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수(需)
【傳】 需는 序卦에 蒙者는 蒙也니 物之穉也니 物穉면 不可不養也라 故受之以需하니 需者는 飮食之道也라 하니라 夫物之幼穉는 必待養而成이니 養物之所需者는 飮食也라 故로 曰 需者는 飮食之道也라 하니라 雲上於天은 有蒸潤之象이니 飮食은 所以潤益於物이라 故로 需爲飮食之道니 所以次蒙也라 卦之大意는 須待之義어늘 序卦는 取所須之大者耳라 乾健之性은 必進者也어늘 乃處坎險之下하여 險爲之阻라 故로 須待而後進也라.
수괘(需卦)는 〈서괘전(序卦傳)〉에 “몽(蒙)은 어림이니, 사물이 어린 것이니, 사물이 어리면 기르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수괘(需卦)로 받았으니, 수(需)는 음식의 도(道)77다.” 하였다. 사물이 어린 것은 반드시 길러주기를 기다려 이루어지니, 사물을 기를 때에 필요한 것은 음식이다. 그러므로 ‘수(需)는 음식의 도(道)’라고 한 것이다. 구름이 하늘로 올라감은 김이 오르고 윤택한 상(象)이 있으니, 음식은 물건을 윤택하고 유익하게 한다. 그러므로 수괘(需卦)가 음식의 도(道)가 되는 것이니, 이 때문에 몽괘(蒙卦)의 다음이 된 것이다. 괘(卦)의 대의(大意)는 기다린다는 뜻인데 〈서괘전(序卦傳)〉에서는 필요한 것 중에 큰 것을 취하였다. 건건(乾健)의 성(性)은 반드시 위로 나아가는 것인데 마침내 감험(坎險)의 아래에 처하여 험(險)이 가로막고 있으므로 기다린 뒤에 나아가는 것이다.
需는 有孚하여 光亨하고 貞吉하니 利涉大川하니라.
수(需)는 성신(誠信)이 있어 광명하여 형통하고 정(貞)하여 길(吉)하니 대천(大川)을 건넘이 이롭다.
【本義】 需有孚하면 光亨하고 貞하면 吉하여,
【본의】 수(需)는 성신(誠信)이 있으면 광명하고 형통하며 정(貞)하면 길(吉)하여
【傳】 需者는 須待也라 以二體言之하면 乾之剛健이 上進而遇險하여 未能進也라 故로 爲需待之義요 以卦才言之하면 五居君位하여 爲需之主하고 有剛健中正之德하며 而誠信이 充實於中하니 中實은 有孚也라 有孚則光明而能亨通하고 得貞正[一无正字]而吉也니 以此而需면 何所不濟리오 雖險无難矣라 故로 利涉大川也라 凡貞吉은 有旣正且吉者하고 有得正則吉者하니 當辨也라.
수(需)는 기다림이다. 두 체(體)로써 말하면 강건(剛健)한 건(乾)이 위로 나아가다가 험함을 만나 나아가지 못한다. 그러므로 기다리는 뜻이 된 것이다. 괘재(卦才)로써 말하면 오(五)가 군위(君位)에 있어서 수(需)의 주체가 되고 강건중정(剛健中正)의 덕(德)이 있으며 성신(誠信)이 가운데에 충실(充實)하니 중실(中實)은 성실함이 있는 것이다. 성실함이 있으면 광명(光明)하여 형통하며 정정(貞正)함을 얻어 길하니, 이로써 기다린다면 무엇인들 건너지 못하겠는가? 비록 험하더라도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대천(大川)을 건넘이 이로운 것이다. 무릇 정길(貞吉)은 이미 바르면서 또 길한 경우가 있고, 바름을 얻으면 길한 경우가 있으니 이 두 가지를 마땅히 구분하여야 한다.
【本義】 需는 待也라 以乾遇坎하니 乾健坎險하니 以剛遇險하여 而不遽進以陷於險은 待之義也라 孚는 信之在中者也라 其卦 九五以坎體中實하고 陽剛中正而居尊位하니 爲有孚得正之象이요 坎水在前이어늘 乾健臨之하니 將涉水而不輕進之象이라 故로 占者爲有所待而能有信이면 則光亨矣요 若又得正이면 則吉而利涉大川이라 正固는 无所不利로되 而涉川은 尤貴於能待하니 則不欲速而犯難也라.
