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 혁(革)
【傳】 革은 序卦에 井道는 不可不革이라 故受之以革이라 하니라 井之爲物이 存之則穢敗하고 易之則淸潔하니 不可不革者也라 故井之後에 受之以革也니라 爲卦 兌上離下하니 澤中有火也라 革은 變革也니 水火는 相息之物이니 水滅火하고 火涸水하여 相變革者也라 火之性은 上하고 水之性은 下하니 若相違行이면 則睽而已어늘 乃火在下하고 水在上하여 相就而相剋하니 相滅息者也니 所以爲革也라 又二女同居而其歸各異하여 其志不同하니 爲不相得也라 故爲革也라.
혁괘(革卦)는 〈서괘전(序卦傳)〉에 “우물의 도(道)는 변혁(變革)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혁괘(革卦)로 받았다.” 하였다. 우물이란 물건은 그대로 두면 썩고 바꾸면 청결해지니, 변혁(變革)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괘(井卦)의 뒤에 혁괘(革卦)로써 받은 것이다. 괘(卦)됨이 태(兌)가 위에 있고 이(離)가 아래에 있으니, 못 가운데에 불이 있는 것이다. 혁(革)은 변혁(變革)이니, 물과 불은 서로 멸식(滅息)시키는 물건이니, 물은 불을 끄고 불은 물을 말려서 서로 변혁(變革)하는 것이다. 불의 성질은 위로 올라가고 물의 성질은 아래로 내려가니, 만일 서로 떠나가면 규(睽)가 될 뿐인데, 마침내 불이 아래에 있고 물이 위에 있어 서로 찾아가 서로 이기니, 서로 멸식(滅息)하는 것이니, 이 때문에 혁(革)이라 한 것이다. 또 두 여자(女子)가 한 곳에 같이 사나 그 돌아감이 각기 달라서 뜻이 같지 않으니, 이는 서로 뜻이 맞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혁(革)이라 한 것이다.
革은 已日이라야 乃孚하리니 元亨하고 利貞하여 悔亡하니라.
혁(革)은 하루가 지나야 믿으리니, 크게 형통(亨通)하고 정(貞)함이 이로워 뉘우침이 없다.
【傳】 革者는 變其故也니 變其故면 則人未能遽信이라 故必已日然後에 人心信從이라 元亨利貞悔亡은 弊壞而後革之니 革之는 所以致其通也라 故革之而可以大亨이요 革之而利於正道면 則可久而得去故之義하고 无變動之悔하니 乃悔亡也라 革而无甚益이라도 猶[一有有字]可悔也어늘 況反害乎아 古人所以重改作也라.
혁(革)은 옛것을 변함이니, 옛것을 변하면 사람들이 대번에 믿지 않는다. 그러므로 반드시 하루가 지난 뒤에야 인심(人心)이 믿고 따르는 것이다. ‘원형이정회망(元亨利貞悔亡)’은 해지고 파괴된 뒤에 변혁(變革)하니, 변혁(變革)함은 그 통함을 이루는 것이다. 그러므로 변혁(變革)하면 크게 형통(亨通)할 수 있고, 변혁(變革)하되 정도(正道)를 지킴이 이로우니, 이렇게 하면 오래하고 옛것을 버리는 뜻에 맞으며 변동의 뉘우침이 없으니, 이것이 바로 ‘회망(悔亡)’인 것이다. 개혁(改革)을 하여 심한 이익이 없더라도 오히려 뉘우칠 만한 일인데 하물며 도리어 해로움에 있어서랴. 고인(古人)이 이 때문에 개작(改作)을 신중히 여긴 것이다.
【本義】 革은 變革也라 兌澤在上하고 離火在下하니 火然則水乾이요 水決則火滅하며 中少二女가 合爲一卦而少上中下하여 志不相得이라 故其卦爲革也라 變革之初에는 人未之信이라 故必已日而後信이요 又以其內有文明之德而外有和說之氣라 故其占이 爲有所更革이면 皆大亨而得其正하여 所革皆當而所革之悔亡也라 一有不正이면 則所革이 不信不通而反有悔矣리라.
혁(革)은 변혁(變革)이다. 태택(兌澤)은 위에 있고 이화(離火)는 아래에 있으니, 불이 타오르면 물이 마르고 물이 터지면 불이 꺼지며, 중녀(中女)와 소녀(少女)가 합하여 한 괘(卦)가 되었는데, 소녀(少女)는 위에 있고 중녀(中女)는 아래에 있어서 뜻이 서로 맞지 못한다. 그러므로 그 괘(卦)가 혁(革)이 된 것이다. 변혁(變革)하는 초기에는 사람들이 믿지 않으므로 반드시 하루가 지난 뒤에야 믿는 것이요, 또 안에는 문명(文明)한 덕(德)이 있고 밖에는 화열(和說)한 기운이 있으므로 그 점(占)이 마땅히 변혁(變革)할 바가 있으면 모두 크게 형통(亨通)하고 그 바름을 얻어 개혁(改革)하는 바가 모두 마땅해서 개혁(改革)하는 바의 뉘우침이 없어지는 것이다. 한 가지라도 부정(不正)함이 있으면 개혁(改革)하는 바가 신임(信任)을 받지 못하고 통하지 못하여 도리어 뉘우침이 있을 것이다.
彖曰 革은 水火相息하며 二女同居하되 其志不相得이 曰革이라.
