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부터 아내가 많이 어지럽다며 고통스러워했다. 침대에서 일어나려다 쓰러지고도 내가 걱정할까 봐 아내는 이틀이나 말을 하지 않고 그 아픔을 견뎠단다. 후에 처형이 듣고는 이랬단다.
“내 동생 창 똑똑한 줄 알았더니, 참 미련도 하다. 그걸 일주일씩이나 참고 견디다니?”
이석증을 먼저 경험해 봐서 처형은 그 아픔을 속속들이 아시니까. 어지럽다는 말을 듣고는 내 말이,
“아마도 나팔관(?)이 문제일 것 같다.”라 했더니 아내 왈,
“무슨 나팔관이 귀에 있어요?”
나는 지가 잘못 알고 있다는 것도 모르고는 그냥 나팔관이라고 우기고, 그러면서도 머릿속에서는 달팽이관을 생각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고서는 며칠이 지나서야 그게 나팔관이 아니고 달팽이관임을 깨닫는 나다. 그렇게 기억을 잘못하면서도 인식을 못하는 늙은이가 되어 있는 것이다. 인생무상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니겠는가? 인정을 하고 포기하고 살아야 하는 거지.
우리가 사는 인생 세월이 가노라면
변하고 없어지고 잊히고 닳컨마는
머릿속 마음속일랑 항상늘상 같으랴
아내가 아프고 나서 일주일되는 아침. 일어나자마자 아내는 서울 이비인후과에 가 봐야겠다고. 너무 심해서 도저히 견딜 수가 없는 걸 밤새 날이 새기만을 기다렸단다. 그래서 내가 차를 운전하고 가는 걸 극구 반대해서 결국 마을 친구의 택시를 이용하기로 하고 10시 45분 출발. 그날이 지난 주 목요일 그러니까 12월 3일이다. 왕십리에 도착해서 연세이비인후과에서 2시간 반 동안 이석증을 치료받았는데 어지럼증이 전혀 잡히지 않고 더 어지러워하니 의사 속상해하며 왈,
“큰 병원에 가셔서 뇌검사를 받아 보세요.”라 했다고 큰 병원으로 택시를 타고 출발하는데, 응급실에 가 봐야 코로나 때문에 절차를 밟는 데 6시간이나 걸리고 검사도 쉽게 할 수 없는 병원 사정이니 그냥 월요일 외래진료를 받는 게 낫다고 한다. 그러면서 자기에게 전화를 하라고 한다. 그렇게 연락이 되어 아내는 병원행에서 다시 왕십리로 가서 약국에서 처방약을 구입하고는 택시를 잡는데 세상이 빙글빙글 돌고 몸이 말이 아니었다고 한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걸 혼자 다 견디었으니 참 미안하기 그지없다. 우겨서라도 같이 갈 걸. 약을 사서 다시 택시를 타고 용산행. 용산에서 8시10분 새마을호로 장성행. 장성 도착 11시 48분. 서울 사정은 더 심해서 그 몸으로 하향할 수 밖에. 코로나 판국.
딸아이가 확진자 친구와 3시간을 놀고 밥도 먹고 해서 검사를 받아 음성판정을 받기는 했으나, 2주간 자가격리 중이라 집에 갈 수가 없는 사정. 그래서 그렇게 무리할 수밖에 없었다.
밤 12시가 다 되어 장성역에서 픽업해서 돌아오는데 아내는 역시 녹초상태였다. 그래도 그 작은 체구에 잘도 견디어 줘서 참 고맙다.
이석증이라는 게 몸의 균형을 잡을 수가 없을 만큼 어지럽고 지구가 빙빙 도는 증센데 좋아지겠지 하고는 일주일을 참았으니 치료한다고 금방 어지럼증이 없어질 리가 없지 않은가! 자고 나서도 증세가 가라앉지를 않고 호전되는 기미가 없어서 다시 가까운 광주 이비인후과를 가보기로 하고, 박교수의 추천을 받아 토요일에 최정섭 이비인후과에서 진료를 받았다. 진료를 바친 후 의사 왈,
“이석증 치료는 아주 잘 되어서 전혀 그런 증상이 없고 뇌 이상 징후도 전혀 없으니 약을 드시고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집니다. 약을 하루 세 번 드시다가 나아지면 두 번 드시고 또 나아지면 한 번 드시다가 좋아졌다 싶으면 약을 먹지 마세요.”