수(需)는 기다림이다. 건(乾)이 감(坎)을 만났으니, 건(乾)은 굳세고 감(坎)은 험하다. 강한 것이 험함을 만나 갑자기 나아가 험함에 빠지지 않음은 기다리는 뜻이다. 부(孚)는 신(信)이 가운데에 있는 것이다. 이 괘(卦)는 구오(九五)가 감체(坎體)로서 중실(中實)하고 양강중정(陽剛中正)하며 존위(尊位)에 거하였으니 성실함이 있고 정(正)을 얻은 상(象)이 되며, 감수(坎水)가 앞에 있는데 건건(乾健)이 임하였으니 장차 물을 건너되 경솔하게 나아가지 않는 상(象)이다. 그러므로 점치는 이가 기다리는 바가 있고 성실함이 있으면 광명하고 형통하며, 만약 또 바름을 얻으면 길하여 대천(大川)을 건넘이 이로운 것이다. 정고(正固)함은 이롭지 않은 바가 없으나 냇물을 건넘은 기다림을 더욱 귀하게 여기니, 속히 하려다가 난(難)을 범하지 않는다.
彖曰 需는 須也니 險이 在前也니 剛健而不陷하니 其義不困窮矣라.
〈단전(彖傳)〉에 말하였다. “수(需)는 기다림이니, 험함이 앞에 있으니, 강건(剛健)하나 험함에 빠지지 않으니 그 의리상(義理上) 곤궁하지 않을 것이다.
【傳】 需之義는 須也니 以險在於前하여 未可遽進이라 故로 需待而行也라 以乾之剛健으로 而能需待不輕動이라 故로 不陷於險하니 其義不至於困窮也라 剛健之人은 其動必躁하나니 乃能需待而動은 處之至善者也라 故로 夫子贊之云其義不困窮矣라 하시니라.
수(需)의 뜻은 기다림이니, 험한 것이 앞에 있어서 갑자기 나아갈 수가 없다. 그러므로 기다렸다가 가는 것이다. 강건(剛健)한 건(乾)으로서 기다리고 경솔하게 동하지 않기 때문에 험함에 빠지지 않는 것이니, 그 의(義)가 곤궁함에 이르지 않는다. 강건(剛健)한 사람은 동함이 반드시 조급한데, 마침내 기다렸다가 동함은 처하기를 지극히 잘 하는 이다. 그러므로 부자(夫子)께서 칭찬하시기를 “그 의(義)가 곤궁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신 것이다.
【本義】 此는 以卦德으로 釋卦名義라.
이는 괘덕(卦德)으로 괘명(卦名)의 뜻을 해석한 것이다.
需有孚光亨貞吉은 位乎天位하여 以正中也요,
‘수유부광형정길(需有孚光亨貞吉)’은 천위(天位)에 처하여 정중(正中)하기 때문이요,
【傳】 五以剛實居中하니 爲孚之象이요 而得其所需하니 亦爲有孚之義라 以乾剛而至誠이라 故로 其德光明而能亨通하고 得貞正而吉也라 所以能然者는 以居天位而得正中也라 居天位는 指五요 以正中은 兼二言이라 故云正中하니라.
오(五)는 강실(剛實)로서 중(中)에 거하였으니 성실함의 상(象)이 되고, 기다리는 바를 얻었으니 또한 유부(有孚)의 뜻이 된다. 건강(乾剛)하면서 지극히 성실하기 때문에 그 덕(德)이 광명하여 형통하며 정정(貞正)함을 얻어 길한 것이다. 이러한 까닭은 천위(天位)에 거하여 정중(正中)을 얻었기 때문이다. 천위(天位)에 처했다는 것은 구오(九五)를 가리킨 것이요, 정중(正中)은 구이(九二)를 겸하여 말하였다. 그러므로 정중(正中)이라 한 것이다.
利涉大川은 往有功也라.
대천(大川)을 건넘이 이로움은 가면 공(功)이 있으리라.
【傳】 旣有孚而貞正이면 雖涉險阻나 往則有功也니 需道之至善也라 以乾剛而能需면 何所不利리오.
이미 성실함이 있고 정정(貞正)하면 비록 험조(險阻)를 건너더라도 가면 공(功)이 있을 것이니, 기다리는 도리에 지극히 선(善)한 것이다. 건강(乾剛)으로서 능히 기다린다면 어느 것인들 이롭지 않겠는가.
