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으로 함에 얽힌 사연이 끝이었으면............ 그런데 그게 아니랑께. 다행인 것은 그들이 모두 그 함에 만족해 했다는 사실. 고마운 일이지. 그 함에는 모두 지금도 사랑이 악세사리처럼 가득 담겨 있을까? 사랑의 유효기간은 18개월이라는데.
그해 1981년 루치아에게 결혼함을 보낼 때 내가 보지도 못한 것이 한. 함이란 것이 나중에 보니 한복집에서 그냥 파는 싸구려 칠함이 아닌가! 그 함에 예쁜 우리옷을 지을 옷감과 그 위에 사주단자를 넣으면서 순간 내 얼굴은 홍당무였으리라. 그래서 훗날 자개함을 사서 그것을 그때의 미안 마음에 대신해서 선물하기는 했어도 그래도 마음 한구석에는 미안하고 부끄러운 쑥스러움이 영 가시지를 않았다.
그래서 한지공예를 배운 김에 함을 하나 만들기로 했다. 고르고 고른 끝에 혜산의 <청산도>를 골라 함의 겉 다섯 면에 돌아가며 써 넣었다. 끙끙대기를 무려 한 달. 작품이랄 것도 없지만 서툴고 투박하고. 그래도 루치아가 애지중지해 주니 고맙기 그지없다. 이름하여 악세서리함이다. 그런데 이것이 즐거운 비명의 시작일 줄이야.
우리 딸이 어떤 딸이라고. 색시에게만 만들어 주고 무사할 줄 알았으니 나도 멍청하기는 증말 유단자다. 지 엄마에게 만들어 준 함을 보고는 딸이 왈,
"아빠 나도오오오오."
말투부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재빨리 간파하고 대처했더라면 후환이 없었을 것을................ 눈치가 없기는 이제나 그때나 마찬가진가 보다.
어제 딸이 한 말.
"아빠는 조금만 눈치가 있으면 훨씬 더 사랑 받을 텐데.......... 영 눈치가 제로야."
그때 내가 분위기 파악 못하고 한 말.
"너는 네 신랑한테 만들어 달래라."
딸이 가만히 있을 리가 있나. 입은 삐죽, 눈은 휙 돌아갔지 뭐.
'그래도 어쩔 수 없지.' 하고는 그냥 묵살을 했으니 후환이 두려운 줄도 모르고 참 내가 그렇다니까. 냉냉한 딸의 눈치 슬슬 보기를 자그만치 몇 달.
그래서 세월이 흐른 후 몰래 또 한 달이 걸려서 완성을 할 수밖에.
두 번째 만든 함.
그후로 처형의 함을 만드느라구 한 달.
계수씨함을 만드느라구 또 한 달.
또 하나 덤으로 다행인 것은 솜씨가 달로 달로 비약적(?)으로 늘었다는 것.

어느날 종이 모아 온 정성 다 들여서
붙이고 자르고는 또 재고 깎아내고
한 달이 훌쩍 지나고 함 하나를 낳았네
딸이 왈 아빠아아 나도오 하나아아
어떨결에 튀어나온 퉁명스런 내 대답
모른다 네 신랑한테 해달래라 나중에
이러저러 곤욕끝에 한 달이 가고나니
내 손은 고생해도 곱다란 함이 하나
딸아이 벙근 얼굴을 거울 속에 담았네
웃느라 눈 없어진 처형을 뵌 게 하나
어머나 이런 거얼 다아 한 계수씨 말
지금도 함에는 사랑 하나가득 자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