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 환(渙)
【傳】 渙은 序卦에 兌者는 說也니 說而後散之라 故受之以渙이라 하니라 說則舒散也니 人之氣 憂則結聚하고 說則舒散이라 故說有散義하니 渙所以繼兌也라 爲卦 巽上坎下하니 風行於水上하여 水遇風則渙散이니 所以爲渙也라.
환괘(渙卦)는 〈서괘전(序卦傳)〉에 “태(兌)는 기뻐함이니, 기뻐한 뒤에 흩어지므로 환괘(渙卦)로써 받았다.” 하였다. 기뻐하면 풀어지고 흩어지니, 사람의 기운은 근심하면 맺히고 모이고, 기뻐하면 풀어지고 흩어진다. 그러므로 기뻐함에 흩어지는 뜻이 있으니 환괘(渙卦)가 이 때문에 태괘(兌卦)를 이은 것이다. 괘(卦)됨이 손(巽)이 위에 있고 감(坎)이 아래에 있으니, 바람이 물 위에 행하여 물이 바람을 만나면 흩어지니, 이 때문에 환(渙)이라 한 것이다.
渙은 亨하니 王假(격)有廟며 利涉大川하니 利貞하니라.
환(渙)은 형통(亨通)하니, 왕(王)이 사당(祠堂)을 둠에 지극하며 대천(大川)을 건넘이 이로우니, 정(貞)함이 이롭다.
【본의】 사당(祠堂)에 이르며,
【傳】 渙은 離散也라 人之離散은 由乎中하니 人心離則散矣요 治乎散도 亦本於[一作必由]中하니 能[一有利貞字]收合人心이면 則散可聚也라 故卦之義皆主於中하니라 利貞은 合渙散之道 在乎正固也라.
환(渙)은 이산(離散)함이다. 사람의 이산(離散)함은 중심에 말미암으니 인심(人心)이 떠나면 흩어지며, 흩어짐을 다스림 또한 중심에 근본하니 인심(人心)을 수합(收合)하면 흩어짐을 모을 수 있다. 그러므로 괘(卦)의 뜻이 모두 중(中)을 주장하였다. 이정(利貞)은 환산(渙散)을 합하는 도(道)가 정고(貞固)함에 있는 것이다.
【本義】 渙은 散也라 爲卦下坎上巽하니 風行水上하여 離披解散之象이라 故爲渙이라 其變則本自漸卦하니 九來居二而得中하고 六往居三하여 得九之位而上同於四라 故其占可亨이요 又以祖考之精神旣散이라 故王者當至於廟以聚之라 又以巽木坎水는 舟楫之象이라 故利涉大川이라 其曰利貞은 則占者之深戒也라.
환(渙)은 흩어짐이다. 괘(卦)됨이 아래는 감(坎)이고 위는 손(巽)이니, 바람이 물 위에 행하여 어지럽고 흩어지는 상(象)이다. 그러므로 환(渙)이라 한 것이다. 변함은 본래 점괘(漸卦)[ ]로부터 왔으니, 구(九)가 와서 이(二)에 거하여 중(中)을 얻고 육(六)이 가서 삼(三)에 거하여 양구(陽九)의 자리를 얻어 위로 사(四)와 함께 한다. 그러므로 그 점(占)이 형통(亨通)할 수 있으며, 또 조고(祖考)의 정신이 이미 흩어졌으므로 왕(王)이 마땅히 사당(祠堂)에 이르러 모으는 것이다. 또 손(巽)의 목(木)과 감(坎)의 수(水)는 주즙(舟楫)의 상(象)이므로 대천(大川)을 건넘이 이로운 것이다. 이정(利貞)이라고 말한 것은 점치는 이에게 깊이 경계한 것이다.
彖曰 渙亨은 剛來而不窮하고 柔得位乎外而上同할새라.
〈단전(彖傳)〉에 말하였다. “환(渙)이 형통(亨通)함은 강(剛)이 옴에 궁극하지 않고 유(柔)가 밖에서 자리를 얻어 위와 함께 하기 때문이다.
