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대장(大壯)
【傳】 大壯은 序卦에 遯者는 退也니 物不可以終遯이라 故受之以大壯이라 하니라 遯爲違去之義요 壯爲進盛之義니 遯者는 陰長而陽遯也요 大壯은 陽之壯盛也라 衰則必盛하여 消息[一作長]相須라 故旣遯則必壯하니 大壯所以次遯也라 爲卦 震上乾下하니 乾剛而震動하여 以剛而動이 大壯之義也라 剛陽은 大也니 陽長已過中矣니 大者壯盛也요 又雷之威震而在天上하니 亦大壯之義也라.
대장괘(大壯卦)는 〈서괘전(序卦傳)〉에 “돈(遯)은 물러감이니, 사물은 끝내 물러갈 수가 없으므로 대장괘(大壯卦)로 받았다.” 하였다. 돈(遯)은 떠나가는 뜻이 되고 장(壯)은 나아가기를 성하게 하는 뜻이 되니, 돈(遯)은 음(陰)이 자라남에 양(陽)이 물러가는 것이요 대장(大壯)은 양(陽)이 장성(壯盛)한 것이다. 쇠하면 반드시 성하여 소식(消息)이 서로 기다리기 때문에 이미 물러가면 반드시 장성한 것이니, 대장괘(大壯卦)가 이 때문에 돈괘(遯卦)의 다음이 된 것이다. 괘(卦)됨이 진(震)이 위에 있고 건(乾)이 아래에 있으니, 건(乾)은 강(剛)하고 진(震)은 동하여 강(剛)으로써 동함이 대장(大壯)의 뜻이다. 강양(剛陽)은 큰 것이니, 양(陽)의 자람이 이미 중(中)을 지났으니 큰 것이 장성함이요, 또 우레의 위엄과 진동으로 하늘 위에 있으니 역시 대장(大壯)의 뜻이다.
大壯은 利貞하니라.
대장(大壯)은 정(貞)함이 이롭다.
【傳】 大壯之道는 利於貞正也라 大壯而不得其正이면 强猛之爲耳요 非君子之道壯盛也라.
대장(大壯)의 도(道)는 정정(貞正)함이 이롭다. 크게 장성하면서 그 바름을 얻지 못하면 강(强)하고 사나운 일을 할 뿐이요, 군자(君子)의 도(道)가 장성(壯盛)한 것은 아니다.
【本義】 大는 謂陽也니 四陽盛長이라 故爲大壯하니 二月之卦也라 陽壯則占者吉亨을 不假言이요 但利在正固而已라.
대(大)는 양(陽)을 이르니, 네 양(陽)이 성하게 자라기 때문에 대장(大壯)이라 하였으니, 이월(二月)의 괘(卦)이다. 양(陽)이 장성하면 점치는 이의 길(吉)하고 형통함을 굳이 말할 것이 없고, 다만 이로움이 정고(正固)함에 있을 뿐이다.
彖曰 大壯은 大者壯也니 剛以動이라 故로 壯하니,
〈단전(彖傳)〉에 말하였다. “대장(大壯)은 큰 것이 장성함이니, 강(剛)으로써 동하기 때문에 장성한 것이니
【傳】 所以名大壯者는 爲大者壯也라 陰爲小요 陽爲大하니 陽長以盛은 是大者壯也라 下剛而上動하니 以乾之至剛而動이라 故爲大壯이니 爲大者壯과 與壯之大也라.
대장(大壯)이라 이름한 까닭은 큰 것이 장성하기 때문이다. 음(陰)은 작은 것이 되고 양(陽)은 큰 것이 되니, 양(陽)이 장성하여 성함은 이는 큰 것이 장성한 것이다. 아래는 강(剛)하고 위는 동(動)하니, 건(乾)의 지극히 강함으로써 동하기 때문에 대장(大壯)이라 한 것이니, 큰 것이 장성함과 장성함이 큰 것이 된다.
【本義】 釋卦名義라 以卦體言則陽長過中하니 大者壯也요 以卦德言則乾剛震動하니 所以壯也라.
