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앞에는 광주호 둑이 떠억 버티고 있다. 어느집인가 커피를 파는 개인 갤러리가 있다고 그곳에 가서 커피 한 잔 하자던 황선생 왈,
"저기 가면 커피차가 있어요. 그거 마시고 갤러리 가지 맙시다."
언덕을 오르니 그곳에 이동식 커피차가 있다. 아메리카노 두 잔. 금 사천 원. 뜨거워서 기다리는 동안 몇 컷 찰칵.
"커피야, 커피야, 빠알리 식어라아........"
광주호를 곁에 두고 송강정 식영정을 지나 가사문학관을 흘겨보며 달리다가 소쇄원도 지났다. 그 위에 뭔가가 있었다는 생각을 떠올려 얘기를 하니 황선생이 그런다.
"오른쪽 저 산에 장인장모 산소가 있어서 제가 잘 아는데 소쇄원 위에는 뭐가 없는데요?"
그래도 내가 뭔가 있는 걸로 어디선가 봤다고 우기니 소쇄원을 지나면서 그런다. 저 위에 독수정이 있기는 하단다. 그곳의 독수매가 한 300년 되어 꽤 유명하단다. 독수매 독수매............ 많이 들어본 말이다. 가다가 우회전을 해서 독수정 쪽으로 가는데 다리를 지나면서 황선생 왈,
"저 호박 말리는 거 좀 봐요. 멋지다아."
"어디요?" 했더니,
"아니 저 다리 아래 돌위에요."
다리 아래를 내려다보니 아니 그곳 돌 위에 누군가가 건박을 만들려고 하얗게 늘어놓았다. 한 컷 찰칵하잔다. 게으른(?) 나는 차에 앉아서 그냥 찰칵을 하고 황선생은 하차. 그런데 사실은 차를 너무 잘 대서 내 날씬한 몸매로도 차문을 열고 내릴 수가 없었다. 번거롭게 차를 다시 빼달라기가 뭐해서 그냥 괜찮다고 하고 찰칵. 사실 찰칵 위치도 괜찮았다.
비탈길을 돌아서 올라 독수정원림에 들어서니 답답하다. 어디나 사람들이 없어서 그저 형식적으로 관리하고 있는 티가 역역하다. 어쩐지 마음 한 구석이 씁씁하다. 버려진 문화재 아니 버려진 조상의 넋?
북향재배했다는 독수정 북쪽에 이 소나무가 튼실하다. 잎사귀가 특이하다고 황선생 설명하신다.
북향재배라! 임금은 南面하고 신하는 북향재배하고 그게 옛 군신간의 법도였다. 그래서 경복궁도 동향으로 짓자는 무학대사의 말을 버리고 삼봉의 주장대로 남향으로 지었다는 것이다. 남향으로 지으면 한양의 풍수지리상 장자가 득세를 못하니 동향으로 지어야 한다는 것이 무학의 주장인데, 경복궁을 남향으로 지어서 그런지 실제 조선조는 장자가 순탄하게 왕이 되어 제 명을 다한 이가 드물다. 조선이 28대에 망하리라는 것을 벌써 건국초기에 알았음을 짐작하게 하는, 蒼葉門(창 자의 머리부분에도 艹八, 엽 자에도 艹八이 들어있다)을 삼봉이 종묘에 세운 것을 보면 삼봉은 왜 그렇게 남향을 고집했을까? 장자면 어떻고 차자면 어떻겠냐는 생각이었을까? 삼봉은, 왕권은 그저 상징적으로만 이해를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의정부라는 기관을 통해 신하들의 합의체가 나라를 경영하는 것이니 왕권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을 한 것은 아닐까? 그 정도가 조선왕조의 운명이라고 판단한 것일까? 삼봉이 그런 생각을 했다고 하더라도 그만 이방원에게 죽임을 당하고 보니 신권을 가고 왕권만 남아서 조선왕조가 그런 운명이 된 것일까? 조선 27대 왕과 이승만까지 합하면 28대라는 것이다.
길을 돌아 안쪽에 들어가면 그곳에 독수매가 초라하게 방치되어 있다. 어느해 봄에 한 번 온 기억이 그제서야 난다. 내가 아는 이가 그 매화를 아껴 금 150만 원을 주고 사 두는 걸 목격했던 古梅다. 지금은 꽃은커녕 잎사귀마저 다 져 버렸으니 초라할 수밖에............
지난해 봄에 찰칵해 두었던 독수매다. 봄기운이 막 오를 때여서 꽃은 없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