【傳】 渙之能亨者는 以卦才如是也라 渙之成渙은 由九來居二하고 六上居四也라 剛陽之來에 則不窮極於下而處得其中하고 柔之往에 則得正位於外而上同於五之中하니 巽順於五는 乃上同也라 四五는 君臣之位니 當渙而比면 其義相通이니 同五는 乃從中也라 當渙之時而守其中이면 則不至於離散이라 故能亨也라.
환(渙)이 형통(亨通)할 수 있는 것은 괘(卦)의 재질이 이와 같기 때문이다. 환(渙)이 환(渙)이 된 까닭은 구(九)가 와서 이(二)에 거하고 육(六)이 올라가 사(四)에 거하기 때문이다. 강양(剛陽)이 옴에 아래에 궁극하지 않아 처함이 중(中)을 얻고 유(柔)가 감에 밖에서 정위(正位)를 얻어 위로 오(五)의 중(中)과 함께 하니, 오(五)에게 손순(巽順)함은 바로 위와 함께 하는 것이다. 사(四)와 오(五)는 군(君)·신(臣)의 자리이니, 환산(渙散)할 때를 당하여 가까이 있으면 그 뜻이 서로 통하니, 오(五)와 함께 함은 바로 중(中)을 따르는 것이다. 환산(渙散)의 때를 당하여 중(中)을 지키면 이산(離散)함에 이르지 않으므로 형통(亨通)할 수 있는 것이다.
【本義】 以卦變으로 釋卦辭라.
괘변(卦變)으로 괘사(卦辭)를 해석하였다.
王假有廟는 王乃在中也요,
‘왕격유묘(王假有廟)’는 왕(王)이 마침내 중(中)에 있는 것이요,
【傳】 王假有廟之義는 在萃卦詳矣라 天下離散之時에 王者收合人心하여 至於有廟면 乃是在其中也라 在中은 謂求得其中이니 攝其心之謂也니 中者는 心之象이라 剛來而不窮하고 柔得位而上同하니 卦才之義 皆主於中也라 王者拯渙之道는 在得其中而已니 孟子曰 得其民有道하니 得其心이면 斯得民矣라 하시니라 享帝, 立廟는 民心所歸從也니 歸人心之道가 无大於此라 故云至于有廟라 하니 拯渙之道 極於此也라.
‘왕격유묘(王假有廟)’의 뜻은 췌괘(萃卦)에 자세히 나와 있다. 천하(天下)가 이산(離散)하는 때에 왕자(王者)가 인심(人心)을 수합(收合)하여 사당(祠堂)을 둠에 이르면 이는 바로 중(中)에 있는 것이다. 중(中)에 있다는 것은 중(中)을 구하여 얻음을 이르니, 그 마음을 잡는 것이니, 중(中)은 마음의 상(象)이다. 강(剛)이 옴에 궁극하지 않고 유(柔)가 지위를 얻어 위로 함께 하니, 괘재(卦才)의 뜻이 모두 중(中)을 위주한 것이다. 왕자(王者)가 환산(渙散)을 구원하는 도(道)는 중(中)을 얻음에 있을 뿐이니, 맹자(孟子)는 말씀하기를 “백성을 얻는 것이 방법이 있으니, 마음을 얻으면 백성을 얻는다.” 하였다. 상제(上帝)에게 제향(祭享)하고 사당(祠堂)을 세움은 민심(民心)이 돌아오고 따르는 바이니, 인심(人心)을 돌아오게 하는 방도가 이보다 큼이 없다. 그러므로 ‘사당(祠堂)을 둠에 이른다’ 하였으니, 환산(渙散)을 구원하는 도(道)가 여기에 지극한 것이다.
【本義】 中은 謂廟中이라.
중(中)은 사당(祠堂) 가운데를 이른다.
利涉大川은 乘木하여 有功也라.
대천(大川)을 건넘이 이로움은 나무를 타서 공(功)이 있는 것이다.”
【傳】 治渙之道는 當濟於險難이니 而卦有乘木濟川之象이라 上巽은 木也요 下坎은 水, 大川也니 利涉險以濟渙也라 木在水上은 乘木之象이니 乘木은 所以涉川也라 涉則有濟渙之功이니 卦有是義하고 有是象也라.
