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문1장(經文一章)
大學之道는 在明明德하며 在親[新] 民하며 在止於至善이니라.
《대학(大學)》의 도(道)는 명덕(明德)을 밝힘에 있으며, 백성을 새롭게 함에 있으며, 지선(至善)에 그침에 있다.
程子曰 親은 當作新이라.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친(親)은 마땅히 신(新)이 되어야 한다.”
○ 大學者는 大人之學也라 明은 明之也라 明德者는 人之所得乎天而虛靈不昧하여 以具衆理而應萬事者也라 但爲氣稟所拘와 人欲所蔽하면 則有時而昏이라 然이나 其本體之明은 則有未嘗息者라 故로 學者當因其所發而遂明之하여 以復其初也라 新者는 革其舊之謂也니 言 旣自明其明德이면 又當推以及人하여 使之亦有以去其舊染之汚也라 止者는 必至於是而不遷之意요 至善은 則事理當然之極也라 言 明明德, 新民을 皆當止於至善之地而不遷이니 蓋必其有以盡夫天理之極이요 而無一毫人欲之私也라 此三者는 大學之綱領也라
○ 대학(大學)은 대인(大人)의 학문이다. 명(明)은 밝힘이다. 명덕(明德)은 사람이 하늘에서 얻은 바, 허령(虛靈)하고 어둡지 않아서 중리(衆理)를 갖추어 있고 만사(萬事)에 응하는 것이다. 다만 기품(氣稟)에 구애된 바와 인욕(人慾)에 가리운 바가 되면 때로 어두울 적이 있으나, 그 본체(本體)의 밝음은 일찍이 쉬지 않는다. 그러므로 배우는 이가 마땅히 그 발(發)하는 바를 인하여 마침내 밝혀서 그 처음을 회복하여야 한다. 신(新)은 옛 것을 고침을 이르니 이미 스스로 그 명덕(明德)을 밝혔으면, 또 마땅히 미루어 남에게까지 미쳐서, 그 또한 옛날에 물든 더러움을 제거하게 함이 있음을 말한 것이다. 지(止)는 반드시 이에 이르러 옮기지 않는 뜻이요, 지선(至善)은 사리(事理)의 당연(當然)한 극(極)이다. 명명덕(明明德)과 신민(新民)을 다 마땅히 지선(至善)의 경지에 멈추어 옮기지 않음을 말한 것이니, 반드시 그 천리(天理)의 극(極)을 다함이 있고, 일호(一毫)라도 인욕(人慾)의 사사로움이 없는 것이다. 이 세 가지는 《대학(大學)》의 강령(綱領)이다.
知止而后有定이니 定而后能靜하고 靜而后能安하고 安而后能慮하고 慮而后能得이니라.
그칠 데를 안 뒤에 정(定)함이 있으니, 정(定)한 뒤에 능히 고요하고, 고요한 뒤에 능히 편안하고, 편안한 뒤에 능히 생각하고, 생각한 뒤에 능히 얻는다.
止者는 所當止之地니 卽至善之所在也니 知之면 則志有定向이라 靜은 謂心不妄動이요 安은 謂所處而安이요 慮는 謂處事精詳이요 得은 謂得其所止라.
지(止)는 마땅히 그쳐야 할 바의 곳이니, 바로 지선(至善)이 있는 곳이다. 이것을 안다면 뜻이 정(定)한 방향이 있을 것이다. 정(靜)은 마음이 망령되이 동(動)하지 않음을 이르고, 안(安)은 처한 바에 편안함을 이르고, 려(慮)는 일을 처리하기를 정밀하고 상세히 함을 이르고, 득(得)은 그 그칠 바를 얻음을 이른다.
物有本末하고 事有終始하니 知所先後면 則近道矣리라.
물건에는 본(本)과 말(末)이 있고, 일에는 종(終)과 시(始)가 있으니, 먼저 하고 뒤에 할 것을 알면 도(道)에 가까울 것이다.
明德爲本이요 新民爲末이며 知止爲始요 能得爲終이니 本始는 所先이요 末終은 所後라 此는 結上文兩節之意니라.
명덕(明德)은 본(本)이 되고, 신민(新民)은 말(末)이 되며, 지지(知止)는 시(始)가 되고, 능득(能得)은 종(終)이 되니, 본(本)과 시(始)는 먼저 해야 할 것이요, 말(末)과 종(終)은 뒤에 해야 할 것이다. 이는 위 글의 두 절(節)의 뜻을 맺은 것이다.
古之欲明明德於天下者는 先治其國하고 欲治其國者는 先齊其家하고 欲齊其家者는 先修其身하고 欲修其身者는 先正其心하고 欲正其心者는 先誠其意하고 欲誠其意者는 先致其知하니 致知는 在格物하니라.
옛날에 명덕(明德)을 천하에 밝히고자 하는 이는 먼저 그 나라를 다스리고, 그 나라를 다스리고자 하는 이는 먼저 그 집안을 가지런히 하고, 그 집안을 가지런히 하고자 하는 이는 먼저 그 몸을 닦고, 그 몸을 닦고자 하는 이는 먼저 그 마음을 바루고, 그 마음을 바루고자 하는 이는 먼저 그 뜻을 성실히 하고, 그 뜻을 성실히 하고자 하는 이는 먼저 그 지식(知識)을 지극히 하였으니, 지식을 지극히 함은 사물의 이치를 궁구함에 있다.