의사는 자신만만한 말투로 확실하게 진료 결과를 설명해 준다. 그래서 안심이 다소 되면서도 상태가 금방 완전하게 나은 것이 아니어서 조심조심하다가 월요일에 석구 군에게 가서 뇌 엠알아이를 찍어보기로 했다.
그런데 문제는 서울 아이들에게 있었다. 천만다행으로 딸아이는 2주간 자가격리에도 이상이 없어 완전해방인데, 이번에는 아들아이가 확진자가 다녀간 관공서를 방문해서 주의상태에 돌입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또 내집에 갈 수가 없는 사정이 되어 버렸다. 그러니 아침에 출발해서 병원에 도착하여 1시반에 진료를 받고 다행히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하면서 혹시 모르니까 엠알아이를 찍어 확인을 하자고. 그래야 안심이 된다고. 당일에 찍을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다행히도 도중에 결번이 생겨 4시에 좔영.
그런데 병원진료가 끝나고는 갈 곳이 없다. 당일로 내려오려 해도 끝에는 밤운전이 되어서 내게는 부담이다. 그래서 우리 딸이 생각해낸 것이 호텔숙박이다. 웨스턴조선호텔을 예약해 놓았단다.
생각지도 못한 조선호텔 숙박! 소공동에 자리잡은 줄은 알지만 어떻게 들어가는지를 몰라 내비게이션으로 안내를 받으면서도 입구를 지나치고 말아 다시 한 바퀴 돌아 들어왔는데도 입구 들어가는 곳에서 어벙대다가 그만 사고를 낼 뻔했다. 좌회전 깜박이를 넣고 움직이다가 보니 그만 직진해야 할 상황이라 그대로 직진하다가 오른쪽에서 좌회전하는 차와 부딪칠 뻔했다. 오른쪽 차 운전자가 얼마나 놀랬을까? 또 화는 얼마나 났을까? 참 많이도 미안하고 고맙기만하다. 아내의 잔소리는 들리지도 않고 그냥 당황 당황이다. 그렇게 조선호텔 진입로가 어려웠다. 지하에 주차하고 로비로 이동하니 딸이 와서 체크인을 하고 1507호로 입실.
내가 나를 잘 알까 남이 나를 알까 잘
내가 알면 자만이고 남이 알면 겸손인데
옹고집 부려설랑은 어디에다 쓰려고
창밖을 내다보니 벌써 밖은 어두워져 온갖 전등불이 켜진 채 휘황찬란하다. 바로 아래에는 환구단의 환구웅 지붕이 내려다보이고 둘레가 모두 가려진 건물. 멀리 북쪽으로 시청광장 잔디밭이 보이고 오른쪽으로 옛 시청 돌건물의 일부가 눈에 들어온다.
짐을 풀고 씻고 딸아이가 저녁을 주문해서 룸에 배달. 룸에서 셋이 저녁식사. 아들아이는 집에서 자가격리 중이라 갇혀 있으니 오지 못해 마음이 허전하다. 더구나 오늘이 딸아이 생일이다. 호텔제과점에 가서 지들 엄마가 케익을 사왔다. 저녁 후에 촛불을 켤 작정이다. 저녁으로 나는 돌솥비빔밥. 딸아이와 아내의, 여기까지 와서 비빔밥이냐는 눈길이 내게 다가오기는 하는데 아무말도 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새우절임 빵요리., 갈비탕, 카레라이스 그리고 레드와인.
저녁을 먹고 침대 시트 위에서 생일케익 촛불을 켜고 해비버스데이 싱잉.
방그레 웃음 속에서 엄마빠를 챙기네
10시가 넘어 딸아이는 집으로 가고 우리 둘만 남았다. 딸아이 가고 나니 아내가 그런다.
“아, 멸치볶음 안 보냈다!”
그런 걸 잊을 만큼 내 아내도 이제는 나이가 들었나 보다.
