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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례헌

8. ()

 

序卦衆必有所比故受之以比라 하니라 親輔也[一作比輔比也, 一作比輔也]人之類必相親輔然後能安이라 故旣有衆則必有所比하니 比所以次師也爲卦 上坎下坤하니 以二體言之하면 水在地上하니 物之相切比无間莫如水之在地上이라 故爲比也又衆爻皆陰이요 獨五以陽剛으로 居君位하여 衆所親附하고 而上亦親下故爲比也.

비괘(比卦)서괘전(序卦傳)여러 사람은 반드시 친하는 바가 있다. 그러므로 비괘(比卦)로 받았다.” 하였다. ()는 친보(親輔)[친애(親愛)하고 도와 줌]하는 것이니, 사람의 무리는 반드시 서로 친보(親輔)한 뒤에 편안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미 무리가 있으면 반드시 비친(比親)하는 바가 있는 것이니, 비괘(比卦)가 이 때문에 사괘(師卦)의 다음이 된 것이다. ()됨이 위는 감()이고 아래는 곤()이니, 두 체()로 말하면 물이 땅 위에 있으니, 사물이 서로 지극히 가까워 간격이 없음은 물이 지상에 있는 것보다 더함이 없으므로 비()가 된 것이요, 또 여러 효()가 모두 음()이고 홀로 오()가 양강(陽剛)으로 군위(君位)에 거하여 무리가 친애하여 따르며 위 또한 아래를 친애하므로 비괘(比卦)가 된 것이다.

 

하니 原筮하되 元永貞이면 无咎리라.

()는 길()하니 근원하여 점치되 원((()하면 허물이 없으리라.

本義하나 原筮하여 元永貞이라야 无咎리라.

본의()는 길()하나 다시 점쳐 원((()하여야 허물이 없으리라.

吉道也人相親比自爲吉道故雜卦云 比樂師憂라 하니라 人相親比必有其道하니 苟非其道則有悔咎故必推原占決其可比者而比之謂占決卜度()이요 非謂以蓍龜也所比 得元永貞則无咎리니 謂有君長之道謂可以常久謂得正道上之比下必有此三者하고 下之從上必求此三者則无咎也.

()는 길()한 도()이다. 사람이 서로 친비(親比)함은 스스로 길()한 방도가 된다. 그러므로 잡괘전(雜卦傳)()는 즐겁고 사()는 근심스럽다.” 하였다. 사람이 서로 친비(親比)함은 반드시 그 도()가 있으니, 만일 그 도()가 아니면 후회와 허물이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반드시 친애할 만한 것를 미루어 근원하여 점쳐 결단해서 친애하는 것이다. ()는 점쳐서 결단하고 헤아림을 이른 것이요, 시초점과 거북점을 말한 것이 아니다. 친애하는 바가 원((()을 얻으면 허물이 없을 것이니, ()은 군장(君長)의 도리가 있음을 이르고, ()은 항상하고 오래함을 이르고, ()은 정도(正道)를 얻음을 이른다.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친애할 적에 반드시 이 세 가지가 있고,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따를 적에 반드시 이 세 가지를 구하면 허물이 없을 것이다.

 

不寧이어야 方來라도 이리라.

편안하지 못하여야 바야흐로 올 것이니, 뒤늦으면 강한 남자라도 흉하리라.

本義不寧方來後夫하리라.

본의편안하지 못한 이가 바야흐로 올 것이니, 뒤늦게 오는 사람은 흉하리라.

人之不能自保其安寧이라야 方且來求親比하나니 得所比則能保其安이라 當其不寧之時하여는 固宜汲汲以求比若獨立自恃하여 求比之志 不速而後則雖夫라도 亦凶矣夫猶凶이어든 況柔弱者乎剛立之稱이니 傳曰 子南夫也라 하고 又曰 是謂我非夫라 하니라 凡生天地之間者未有不相親比而能自存者也雖剛强之至라도 未有能獨立者也比之道由兩志相求하니 兩志不相求則睽矣君懷撫其下하고 下親輔[一作附]於上하니 親戚朋友鄕黨皆然이라 故當上下合志以相從이니 苟无相求之意則離而凶矣大抵人情相求則合하고 相持則睽하나니 相持相待莫先也人之相親固有道然而欲比之志不可緩也.

