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서(明筮)
倚數之元은 參天兩地니 衍而極之하여 五十乃備라 是曰大衍이니 虛一无爲하여 其爲用者 四十九蓍라 信手平分하여 置右於几하고 取右一蓍하여 掛左小指라 乃以右手로 揲左之策하여 四四之餘를 歸之于扐이라 初扐左手호되 无名指間이요 右策左揲은 將指是安이라 再扐之奇와 通掛之算은 不五則九니 是謂一變이라 置此掛扐하고 再用存策하여 分掛揲歸호되 復準前式이라 三亦如之하면 奇皆四八이니 三變旣備면 數斯可察이라.
수(數)를 붙인 근원은 천(天)은 셋이고 지(地)는 둘이니, 이것을 부연하여 지극하게 해서 50이 이에 갖추어졌다. 이것을 대연(大衍)이라 하니, 하나는 비워두고 쓰지 아니하여 쓰여지는 것은 49개의 시초(蓍草)이다. 손가는 대로 반(半)을 나누어서 오른쪽의 것은 궤(几)에 놓고 오른쪽의 시초 하나를 취하여 왼손의 새끼손가락 사이에 건다. 이에 오른손으로 왼쪽의 책(策)을 떼내어 넷씩 세고 난 나머지를 손가락 사이에 끼운다. 처음은 왼쪽 손에 끼되 무명지(無名指) 사이에 하고 오른쪽의 책(策)을 왼손으로 세고 난 것은 장지(將指)에 편안히 둔다. 두 번 손가락에 낀 나머지와 건 것을 통틀어 계산하면 5가 아니면 9이니, 이것을 일변(一變)이라 한다. 이 걸고 낀 것을 놓아두고, 다시 남은 책(策)을 사용하여 괘를 나누어 세고 되돌아가서 다시 앞의 방식대로 한다. 세 번째도 이와 같이 하면 기(奇)가 모두 4나 8이니, 삼변(三變)이 이미 갖추어지면 수(數)를 살필 수 있다.
數之可察은 其辨伊何오 四五爲少요 八九爲多라 三少爲九니 是曰老陽이요 三多爲六이니 老陰是當이라 一少兩多는 少陽之七이며 孰八少陰고 少兩多一이라 旣得初爻어든 復合前蓍하여 四十有九를 如前之爲라 三變一爻하여 通十八變이면 六爻發揮하여 卦體可見이라 老極而變이요 少守其常하니 六爻皆守면 彖辭是當이라 變視其爻호되 兩兼首尾요 變及三爻하면 占兩卦體라 或四或五면 視彼所存하여 四二五一이니 二分一專이라 皆變而他하면 新成舊毁하니 消息盈虛에 舍此視彼라 乾占用九하고 坤占用六이며 泰愕匪人이요 姤喜來復이니라.
수(數)를 살핌은 그 구분을 어떻게 하는가? 4와 5를 소(少)라 하고 8과 9를 다(多)라 한다. 소(少)가 셋인 것은 9가 되니 이것을 노양(老陽)이라 하고, 다(多)가 셋인 것은 6이 되니 노음(老陰)이 이에 해당한다. 소(少)가 하나이고 다(多)가 둘인 것은 소양(少陽)인 7이며, 무엇이 8인 소음(少陰)인가? 소(少)가 둘이고 다(多)가 하나인 것이다. 이미 초효(初爻)를 얻었거든 다시 앞의 시초를 합해서 49개를 앞에서 한 것과 같이 한다. 세 번 변하면 한 효(爻)가 되니, 모두 18변(變)을 하면 육효(六爻)가 발휘되어 괘체(卦體)를 알 수 있다. 노(老)는 지극하여 변하고 소(少)는 떳떳함을 지키니, 육효(六爻)가 모두 지켜지면 단사(彖辭)가 이에 해당한다. 변하였으면 그 효(爻)를 보되 두 개면 위와 아래 두 효(爻)를 겸하여 보고, 변한 것이 세 효(爻)에 미치면 두 괘체(卦體)로 점(占)을 친다. 혹 네 효(爻)가 변하고 혹 다섯 효(爻)가 변하였으면 보존된 것을 보되 네 효(爻)가 변했으면 남아있는두 효(爻)를 보고 다섯 효(爻)가 변했으면 남아있는 한 효(爻)를 보니, 둘이면 나누어 보고 하나면 한 효(爻)만 본다. 모두 변하여 다른 괘(卦)로 갔으면 새로운 괘(卦)가 이루어지고 옛 괘(卦)는 허물어지니, 소식(消息)하고 영허(盈虛)함에 이것을 버리고 저것을 본다. 건괘(乾卦)는 용구(用九)로 점(占)을 치고 곤괘(坤卦)는 용육(用六)으로 점(占)을 치며, 태괘(泰卦)는 비인(匪人)에 놀라고 구괘(姤卦)는 와서 회복함에 기뻐한다.
계류(稽類)
八卦之象이 說卦詳焉하니 考之於經하면 其用弗專이라 彖以情言이요 象以象告니 唯是之求하면 斯得其要라 乾健天行이요 坤順地從이며 震動爲雷요 巽入木風이라 坎險水泉이니 亦雲亦雨요 離麗文明이니 電日而火라 艮止爲山이요 兌說爲澤이니 以是擧之하면 其要斯得이라 凡卦六虛에 奇偶殊位하니 奇陽偶陰이 各以其類라 得位爲正이요 二五爲中이며 二臣五君이요 初始上終이라 貞悔體分이요 爻以位應이니 陰陽相求라야 乃得其正이라 凡陽斯淑이니 君子居之요 凡陰斯慝이니 小人是爲라 常可類求어니와 變非例測이니 非常曷變고 謹此爲則이어다.
