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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례헌

30. ()

 

序卦坎者陷也陷必有所麗故受之以離하니 離者麗也라 하니라 陷於險難之中이면 則必有所附麗理自然也離所以次坎也麗也明也取其陰麗於上下之陽이면 則爲附麗之義取其中虛則爲明義離爲火하니 火體虛하니 麗於物而明者也又爲日하니 亦以虛明之象이라.

이괘(離卦)서괘전(序卦傳)()은 빠짐이니, 빠지면 반드시 붙는 바가 있다. 그러므로 이괘(離卦)로 받았으니, ()는 붙음이다.” 하였다. 험난한 가운데에 빠지면 반드시 붙는 바가 있음은 이치의 자연스러움이니, 이괘(離卦)가 이 때문에 감괘(坎卦)의 다음이 된 것이다. ()는 붙음이요 밝음이니, ()이 위아래의 양()에 붙은 것을 취하면 부려(附麗)의 뜻이 되고, 가운데가 허()함을 취하면 밝은 뜻이 된다. ()는 불이 되니, 불의 체()는 비었으니 사물에 붙어 밝은 것이며, 또 해가 되니 또한 허명(虛明)의 상()이다.

 

利貞하니 하니 ()牝牛하면 하리라.

()는 정()함이 이로우니, 형통(亨通)하니, 암소를 기르듯 하면 길()하리라.

麗也萬物莫不皆有所麗하니 有形則有麗矣在人則爲[一无爲字]所親附之人所由之道所主之事하니 皆其所麗也人之所麗利於貞正하니 得其正則可以亨通이라 故曰離利貞亨이라 畜牝牛吉牛之性順이요 而又牝焉順之至也旣附麗於正이면 必能順於正道如牝牛則吉也畜牝牛謂養其順德[一无德字]이니 人之順德由養以成하나니 旣麗於正이면 當養習以成其順德也

()는 붙음이다. 만물(萬物)은 모두 붙는 것이 있지 않음이 없으니, 형체가 있으면 붙음이 있다. 사람에게 있어서는 친히 붙는 바의 사람과 행하는 바의 도()와 주장하는 바의 일이 되니, 모두 붙는 것이다. 사람의 붙음은 정정(貞正)함이 이로우니, 바름을 얻으면 형통(亨通)하다. 그러므로 ()는 바름이 이로우니, 형통(亨通)하다라고 말한 것이다. 암소를 기르듯 하면 길()하다는 것은 소의 성질은 순하며 또 암놈은 순함이 지극하다. 이미 바름에 붙었으면 반드시 정도(正道)에 순종하여야 하니, 암소와 같이 하면 길()한 것이다. 암소를 기르듯 한다는 것은 순한 덕()을 기름을 이른다. 사람의 순한 덕()은 기름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니, 이미 바름에 붙었다면 마땅히 기르고 익혀서 순한 덕()을 이루어야 한다.

本義麗也陰麗於陽이라 其象爲火하니 體陰而用陽也物之所麗貴乎得正이요 牝牛柔順之物也故占者能正則亨이요 而畜牝牛則吉也.

()는 붙음이니, ()이 양()에 붙어 있는 것이다. 그 상()은 불이 되니, ()는 음()이고 용()은 양()이다. 사물이 붙는 것은 바름을 얻음을 귀히 여기며, 암소는 유순한 물건이다. 그러므로 점치는 이가 바르면 형통(亨通)하고, 암소를 기르듯 하면 길()한 것이다.

 

彖曰 離麗也日月麗乎天하며 百穀草木麗乎土하니,

단전(彖傳)에 말하였다. “()는 붙음이니, 해와 달이 하늘에 붙어 있고 백곡(百穀)과 초목(草木)이 땅에 붙어 있으니,

離麗也謂附麗也如日月則麗於天하고 百穀草木則麗於土하여 萬物莫不各有所麗하니 天地之中无无麗之物이라 在人當審其所麗麗得其正則能亨也

이리야(離麗也)’는 부리(附麗)를 이른다. 예컨대 해와 달은 하늘에 붙어 있고 백곡(百穀)과 초목(草木)은 땅에 붙어 있어서 만물(萬物)이 각기 붙은 바가 있지 않음이 없으니, 하늘과 땅 가운데 붙어 있지 않은 물건이 없다. 사람에게 있어서는 마땅히 붙을 바를 살펴야 하니, 붙음이 올바름을 얻으면 형통(亨通)할 수 있다.