【本義】 以卦體及兩象으로 釋卦辭라.
괘체(卦體)와 두 상(象)으로써 괘사(卦辭)를 해석하였다.
象曰 雲上於天이 需니 君子以하여 飮食宴樂하나니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구름이 하늘로 올라감이 수(需)이니, 군자가 이로써 음식을 먹고 연락(宴樂)을 하느니라.”
【傳】 雲氣蒸而上升於天하여 必待陰陽和洽然後成雨하나니 雲方上於天하여 未成雨也라 故로 爲須待之義라 陰陽之氣交感而未成雨澤은 猶君子畜其才德而未施於用也라 君子觀雲上於天需而爲雨之象하여 懷其道德하고 安以待時하여 飮食以養其氣體하고 宴樂以和[一作養]其心志하니 所謂居易以俟命也라.
구름 기운이 증발하여 위로 하늘로 올라가 반드시 음양(陰陽)이 화흡(和洽)하기를 기다린 뒤에 비를 이루니, 구름이 막 하늘로 올라가 아직 비를 이루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기다리는 뜻이 된다. 음양(陰陽)의 기운이 서로 감응하였으나 아직 우택(雨澤)을 이루지 못함은 군자가 재덕(才德)을 길렀으나 아직 실용에 시행하지 못함과 같다. 군자(君子)가 구름이 하늘로 올라가 기다려서 비가 되는 상(象)을 관찰하여 도덕(道德)을 간직하고 편안히 때를 기다려 음식을 먹으면서 기체(氣體)를 기르고 연락(宴樂)하여 심지(心志)를 화하게 하니, 《중용(中庸)》에 이른바 “평이(平易)한 데에 거하여 천명(天命)을 기다린다.”는 것이다.
【本義】 雲上於天에 无所復爲하고 待其陰陽之和而自雨爾니 事之當需者는 亦不容更有所爲요 但飮食宴樂하여 俟其自至而已니 一有所爲면 則非需也라.
구름이 하늘로 올라감에 다시 하는 바가 없고 음양(陰陽)이 화하여 저절로 비가 되기를 기다릴 뿐이니, 일에 마땅히 기다려야 할 것은 역시 다시 하는 바를 둘 것이 없고 다만 음식을 먹고 연락(宴樂)하여 스스로 이르기를 기다릴 뿐이니, 한 가지라도 하는 바가 있으면 수(需)가 아니다.
初九는 需于郊라 利用恒이니 无咎리라.
초구(初九)는 교외에서 기다림이다. 항상함이 이로우니, 허물이 없으리라.
【傳】 需者는 以遇險이라 故로 需而後進이라 初最遠於險이라 故로 爲需于郊니 郊는 曠遠之地也라 處於曠遠이면 利在安守其常이니 則无咎也라 不能安常이면 則躁動犯難하리니 豈能需於遠而无過也리오.
수(需)는 험함을 만났기 때문에 기다린 뒤에 나아가는 것이다. 초(初)는 험한 데서 가장 멀므로 교외에서 기다림이 되니, 교(郊)는 아득히 먼 땅이다. 아득히 먼 곳에 처하면 이로움이 그 떳떳함을 편안히 지킴에 있으니, 이렇게 하면 허물이 없다. 떳떳함을 편안히 여기지 못하면 조급히 동하여 난(難)을 범할 것이니, 어찌 먼 곳에서 기다려 허물이 없을 수 있겠는가?
【本義】 郊는 曠遠之地니 未近於險之象也요 而初九陽剛으로 又有能恒於其所之象이라 故로 戒占者能如是則无咎也라.
교(郊)는 아득히 먼 땅이니 험함에 가깝지 않은 상(象)이요, 초구(初九)는 양강(陽剛)으로 또 제 자리에서 항상하는 상(象)이 있다. 그러므로 점치는 이에게 이와 같이 하면 허물이 없다고 경계한 것이다.
象曰 需于郊는 不犯難行也요 利用恒无咎는 未失常也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교외에서 기다린다는 것은 난을 범하여 가지 않는 것이요, 항상함이 이로우니 허물이 없다는 것은 떳떳함을 잃지 않는 것이다.”