〈단전(彖傳)〉에 말하였다. “혁(革)은 물과 불이 서로 멸식(滅息)하며 두 여자(女子)가 한 곳에 같이 살되 그 뜻이 서로 맞지 못함이 혁(革)이다.
【傳】 澤火는 相滅息하며 又二女志不相得이라 故爲革이라 息은 爲止息이요 又爲生息이니 物止而後有生이라 故爲生義라 革之相息은 謂止息也라.
못과 불은 서로 멸식(滅息)하며, 또 두 여자(女子)가 뜻이 서로 맞지 못한다. 그러므로 혁(革)이라 한 것이다. 식(息)은 그침이 되고 또 생겨남이 되니, 사물이 그친 뒤에 생겨남이 있으므로 생겨나는 뜻이 된다. 혁(革)이 서로 멸식(滅息)함은 지식(止息)함을 이른다.
【本義】 以卦象으로 釋卦名義라 大略與睽相似나 然以相違而爲睽요 相息而爲革也라 息은 滅息也요 又爲生息之義하니 滅息而後生息也라.
괘상(卦象)으로 괘명(卦名)의 뜻을 해석하였다. 대략 규괘(睽卦)와 서로 비슷하나 서로 떠남으로써 규(睽)가 되고 서로 멸식(滅息)함으로써 혁(革)이 되었다. 식(息)은 멸식(滅息)함이며 또 생식(生息)의 뜻이 되니, 멸식(滅息)한 뒤에 생식(生息)하게 된다.
已日乃孚는 革而信之라.
하루가 지나서야 믿음은 개혁(改革)하여 믿게 하는 것이다.
【傳】 事之變革에 人心豈能便信이리오 必終日而後孚라 在上者於改爲之際에 當詳告申令하여 至於已日하여 使人信之니 人心不信이면 雖强之行이라도 不能成也라 先王政令을 人心이 始以爲疑者有矣나 然其久也必信이니 終不孚而成善治者 未之有也니라.
일을 변혁(變革)할 때에 인심(人心)이 어찌 대번에 믿겠는가. 반드시 하루가 지난 뒤에야 믿어준다. 위에 있는 자가 개혁(改革)하는 즈음에 마땅히 상세히 알리고 명령을 펴서 하루가 지남에 이르러 사람들이 믿게 하여야 하니, 인심(人心)이 믿지 않으면 비록 억지로 시행하더라도 성공하지 못한다. 선왕(先王)의 정령(政令)을 인심(人心)이 처음에는 의심하는 이들이 있었으나 오래됨에 반드시 믿었으니, 끝내 믿게 하지 않고서 선치(善治)를 이룬 없었다.
文明以說하여 大亨以正하니 革而當할새 其悔乃亡하니라.
문명(文明)하고 기뻐하여 크게 형통(亨通)하고 바르니, 개혁(改革)하여 마땅하기에 뉘우침이 이에 없어진 것이다.
【傳】 以卦才로 言革之道也라 離爲文明이요 兌爲說이니 文明則理无不盡이요 事无不察이며 說則人心和順이라 革而能照察事理하고 和順人心이면 可致大亨而得貞正이니 如是면 變革이 得其至當이라 故悔亡也라 天下之事 革之不得其道면 則反致弊害라 故革有悔之道하니 唯革之至當이면 則新舊之悔 皆亡也라.
괘재(卦才)로써 개혁(改革)하는 도리를 말하였다. 이(離)는 문명(文明)이 되고 태(兌)는 기뻐함이 되니, 문명(文明)하면 이치가 다하지 않음이 없고 일이 살피지 않음이 없으며, 기뻐하면 인심(人心)이 화하고 순하다. 개혁(改革)하여 사리(事理)에 비추어 살피고 인심(人心)에 화하고 순하면 대형(大亨)을 이루고 정정(貞正)함을 얻을 수 있으니, 이와 같으면 변혁(變革)함이 지극히 마땅함을 얻게 된다. 그러므로 뉘우침이 없어진 것이다. 천하(天下)의 일은 개혁(改革)함이 그 도리에 맞지 않으면 도리어 폐해(弊害)를 이룬다. 그러므로 혁(革)에는 뉘우침의 도(道)가 있으니, 오직 개혁(改革)하기를 지극히 마땅하게 하면 신구(新舊)의 뉘우침이 다 없어진다.
【本義】 以卦德으로 釋卦辭라.
괘덕(卦德)으로 괘사(卦辭)를 해석하였다.
天地革而四時成하며 湯武革命하여 順乎天而應乎人하니 革之時大矣哉라.
천지(天地)가 변혁(變革)하여 사시(四時)가 이루어지며 탕(湯)·무(武)가 혁명(革命)을 하여 하늘에 순하고 사람들에게 응(應)하였으니, 혁(革)의 때가 크도다.”
【傳】 推革之道하여 極乎天地變易, 時運終始也라 天地陰陽이 推遷改易而成四時하니 萬物이 於是生長成終이 各得其宜하니 革而後四時成也라 時運旣終이면 必有革而新之者니 王者之興에 受命於天이라 故易世를 謂之革命이라 湯武之王이 上順天命하고 下應人心하니 順乎天而應乎人也라 天道變改와 世故[一作事]遷易은 革之至大也라 故贊之曰 革之時大矣哉라 하니라.
