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들어 연휴. 월요일에 석가탄신일이 들어 연휴가 사흘이다. 마침 규식이가 집에 온대서 나는 아버지를 맡기고 상경하기로 했다. 26일 토요일 4시 차로 출발. 집에 도착하니 8시. 저녁을 해결하고 나니 할 일이 없다. 그래서 나는 <源本東醫寶鑑>을 뽑아 들었다. 간행기와 머릿말을 읽고 나서 국역본이 있는 줄을 알았다. 남산당에서 간행했단다. 국역본 주문.
원본을 시험삼아 읽어가니 읽어진다. 재미도 있다. 독파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기왕 시작한 약초공부를 위해서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다 읽고 나면 아마도 한문 읽는 실력도 일취월장해 있으리라는 기대도 있다. 오래 걸리고 힘들겠지만 막히는 곳은 국역본을 참고삼아 읽을 참이다.
11시가 넘으니 아내가 들어온다. 오늘이 마지막 토요일이라 청담대교 아래서 하는 섹소폰 동호회 연주를 마치고 오는 길이다. 우리 아파트에 사시는 분이 회장이었는데 원주로 이주하시게 되어 오늘이 마지막 연주라고 연주를 마치고 회원들 회식이 있었단다. 참 인자하신 어른이시었다. 같은 아파트에 산다고, 같은 교우라고 우리 부부를 참 많이도 아껴 주셨다. 이주하셔서도 편안하게 사시기를..........
일요일, 이제부터 아내의 숙제를 도와야 한다. 아들애의 도움을 받아 ppt 화면을 꾸미고 동영상도 집어넣고 보니, 아내가 왈,
"와아! 멋지다아!"
첫 화면에 에펠탑을 배경으로 깔고 거기에 문자들을 색색이 넣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일단 마련된 원고를 다 ppt로 옮기고 마지막 숙박업소와 레스토랑만을 남기고 마무리. 여기까지가 일요일을 넘겨 월요일 아침까지 한 작업. 그리고 나머지는 아내의 일. 내가 옆에서 서성거리니 아내가 정신이 없다고 발끈하더니 나를 밖으로 내몬다. 나는 아내의 얼굴을 빤히 보다가 그냥 말없이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찰칵을 들고 나섰다. 갈 곳은 중랑천변.
정문을 나와 응봉교쪽으로 길을 잡으니 보이는 것이 응봉교 교각 공사 현장.
언제나 공사가 끝날 것인지?
중랑천으로 빠지는 제방 터널을 지나서 잠시 망설인다. 한강 쪽으로 갈 것인가, 중랑천 쪽으로 갈 것인가? 중랑천 쪽으로 돌아서 걷는다.
왼쪽에는 체육공원이 자리잡고 있다. 내가 즐겨 뛰던 테니스장, 축구장, 미니 야구장도 있다. 그리고 궁도장, 형형색색의 깃발이 나부낀다.
내 벗 중에는 민수 군이 국궁을 한다. 그가 내게 부탁해서 쓴 편액. < > 내용을 잊었다. 생각이 나면 보충하기로 하고......... 점점 기억력이 없어진다. 장성의 노사 선생께서 젊었을 때 그랬단다. 忘자가 왜 옥편에 있어야 하느냐? 빼 버러랴. 그만큼 기억력이 좋아서 한 번 들으면 잊지를 않아서 그런 말을 하시었단다. 노사 선생은 눈이 하나셨다. 그래서 생긴 말, 長安萬目이 不如長城一目이라. 한양 사람들이 해결하지 못한 무언가를 노사 선생께서 해결을 하신 것. 서울 한양의 모든 사람이 눈 하나 가진 노사보다 못하다는 것이었다. 그런 노사 선생도 40이 넘자 忘자를 옥편에서 없애자는 말씀을 취소하셨단다. 기억이란 것은 쇠퇴하기 마련인 것을...........
