繫辭下傳
제1장(第一章)
八卦成列하니 象在其中矣요 因而重之하니 爻在其中矣요,
팔괘(八卦)가 열(列)을 이루니 상(象)이 그 가운데 있고, 인하여 거듭하니 효(爻)가 그 가운데 있고,
【本義】 成列은 謂乾一, 兌二, 離三, 震四, 巽五, 坎六, 艮七, 坤八之類라 象은 謂卦之形體也라 因而重之는 謂各因一卦而以八卦次第加之하여 爲六十四也라 爻는 六爻也니 旣重而後에 卦有六爻也라.
열(列)을 이루었다는 것은 건(乾)이 일(一)이고, 태(兌)가 이(二)이고, 이(離)가 삼(三)이고, 진(震)이 사(四)이고, 손(巽)이 오(五)이고, 감(坎)이 육(六)이고 간(艮)이 칠(七)이고 곤(坤)이 팔(八)인 유(類)를 이른다. 상(象)은 괘(卦)의 형체를 이른다. 인하여 거듭하였다는 것은 각기 한 괘(卦)로 인하여 팔괘(八卦)의 차례로 더하여 육십사괘(六十四卦)를 만듦을 이른다. 효(爻)는 육효(六爻)이니, 이미 거듭한 뒤에야 괘(卦)에 육효(六爻)가 있는 것이다.
剛柔相推하니 變在其中矣요 繫辭焉而命之하니 動在其中矣라.
강(剛)과 유(柔)가 서로 미루니 변(變)이 그 가운데 있고, 말을 달아 고(告)하니 동(動)함이 그 가운데에 있다.
【本義】 剛柔相推而卦爻之變이 往來交錯하여 无不可見이라 聖人이 因其如此而皆繫之辭하여 以命其吉凶하니 則占者所値當動之爻象이 亦不出乎此矣라.
강(剛)·유(柔)가 서로 미룸에 괘효(卦爻)의 변(變)이 왕래(往來)하고 교착(交錯)하여 볼 수 없는 것이 없다. 성인(聖人)이 이와 같음으로 인하여 모두 말을 달아서 길흉(吉凶)을 말하니, 점치는 이가 만난 바의 마땅히 동해야 할 효상(爻象)이 역시 이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吉凶悔吝者는 生乎動者也요,
길(吉)·흉(凶)과 회(悔)·인(吝)은 동(動)함에서 생기는 것이요,
【本義】 吉凶悔吝은 皆辭之所命也라 然必因卦爻之動而後見이라.
길(吉)·흉(凶)·회(悔)·인(吝)은 모두 말에 명한 것이다. 그러나 반드시 괘효(卦爻)의 동함으로 인한 뒤에 볼 수 있다.
剛柔者는 立本者也요 變通者는 趣時者也라.
강(剛)·유(柔)는 근본을 세우는 것이요, 변(變)·통(通)은 때에 따르는 것이다.
【本義】 一剛一柔가 各有定位하고 自此而彼가 變以從時라.
한 강(剛)과 한 유(柔)가 각각 정한 자리가 있고, 여기로부터 저기로 감에 변하여 때에 따른다.
吉凶者는 貞勝者也니,
길(吉)·흉(凶)은 항상 이기는 것이니,
【本義】 貞은 正也, 常也니 物은 以其所正爲常者也라 天下之事가 非吉則凶이요 非凶則吉하여 常相勝而不已也라.
정(貞)은 바름이요 떳떳함이니, 사물은 바름을 항상함으로 삼는다. 천하(天下)의 일이 길(吉)이 아니면 흉(凶)이요 흉(凶)이 아니면 길(吉)이어서 항상 서로 이기고 그치지 않는다.
天地之道는 貞觀者也요 日月之道는 貞明者也요 天下之動은 貞夫一者也라.
천지(天地)의 도(道)는 항상 보여주는 것이요, 일월(日月)의 도(道)는 항상 밝은 것이요, 천하(天下)의 동(動)은 일(一)에 항상한 것이다.
【本義】 觀은 示也라 天下之動이 其變无窮이나 然順理則吉하고 逆理則凶하니 則其所正而常者 亦一理而已矣라.
관(觀)은 보여줌이다. 천하(天下)의 동(動)함이 그 변(變)이 무궁하나, 이치를 순히 하면 길(吉)하고 이치를 거스르면 흉(凶)하니, 그렇다면 그 바르고 항상함은 역시 한 이치일 뿐이다.
夫乾은 確然하니 示人易矣요 夫坤은 隤然하니 示人簡矣니,
건(乾)은 굳세니 사람에게 쉬움으로 보여주고, 곤(坤)은 순하니 사람에게 간략함으로 보여주니,
【本義】 確然은 健貌요 隤然은 順貌니 所謂貞觀者也라.
확연(確然)은 굳센 모양이요 퇴연(隤然)은 순한 모양이니, 이른바 항상 보여준다는 것이다.
爻也者는 效此者也요 象也者는 像此者也라.
효(爻)는 이것을 본받음이요, 상(象)은 이것을 형상한 것이다.
【本義】 此는 謂上文乾坤所示之理니 爻之奇偶와 卦之消息은 所以效而象之라.
이것이란 상문(上文)에 건(乾)·곤(坤)이 보여준 바의 이치를 이르니, 효(爻)의 기(奇)와 우(偶), 괘(卦)의 소(消)와 식(息)은 이것을 본받아 형상한 것이다.
爻象은 動乎內하고 吉凶은 見乎外하고 功業은 見乎變하고 聖人之情은 見乎辭하니라.
효(爻)와 상(象)은 안에서 동(動)하고, 길(吉)과 흉(凶)은 밖에 나타나고, 공업(功業)은 변(變)에 나타나고, 성인(聖人)의 정(情)은 말에 나타난다.
【本義】 內는 謂蓍卦之中이요 外는 謂蓍卦之外라 變은 卽動乎內之變이요 辭는 卽見乎外之辭라.
내(內)는 시괘(蓍卦)의 가운데를 이르고, 외(外)는 시괘(蓍卦)의 밖을 이른다. 변(變)은 곧 안에서 동(動)하는 변함이요, 사(辭)는 곧 밖에 나타나는 말이다.
天地之大德曰生이요 聖人之大寶曰位니 何以守位오 曰仁(人)이요 何以聚人고 曰財니 理財하며 正辭하며 禁民爲非曰義라.
천지(天地)의 큰 덕(德)을 생(生)이라 하고 성인(聖人)의 큰 보배를 위(位)라 하니, 무엇으로써 지위를 지키는가? 사람이며, 무엇으로써 사람을 모으는가? 재물이다. 재물을 다스리고 말을 바르게 하며 백성들의 비행(非行)을 금함을 의(義)라 한다.
【本義】 曰人之人을 今本作仁하고 呂氏從古하니 蓋所謂非衆이면 罔與守邦이라.
‘왈인(曰人)’의 인(人)이 금본(今本)에는 인(仁)으로 되어 있고, 여씨(呂氏)는 옛것을 따랐으니, 이른바 ‘여러 사람이 아니면 더불어 나라를 지킬 수 없다’는 것이다.
右는 第一章이라.
이상은 제1장이다.
【本義】 此章은 言卦爻吉凶, 造化功業하니라.
이 장(章)은 괘효(卦爻)의 길흉(吉凶)과 조화(造化)의 공업(功業)을 말한 것이다.
계사하전 제2장(第二章
古者包犧氏之王天下也에 仰則觀象於天하고 俯則觀法於地하며 觀鳥獸之文과 與[天]地之宜하며 近取諸身하고 遠取諸物하여 於是에 始作八卦하여 以通神明之德하며 以類萬物之情하니라.