사람이 스스로 안녕함을 보존하지 못하여야 비로소 와서 친비(親比)하기를 구하니, 친애할 사람을 얻으면 편안함을 보존할 수 있다. 편안하지 못할 때를 당해서는 진실로 마땅히 급급히 친애함을 구해야 하니, 만일 홀로 서고 자신만을 믿어 친애하기를 구하는 뜻이 빠르지 못하여 뒤늦으면 비록 강한 남자라도 흉할 것이다. 강한 남자도 오히려 흉한데 하물며 유약한 이에 있어서랴. ()는 강립(剛立)한 이의 칭호이니, ()에 이르기를 자남(子南)은 부()[남자]이다.”라고 하였고, 또 이르기를 이는 나더러 남자가 아니라고 여기는 것이다.” 하였다. 무릇 천지(天地)의 사이에 사는 것은 서로 친비(親比)하지 않고서 스스로 보존하는 것이 없으니, 비록 강강(剛强)함이 지극하더라도 독립할 수 있는 것은없다. 친비(親比)하는 도()는 두 사람의 뜻이 서로 구함으로 말미암으니, 두 뜻이 서로 구하지 않으면 서로 등질 것이다. 군주(君主)는 아랫사람을 품어주고 어루만지며, 아랫사람은 윗사람을 친보(親輔)하여야 하니, 친척과 붕우와 향당이 모두 그러하다. 그러므로 마땅히 상하(上下)가 뜻을 합하여 서로 좇아야 하니, 만약 서로 구하는 뜻이 없으면 헤어져서 흉할 것이다. 대저 인정(人情)은 서로 구하면 합하고 서로 버티면 헤어지니, 서로 버틴다는 것은 서로 기다리고 먼저 하지 않는 것이다. 사람이 서로 친애함이 진실로 도()가 있으나 친애하고자 하는 뜻을 늦춰서는 안 되는 것이다.

本義親輔也九五以陽剛으로 居上之中而得其正하고 上下五陰比而從之하니 以一人而撫萬邦하고 以四海而仰一人之象이라 故筮者得之則當爲人所親輔然必再筮以自審하여 有元善長永正固之德然後可以當衆之歸而无咎其未比而有所不安者亦將皆來歸之若又遲而後至則此交已固하고 彼來已晩하여 而得凶矣若欲比人이면 則亦以是而反觀之耳니라.

()는 친보(親輔)하는 것이다. 구오(九五)가 양강(陽剛)으로 상괘(上卦)의 가운데에 거하여 정()을 얻었고 상하(上下)의 다섯 음()이 친히 하여 따르니, 한 사람으로 만방(萬邦)을 어루만지고 사해(四海)로 한 사람을 우러러보는 상()이다. 그러므로 점친 이가 이 괘()를 얻으면 마땅히 남에게 친보(親輔)하는 바가 된다. 그러나 반드시 두 번 점쳐서 스스로 살펴 원선(元善)과 장영(長永)과 정고(正固)의 덕()이 있은 뒤에야 사람들의 귀의함을 감당하여 허물이 없을 것이요, 친하지 못하고 불안하게 여기는 바가 있는 이들도 또한 장차 모두 와서 귀의할 것이다. 만일 또 더디어서 뒤늦게 이르면 이 사귐이 이미 견고하고 저 옴이 이미 늦어서 흉함을 얻을 것이다. 만일 남과 친하고자 한다면 역시 이것으로써 되돌아볼 뿐이다.

 

彖曰 比吉也,

단전(彖傳)에 말하였다. ()는 길()하며,

本義此三字疑衍文이라.

이 세 글자는 연문(衍文)인 듯하다.

 

輔也下順從也.

()는 돕는 것이니, 아래가 순히 따르는 것이다.

比吉也比者吉之道也物相親比乃吉道也比輔也釋比之義比者相親輔也下順從也解卦所以爲比也五以陽居尊位하고 群下順從以親輔之하니 所以爲比也.

비길야(比吉也)’는 비()는 길()한 도()이니, 사물이 서로 친비(親比)함은 바로 길()한 도()이다. ‘비보야(比輔也)’는 비()의 뜻을 해석한 것이니, ()는 서로 친애하고 돕는 것이다. ‘하순종야(下順從也)’는 괘()가 비()가 된 이유를 해석한 것이다. ()가 양()으로서 존위(尊位)에 거하고 여러 아랫사람들이 순종하여 친보(親輔)하니, 이 때문에 비()가 된 것이다.

本義以卦體釋卦名義.

이는 괘체(卦體)로 괘명(卦名)의 뜻을 해석한 것이다.

 

原筮元永貞无咎以剛中也.

원서원영정무구(原筮元永貞無咎)’는 강중(剛中)하기 때문이요,

推原筮[一作占]決相比之道하여 得元永貞而後可以无咎所謂元永貞如五是也以陽剛居中正하여 盡比道之善者也以陽剛當尊位하여 爲君德元也居中得正能永而貞也卦辭本泛言比道어늘 彖言元永貞者九五以剛處中正是也.