괘명(卦名)의 뜻을 해석하였다. 괘체(卦體)로 말하면 양(陽)의 자람이 중(中)을 지나니 큰 것이 장성한 것이요, 괘덕(卦德)으로 말하면 건(乾)은 강(剛)하고 진(震)은 동(動)하니 이 때문에 장성한 것이다.
大壯利貞은 大者正也니 正大而天地之情을 可見矣리라.
‘대장이정(大壯利貞)’은 큰 것이 바른 것이니, 바르고 큼에 천지(天地)의 정(情)을 볼 수 있다.”
【傳】 大者旣壯則利於貞正하니 正而大者는 道也라 極正大之理면 則天地之情을 可見矣라 天地之道 常久而不已者는 至大至正也니 正大之理를 學者默識心通이 可也라 不云大正而云正大는 恐疑爲一事也라.
큰 것이 이미 장성하면 정정(貞正)함이 이로우니, 바르고 큰 것은 도(道)이다. 바르고 큰 이치를 지극히 하면 천지(天地)의 정(情)을 볼 수 있다. 천지(天地)의 도(道)가 항상하고 오래하여 그치지 않음은 지극히 크고 지극히 바르기 때문이니, 바르고 큰 이치를 배우는 이가 묵묵히 알고 마음으로 통달하여야 한다. ‘대정(大正)’이라 말하지 않고 ‘정대(正大)’라 말한 것은 한 가지 일이라고 의심할까 저어해서이다.
【本義】 釋利貞之義而極言之라.
‘이정(利貞)’의 뜻을 해석하여 극언(極言)하였다.
象曰 雷在天上이 大壯이니 君子以하여 非禮弗履하나니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우레가 하늘 위에 있는 것이 대장(大壯)이니, 군자(君子)가 이로써 예(禮)가 아니면 행하지 않는다.”
【傳】 雷震於天上하니 大而壯也라 君子觀大壯之象하여 以行其壯하니 君子之大壯者는 莫若克己復禮라 古人云自勝之謂强이라 하고 中庸에 於和而不流와 中立而不倚에 皆曰强哉矯라 하니 赴湯火, 蹈白刃은 武夫之勇可能也어니와 至於克己復禮하여는 則非君子之大壯이면 不可能也라 故云君子以非禮弗履라 하니라.
우레가 하늘 위에서 진동하니, 크고 장성하다. 군자(君子)가 대장(大壯)의 상(象)을 관찰하여 그 장성함을 행하니, 군자(君子)가 크게 장성함은 극기복례(克己復禮)보다 더한 것이 없다. 옛사람이 이르기를 “스스로 이겨냄을 강하다 한다.” 하였고, 《중용(中庸)》에 화(和)하면서도 흐르지 않음과 중립(中立)하여 기울지 않음에 모두 “강하다. 꿋꿋함이여!” 하였으니, 끓는 물과 불에 달려들고 흰 칼날을 밟는 것은 무부(武夫)의 용맹으로 가능하나 극기복례(克己復禮)에 이르러서는 군자(君子)의 대장(大壯)이 아니면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군자(君子)가 이것을 보고서 예(禮)가 아니면 행하지 않는다’고 한 것이다.
【本義】 自勝者强이라.
스스로 이겨내는 이는 강하다.
初九는 壯于趾니 征하면 凶이 有孚리라.
초구(初九)는 발에 장성함이니, 가면 흉함이 틀림없으리라.
【傳】 初는 陽剛乾體而處下하여 壯于進者也니 在下而用壯은 壯于趾也라 趾는 在下而進動之物이라 九在下用壯而不得其中하니 夫以剛處壯은 雖居上이라도 猶不可行이온 況在下乎아 故征則其凶有孚라 孚는 信也니 謂以壯往則得凶可必也라.
초(初)는 양강(陽剛) 건체(乾體)로 아래에 처하여 나아가기를 장성하게 하는 것이니, 아래에 있으면서 장성함을 씀은 발에 장성한 것이다. 발은 아래에 있으면서 나아가 동하는 물건이다. 구(九)가 아래에 있으면서 장성함을 쓰고 그 중(中)을 얻지 못했으니, 강(剛)으로써 장(壯)에 처함은 비록 위에 있더라도 오히려 행할 수 없는데 하물며 아래에 있어서이겠는가. 그러므로 가면 흉함이 틀림없는 것이다. 부(孚)는 믿음이니, 장성함으로써 가면 흉함을 얻음이 틀림없음을 이른다.