혁(革)의 도(道)를 미루어 천지(天地)의 변혁(變革)과 시운(時運)의 종시(終始)를 지극히 하였다. 천지(天地)의 음양(陰陽)이 미루어 옮기고 개역(改易)하여 사시(四時)를 이루니, 만물(萬物)이 이에 낳고 자라고 이루고 마침이 각각 그 마땅함을 얻으니, 변혁(變革)한 뒤에 사시(四時)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시운(時運)이 이미 끝나면 반드시 개혁(改革)하여 새롭게 하는 이가 있으니, 왕자(王者)가 일어날 때에 하늘에 명(命)을 받으므로 대를 바꿈을 혁명(革命)이라 이른다. 탕왕(湯王)과 무왕(武王)이 위로 천명(天命)에 순종하고 아래로 인심(人心)에 응(應)하니, 이는 하늘에 순히 하고 사람에게 응(應)한 것이다. 천도(天道)의 변개(變改)와 세고(世故)의 옮기고 바뀜은 변혁(變革)의 지극히 큰 것이다. 그러므로 혁(革)의 때가 크다고 찬미한 것이다.
【本義】 極言而贊其大也라.
극언(極言)하여 그 큼을 찬미한 것이다.
象曰 澤中有火革이니 君子以하여 治歷(曆)明時하나니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못 가운데 불이 있음이 혁(革)이니, 군자(君子)가 이로써 역수(曆數)를 다스려 때를 밝힌다.”
【傳】 水火相息이 爲革이니 革은 變也라 君子觀變革之象하여 推日月星辰之遷易하여 以治歷數하여 明四時之序也라 夫變易之道는 事之至大와 理之至明과 跡之至著가 莫如四時하니 觀四時而順變革이면 則與天地合其序矣리라.
물과 불이 서로 멸식(滅息)함이 혁(革)이니, 혁(革)은 변혁(變革)이다. 군자(君子)가 변혁(變革)의 상(象)을 관찰하여 해와 달과 성신(星辰)의 옮기고 바뀜을 미루어 역수(曆數)를 다스려서 사시(四時)의 차례를 밝힌다. 변혁(變革)의 도(道)는 일의 지극히 큼과 이치의 지극히 밝음과 자취의 지극히 드러남이 사시(四時)만한 것이 없으니, 사시(四時)를 관찰하여 변혁(變革)에 순응하면 천지(天地)와 더불어 그 차례가 합하리라.
【本義】 四時之變은 革之大者라
사시(四時)의 변화(變化)는 변혁(變革)의 큰 것이다.
初九는 鞏用黃牛之革이니라.
초구(初九)는 공고히 하되 황소가죽을 쓴다.
【傳】 變革은 事之大也니 必有其時, 有其位, 有其才하여 審慮而愼動而後에 可以无悔라 九는 以時則初也니 動於事初면 則无審愼之意而有躁易之象이요 以位則下也니 无時无援而動於下면 則有僭妄之咎而无體勢之重이요 以才則離體而陽也니 離性上而剛體健하여 皆速於動也라 其才如此하니 有爲則凶咎至矣리라 蓋剛不中而體躁에 所不足者는 中與順也니 當以中順自固而无妄動이면 則可也라 鞏은 局束也요 革은 所以包束이며 黃은 中色이요 牛는 順物이니 鞏用黃牛之革은 謂以中順之道自固하여 不妄動也라 不云吉凶은 何也오 曰 妄動則有凶咎요 以中順自固則不革而已니 安得便有吉凶乎아.
변혁(變革)은 일의 큰 것이니, 반드시 때가 있고 지위가 있고 재주가 있어서 살펴 생각하고 신중히 동한 뒤에 뉘우침이 없을 수 있다. 구(九)는 때로써 보면 초(初)이니 일의 초기에 동하면 살피고 삼가는 뜻이 없어 조급하고 함부로 하는 상(象)이 있으며, 지위로써 보면 아래이니 때가 없고 원조(援助)가 없으면서 아래에서 동하면 참람하고 망령된 허물이 있고 체세(體勢)의 중함이 없으며, 재주로써 보면 이(離)의 체(體)로서 양(陽)이니 이(離)의 성질은 올라가고 강(剛)의 체(體)는 굳세어 모두 동함에 신속하다. 그 재질이 이와 같으니, 일을 함이 있으면 흉구(凶咎)가 이를 것이다. 강(剛)하고 중(中)하지 못하면서 체(體)가 조급함에 부족한 것은 중(中)과 순(順)이니, 마땅히 중순(中順)으로써 스스로 견고(堅固)히 하고 망동(妄動)함이 없으면 가(可)하다. 공(鞏)은 묶음이요 혁(革)은 묶음을 싸는 것이며, 황(黃)은 중앙의 색이요 우(牛)는 순한 물건이니, 공고히 하되 황소가죽을 쓴다는 것은 중순(中順)한 도(道)로써 스스로 굳게 지키고 망동(妄動)하지 않음을 이른다. 길(吉)·흉(凶)을 말하지 않음은 어째서인가? 망동(妄動)하면 흉구(凶咎)가 있을 것이요, 중순(中順)으로써 스스로 견고히 하면 변혁(變革)하지 않을 뿐이니, 어찌 곧 길(吉)·흉(凶)이 있겠는가.