서로 친애하는 도()를 미루어 근원하고 점쳐 결단해서 원((()을 얻은 뒤에야 허물이 없을 수 있으니, 이른바 원((()은 오()와 같은 것이 이것이다. 양강(陽剛)으로 중정(中正)에 처하여 친비(親比)하는 도()의 좋음을 다한 것이니, 양강(陽剛)으로 존위(尊位)에 거하여 군덕(君德)이 됨은 원()이요, ()에 거하고 정()을 얻음은 능히 영구(永久)하고 정고(貞固)한 것이다. 괘사(卦辭)는 본래 친비(親比)하는 도()를 범연히 말하였는데, 단전(彖傳)에서는 원((()은 구오(九五)가 강()으로서 중정(中正)에 처함이 이것임을 말한 것이다.

 

不寧方來上下應也,

불녕방래(不寧方來)’는 상하가 응함이요,

人之生不能保其安寧이라야 方且來求附比하나니 民不能自保故戴君以求寧이요 君不能獨立이라 故保民以爲安이라 不寧而來比者上下相應也以聖人之公言之하면 固至誠求天下之比하여 以安民也以後王之私言之하면 不求下民之附則危亡至矣故上下之志 必相應也在卦言之하면 上下群陰比於五하고 五比其衆하니 乃上下應也.

사람의 삶이 안녕함을 보존하지 못하여야 비로소 와서 따르고 친애하기를 구하니, 백성들이 스스로 보존할 수 없으므로 군주(君主)를 추대하여 편안하기를 구하고, 군주(君主)가 홀로 설 수 없으므로 백성을 보존하여 편안함으로 삼는 것이다. 편안하지 못하여 와서 친애하는 것은 상하(上下)가 서로 응함이니, 성인(聖人)의 공()으로써 말하면 진실로 지성으로 천하가 친애하기를 구하여 백성들을 편안히 하고, 후왕(後王)의 사()로써 말하면 하민(下民)들이 친부(親附)하기를 구하지 않으면 위망(危亡)이 닥친다. 그러므로 상하(上下)의 뜻이 반드시 서로 응하는 것이다. ()에 있어서 말하면 위아래의 여러 음()이 오()를 친애하고 오()가 무리를 친애하니, 이것이 바로 상하(上下)가 응하는 것이다.

 

後夫凶其道窮也.

후부흉(後夫凶)’은 그 도()가 곤궁한 것이다.

衆必相比而後能遂其生이니 天地之間未有不相親比而能遂者也若相從之志 不疾而後則不能成比하니 雖夫라도 亦凶矣无所親比하여 困屈以致凶窮之道也.

무리는 반드시 서로 친애한 뒤에 그 삶을 이룰 수 있으니, 천지(天地)의 사이에 서로 친비(親比)하지 않고서 능히 이루는 이는 있지 않다. 만일 서로 따르는 뜻이 빠르지 못하여 뒤늦으면 친애함을 이루지 못하니, 비록 남자라도 흉하다. 친비(親比)하는 바가 없어서 곤궁하고 굽혀 흉함을 이룸은 곤궁하게 되는 길이다.

本義亦以卦體釋卦辭剛中謂五上下謂五陰이라.

또한 괘체(卦體)로 괘사(卦辭)를 해석하였다. 강중(剛中)은 오()를 이르고, 상하(上下)는 다섯 음()을 이른다.

 

象曰 地上有水比先王하여 建萬國하고 親諸侯하니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땅 위에 물이 있는 것이 비()이니, 선왕(先王)이 이것을 이로써 만국(萬國)을 세우고 제후(諸侯)들을 친애한다.”

夫物相親比而无間者莫如水在地上하니 所以爲比也先王觀比之象하여 以建萬國, 親諸侯하시니 建立萬國所以比民也親撫諸侯所以比天下也.

사물이 서로 친비(親比)하여 간격이 없는 것은 물이 땅 위에 있는 것과 같은 것이 없으니, 이 때문에 비()가 된 것이다. 선왕(先王)이 비()의 상()을 관찰하여 만국(萬國)을 세우고 제후(諸侯)를 친애하였으니, 만국을 세움은 백성을 친애하는 것이요, 제후(諸侯)를 친애하고 어루만짐은 천하를 친애하는 것이다.

本義地上有水하니 水比於地하여 不容有間하니 建國親侯亦先王所以比於天下而無間者也彖意人來比我取我往比人이라.

땅 위에 물이 있으니, 물이 땅과 가까워서 간격이 있을 수 없으니, 나라를 세우고 제후(諸侯)를 친애함은 역시 선왕(先王)이 천하를 친애하여 간격이 없게 한 것이다. 단전(彖傳)의 뜻은 남이 와서 나를 친애하는 것이요, 여기서는 내가 가서 남을 친애함을 취한 것이다.

 

初六有孚比之라야 无咎리니,

초육(初六)은 성신(誠信)을 두어 친하여야 허물이 없으리니,

本義有孚比之.

