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이(履)
【傳】 履는 序卦에 物畜然後有禮라 故受之以履라 하니라 夫物之聚면 則有大小之別, 高下之等, 美惡之分하니 是物畜然後有禮니 履所以繼畜也라 履는 禮也니 禮는 人之所履也라 爲卦 天上澤下하니 天而在上하고 澤而處下는 上下之分과 尊卑之義니 理之當也요 禮之本也요 常履之道也라 故爲履라 履는 踐也, 藉也니 履物爲踐이요 履於物爲藉니 以柔藉剛이라 故爲履也라 不曰剛履柔而曰柔履剛者는 剛乘柔는 常理니 不足道라 故로 易中에 唯言柔乘剛하고 不言剛乘柔也라 言履藉於剛하니 乃見卑順說應之義라.
이괘(履卦)는 〈서괘전(序卦傳)〉에 “사물이 모인 뒤에 예(禮)가 있다. 그러므로 이괘(履卦)로 받았다.” 하였다. 사물이 모이면 대소(大小)의 구별과 고하(高下)의 등급과 미악(美惡)의 구분이 있으니, 이는 사물이 모인 뒤에 예(禮)가 있는 것이니, 이괘(履卦)가 이 때문에 소축괘(小畜卦)의 뒤를 이은 것이다. 이(履)는 예(禮)이니, 예(禮)는 사람이 행하는 것이다. 괘(卦)됨이 하늘이 위에 있고 못이 아래에 있으니, 하늘이 위에 있고 못이 아래에 처한 것은 상하(上下)의 구분과 존비(尊卑)의 의(義)이니, 이치의 마땅함이요 예(禮)의 근본이요 떳떳이 행해야 할 도(道)이다. 그러므로 이(履)라 한 것이다. 이(履)는 밟음이요 깔림이니, 사물을 밟음이 천(踐)이고 물건에게 밟힘이 자(藉)이니, 유(柔)로서 강(剛)에게 깔렸으므로 이(履)라고 한 것이다. 강(剛)이 유(柔)를 밟았다고 말하지 않고 유(柔)가 강(剛)에게 밟혔다고 말한 것은 강(剛)이 유(柔)를 타는 것은 떳떳한 이치이니, 굳이 말할 것이 없다. 그러므로 역(易) 가운데 오직 유(柔)가 강(剛)을 탄 것만을 말하였고, 강(剛)이 유(柔)를 탄 것은 말하지 않았다. 강(剛)에게 밟히고 깔렸으니, 바로 낮추고 순히 하며 기뻐하여 응하는 뜻을 나타낸 것이다.
履虎尾라도 不咥人이라 亨하니라.
범의 꼬리를 밟더라도 사람을 물지 않으니, 형통하다.
【傳】 履는 人所履之道也라 天在上而澤處下하니 以柔履藉於剛하여 上下各得其義하니 事之至順이요 理之至當也라 人之履行이 如此면 雖履至危之地나 亦无所害라 故履虎尾而不見咥囓하니 所以能亨也라.
이(履)는 사람이 행하는 도(道)이다. 하늘은 위에 있고 못은 아래에 처하였으니, 유(柔)가 강(剛)에게 밟히고 깔려서 상하(上下)가 각각 그 의(義)를 얻었는 바, 일에 지극히 순한 것이요 이치에 지극히 마땅한 것이다. 사람의 이행(履行)이 이와 같으면 비록 지극히 위험한 곳을 행하더라도 역시 해로운 바가 없다. 그러므로 범의 꼬리를 밟더라도 물림을 당하지 않으니, 이 때문에 형통한 것이다.
【本義】 兌亦三畫卦之名이니 一陰이 見於二陽之上이라 故其德爲說이요 其象爲澤이라 履有所躡而進之義也하니 以兌遇乾하여 和說以躡剛强之後하니 有履虎尾而不見傷之象이라 故其卦爲履하고 而占如是也라 人能如是면 則處危而不傷矣리라.