【本義】 趾는 在下而進動之物也라 剛陽處下而當壯時하니 壯于進者也라 故有此象이요 居下而壯于進이면 其凶必矣라 故其占又如此하니라.
지(趾)는 아래에 있으면서 나아가 동하는 물건이다. 강양(剛陽)으로 아래에 처하여 장성할 때를 당하였으니, 나아가기를 장성하게 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이 상(象)이 있는 것이요, 아래에 있으면서 나아가기를 장성하게 하면 그 흉함이 틀림없다. 이 때문에 그 점(占)이 또 이와 같은 것이다.
象曰 壯于趾하니 其孚窮也로다.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발에 장성하니 그 궁함을 확신할 수 있다.”
【傳】 在最下而用壯以行이면 可必信其窮困而凶也라.
가장 낮은 자리에 있으면서 장성함을 써서 가면 반드시 그 곤궁하여 흉함을 확신할 수 있다.
【本義】 言必窮困이라.
반드시 곤궁함을 말한 것이다.
九二는 貞하여 吉하니라.
구이(九二)는 정(貞)하여 길(吉)하다.
【本義】 貞하여야 吉하리라.
【본의】 정(貞)하여야 길(吉)하리라.
【傳】 二雖以陽剛으로 當大壯之時나 然居柔而處中하니 是剛柔得中하여 不過於壯하여 得貞正而吉也라 或曰 貞은 非以九居二爲戒乎아 曰 易取所勝爲義하니 以陽剛健體로 當大壯之時하여 處得中道하니 无不正也요 在四則有不正之戒하니 人能識時義之輕重이면 則可以學易矣리라.
이(二)는 비록 양강(陽剛)으로 대장(大壯)의 때를 당했으나 유(柔)에 거하고 중(中)에 처했으니, 이는 강(剛)·유(柔)가 중도(中道)를 얻어 지나치게 장성하지 않아서 정정(貞正)함을 얻어 길(吉)한 것이다. 혹자가 말하기를 “정(貞)은 구(九)가 이(二)에 거한 것을 경계한 것이 아닌가?” 하기에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역(易)에서는 우세한 바를 취하여 뜻을 삼았으니, 양강(陽剛) 건체(健體)로 대장(大壯)의 때를 당하여 처함이 중도(中道)를 얻었으니 바르지 않음이 없으며, 사(四)에 있으면 바르지 않은 경계가 있으니 사람이 때와 의(義)의 경중(輕重)을 알면 역(易)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本義】 以陽居陰하여 已不得其正矣나 然所處得中하니 則猶可因以不失其正이라 故戒占者使因中以求正然後에 可以得吉也라.
양(陽)이 음위(陰位)에 거하여 이미 그 바름을 얻지 못하였으나 처한 바가 중(中)을 얻었으니, 오히려 인하여 그 바름을 잃지 않을 수 있다. 그러므로 점치는 이에게 중(中)으로 인하여 정(正)을 구한 뒤에야 길(吉)함을 얻을 수 있다고 경계한 것이다.
象曰 九二貞吉은 以中也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구이(九二)의 정길(貞吉)은 중도로써 하기 때문이다.”
【傳】 所以貞正而吉者는 以其得中道也라 中則不失正이니 況陽剛[一有壯字]而乾體乎아.
정정(貞正)하여 길한 까닭은 중도를 얻었기 때문이다. 중도에 맞으면 바름을 잃지 않으니, 하물며 양강(陽剛)으로 건체(乾體)임에 있어서랴.
九三은 小人은 用壯이요 君子는 用罔이니 貞이면 厲하니 羝羊이 觸藩하여 羸其角이로다 .
구삼(九三)은 소인(小人)은 용맹을 쓰는 것이요 군자(君子)는 멸시함을 쓰는 것이니, 정(貞)하면 위태로우니, 숫양이 울타리를 받아 그 뿔이 곤궁하다.