【本義】 雖當革時나 居初无應하여 未可有爲라 故爲此象이라 鞏은 固也라 黃은 中色이요 牛는 順物이며 革은 所以固物이니 亦取卦名而義不同也라 其占이 爲當堅確固守요 而不可以有爲니 聖人之於變革에 其謹如此시니라.
비록 변혁(變革)할 때를 당했으나 초(初)에 거하고 응(應)이 없어 일을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이 상(象)이 된 것이다. 공(鞏)은 공고함이다. 황(黃)은 중앙의 색이요 우(牛)는 순한 물건이며 가죽은 물건을 견고히 하는 것이니, 또한 괘(卦)의 이름을 취했으나 뜻은 같지 않다. 점(占)이 마땅히 견확(堅確)히 굳게 지킬 것이요 일함이 있어서는 안 되니, 성인(聖人)이 변혁(變革)에 있어 삼감이 이와 같다.
象曰 鞏用黃牛는 不可以有爲也일새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공고히 하되 황소가죽을 쓴다는 것은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傳】 以初九時位才 皆不可以有爲라 故當以中順自固也라.
초구(初九)의 때와 지위와 재주가 모두 일을 할 수 없으므로 마땅히 중순(中順)으로써 스스로 견고히 하여야 하는 것이다.
六二는 已日이어야 乃革之니 征이면 吉하여 无咎하리라.
육이(六二)는 하루가 지나서야 개혁(改革)할 수 있으니, 그대로 가면 길하여 허물이 없으리라.
【本義】 已日乃革之면 征吉하여,
【본의】 하루가 지나서 개혁하면 감에 길(吉)하여,
【傳】 以六居二하여 柔順而得中正하고 又文明之主로 上有剛陽之君이 同德相應하니 中正則无偏蔽요 文明則盡事理요 應上則得權勢요 體順則无違悖라 時可矣요 位得矣요 才足矣니 處革之至善者也라 然臣道는 不當爲革之先이요 又必待上下之信이라 故已日乃革之也라 如二之才德은 所居之地와 所(進)[逢]之時가 足以革天下之弊하고 新天下之治하니 當進而上輔於君하여 以行其道면 則吉而无咎也요 不進則失可爲之時하여 爲有咎也라 以二體柔而處當位하니 體柔則其進緩이요 當位則其處固니 變革者는 事之大라 故有此戒하니라 二得中而應剛하여 未至失於柔也로되 聖人이 因其有可戒之疑하여 而明其義耳니 使賢才不失可爲之時也라.
육(六)으로서 이(二)에 거하여 유순(柔順)하고 중정(中正)을 얻었으며, 또 문명(文明)의 주체로 위에 강양(剛陽)의 군주(君主)가 덕(德)을 함께 하여 서로 응(應)함이 있으니, 중정(中正)하면 편벽되거나 가리움이 없고 문명(文明)하면 사리(事理)를 다하며 위에 응(應)이 있으면 권세(權勢)를 얻고 체(體)가 순하면 어그러짐이 없다. 때가 가하고 지위가 얻어졌고 재주가 족하니, 혁(革)에 대처하기를 지극히 잘하는 이이다. 그러나 신하(臣下)의 도리는 개혁(改革)의 선봉이 되어서는 안 되고 또 반드시 상하(上下)의 믿음을 기다려야 한다. 그러므로 하루가 지나서야 개혁(改革)하는 것이다. 이(二)와 같은 재주와 덕(德)은 거한 지위와 만난 때가 천하(天下)의 폐해(弊害)를 개혁(改革)하고 천하(天下)의 정치(政治)를 혁신(革新)할 만하니, 마땅히 나아가 위로 군주(君主)를 보필하여 그 도(道)를 행하면 길(吉)하여 허물이 없을 것이요, 나아가지 않으면 할 수 있는 시기를 놓쳐 허물이 있음이 된다. 이(二)는 체(體)가 유(柔)하고 처함이 지위에 마땅하니, 체(體)가 유(柔)하면 나아감이 느리고 지위에 마땅하면 처함이 견고(堅固)하니, 변혁(變革)은 큰일이므로 이러한 경계가 있는 것이다. 이(二)가 중(中)을 얻고 강(剛)과 응(應)하여 유(柔)에 지나침에 이르지 않을 것이나 성인(聖人)이 경계할 만한 의심이 있음을 인하여 그 뜻을 밝히신 것이니, 현재(賢才)가 할 수 있는 시기를 잃지 않게 하신 것이다.
【本義】 六二柔順中正而爲文明之主하여 有應於上하니 於是可以革矣라 然必已日然後革之면 則征吉而无咎니 戒占者猶未可遽變也라.
육이(六二)는 유순(柔順)하고 중정(中正)하며 문명(文明)의 주체가 되어 위에 응(應)이 있으니, 이에 변혁(變革)할 수 있다. 그러나 반드시 하루가 지난 뒤에 변혁(變革)할 경우 가면 길하여 허물이 없을 것이니, 점치는 이에게 아직도 대번에 변할 수 없음을 경계한 것이다.
象曰 已日革之는 行有嘉也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하루가 지나야 개혁(改革)함은 감에 아름다운 경사가 있는 것이다.”
【傳】 已日而革之니 征則吉而无咎者는 行則有嘉慶也니 謂可以革天下之弊하고 新天下之事라 處而不行이면 是无救弊濟世之心이니 失時而有咎也라.