 

重明으로 以麗乎正하여 乃化成天下하나니라.

거듭 밝음으로 바름에 붙어서 천하(天下)를 교화(敎化)하여 이룬다.

以卦才言也上下皆離重明也五二皆處中正麗乎正也君臣上下皆有明德而處中正이면 可以化天下하여 成文明之俗也.

괘재(卦才)로 말하였다. 상하(上下)가 모두 이()인 것은 거듭 밝음이요, ()와 이()가 모두 중정(中正)에 처함은 바름에 붙은 것이니, 군신(君臣)과 상하(上下)가 모두 밝은 덕()이 있고 중정(中正)에 처한다면 천하(天下)를 교화(敎化)하여 문명(文明)한 풍속을 이룰 수 있다.

本義釋卦名義.

괘명(卦名)의 뜻을 해석하였다.

 

柔麗乎中正이라 故亨하니 是以畜牝牛吉也.

()가 중정(中正)에 붙어 있으므로 형통(亨通)하니, 이 때문에 암소를 기르듯 하면 길()한 것이다.”

二五以柔順으로 麗於中正하니 所以能亨이라 人能養其至順하여 以麗中正則吉이라 故曰畜牝牛吉也或曰 二則中正矣어니와 五以陰居陽하니 得爲正乎曰 離主於所麗하니 中正之位어늘 麗於正位하니 乃爲正也學者知時義而不失輕重이면 則可以言易矣리라.

()와 오()가 유순함으로 중정(中正)에 붙어 있으니, 이 때문에 형통(亨通)한 것이다. 사람이 지극히 순함을 길러서 중정(中正)에 붙으면 길()하다. 그러므로 암소를 기르듯 하면 길()하다고 말한 것이다. 혹자는 ()는 중정(中正)이나, ()는 음()으로서 양위(陽位)에 거하였으니 정()이 될 수 있는가?” 하기에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이괘(離卦)는 붙음을 주장하니, ()는 중정(中正)한 자리인데 육()이 정위(正位)에 붙어 있으니, 바로 바름이 되는 것이다. 배우는 이가 때와 의()를 알아 경중(輕重)을 잃지 않는다면 역()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本義以卦體釋卦辭.

괘체(卦體)로 괘사(卦辭)를 해석하였다.

 

象曰 明兩作離하니 大人하여 繼明하여 照于四方하나니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밝음이 둘인 것이 이()가 되니, 대인(大人)이 이로써 밝음을 이어 사방(四方)을 비춘다.”

本義明兩作,

본의밝음이 두 번 일어난 것이 이()이니,

若云兩明이면 則是二明이니 不見繼明之義故云明兩이니 明而重兩謂相繼也作離明兩而爲離하니 繼明之義也震巽之類亦取洊隨之義然離之義尤重也大人以德言則聖人이요 以位言則王者大人觀離明相繼之象하여 以世繼其明德하여 照臨于四方이라 大凡以明相繼皆繼明也로되 擧其大者故以世襲繼照言之하니라.

만약 양명(兩明)’이라고 말하면 이는 두 개의 밝음이니, 밝음을 잇는 뜻을 볼 수 없다. 그러므로 명량(明兩)’이라고 말하였으니, 밝음이 거듭하여 둘인 것은 서로 이음을 이른다. ‘작리(作離)’는 밝음이 둘인 것이 이()가 되니, 밝음을 잇는 뜻이다. 진괘(震卦)와 손괘(巽卦) 따위도 역시 거듭하고 따르는 뜻을 취하였으나, 이괘(離卦)의 뜻이 더욱 중하다. 대인(大人)은 덕으로 말하면 성인이요 지위로 말하면 왕이라서 대인이 이명(離明)이 서로 잇는 상()을 보고서 대대로 명덕(明德)을 이어서 사방에 비추어 임한다. 대체로 밝음으로 서로 잇는 것은 모두 밝음을 잇는 것인데, 그 큰 것을 들었으므로 군위(君位)를 세습(世襲)하여 이어 비추는 것으로 말하였다.

本義起也.

()은 일어남이다.

 

初九履錯然하니 敬之无咎리라.

초구(初九)는 발자국이 착연(錯然)하니, 공경하면 허물이 없으리라.