아내는 <팬트하우스> 연속극을 보고 나는 졸려서 그만 꿈나라로 떠났다. 특급호텔에서 하룻밤, 딸아이가 참 분주히도 이거저거 챙기느라 많이 애를 쓴다. 커피도 끓이는데 왜 그놈의 커피를 내리는 기계는 또 고장이 나서 물이 줄줄 흐르니 데스크에 연락해서 바꾸고. 실내 공기가 좀 차가왔던지 내가 잔기침을 해내니 또 딸아이는 걱정을 한다. 내 몸은 온도 변화에 아주 민감해서 변화에 따라 조금만 차도 기침을 하게 된다. 그래서 아내가 나주에 가서 배를 사다가 영주에서 주문해온 도라지를 넣어 두 상자나 만들어 주어 먹기 시작을 했는데도 아직은 별무신통이다. 그걸 다 먹으면 나아지려나?
아침에 깨니 7시가 채 못됐다. 그렇다고 일어나 움직이자니 늦게 잔 아내가 깰 것 같아 조심조심하다가 8시에 사워. 마치니 아내가 일어나서 씻고 준비하는 사이 창밖의 경치(?)를 카메라에 몇 장 담았다. 온통 건물뿐이라 새로울 것도 없다. 9시반에 지하로 내려가 뷔페 아침식사. 역시 특급호텔답게 음식 정갈, 맛깔스럽다. 잘 먹고 커피도 한 잔 하고 일어서서 거리 관광(?) 아니 구경을 나섰다. 바로 곁에 있는 환구단이 목표다. 가는 길목 오른쪽에 보니 일층에 스타벅스 커피점이 있다. 밀고 들어가 구경 겸 쇼핑. 해드드립주전자를 하나 사고, 또 오르곤도 하나 샀다. 전자는 아내 축일이자 결혼기념일 선물, 후자는 아내의 문학동료에게 할 선물. 그런데 아내가 그 선물을 사면서 참 재미있는 일화를 맛갈나게도 전한다.
어느 날 문학모임에서 그 동료가 귀걸이를 아주 예쁜 걸 하고 왔더란다. 그래서 반색을 하며(아내가 어떻게 반색을 헸는지 보지 않아도 눈앞에 선하다. 아내 성격상 아마도 방방 뛰었지 싶다.) 예쁘다고 했더니, 그 다음 만날 때 그 귀걸이를 색깔만 다른 걸로 사가지고 와서 선물하더란다. 예쁘다는 한 마디에 그걸 사오는 성의도 대단하지만 그보다 더 기막힌 사연은 이렇다.
그 귀걸이를 그분 남편이 사준 건데, 내 아내가 예쁘다고 했다고 다시 그분 남편이 사와서 그걸 그분이 내 아내에게 선물한 거라니 대단한 남편을 두신 거다. 아내의 그분에 대한 칭찬이 대단하다. 아주 예쁜 분이란다. 이건 1박 2일의 진료를 겸한 서울시내관광 중의 쇼핑이고.
스타벅스를 나와서 오른쪽으로 돌아드니 환구단 입구 삼문이 보인다. 이 삼문은 아예 출입이 불가능하게 되어 있었다. 그 뒤로 계단이 양쪽에 있어 나는 오른쪽 계단으로 올라가니 그곳에 환구웅이 자리잡고 있었다. 원형으로 보이기는 하는데 아마도 팔각정이지 싶다. 고종황제가 천제를 지내던 곳인데 제단이 있던 곳을 일인들이 헐어버리고 그곳에 조선경성철도호텔을 지었더란다. 그들은 우리의 고유성을 파괴하는 데 손을 뻗치지 않은 곳이 없었음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왕궁인 창경궁을 헐고는 그곳에 동물을 몰아넣는 몰상식하고 비열한 짓거리가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나라를 지키지 못한 민족의 설움이고 치욕이 아닌가! 그런데 아직도 그랬던 그들이 좋다고 설치고 있는 족속들이 거기에 빌붙었다가 지금도 떵떵거리고 잘 살고 있으니 이 나라의 민족정기가 있기는 한 건지 한심하기만 하다. 외세에 의존하지 않고는 단 하루도 살지 못할 족속들 --- 성조기 들고 아우성치고, 이스라엘기 들고 아우성치고 태극기 들고 아우성이고, 그래도 일장기 들고 아우성치지 않는 것만으로 위로를 삼아야 하는지 원.