환산(渙散)을 다스리는 방도는 마땅히 험난함을 구제하여야 하니, 괘(卦)에 나무를 타고 냇물을 건너는 상(象)이 있다. 위의 손(巽)은 나무이고 아래의 감(坎)은 물이며 대천(大川)이니, 험한 것을 건너 환산(渙散)을 구제함이 이로운 것이다. 나무가 물 위에 있음은 나무를 타는 상(象)이니, 나무를 탐은 냇물을 건너는 것이다. 건너면 환산(渙散)을 구제하는 공(功)이 있으니, 괘(卦)에 이러한 뜻이 있고 이러한 상(象)이 있다.
象曰 風行水上이 渙이니 先王이 以하여 享于帝하며 立廟하니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바람이 물 위에 행함이 환(渙)이니, 선왕(先王)이 이로써 상제(上帝)에게 제향(祭享)하고 사당(祠堂)을 세운다.”
【傳】 風行水上은 有渙散之象이니 先王이 觀是象하여 救天下之渙散하여 至于享帝立廟也하니 收合人心은 无如宗廟라 祭祀之報는 出於其心이라 故享帝立廟는 人心之所歸也니 係人心, 合離散之道 无大於此라.
바람이 물 위에 행함은 환산(渙散)하는 상(象)이 있으니, 선왕(先王)이 이 상(象)을 보고서 천하(天下)의 환산(渙散)을 구원하여 상제(上帝)에게 제향(祭享)하고 사당(祠堂)을 세움에 이르렀으니, 인심(人心)을 수합(收合)함은 종묘(宗廟)만한 것이 없다. 제사(祭祀)의 보답은 마음에서 나오기 때문에 상제(上帝)에게 제향(祭享)하고 사당(祠堂)을 세움은 인심(人心)이 돌아오는 바이니, 인심(人心)을 붙들고 이산(離散)을 합치는 방도가 이보다 큰 것이 없다.
【本義】 皆所以合其散이라.
모두 그 흩어짐을 합치는 것이다.
初六은 用拯호되 馬壯하니 吉하니라.
초육(初六)은 써 구원하되 말이 건장하니, 길(吉)하다.
【傳】 六居卦之初하니 渙之始也라 始渙而拯之하고 又得馬壯하니 所以吉也라 六爻에 獨初不云渙者는 離散之勢를 辨之宜早니 方始而拯之면 則不至於渙也니 爲敎深矣라 馬는 人之所託也니 託於壯馬라 故能拯渙이니 馬는 謂二也라 二有剛中之才하고 初陰柔順하며 兩皆无應하니 无應則親比相求라 初之柔順而託於剛中之才하여 以拯其渙하니 如得壯馬以致遠하여 必有濟矣라 故吉也라 渙拯於始면 爲力則易하니 時之順也라.
육(六)이 괘(卦)의 초(初)에 거하였으니, 환산(渙散)의 초기이다. 처음 흩어질 때에 구원하고 또 말이 건장함을 얻었으니, 이 때문에 길(吉)한 것이다. 여섯 효(爻) 중에 오직 초효(初爻)에만 환(渙)을 말하지 않은 것은 이산(離散)하는 형세를 분변하기를 마땅히 일찍 하여야 하니, 막 시작할 때에 구원하면 환산(渙散)함에 이르지 않으니, 가르침이 깊다. 말은 사람이 의탁하는 것이니, 건장한 말에 의탁하기 때문에 환산(渙散)을 구원할 수 있는 것이니, 말은 이(二)를 이른다. 이(二)는 강중(剛中)의 재질이 있고 초음(初陰)은 유순하며 이(二)와 초(初)가 모두 응(應)이 없으니, 응(應)이 없으면 친하고 가까워 서로 구한다. 초(初)가 유순한데 강중(剛中)의 재질에게 의탁하여 환산(渙散)을 구원하니, 마치 건장한 말을 얻어 멈 곳에 이르는 것과 같아 반드시 구제함이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길(吉)한 것이다. 환산(渙散)을 초기에 구원하면 힘쓰기가 쉬우니, 때를 순히 하는 것이다.