陽固好動이요 又居下而離體陽居下則欲進하고 離性炎上하니 志在上麗하여 幾於躁動하여 其履錯然이니 謂交錯也雖未進而跡已動矣動則[一无則字]失居下之分而有咎也然其剛明之才若知其義而敬愼之則不至於咎矣리라 在下하여 无位者也明其身之進退 乃所麗之道也其志旣動이어늘 不能敬愼則妄動이니 是不明所麗乃有咎也.

()은 진실로 동()하기를 좋아하며 또 아래에 거하고 이체(離體)이다. ()이 아래에 거하면 나아가고자 하고 이()의 성질은 불타오르니, 뜻이 위로 붙음에 있어서 조급히 동함에 가까워 그 발자국이 착연(錯然)한 것이니, 교착(交錯)함을 이른다. 비록 나아가지 않았으나 자취가 이미 동하였으니, 동하면 아래에 있는 분수를 잃어 허물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강명(剛明)한 재질로 만약 이러한 의리를 알고 공경하여 삼간다면 허물에 이르지 않을 것이다. ()는 아래에 있어 지위가 없는 것이니, 그 몸의 진퇴(進退)를 분명히 하는 것이 바로 붙는 바의 도()이다. 그 뜻이 이미 동하였는데 공경하고 삼가지 않는다면 망동(妄動)이니, 이는 붙는 바를 분명히 하지 못한 것이어서 바로 허물이 있는 것이다.

本義以剛居下而處明體하여 志欲上進이라 故有履錯然之象이니 敬之則无咎矣리라 戒占者宜如是也.

()으로서 아래에 거하고 명체(明體)에 처하여, 뜻이 위로 나아가고자 하므로 이착연(履錯然)’의 상()이 있으니, 공경하면 허물이 없다. 점치는 이에게 마땅히 이와 같이 하라고 경계한 것이다.

 

象曰 履錯之敬以辟()咎也.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이착지경(履錯之敬)’은 허물을 피하려고 해서이다.”

履錯然欲動而知敬愼不敢進所以求辟免過咎也居明而剛이라 故知而能辟하니 不剛明則妄動矣리라.

발자국이 교착하여 동하고자 하나 공경하고 삼갈 줄을 알아 감히 나아가지 않음은 과구(過咎)를 피하고 면하기를 구하는 것이다. 밝음에 거하고 강()이므로 알아서 피할 수 있는 것이니, 강명(剛明)하지 않다면 망동(妄動)할 것이다.

 

六二黃離元吉하니라.

육이(六二)는 황색(黃色)에 붙음이니, 크게 선()하고 길()하다.

本義元吉이리라.

본의크게 길하리라.

二居中得正하니 麗於中正也中之色이요 文之美也文明中正美之盛也故云黃離以文明中正之德으로 上同於文明中順之君하니 其明如是하고 所麗如是大善之吉也.

()는 중()에 거하고 정()을 얻었으니, 중정(中正)에 붙어 있는 것이다. ()은 중앙[()]의 색이고 문채(文采)가 아름다운 것이니, 문명(文明)하고 중정(中正)함은 아름다움이 성한 것이다. 그러므로 황리(黃離)’라 말하였다. 문명(文明)하고 중정(中正)한 덕()으로 위로 문명(文明)하고 중순(中順)한 군주(君主)와 함께 하니 그 밝음이 이와 같고, 붙은 바가 이와 같다면 대선(大善)의 길()함이다.

本義中色이니 柔麗乎中而得其正이라 故其象占如此하니라.

()은 중앙의 색이니, ()가 중()에 붙어 있고 정()을 얻었으므로 그 상()과 점()이 이와 같은 것이다.

 

象曰 黃離元吉得中道也.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황리원길(黃離元吉)’은 중도(中道)를 얻었기 때문이다.”

所以元吉者以其得中道也不云正者離以中爲重일새라 所以成文明由中也在其中矣.

크게 선()하고 길()한 까닭은 중도(中道)를 얻었기 때문이니, ()을 말하지 않은 것은 이()는 중()을 중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문명(文明)을 이룬 까닭은 중() 때문이니, ()은 그 가운데에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九三日昃之離不鼓缶而歌則大耋之嗟하리라.

구삼(九三)은 기운 해가 걸려 있음이니, 질장구를 두드려 노래하지 않으면 대질(大耋)[크게 기욺]을 서글퍼 함이다. 흉하리라.