옛날 포희씨(包犧氏)가 천하(天下)에 왕노릇할 때에 우러러 하늘의 상(象)을 관찰하고 굽어 땅의 법(法)을 관찰하며, 새와 짐승의 문(文)과 천지(天地)의 마땅함을 관찰하며, 가까이는 자신에게서 취하고 멀리는 물건에게서 취하여, 이에 비로소 팔괘(八卦)를 만들어 신명(神明)의 덕(德)을 통(通)하고 만물(萬物)의 정(情)을 분류하였다.
【本義】 王昭素曰 與地之間에 諸本에 多有天字라 俯仰遠近이 所取不一이나 然不過以驗陰陽消息兩端而已라 神明之德은 如健順動止之性이요 萬物之情은 如雷風山澤之象이라.
왕소소(王昭素)가 말하기를 “‘여지(與地)’의 중간에 여러 본(本)에는 천자(天字)가 있는 것이 많다.” 하였다. 굽어보고 우러러보며, 멀고 가까운 곳에서 취한 바가 똑같지 않으나 음(陰)·양(陽)의 소(消)·식(息) 두 가지를 징험함에 불과할 뿐이다. 신명(神明)의 덕(德)은 건(健)·순(順), 동(動)·지(止)와 같은 성(性)이요, 만물(萬物)의 정(情)은 뇌(雷)·풍(風), 산(山)·택(澤)과 같은 상(象)이다.
作結繩而爲網罟하여 以佃以漁하니 蓋取諸離하고,
노끈을 맺어 그물을 만들어서 사냥하고 고기 잡으니, 이괘(離卦)에서 취하였고,
【本義】 兩目相承而物麗焉이라.
두 그물 눈을 서로 이음에 물건이 걸린다.
包犧氏沒이어늘 神農氏作하여 斲木爲耜하고 楺木爲耒하여 耒耨之利로 以敎天下하니 蓋取諸益하고.
포희씨(包犧氏)가 별세하자, 신농씨(神農氏)가 나오시어 나무를 깎아 쟁기를 만들고 나무를 휘어 쟁기자루를 만들어서 쟁기와 호미의 이로움으로 천하(天下)를 가르쳤으니, 익괘(益卦)에서 취하였고,
【本義】 二體皆木이요 上入下動하니 天下之益이 莫大於此라.
두 체(體)가 모두 나무이며 위는 들어가고 아래는 동(動)하니, 천하(天下)의 유익함이 이보다 더 큼이 없다.
日中爲市하여 致天下之民하며 聚天下之貨하여 交易而退하여 各得其所케 하니 蓋取諸噬嗑하고,
한낮에 시장을 만들어 천하(天下)의 백성들을 오게 하고 천하(天下)의 재화(財貨)를 모아서 교역(交易)하고 물러가 각각 제 살 곳을 얻게 하였으니, 서합괘(噬嗑卦)에서 취하였고,
【本義】 日中爲市는 上明而下動이요 又借噬爲市, 嗑爲合也라.
한낮에 시장을 만듦은 위는 밝고 아래는 동(動)함이요, 또 서(噬)를 가차하여 시(市)로 하고, 합(嗑)을 합(合)으로 한 것이다.
神農氏沒이어늘 黃帝堯舜氏作하여 通其變하여 使民不倦하며 神而化之하여 使民宜之하니 易이 窮則變하고 變則通하고 通則久라 是以自天祐之하여 吉无不利니 黃帝堯舜이 垂衣裳而天下治하니 蓋取諸乾坤하고,
신농씨(神農氏)가 별세하자, 황제(黃帝)와 요(堯)·순(舜)이 나오시어 그 변(變)을 통(通)하여 백성이 게으르지 않게 하며 신묘하게 화(化)하여 백성이 마땅하게 하였으니, 역(易)은 궁(窮)하면 변(變)하고 변(變)하면 통(通)하고 통(通)하면 오래간다. 이 때문에 하늘로부터 도와서 길(吉)하여 이롭지 않음이 없는 것이다. 황제(黃帝)와 요(堯)·순(舜)이 의상(衣裳)을 드리우고 있음에 천하(天下)가 잘 다스려졌으니, 건괘(乾卦)·곤괘(坤卦)에서 취하였고,
【本義】 乾坤은 變化而无爲라.
건(乾)·곤(坤)은 변화(變化)하되 함이 없다.
刳木爲舟하고 剡木爲楫하여 舟楫之利로 以濟不通하여 致遠以利天下하니 蓋取諸渙하고,
나무를 쪼개 배를 만들고 나무를 깎아 돛대를 만들어서 배와 돛대의 이로움으로 통하지 못하는 것을 건너게 하여 멂을 이루어 천하(天下)를 이롭게 하였으니, 환괘(渙卦)에서 취하였고,
【本義】 木在水上也라 致遠以利天下는 疑衍이라.
나무가 물 위에 있다. ‘치원이리천하(致遠以利天下)’는 연문(衍文)인 듯하다.
服牛乘馬하여 引重致遠하여 以利天下하니 蓋取諸隨하고,
소를 부리고 말을 타서 무거운 것을 끌어오고 먼 곳에 이르게 하여 천하(天下)를 이롭게 하였으니, 수괘(隨卦)에서 취하였고,
【本義】 下動上說이라.
아래는 동하고 위는 기뻐한다.
重門擊柝하여 以待暴客하니 蓋取諸豫하고,
문을 이중(二重)으로 하고 목탁을 쳐서 포악한 나그네를 대비하였으니, 예괘(豫卦)에서 취하였고,
【本義】 豫備之意라.
미리 방비하는 뜻이다.
斷木爲杵하고 掘地爲臼하여 臼杵之利로 萬民以濟하니 蓋取諸小過하고,
나무를 잘라 절굿공이를 만들고 땅을 파 절구를 만들어서 절구와 절굿공이의 이로움으로 만민(萬民)이 구제되었으니, 소과괘(小過卦)에서 취하였고,
【本義】 下止上動이라.
아래는 그치고 위는 동(動)한다.
弦木爲弧하고 剡木爲矢하여 弧矢之利로 以威天下하니 蓋取諸睽하고,
나무에 활시위를 매어 활을 만들고 나무를 깎아 화살을 만들어서 활과 화살의 이로움으로 천하(天下)를 두렵게 하였으니, 규괘(睽卦)에서 취하였고,
【本義】 睽乖然後威以服之라.
어그러진 뒤에 위엄으로 복종시키는 것이다.
上古에 穴居而野處러니 後世聖人이 易之以宮室하여 上棟下宇하여 以待風雨하니 蓋取諸大壯하고,
상고시대(上古時代)에는 구멍에서 살고 들에서 거처하였는데, 후세에 성인(聖人)이 궁실(宮室)로 바꾸어서 위에는 들보를 얹고 아래에는 서까래를 얹어 풍우(風雨)에 대비하였으니, 대장괘(大壯卦)에서 취하였고,
【本義】 壯固之意라.
튼튼하고 견고히 하는 뜻이다.
古之葬者는 厚衣之以薪하여 葬之中野하여 不封不樹하며 喪期无數러니 後世聖人이 易之以棺槨하니 蓋取諸大過하고,
옛날 장례(葬禮)하는 이들은 섶을 두껍게 입혀서 들 가운데 장례(葬禮)하여 봉분(封墳)하지 않고 나무를 심지 않으며 상기(喪期)가 일정한 수(數)가 없었는데, 후세(後世)에 성인(聖人)이 관곽(棺槨)으로 바꾸었으니, 대과괘(大過卦)에서 취하였고,
【本義】 送死는 大事而過於厚라.