태(兌) 역시 삼획괘(三畫卦)의 이름이니, 하나의 음(陰)이 두 양(陽)의 위에 나타났다. 그러므로 그 덕(德)이 기뻐함이 되고 그 상(象)이 못이 된 것이다. 이(履)는 밟아 나아가는 뜻이 있으니, 태(兌)로서 건(乾)을 만나 화열(和悅)함으로써 강강(剛强)의 뒤를 밟았으니, 범의 꼬리를 밟더라도 상해(傷害)를 당하지 않는 상(象)이 있다. 그러므로 그 괘(卦)가 이(履)가 되고 점(占)이 이와 같은 것이다. 사람이 이와 같이 하면 위험에 처하여도 상해(傷害)를 당하지 않을 것이다.
彖曰 履는 柔履剛也니,
〈단전(彖傳)〉에 말하였다. “이(履)는 유(柔)가 강(剛)에게 밟힘이니,
【本義】 以二體로 釋卦名義라.
두 체(體)로 괘명(卦名)의 뜻을 해석하였다.
說而應乎乾이라 是以履虎尾不咥人亨이라.
기뻐함으로써 건(乾)에게 응한다. 이 때문에 범의 꼬리를 밟더라도 사람을 물지 않아 형통한 것이다.
【傳】 兌以陰柔로 履藉乾之陽剛은 柔履剛也요 兌以說順으로 應乎乾剛而履藉之는 下順乎上, 陰承乎陽이니 天下之至[一作正]理也라 所履如此면 至順至當하니 雖履虎尾나 亦不見傷害라 以此履行이면 其亨을 可知라.
태(兌)가 음유(陰柔)로 건(乾)의 양강(陽剛)에게 밟히고 깔림은 유(柔)가 강(剛)에게 밟힌 것이요, 태(兌)가 기뻐하고 순함으로써 건강(乾剛)에게 응하여 밟히고 깔림은 아래가 위에게 순히 하고 음(陰)이 양(陽)을 받드는 것이니, 천하(天下)의 지극한 이치이다. 행하는 바가 이와 같으면 지극히 순하고 지극히 마땅하니, 비록 범의 꼬리를 밟더라도 역시 상해를 당하지 않는다. 이러한 방식으로 이행(履行)하면 그 형통함을 알 수 있다.
【本義】 以卦德으로 釋彖辭라.
괘덕(卦德)으로 단사(彖辭)를 해석하였다.
剛中正으로 履帝位하여 而不疚면 光明也라.
강(剛)하고 중정(中正)함으로 제위(帝位)를 밟아 하자가 없으면 광명(光明)하다.
【本義】 而不疚니 光明也라.
【본의】 하자가 없으니, 광명(光明)하다.
【傳】 九五以陽剛中正으로 尊履帝位하여 苟无疚病이면 得履道之至善光明者也라 疚는 謂疵病이니 夬履是也라 光明은 德盛而輝光也라.
구오(九五)가 양강중정(陽剛中正)으로 높이 제위(帝位)를 밟아 진실로 하자가 없다면 이행(履行)하는 도(道)에 지극히 선(善)하고 광명함을 얻은 것이다. 구(疚)는 자병(疵病)을 이르니, 쾌리(夬履)가 이것이다. 광명(光明)은 덕(德)이 성하여 빛나는 것이다.
【本義】 又以卦體明之하니 指九五也라.
또 괘체(卦體)로 밝혔으니, 구오(九五)를 가리킨 것이다.
象曰 上天下澤이 履니 君子以하여 辨上下하여 定民志하나니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위는 하늘이고 아래는 못인 것이 이(履)이니, 군자가 이로써 상하(上下)를 분별하여 백성의 마음을 안정시킨다.”
【傳】 天在上하고 澤居下는 上[一作天]下之正理也니 人之所履 當如是라 故取其象而爲履라 君子觀履之象하여 以辨別上下之分하여 以定其民志하나니 夫上下之分明然後에 民志有定하고 民志定然後에 可以言治니 民志不定이면 天下不可得而治也라 古之時에 公卿大夫而下 位各稱其德하여 終身居之하니 得其分也라 位未稱德이면 則君擧而進之하나니 士修其學하여 學至而君求之요 皆非有預於己也라 農工商賈勤其事而所享有限이라 故로 皆有定志而天下之心을 可一이러니 後世엔 自庶士로 至于公卿히 日志于尊榮하고 農工商賈 日志于富侈하여 億兆之心이 交騖於利하여 天下紛然하니 如之何其可一也리오 欲其不亂이나 難矣니 此는 由上下无定志也라 君子觀履之象而分辨上下하여 使各當其分하여 以定民之心志也하나니라.