八純卦 皆有二體之義하니 內外皆健이요 上下皆順이요 威震相繼上下順隨重險相習이요 二明繼照內外皆止彼己相說이로되 而離之義 在人事最大九三居下體之終하니 是前明將盡, 後明當繼之時人之始終이요 時之革易也故爲日昃之離日下昃之明也則將沒矣以理言之하면 盛必有衰하고 始必有終常道也達者順理爲樂이라 常用之器也鼓缶而歌樂其常也不能如是則以大耋爲嗟憂하니 乃爲凶也大耋傾沒也人之終盡達者則知其常理하여 樂天而已하여 遇常皆樂하니 如鼓缶而歌不達者則恐()[]有將盡之悲하니 乃大耋之嗟爲其凶也處死生之道也與昳同이라.

여덟 순괘(純卦)가 모두 두 체()의 뜻이 있으니, 건괘(乾卦)는 내외(內外)가 모두 굳셈이요, 곤괘(坤卦)는 상하(上下)가 모두 순함이요, 진괘(震卦)는 위엄과 진동이 서로 이음이요, 손괘(巽卦)는 상하(上下)가 순히 따름이요, 감괘(坎卦)는 중험(重險)이 서로 거듭함이요, 이괘(離卦)는 두 밝음이 계속하여 비춤이요, 간괘(艮卦)는 내외(內外)가 모두 멈춤이요, 태괘(兌卦)는 피기(彼己)가 서로 기뻐함인데, 이괘(離卦)의 뜻이 사람의 일에 있어서는 가장 크다. 구삼(九三)은 하체(下體)의 종()에 거하였으니, 이는 앞의 밝음이 장차 다하고 뒤의 밝음이 마땅히 계속하여야 할 때이니, 사람의 시종(始終)이요 때가 변역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운 해가 걸려 있음이 되니, 해가 아래로 기울 때의 밝음이니, 장차 지게 된다. 이치로 말하면 성하면 반드시 쇠함이 있고, 시작하면 반드시 종말(終末)이 있는 것이 떳떳한 도()이니, 이치를 통달한 이는 이치에 순종하여 즐거워한다. ()는 항상 쓰는 그릇이니, 질그릇을 두드리며 노래함은 그 떳떳함을 즐거워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하지 못하면 대질(大耋)을 서글퍼하고 근심할 것이니, 마침내 흉함이 되는 것이다. 대질(大耋)은 기울고 지는 것이다. 사람이 마칠 적에 이치를 통달한 이는 떳떳한 이치를 알아 천명(天命)을 즐거워할 뿐이어서 떳떳한 일을 만남에 모두 즐거워하니, 마치 질그릇을 두드리며 노래함과 같은 것이다. 이치를 통달하지 못한 이는 항상 장차 다하는 슬픔이 있을까 두려워하니, 이는 바로 대질(大耋)을 서글퍼하는 것으로 흉함이 되니, 이는 사생(死生)에 대처하는 방도이다. ()은 질()과 같다.

本義重離之間前明將盡이라 故有日昃之象이라 不安常以自樂이면 則不能自處而凶矣戒占者宜如是也.

중리(重離)의 사이는 앞의 밝음이 장차 다하려 하므로 해가 기우는 상()이 있는 것이다. 떳떳함을 편안히 여겨 스스로 즐거워하지 않으면 스스로 편안히 처하지 못하여 흉하니, 점치는 이에게 마땅히 이와 같이 하라고 경계한 것이다.

 

象曰 日昃之離 何可久也리오.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해가 기울어 걸려 있는 것이 어찌 오래갈 수 있겠는가.”

日旣傾昃하니 明能久乎明者知其然也故求人以繼其事하고 退處以休其身하여 安常處順하니 何足以爲凶也리오.

해가 이미 기울었으니, 밝음이 오래갈 수 있겠는가. 현명한 이는 이러한 이치를 안다. 그러므로 인물을 구하여 일을 계속하게 하고, 물러나 처하여 그 몸을 쉬어서 떳떳함을 편안히 여기고 순리에 처하니, 어찌 흉함이 되겠는가.

 

九四突如其來如焚如死如棄如니라.

구사(九四)는 급하게 오는지라 불타는 듯하니, 죽으며 버림을 받는다.

本義突如其來如焚如,

본의돌연(突然)히 오니, 불타며,

九四離下體而升上體하니 繼明之初故言繼承之義하니 在上而近君繼承之地也以陽居離體而處四하여 剛躁而不中正하고 且重剛이니 以不正而剛盛之勢突如而來非善繼者也夫善繼者必有巽讓之誠順承之道若舜啓然이어늘 今四突如其來하니 失善繼之道也又承六五陰柔之君하여 其剛盛陵()[]之勢氣焰如焚然이라 故云焚如四之所行不善如此하니 必被禍害故曰死如失繼紹之義, 承上之道皆逆德也衆所棄絶이라 故云棄如至於死棄禍之極矣故不假言凶也.