죽은 이를 장례(葬禮)함은 대사(大事)로서 후함을 과하게 한다.
上古엔 結繩而治러니 後世聖人이 易之以書契하여 百官以治하며 萬民以察하니 蓋取諸夬하니라.
상고(上古)에는 노끈을 맺어 다스렸는데 후세(後世)에 성인(聖人)이 글과 문서로 바꾸어서 백관(百官)이 다스려지고 만민(萬民)이 살폈으니, 쾌괘(夬卦)에서 취한 것이다.
【本義】 明決之意라.
밝게 결단하는 뜻이다.
右는 第二章이라.
이상은 제2장이다.
【本義】 此章은 言聖人制器尙象之事하니라.
이 장(章)은 성인(聖人)이 기물(器物)을 만들 적에 상(象)을 숭상한 일을 말한 것이다.
계사하전 제3장(第三章)
是故로 易者는 象也니 象也者는 像也요,
이러므로 역(易)은 상(象)이니 상(象)은 형상이요,
【本義】 易은 卦之形이요 理之似也라.
역(易)은 괘(卦)의 형상이요 이치의 유사함이다.
彖者는 材也요,
단(彖)은 재질이요,
【本義】 彖은 言一卦之材라.
단(彖)은 한 괘(卦)의 재질을 말한 것이다.
爻也者는 效天下之動者也니,
효(爻)는 천하(天下)의 동(動)함을 본받은 것이니,
【本義】 效는 放也라.
효(效)는 똑같게 하는 것이다.
是故로 吉凶生而悔吝著也니라.
그러므로 길(吉)·흉(凶)이 생기고 회(悔)·인(吝)이 드러나는 것이다.
【本義】 悔吝은 本微로되 因此而著라.
회(悔)·인(吝)은 본래 미미하나 이로 인하여 드러나는 것이다.
右는 第三章이라.
이상은 제3장이다.
계사하전 제4장(第四章)
陽卦는 多陰하고 陰卦는 多陽하니,
양괘(陽卦)는 음(陰)이 많고 음괘(陰卦)는 양(陽)이 많으니,
【本義】 震坎艮은 爲陽卦하니 皆一陽二陰이요 巽離兌는 爲陰卦하니 皆一陰二陽이라.
진(震)·감(坎)·간(艮)은 양괘(陽卦)가 되니 모두 한 양(陽)에 두 음(陰)이요, 손(巽)·이(離)·태(兌)는 음괘(陰卦)가 되니 모두 한 음(陰)에 두 양(陽)이다.
其故는 何也오 陽卦는 奇요 陰卦는 耦일새라.
그 연고는 어째서인가? 양괘(陽卦)는 기(奇)이고 음괘(陰卦)는 우(耦)이기 때문이다.
【本義】 凡陽卦는 皆五畫이요 凡陰卦는 皆四畫이라.
무릇 양괘(陽卦)는 모두 다섯 획이요, 무릇 음괘(陰卦)는 모두 네 획이다
其德行은 何也오 陽은 一君而二民이니 君子之道也요 陰은 二君而一民이니 小人之道也라.
덕행(德行)은 어떠한가? 양(陽)은 한 군주에 두 백성이니 군자(君子)의 도(道)이고, 음(陰)은 두 군주에 한 백성이니 소인(小人)의 도(道)이다.
【本義】 君은 謂陽이요 民은 謂陰이라.
군(君)은 양(陽)을 이르고, 민(民)은 음(陰)을 이른다.
右는 第四章이라.
이상은 제4장이다.
계사하전 제5장(第五章)
易曰 憧憧往來면 朋從爾思라 하니 子曰 天下何思何慮리오 天下同歸而殊塗하며 一致而百慮니 天下何思何慮리오.
역(易)에 이르기를 “자주 왕래하면 벗만이 네 생각을 따를 것이다.” 하니,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였다. “천하(天下)가 무엇을 생각하며 무엇을 생각하겠는가. 천하(天下)가 돌아감은 같으나 길은 다르며, 이치는 하나이나 생각은 백 가지이니, 천하(天下)가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생각하겠는가.”
【本義】 此는 引咸九四爻辭而釋之라 言理本无二而殊塗百慮가 莫非自然이니 何以思慮爲哉리오 必思而從이면 則所從者亦狹矣리라.
이는 함괘(咸卦) 구사효(九四爻)의 말을 인용하고 해석한 것이다. 이치는 본래 두 가지가 없으나 길이 다르고 생각이 백 가지인 것이 자연 아님이 없으니, 어찌 사려(思慮)할 것이 있겠는가. 반드시 생각하고서 따르면 따르는 바가 또한 좁은 것이다.
日往則月來하고 月往則日來하여 日月相推而明生焉하며 寒往則暑來하고 暑往則寒來하여 寒暑相推而歲成焉하니 往者는 屈也요 來者는 信(伸)也니 屈信相感而利生焉하니라.
해가 가면 달이 오고 달이 가면 해가 와서 해와 달이 서로 미룸에 밝음이 생기며, 추위가 가면 더위가 오고 더위가 가면 추위가 와서 추위와 더위가 서로 미룸에 해가 이루어지니, 가는 것은 굽힘이요 오는 것은 펴짐이니, 굴(屈)·신(伸)이 서로 감동함에 이로움이 생긴다.
【本義】 言往來屈信이 皆感應自然之常理니 加憧憧焉이면 則入於私矣라 所以必思而後有從也니라.
왕(往)·내(來)와 굴(屈)·신(信)이 모두 감응하는 자연의 떳떳한 이치이니, 동동(憧憧)을 가하면 사(私)에 들어가는 것이다. 이 때문에 반드시 생각한 뒤에야 따름이 있는 것이다.
尺蠖之屈은 以求信也요 龍蛇之蟄은 以存身也요 精義入神은 以致用也요 利用安身은 以崇德也니,
자벌레가 몸을 굽힘은 폄을 구하기 위해서요, 용과 뱀이 칩거함은 몸을 보존하기 위해서요, 의(義)를 정밀히 하여 신묘(神妙)한 경지에 들어감은 씀을 지극히 하기 위해서요, 씀을 이롭게 하여 몸을 편안히 함은 덕(德)을 높이기 위해서이니,
【本義】 因言屈信往來之理하여 而又推以言學亦有自然之機也라 精硏其義하여 至於入神은 屈之至也라 然乃所以爲出而致用之本이요 利其施用하여 无適不安은 信之極也라 然乃所以爲入而崇德之資니 內外交相養, 互相發也라.
굴신(屈信) 왕래(往來)의 이치를 말함으로 인하여 또 미루어서 학문도 자연의 기틀이 있음을 말한 것이다. 그 의(義)를 정하게 연구하여 신묘(神妙)한 경지에 들어감에 이름은 굽힘이 지극한 것이다. 그러나 이는 바로 나와서 씀을 지극히 하는 근본이 되며 시용(施用)을 이롭게 하여 가는 곳마다 편안하지 않음이 없음은 폄이 지극한 것이다. 그러나 이는 바로 들어가서 덕(德)을 높이는 자뢰가 되는 것이니, 내(內)·외(外)가 서로 길러주고 서로 발명하는 것이다.
過此以往은 未之或知也니 窮神知化 德之盛也라.
이를 지난 이후는 혹 알 수 없으니, 신(神)을 궁구(窮究)하여 조화를 앎이 덕(德)의 성함이다.