하늘이 위에 있고 못이 아래에 거함은 상하(上下)의 바른 이치이니, 사람의 행하는 바가 마땅히 이와 같아야 한다. 그러므로 그 상(象)을 취하여 이(履)라 한 것이다. 군자가 이(履)의 상(象)의 보고서 상하(上下)의 구분을 분별하여 백성의 마음을 안정시키니, 상하(上下)의 구분이 분명한 뒤에야 백성의 마음이 안정됨이 있고, 백성의 마음이 안정된 뒤에야 다스림을 말할 수 있으니, 백성의 마음이 안정되지 못하면 천하를 다스릴 수 없다. 옛날에 공(公)·경(卿)·대부(大夫) 이하가 지위가 각각 그 덕(德)에 걸맞아서 종신토록 거하였으니, 제 분수를 얻은 것이다. 지위가 덕(德)에 걸맞지 않으면 군주가 들어 올려 주었으니, 선비가 학문을 닦아 학문이 지극해지면 군주가 그를 구하는 것이요, 모두 선비 자신에게 관여된 것이 아니었다. 농(農)·공(工)·상고(商賈)는 자기 일을 부지런히 하나 누리는 바가 한계가 있으므로 모두 정해진 마음이 있어서 천하의 마음을 하나로 통일시킬 수 있었다. 그런데 후세에는 서사(庶士)로부터 공(公)·경(卿)에 이르기까지 날로 존귀함과 영화로움에 뜻을 두고, 농(農)·공(工)·상고(商賈)들은 날로 부유함과 사치함에 뜻을 두어, 억조 백성의 마음이 서로 이(利)에 치달려서 천하가 분분하니, 어떻게 통일시키겠는가. 혼란하지 않기를 바라나 어려우니, 이는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안정된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군자가 이(履)의 상(象)을 보고서 상하(上下)를 분별해서 각기 그 분수에 마땅하게 하여 백성들의 심지(心志)를 안정시킨다.
【本義】 程傳備矣라.
정전(程傳)에 구비되었다.
初九는 素履로 往하면 无咎리라.
초구(初九)는 본래의 행함으로 가면 허물이 없으리라.
【本義】 素履니 往하여,
【본의】 평소대로 행함이니, 가서,
【傳】 履不處者는 行之義라 初處至下하니 素在下者也로되 而陽剛之才로 可以上進하니 若安其卑下之素而往이면 則无咎矣라 夫人不能自安於貧賤之素면 則其進也 乃貪躁而動하여 求去乎貧賤耳요 非欲有爲也니 旣得其進이면 驕溢必矣라 故往則有咎라 賢者則安履其素하여 其處也樂하고 其進也將有爲也라 故得其進이면 則有爲而无不善하니 乃守其素履者也라.
가고 머물지 않는 것은 행(行)의 뜻이다. 초(初)는 지극히 낮은 곳에 처했으니 본래 아래에 있는 것이나, 양강(陽剛)의 재질로 위로 나아갈 수 있으니, 만약 비하(卑下)한 본바탕을 편안히 여기고 가면 허물이 없을 것이다. 사람이 빈천한 본분에 스스로 편안하지 못하면 그 나아감은 바로 탐하고 조급하게 행동하여 빈천에서 떠나기를 구할 뿐이요,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니, 이미 그 나아감을 얻으면 교만하고 넘칠 것이 틀림없다. 그러므로 가면 허물이 있는 것이다. 현자(賢者)는 그 본분을 편안히 행하여 그 처함에 즐겁고 그 나아감은 장차 하려 해서이다. 그러므로 그 나아감을 얻으면 함이 있어서 선(善)하지 않음이 없으니, 이는 바로 그 본디의 행함을 지키는 것이다.
【本義】 以陽在下하고 居履之初하여 未爲物遷하니 率其素履者也라 占者如是면 則往而无咎也라.