자전거를 타는 이가 더 많고 걷는 이도 참 많다. 길가에 인공으로 심어 놓은 꽃양귀비의 빨간 색 속에 저런 내가 모르는 원예화가 피어 있다.
Gypsophila Elegans
걷다가 풀숲에서 별다른 금계국을 만나고,
천변의 풀밭으로 구부러진 흙길을 따라가니
물가에는 청둥오리 세 마리가 한가롭다.
길가에는 사람이 만들어 놓은 정원에 보리가 익어간다. 보리도 좀 별나다.
곁에는 빨간 토끼풀이 자태를 뽑낸다.
비둘기 부부가 한가롭게 놀다가 나를 의식하나 보다. 경계 태세에 돌입한 모양이다. 새는 접근 경계 거리가 있단다. 비둘기는 몇 m일까? 암비둘기가 숙제가 없나 보다. 수비둘기가 서성거려서 방해를 아니 하니 몰아낼 일도 없나 보다. 사이도 좋다.
전철 밑을 지나니 그곳에 살곶이다리가 있다. 청계천을 복원한답시고 뜯어서 가져다가 버린 것(?)이다. 그래도 아예 없애버리지 않고 이렇게 돌만이라도 보관해 놓은 게 천만다행이다. 뜻이 있는 이가 시장이 되면 복원할 수도 있을 터이니..........

길가에 지천으로 핀 수레국화, 애기똥풀.
징검다리 위 세 젊은이, 활기도 넘쳐 흐른다. 비둘기가 우리라고 질쏘냐다. 판석을 깔아서 조금 그렇다. 자연석이었으면 얼마나 멋스러웠을까? 아니면 안전을 고려한 탓일까?

풍차가 이채롭다. 그냥 멋일까? 저 풍차가 무슨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걸까? 발전?
노랑꽃창포가 물가에 멋지다.
물놀이하는 저들도 부불까? 생김새로 보아서는 둘 다 수컷일 듯도 하니 형제일까? 참 다정스럽다. 모여서 놀다가는 건너편으로 헤엄치는 양이 한가롭기 그지없다.

천의 흐름을 잘 몰라 그냥 계속 걸으며 나는 그게 의정부 쪽으로 가는 줄로 알았다. 아내가 전화를 한다. 어디냐고. 의정부 쪽으로 가고 있댔더니 빨리 돌아오란다. 피시가 말을 안 듣는단다. 숙제는 해야 하니 낭패인 모양이다. 그런데 그방 갈 수가 없다. 되돌아서 걸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한 시간 반 정도 걸었으니 가는 길도 그 정도 걸릴 게 아닌가?
그길로 나는 그 징검다리를 건넜다. 얼마를 내려오니 건너오는 다리가 있다. 그런데 내 요량인즉 지나온 살곶이다리를 건너면 되겠거니였다. 그런데 그게 무식(?)해서였다. 중랑천과 청계천이 서로 만나는 지점이 중간에 있는 줄을 모른 거다. 그 길을 한참 따라 걸어도 살곶이다리는 아니 나오고 이상한 지형이 앞에 다가온다. 내 요량대로라면 동부간선도로가 내가 걷는 방향에서는 왼쪽에 있어야 한다. 그런데 강 건너 오른쪽에 있지를 않은가? 누구에게 물을 수도 없다. 걷는 이는 없고 모두가 라이딩을 하는 이들이라 달리는 이를 세워서 묻기가 미안해서다.
'이상하다, 이상하다.' 하다가 생각 끝에 전화기를 꺼내들었다. 지도! 아, 그런데 세 갈레진 물이 흐르고 있지를 않은가? 내가 걷던 길은 사실은 의정부 쪽이 아니라 청계천 쪽이었던 거다. 그걸 물을 건넜다고 계속 걸으며 살곶이다리 나오기만 기다렸으니 중랑천을 따라가면서 중랑교까지 보게 된 거다. 덕분에 되짚어 오는 길에 이름 모를 야생화를 몇 개 건지고, 가새뽕오디도 만났다.