【本義】 居卦之初하니 渙之始也니 始渙而拯之면 爲力旣易요 又有壯馬하니 其吉可知라 初六은 非有濟渙之才요 但能順乎九二라 故其象占如此하니라.
괘(卦)의 초(初)에 거하였으니, 환산(渙散)하는 초기이니, 처음 환산(渙散)할 때에 구원하면 힘쓰기가 이미 쉽고 또 건장한 말이 있으니, 그 길(吉)함을 알 수 있다. 초육(初六)은 환산(渙散)을 구제할 수 있는 재질이 있는 것이 아니요, 다만 구이(九二)에게 순종하기 때문에 그 상(象)과 점(占)이 이와 같은 것이다.
象曰 初六之吉은 順也일새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초육(初六)의 길(吉)함은 순하기 때문이다.”
【傳】 初之所以吉者는 以其能順從剛中之才也라 始渙而用拯하니 能順乎時也라.
초(初)가 길(吉)한 까닭은 강중(剛中)의 재질에게 순종하기 때문이다. 처음 환산(渙散)할 때에 구원하니, 때를 순히 하는 것이다.
九二는 渙에 奔其机면 悔亡하리라.
구이(九二)는 환산(渙散)에 안석으로 달려가면 뉘우침이 없어지리라.
【本義】 渙에 奔其机니,
【본의】 환산(渙散)에 궤(机)로 달려감이니,
【傳】 諸爻에 皆云渙하니 謂渙之時也라 在渙離之時하여 而處險中하니 其有悔를 可知니 若能奔就所安이면 則得悔亡也라 机者는 俯憑以爲安者也니 俯는 就下也요 奔은 急往也라 二與初雖非正應이나 而當渙離之時하여 兩皆无與하여 以陰陽親比相求하니 則相賴者也라 故二目初爲机하고 初謂二爲馬라 二急就於初以爲安이면 則能亡其悔矣니 初雖坎體나 而不在險中也일새라 或疑初之柔微를 何足賴리오 하니 蓋渙之時는 合力爲[一作而]勝이라 先儒皆以五爲机하니 非也라 方渙離之時하여 二陽이 豈能同也리오 若能同이면 則成濟渙之功이 當大[一有吉字]하리니 豈止悔亡而已리오 机는 謂俯就也라.
여러 효(爻)에 다 환(渙)이라고 말하였으니, 환산(渙散)의 때를 이른다. 환리(渙離)의 때에 있어 험한 가운데에 처하였으니, 뉘우침이 있음을 알 만하니, 만약 편안한 데로 달려 나아가면 뉘우침이 없어지게 될 것이다. 궤(机)는 구부려 의지하여 편안하게 하는 것이니, 부(俯)는 아래로 나아감이요 분(奔)은 급히 감이다. 이(二)와 초(初)가 비록 정응(正應)이 아니나 환리(渙離)의 때를 당하여 둘이 모두 응여(應與)가 없어 음양(陰陽)이 친하고 가까워 서로 구하니, 서로 의뢰하는 이이다. 그러므로 이(二)는 초(初)를 지목하여 궤(机)라 하고, 초(初)는 이(二)를 일러 마(馬)라 한 것이다. 이(二)가 급히 초(初)에게 나아가 편안하게 여기면 뉘우침을 없앨 수 있으니, 초(初)가 비록 감(坎)의 체(體)이나 험한 가운데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혹자는 ‘초(初)의 유약(柔弱)함을 어찌 의뢰할 수 있겠는가’ 하고 의심하는데, 환산(渙散)의 때에는 힘을 합하는 것을 우세함으로 여긴다. 선유(先儒)는 모두 오(五)를 궤(机)라 하였는데, 잘못이다. 환리(渙離)의 때를 당하여 두 양(陽)이 어찌 함께 할 수 있겠는가. 만약 함께 한다면 환산(渙散)을 구제하는 공(功)을 이룸이 마땅히 클 것이니, 어찌 다만 뉘우침이 없어질 뿐이겠는가. 궤(机)는 구부려 나아감을 말한 것이다.