【傳】 處曠遠者는 不犯冒險難而行也라 陽之爲物은 剛健上進者也로되 初能需待於曠遠之地하여 不犯險難而進하고 復宜安處하여 不失其常하니 則可以无咎矣라 雖不進이라도 而志動者는 不能安其常也라 君子之需時也에 安靜自守하여 志雖有須나 而恬然若將終身焉하니 乃能用常也라.
아득히 먼 곳에 처하는 이는 험난함을 범하거나 무릅쓰고 가지 않는다. 양(陽)은 사물됨이 강건(剛健)하여 위로 나아가는 것이나, 초(初)가 아득히 먼 땅에서 기다려 험난함을 무릅쓰고서 나아가지 않고, 다시 편안히 처하여 그 떳떳함을 잃지 않으니, 허물이 없을 수 있다. 비록 나아가지 않더라도 마음이 동함은 그 떳떳함을 편안히 여기지 않는 것이다. 군자(君子)가 때를 기다림에 안정(安靜)하고 스스로 지켜, 뜻은 비록 기다림이 있으나 태연히 장차 그대로 종신(終身)할 듯이 여기니, 이것이 바로 떳떳함을 쓰는 것이다.
九二는 需于沙라 小有言하나 終吉하리라.
구이(九二)는 모래에서 기다림이다. 다소 말이 있으나 끝내 길하리라.
【傳】 坎爲水하니 水近則有沙라 二去險漸近이라 故로 爲需于沙라 漸近於險難하니 雖未至於患害나 已小有言矣라 凡患難之辭는 大小有殊하니 小者는 至於有言이니 言語之傷은 至小者也라 二以剛陽之才로 而居柔守中하여 寬裕自處하니 需之善也니 雖去險漸近이나 而未至於險이라 故로 小有言語之傷이나 而无大害하여 終得其吉也라.
감(坎)은 물이 되니, 물이 가까우면 모래가 있다. 이(二)는 험(險)과 거리가 점점 가까워지므로 모래에서 기다림이 되는 것이다. 점점 험난함에 가까우니, 비록 환해(患害)에는 이르지 않았으나 이미 다소 말이 있는 것이다. 무릇 환난이란 말은 크고 작은 차이가 있으니, 작은 것은 말이 있음에 이르니, 언어(言語)의 상해(傷害)는 지극히 작은 것이다. 이(二)가 강양(剛陽)의 재질로 유(柔)에 거하고 중(中)을 지켜 관유(寬裕)로 자처하니 기다리기를 잘하는 것이니, 비록 험(險)과 거리가 점점 가까우나 험함에는 이르지 않는다. 그러므로 다소 언어(言語)의 상해(傷害)가 있으나 큰 해로움이 없어 끝내 길함을 얻는 것이다.
【本義】 沙則近於險矣라 言語之傷은 亦災害之小者니 漸進近坎이라 故有此象이요 剛中能需라 故得終吉이니 戒占者當如是也라.
모래는 험함에 가깝다. 언어(言語)의 상해(傷害)는 또한 재해 중에 작은 것이니 점점 나아가 감(坎)과 가까우므로 이러한 상(象)이 있는 것이요, 강중(剛中)으로서 능히 기다리므로 끝내 길함을 얻은 것이니, 점치는 이에게 마땅히 이와 같이 하라고 경계한 것이다.
象曰 需于沙는 衍으로 在中也니 雖小有言하나 以吉로 終也리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모래에서 기다림은 너그러움으로 중(中)에 있기 때문이니, 비록 다소 말이 있으나 길함으로 마치리라.”
【傳】 衍은 寬綽也라 二雖近險이나 而以寬裕居中이라 故雖小有言語及之나 終得其吉하니 善處者也라.
연(衍)은 너그러움이다. 이(二)가 비록 험(險)과 가까우나, 관유(寬裕)로서 중(中)에 거하였다. 그러므로 비록 다소 나쁜 말이 미침이 있으나 끝내 길함을 얻으니, 잘 대처한 것이다.
【本義】 衍은 寬意니 以寬居中하여 不急進也라.
연(衍)은 너그럽다는 뜻이니, 너그러움으로서 중(中)에 거하여 급히 나아가지 않는 것이다.
九三은 需于泥니 致寇至리라.
구삼(九三)은 진흙에서 기다림이니, 구난(寇難)이 닥침을 부르리라.
【傳】 泥는 逼於水也니 旣進逼於險이면 當致寇難之至也라 三은 剛而不中하고 又居健體之上하여 有進動之象이라 故致寇也니 苟非敬愼이면 則致喪敗矣리라.