팔괘(八卦)의 상(象)이 〈설괘전(說卦傳)〉에 자세히 나와 있으니, 경문(經文)을 살펴보면 그 쓰임이 한 가지만이 아니다. 단(彖)은 정(情)으로 말하였고 상(象)은 상(象)으로 고(告)하였으니, 오직 이것을 찾으면 그 요점을 알 수 있다. 건(乾)의 굳셈은 하늘의 운행이요 곤(坤)의 순함은 땅의 따름이며, 진(震)의 동함은 우레가 되고 손(巽)의 들어감은 나무와 바람이 된다. 감(坎)의 험함은 수(水)·천(泉)이니 역시 구름이 되고 비가 되며, 이(離)의 걸림은 문명(文明)하니 번개와 해와 불이 된다. 간(艮)의 그침은 산(山)이 되고 태(兌)의 기뻐함은 못이 된다. 이것을 예거하면 요점을 알 수 있다. 무릇 괘(卦)의 여섯 자리에 기(奇)·우(偶)가 자리가 다르니, 기(奇)의 양(陽)과 우(偶)의 음(陰)이 각기 그 유(類)에 따른다. 자리를 얻으면 정(正)이라 하고 이효(二爻)와 오효(五爻)를 중(中)이라 하며, 이효(二爻)는 신하고 오효(五爻)는 군주며, 초효(初爻)는 시(始)고 상효(上爻)는 종(終)이다. 정(貞)과 회(悔)로 체(體)가 나누어지고 효(爻)는 자리로 응하니, 음(陰)·양(陽)이 서로 구하여야 정응(正應)을 얻는다. 무릇 양(陽)은 선(善)하니 군자(君子)가 거하고, 무릇 음(陰)은 사특하니 소인(小人)이 한다. 떳떳한 것은 유(類)로 찾을 수 있으나 변하는 것은 준례로 측량할 수 없으니, 떳떳함이 아니면 어찌 변하겠는가. 이것을 삼가 법칙으로 삼을지어다.
경학(警學)
讀易之法은 先正其心하고 肅容端席하여 有翼其臨이라 于卦于爻에 如筮斯得하여 假彼象辭하여 爲我儀則이라 字從其訓하고 句逆其情하며 事因其理하고 意適其平이라 曰否曰臧을 如目斯見이요 曰止曰行을 如足斯踐이라 毋寬以略하고 毋密以窮하며 毋固而可하고 毋必而通하라 平易從容하여 自表而裏니 及其貫之하면 萬事一理라 理定旣實이나 事來尙虛요 用應始有나 體該本無라 稽實待虛하고 存體應用하며 執古御今하고 由靜制動이라 潔靜精微를 是之謂易이니 體之在我하면 動有常吉이라 在昔程氏 繼周紹孔하사 奧指宏綱을 星陳極拱이러시니 唯斯未啓하여 以俟後人일새 小子狂簡하여 敢述而申하노라.
역(易)을 읽는 법은 먼저 마음을 바루어야 하며 용모를 엄숙하게 하고 자리를 바르게 하여 공경히 임하여야 한다. 괘(卦)와 효(爻)에 있어 점(占)을 쳐서 얻은 듯이 여겨 저 상사(象辭)를 빌어 나의 의칙(儀則)으로 삼아야 한다. 글자는 훈(訓)을 따르고 글귀는 실정(實情)을 역탐(逆探)하며 일은 이치를 따르고 뜻은 화평함에 맞아야 한다. 나쁜 것과 좋은 것을 눈으로 본 것처럼 여기며, 멈추고 감을 발로 밟는 것처럼 여겨야 한다. 너무 느슨하여 소략하게 하지 말고 너무 치밀하여 궁하게 하지 말며, 고집하여 가(可)하다 하지 말고 기필하여 억지로 통하지 말라. 평이하고 종용(從容)하여 겉으로부터 속에 이르러야 하니, 관통함에 이르면 만 가지 일이 한 이치이다. 이치는 정(定)해져서 이미 실(實)하나 일의 옴은 오히려 허(虛)하며, 용(用)은 응함에 따라 비로소 있으나 체(體)는 모두 포함하되 본래 없는 것이다. 실(實)을 상고하여 허(虛)에 대비하고 체(體)를 보존하여 용(用)에 응하며, 옛것을 가지고 지금을 다스리며 정(靜)함으로 말미암아 동(動)함을 다스린다. 정결(靜潔)하고 정미(精微)함을 역(易)이라 이르니, 체득하여 나에게 있게 하면 동함에 항상 길(吉)함이 있을 것이다. 옛날 정씨(程氏)가 주(周)나라의 문왕(文王)과 주공(周公)을 잇고 공자(孔子)를 이으사 심오한 뜻과 큰 강령을 별들이 나열하여 북극성(北極星)을 향하듯이 하였는데, 오직 이것을 열어주지 아니하여 후인(後人)들을 기다리셨기에 소자(小子)가 광간(狂簡)하여 감히 기술하고 거듭하노라.

이제 <筮儀>만 남았다. 그 뒤는 易이다. 참 지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