【本義】 九而居二하니 宜有悔也나 然當渙之時하여 來而不窮하니 能亡其悔者也라 故其象占如此하니 蓋九奔而二机也라.
구(九)로서 이(二)에 거하였으니, 마땅히 뉘우침이 있을 것이나 환산(渙散)의 때를 당하여 옴에 궁극하지 않으니, 그 뉘우침을 없앨 수 있는 이이다. 그러므로 그 상(象)과 점(占)이 이와 같으니, 구(九)는 달려가고 이(二)는 궤(机)인 것이다.
象曰 渙奔其机는 得願也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환산(渙散)에 궤(机)로 달려감은 소원을 얻은 것이다.”
【傳】 渙散之時엔 以合爲安하나니 二居險中하여 急就於初는 求安也라 賴之如机而亡其悔하니 乃得所願也라.
환산(渙散)의 때에는 합하는 것을 편안함으로 삼으니, 이(二)가 험한 가운데에 거하여 급히 초(初)에 나아감은 편안함을 구해서이다. 의뢰하기를 궤(机)와 같이 하여 뉘우침이 없어지니, 이는 소원(所願)을 얻는 것이다.
六三은 渙에 其躬이 无悔니라.
육삼(六三)은 환산(渙散)할 때에 그 몸만 뉘우침이 없다.
【本義】 渙其躬이니 无悔리라.
【본의】 몸을 환산(渙散)함이니, 뉘우침이 없으리라.
【傳】 三在渙時하여 獨有應與하니 无渙散之悔也나 然以陰柔之質, 不中正之才로 上居无位之地하니 豈能拯時之渙而及人也리오 止於其身이 可以无悔而已라 上加渙字는 在渙之時에 躬无渙之悔也라.
삼(三)은 환(渙)의 때에 있어 홀로 응여(應與)가 있으니, 환산(渙散)하는 뉘우침이 없을 것이나 음유(陰柔)의 자질과 중정(中正)하지 못한 재질로서 위로 지위가 없는 자리에 거하였으니, 어찌 세상의 환산(渙散)을 구원하여 남에게 미치겠는가. 그 몸이 뉘우침이 없음에 그칠 뿐이다. 위에 환자(渙字)를 더한 것은 환산(渙散)하는 때에 있어 몸에 환산(渙散)하는 뉘우침이 없는 것이다.
【本義】 陰柔而不中正하니 有私於己之象也나 然居得陽位하여 志在濟時하니 能散其私하여 以得无悔라 故其占如此라 大率此上四爻는 皆因渙以濟渙者也라.
음유(陰柔)로서 중정(中正)하지 못하니, 자기에게 사사로움이 있는 상(象)이나 거함이 양위(陽位)를 얻어 뜻이 때를 구제함에 있으니, 사사로움을 흩어 뉘우침이 없을 수 있다. 그러므로 그 점(占)이 이와 같은 것이다. 대체로 이 위의 네 효(爻)는 환산(渙散)함으로 인하여 환산(渙散)을 구원하는 것이다.
象曰 渙其躬은 志在外也일새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환기궁(渙其躬)’은 뜻이 밖에 있기 때문이다.”
【傳】 志應於上은 在外也니 與上相應이라 故其身이 得免於渙而无悔라 悔亡者는 本有而得亡이요 无悔者는 本无也라.
뜻이 상(上)과 응(應)함은 밖에 있는 것이니, 상(上)과 서로 응(應)하기 때문에 그 몸이 환산(渙散)함을 면하여 뉘우침이 없는 것이다. 회망(悔亡)은 본래 있는데 없어진 것이요, 무회(无悔)는 본래 없는 것이다.
六四는 渙에 其群이라 元吉이니 渙에 有丘는 匪夷所思리라.
육사(六四)는 환산(渙散)에 무리를 이루는지라 대선(大善)의 길(吉)함이니, 환산(渙散)할 때에 언덕처럼 많이 모임은 보통 사람이 생각할 바가 아니리라.