하루가 지나 개혁(改革)해야 하니, 가면 길하여 허물이 없다는 것은 가면 아름다운 경사가 있다는 것이니, 천하(天下)의 폐해(弊害)를 개혁(改革)하고 천하(天下)의 일을 혁신(革新)할 수 있음을 이른다. 처하고 가지 않으면 이는 폐해(弊害)를 구제하고 세상을 구제할 마음이 없는 것이니, 시기를 놓쳐 허물이 있게 된다.
九三은 征이면 凶하니 貞厲할지니 革言이 三就면 有孚리라.
구삼(九三)은 가면 흉(凶)하니, 정도(正道)를 지키고 위태로운 마음을 품어야 하니, 개혁(改革)하여야 한다는 말이 세 번 합하면 믿음이 있으리라.
【本義】 征이면 凶하고 貞이면 厲하니,
【본의】 가면 흉하고 정고(貞固)하면 위태로우니,
【傳】 九三은 以剛陽爲下之上하고 又居離之上하여 而不得中하니 躁動於革者也라 在下而躁於變革하니 以是而行이면 則有凶也라 然居下之上하여 事苟當革이면 豈可不爲也리오 在乎守貞正而懷危懼하고 順從公論이면 則可行之不疑리라 革言은 (猶)[謂]當革之論이라 就는 成也, 合也니 審察當革之言하여 至於三而皆合이면 則可信也라 言重愼之至能如是면 則必得至當하여 乃有孚也니 己可信而衆所信也如此면 則可以革矣라 在革之時하여 居下之上하니 事之[一作有] 當革을 若畏懼而不爲면 則失時爲害요 唯當愼重之至하여 不自任其剛明하고 審稽公論하여 至於三就[一作復]而後革之면 則无過矣리라.
구삼(九三)은 강양(剛陽)으로 하괘(下卦)의 위가 되었고 또 이(離)의 위에 처하여 중(中)을 얻지 못했으니, 변혁(變革)에 조급히 동하는 것이다. 아래에 있으면서 변혁(變革)을 조급히 하니, 이로써 가면 흉함이 있다. 그러나 하체(下體)의 위에 거하여 진실로 마땅히 개혁(改革)하여야 할 일이라면 어찌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정정(貞正)을 지키고 위태로운 마음을 품으며 공론(公論)을 순히 따르면 행할 수 있음을 의심할 것이 없다. ‘혁언(革言)’은 마땅히 개혁(改革)하여야 한다는 의론(議論)을 이른다. 취(就)는 이룸이며 합함이니, 마땅히 개혁(改革)하여야 한다는 말을 살펴보아 세 번 모두 합함에 이른다면 믿을 수 있는 것이다. 신중함의 지극함이 이와 같으면 반드시 지당함을 얻어 이에 믿음이 있음을 말한 것이니, 자기가 자신할 수 있고 사람들이 믿는 바가 이와 같다면 변혁(變革)할 수 있는 것이다. 혁(革)의 때에 있어 하체(下體)의 위에 거하였으니, 마땅히 개혁(改革)하여야 할 일을 만일 두려워하여 하지 않는다면 때를 놓쳐 해(害)가 될 것이요, 오직 마땅히 신중함을 지극히 하여 스스로 강명(剛明)함을 믿지 말고 공론(公論)을 살피고 상고하여 세 번 합함에 이른 뒤에 개혁(改革)하면 허물이 없을 것이다.
【本義】 過剛不中하고 居離之極하니 躁動於革者也라 故其占이 有征凶貞厲之戒라 然其時則當革이라 故至於革言三就면 則亦有孚而可革也라.
과강(過剛)으로 중(中)하지 못하고 이(離)의 극(極)에 거하였으니, 변혁(變革)에 조급히 동하는 이이다. 그러므로 그 점(占)이 가면 흉하고 정고(貞固)함을 지키면 위태롭다는 경계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때가 마땅히 변혁(變革)해야 할 시기이므로 개혁(改革)하자는 말이 세 번 합함에 이르면 역시 믿음이 있어 변혁(變革)할 수 있는 것이다.
象曰 革言三就어니 又何之矣리오.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개혁(改革)하여야 한다는 말이 세 번 합했으니, 또 어디로 가겠는가?”
【傳】 稽之衆論하여 至於三就면 事至當也라 又何之矣는 乃俗語更何往也라 如是而行이면 乃順理時行이요 非己之私意所欲爲也니 必得其宜矣리라.
여러 사람의 의논에 상고해 보아 세 번 합함에 이르렀다면 일이 지극히 마땅한 것이다. ‘우하지의(又何之矣)’는 바로 속담(俗談)에 ‘다시 어디로 가겠느냐’는 말이다. 이와 같이 하여 행한다면 바로 이치를 순히 하여 때로 행함이요 자신의 사사로운 마음으로 하고자 함이 아니니, 반드시 그 마땅함을 얻으리라.
【本義】 言已審이라,
이미 자세히 살폈음을 말한 것이다.
九四는 悔亡하니 有孚면 改命하여 吉하리라.
구사(九四)는 뉘우침이 없으니 믿음이 있으면 명(命)을 고쳐 길하리라.