【本義】 貞이라도,
【본의】 바르더라도,
【傳】 九三은 以剛居陽而處壯하고 又當乾體之終하니 壯之極者也라 極壯如此하니 在小人則爲用壯이요 在君子則爲用罔이라 小人尙力이라 故用其壯勇이요 君子志剛이라 故用罔하니 罔은 无也니 猶云蔑也니 以其至剛하여 蔑視於事而无所忌憚也라 君子小人은 以地言이니 如君子有勇而无義爲亂이라 剛柔得中이면 則不折不屈하여 施於天下而无不宜요 苟剛之太過면 則无和順之德하여 多傷莫與하니 貞固守此則危道也라 凡物이 莫不用其壯하니 齒者齧하고 角者觸하고 蹄者踶라 羊壯於首하고 羝爲喜觸이라 故取爲象하니라 羊은 喜觸藩籬하니 以藩籬當其前也라 蓋所當必觸하니 喜用壯如此면 必羸困其角矣라 猶人尙剛壯하여 所當必用이면 必至摧困也라 三이 壯甚如此而不至凶은 何也오 曰 如三之爲는 其往이 足以致凶이로되 而方言其危라 故未及於凶也라 凡可以致凶而未至者는 則曰厲也라.
구삼(九三)은 강(剛)이 양위(陽位)에 거하고 장(壯)에 처했으며 또 건체(乾體)의 종(終)에 해당하니, 장성함이 지극한 것이다. 지극히 장성함이 이와 같으니, 소인(小人)에게 있어서는 용맹을 씀이 되고, 군자(君子)에게 있어서는 멸시함을 씀이 된다. 소인(小人)은 힘을 숭상하기 때문에 장용(壯勇)을 쓰는 것이요, 군자(君子)는 뜻이 강(剛)하기 때문에 멸시함을 쓰는 것이다. 망(罔)은 무시함이니, 멸시라는 말과 같으니, 지극히 강(剛)하여 일을 멸시해서 기탄(忌憚)하는 바가 없는 것이다. ‘군자(君子)와 소인(小人)은 지위로써 말한 것이니, ‘군자(君子)가 용맹만 있고 의(義)가 없으면 난(亂)을 일으킨다’는 것과 같다. 강(剛)·유(柔)가 중도를 얻으면 꺾이지 않고 굽히지 않아 천하에 베풂에 마땅하지 않음이 없고, 만일 강(剛)함이 너무 지나치면 화순(和順)한 덕(德)이 없어서 많이 상하여 상대하는 이가 없으니, 정고(貞固)히 이것을 지키면 위험한 길이다.
무릇 물건은 힘을 쓰지 않음이 없으니, 이가 있는 놈은 물고 뿔이 있는 놈은 떠받고 발굽이 있는 놈은 찬다. 양(羊)은 머리가 강하고 숫양은 떠받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취하여 상(象)을 삼은 것이다. 양(羊)은 울타리를 떠받기를 좋아하니, 울타리가 그 앞을 막고 있기 때문이다. 앞을 막는 것을 반드시 떠받으니, 힘을 쓰기를 좋아함이 이와 같으면 반드시 그 뿔이 곤궁(困窮)하게 된다. 마치 사람이 강(剛)함과 용맹을 숭상하여 당하는 곳마다 반드시 강장(剛壯)을 쓰면 반드시 꺾이고 곤궁함에 이르는 것과 같다. 삼(三)은 심히 장성함이 이와 같은데도 흉함에 이르지 않음은 어째서인가? 삼(三)과 같은 행위는 그 감이 흉함을 이룰 수 있으나 그 위태로움을 말했기 때문에 아직 흉함에는 미치지 않은 것이다. 무릇 흉함을 이룰 수 있으나 아직 이르지 않은 것은 ‘여(厲)’라고 말한다.
【本義】 過剛不中하여 當壯之時하니 是小人用壯而君子則用罔也라 罔은 无也니 視有如无니 君子之過於勇者也라 如此則雖正亦危矣라 羝羊은 剛壯喜觸之物이라 藩은 籬也요 羸는 困也니 貞厲之占이 其象如此하니라.