【本義】 渙其群이라,
【본의】 붕당(朋黨)의 무리를 환산(渙散)하는 것이다. 대선(大善)하여 길(吉)하니
【傳】 渙四五二爻義相須라 故通言之하니 彖에 故曰上同也라 하니라 四는 巽順而正하여 居大臣之位하고 五는 剛中而正하여 居君位하니 君臣合力하고 剛柔相濟하여 以拯天下之渙者也라 方渙散之時하여 用剛則不能使之懷附하고 用柔則不足爲之依歸어늘 四以巽順之正道로 輔剛中正之君하여 君臣同功하니 所以能濟渙也라 天下渙散而能[一无能字]使之群聚면 可謂大善之吉也라 渙有丘匪夷所思는 贊美之辭也라 丘는 聚之大也니 方渙散而能致其大聚면 其功甚大요 其事甚難이요 其用至妙라 夷는 平常也니 非平常之見所能思及也라 非大賢智면 孰能如是리오.
환괘(渙卦)의 사(四)와 오(五) 두 효(爻)는 뜻이 서로 필요로 하기 때문에 통틀어 말하였으니, 〈단전(彖傳)〉에 이 때문에 위와 함께 한다고 말한 것이다. 사(四)는 손순(巽順)으로 바르면서 대신(大臣)의 지위에 있고 오(五)는 강중(剛中)으로 바르면서 군위(君位)에 거하였으니, 군신(君臣)이 힘을 합치고 강유(剛柔)가 서로 구제하여 천하(天下)의 환산(渙散)을 구원하는 것이다. 환산(渙散)의 때를 당하여 강(剛)을 쓰면 품어 따르게 할 수 없고 유(柔)를 쓰면 의귀(依歸)하게 할 수 없는데, 사(四)는 손순(巽順)한 정도(正道)로 강중정(剛中正)의 군주(君主)를 보필하여 군신(君臣)이 공(功)을 함께 하니, 이 때문에 환산(渙散)을 구제하는 것이다. 천하(天下)가 환산(渙散)하는데 떼지어 모이게 한다면 대선(大善)의 길(吉)함이라고 이를 만하다. ‘환유구비이소사(渙有丘匪夷所思)’는 찬미(贊美)한 말이다. 언덕은 모임이 큰 것이니, 환산(渙散)할 때를 당하여 큰 모임을 이룬다면 그 공(功)이 매우 크고 그 일이 매우 어렵고 그 쓰임이 지극히 신묘하다. 이(夷)는 보통이니, 보통 사람의 소견으로는 생각하여 미칠 바가 아닌 것이다. 크게 어질고 지혜로운 이가 아니면 누가 이와 같이 하겠는가.
【本義】 居陰得正하고 上承九五하니 當濟渙之任者也요 下无應與하니 爲能散其朋黨之象이라 占者如是면 則大善而吉이라 又言能散其小群하여 以成大群하여 使所散者聚而若丘면 則非常人思慮之所及也라 하니라.
음(陰)에 거하여 정위(正位)를 얻고 위로 구오(九五)를 받드니 환산(渙散)을 구제할 임무를 담당한 이이며, 아래에 응여(應與)가 없으니 그 붕당(朋黨)을 해산하는 상(象)이 된다. 점치는 이가 이와 같이 하면 대선(大善)하여 길(吉)하다. 또 작은 무리를 흩어서 큰 무리를 이루어 흩어진 이들이 언덕처럼 많이 모이게 한다면 상인(常人)들의 사려(思慮)로는 미칠 바가 아님을 말한 것이다.
象曰 渙其群元吉은 光大也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환기군원길(渙其群元吉)’은 광대한 것이다.”
【傳】 稱元吉者는 謂其功德光大也라 元吉光大가 不在五而在四者는 二爻之義를 通言也일새라 於四에 言其施用하고 於五에 言其成功하니 君臣之分也라.
