父母가 養其子而不敎면 是는 不愛其子也요, 雖敎而不嚴이면 是亦不愛其子也라. 父母가 敎而不學이면 子不愛其身也요 雖學而不勤이면 是亦不愛其身也니라. <古文眞寶>
부모가 그 자식을 기르는 데 가르치지 않으면 이는 그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요, 비록 가르치더라도 엄히 하지 않으면 그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 부모가 가르쳐도 배우지 않으면 자식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고, 비록 배우더라도 부지런히 하지 않으면 이 역시 그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
凡人子之禮는 冬溫而夏凊하고 昏定而晨省하며 出必告하고 反必面하며 所遊必有常하고 所習必有業하여 恒言不稱老이니라. <小學>
무릇 남의 자식된 예는 겨울에는 따뜻하게 해 드리고, 여름에는 시원하게 해 드리며 밤에는 잠자리를 보아드리고 새벽에는 기침을 살펴드리고, 나갈 때는 반드시 알리고, 돌아와서는 반드시 뵈어드리고 놀 때는 반드시 평상스러이 하고 익히는 것은 반드시 업을 삼아야 하고 항상 자신이 늙었다는 소리를 해서는 안 된다.
孝者는 百行之源이요 五倫之首요 爲人之本也라. 故로 罪在三千에 不孝爲大니라. <蓉州遺稿>
효라는 것은 모든 행실의 근원이요 오륜 중 가장 중요한 것이고 사람됨의 근본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죄 삼천 가지 중 불효가 가장 큰 것이다.
孝子之事親에 居則致其敬하고, 養則致其樂하며, 病則致其憂하고, 喪則致其哀하며 祭則致其嚴하나니, 五者備矣然後에 能事親이니라. <小學>
효자가 부모를 섬기는데, 살아계시면 공경을 극진히 하고, 봉양함에 있어서는 즐거움을 다하고, 병이 드시면 염려는 다하고, 돌아가시면 애곡을 다 하며, 제사에는 그 엄숙함을 다하니, 이 다섯 가지가 갖추어진 후에라야 능히 부모를 섬길 수 있다.
孝子之有深愛者는 必有和氣하고, 有和氣者는 必有柔色하고, 有柔色者는 必有婉容이니, 孝子는 如執玉하며 如奉盈하고 洞洞屬屬然하여 如弗勝하며 如將失之하나 嚴威儼恪은 非所以事親也니라. <禮記>
효자가 깊이 어버이를 사랑함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온화한 기운이 있고, 온화한 기운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부드러운 얼굴빛이 있고, 부드러운 얼굴 기색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부드러운 용모가 있으니, 효자는 옥을 잡는 듯하며, 가득찬 그릇을 받드는 듯하여 공경하고 삼가서 매우 조심하여, 이기지 못하는 듯하며, 장차 그것을 잃을까 걱정하는 듯하는 것이니, 엄한 위풍과 지나치게 근엄한 것도 부모를 섬기는 도리가 아니다.
今人이 多是被養於父母하고 不能而己力으로 養其父母하나니 若此奄過日月이면 則終無忠養之時也라. 日月이 如流하여 事親을 不可久也니 故로 爲子者는 須盡誠竭力하며 如恐不及이 可也니라. 古人詩에 曰, 古人은 一日養을 不以三公으로 換이라 하니 所謂愛日者가 如此니라. <擊蒙要訣>
지금 사람들은 넘치게 부모에게 양육되고서도, 제 힘으로 그 부모를 봉양하지 못한다. 만일 이와 같이 문득 세월만 보낸다면, 결국 정성껏 봉양할 때가 없을 것이다. 세월이 흐르는 물과 같아서 부모 섬김을 오래 할 수 없으니, 그러므로 자식된 사람은 모름지기 정성을 다하고 힘을 다하며, 미치지 못할까 두려워하는 것처럼 하는 것이 옳다. 옛 사람의 시에, 옛 사람은 하루의 봉양을 삼공의 벼슬로도 바꾸지 아니한다고 하였으니, 이른바 날을 아낀다는 것이 이와 같은 것이다.
子遊問孝한데 子曰, 今之孝者는 是謂能養이나, 至於犬馬도 皆能有養이니 不敬何以別乎아. <爲政>
자유가 효에 관해 물으니,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오늘날의 효라는 것은 이는 능히 봉양하는 것을 이르나니, 개나 말에 이르기까지 모두 능히 봉양할 수 있으니 공경하지 않으면 이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父母愛之면 嘉而不忘이요 父母惡(오)之면 懼而無怨하고 父母有過엔 諫而不逆하며 父母旣沒엔 必求仁者之粟하여 以祀之가 此之謂禮終이니라. <禮記>
부모가 사랑하시면 즐거워하여 잊지 말 것이며, 부모가 미워하시면 두려워하되 원망하지 말며, 부모에게 과실이 있으면 간하되 거스르지 말며, 부모가 이미 돌아가셨으면 반드시 좋은 곡식을 구하여 제사를 모시는 것이 예의 마침이다.