양(陽)으로서 아래에 있고 이(履)의 초(初)에 거하여 외물(外物)로 옮겨가지 않으니, 평소의 행실을 따르는 이이다. 점치는 이가 이와 같이 하면 가서 허물이 없을 것이다.
象曰 素履之往은 獨行願也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본바탕을 행하여 감은 오로지 원함을 행하는 것이다.”
【傳】 安履其素而往者는 非苟利也요 獨行其志願耳라 獨은 專也니 若欲貴之心與行道之心이 交戰于中이면 豈能安履其素也리오.
본바탕을 편안히 행하여 감은 구차히 이롭고자 해서가 아니요, 오로지 그 뜻에 원함을 행할 뿐이다. 독(獨)은 오로지이니, 만일 귀해지고자 하는 마음과 도를 행하고자 하는 마음이 서로 마음속에서 싸운다면 어떻게 본바탕을 편안히 행하겠는가.
九二는 履道坦坦하니 幽人이라야 貞하고 吉하리라.
구이(九二)는 행하는 도(道)가 탄탄(坦坦)하니, 그윽한 사람이라야 정(貞)하고 길(吉)하리라.
【本義】 幽人이라.
【본의】 그윽한 사람이다.
【傳】 九二居柔하여 寬裕得中하니 其所履 坦坦然平易之道也라 雖所履 得坦易之道나 亦必幽靜安恬之人處之라야 則能貞固而吉也라 九二는 陽志上進이라 故有幽人之戒라.
구이(九二)는 유(柔)에 거하여 관유(寬裕)함이 중(中)을 얻었으니, 그 행하는 바가 탄탄하게 평이한 도(道)이다. 비록 행하는 바가 평이한 도를 얻었으나 역시 반드시 그윽하고 고요하고 편안한 사람이 처하여야 정고(貞固)하고 길(吉)할 것이다. 구이(九二)는 양(陽)의 뜻이 위로 나아가므로 유인(幽人)의 경계가 있는 것이다.
【本義】 剛中在下하여 无應於上이라 故爲履道平坦幽獨守貞之象이니 幽人履道而遇其占이면 則貞而吉矣리라.
강중(剛中)으로 아래에 있으면서 위에 응(應)이 없다. 그러므로 행하는 도(道)가 평탄하고 그윽히 홀로 정(貞)을 지키는 상(象)이 되니, 유인(幽人)이 도(道)를 행하면서 이 점(占)을 만나면 정(貞)하고 길(吉)할 것이다.
象曰 幽人貞吉은 中不自亂也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유인정길(幽人貞吉)’은 마음속이 스스로 어지럽히지 않기 때문이다.”
【傳】 履道在於安靜하니 其中恬正이면 則所履安裕어니와 中若躁動이면 豈能安其所履리오 故로 必幽人則能堅固而吉이니 盖其中心安靜하여 不以利欲自亂也라.
행하는 도(道)는 안정함에 있으니, 마음속이 편안하고 바르면 행하는 바가 편안하고 여유가 있으나, 마음속이 만일 조급히 움직이면 어찌 행하는 바를 편안히 하겠는가. 그러므로 반드시 유인(幽人)이면 견고하여 길(吉)한 것이니, 마음속이 안정되어 이욕(利欲)으로써 스스로 어지럽히지 않는 것이다.
六三은 眇能視며 跛能履라 履虎尾하여 咥人이니 凶하고 武人이 爲于大君이로다.
육삼(六三)은 애꾸눈이 보며 절름발이가 걷는 것이다. 범의 꼬리를 밟아 사람을 무니 흉하고, 무인(武人)이 대군(大君)이 되었도다.
【傳】 三은 以陰居陽하여 志欲剛而體本陰柔하니 安能堅其所履리오 故로 如盲眇之視하여 其見不明하고 跛躄之履하여 其行不遠이라 才旣不足而又處不得中하고 履非其正이며 以柔而務[一作勝]剛하니 其履如此면 是는 履於危地라 故曰履虎尾요 以不善履로 履危地하니 必及禍患이라 故曰咥人凶이라 武人爲于大君은 如武暴之人而居人上하여 肆其躁率而已요 非能順履而遠到也라 不中正而志剛하여 乃爲群陽所[一有不字]與라 是以로 剛躁蹈危而得凶也라.