【本義】 下學之事 盡力於精義利用하여 而交養互發之機가 自不能已하나니 自是以上은 則亦无所用其力矣라 至於窮神知化는 乃德盛仁熟而自致耳라 然不知者는 往而屈也요 自致者는 來而信也니 是亦感應自然之理而已라 張子曰 氣有陰陽하니 推行有漸이 爲化요 合一不測이 爲神이라 此上四節은 皆以釋咸九四爻義라.
아래로 배우는 일은 의(義)를 정하게 하고 씀을 이롭게 함에 힘을 다하여 서로 길러주고 서로 발명하는 기틀이 저절로 그칠 수 없으니, 이로부터 이상은 또한 그 힘을 쓸 곳이 없는 것이다. 신(神)을 궁구(窮究)하여 조화를 앎에 이름은 바로 덕(德)이 성하고 인(仁)이 익숙하여 스스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알지 못함은 가서 굽힘이요 스스로 이룸은 와서 펴짐이니, 이 또한 감응(感應)하는 자연의 이치일 뿐이다. 장자(張子)가 말씀하였다. “기(氣)는 음(陰)·양(陽)이 있으니, 미루어 행함에 점점함이 있는 것이 화(化)이고 하나로 합하여 측량할 수 없는 것이 신(神)이다.” 이상 네 절(節)은 모두 함괘(咸卦) 구사효(九四爻)의 뜻을 해석한 것이다.
易曰 困于石하며 據于蒺藜라 入于其宮이라도 不見其妻니 凶이라 하니 子曰 非所困而困焉하니 名必辱하고 非所據而據焉하니 身必危하리니 旣辱且危하여 死期將至어니 妻其可得見邪아.
역(易)에 이르기를 “돌에 곤(困)하며 질려(蒺藜)에 앉아 있다. 집에 들어가도 아내를 만나보지 못하니 흉(凶)하다.” 하니,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였다. “곤(困)할 바가 아닌데 곤(困)하니 이름이 반드시 욕될 것이요, 앉을 곳이 아닌데 앉으니 몸이 반드시 위태로울 것이다. 이미 욕되고 또 위태로워 죽을 시기가 장차 이르니, 아내를 볼 수 있겠는가.”
【本義】 釋困六三爻義라.
곤괘(困卦) 육삼효(六三爻)의 뜻을 해석한 것이다.
易曰 公用射隼于高墉之上하여 獲之니 无不利라 하니 子曰隼者는 禽也요 弓矢者는 器也요 射之者는 人也니 君子藏器於身하여 待時而動이면 何不利之有리오 動而不括이라 是以出而有獲하나니 語成器而動者也라.
역(易)에 이르기를 “공(公)이 새를 높은 담 위에서 쏘아 잡았으니, 이롭지 않음이 없다.” 하니,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였다. “준(隼)은 새이고 궁시(弓矢)는 기물이며 쏘는 것은 사람이니, 군자가 기물을 몸에 보관하여 때를 기다려 동하면 어찌 이롭지 않음이 있겠는가. 동함에 막히지 않는다. 이 때문에 나가면 얻음이 있는 것이니, 기물을 이루고 동하는 것을 말한 것이다.”
【本義】 括은 結礙也라 此는 釋解上六爻義라.
괄(括)은 막힘이다. 이는 해괘(解卦) 상육효(上六爻)의 뜻을 해석한 것이다.
子曰 小人은 不恥不仁하며 不畏不義라 不見利면 不勸하며 不威면 不懲하나니 小懲而大誡가 此小人之福也라 易曰 屨校하여 滅趾니 无咎라 하니 此之謂也라.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였다. “소인(小人)은 불인(不仁)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불의(不義)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익을 보지 않으면 권면되지 않고 위엄으로 두렵게 하지 않으면 징계되지 않으니, 조금 징계하여 크게 경계시킴이 소인(小人)의 복이다. 역(易)에 이르기를 ‘차꼬를 신에 달아 발을 멸함이니, 허물이 없다.’ 하였으니, 이것을 말한 것이다.
【本義】 此는 釋噬嗑初九爻義라.
이는 서합괘(噬嗑卦) 초구효(初九爻)의 뜻을 해석한 것이다.
善不積이면 不足以成名이요 惡不積이면 不足以滅身이니 小人은 以小善爲无益而弗爲也하며 以小惡爲无傷而弗去也라 故로 惡積而不可掩이며 罪大而不可解니 易曰 何校하여 滅耳니 凶이라 하니라.
선(善)이 쌓이지 않으면 이름을 이룰 수 없고, 악(惡)이 쌓이지 않으면 몸을 멸할 수 없으니, 소인(小人)은 작은 선(善)을 무익(無益)하다 하여 행하지 않고 작은 악(惡)을 무방(無妨)하다 하여 버리지 않는다. 그러므로 악(惡)이 쌓여서 가리울 수 없고 죄(罪)가 커져 풀 수 없으니, 역(易)에 이르기를 ‘차꼬를 메서 귀를 멸하니 흉(凶)하다’ 하였다.”
【本義】 此는 釋噬嗑上九爻義라.
이는 서합괘(噬嗑卦) 상구효(上九爻)의 뜻을 해석한 것이다.
子曰 危者는 安其位者也요 亡者는 保其存者也요 亂者는 有其治者也라 是故로 君子安而不忘危하며 存而不忘亡하며 治而不忘亂이라 是以身安而國家可保也니 易曰 其亡其亡이라야 繫于包桑이라 하니라.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였다. “위태로울까 함은 그 지위를 편안히 하는 것이요, 망할까 함은 그 생존을 보존하는 것이요, 어지러울까 함은 그 다스림을 두게 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군자는 편안해도 위태로움을 잊지 않고 보존되어도 망함을 잊지 않고 다스려져도 어지러움을 잊지 않는다. 이 때문에 몸이 편안하여 국가(國家)가 보존될 수 있는 것이니, 역(易)에 이르기를 ‘망할까 망할까 하고 두려워하여야 총생(叢生)하는 뽕나무에 매어놓듯 튼튼하다’ 하였다.”
【本義】 此는 釋否九五爻義라.
이는 비괘(否卦) 구오효(九五爻)의 뜻을 해석한 것이다.
子曰 德薄而位尊하며 知(智)小而謀大하며 力小而任重하면 鮮不及矣나니 易曰 鼎折足하여 覆公餗하니 其形渥이라 凶이라 하니 言不勝其任也라.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였다. “덕(德)이 적으면서 지위가 높고, 지혜가 작으면서 꾀함이 크고, 힘이 작으면서 짐이 무거우면 화가 미치지 않는 이가 드물다. 역(易)에 이르기를 ‘솥이 발이 부러져 공상(公上)에게 바칠 음식을 엎었으니, 형벌이 무거워 흉(凶)하다’ 하였으니, 그 임무를 감당하지 못함을 말한 것이다.”
【本義】 此는 釋鼎九四爻義라.
이는 정괘(鼎卦) 구사효(九四爻)의 뜻을 해석한 것이다.