구사(九四)는 하체(下體)를 떠나 상체(上體)로 올라왔으니, 밝음을 계승하는 초기이다. 그러므로 계승하는 뜻을 말하였으니, 위에 있으면서 군주(君主)를 가까이 함은 계승하는 자리이다. ()으로 이체(離體)에 거하고 사()에 처하여, 강하고 조급하고 중정(中正)하지 못하며 또 거듭한 강()이니, 바르지 못하면서 강성(剛盛)한 세()로 돌연히 옴은 잘 계승하는 이가 아니다. 잘 계승하는 이는 반드시 공손하고 겸양하는 정성과 순히 받드는 도()가 있어야 하니, ()임금과 계()처럼 하여야 하는데 이제 사()가 돌연히 오니, 잘 계승하는 도리를 잃은 것이다. 또 육오(六五) 음유(陰柔)한 군주(君主)를 받들어 강성(剛盛)하여 능멸하는 형세가 기염이 불타는 듯하므로 분여(焚如)’라고 말하였다. ()의 행하는 바가 선()하지 못함이 이와 같으니, 반드시 화해(禍害)를 입을 것이므로 사여(死如)’라고 말하였고, 계승하는 의리와 윗사람을 받드는 도()를 잃은 것은 모두 패역(悖逆)의 덕()이니, 사람들이 버리고 끊는 바이므로 기여(棄如)’라고 말하였다. 죽고 버림받음에 이름은 화가 지극하다. 그러므로 흉함을 말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本義後明將繼之時而九四以剛迫之故其象如此하니라.

뒤의 밝음이 장차 계승하는 때인데 구사(九四)가 강()으로 핍박하기 때문에 그 상()이 이와 같은 것이다.

 

象曰 突如其來如无所容也니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돌여기래여(突如其來如)’는 용납할 곳이 없는 것이다.”

上陵其君하여 不順所承하니 人惡()衆棄하여 天下所不容也.

위로 군주(君主)를 능멸하여 계승함을 순히 하지 않으니, 사람들이 미워하고 무리들이 버려서 천하(天下)가 용납하지 않는 것이다.

本義无所容言焚死棄也.

용납할 곳이 없다는 것은 불타며 죽고 버림받음을 말한 것이다.

 

六五出涕沱若하며 戚嗟若이니 하리라.

육오(六五)는 줄줄 눈물을 흘리며 슬퍼함이니, ()하리라.

本義戚嗟若이면,

본의근심하고 두려워하면,

六五居尊位而守中하고 有文明之德하니 可謂善矣然以柔居上하고 在下无助하고 獨附麗於剛强之間하니 危懼之勢也唯其明也故能畏懼之深하여 至於出涕하고 憂慮之深하여 至於戚嗟하니 所以能保其吉也出涕戚嗟極言其憂懼之深耳時當然也居尊位而文明하고 知憂畏如此故得吉이라 若自恃其文明之德與所麗中正하고 泰然不懼[一作慮]則安能保其吉也리오.

육오(六五)는 존위(尊位)에 거하여 중()을 지키고 문명(文明)한 덕()이 있으니, ()하다고 이를 만하다. 그러나 유()로서 윗자리에 거하고 아래에 돕는 이가 없으며, 홀로 강강(剛强)의 사이에 붙어 있으니, 위태롭고 두려운 형세이다. 오직 밝기 때문에 두려워함이 깊어서 눈물을 흘림에 이르고, 우려함이 깊어서 슬퍼함에 이르니, 이 때문에 그 길()함을 보존하는 것이다. 눈물을 흘리고 슬퍼함은 근심하고 두려워함이 깊음을 극언(極言)한 것이니, 때가 당연한 것이다. 존위(尊位)에 거하여 문명(文明)하고, 근심하고 두려워할 줄을 앎이 이와 같기 때문에 길()함을 얻은 것이다. 만약 스스로 문명(文明)한 덕()과 붙어 있는 바가 중정(中正)함을 믿고서 태연히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그 길()함을 보존하겠는가.

本義以陰居尊하고 柔麗乎中이라 然不得其正하고 而迫於上下之陽이라 故憂懼如此然後得吉이니 戒占者宜如是也.