明明德於天下者는 使天下之人으로 皆有以明其明德也라 心者는 身之所主也라 誠은 實也요 意者는 心之所發也니 實其心之所發하여 欲其必自慊而無自欺也라 致는 推極也요 知는 猶識也니 推極吾之知識하여 欲其所知無不盡也라 格은 至也요 物은 猶事也니 窮至事物之理하여 欲其極處無不到也라 此八者는 大學之條目也라.
명덕(明德)을 천하에 밝힌다는 것은 천하 사람이 모두 그 명덕(明德)을 밝힘이 있게 하는 것이다. 심(心)은 몸의 주장하는 바이다. 성(誠)은 성실함이요, 의(意)는 마음의 발(發)하는 바이니, 그 마음의 발(發)하는 바를 성실히 하여, 반드시 스스로 만족하고 스스로 속임이 없고자 하는 것이다. 치(致)는 미루어 지극히 함이요, 지(知)는 식(識)과 같으니, 나의 지식(知識)을 미루어 지극히 하여 그 아는 바가 다하지 않음이 없고자 하는 것이다. 격(格)은 이름이요, 물(物)은 사(事)와 같으니, 사물의 이치를 궁구하여 그 극처(極處)가 이르지 않음이 없고자 하는 것이다. 이 여덟 가지는 《대학(大學)》의 조목(條目)이다.
物格而后知至하고 知至而后意誠하고 意誠而后心正하고 心正而后身修하고 身修而后家齊하고 家齊而后國治하고 國治而后天下平이니라.
사물의 이치가 이른 뒤에 지식이 지극해지고, 지식이 지극해진 뒤에 뜻이 성실해지고, 뜻이 성실해진 뒤에 마음이 바루어지고, 마음이 바루어진 뒤에 몸이 닦아지고, 몸이 닦아진 뒤에 집안이 가리런해지고, 집안이 가지런한 뒤에 나라가 다스려지고, 나라가 다스려진 뒤에 천하가 평(平)해진다.
物格者는 物理之極處가 無不到也요 知至者는 吾心之所知가 無不盡也라 知旣盡이면 則意可得而實矣요 意旣實이면 則心可得而正矣라 修身以上은 明明德之事也요 齊家以下는 新民之事也라 物格知至는 則知所止矣요 意誠以下는 則皆得所止之序也라.
격물(格物)은 물리(物理)의 지극한 곳이 이르지 않음이 없음이요, 지지(至知)는 내 마음의 아는 바가 극진하지 않음이 없는 것이다. 지식이 이미 극진해지면 뜻이 성실해질 수 있고, 뜻이 이미 성실해지면 마음이 바루어질 수 있다. 수신(修身) 이상은 명명덕(明明德)의 일이요, 제가(齊家) 이하는 신민(新民)의 일이다. 격물(格物)과 지지(至知)는 그칠 바를 아는 것이요, 성의(誠意) 이하는 모두 그칠 바를 얻는 차례이다.
自天子로 以至於庶人히 壹是皆以修身爲本이니라.
천자(天子)로부터 서인(庶人)에 이르기까지 일체 모두 수신(修身)을 근본으로 삼는다.
壹是는 一切也라 正心以上은 皆所以修身也요 齊家以下는 則擧此而措之耳라.
일시(壹是)는 일체(一切)이다. 정심(正心) 이상은 다 수신(修身)하는 것이요, 제가(齊家) 이하는 이것을 들어 둘 뿐이다.
其本亂而末治者否矣며 其所厚者薄이요 而其所薄者厚는 未之有也니라.
그 근본이 어지럽고서 끝이 다스려지는 이는 없으며, 후(厚)히 할 것에 박(薄)하게 하고서 박(薄)하게 할 것에 후(厚)히 하는 이는 있지 않다.
本은 謂身也요 所厚는 謂家也라 此兩節은 結上文兩節之意니라.
본(本)은 몸을 이르고, 후(厚)히 할 것은 집안을 이른다. 이 두 절(節)은 위 글의 두 절(節)의 뜻을 맺은 것이다.
右는 經一章이니 蓋孔子之言을 而曾子述之하시고 其傳十章은 則曾子之意를 而門人記之也라 舊本에 頗有錯簡일새 今因程子所定하고 而更考經文하여 別爲序次如左하노라.
우(右)는 경문(經文) 1장(章)이니,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신 것을 증자(曾子)가 기술(記述)하셨고, 전문(傳文) 10장(章)은 증자(曾子)의 뜻을 문인(門人)이 기록한 것이다. 구본(舊本)에 자못 착간(錯簡)이 있으므로, 이제 정자(程子)께서 정한 것을 따르고, 다시 경문(經文)을 상고하여 별도로 차례를 만들기를 좌(左)와 같이 하였다.
凡傳文은 雜引經傳하여 若無統紀라 然이나 文理接續하고 血脈貫通하여 深淺始終이 至爲精密하니 熟讀詳味하면 久當見之일새 今不盡釋也하노라.
모든 전문(傳文)은 경전(經傳)을 섞어 인용하여 통기(統紀)가 없는 듯하다. 그러나 문리(文理)가 이어지고 혈맥(血脈)이 관통하여, 깊고 얕음과 시(始)와 종(終)이 지극히 정밀하니, 익숙히 읽고 자세히 음미하면, 오래되면 마땅히 볼 수 있을 것이므로 이제 다 해석하지 않는다.

경문1장(經文一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