원길(元吉)이라고 칭한 것은 그 공덕(功德)이 광대함을 말한 것이다. ‘원길광대(元吉光大)’가 오(五)에 있지 않고 사(四)에 있는 것은 두 효(爻)의 뜻을 통틀어 말하였기 때문이다. 사(四)에서는 시용(施用)을 말하고 오(五)에서는 성공(成功)을 말하였으니, 이는 군신(君臣)의 분별이다.
九五는 渙에 汗其大號면 渙에 王居니 无咎리라.
구오(九五)는 환산(渙散)의 때에 큰 호령을 내되 땀이 나듯 하면 환산(渙散)에 대처함에 왕자(王者)의 거처에 걸맞으니 허물이 없으리라.
【本義】 汗其大號하며 渙王居면,
【본의】 큰 호령(號令)을 내되 땀이 나듯 하며 왕자(王者)의 재화(財貨)를 환산(渙散)하면,
【傳】 五與四君臣合德하여 以剛中正巽順之道로 治渙하니 得其道矣라 唯在浹洽於人心이니 則順從也라 當使號令洽[一作浹]於民心하여 如人身之汗이 浹於四體면 則信服而從矣니 如是면 則可以濟天下之渙하여 居王位 爲稱而无咎라 大號는 大政令也니 謂新民之大命과 救渙之大政이라 再云渙者는 上은 謂渙之時요 下는 謂處渙이 如是則无咎也라 在四에 已言元吉하니 五엔 唯言稱其位也라 渙之四五通言者는 渙은 以離散爲害하니 拯之使合也니 非君臣同功合力이면 其能濟乎아 爻義相須하니 時之宜也라.
오(五)와 사(四)는 군신(君臣)이 덕(德)을 합하여 강중정(剛中正)과 손순(巽順)의 도(道)로 환산(渙散)을 다스리니, 그 도(道)를 얻은 것이다. 오직 인심(人心)에 협흡(浹洽)하게 함에 달려 있으니, 인심(人心)에 협흡(浹洽)하면 순종한다. 마땅히 호령을 민심(民心)에 무젖게 하여 사람 몸의 땀이 사체(四體)에 젖어들듯이 하면 믿고 복종하여 따를 것이니, 이와 같이 하면 천하(天下)의 환산(渙散)을 구제하여 왕위(王位)에 거함이 걸맞아 허물이 없을 것이다. 대호(大號)는 큰 정령(政令)이니, 백성을 새롭게 하는 큰 명령과 환산(渙散)을 구제하는 큰 정사(政事)를 이른다. 두 번 환(渙)을 말한 것은 위는 환산(渙散)의 때를 이르고, 아래는 환산(渙散)에 대처하기를 이와 같이 하면 허물이 없음을 말한 것이다. 사효(四爻)에서 이미 원길(元吉)을 말했으니, 오효(五爻)에서는 오직 그 지위에 걸맞음을 말하였다. 환괘(渙卦)의 사효(四爻)와 오효(五爻)를 통틀어 말한 것은 환(渙)은 이산(離散)을 해(害)로 여기니, 구제하여 합하게 하는 것이니, 군신(君臣)이 공(功)을 함께 하고 힘을 합치지 않으면 구제할 수 있겠는가. 효(爻)의 뜻이 서로 필요로 하니, 때의 마땅함이다.
【本義】 陽剛中正으로 以居尊位하니 當渙之時하여 能散其號令與其居積(자)하면 則可以濟渙而无咎矣라 故其象占如此라 九五는 巽體니 有號令之象이라 汗은 謂如汗之出而不反也라 渙王居는 如陸贄所謂散小儲而成大儲之意라 .
양강중정(陽剛中正)으로 존위(尊位)에 거하였으니, 환산(渙散)의 때를 당하여 호령(號令)과 거자(居積)를 흩으면 환산(渙散)을 구제하여 허물이 없을 수 있다. 그러므로 그 상(象)과 점(占)이 이와 같은 것이다. 구오(九五)는 손체(巽體)이니, 호령(號令)의 상(象)이 있다. 한(汗)은 땀이 나오듯 하여 되돌아가지 않음을 이른다. ‘환왕거(渙王居)’는 육지(陸贄)의 이른바 ‘작은 쌓음을 흩어서 큰 쌓음을 이룬다’는 것과 같은 뜻이다.