子曰 知幾其神乎인저 君子上交不諂하며 下交不瀆하나니 其知幾乎인저 幾者는 動之微니 吉[凶]之先見(현)者也니 君子見幾而作하여 不俟終日이니 易曰 介于石이라 不終日이니 貞하고 吉이라 하니 介如石焉이어니 寧用終日이리오 斷可識矣로다 君子知微知彰知柔知剛하나니 萬夫之望이라.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였다. “기미를 앎이 그 신묘(神妙)할 것이다. 군자는 위로 사귀되 아첨하지 않고 아래로 사귀되 모독하지 않으니, 기미를 아는 것이다. 기(幾)는 동함의 은미함으로 길(吉)·흉(凶)이 먼저 나타난 것이니, 군자는 기미를 보고 일어나서[떠나가서] 하루가 마치기를 기다리지 않는다. 역(易)에 이르기를 ‘돌처럼 절개가 굳은지라 하루를 마치지 않으니, 정(貞)하고 길(吉)하다’ 하였으니, 절개가 돌과 같으니, 어찌 하루를 마치겠는가. 결단함을 알 수 있다. 군자는 은미함을 알고 드러남을 알며, 유(柔)를 알고 강(剛)을 아니, 만부(萬夫)가 우러른다.”
【本義】 此는 釋豫六二爻義라 漢書에 吉之之間에 有凶字하니라.
이는 예괘(豫卦) 육이효(六二爻)의 뜻을 해석한 것이다. 《한서(漢書)》에는 ‘길지(吉之)’의 중간에 흉자(凶字)가 있다.
子曰 顔氏之子 其殆庶幾乎인저 有不善이면 未嘗不知하며 知之면 未嘗復(부)行也하나니 易曰 不遠復(복)이라 无祗悔니 元吉이라 하니라.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였다. “안씨(顔氏)의 아들은 거의 도(道)에 가까울 것이다. 불선(不善)이 있으면 일찍이 모른 적이 없고, 알면 일찍이 다시 행하지 않았다. 역(易)에 이르기를 ‘멀리 가지 않고 회복하여[돌아와] 뉘우침에 이르지 않으니, 크게 선(善)하고 길(吉)하다’ 하였다.
【本義】 殆는 危也라 庶幾는 近意니 言近道也라 此는 釋復初九爻義라.
태(殆)는 위(危)[거의]이다. 서기(庶幾)는 가깝다는 뜻이니, 도(道)에 가까움을 말한 것이다. 이는 복괘(復卦) 초구효(初九爻)의 뜻을 해석한 것이다.
天地絪縕에 萬物化醇하고 男女構精에 萬物化生하나니 易曰 三人行엔 則損一人하고 一人行엔 則得其友라 하니 言致一也라.
천지(天地)의 기운이 얽히고 설킴에 만물(萬物)이 화(化)하여 엉기고, 남녀(男女)가 정(精)을 맺음에 만물(萬物)이 화생(化生)한다. 역(易)에 이르기를 ‘세 사람이 가면 한 사람을 덜고, 한 사람이 가면 그 벗을 얻는다’ 하였으니, 하나에 지극히 함을 말한 것이다.”
【本義】 絪縕은 交密之狀이라 醇은 謂厚而凝也니 言氣化者也요 化生은 形化者也라 此는 釋損六三爻義라.
인온(絪縕)은 사귀기를 친밀하게 하는 모양이다. 순(醇)은 후(厚)하여 엉김을 이르니 기화(氣化)를 말한 것이요, 화생(化生)은 형화(形化)하는 것이다. 이는 손괘(損卦) 육삼효(六三爻)의 뜻을 해석한 것이다.
子曰 君子安其身而後動하며 易(이)其心而後語하며 定其交而後求하나니 君子修此三者라 故로 全也하나니 危以動하면 則民不與也요 懼以語하면 則民不應也요 无交而求하면 則民不與也하나니 莫之與하면 則傷之者至矣나니 易曰 莫益之라 或擊之리니 立心勿恒이니 凶이라 하니라.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였다. “군자는 몸을 편안히 한 뒤에 동하며, 마음을 화평히 한 뒤에 말하며, 사귐을 정한 뒤에 구하니, 군자는 이 세 가지를 닦으므로 온전한 것이다. 위태로움으로써 동하면 백성들이 더불지 않고, 두려워하면서 말하면 백성들이 응하지 않고, 사귐이 없으면서 구하면 백성들이 친하지 않으니, 친하지 않으면 해롭게 하는 이가 이를 것이다. 역(易)에 이르기를 ‘유익하게 해주는 이가 없다. 혹은 공격할 것이니, 마음을 세움에 항상하지 말아야 하니, 흉(凶)하다’ 하였다.”
【本義】 此는 釋益上九爻義라.
이는 익괘(益卦) 상구효(上九爻)의 뜻을 해석한 것이다.
右는 第五章이라.
이상은 제5장이다.
계사하전 제6장(第六章)
子曰 乾坤은 其易之門邪인저 乾은 陽物也요 坤은 陰物也니 陰陽合德하여 而剛柔有體라 以體天地之撰하며 以通神明之德하니,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였다. “건(乾)·곤(坤)은 역(易)의 문(門)일 것이다. 건(乾)은 양물(陽物)이고 곤(坤)은 음물(陰物)이니, 음(陰)·양(陽)이 덕(德)을 합하여 강(剛)·유(柔)가 체(體)가 있게 되었다. 이로써 천지(天地)의 일을 체행(體行)하며 신명(神明)의 덕(德)을 통하니,
【本義】 諸卦剛柔之體가 皆以乾坤合德而成이라 故曰乾坤易之門이라 하니라 撰은 猶事也라.
여러 괘(卦)에 강(剛)·유(柔)의 체(體)가 모두 건(乾)·곤(坤)이 덕(德)을 합함으로써 이루어졌다. 그러므로 건(乾)·곤(坤)을 역(易)의 문(門)이라 한 것이다. 찬(撰)은 사(事)와 같다.
其稱名也 雜而不越하나 於稽其類엔 其衰世之意耶인저.
이름을 칭함이 잡란(雜亂)하면서도 어그러지지 않으나 그 유(類)를 상고함에는 쇠한 세상의 뜻일 것이다.
【本義】 萬物雖多나 无不出於陰陽之變이라 故卦爻之義가 雖雜出而不差繆라 然非上古淳質之時思慮所及也라 故以爲衰世之意라 하니 蓋指文王與紂之時也라.
만물(萬物)이 비록 많으나 음양(陰陽)의 변(變)에서 나오지 않은 것이 없다. 그러므로 괘효(卦爻)의 뜻이 비록 섞여 나오나 어그러지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상고(上古)의 순박하고 질박한 때는 사려(思慮)로 미칠 수 있는 바가 아니므로 쇠한 세상의 뜻이라 하였으니, 문왕(文王)과 주(紂)의 때를 가리킨 것이다.
夫易은 彰往而察來하며 (而微顯)[微顯而]闡幽하며 開而當名하며 辨物하며 正言하며 斷辭하니 則備矣라.
역(易)은 지나간 것을 드러내고 미래를 살피며, 드러남을 은미하게 하고 그윽함을 밝히며, 명칭에 마땅하게 하고 사물을 분별하며, 말을 바르게 하고 말을 결단하니, 구비하다.
【本義】 而微顯은 恐當作微顯而라 開而之而도 亦疑有誤라.
‘이미현(而微顯)’은 마땅히 ‘미현이(微顯而)’가 되어야 할 듯하다. ‘개이(開而)’의 이자(而字)도 오자(誤字)가 있는 듯하다.
其稱名也小하나 其取類也大하며 其旨遠하며 其辭文하며 其言曲而中하며 其事肆而隱하니 因貳하여 以濟民行하여 以明失得之報니라.
이름을 칭함은 작으나 유(類)를 취함은 크며, 뜻이 원대하고 말이 문채(文采)나며, 말이 곡진(曲盡)하면서도 맞으며, 일이 진열되어 있으면서도 은미하니, 의심나는 것으로 인하여 백성의 행함을 구제하여 실득(失得)의 응보(應報)를 밝힌 것이다.