진흙은 물에 가까우니, 이미 나아가 험함에 가까우면 마땅히 구난(寇難)이 닥침에 이를 것이다. 삼(三)은 강(剛)하나 중(中)하지 못하며, 또 건체(健體)의 위에 있어 나아가고 동하는 상(象)이 있다. 그러므로 구난(寇難)에 이르는 것이니, 만일 공경하고 삼가지 않으면 상패(喪敗)를 부를 것이다.
【本義】 泥는 將陷於險矣라 寇는 則害之大者니 九三은 去險愈近而過剛不中이라 故其象如此하니라.
진흙은 장차 험함에 빠질 것이다. 구(寇)는 해로움이 큰 것이니, 구삼(九三)은 험함과 거리가 더욱 가까운데 과강(過剛)하고 중(中)하지 못하므로 그 상(象)이 이와 같은 것이다.
象曰 需于泥는 災在外也라 自我致寇하니 敬愼이면 不敗也리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진흙에서 기다림은 재앙이 밖에 있는 것이다. 나로부터 구난(寇難)을 불렀으니, 공경하고 삼가면 패(敗)하지 않으리라.”
【傳】 三은 切逼上體之險難이라 故云災在外也라 하니 災는 患難之通稱이로되 對眚而言則分也라 三之致寇는 由己進而迫之라 故云自我라 寇自己致하니 若能敬愼하여 量宜而進이면 則无喪敗也라 需之時는 須而後進也니 其義在相時而動이라 非戒其不得進也요 直使敬愼하여 毋失其宜耳라.
삼(三)은 상체(上體)의 험난함과 매우 가까우므로 재앙이 밖에 있다고 하였으니, 재(災)는 환난을 통칭한 것이나 생(眚 안의 괴변)과 상대하여 말하면 구분이 있다. 삼(三)이 구난(寇難)을 부른 것은 자기가 나아가 가까이 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로부터’라고 말한 것이다. 나로부터 구난(寇難)을 불렀으니 만일 공경하고 삼가서 마땅함을 헤아려 나아가면 실패함이 없을 것이다. 수(需)의 때에는 기다린 뒤에 나아가야 하니, 그 의(義)가 때를 보아 동함에 있다. 이는 나아갈 수 없음을 경계한 것이 아니요, 다만 공경하고 삼가서 그 마땅함을 잃지 않게 한 것이다.
【本義】 外는 謂外卦라 敬愼不敗는 發明占外之占하니 聖人示人之意切矣로다.
외(外)는 외괘(外卦)를 이른다. 공경하고 삼가면 실패하지 않는다는 것은 점(占) 밖의 점(占)을 발명한 것이니, 성인(聖人)이 사람에게 보여준 뜻이 간절하다.
六四는 需于血이니 出自穴이로다.
육사(六四)는 피에서 기다림이니, 나오기를 구멍으로부터 하도다.
【本義】 需于血이나 出自穴하리라.
【본의】 피에서 기다리나 나오기를 구멍으로부터 하리라.
【傳】 四以陰柔之質로 處於險而下當三陽之進하여 傷於險難者也라 故云需于血이라 旣傷於險難이면 則不能安處하여 必失其居라 故云出自穴이라 하니 穴은 物之所安也라 順以從時하여 不競於險難은 所以不至於凶也라 以柔居陰하니 非能競者也니 若陽居之면 則必凶矣라 蓋无中正之德하고 徒以剛競於險이면 適足以致凶耳니라.
사(四)는 음유(陰柔)의 재질로 험함에 처하였고 아래로는 세 양(陽)이 나아가서 험난함에 상해를 당한 것이다. 그러므로 피에서 기다린다고 말한 것이다. 이미 험난함에 상해를 입었으면 편안히 처하지 못하여 반드시 그 거처를 잃을 것이다. 그러므로 ‘나오기를 구멍으로부터 한다’ 하였으니, 구멍은 사물이 편안히 여기는 곳이다. 순히 때를 따라서 험난함에 다투지 않음은 흉함에 이르지 않는 까닭이다. 유(柔)로서 음(陰)에 거하였으니, 능히 다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만약 양(陽)이 여기에 거한다면 반드시 흉할 것이니, 중정(中正)의 덕(德)이 없고 한갓 강함으로서 험함에 다툰다면 다만 흉함을 부를 뿐이다.