象曰 王居无咎는 正位也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왕거무구(王居无咎)’는 바른 자리인 것이다.”
【傳】 王居는 謂正位니 人君之尊位也라 能如五之爲하면 則居尊位爲稱而无咎也라.
왕거(王居)는 정위(正位)를 이르니, 인군(人君)의 존위(尊位)이다. 오(五)의 행위와 같이 하면 존위(尊位)에 거함이 걸맞아서 허물이 없는 것이다.
上九는 渙에 其血이 去하며 逖(惕)에 出하면 无咎리라.
상구(上九)는 환산(渙散)에 그 피가 제거되며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하면 허물이 없으리라.
【本義】 渙其血去하며 逖出이니,
【본의】 피를 환산(渙散)하여 제거하며 두려움에서 벗어남이니,
【傳】 渙之諸爻가 皆无係應하니 亦渙離之象이라 唯上應於三이나 三居險陷之極하니 上若下從於彼면 則不能出於渙也라 險有傷害畏懼之象이라 故云血惕이라 然九以陽剛으로 處渙之外하여 有出渙之象하고 又居巽之極하여 爲能巽順於事理라 故云若能使其血去하며 其惕出하면 則无咎也라 하니 其者는 所有也라 渙之時엔 以能合爲功이로되 獨九居渙之極하여 有係而臨險이라 故以能出渙遠害로 爲善也라.
환괘(渙卦)의 여러 효(爻)가 모두 계응(係應)이 없으니, 또한 환리(渙離)의 상(象)이다. 오직 상(上)은 삼(三)과 응(應)하나 삼(三)이 험함(險陷)의 극(極)에 거하였으니, 상(上)이 만약 아래로 초(初)를 따르면 환산(渙散)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험(險)은 상해(傷害)와 외구(畏懼)의 상(象)이 있으므로 혈척(血惕)이라고 말한 것이다. 그러나 구(九)가 양강(陽剛)으로 환(渙)의 밖에 처하여 환(渙)을 벗어날 상(象)이 있고, 또 손(巽)의 극(極)에 거하여 사리에 손순(巽順)함이 된다. 그러므로 만약 그 피가 제거되게 하고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하면 허물이 없다고 한 것이니, 기(其)는 가지고 있는 것이다. 환산(渙散)의 때에는 합하는 것을 공(功)으로 삼으나 오직 상구(上九)는 환산(渙散)의 극(極)에 거하여 계응(係應)이 있고 험(險)함에 임했기 때문에 환산(渙散)에서 벗어나고 해(害)를 멀리함을 선(善)으로 삼은 것이다.
【本義】 上九以陽居渙極하여 能出乎渙이라 故其象占如此라 血은 謂傷害라 逖은 當作惕이니 與小畜六四同하니 言渙其血則去요 渙其惕則出也라.
상구(上九)가 양(陽)으로서 환산(渙散)의 극(極)에 거하여 환산(渙散)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에 그 상(象)과 점(占)이 이와 같은 것이다. 혈(血)은 상해(傷害)를 이른다. 적(逖)은 마땅히 척(惕)이 되어야 하니, 소축괘(小畜卦)의 육사효(六四爻)와 같으니, 피를 흩으면 피가 제거되고 두려움을 흩으면 벗어남을 말한 것이다.
象曰 渙其血은 遠害也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환기혈(渙其血)’은 해(害)를 멀리하는 것이다.”
【傳】 若如象文爲渙其血이면 乃與屯其膏同也나 義則不然이라 蓋血字下에 脫去字하니 血去惕出은 謂能遠害則无咎也라.
만약 〈상전(象傳)〉의 글과 같이 ‘환기혈(渙其血)’이라고 하면 바로 ‘둔기고(屯其膏)’와 같은 문체(文體)이나 뜻은 그렇지 않다. 혈자(血字) 아래에 거자(去字)가 빠졌으니, 피가 제거되고 두려움에서 벗어남은 해(害)를 멀리하면 허물이 없음을 말한 것이다.

59. 환(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