【本義】 肆는 陳也요 貳는 疑也라.
사(肆)는 베풂이요, 이(貳)는 의심함이다.
右는 第六章이라.
이상은 제6장이다.
【本義】 此章은 多闕文疑字하니 不可盡通이니 後皆放此하니라.
이 장(章)은 빠진 글과 의심스러운 글자가 많으니, 다 통할 수 없는 바, 뒤도 모두 이와 같다
계사하전 제7장(第七章)
易之興也 其於中古乎인저 作易者 其有憂患乎인저.
역(易)이 일어남은 중고(中古)일 것이다. 역(易)을 지은 이는 우환(憂患)이 있었을 것이다.
【本義】 夏商之末에 易道中微러니 文王이 拘於羑里而繫彖辭하여 易道復興하니라.
하(夏)·상(商)의 말기에 역도(易道)가 중간에 쇠하였는데, 문왕(文王)이 유리(羑里)에 갇혀 있을 적에 단사(彖辭)를 달아서 역도(易道)가 다시 일어났다.
是故로 履는 德之基也요 謙은 德之柄也요 復은 德之本也요 恒은 德之固也요 損은 德之修也요 益은 德之裕也요 困은 德之辨也요 井은 德之地也요 巽은 德之制也라.
그러므로 이(履)는 덕(德)의 기초요 겸(謙)은 덕(德)의 자루요 복(復)은 덕(德)의 근본이요 항(恒)은 덕(德)의 확고함이요 손(損)은 덕(德)의 닦음이요 익(益)은 덕(德)의 넉넉함이요 곤(困)은 덕(德)의 분별이요 정(井)은 덕(德)의 땅[자리]이요, 손(巽)은 덕(德)의 재제(裁制)이다.
【本義】 履는 禮也라 上天下澤이 定分不易하니 必謹乎此然後에 其德有以爲基而立也라 謙者는 自卑而尊人이요 又爲禮者之所當執持而不可失者也라 九卦는 皆反身修德하여 以處憂患之事也而有序焉이라 基는 所以立이요 柄은 所以持요 復者는 心不外而善端存이요 恒者는 守不變而常且久라 懲忿窒慾以修身하고 遷善改過以長善하며 困以自驗其力하고 井以不變其所하니 然後에 能巽順於理하여 以制事變也라.
이(履)는 예(禮)이다. 위의 하늘과 아래의 못이 분수가 정해져 바뀌지 않으니, 반드시 이를 삼간 뒤에야 그 덕(德)이 기초가 되어 설 수 있는 것이다. 겸(謙)은 자신을 낮추고 남을 높임이요 또 예(禮)를 행하는 이가 마땅히 잡아서 잃지 않아야 할 것이다. 아홉 괘(卦)는 모두 몸에 돌이켜 덕(德)을 닦아서 우환(憂患)에 대처하는 일인데, 순서가 있다. 기(基)는 서는 것이요, 병(柄)은 잡는 것이요, 복(復)은 마음이 밖으로 달리지 아니하여 착한 마음이 보존되는 것이요, 항(恒)은 지킴이 변하지 않아 항상하고 오래함이다. 분함을 징계하고 욕심을 막아 몸을 닦고, 선(善)으로 옮기고 허물을 고쳐 선(善)을 자라게 하며, 곤(困)으로써 스스로 그 능력을 시험하고, 정(井)으로써 그 자리를 변치 않으니, 그런 뒤에야 이치에 손순(巽順)하여 사변(事變)을 재제(裁制)할 수 있는 것이다.
履는 和而至하고 謙은 尊而光하고 復은 小而辨於物하고 恒은 雜而不厭하고 損은 先難而後易하고 益은 長裕而不設하고 困은 窮而通하고 井은 居其所而遷하고 巽은 稱而隱하니라.
이(履)는 화하면서도 지극하고 겸(謙)은 높으면서도 빛나고, 복(復)은 작으면서도 사물을 분변하고, 항(恒)은 섞여 있으면서도 싫지 않고, 손(損)은 어려움을 먼저함에 뒤에는 쉽고, 익(益)은 크고 넉넉하면서도 베풀지 않고, 곤(困)은 궁하면서도 통(通)하고, 정(井)은 제자리에 머물러 있으면서도 옮겨가고, 손(巽)은 일에 걸맞으면서도 드러나지 않는다.
【本義】 此는 如書之九德이라 禮非强世나 然事皆至極이라 謙은 以自卑而尊且光이요 復은 陽微而不亂於群陰이요 恒은 處雜而常德不厭이요 損은 欲先難하니 習熟則易요 益은 但充長而不造作이요 困은 身困而道亨이요 井은 不動而及物이요 巽은 稱物之宜而潛隱不露라.
이는 《서경(書經)》의 구덕(九德)과 같다. 예(禮)는 세상 사람들을 힘쓰게 하는 것이 아니나 일이 모두 지극하다. 겸(謙)은 자신을 낮춤으로써 높고 또 빛나며, 복(復)은 양(陽)이 미약하나 여러 음(陰)에게 혼란당하지 않으며, 항(恒)은 처함이 섞여 있으나 떳떳한 덕(德)이 싫지 않으며, 손(損)은 먼저는 어렵고자 하니 익숙하면 쉬워지며, 익(益)은 다만 충장(充長)하고 조작(造作)하지 않으며, 곤(困)은 몸이 곤하나 도(道)가 형통하며, 정(井)은 동하지 않으면서도 남에게 미치며, 손(巽)은 물건의 마땅함에 걸맞으면서도 잠기고 숨어 드러나지 않는다.
履以和行하고 謙以制禮하고 復以自知하고 恒以一德하고 損以遠害하고 益以興利하고 困以寡怨하고 井以辨義하고 巽以行權하나니라.
이(履)로써 행함을 화하게 하고, 겸(謙)으로써 예(禮)를 따르고, 복(復)으로써 스스로 알고, 항(恒)으로써 덕(德)을 한결같이 하고, 손(損)으로써 해로움을 멀리하고, 익(益)으로써 이로움을 일으키고, 곤(困)으로써 원망을 적게 하고, 정(井)으로써 의(義)를 분변하고, 손(巽)으로써 권도(權道)를 행한다.
【本義】 寡怨은 謂少所怨尤요 辨義는 謂安而能慮라.
과원(寡怨)은 원망하는 바가 적음을 이르고, 변의(辨義)는 편안하여 생각할 수 있음을 이른 것이다.
右는 第七章이라.
이상은 제7장이다.
【本義】 此章은 三陳九卦하여 以明處憂患之道하니라.
이 장(章)은 세 번 아홉 괘(卦)를 말하여 우환(憂患)에 대처하는 도(道)를 밝힌 것이다.
계사하전 제8장(第八章)
易之爲書也 不可遠이요 爲道也屢遷이라 變動不居하여 周流六虛하여 上下无常하며 剛柔相易하여 不可爲典要요 唯變所適이니,
《주역(周易)》 책은 잊을 수 없고 도(道)됨은 자주 옮긴다. 변동하여 머물지 않아 여섯 빈 자리에 두루 흐른다. 그리하여 오르내림이 무상(無常)하고 강유(剛柔)가 서로 교역(交易)하여 전요(典要)로 삼을 수 없고, 오직 변화(變化)하여 나아가는 바이니,
【本義】 遠은 猶忘也라 周流六虛는 謂陰陽流行於卦之六位라.
원(遠)은 망(忘)[잊음]과 같다. ‘주류육허(周流六虛)’는 음(陰)·양(陽)이 괘(卦)의 여섯 자리에 유행함을 이른 것이다.