()으로서 존위(尊位)에 거하고 유()가 중()에 붙어 있다. 그러나 바름을 얻지 못하고 위아래의 양()에게 핍박당하므로 근심하고 두려워하기를 이와 같이 한 뒤에야 길()함을 얻는 것이니, 점치는 이에게 마땅히 이와 같이 하라고 경계한 것이다.

 

象曰 六五之吉離王公也일새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육오(六五)의 길()함은 왕공(王公)에게 붙어 있기 때문이다.”

六五之吉者所麗得王公之正位也일새라 據在上之勢而明察事理하여 畏懼憂虞以持之하니 所以能吉也不然이면 豈能安乎.

육오(六五)가 길()한 것은 붙어 있는 곳이 왕공(王公)의 바른 자리를 얻었기 때문이다. 위에 있는 형세를 점거하여 사리(事理)를 밝게 살펴서 두려워하고 근심하여 유지하니, 이 때문에 길()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어찌 편안하겠는가.

 

上九王用出征이면 有嘉,

상구(上九)는 왕()이 출정(出征)하면 아름다움이 있으리니,

九以陽居上하여 在離之終하니 剛明之極者也明則能照하고 剛則能斷이니 能照足以察邪惡이요 能斷이면 足以行威刑이라 故王者宜用如是剛明하여 以辨天下之邪惡而行其征伐이면 則有嘉美之功也征伐用刑之大者.

()가 양()으로 상()에 거하여 이()의 종()에 있으니, 강명(剛明)함이 지극한 것이다. 밝으면 비추고 강하면 결단할 수 있으니, 비추면 사악(邪惡)함을 살필 수 있고, 결단하면 위엄과 형벌을 행할 수 있다. 그러므로 왕자(王者)가 마땅히 이와 같은 강함과 밝음을 써서 천하(天下)의 사악(邪惡)함을 구별하여 정벌을 행한다면 아름다운 공이 있는 것이다. 정벌은 형벌을 씀이 큰 것이다.

 

折首하고 獲匪其醜无咎리라.

괴수(魁首)만 잡고 잡은 것이 일반 무리가 아니면 허물이 없으리라.

本義王用出征하여 有嘉折首獲匪其醜,

본의()이 출정하여 괴수(魁首)만 잡음을 가상히 여기고 잡은 것이 일반 무리가 아니니,

夫明極則无微不照斷極則无所寬宥不約之以中이면 則傷於嚴察矣去天下之惡若盡究其漸染詿誤則何可勝誅리오 所傷殘亦甚矣故但當折取其魁首所執獲者 非其醜類則无殘暴之咎也書曰 殲厥渠魁하고 脅從罔治라 하니라.

밝음이 지극하면 작은 것도 비추지 않음이 없고, 결단함이 지극하면 너그럽게 용서하는 바가 없으니, 중도(中道)로 요약하지 않으면 엄하고 살핌에 상한다. 천하(天下)의 악()을 제거할 적에 만약 물들어 그릇된 것을 끝까지 구명한다면 어찌 이루 다 벨 수 있겠는가. 상하고 해치는 바가 또한 심하다. 그러므로 다만 그 괴수(魁首)만을 꺾어 취할 것이요, 잡은 것이 일반 무리가 아니면 잔포(殘暴)한 허물이 없는 것이다. 서경(書經)》〈윤정(胤征)큰 괴수(魁首)를 섬멸하고, 위협에 따른 자들은 다스리지 말라.” 하였다.

本義剛明及遠하고 威震而刑不濫하니 无咎之道也故其象占如此하니라.

강명(剛明)함이 먼 곳에까지 미치고 위엄이 진동하되 형벌이 지나치지 않으니, 무구(无咎)한 도()이다. 그러므로 그 상()과 점()이 이와 같은 것이다.

 

象曰 王用出征以正邦也.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왕용출정(王用出征)’은 나라를 바로잡는 것이다.”

王者用此上九之德하여 明照而剛斷하여 以察除天下之惡所以正治其邦國이니 剛明居上之道也.

왕자(王者)가 이 상구(上九)의 덕()을 써서 밝게 비추고 강하게 결단하여 천하(天下)의 악()을 살펴 제거함은 나라를 바로잡아 다스리는 것이니, 강하고 밝음은 위에 거하는 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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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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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31. 함(咸) [1] 진우 2011-02-21 694
» 30. 이(離) [1] 진우 2011-02-21 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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