사람의 수족(手足)은 모두 오른쪽을 쓰니, 세속에서 궁벽한 곳을 벽좌(僻左)라 하는 바, 왼쪽은 은벽(隱僻)한 곳이다. 사(四)가 은벽(隱僻)한 길을 따라 그 군주에게 깊이 들어가기 때문에 왼쪽 배로 들어갔다고 말한 것이니, 배로 들어갔다는 것은 그 사귐이 깊음을 이른다. 그 사귐이 깊기 때문에 그 마음을 얻은 것이다. 무릇 간사한 이가 군주에게 신임을 받는 것은 모두 군주의 마음을 빼앗기 때문이니, 그 마음을 빼앗지 않는다면 군주가 깨닫지 않겠는가. 문정(門庭)에 나온다는 것은 이미 마음에 믿게 한 뒤에 밖에 행하는 것이다. 간사한 신하가 혼암(昏暗)한 군주를 섬길 적에 반드시 먼저 그 마음을 고혹시킨 뒤에 밖에서 행한다.
【本義】 此爻之義는 未詳이라 竊疑左腹者는 幽隱之處요 獲明夷之心于出門庭者는 得意於遠去之義니 言筮而得此者는 其自處를 當如是也라 蓋離體는 爲至明之德이요 坤體는 爲至闇之地며 下三爻는 明在闇外라 故隨其遠近高下하여 而處之不同이라 六四는 以柔正으로 居闇地而尙淺故로 猶可以得意於遠去요 五는 以柔中으로 居闇地而已迫故로 爲內難正志以晦其明之象이요 上則極乎闇矣故로 爲自傷其明하여 以至於闇而又足以傷人之明이라 蓋下五爻는 皆爲君子요 獨上一爻 爲闇君也라.
이 효(爻)의 뜻은 미상(未詳)이다. 저으기 의심컨대 좌복(左腹)은 은벽(隱僻)한 곳이요, 문정(門庭)에 나와서 명이(明夷)의 마음을 얻는 것은 멀리 떠나는 의(義)에 뜻을 얻는 것인 듯하니, 점을 쳐서 이 효(爻)를 얻은 이는 자처(自處)하기를 마땅히 이와 같이 하여야 함을 말한 것이다. 이(離)의 체(體)는 지극히 밝은 덕(德)이 되고 곤(坤)의 체(體)는 지극히 어두운 자리가 되며, 아래의 세 효(爻)는 밝음이 어둠의 밖에 있다. 그러므로 그 원근(遠近)과 고하(高下)에 따라 처함이 같지 않은 것이다. 육사(六四)는 유정(柔正)으로 어두운 자리에 처하였으나 아직 얕기 때문에 오히려 멀리 떠남에 뜻을 얻을 수 있으며, 오(五)는 유중(柔中)으로 어두운 자리에 거하여 이미 임박하였기 때문에 안이 어려우나 뜻을 바르게 하여 그 밝음을 감추는 상(象)이 되고, 상(上)은 어둠이 지극하기 때문에 스스로 그 밝음을 상(傷)하여 어둠에 이르고 또 남의 밝음을 상(傷)함이 되는 것이다. 아래의 다섯 효(爻)는 모두 군자(君子)가 되고 홀로 위의 한 효(爻)만이 어두운 군주(君主)가 된다.
象曰 入于左腹은 獲心意也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왼쪽 배로 들어감은 마음과 뜻을 얻은 것이다.”
【傳】 入于左腹은 謂以邪僻之道로 入于君而得其心意也니 得其心이라 所以終不悟也라.
왼쪽 배로 들어갔다는 것은 사벽(邪僻)한 길로 군주에게 들어가서 그 마음과 뜻을 얻음을 이르니, 그 마음을 얻기 때문에 끝내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六五는 箕子之明夷니 利貞하니라.
육오(六五)는 기자(箕子)의 밝음을 감춤이니 정(貞)함이 이롭다.
【傳】 五爲君位는 乃常也라 然易之取義 變動隨時라 上六은 處坤之上而明夷之極이니 陰暗傷明之極者也어늘 五切近之하니 聖人因以五爲切近至暗之人이라 하여 以見處之之義라 故不專以君位[一作義]言이요 上六은 陰暗傷明之極이라 故以爲明夷之主라 五切近傷明之主하니 若顯其明이면 則見傷害必矣라 故當如箕子之自晦藏이면 則可以[一无以字]免於難이라 箕子는 商之舊臣而同姓之親이니 可謂切近於紂矣니 若不自晦其明이면 被禍可必也라 故佯狂爲奴하여 以免於害라 雖晦藏其明이나 而內守其正하니 所謂內難而能正其志니 所以謂之仁與明也라 若箕子면 可謂貞矣라 以五陰柔라 故爲之戒云利貞이라 하니 謂宜如箕子之貞固也라 若以君道言이라도 義亦如是하니 人君有當含晦之時하니 亦外晦其明而內正其志也라.