【傳】 九四는 革之盛也요 陽剛은 革之才也요 離下體而進上體는 革之時也요 居水火之際는 革之勢也요 得近君之位는 革之任也요 下无係[一有无字]應은 革之志也요 以九居四하여 剛柔相際는 革之用也라 四旣具此하니 可謂當革之時也라 事之可悔而後革之니 革之而當이면 其悔乃亡也라 革之旣當이면 唯在處之以至誠이라 故有孚則改命吉이라 改命은 改爲也니 謂革之也라 旣事當而弊革하니 行之以誠하여 上信而下順이면 其吉可知니라 四非中正而至善은 何也오 曰 唯其處柔也라 故剛而不過하고 近而不逼하여 順承中正之君하니 乃中正之人也라 易之取義无常也하여 隨時而已니라.
구사(九四)는 변혁(變革)의 성함이요, 양강(陽剛)은 변혁(變革)할 수 있는 재주요, 하체(下體)를 떠나 상체(上體)로 나아감은 개혁(改革)할 시기요, 수화(水火)의 즈음에 거함은 개혁(改革)할 형세(形勢)요, 군주(君主)와 가까운 지위에 거함은 개혁(改革)할 임무를 맡은 것이요, 아래에 계응(係應)이 없음은 개혁(改革)할 의지(意志)요, 구(九)로서 사(四)에 거하여 강유(剛柔)가 서로 교제함은 개혁(改革)의 재용(材用)이다. 사(四)가 이미 이것을 갖추고 있으니, 개혁(改革)할 때를 당했다고 이를 만하다. 일이 뉘우칠만한 뒤에 변혁(變革)하니, 변혁(變革)하여 마땅하면 그 뉘우침이 이에 없어지는 것이다. 개혁(改革)함이 이미 마땅하면 오직 지성(至誠)으로 처함에 달려있다. 그러므로 믿음이 있으면 명(命)을 고쳐 길한 것이다. ‘개명(改命)’은 고쳐 만드는 것이니, 변혁(變革)함을 이른다. 일이 이미 마땅하고 폐해(弊害)가 개혁(改革)되었으니, 정성으로써 행하여 윗사람이 믿어주고 아랫사람이 순종하면 길함을 알 수 있다. 사(四)는 중정(中正)이 아닌데도 지극히 선(善)함은 어째서인가? 이는 오직 유(柔)에 처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강(剛)하나 과(過)하지 않고 가까우나 핍박하지 않아 중정(中正)한 군주(君主)를 순히 받드니, 바로 중정(中正)한 사람이다. 역(易)에서 뜻을 취함은 일정함이 없어서 때에 따라 할 뿐이다.
【本義】 以陽居陰이라 故有悔라 然卦已過中하고 水火之際는 乃革之時而剛柔不偏하니 又革之用也니 是以悔亡이라 然又必有孚然後革이라야 乃可獲吉이니 明占者有其德而當其時하고 又必有信이라야 乃悔亡而得吉也라.
양(陽)으로서 음위(陰位)에 거하였다. 그러므로 뉘우침이 있으나 괘(卦)가 이미 중(中)을 지났고 수(水)·화(火)의 즈음은 바로 개혁(改革)할 시기인데 강(剛)·유(柔)가 편벽되지 않으니, 또 개혁(改革)의 재용(材用)이니, 이 때문에 뉘우침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또 반드시 믿음이 있은 뒤에 고쳐야 길함을 얻을 수 있으니, 점치는 이가 이러한 덕(德)이 있고 때에 마땅하며 또 반드시 믿음이 있어야 뉘우침이 없어 길함을 얻음을 밝힌 것이다.
象曰 改命之吉은 信志也일새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개명(改命)의 길(吉)함은 상하(上下)가 그 뜻을 믿어주기 때문이다.”
【傳】 改命而吉은 以上下信其志也니 誠旣至면 則上下信矣[一作也]라 革之道는 以上下之信爲本이니 不當, 不孚면 則不信이라 當而不信이라도 猶不可行也어든 況不當乎아.
명(命)을 고쳐 길한 것은 상하(上下)가 그 뜻을 믿어주기 때문이니, 정성이 이미 지극하면 상하(上下)가 믿는다. 변혁(變革)의 도(道)는 상하(上下)의 믿음을 근본으로 삼으니, 마땅하지 않고 정성이 없으면 믿지 않는다. 마땅하기만 하고 믿어주지 않아도 오히려 행할 수 없는데 하물며 마땅하지 않음에랴.
九五는 大人이 虎變이니 未占에 有孚니라.
구오(九五)는 대인(大人)이 범이 변하듯 함이니, 점치지 않고도 믿음이 있다.
【본의】 점치기 전에,
【傳】 九五以陽剛之才, 中正之德으로 居尊位하니 大人也라 以大人之道로 革天下之事면 无不當也요 无不時也니 所過變化하고 事理炳著하여 如虎之文采라 故云虎變이라 하니 龍虎는 大人之象也요 變者는 事物之變이라 曰虎는 何也오 曰 大人變之니 乃大人之變也라 以大人中正之道[一作德]로 變革之면 炳然昭著하여 不待占決하고 知其至當하여 而天下必信也니 天下蒙大人之革이면 不待占決하고 知其至當而信之也리라.