환구웅과 석고만 셋 외롭게 남아 있다.
아침 공기가 차가와서 재촉하는 아내를 앞세워 호텔로 들어와 돌아보니 투숙객들 중에 외국인은 전멸이다. 아마도 코로나로 입국인이 없나 보다. 아마도 평소에는 외국인 더 많았을 특급호텔이었을 것이니 말이다. 나는 전에는 내가 조선호텔에서 잠을 자리라고는 상상도 해본 적이 없다. 딸아이 덕분에 호강을 한 거다.
객실에 올라가 이것저것 정리를 하고, 창밖으로 보이는 삼각산 줄기가 건물 사이사이로 조금씩 얼굴을 내밀기에 신기해서(?) 카메라에 담아봤다. 산이 건물에 가려 쬐끔 보일까 말까 수줍어 숨는 듯하다. 인간이 자연을 압도한 정상이라니!
12시 55분에 로비에서 만나자는 딸아이 톡을 받고 내려와 아내가 식대 계산하니 27,2000원. 딸아이가 계산한 숙박비가 25만 원쯤이었으니 하룻밤 경비가 50만 원이다. 딸아이가 와서는 무슨 말씀이냐며 지들 엄마계산을 취소하고 지 카드로 다시 계산한다. 딸아 고맙다. 딸 덕에 특급호텔에서 지내 보고 호강했다.
시골로 가는 줄 알았더니 길이 우리집 아파트로 가는 코스다. 아내가 시골에서 딱딱해서 내가 먹기 어려워하니 아이들 준다고 가져온 멸치볶음을 전달하려는 모양이다. 참 코로나가 뭔지 자가격리 중인 아들 손 한 번 잡아보지도 못하고 전화해서 문 앞에 그릇을 두고 가져가라고 해야 하니 세상 참 어이가 없다. 그래도 얼굴이라도 멀리서나마 보고 가는 게 어디냐고 스스로 위로로 삼기로 하고는 장성행 출발.
성수대교를 건너 88도로로 들어서자 차 밀리는 모양새를 보며 아내가 심상찮다고 한다. 경부선이 밀리는 징조란다. 아내의 짐작대로 출발한 지 한 시간이 지났는데도 오산도 지나지 못했다. 그렇게 고속도로를 달려가다 밀리다가를 반복하다가 탄천휴게소에서 소떡과 버터구이옥수수로 점심을 대신하고. 소떡은 우리 둘이 다 좋아하는 메뉴고, 버터구이는 아내가 꼭 한 번 먹어보고 싶던 것이었단다. 둘 다 역시 맛이 있었다. 잘 먹고 쉬다가 출발. 운전을 바꾸자고 해도 아내는 영 못미더워 아니 준다.
호남선에 들어서 질주하다가 전주를 넘어서 정읍에 이르니 해가 서산에 지려고 벌겋다. 달리는 차 안에서 촬영을 하려니 여러 가지로 어렵고 힘들다. 좋은 구도는 엄감생심, 찍히는 일몰만으로도 만족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기는 하다.
대문을 열고 마당에 들어서니 서쪽 하늘이 말 그대로 시뻘겋다. 마치 불이라도 붙어 활활 타는 듯하다.
병원진료를 받았고, 딸아이 덕분에 특급호텔에서 묵는 호강을 한 1박2일의 진료를 겸한 서울시내 관광을 한 샘이다. 스타벅스에서 쇼핑도 했지, 특급호텔에 투숙도 했지, 환구단 관광도 했지 이만하면 훌륭한 서울 시내 관광 아닌가! 지금 아내는 많이 호전되고 있는 상황이다. 감사감사 또 감사.
세월이 가고오고 세포도 나고 죽어
한평생 누구인들 아프고 싶으랴만
그래도 아프지 마오 이 마음도 쓰리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