삼(三)은 음(陰)으로서 양위(陽位)에 거하여 뜻은 강(剛)하고자 하나 체(體)가 본래 음유(陰柔)이니, 어찌 그 행하는 바를 굳게 지키겠는가. 그러므로 장님과 애꾸눈이 보는 것과 같아서 그 봄이 밝지 못하고, 절름발이가 걷는 것과 같아서 그 감이 멀지 못한 것이다. 재질이 이미 부족하고 또 처함이 중(中)을 얻지 못했으며 행함이 정도(正道)가 아니고 유(柔)로서 강(剛)을 힘쓰니, 그 행함이 이와 같으면 이는 위험한 곳을 밟는 것이다. 그러므로 “범의 꼬리를 밟는다.”고 말한 것이요, 잘 행하지 못하는 재질로 위험한 곳을 밟으니 반드시 화환(禍患)에 미칠 것이므로 “사람을 물어 흉하다.”고 말한 것이다. ‘무인위우대군(武人爲于大君)’은 무력을 행사하는 포악한 사람이 사람들의 위에 거하여 그 조급함과 경솔함을 부릴 뿐이요, 순히 행하여 멀리 이를 수 있는 이가 아닌 것과 같다. 중정(中正)하지 못하면서 뜻이 강(剛)하여 마침내 여러 양(陽)에게 더부는 바가 되었다. 이 때문에 강(剛)하고 조급하여 위험한 곳을 밟아서 흉함을 얻은 것이다.
【本義】 六三이 不中不正하고 柔而志剛하니 以此履乾이면 必見傷害라 故其象如此而占者凶이요 又爲剛武之人得志而肆暴之象이니 如秦政, 項籍이 豈能久也리오.
육삼(六三)은 중정(中正)하지 못하고 유(柔)이면서 뜻만 강(剛)하니, 이로써 건(乾)에게 밟히면 반드시 상해를 당한다. 그러므로 그 상(象)이 이와 같고 점치는 이가 흉하며, 또 강무(剛武)한 사람이 뜻을 얻어 포악함을 부리는 상(象)이 되니, 진(秦)나라의 정(政)과 항적(項籍) 같은 이가 어찌 장구(長久)하겠는가.
象曰 眇能視는 不足以有明也요 跛能履는 不足以與行也요.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애꾸눈이 봄은 밝게 볼 수 없고, 절름발이가 감은 더불어 갈 수가 없는 것이요,
【傳】 陰柔之人은 其才不足하여 視不能明하고 行不能遠이어늘 而乃務剛하니 所履如此면 其能免於害乎아.
음유(陰柔)한 사람은 재질이 부족하여 봄이 밝지 못하고 감이 멀지 못한데 마침내 강(剛)함을 힘쓰니, 행하는 바가 이와 같으면 해를 면할 수 있겠는가.
咥人之凶은 位不當也요 武人爲于大君은 志剛也라.
사람을 물어 흉함은 자리가 마땅하지 않기 때문이요, 무인(武人)이 대군(大君)이 됨은 뜻이 강하기 때문이다.”
【傳】 以柔居三하여 履非其正이니 所以致禍害하여 被咥而凶也라 以武人爲喩者는 以其處陽하여 才弱而志剛也일새라 志剛則妄動하여 所履不由其道하니 如武人而爲大君也라.
유(柔)로서 삼(三)에 거하여 행하고 있는 것이 바른 것이 아니니, 이 때문에 화해(禍害)에 이르러 물려서 흉한 것이다. 무인(武人)으로 비유한 것은 양위(陽位)에 처하여 재질은 약한데 뜻만 강하기 때문이다. 뜻이 강하면 망동하여 행하는 바가 도(道)를 따르지 않으니, 마치 무인(武人)이 대군(大君)이 된 것과 같은 것이다.
九四는 履虎尾니 愬愬이면 終吉이리라.
구사(九四)는 범의 꼬리를 밟으니, 두려워하고 두려워하면 마침내 길(吉)하리라.