【本義】 血者는 殺傷之地요 穴者는 險陷之所라 四交坎體하니 入乎險矣라 故爲需于血之象이라 然柔得其正하여 需而不進이라 故又爲出自穴之象이라 占者如是면 則雖在傷地나 而終得出也라.
피는 살상(殺傷)하는 자리고 혈(穴)은 험함(險陷)한 곳이다. 사(四)는 감체(坎體)와 사귀었으니, 험함으로 들어간 것이다. 그러므로 피에서 기다리는 상(象)이 된다. 그러나 유(柔)가 정(正)을 얻어 기다리고 나아가지 않으므로 또 나오기를 구멍으로부터 하는 상(象)이 된다. 점치는 이가 이와 같이 하면 비록 상해를 받을 자리에 있더라도 끝내 벗어나게 될 것이다.
象曰 需于血은 順以聽也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피에서 기다림은 순히 하여 따르는 것이다.”
【傳】 四以陰柔로 居於險難之中하여 不能固處라 故退出自穴이라 蓋陰柔[一作柔弱]는 不能與時競하여 不能處則退니 是順從以聽於時라 所以不至於凶也니라.
사(四)는 음유(陰柔)로서 험난한 가운데 처하여 굳게 처하지 못하므로 물러나오기를 구멍으로부터 하는 것이다. 음유(陰柔)여서 때와 다투지 못하여 그대로 머물러 처하지 못하면 물러나오니, 이는 순종하여 때를 따르는 것이다. 이 때문에 흉함에 이르지 않는 것이다.
九五는 需于酒食이니 貞하고 吉하니라.
구오(九五)는 주식(酒食)에서 기다림이니, 정(貞)하고 길하다.
【本義】 貞하면 吉하리라.
【본의】 정(貞)하면 길하리라.
【傳】 五以陽剛으로 居中得正하여 位乎天位하여 克盡其道矣라 以此而需면 何需不獲이리오 故宴安酒食以俟之하니 所須必得也라 旣得貞正而所需必遂면 可謂吉矣라.
오(五)는 양강(陽剛)으로 중(中)에 거하고 정(正)을 얻어 천위(天位)에 자리해서 그 도(道)를 능히 다하였다. 이렇게 기다린다면 무엇을 기다린들 얻지 못하겠는가. 그러므로 편안히 술과 밥을 먹으면서 기다리니, 기다리는 바를 반드시 얻을 것이다. 이미 정정(貞正)함을 얻고 기다리는 바를 반드시 이룬다면 길하다고 이를 만하다.
【本義】 酒食은 宴樂之具니 言安以待之라 九五陽剛中正으로 需于尊位라 故有此象하니 占者如是而貞固면 則得吉也라.
주식(酒食)은 연락(宴樂)하는 도구이니 편안히 기다림을 말한 것이다. 구오(九五)는 양강중정(陽剛中正)으로 존위(尊位)에서 기다린다. 그러므로 이러한 상(象)이 있으니, 점치는 이가 이와 같이 하고 정고(貞固)하면 길함을 얻을 것이다.
象曰 酒食貞吉은 以中正也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주식정길(酒食貞吉)’은 중정(中正)하기 때문이다.”
【傳】 需于酒食而貞且吉者는 以五得中正而盡其道也일새라.
주식(酒食)에서 기다림이니, 정(貞)하고 길한 것은 오(五)가 중정(中正)을 얻어 그 도(道)를 다하기 때문이다.
上六은 入于穴이니 有不速之客三人이 來하리니 敬之면 終吉이리라.
상육(上六)은 구멍에 들어감이니, 부르지 않은 손님 세 사람이 올 것이니, 이들을 공경하면 끝내 길하리라.
【傳】 需以險在前하여 需時而後進이어늘 上六은 居險之終하니 終則變矣요 在需之極하니 久而得矣라 陰止於六은 乃安其處라 故爲入于穴이니 穴은 所安也라 安而旣止면 後者必至니 不速之客三人은 謂下之三陽이라 乾之三陽은 非在下之物이요 需時而進者也니 需旣極矣라 故皆上進이라 不速은 不促之而自來也라 上六은 旣需得其安處하니 群剛之來에 苟不起忌疾忿競之心하고 至誠盡敬以待之면 雖甚剛暴나 豈有侵陵之理리오 故終吉也라 或疑二陰居三陽之上하니 得爲安乎아 曰 三陽은 乾體니 志在上進하고 六은 陰位니 非所止之正이라 故无爭奪之意하니 敬之則吉也라.