오(五)가 군위(君位)가 됨은 떳떳한 일이다. 그러나 역(易)의 뜻을 취함은 변동하여 때에 따른다. 상육(上六)은 곤(坤)의 위에 처하였고 명이(明夷)의 극(極)이니, 음암(陰暗)으로 밝음을 상(傷)함이 지극한 것인데, 오(五)가 매우 가까이 있으니, 성인(聖人)이 오(五)가 지극히 어두운 사람과 매우 가깝다고 하여 이에 대처하는 의(義)를 나타내었다. 그러므로 오로지 군위(君位)로써 말씀하지 않았고, 상육(上六)은 음암(陰暗)으로 밝음을 상(傷)함이 지극하기 때문에 밝음을 상(傷)하는 군주가 된 것이다. 오(五)가 밝음을 상(傷)하는 군주와 매우 가까이 있으니, 만약 그 밝음을 드러내면 상해(傷害)를 당함이 틀림없다. 그러므로 마땅히 기자(箕子)가 스스로 감추듯이 하면 난(難)을 면할 수 있을 것이다. 기자(箕子)는 상(商)나라의 옛 신하이고 동성(同姓)의 친척이니, 주(紂)와 매우 가깝다고 이를 만하니, 만일 스스로 그 밝음을 감추지 않았다면 화(禍)를 입음이 틀림없다. 그러므로 거짓으로 미친 체하여 노예가 되어서 해(害)를 면(免)했던 것이다. 비록 그 밝음을 감추었으나 안으로 그 바름을 지켰으니, 이른바 ‘안이 어려우나 그 뜻을 바르게 하였다’는 것이니, 이 때문에 인(仁)하고 밝다고 이른 것이다. 기자(箕子)와 같이 하면 정(貞)하다고 이를 만하다. 오(五)가 음유(陰柔)이기 때문에 경계하기를 ‘정(貞)함이 이롭다’고 하였으니, 마땅히 기자(箕子)의 정고(貞固)함과 같이 하여야 함을 말한 것이다. 만일 군주의 도리로 말하더라도 의(義)가 역시 이와 같으니, 인군(人君)이 마땅히 머금고 감추어야 할 때가 있으니, 역시 밖으로 그 밝음을 감추고 안으로 그 뜻을 바르게 하여야 한다.
【本義】 居至闇之地하여 近至闇之君而能正其志하니 箕子之象也니 貞之至也라 利貞은 以戒占者라.
지극히 어두운 자리에 거하여 지극히 어두운 군주를 가까이 하면서도 그 뜻을 바르게 하니, 기자(箕子)의 상(象)이니 바름이 지극하다. 정고(貞固)함이 이롭다는 것은 점치는 이를 경계한 것이다.
象曰 箕子之貞은 明不可息也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기자(箕子)의 정(貞)함은 밝음이 종식될 수 없는 것이다.”
【傳】 箕子晦藏하여 不失其貞固하니 雖遭患難이나 其明自存하여 不可滅息也라 若逼禍患하여 遂失其所守면 則是亡其明이니 乃滅息也라 古之人如揚雄者是也라.
기자(箕子)는 감추어 그 정고(貞固)함을 잃지 않았으니, 비록 환난을 당하더라도 그 밝음이 스스로 보존되어 멸식(滅息)할 수 없는 것이다. 만일 화환(禍患)에 핍박당하여 마침내 그 지키는 바를 잃는다면 이는 그 밝음을 잃은 것이니, 바로 멸식(滅息)한 것이다. 옛 사람 중에 양웅(揚雄)과 같은 이가 이것이다.
上六은 不明하여 晦니 初登于天하고 後入于地로다.
상육(上六)은 밝지 못하여 어두우니, 처음에는 하늘에 오르고 뒤에는 땅속으로 들어가도다.
【傳】 上居卦之終하여 爲明夷[一作夷明]之主요 又爲明夷之極이라 上은 至高之地니 明在至高면 本當遠照어늘 明旣夷傷이라 故不明而反昏晦也라 本居於高하여 明當及遠은 初登于天也요 乃夷傷其明而昏暗은 後入于地也라 上은 明夷之終이요 又坤陰之終이니 明傷之極者也라.
상(上)은 괘(卦)의 종(終)에 거하여 명이(明夷)의 주체가 되고 또 명이(明夷)의 지극함이 된다. 상(上)은 지극히 높은 곳이니, 밝음이 지극히 높은 곳에 있으면 본래 마땅히 멀리 비칠 터인데 밝음이 이미 상(傷)했기 때문에 밝지 못하여 도리어 어두운 것이다. 본래 높은 곳에 거하여 밝음이 멀리 미침은 처음에는 하늘에 올라간 것이요, 밝음을 상(傷)하여 어두워짐은 뒤에는 땅속으로 들어간 것이다. 상(上)은 명이(明夷)의 종(終)이고 또 곤음(坤陰)의 종(終)이니, 밝음을 상(傷)함이 지극한 것이다.
【本義】 以陰居坤之極하니 不明其德하여 以至於晦라 始則處高位하여 以傷人之明하고 終必至於自傷而墜厥命이라 故其象如此요 而占亦在其中矣라.
음(陰)으로서 곤(坤)의 극(極)에 처하였으니 그 덕(德)을 밝히지 못하여 어둠에 이른 것이다. 처음에는 높은 지위에 처하여 남의 밝음을 상(傷)하였고, 종말에는 스스로 상(傷)하여 그 목숨을 실추함에 이른다. 그러므로 그 상(象)이 이와 같고 점(占) 또한 이 가운데 들어 있는 것이다.
象曰 初登于天은 照四國也요 後入于地는 失則也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처음에는 하늘에 오름은 사방(四方) 나라에 비추는 것이요, 뒤에는 땅속으로 들어감은 법을 잃은 것이다.”
【傳】 初登于天은 居高而明이면 則當照及四方也어늘 乃被傷而昏暗하니 是後入于地니 失明之道也라 失則은 失其道也라.
처음에는 하늘에 올라감은 높은 곳에 거하여 밝으면 마땅히 비춤이 사방에 미칠 터인데, 마침내 상(傷)함을 입어 어두우니 이는 뒤에는 땅속으로 들어간 것이니, 밝음의 도(道)를 잃은 것이다. 실칙(失則)은 그 도(道)를 잃은 것이다.
【本義】 照四國은 以位言이라.
사국(四國)에 비춤은 지위로써 말한 것이다.

36. 명이(明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