【本義】 履虎尾나 愬愬하여,
【본의】 범의 꼬리를 밟으나 두려워하고 두려워하여
【傳】 九四陽剛而乾體니 雖居四나 剛勝者也라 在近君多懼之地하여 无相得之義하고 五復剛決之過라 故爲履虎尾라 愬愬은 畏懼之貌니 若能畏懼則當終吉이라 蓋九雖剛而志柔하고 四雖近而不處라 故能兢愼畏懼면 則終免於危而獲吉也라.
구사(九四)는 양강(陽剛)이고 건체(乾體)이니, 비록 사(四)에 거하였으나 강(剛)이 우세한 것이다. 군주(君主)와 가까워 두려움이 많은 자리에 있어서 서로 맞는 의(義)가 없고, 오(五)가 다시 강결(剛決)함이 과(過)하므로 범의 꼬리를 밟음이 된다. 색색(愬愬)은 두려워하는 모양이니, 만일 두려워하면 종말에는 길(吉)할 것이다. 구(九)가 비록 강(剛)이나 뜻이 유순(柔順)하고 사(四)가 비록 가까우나 처하지 않으므로, 능히 조심하고 두려워하면 마침내 위태로움을 면하여 길(吉)함을 얻는 것이다.
【本義】 九四亦以不中不正으로 履九五之剛이나 然以剛居柔라 故能戒懼而得終吉이라.
구사(九四) 역시 중정(中正)하지 못하면서 구오(九五)의 강함에게 밟혔으나 강(剛)으로서 유위(柔位)에 거하였으므로 경계하고 두려워하여 종말에 길(吉)함을 얻는 것이다.
象曰 愬愬終吉은 志行也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두려워하고 두려워하여 종말에 길(吉)함은 뜻이 행하는 것이다.”
【傳】 能愬愬畏懼則終得其吉者는 志在於行而不處也니 去危則獲吉矣라 陽剛은 能行者也요 居柔는 以順自處者也라.
능히 색색(愬愬)하여 두려워하면 종말에 길(吉)함을 얻는 것은 뜻이 행하고 머물지 않음에 있는 것이니, 위험한 곳을 떠나면 길(吉)함을 얻는다. 양강(陽剛)은 능히 가는 이이고, 유위(柔位)에 거함은 순함으로써 자처하는 것이다.
九五는 夬履니 貞이라도 厲하리라.
구오(九五)는 쾌(夬)하게 행함이니, 정(貞)하더라도 위태로우리라.
【傳】 夬는 剛決也라 五以陽剛乾體로 居至尊之位하여 任其剛決而行者也니 如此則雖得正이나 猶危厲也라 古之聖人이 居天下之尊하여 明足以照하고 剛足以決하고 勢足以專이나 然而未嘗不盡天下之議하여 雖芻蕘之微라도 必取하니 乃其所以爲聖也니 履帝位而光明者也라 若自任剛明하여 決行不顧면 雖使得正이나 亦危道也니 可固守乎아 有剛明之才라도 苟專自任이면 猶爲危道어든 況剛明不足者乎아 易中云貞厲는 義各不同하니 隨卦可見이라.
쾌(夬)는 강하게 결단함이다. 오(五)는 양강(陽剛) 건체(乾體)로 지극히 높은 지위에 거하여 강결(剛決)에 맡겨 행하는 이이니, 이와 같이하면 비록 정(正)을 얻더라도 오히려 위태롭다. 옛 성인(聖人)이 천하의 높은 지위에 거하여, 밝음은 족히 비출 수 있고 강함은 족히 결단할 수 있고 세력은 족히 마음대로 할 수 있었으나, 일찍이 천하의 의논을 다 받아들이지 않은 적이 없어서 비록 꼴베고 나무하는 미천한 이라도 반드시 그 의견을 취했으니, 이것이 성인(聖人)이 된 이유이니, 제위(帝位)에 올라 광명(光明)한 이이다. 만일 강명(剛明)함을 자임하여 결행하고 돌아보지 않는다면, 비록 가령 정(正)을 얻었다 하더라도 위험한 방도이니, 굳게 지킬 수 있겠는가. 강명(剛明)한 재주가 있더라도 만일 자임하기를 오로지하면 오히려 위험한 방도가 되는데, 하물며 강명(剛明)이 부족한 자에 있어서랴. 역(易) 가운데 ‘정여(貞厲)’라고 이른 것은 뜻이 각기 같지 않으니, 괘(卦)에 따라 보아야 한다.