본의성신(誠信)을 두어 친하다.

初六比之始也相比之道以誠信爲本이니 中心不信而親人이면 人誰與之리오 故比之始必有孚誠이라야 乃无咎也信之在中也.

초육(初六)은 비()의 초기이다. 서로 친비(親比)하는 도()는 성신(誠信)을 근본으로 삼으니, 중심(中心)이 성실하지 못하면서 남을 친애하려 하면 사람들이 그 누가 더불겠는가. 그러므로 비()의 초기에 반드시 부성(孚誠)이 있어야 허물이 없는 것이다. ()는 신()이 심중(心中)에 있는 것이다.

 

有孚盈缶來有他吉하리라.

()를 둠이 장군에 가득하듯 하면 종말에 와서 다른 길()함이 있으리라.

本義終來有他吉하리라.

본의종래(終來)에 다른 길함이 있으리라.

誠信充實於內하여 若物之盈滿於缶中也質素之器言若缶之盈實其中하여 外不加文飾이면 則終能來有他吉也非此也外也若誠實充於內하면 物无不信하니 豈用飾外以求比乎誠信中實하면 雖他外라도 皆當感而來從이니 孚信比之本也.

성신(誠信)이 안에 충실하여 물건이 장군 속에 가득찬 것과 같은 것이다. ()는 질박한 기물이니, 장군이 속이 꽉 차 있어서 밖에 문식(文飾)을 가()하지 않은 것과 같이 하면 종말에 와서 다른 길함이 있음을 말한 것이다. ()는 이것이 아니요 밖인 것이다. 만일 성신(誠信)이 내면에 충실하면 남이 믿지 않음이 없을 것이니, 어찌 외면을 꾸며 친비(親比)하기를 구하겠는가. 성신(誠信)이 가운데에 꽉 차 있으면 비록 다른 외인(外人)이라도 모두 감동하여 와서 따를 것이니, 부신(孚信)은 친비(親比)하는 근본이다.

本義比之初貴乎有信하니 則可以无咎矣若其充實이면 則又有他吉也.

()의 초기에는 신()이 있음을 귀하게 여기니, 허물이 없을 것이다. 만일 성신(誠信)이 충실하면 또 다른 길함이 있을 것이다.

 

象曰 比之初六有他吉也니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비괘(比卦)의 초육(初六)은 다른 길()함이 있는 것이다.”

言比之初六者比之道在乎始也始能有孚則終致有他之吉이라 其始不誠이면 終焉得吉이리오 上六之凶由无首也.

비괘(比卦)의 초육(初六)이라고 말한 것은 비()의 도()가 처음에 있기 때문이니, 처음에 성신(誠信)이 있으면 종말에 다른 길함을 이룰 것이다. 처음에 성실하지 않으면 종말에 어찌 길함을 얻겠는가. 상육(上六)의 흉함은 머리가 없기 때문이다.

 

六二比之自內하여 하도다.

육이(六二)는 친비(親比)하기를 안으로부터 하니, ()하여 길()하다.

本義이라 하리라.

본의()한지라 길()하리라.

二與五爲正應이요 皆得中正하니 以中正之道相比者也二處於內하니 自內謂由己也擇才而用雖在乎上이나 而以身許國必由於己己以得君하여 道合而進일새 乃得正而吉也以中正之道應上之求乃自內也不自失也汲汲以求比者非君子自重之道乃自失也.

()는 오()와 정응(正應)이 되고 모두 중정(中正)을 얻었으니, 중정(中正)한 도()로 서로 친비(親比)하는 것이다. ()는 안에 처하였으니, 안으로부터 한다는 것은 자기로 말미암음을 이른다. 인재를 가려 등용함은 비록 윗사람에게 달려 있으나 몸을 나라에 허락함은 반드시 자신에게 달려 있으니, 자기가 군주(君主)를 만나 도()가 합하여 나아가므로 마침내 바름을 얻어 길()한 것이다. 중정(中正)한 도()로써 윗사람의 구함에 응함은 바로 안으로부터 하는 것이니, 스스로 실신(失身)하지 않는 것이요, 급급히 윗사람에게 친비(親比)하기를 구하는 것은 군자(君子)의 자중하는 도리가 아니니, 스스로 실신(失身)하는 것이다.

本義柔順中正으로 上應九五하여 自內比外而得其貞하니 吉之道也占者如是則正而吉矣리라.

유순중정(柔順中正)으로 위로 구오(九五)에 응하여 안으로부터 밖을 친하여서 그 바름을 얻었으니, ()한 도()이다. 점치는 이가 이와 같이 하면 바루어 길()할 것이다.

 

象曰 比之自內不自失也.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하기를 안으로부터 함은 스스로 실신(失身)하지 않는 것이다.”

