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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례헌

오늘은 토요일. 머릿속에서는 낮에 황룡시장엘 가야겠다고 생각하는데 그러지를 못하고 시제에 갔다.

11대조 기와공 시제다. 기와공 할아버지는 형제를 두셨다. 그래서 우리집이 작은집쪽이다. 말하자면 큰댁에 시제 모시러 가는 거다. 작은집인 우리집쪽에선 아무도 갈 사람이 없다. 나마저 아니 가면 전멸이다. 중식이는 친구 자식 결혼식이 더 중요하다고 그리고 가겠다고, 형식이는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나 못 간단다. 섭섭한 마을으로 <다산재>에 도착해 보니 산지기 내외가 제물을 진설하고 있고, 시제를 모실 자손은 딱 한 사람 와 있다. 진설을 다 하고 기다리니 10시 조금 넘어서 종손도 오고 형도 아우도 왔다. 그 많던 아저씨 항렬은 전멸이다.

자손 여섯. 참 조촐(?)하다. 모시는 조상의 신위가 16분. 그래서 잔이 16개. 메도 16개. 국도 16개. 숟가락 저도 16개씩.

그런데 지방은 하나. 통합지방이다. 축도 하나 통합축이다.

따라서 제물도 한 제물이 많이 풍성할 뿐이다.

16개 잔을 채우고 초헌 후에 퇴주를 하고, 아헌에 또 채우고 퇴주를 하고 종헌을 하고 첨잔까지 하면 얼마나 시간이 걸릴까? 그걸 우리 현대인 참지를 못한다. 하루가 걸리면 어떻고 해가 넘어가면 어떨까? 그냥 하루 시제 모시는 날로 정하고 느긋할 수는 없을까? 나부터 말이다. 그래서 편법. 이미 진설도 편법, 진행도 편법이기는 하다. 원래는 8제물을 따로 마련해서 진설하고 모시고, 치우고 또 진설하고 모시고 치우고를 8번 반복해야 하는 거다.

초헌을 하고 아헌을 하고 종헌으로 넘어가니 종손이 참 서운한가 보다. 그래서 내가 하는 말,

"종헌에 첨잔이라도 하지요." 했더니 종손 얼굴이 조금 밝아진다.

음복을 하면서 이약이약하는데 시제를 모시는 시간에 후강선생이 따르릉을 했나 보다. 나가서 통화를 하니 점심을 하잔다. 황룡시장 국밥을 사 준다고 오랬더니 온단다. 25분 후 약속. 결산보고를 대충 듣고 먼저 실례하는데, 사실은 느긋하게 하루를 시제에 바치면 어떠냐 했던 내 생각에게 미안하기 그지없다. 채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서 바로 내가 바쁘다고 서두르고 있으니 말이다.

먼저 도착해서 설기 밥도 한 푸대 사고, 묘목시장도 돌아보고 후강을 만나서 국밥도 먹고 구달현군에게 안부 전화도 하고, 온 김에 찹쌀현미도 3되를 24,000에 사고, 그리고는 후강과 헤어졌다. 집에 오니 아버지 하시는 말씀,

"일찍 왔구나!"

"창수형 형제, 종손 형제, 종식이, 그리고 저 그렇게 여섯이었습니다. 아재 항렬이 한 분도 없어요." 했더니, 그만 쓸쓸해 하신다.

그리고 내 말이,

"우리 시제도 한 제물로 다산제에서 모시는 게 어떨까요? 원골에 올라가기 싫어하고 참석자도 적으니.........."

"상의해서 하렴!" 하신다.

그래서 월평아재께 전화를 올렸다. 이러구이러구 하는 게 어떠냐고 여쭈었더니 대뜸 하시는 말씀,

"그래도 산에 가는 성의는 보이는 것이 안 좋것냐?" 하시더니,

"아버지는 뭐라 하시더냐?" 하신다. 당신 생각보다 아버지 의향에 신경이 더 쓰이시는 거다.

아버지는 찬성하셨다 했더니 그럼 그러랜다. 그래서 종손 철식이에게 전화를 백방으로 해 봐도 불통. 집전화고 손전화고 계수씨 전화까지 모두 없는 전화란다. 설마 야반도주야 했겠는가마는 친동생네도 모르고 있는 현실. 참 기가 막힌다. 그래서 내 맘대로 하기로 했다. 잔소리 하면 '그럼 니가 유사해라.' 하고 쏘아부치기로 작정을 하고.............. 그래도 마음이 안 편하다. 까닭은 나도 모른다.


시젯상-143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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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멩기작거리다가 작심을 하고 일어섰다.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나서니 설기가 야단이다. 지도 같이 가자는 거다. 데리고 산에 가서 나무에 매 놓으니 저 혼자 곁에서 논다. 청노루귀 홍노루귀 백노루귀와 야그를 잠깐 하고서는 곧바로 백매를 찾아갔다. 만개는 아직도 한참 멀었다. 땔나무 두 짐 하고 나니 힘이 없다. 오늘은 설기도 앞에서 썰매개처럼 힘을 보탰다. 오죽 하겠는가마는 그렇다. 기특하다.

갈구리를 챙기고 비닐을 챙겨서 나섰다. 소루쟁이 캐러. 나선 김에 보해식품 울타리에서 인동을 한 뿌리 캐고, 똘에서 소루쟁이를 비닐이 넘치도록 하나 가득 캐 와서는 수돗가에 부어 두고, 곧바로 인동을 데크 곁에 심었다. 예쁘게 덩굴을 올리겠다는 욕심. 그리고는 소루쟁이를 다듬고 나니 허리가 뻐근하다. 잇몸 나으라는 건데 허리가 먼저 나가겠다.


백매-3167.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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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우

2012.03.24
20:37:12

조상께서 이 고얀놈 하실지, 아니면 그래도 고놈 기특하다 하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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