身體髮膚는 受之父母라 不敢毁傷이 孝之始也요, 立身行道 揚名於後世하여 以顯父母가 孝之終也니라. <小學>
신체의 모든 것은 부모에게서 받은 것이니 감히 상하지 않게 하는 것이 효의 시작이요, 몸을 세워 도를 행하여 이름을 드날리고 후세에 이름을 날려 부모를 드러내는 것이 효의 마침이다.
凡 人이 莫不知親之當孝나 而孝子甚鮮이라. 由不深知父母之恩故也라. 天下之物이 莫貴於吾身이니 乃父母之所遺也니라. <栗谷全書>
무릇 사람이 부모에게 마땅히 효도를 해야 한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 없으나 효자는 매우 드물다. 부모의 은혜를 깊이 알지 못하는 데서 연유한다. 천하의 모든 사물이 자신의 몸보다 귀한 것이 없으니 이는 곧 부모가 물려주신 것이다.
爲父者는 以責善之訓으로 爲準하고 爲子者는 以天下無不是底父母之句로 爲心이라야 可爲親矣니라. <慕齋集>
부모는 착함을 권하는 가르침으로써 표준을 삼고, 자식은 천하에 옳지 않음이 없는 부모의 말씀으로써 마음을 삼아야 가히 친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愛養父母를 謂之孝요 友於兄弟를 謂之弟요 敎育其子를 謂之慈니 此之謂五敎也니라. 資於事父하여 以尊尊하니 而君道立焉하고 資於事父하여 以賢賢하니 而師道立焉이라. 玆所謂生三이나 而事一也라. 資於事兄하여 以長長하고 資於養子하여 而使衆이라. 夫婦者는 所與共講此德하여 而助其內者也요 朋友者는 所與共講此道하여 而助其外者也라. 然이나 唯慈者는 不勉而能之라. 故로 聖人之立敎也에 唯孝弟是訓이니라. <與猶堂全書>
부모를 사랑하고 봉양하는 것을 효라 이르고, 형제간에 우애하는 것을 제라 이르고, 그 자녀를 가르치어 기르는 것을 자라 이르니, 이것을 오교라고 한다. 부모를 섬김에 바탕을 두어 그로써 높은 이를 높은 이로 대우하니 곧 임금을 섬기는 도리가 여기에 서고, 부모를 섬김에 바탕을 두어 그로써 어진 이를 어진 이로 대우하니 곧 스승을 섬기는 도가 여기에 선다. 이것이 소위 생삼이나 그 섬김은 다 같다. 형을 섬김에 바탕을 두어 그로써 어른을 어른으로 섬기고 자녀를 양육함에 바탕을 두어 그로써 여러 사람을 부리게 한다. 부부라는 것은 주어진 바의 이 덕을 함께 닦아서 그 안을 다스리는 것이요, 붕우라는 것은 주어진 바의 이 도를 함께 배워서 그 밖을 돕는 것이다. 그러나 다만 자애라는 것은 힘쓰지 아니하고도 그것을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성인께서 가르침을 세움에 오직 효와 제만 가르친 것이다.
孟子
公孫丑曰 : 君子之不敎子는 何也잇고?
공손추 "군자가 자기 자식을 친히 가르치지 않는 것은 어떤 까닭입니까?"
孟子曰 勢不行也니라. 敎者必以正이니, 以正不行이어든, 繼之以怒하고, 繼之以怒하면 則反夷矣니, 夫子敎我以正하시되, 夫子未出於正也라 하면, 則是父子相夷也니, 父子相夷면 則惡矣니라.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자연의 추세로 보아 그렇게 되지 않기 때문이다. 가르치는 데는 반드시 올바른 것으로 하는데, 바르게 가르쳤는데 행(行)하지 않으면 이어서 노(怒)하게 되고, 노(怒)하게 되면 도리어 가르침을 해하기 때문이다. '어른(부모)께서 나를 가르치심은 바른 것으로 하신다 하되, 어른(부모)께서 하시는 것은 바른 데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게 되면, 이것은 부자가 서로 해치는 것이다. 부자가 서로 해치면 나쁘다.
夷는 傷也요, 敎子者는 本爲愛其子也로되 繼之以怒면 則反傷其子矣라. 父旣傷其子면 子之心에 又責其父曰 夫子敎我以正道하시되, 而夫子之身도 未必自行正道라 하면 則是子又傷其父也니라.
이는 해치는 것이요, 자식을 가르친다는 것은 본래 그 자식을 위하는 것이로되 계속되면 곧 도리어 그 자식을 해치게 된다. 부모가 이미 그 자식을 해치면 자식의 마음에 또 그 부모를 탓해 말하기를, 부모가 나를 바르게 가르치시되 부모 자신도 바르게 행동하지 못한다 하면 이는 자식이 또 부모를 해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