守己中正之道하여 以待上之求하니 乃不自失也易之爲戒嚴密하니 二雖中正이나 質柔體順이라 故有貞吉自失之戒戒之自守以待上之求하니 无乃涉後凶乎曰 士之修己乃求上之道降志辱身非自重之道也故伊尹武侯 救天下之心非不切이나 必待禮至然後出也.

자기의 중정(中正)한 도()를 지켜서 윗사람이 구하기를 기다리니, 이는 스스로 실신(失身)하지 않는 것이다. ()의 경계함이 엄밀하니, ()가 비록 중정(中正)하나 질()이 유()이고 체()가 순()이므로 정길자실(貞吉自失)’의 경계가 있는 것이다. 스스로 지켜서 윗사람이 구하기를 기다리라고 경계하였으니, 이는 뒤늦으면 흉함에 해당되지 않겠는가? 선비가 자기 몸을 닦음은 바로 윗사람을 구하는 길이니, 뜻을 낮추고 몸을 욕되게 함은 자중하는 도리가 아니다. 그러므로 이윤(伊尹)과 제갈무후(諸葛武侯)가 천하를 구제하려는 마음이 간절하지 않은 것이 아니었으나 반드시 임금의 예()가 지극하기를 기다린 뒤에야 나갔던 것이다.

本義得正則不自失矣.

정도(正道)를 얻으면 스스로 실신(失身)하지 않는다.

 

六三比之匪人이라.

육삼(六三)은 나쁜 사람과 친하는 것이다.

本義比之匪人이로다.

본의가까이 있는 바가 좋은 사람이 아니로다.

三不中正而所比皆不中正이라 陰柔而不中하고 存應而比初하여 皆不中正하니 匪人也比於匪人이면 其失可知悔吝[一作咎]不假言也故可傷이라 二之中正而謂之匪人隨時取義 各不同也일새라.

()은 중정(中正)하지 못하고 가까이 있는 것이 모두 중정(中正)하지 못하다. ()는 음유(陰柔)로서 중()하지 못하고, ()는 응()이 있고 초()와 가까워 모두 중정(中正)하지 못하니, 비인(匪人)이다. 비인(匪人)을 가까이 하면 그 잘못을 알 수 있으니, 후회와 부끄러움을 굳이 말할 것이 없다. 그러므로 해로운 것이다. ()는 중정(中正)한데도 비인(匪人)이라고 말한 것은 때에 따라 의()를 취함이 각기 같지 않기 때문이다.

本義陰柔不中正하고 承乘應皆陰이니 所比 皆非其人之象이라 其占大凶不言可知.

음유(陰柔)로 중정(中正)하지 못하고, ()과 승()과 응()이 모두 음()이니, 가까이 있는 것이 모두 좋은 사람이 아닌 상()이다. 그 점()이 대흉(大凶)임을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象曰 比之匪人不亦傷乎.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비인(匪人)을 친애함이 해롭지 않겠는가.”

人之相比求安吉也어늘 乃比於匪人이면 必將[一无必將字]反得悔吝이니 其亦可傷矣深戒失所比也.

사람이 서로 친비(親比)함은 편안함과 길()함을 구하기 위한 것인데 마침내 비인(匪人)을 가까이 한다면 반드시 장차 도리어 후회와 부끄러움을 얻을 것이니, 이 역시 해로울 만한 것이다. 친애할 바를 잃음을 깊이 경계한 것이다.

 

六四外比之하니 하여 하도다.

육사(六四)는 밖으로 친비(親比)하니, ()하여 길()하다.

本義外比之이라 하리라.

본의밖으로 친비(親比)함이니, ()하여 길하리라.

四與初不相應而五比之하니 外比於五 乃得貞正而吉也君臣相比正也相比相與 宜也五剛陽中正하니 賢也居尊位하니 在上也親賢從上比之正也故爲貞吉이요 以六居四하니 亦爲得正之義又陰柔不中之人能比於剛明中正之賢乃得正而吉也又比賢從上必以正道則吉也數說相須라야 其義始備니라.

()는 초()와 서로 응하지 않고 오()가 가까이 있으니, 밖으로 오()와 친애함은 바로 정정(貞正)함을 얻어 길한 것이다. 군신(君臣)이 서로 친애함은 정도(正道)이니, 서로 친애하고 서로 더부는 것이 당연하다. ()는 양강중정(陽剛中正)하니 현자(賢者)이며 존위(尊位)에 거하니 위에 있는 이이니, 현자(賢者)를 친애하고 윗사람을 따름은 친비(親比)의 정도(正道)이므로 정길(貞吉)이 된 것이요, ()으로서 사()에 거했으니 이 역시 정()을 얻은 뜻이 된다. 또 음유(陰柔)로서 중도(中道)에 맞지 않은 사람이 강명중정(剛明中正)한 현자(賢者)를 친애함은 바로 정()을 얻어 길한 것이요, 또 현자(賢者)를 친애하고 윗사람을 따름은 반드시 정도(正道)로써 하면 길한 것이니, 여러 해설이 서로 있어야 그 뜻이 비로소 갖춰진다.