수(需)는 험함이 앞에 있어서 때를 기다린 뒤에 나아가는 것인데, 상육(上六)은 험함의 끝에 처하였으니 끝이 되면 변할 것이요, 수(需)의 극에 있으니 오래면 구함을 얻을 것이다. 음(陰)이 육(六)에 그침은 바로 그 거처를 편안히 여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멍에 들어감이 되니, 구멍은 편안한 곳이다. 편안한 곳에 이미 그치면 뒤에 있는 이가 반드시 이를 것이니, 부르지 않은 손님 세 사람이라는 것은 아래의 세 양효(陽爻)를 이른다. 건(乾)의 세 양(陽)은 아래에 있는 물건이 아니요 때를 기다려 나오는 것이니, 수(需)가 이미 극에 이르렀으므로 모두 위로 나오는 것이다. ‘불속(不速)’은 재촉하지 않았는데도 스스로 오는 것이다. 상육(上六)은 이미 기다림에 그 편안함을 얻었으니, 여러 강(剛)들이 옴에 만일 꺼리고 미워하며 성내고 다투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고 지성으로 공경을 다하여 대접한다면 비록 심히 강하고 포악하나 어찌 침해하고 능멸할 리가 있겠는가. 그러므로 끝내 길한 것이다. 혹자는 의심하기를 “두 음(陰)이 세 양(陽)의 위에 있으니, 편안하다고 이를 수 있겠는가?” 하기에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세 양(陽)은 건(乾)의 체(體)이니, 뜻이 위로 나감에 있고, 육(六)은 음(陰)의 자리이니 그칠 바의 바름이 아니다. 그러므로 쟁탈할 뜻이 없으니, 양(陽)을 공경하면 길한 것이다.”
【本義】 陰居險極하여 无復有需하니 有陷而入穴之象이요 下應九三이어늘 九三이 與下二陽으로 需極竝進하니 爲不速客三人之象이요 柔不能禦而能順之하니 有敬之之象이라 占者當陷險中이나 然於非意之來에 敬以待之면 則得終吉也라.
음(陰)이 험(險)의 극(極)에 거하여 다시 기다림이 없으니 빠져서 구멍에 들어가는 상(象)이 있고, 아래로 구삼(九三)과 응(應)하는데 구삼(九三)은 아래의 두 양(陽)과 함께 기다림이 극에 이르러 함께 나오니, 부르지 않은 손님 세 사람의 상(象)이 되며, 유(柔)가 이들을 막지 못하고 순종하니, 공경하는 상(象)이 있다. 점치는 이가 마땅히 험한 가운데 빠질 것이나 뜻하지 않은 것이 옴에 공경하여 대접하면 끝내 길함을 얻을 것이다.
象曰 不速之客來敬之終吉은 雖不當位나 未大失也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부르지 않은 손님이 옴에 공경하면 끝내 길하다는 것은 비록 자리에 마땅하지 않으나 큰 잘못이 없기 때문이다.”
【傳】 不當位는 謂以陰而在上也라 爻以六居陰하니 爲所安이로되 象에 復盡其義하여 明陰宜在下而居上은 爲不當位也라 然能敬愼以自處면 則陽不能陵하여 終得其吉이니 雖不當位나 而未至於大失也라.
‘부당위(不當位)’는 음(陰)으로서 위에 있음을 이른다. 효(爻)는 육(六)이 음(陰)에 거하였으니 편안한 바가 되나 〈상전(象傳)에서는〉 다시 그 뜻을 지극히 하여 음(陰)은 마땅히 아래에 있어야 하는데 위에 있음은 자리에 마땅하지 않음이 됨을 밝힌 것이다. 그러나 공경하고 삼가서 자처하면 양(陽)이 능멸하지 않아 끝내 그 길함을 얻을 것이니, 비록 자리에 마땅하지 않으나, 큰 잘못에는 이르지 않는 것이다.
【本義】 以陰居上은 是爲當位어늘 言不當位는 未詳이라.
음(陰)이 위에 있음은 당위(當位)가 되는데 부당위(不當位)라 말한 것은 미상(未詳)이다.

5. 수(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