其出入以度하여 外內에 使知懼하며,
나가고 들어옴을 법도(法度)로써 하여 밖과 안에 두려움을 알게 하며,
【本義】 此句는 未詳하니 疑有脫誤라.
이 구(句)는 상세하지 않으니, 오탈자(誤脫字)가 있는 듯하다.
又明於憂患與故라 无有師保나 如臨父母하니,
또 우환(憂患)과 그 소이연(所以然)에 밝다. 사보(師保)가 없으나 부모(父母)가 임한 듯하니,
【本義】 雖无師保나 而常若父母臨之하니 戒懼之至라.
비록 사보(師保)가 없으나 항상 부모(父母)가 임한 듯하니, 경계하고 두려워함이 지극한 것이다.
初率其辭而揆其方컨댄 旣有典常이어니와 苟非其人이면 道不虛行하나니라.
처음에 그 말을 따라 그 도리를 헤아려보면 이미 떳떳한 법이 있으나 만일 훌륭한 사람이 아니면 도(道)는 헛되이 행해지지 않는다.
【本義】 方은 道也라 始由辭以度(탁)其理하면 則見其有典常矣라 然神而明之는 則存乎其人也라.
방(方)은 도(道)이다. 처음에 그 말을 따라 그 도리를 헤아려 보면 떳떳한 법이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신묘(神妙)하게 밝힘은 사람에게 달려 있는 것이다.
右는 第八章이라.
이상은 제8장이다.
계사하전 제9장(第九章)
易之爲書也 原始要終하여 以爲質也하고 六爻相雜은 唯其時物也라.
《주역(周易)》 책은 시작에 근원하고 종(終)을 맞추어 괘체(卦體)를 삼고, 육효(六爻)가 서로 섞임은 오직 그 때와 일이다.
【本義】 質은 謂卦體라 卦는 必擧其始終而後成體요 爻則唯其時物而已라.
질(質)은 괘체(卦體)를 이른다. 괘(卦)는 반드시 시(始)와 종(終)을 든 뒤에 체(體)를 이루고, 효(爻)는 오직 그 때와 일일 뿐이다.
其初는 難知요 其上은 易知니 本末也라 初辭擬之하고 卒成之終하니라.
초(初)는 알기 어렵고 상(上)은 알기 쉬우니, 본(本)과 말(末)이다. 처음 말은 모의(摸擬)하고 끝마쳐 종(終)을 이룬다.
【本義】 此는 言初上二爻라.
이는 초(初)와 상(上) 두 효(爻)를 말한 것이다.
若夫雜物과 撰德과 辨是與非는 則非其中爻면 不備하리라.
물건을 뒤섞음과 덕(德)을 잡음과 시(是)·비(非)를 분변함 같은 것은 가운데 효(爻)가 아니면 구비하지 못하리라.
【本義】 此는 謂卦中四爻라.
이는 괘(卦) 가운데의 네 효(爻)를 말한 것이다.
噫라 亦要存亡吉凶인댄 則居可知矣어니와 知(智)者觀其彖辭하면 則思過半矣리라.
아! 또한 존망(存亡)과 길흉(吉凶)을 살피고자 하면 거연(居然)히 알 수 있으나 지혜로운 이가 단사(彖辭)를 보면 생각이 반을 넘으리라.
【本義】 彖은 統論一卦六爻之體라.
단(彖)은 한 괘(卦) 여섯 효(爻)의 체(體)를 총론한 것이다.
二與四 同功而異位하여 其善不同하니 二多譽하고 四多懼는 近也일새니 柔之爲道 不利遠者언마는 其要无咎는 其用柔中也일새라.
이(二)와 사(四)는 공(功)이 같으나 자리가 달라 선(善)함이 같지 않으니, 이(二)는 칭찬이 많고 사(四)는 두려움이 많음은 가깝기 때문이다. 유(柔)의 도(道)는 멀리 있는 것이 이롭지 않으나 그 요결(要結)에 허물이 없음은 모두 유(柔)로써 중(中)을 쓰기 때문이다.
【本義】 此以下는 論中爻라 同功은 謂皆陰位요 異位는 謂遠近不同이라 四近君이라 故多懼라 柔不利遠而二多譽者는 以其柔中也일새라.
이 이하는 가운데 효(爻)를 논한 것이다. 공(功)이 같다는 것은 모두 음위(陰位)임을 이르고, 자리가 다르다는 것은 멀고 가까움이 같지 않음을 이른다. 사(四)는 군주와 가까우므로 두려움이 많다. 유(柔)는 멀리 있는 것이 이롭지 않으나 이(二)가 칭찬이 많음은 유(柔)로서 중(中)하기 때문이다.
三與五 同功而異位하여 三多凶하고 五多功은 貴賤之等也일새니 其柔는 危하고 其剛은 勝耶인저.
삼(三)과 오(五)는 공(功)이 같으나 자리가 달라 삼(三)은 흉(凶)함이 많고 오(五)는 공(功)이 많음은 귀천(貴賤)의 차등 때문이니, 유(柔)는 위태롭고 강(剛)은 이겨낼 것이다.
【本義】 三五는 同陽位而貴賤不同이라 然以柔居之則危요 唯剛則能勝之라.
삼(三)과 오(五)는 똑같이 양위(陽位)인데 귀천(貴賤)이 같지 않다. 그러나 유(柔)로서 거하면 위태롭고 오직 강(剛)은 이겨낼 수 있다.
右는 第九章이라.
이상은 제9장이다.
계사하전 제10장(第十章)
易之爲書也 廣大悉備하여 有天道焉하며 有人道焉하며 有地道焉하니 兼三才而兩之라 故六이니 六者는 非他也라 三才之道也니,
《주역(周易)》 책이 광대하여 모두 구비해서 천도(天道)가 있고 인도(人道)가 있고 지도(地道)가 있으니, 삼재(三才)를 겸하여 두 번 하였다. 그러므로 육(六)이니, 육(六)은 다름이 아니라 삼재(三才)의 도(道)이니,
【本義】 三畫에 已具三才어늘 重之라 故六이니 而以上二爻爲天이요 中二爻爲人이요 下二爻爲地라.
세 획(畫)에 삼재(三才)가 이미 갖추어졌는데 거듭하였으므로 육(六)이니, 위의 두 효(爻)는 천(天)이 되고, 가운데 두 효(爻)는 인(人)이 되고, 아래의 두 효(爻)는 지(地)가 된다.
道有變動이라 故曰爻요 爻有等이라 故曰物이요 物相雜이라 故曰文이요 文不當이라 故吉凶生焉하니라.
도(道)가 변동함이 있으므로 효(爻)라 말하였고, 효(爻)가 차등이 있으므로 물(物)이라 말하였고, 물(物)이 서로 섞이므로 문(文)이라 말하였고, 문(文)이 자리에 마땅하지 않으므로 길흉(吉凶)이 생겨나는 것이다.
【本義】 道有變動은 謂卦之一體라 等은 謂遠近貴賤之差라 相雜은 謂剛柔之位相間이요 不當은 謂爻不當位라.
도(道)가 변동함이 있다는 것은 괘(卦)의 한 체(體)를 이른다. 등(等)은 원근(遠近)과 귀천(貴賤)의 차등을 이른다. 서로 섞인다는 것은 강(剛)·유(柔)의 자리가 서로 사이함을 이르고, 마땅하지 않다는 것은 효(爻)가 자리에 마땅하지 않음을 이른다.
右는 第十章이라.