本義以柔居柔하여 外比九五하니 爲得其正이니 吉之道也占者如是則正而吉矣리라.

()로서 유()에 거하여 밖으로 구오(九五)와 친하니, 바름을 얻음이 되니, ()한 도()이다. 점치는 이가 이와 같이 하면 바루어 길할 것이다.

 

象曰 外比於賢以從上也.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밖으로 현자(賢者)를 친애함은 윗사람을 따르는 것이다.”

外比謂從五也剛明中正之賢이요 又居君位어늘 四比之하니 比賢이요 且從上이니 所以吉也.

외비(外比)는 오()를 따름을 이른다. ()는 강명중정(剛明中正)한 현자(賢者)이고 또 군위(君位)에 거했는데 사()가 그와 가까이 있으니, 이는 현자(賢者)를 가까이 하는 것이요 또 윗사람을 따르는 것이니, 이 때문에 길()한 것이다.

 

九五顯比王用三驅失前禽하며 邑人不誡하도다.

구오(九五)는 친비함을 드러나게 함이니, ()이 삼면(三面)에서 몰이함에 앞에 있는 짐승을 잃으며 읍인(邑人)을 경계하지 않으니, ()하도다.

本義失前禽하고 邑人不誡하리라.

본의앞에 있는 짐승을 잃고 읍인(邑人)도 경계하지 않으니, ()하리라.

五居君位하여 處中得正하니 盡比道之善者也人君比天下之道當顯明其比道而已如誠意以待物하고 恕己以及人하며 發政施仁하여 使天下蒙其惠澤是人君親比天下之道也如是天下孰不親比於上이리오 若乃暴()其小仁하고 違道干譽하여 欲以求下之比其道亦狹矣其能得天下之比乎故聖人以九五盡比道之正이라 하여 取三驅爲喩曰 王用三驅失前禽邑人不誡吉이라 하니 先王以四時之畋不可廢也故推其仁心하여 爲三驅之禮하니 乃禮所謂天子不合圍也成湯祝網是其義也天子之畋圍合其三面하고 前開一路하여 使之可去하여 不忍盡物하니 好生之仁也只取其不用命者하니 不出而反入者也禽獸前去者皆免矣故曰 失前禽也王者顯明其比道天下自然來比하나니 來者撫之호되 固不煦煦[一作呴呴]然求比於物하니 若田之三驅禽之去者從而不追하고 來者則取之也此王道之大所以其民皞皞而莫知爲之者也.

()는 군위(君位)에 거하여 중()에 처하고 정()을 얻었으니, 친비(親比)하는 도()의 선()함을 극진히 한 것이다. 인군(人君)이 천하를 친비(親比)하는 도()는 마땅히 그 친비(親比)하는 도()를 드러내고 밝게 할 뿐이니, 성의(誠意)로 남을 대하고 자기 마음을 미루어 남에게 미치며 훌륭한 정사를 펴고 인정(仁政)을 베풀어 천하가 그 혜택을 입게 하는 것과 같은 것 이것이 인군(人君)이 천하를 친비(親比)하는 도()이다. 이와 같이 하면 천하에 그 누가 윗사람을 친비(親比)하지 않겠는가. 만일 작은 인()을 드러내며 도()를 어기고 명예를 요구하여 아랫사람이 친비(親比)하기를 구하려 한다면 그 도()가 또한 좁으니, 어찌 천하의 친비(親比)함을 얻겠는가. 그러므로 성인(聖人)은 구오(九五)가 친비(親比)하는 도()의 바름을 극진히 했다 하여, 삼구(三驅)를 취하여 비유하기를 ()이 삼면(三面)에서 몰이함에 앞에 있는 짐승을 잃으며 읍인(邑人)을 경계하지 않으니, ()하다.” 한 것이다. 선왕(先王)은 사시(四時)의 사냥을 폐할 수 없으므로 어진 마음을 미루어 삼구(三驅)의 예()를 만들었으니, ()에 이른바 천자(天子)는 완전히 포위하지 않는다.”는 것이요, 성탕(成湯)이 그물을 치고 축원한 것이 바로 그 뜻이다. 천자(天子)의 사냥에 삼면(三面)만을 포위하고 앞의 한 길은 열어 주어 짐승들이 도망가게 하여, 차마 짐승을 모두 잡지 않으니, 살려주기를 좋아하는 인()이다. 다만 명령을 따르지 않는 것을 잡으니 나가지 않고 도로 들어오는 짐승이며, 앞으로 도망가는 짐승들은 모두 죽음을 면한다. 그러므로 앞에 있는 짐승을 잃는다고 말한 것이다. 왕자가 친비(親比)하는 도()를 드러내고 밝게 하면 천하(天下)가 자연히 와서 친비(親比)할 것이니, 오는 이를 어루만지되 진실로 작은 은혜를 베풀어 남에게 친비(親比)하기를 구하지 않는다. 마치 사냥에 삼면(三面)에서 몰이함에 짐승 중에 도망가는 것을 따라가서 잡지 않고 오는 것만을 잡는 것과 같으니, 이는 왕도(王道)의 큰 것이기 때문에 백성들이 호호(皞皞)하여 어떻게 하는지를 알지 못하는 것이다.