구오(九五)는 양강(陽剛)의 재주와 중정(中正)의 덕(德)으로 존위(尊位)에 거했으니, 대인(大人)이다. 대인(大人)의 도(道)로써 천하(天下)의 일을 변혁(變革)하면 마땅하지 않음이 없고 때에 맞지 않음이 없으니, 지나는 바에 변화가 되고 사리가 밝게 드러나서 범의 문채(文采)와 같다. 그러므로 호변(虎變)이라 말했으니, 용(龍)과 범은 대인(大人)의 상(象)이요 변(變)은 사물의 변화이다. 범이라고 말함은 어째서인가? 대인(大人)이 변혁(變革)하니, 이는 바로 대인(大人)의 변혁인 것이다. 대인(大人)의 중정(中正)한 도(道)로써 변혁(變革)하면 밝게 드러나서 굳이 점쳐 결단하기를 기다리지 않고도 지당함을 알아 천하(天下)가 반드시 믿어 줄 것이니, 천하(天下)가 대인(大人)의 변혁(變革)을 입으면 점쳐 결단하기를 기다리지 않고도 지당함을 알아서 믿어줄 것이다.
【本義】 虎는 大人之象이라 變은 謂希革而毛毨也니 在大人則自新新民之極이요 順天應人之時也라 九五以陽剛中正으로 爲革之主라 故有此象하니 占而得此면 則有此應이라 然亦必自其未占之時로 人已信其如此라야 乃足以當之耳니라.
범은 대인(大人)의 상(象)이다. 변(變)은 가죽에 털이 드물어져 털갈이함을 이르니, 대인(大人)에 있어서는 스스로 새롭게 하고 백성을 새롭게 함의 지극함이요, 하늘에 순응하고 사람에 응(應)하는 때이다. 구오(九五)가 양강중정(陽剛中正)으로 변혁(變革)의 주체가 되었다. 그러므로 이러한 상(象)이 있으니, 점쳐서 이것을 얻으면 이러한 응험(應驗)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역시 반드시 점치지 않았을 때로부터 사람들이 이미 이와 같음을 믿어야 비로소 이에 해당할 것이다.
象曰 大人虎變은 其文이 炳也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대인(大人)이 호변(虎變)함은 그 문채(文采)가 빛남이다.”
【傳】 事理明著하여 若虎文之炳煥明盛也하니 天下有不孚乎아.
사리(事理)가 밝게 드러나서 범의 문채(文采)가 밝음이 성함과 같으니, 천하(天下)에 믿지 않는 이가 있겠는가.
上六은 君子는 豹變이요 小人은 革面이니 征이면 凶하고 居貞이면 吉하리라.
상육(上六)은 군자(君子)는 표범이 변하듯 하고 소인(小人)은 얼굴만 변하니, 가면 흉하고 정도(貞道)에 거하면 길하리라.
【傳】 革之終은 革道之成也라 君子는 謂善人이니 良善則已從革而變하여 其著見(현)이 若豹之彬蔚也요 小人은 昏愚難遷者니 雖未能心化나 亦革其面하여 以從上之敎令也라 龍虎는 大人之象이라 故大人云虎하고 君子云豹也라 人性本善하여 皆可以變化나 然有下愚하여 雖聖人이라도 不能移者라 以堯舜爲君하여 以聖繼聖을 百有餘年하니 天下被化 可謂深且久矣로되 而有苗, 有象이 其來格, 烝乂는 蓋亦革面而已라.
혁(革)의 종(終)은 혁도(革道)가 완성된 것이다. 군자(君子)는 선인(善人)을 이르니, 선량한 사람은 이미 개혁(改革)을 따라 변하여 그 드러남이 표범의 문채(文采)가 성함과 같고, 소인(小人)은 혼우(昏愚)하여 고치기 어려운 이이니, 비록 마음은 교화되지 못하나 역시 얼굴을 고쳐 윗사람의 명령과 가르침을 따르게 된다. 용(龍)과 범은 대인(大人)의 상(象)이다. 그러므로 대인(大人)을 호(虎)라 이르고 군자(君子)를 표(豹)라 이른 것이다. 사람의 성(性)은 본래 선(善)하여 다 변화할 수 있으나 하우(下愚)가 있어 비록 성인(聖人)이라도 바꿀 수 없는 이가 있다. 요(堯)·순(舜)을 군주(君主)로 삼아 성인(聖人)으로 성인(聖人)을 잇기를 백여 년을 하였으니, 천하(天下)가 교화(敎化)를 입음이 깊고 또 오래다고 이를 만하였으나 유묘(有苗)와 상(象)이 와서 항복하고 꾸준히 다스려짐은 또한 얼굴만 고쳤을 뿐이다.
小人이 旣革其外면 革道可以爲成也니 苟更從而深治之면 則爲已甚이니 已甚은 非道也라 故至革之終而又征則凶也니 當貞固以自守라 革至於極而不守以貞이면 則所革이 隨復變矣리라 天下之事는 始則患乎難革이요 已革則患乎不能守也라 故革之終은 戒以居貞則吉也니라 居貞은 非爲六戒乎아 曰 爲革終言也니 莫不在其中矣니라 人性本善이어늘 有不可革者는 何也오 曰 語其性則皆善也어니와 語其才則有下愚之不移라 所謂下愚有二焉하니 自暴也[一无也字], 自棄也라 人苟以善自治면 則无不可移者하니 雖昏愚之至라도 皆可漸磨而進也어니와 唯自暴者는 拒之以不信하고 自棄者는 絶之以不爲하니 雖聖人與居라도 不能化而入也니 仲尼之所謂下愚也라 然天下에 自棄自暴者 非必皆昏愚也요 往往强戾而才力有過人者하니 商辛이 是也라 聖人이 以其自絶於善이라 하여 謂之下愚라 然考其歸하면 則誠愚也니라 旣曰下愚어늘 其能革面은 何也오 曰 心雖絶於善道나 其畏威而寡罪면 則與人同也라 唯其有與人同하니 所以知其非性之罪也니라.