이상은 제10장이다.
계사하전 제11장(第十一章)
易之興也 其當殷之末世, 周之盛德耶인저 當文王與紂之事邪인저 是故로 其辭危하여 危者를 使平하고 易(이)者를 使傾하니 其道甚大하여 百物을 不廢하나 懼以終始면 其要无咎리니 此之謂易之道也라.
역(易)이 일어남은 은(殷)나라 말기와 주(周)나라의 덕(德)이 성할 때를 당했을 것이다. 문왕(文王)과 주(紂)의 일을 당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 말이 위태로워, 위태롭게 여기는 이를 평안하게 하고 쉽게 여기는 이를 기울어지게 하였으니, 그 도(道)가 매우 커서 온갖 일을 폐하지 않으나 두려워하여 마치고 시작하면 그 요결(要結)은 허물이 없을 것이니, 이것을 일러 역(易)의 도(道)라 한다.
【本義】 危懼故로 得平安하고 慢易則必傾覆이니 易之道也라.
위태로워하고 두려워하므로 평안(平安)함을 얻고, 태만하고 함부로 하면 반드시 기울어지고 전복되니, 역(易)의 도(道)이다.
右는 第十一章이라.
이상은 제11장이다.
계사하전 제12장(第十二章)
夫乾은 天下之至健也니 德行이 恒易(이)以知險하고 夫坤은 天下之至順也니 德行이 恒簡以知阻하나니,
건(乾)은 천하(天下)의 지극히 굳셈이니 덕행(德行)이 항상 쉬움으로써 험함을 알고, 곤(坤)은 천하(天下)의 지극히 순함이니 덕행(德行)이 항상 간략함으로써 막힘을 안다.
【本義】 至健則所行无難이라 故易요 至順則所行不煩이라 故簡이라 然其於事에 皆有以知其難而不敢易以處之也라 是以로 其有憂患이면 則健者는 如自高臨下而知其險하고 順者는 如自下趨上而知其阻하나니 蓋雖易而能知險이면 則不陷於險矣요 旣簡而又知阻면 則不困於阻矣라 所以能危能懼而无易者之傾也니라.
지극히 굳세면 행하는 바가 어려움이 없으므로 쉽고, 지극히 순하면 행하는 바가 번거롭지 않으므로 간략하다. 그러나 일에 있어 모두 그 어려움을 알아 감히 함부로 대처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우환(憂患)이 있으면 굳센 이는 마치 높은 곳에서 아래를 임하듯 하여 그 험함을 알고, 순한 이는 아래로부터 위로 달려가듯 하여 그 막힘을 아니, 비록 쉬우나 험함을 알면 험함에 빠지지 않고, 이미 간략하면서도 막힘을 알면 막힘에 곤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능히 위태롭게 여기고 두려워하여 쉽게 여겨 함부로 하는 이의 경복(傾覆)이 없는 것이다.
能說諸心하며 能硏諸(侯之)慮하여 定天下之吉凶하며 成天下之亹亹者니,
마음에 기쁘고 생각에 연구하여 천하(天下)의 길흉(吉凶)을 정하며, 천하(天下)의 힘써야 할 일을 이루니,
【本義】 侯之二字는 衍이라 說諸心者는 心與理會니 乾之事也요 硏諸慮者는 理因慮審이니 坤之事也라 說諸心이라 故有以定吉凶이요 硏諸慮라 故有以成亹亹라.
‘후지(侯之)’ 두 글자는 연문(衍文)이다. 마음에 기쁘다는 것은 마음이 이치와 더불어 맞음이니 건(乾)의 일이요, 생각에 연구한다는 것은 이치가 생각으로 인하여 살펴짐이니 곤(坤)의 일이다. 마음에 기쁘기 때문에 길흉(吉凶)을 정할 수 있고, 생각에 연구하기 때문에 힘써야 할 일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是故로 變化云爲에 吉事有祥이라 象事하여 知器하며 占事하여 知來하나니,
그러므로 변화(變化)하고 운위(云爲)함에 길한 일에 상서로움이 있다. 일을 형상하여 기물(器物)을 알며, 일을 점쳐 미래를 아니,
【本義】 變化云爲라 故象事면 可以知器요 吉事有祥이라 故占事면 可以知來라.
변화(變化)하고 운위(云爲)하므로 일을 형상하면 기물(器物)을 알 수 있고, 길(吉)한 일에 상서로움이 있으므로 일을 점치면 미래를 알 수 있는 것이다.
天地設位에 聖人이 成能하니 人謀鬼謀에 百姓이 與能하나니라.
천지(天地)가 자리를 베풂에 성인(聖人)이 능함을 이루니, 사람에게 도모하고 귀신에게 도모함에 백성이 능함에 참여한다.
【本義】 天地設位에 而聖人作易하여 以成其功하니 於是에 人謀鬼謀에 雖百姓之愚라도 皆得以與其能이라.
천지(天地)가 자리를 베풂에 성인(聖人)이 역(易)을 지어 그 공(功)을 이루니, 이에 사람에게 도모하고 귀신에게 도모함에 비록 백성(百姓)의 어리석은 이라도 모두 능함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八卦는 以象告하고 爻彖은 以情言하니 剛柔雜居而吉凶을 可見矣라.
팔괘(八卦)는 상(象)으로써 고(告)하고 효(爻)와 단(彖)은 정(情)으로써 말해주니, 강(剛)·유(柔)가 섞여 거함에 길(吉)·흉(凶)을 볼 수 있다.
【本義】 象은 謂卦畫이요 爻彖은 謂卦爻辭라.
상(象)은 괘획(卦畫)을 이르고, 효(爻)와 단(彖)은 괘사(卦辭)와 효사(爻辭)를 이른 것이다.
變動은 以利言하고 吉凶은 以情遷이라 是故로 愛惡相攻而吉凶生하며 遠近相取而悔吝生하며 情僞相感而利害生하나니 凡易之情이 近而不相得하면 則凶或害之하며 悔且吝하나니라.
변동(變動)은 이로움으로써 말하고, 길흉(吉凶)은 정(情)으로써 옮겨간다. 이 때문에 사랑함과 미워함이 서로 공격하여 길(吉)·흉(凶)이 생기며, 멀고 가까움이 서로 취하여 회(悔)·인(吝)이 생기며, 진정(眞情)과 거짓이 서로 감동하여 이(利)·해(害)가 생기나니, 무릇 역(易)의 정(情)은 가까우면서도 서로 맞지 못하면 흉하거나 혹은 해로우며, 뉘우치고 또 부끄럽다.
【本義】 不相得은 謂相惡也니 凶害悔吝이 皆由此生이라.
‘불상득(不相得)’은 서로 미워함을 이르니, 흉(凶)과 해(害), 회(悔)와 인(吝)이 모두 이로 말미암아 생긴 것이다.
將叛者는 其辭慙하고 中心疑者는 其辭枝하고 吉人之辭는 寡하고 躁人之辭는 多하고 誣善之人은 其辭游하고 失其守者는 其辭屈하니라.
장차 배반할 이는 그 말이 부끄럽고, 중심(中心)이 의심스러운 이는 그 말이 산만하고, 길(吉)한 사람의 말은 적고, 조급한 사람의 말은 많고, 선(善)을 모함하는 사람은 그 말이 왔다갔다 하고, 그 지킴을 잃은 이는 그 말이 굽힌다.
【本義】 卦爻之辭 亦猶是也라.
괘사(卦辭)와 효사(爻辭) 역시 이와 같다.
右는 第十二章이라.
이상은 제12장이다.

繫辭下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