邑人不誡吉言其至公不私하여 无遠邇親疎之別也邑者居邑이니 易中所言邑皆同하니 王者所都諸侯國中也期約也待物之一하여 不期誡於居邑이니 如是則吉也聖人以大公无私治天下於顯比見之矣非唯人君比天下之道如此大率人之相比莫不然하니 以臣於君言之하면 竭其忠誠하고 致其才力乃顯其比[一作比其]君之道也用之與否在君而已不可阿諛逢迎하여 求其比己也在朋友에도 亦然하니 修身誠意以待之親己與否在人而已不可巧言令色하고 曲從苟合하여 以求人之比己也於鄕黨親戚於衆人莫不皆然하니 三驅失前禽之義也.

읍인불계길(邑人不誡吉)’은 지공무사(至公無私)하여 원근과 친소의 구별이 없음을 말한 것이다. ()은 거주하는 읍()이니, () 가운데 말한 읍()은 모두 똑같으니, 왕자(王者)가 도읍하는 곳과 제후(諸侯)의 국중(國中)이다. ()는 기약함이니, 남을 대하기를 똑같이 하여 거주하는 읍()에만 약속하고 경계하지 않는 것이니, 이와 같이 하면 길()하다. 성인(聖人)이 대공무사(大公无私)함으로 천하를 다스림을 현비(顯比)에서 볼 수 있으니, 이는 단지 인군(人君)이 천하를 친비(親比)하는 도()가 이와 같을 뿐만 아니라, 대체로 사람이 서로 친비(親比)하는 것도 모두 그러하다. 신하가 인군에게 있어서의 경우로 말하면 충성을 다하고 재주와 힘을 바침이 바로 군주(君主)를 친비하는 도()를 드러내는 것이요, 등용의 여부는 군주(君主)에게 달려 있을 뿐이니, 아첨하고 영합(迎合)하여 자기를 친비해 주기를 구해서는 안 된다. 붕우(朋友)에 있어서도 또한 그러하니, 몸을 닦고 뜻을 성실히 하여 붕우(朋友)를 대할 것이요, 자기를 친비하는가의 여부는 상대에게 달려 있을 뿐이니, 말을 잘하고 얼굴빛을 좋게 하며 곡진히 따르고 구차히 영합하여 상대가 자기를 친비하기를 구해서는 안 된다. 향당(鄕黨)과 친척(親戚), 중인(衆人)에 있어서도 모두 그렇지 않음이 없으니, 이는 삼면(三面)에서 몰이함에 앞에 달아나는 짐승을 잃는 의()이다.

本義一陽居尊하여 剛健中正하고 卦之群陰皆來比己하여 顯其比而无私하니 如天子不合圍하고 開一面之網하여 來者不拒하고 去者不追故爲用三驅失前禽而邑人不誡之象이라 蓋雖私屬이나 亦喩上意하여 不相警備以求必得也凡此皆吉之道占者如是則吉也.

하나의 양()이 존위(尊位)에 거하여 강건(剛健)하고 중정(中正)하며 괘()의 여러 음()이 모두 와서 자기에게 친비(親比)하여, 그 친비(親比)함을 드러내어 사()가 없으니, 마치 천자(天子)가 사면을 완전히 포위하지 않고 그물의 일면(一面)을 열어 주어 오는 이를 막지 않고 가는 이를 쫓지 않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삼구(三驅)의 예()를 써서 앞에 달아나는 짐승을 잃고 읍인(邑人)도 경계하지 않는 상()이 된다. 비록 하인이라 하더라도 역시 윗사람의 뜻을 깨달아서 서로 경계하고 대비하여 반드시 얻기를 구하지 않는 것이니, 이것은 모두 길()한 도()이다. 점치는 이가 이와 같이 하면 길()할 것이다.