【本義】 九五以剛中正으로 履帝位하고 而下以兌說應之하니 凡事必行하여 无所疑礙라 故其象이 爲夬決其履니 雖使得正이나 亦危道也라 故其占이 爲雖正而危하니 爲戒深矣로다.
구오(九五)는 강중정(剛中正)으로 제위(帝位)에 오르고 아래는 태열(兌說)로 응하니, 모든 일을 기필코 행하여 의심하고 막히는 바가 없다. 그러므로 그 상(象)이 행함을 쾌히 결단함이 되니, 비록 가령 정(正)을 얻었다 하더라도 위험한 방도이다. 그러므로 그 점이 비록 바르더라도 위태로우니, 경계함이 깊도다.
象曰 夬履貞厲는 位正當也일새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쾌리정여(夬履貞厲)’는 자리가 바로 그러한 자리에 당하였기 때문이다.”
【傳】 戒夬履者는 以其正當尊位也라 居至尊之位하고 據能專之勢하여 而自任剛決하고 不復畏懼하면 雖使得正이나 亦危道也라.
쾌리(夬履)를 경계한 것은 바로 존위(尊位)에 당했기 때문이다. 지극히 높은 지위에 거하고 능히 오로지할 수 있는 권세를 점거하여 강결(剛決)함을 자임하고 다시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비록 가령 정(正)을 얻었다 하더라도 위험한 방도이다.
【本義】 傷於所恃라.
믿는 바에 상(傷)한다.
上九는 視履하여 考祥하되 其旋이면 元吉이리라.
상구(上九)는 행한 것을 보아 상고하되 그 주선함이 완벽하면 크게 선(善)하고 길하리라.
【본의】 크게 길하리라.
【傳】 上處履之終하니 於其終에 視其所履行하여 以考其善惡禍福호되 若其旋이면 則善且吉也라 旋은 謂周旋完備하여 无不至也라 人之所履 考視其終하여 若終始周完无疚면 善之至也라 是以元吉이라 人之吉凶은 係其所履하니 善惡之多寡는 吉凶之小大也라.
상(上)은 이(履)의 종(終)에 처했으니, 그 종말(終末)에 행한 것을 살펴보아 선악(善惡)과 화복(禍福)을 상고하되 만일 그 주선함이 완벽하면 선(善)하고 또 길(吉)할 것이다. 선(旋)은 주선(周旋)함이 완비하여 지극하지 않음이 없음을 이른다. 사람이 행한 것은 그 종말을 상고하여 보아서 만일 종(終)과 시(始)가 두루하고 완벽하여 하자가 없다면 선(善)이 지극한 것이다. 이 때문에 크게 선(善)하고 길(吉)한 것이다. 사람의 길흉(吉凶)은 그 행한 바에 달려 있으니, 선악(善惡)의 많고 적음은 바로 길흉(吉凶)의 작고 큼이다.
【本義】 視履之終하여 以考其祥호되 周旋无虧면 則得元吉이라 占者禍福은 視其所履而未定也라.
이행(履行)함의 종말을 보아 그 길흉(吉凶)을 상고하되 주선함에 이지러짐이 없으면 ‘원길(元吉)’을 얻을 것이다. 점치는 이의 화복(禍福)은 그 행한 바를 살펴보아야 하니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象曰 元吉在上이 大有慶也니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원길(元吉)로 위에 있음이 크게 경사가 있는 것이다.”
【傳】 上은 履之終也라 人之所履 善而吉하고 至其終하여 周旋无虧면 乃大有福慶之人也니 人之行은 貴乎有終이라.
상(上)은 이(履)의 종(終)이다. 사람이 이행한 바가 선(善)하여 길(吉)하고 그 종말에 이르러 주선(周旋)함에 이지러짐이 없다면 이는 크게 복경(福慶)이 있는 사람이니, 사람의 행실은 끝이 있음을 귀하게 여긴다.
【本義】 若得元吉이면 則大有福慶也라.
만약 원길(元吉)을 얻으면 크게 복경(福慶)이 있을 것이다.

10. 이(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