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닮았네
며칠 전부터 가슴이 콩닥콩닥, 자다가 깨면 그냥 멍하니 잠이 안 온다.
옛 어른들 말씀에 ‘받아 놓은 날 같다.’ 라는 말이 있다.
이는, 무슨 일을 하려고 날을 받아 놓으면 어김없이 다가오는 것을 피할 수 없다는 데서 비롯된 말이다.
2009년 6월 28일, 새벽에 눈을 뜨니 남편이 먼저 깨어 서성이고 있다.
그런 남편의 뒷모습이 참 안 됐다. 어떤 사람은 처갓집 덕에 재산을 불리기도하고, 어떤 사람은 장인 장모 덕에 출세도 한다는데, 그런 것 다 고사하고 씨암탉은커녕 시장에서 파는 닭 한 마리 사서 요리조리 맛나게 요리해 주는 장모 사랑 한번 못 받아 본 사람! 그래도 어여쁘다며 가진 것 다 내게 주는 사람!
고마움에 남편 뒷통수에 대고 한번 씩 웃어 준다.
“윤달은 공달이라서 아무 날이나 다 좋단다. 올해는 5월에 윤달이 들었으니 고마 일 치루자.”
언니의 이 한마디가 나오기까지 10여년이 걸렸다.
우리 엄마는 딸 둘 달랑 남기고 서른둘이라는 젊디젊은 나이에 돌아가셨다.
오매불망하던 아들을 낳고 젖 한번 물려보지 못하고 몸 푼 지 한 달 만에 돌아가셨다. 억울해서 어찌 눈을 감으셨을꼬! 서러워서 어찌 다리를 뻗으셨을꼬!
병 중에 생산한 아들은 엄마 돌아가시고 두 달을 못 살고 엄마를 따라 갔다.
그 때 내 나이 열 살, 아무리 철이 없기로서니 아기가 먹는 비락연유를 훔쳐 먹으며 아가 옆에 쪼그리고 앉아서 아가를 어르고 있던 내 모습이 지금도 내 눈에 그려진다.
나는 다섯 살부터 엄마와 떨어져서 할머니 손에 자랐기 때문에 엄마의 정이 무언지도 몰랐다. 그런 내가 불쌍하지도 않았던가! 그런 내게 미안하지도 않았던가! 어찌 그리 편하게 눈을 감을 수 있었단 말인가!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자 주책없이 흐르는 눈물에 이어 그만 나도 몰래 흐느낌이 새어 나왔다. 남편이 볼까봐 얼른 헛기침으로 위장을 했지만 어느새 가만히 어깨를 잡아주는 손, 따뜻한 남편의 마음이었다.
방배동에 들러 언니와 형부를 태우고 영주를 향해 중앙 고속도로를 탔다. 약속한 시간보다 조금 늦게 산소에 도착하니 이모님 내외분과 일 하실 아저씨들이 기다리고 계셨다.
산소를 한 바퀴 둘러보고 아저씨들에게 산소를 열면 불러달라고 부탁을 하고 아래로 내려 왔더니 이모와 언니는 소풍 온 사람들처럼 자리를 깔고 앉아서 놀고 있다. 평소에는 그렇게 입만 열면 그리워하던 ‘언니와 엄마’인데 지금 이 마당에 어찌 저리 태평할 수 있나 참 신기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자 위에서 아저씨가 부른다. 엄마 산소를 열었으니 와서 보란다.
가슴이 마구 콩닥거리며 심장이 멎을 것만 같았다. 무서움도 몰려 왔다. 나는 성당에서 연령회에 가입이 돼 있어서 죽은 사람 보기를 산 사람 보듯 했는데, 새삼스럽게 무서움이라니? 크게 심호흡을 하고 마음을 진정 시키고 일어섰다. 이모와 언니에게 같이 올라가서 보자고 했으나 안 보겠단다. 역시 이해가 안 가고 이상했다. 진정 저 사람들이 입만 열면 ‘언니가, 엄마가 그립다’ 던 그 사람들이 맞는지 순간 의문스러웠다.
나무 관은 썩어서 손으로도 뜯어졌고, 엄마의 뼈는 마디마디 다 흩어져 있었다. 아마도 살이 녹아서 분리가 된 것 같았다. 뼈는 새까맸다. 준비해 온 한지 위에 아저씨들이 뼈를 올려 놓았다. 나는 엄마의 뼈를 맞추었다.
이 건 다리, 이 건 팔, 이 건 머리! 다 맞추어 한 몸을 만들어 놓고 보니,
아! 내가 이 뱃속에서 나왔단 말인가! 이 분이 나를 낳았단 말인가! 살은 어디가고, 뼈를 호미로 긁어도 피 한 방울 흘리지 못하고 이렇게, 이렇게 앙상한 꺾어진 나무 작대기 같단 말인가!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그 뼈나마 실컷 보고 싶었다. 만지고 싶었다.
아! 엄마의 이빨이다. 어쩌면 이리도 생생하단 말인가! 흙을 털고 깨끗이 닦아보니 참 이쁘게도 생겼다. 벌레 하나 먹지 않고 가지런한 이빨! 어디 하나 흠잡을 데 없는 참 잘생긴 이빨이다. 두 손으로 감싸고 정성스레 이빨을 닦고 있는 내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던 남편이,
“당신 이빨이 장모님 닮아서 이쁘구나.”
“아, 그러네 내 이빨이 엄마 닮았네!”
할머니께서 입만 열면.
“니 형은 에미 닮고, 니는 애비 닮았째.”
나는 그런 줄 알았다. 나는 엄마 닮은 데가 한 군데도 없는 줄 알았다. 그런데 이빨이 엄마를 닮았단다. 나도 엄마 닮은 데가 있단다. 이럴 수가, 이렇게 좋을 수가!
화장을 했다. 엄마가 묻히셨던 자리에는 참꽃 한 그루를 심었다.
그리고 그 주위에 화장한 엄마를 뿌렸다.
46년 만에 나는 그렇게 엄마와 만났다.
산을 내려오려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참았던 눈물이 폭포처럼 쏟아졌다. 가슴을 에는 통곡이 쏟아졌다.
하지만 나는 나를 위로하며 살 것이다.
‘나는 엄마 닮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