 

象曰 顯比之吉位正中也,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현비(顯比)의 길()함은 자리가 정중(正中)하기 때문이요,

顯比所以吉者以其所居之位得正中也處正中之地乃由正中之道也比以不偏爲善일새 故云正中이라 凡言正中者其處正得中也比與隨是也言中正者得中與正也訟與需是也.

현비(顯比)가 길()한 까닭은 그 처한 바의 자리가 정중(正中)을 얻었기 때문이니, 정중(正中)한 자리에 처함은 바로 정중(正中)한 도()를 행하는 것이다. ()는 편벽되지 않음을 선()으로 여기므로 정중(正中)이라 말하였다. 무릇 정중(正中)이라 말한 것은 그 정()에 처하고 중()을 얻은 것이니 비괘(比卦)와 수괘(隨卦)가 이것이요, 중정(中正)이라 말한 것은 중()과 정()을 얻은 것이니 송괘(訟卦)와 수괘(需卦)가 이것이다.

 

舍逆取順失前禽也,

거역하는 이를 버리고 순종하는 이를 취하는 것이 앞의 짐승을 잃는 것이요,

取不用命者하니 乃是舍順取逆也順命而去者皆免矣以向背而言하니 謂去者爲逆이요 來者爲順也所失者前去之禽也言來者撫之하고 去者不追也.

()명령을 따르지 않는 이를 취한다하였으니, 이것은 바로 순종하는 이를 버리고 거역하는 이를 취하는 것이니, ()에 순종하여 도망간 이는 모두 잡힘을 면하는 것이다. ()는 향배(向背)로써 말하였으니, 도망가는 이를 역()이라 하고 오는 이를 순()이라 하였다. 그러므로 잃는 것은 앞으로 도망가는 짐승인 것이다. 이는 오는 이를 어루만지고 가는 이를 쫓지 않음을 말한 것이다.

 

邑人不誡上使中也일새라.

읍인(邑人)을 경계하지 않음은 윗사람의 부림이 중도(中道)에 맞기 때문이다.

 

本義上使中也일새라.

본의윗사람이 중도(中道)에 맞게 하기 때문이다.

不期誡於親近하니 上之使下 中平不偏하여 遠近如一也.

친근한 이에게 기약하고 경계하지 않으니, 윗사람이 아래를 부림이 중평(中平)하고 편벽되지 않아 원근을 한결같이 대하는 것이다.

本義由上之德使不偏也.

윗사람의 덕()이 편벽되지 않게 하기 때문이다.

 

上六比之无首하니라.

상육(上六)은 친비(親比)함에 시작이 없는 것이니, ()하다.

六居上하니 比之終也謂始也凡比之道其始善則其終善矣有其始而无其終者或有矣어니와 未有无其始而有終者也比之无首至終則凶也據比終而言이나 然上六陰柔不中하여 處險之極하니 固非克終者也始比不以道하여 隙於終者 天下多矣.

()은 상()에 거하였으니, ()의 종()이다. ()는 시작을 이른다. 무릇 친비(親比)하는 도()는 처음이 좋으면 끝도 좋은 것이니, 시작이 있고서 끝이 없는 것은 혹 있으나 시작이 없고서 끝이 있는 것은 없다. 그러므로 친비(親比)함에 시작이 없음은 종말(終末)에 이르면 흉한 것이다. 이는 비()의 종()을 근거하여 말하였으나 상육(上六)이 음유(陰柔)로 중()하지 못하면서 험()의 극에 처하였으니, 진실로 끝을 잘 마치는 것이 아니다. 처음 친비(親比)할 때에 도()로써 하지 않아 종말에 틈이 벌어지는 것이 천하에 많다.

本義陰柔居上하여 无以比下하니 凶之道也故爲无首之象이요 而其占則凶也.

음유(陰柔)로 상()에 거하여 아래를 친비(親比)함이 없으니, 흉한 도이다. 그러므로 무수(无首)’의 상()이 되고 그 점괘가 흉한 것이다.

 

象曰 比之无首 无所終也니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친비(親比)함에 시작이 없음은 끝마칠 것이 없는 것이다.”

比旣无首하니 何所終乎相比有首라도 猶或終違어든 始不以道終復何保리오 故曰无所終也라 하니라.

친비(親比)함에 이미 시작이 없었으니, 어찌 끝마침이 있겠는가. 서로 친비(親比)함은 시작이 있더라도 오히려 혹 종말에 어그러지는데 시작을 도()로써 하지 않았다면 종말을 어찌 다시 보존하겠는가. 그러므로 끝마칠 것이 없다고 한 것이다.

本義以上下之象言之則爲无首以終始之象言之則爲无終이니 无首則无終矣.

상하(上下)의 상()으로 말하면 시작이 없음이 되고, 종시(終始)의 상()으로 말하면 종말이 없음이 되니, 시작이 없으면 종말이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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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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