이건 야생화는 아닌 듯싶다
중국굴피나무
이거는 야생 가새뽕오디다. 뽕나무 중에서도 약효가 가장 좋다는 그 가새뽕나무다
천변 물속에는 저렇게 많은 잉어가 놀고, 풀숲에서는 모습도 안 보이는 새소리가 참 맑다.
지칭개 한 그루가 외롭게 서 있고 물 속에는 건너편 망대그림자가 출렁인다. 그리고는 누가 도심에서 흘러나오는 물이 아니라 할까 봐 공해를 담은 거품이 흘러든다.
옹봉교 제방 터널을 올라오는 발길이 무겁다. 무려 네 시간여. 들어오는 길에 맛있는 것도 먹고 놀다오라던 아내 말씀이 생각나서 혼자 맛있는 걸 좀 먹고 갈까 하다가 피시가 안 되어 고민하고 있을 걸 생각하니 그럴 수가 없다. 괜히 내 마음이 바쁘다. <치킨마니아>가 웬일로 문이 열려 있어 들어가 물었다. 음식이 되느냐고. 주인 아저씨가 그러신다.
"저 혼자고, 이른 시간이라서 시간이 좀 걸리는데요?"
"괜찮습니다. 매운 거와 튀김을 반반 섞어서, 2000cc 어디어디로 보내주세요."
당부를 하고는 대림아파트로 들어서니 그곳에 바위취가 웃고 있다.
내집 남문을 향해 걷는다. 남문 옆 정거장 담벼락에 웬 금은화가 활짝이다. 아마도 다른 식물을 심는데 묻어와서 번성한 모양이다. 하도 반가와 찰칵 찰칵. 이 인동은 피어서 사흘 정도가 지나면 노랗게 변하기 때문에 이름이 금은화다. 약용으로 참 좋은 덩굴식물이다.
집에 들어오니 아내가 생각과는 달리 활짝 웃는다. 피시도 잘 돌아간다. 내가 안 된대서 껐다가 5분 정도 지나서 다시 켜라고 했는데 그래서 복구가 된 것일까? 아님 아내가 나 빨리 들어오라고 피시가 안 된다고 한 걸까?
씻고 있는데 치킨이 오는데 뭐라고 뭐라고 하면서 1,000원을 돌려주더란다. 아내랑 둘이 앉아 먹고 있는데 아들 아이가 부시시 일어나 나온다. 같이 먹으니 좋다. 딸아이 것도 남기고.......... 아내가 그 동안 완성한 원고대로 드디어 프랑스ppt 완성. 꽤 잘 만들었지 싶다. 아내는 대 만족이면서도 지친 표정이다. 그도 그럴 수밖에. 스스로 하지도 못하지 누가 해 주는 것이 맘에는 안 들어 애는 타지. 그래서일 거다.
혹시나 하고 다 된 ppt를 열어봤더니 아니나 다를까 첫 화면 글씨가 까맣다. 아마도 저절로 그렇게 바뀐 모양이다. 청백홍으로 바꾸어 놓고 끝. 그렇게 하루가 갔다. 아내는 밤에 발표하러 가시고..................... 나는 <<源本東醫寶鑑>을 펼쳐 들고....................
아내가 참 나를 많이도 사랑해 줬다.
다음 날엔 2차 숙제 < 김경내의 GLOVAL 한강>을 아내가 배우고 새벽 3시 반에 취침. 6시에 일어나지 못할까 봐 모닝콜을 맞추어 놓고............. 6시 40분에 출발. 7시 25분 KTX로 장성행. 그런데 불편한 의자에서 내내 자다가 아마도 목이 무리를 한 모양이다. 뻐근하고 아프다. 덕분에 파스 신세. 그렇게 연휴는 지나갔다. 그래선지 어제는 9시까지 내쳐 잤다. 단잠.

서울지리를 그렇게도 모르다니............. 원 ㅉ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