소인(小人)이 이미 그 외모를 고쳤으면 혁(革)의 도(道)가 이루어진 것이니, 만일 다시 따라서 깊이 다스리려고 하면 너무 심함이 되니, 너무 심한 것은 도(道)가 아니다. 그러므로 혁(革)의 종(終)에 이르러 또다시 가면 흉한 것이니, 마땅히 정고(貞固)히 스스로 지켜야 한다. 변혁(變革)이 극(極)에 이르렀는데 정도(正道)로써 지키지 않으면 변혁(變革)한 것이 따라서 다시 변하게 된다. 천하(天下)의 일은 처음에는 변혁(變革)하기 어려움을 걱정하고, 이미 변혁(變革)하면 지키지 못함을 걱정한다. 그러므로 혁(革)의 종(終)은 정도(貞道)에 거하면 길하다고 경계한 것이다. 정도(貞道)에 거하라 함은 육(六)을 위하여 경계한 것이 아니겠는가? 혁(革)의 종(終)이기 때문에 말한 것이니, 이 안에 들어 있지 않음이 없다. 사람의 성(性)은 본래 선(善)한데 변혁(變革)할 수 없는 이가 있음은 어째서인가? 그 성(性)을 말하면 모두 선(善)하나 그 재질을 말하면 변할 수 없는 하우(下愚)가 있는 것이다. 이른바 하우(下愚)라는 것이 두 가지가 있으니, 자포(自暴)와 자기(自棄)이다. 사람이 만일 선(善)으로써 스스로 다스리면 고칠 수 없는 이가 없으니, 비록 혼우(昏愚)함이 지극하더라도 모두 점점 연마(硏磨)하여 나아갈 수 있으나 오직 자포(自暴)하는 이는 거절하여 불신(不信)하고 자기(自棄)하는 이는 체념하여 하지 않으니, 비록 성인(聖人)과 더불어 거처하더라도 교화(敎化)하여 들어가지 못하니, 중니(仲尼)의 이른바 하우(下愚)라는 것이다. 그러나 천하(天下)에 자포(自暴)·자기(自棄)하는 이가 반드시 다 혼우(昏愚)한 것은 아니요, 왕왕 강(强)하고 사나우며 재주와 힘이 남보다 뛰어난 이가 있으니, 주왕(紂王)이 이 경우이다. 성인(聖人)이 스스로 선(善)을 끊는다 하여 하우(下愚)라고 이름하였다. 그러나 그 귀결(歸結)을 살펴보면 참으로 어리석은 것이다. 이미 하우(下愚)라고 말했는데 얼굴을 고침은 어째서인가? 마음은 비록 선도(善道)를 끊었으나 위엄을 두려워하여 죄를 적게 하면 일반인과 동일해진다. 오직 일반인과 동일해짐이 있으니, 이 때문에 성(性)의 죄가 아님을 아는 것이다.
【本義】 革道已成하니 君子는 如豹之變이요 小人은 亦革面以聽從矣라 不可以往而居正則吉은 變革之事는 非得已者니 不可以過요 而上六之才 亦不可以有行也라 故占者如之니라.
변혁(變革)하는 도(道)가 이미 이루어졌으니, 군자(君子)는 표범이 변하듯 할 것이요 소인(小人)은 역시 얼굴을 고쳐 듣고 따른다. ‘갈 수는 없고 정도(正道)에 거하면 길(吉)하다’는 것은 변혁(變革)의 일은 부득이한 경우이니, 과(過)하게 해서는 안 되고 상육(上六)의 재주가 또한 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점치는 이도 이와 같은 것이다.
象曰 君子豹變은 其文이 蔚也요 小人革面은 順以從君也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군자(君子)가 표변(豹變)함은 문채가 성한 것이요, 소인(小人)이 얼굴을 고침은 순히 하여 군주(君主)를 따르는 것이다.”
【傳】 君子從化遷善하여 成文彬蔚하여 章見於外也라 中人以上은 莫不變革이요 雖[一作唯]不移之小人이라도 則亦不敢肆其惡하고 革易其外하여 以順從君上之敎令하리니 是革面也니 至此면 革道成矣라 小人勉而假善은 君子所容也니 更往而治之면 則凶矣니라.
군자(君子)는 교화(敎化)를 따라 개과천선(改過遷善)하여 문채(文采)를 이룸이 찬란해서 아름다움이 밖에 드러난다. 중인(中人) 이상은 변혁(變革)하지 않는 이가 없을 것이요, 비록 고치지 못하는 소인(小人)이라도 역시 감히 악함을 부리지 못하고 외면을 바꾸어 군상(君上)의 가르침과 명령(命令)을 순종할 것이니, 이것이 혁면(革面)이니, 이에 이르면 변혁(變革)의 도(道)가 이루어진 것이다. 소인(小人)이 억지로 힘써 선행(善行)을 꾸밈은 군자(君子)가 용납해 주는 바이니, 다시 가서 다스리면 흉하다.

49. 혁(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