지나치게 강(剛)하고 중(中)하지 못하면서 장성할 때를 당하였으니, 이는 소인(小人)은 용맹을 쓰고 군자(君子)는 멸시함을 쓰는 것이다. 망(罔)은 무(无)이니, 있는 것을 보기를 없는 것같이 여기는 것이니, 군자(君子)로서 지나치게 용맹한 것이다. 이와 같으면 비록 바르더라도 역시 위태롭다. 숫양은 강(剛)하고 용맹하여 떠받기를 좋아하는 물건이다. 번(藩)은 울타리요 이(羸)은 곤궁함이니, ‘정려(貞厲)’의 점(占)이 그 상(象)이 이와 같다.
象曰 小人은 用壯이요 君子는 罔也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소인(小人)은 힘을 쓰고 군자(君子)는 멸시하는 것이다.”
【傳】 在小人則爲用其强壯之力이요 在君子則爲用罔이니 志氣剛强하여 蔑視於事하여 靡所顧憚也라.
소인(小人)에 있어서는 강장(强壯)의 힘을 쓰는 것이 되고 군자(君子)에 있어서는 멸시함을 쓰는 것이 되니, 뜻과 기운이 강강(剛强)하여 일을 멸시해서 돌아보고 두려워하는 바가 없는 것이다.
【本義】 小人은 以壯敗하고 君子는 以罔困이라.
소인(小人)은 힘으로 패하고 군자(君子)는 멸시로 곤궁하게 된다.
九四는 貞이면 吉하여 悔亡하리니 藩決不羸하며 壯于大輿之輹이로다.
구사(九四)는 정(貞)하면 길(吉)하여 뉘우침이 없어지리니, 울타리가 터져서 곤궁하지 않으며, 큰 수레의 바퀴살이 건장(健壯)하도다.
【傳】 四는 陽剛長盛하여 壯已過中하니 壯之甚也라 然居四하여 爲不正하니 方君子道長之時하여 豈可有不正也리오 故戒以貞則吉而悔亡이라 蓋方道長之時하여 小失則害亨進之勢하니 是有悔也라 若在他卦엔 重剛而居柔 未必不爲善也니 大過是也라 藩은 所以限隔也니 藩籬決開면 不復羸困其壯也라 高大之車는 輪輹强壯하니 其行之利를 可知라 故云壯于大輿之輹이니 輹은 輪之要處也라 車之敗는 常在折輹하니 輹壯則車强矣라 云壯于輹은 謂壯于進也니 輹은 與輻同이라.
사(四)는 양강(陽剛)이 자라나 성하여 장성함이 이미 중(中)을 지났으니, 장성함이 심한 것이다. 그러나 사(四)에 거하여 부정(不正)함이 되니, 군자(君子)의 도(道)가 자라날 때를 당하여 어찌 바르지 않음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정(貞)하면 길(吉)하여 뉘우침이 없어진다’고 경계한 것이다. 도(道)가 자라날 때를 당하여 조금 잘못하면 형통하여 나아가는 형세를 해치니, 이는 뉘우침이 있는 것이다. 만일 다른 괘(卦)에 있다면 중강(重剛)으로 유(柔)에 거함이 반드시 좋음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니, 대과(大過)가 이것이다. 울타리는 한격(限隔)하는 것이니, 울타리가 터져 열리면 다시는 그 건장(健壯)함을 곤궁하게 하지 않는다. 높고 큰 수레는 바퀴와 바퀴살이 강장(强壯)하니, 그 감의 편리함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큰 수레의 바퀴살이 건장하다고 말하였으니, 복(輹)은 바퀴의 중요한 부분이다. 수레가 부서짐은 항상 바퀴살이 꺾임에 있으니, 바퀴살이 건장하면 수레가 강하다. 바퀴살이 건장하다고 말한 것은 나아가기를 건장하게 하는 것이니, 복(輹)은 복(輻)과 같다.
【本義】 貞吉悔亡은 與咸九四同占이라 藩決不羸는 承上文而言也니 決은 開也라 三前有四하니 猶有藩焉이요 四前二陰은 則藩決矣라 壯于大輿之輹은 亦可進之象也니 以陽居陰하여 不極其剛이라 故其象占如此하니라.
‘정길회망(貞吉悔亡)’은 함괘(咸卦) 구사효(九四爻)의 점(占)과 같다. 울타리가 터져 곤궁하지 않다는 것은 상문(上文)을 이어 말한 것이니, 결(決)은 열림이다. 삼(三)의 앞에는 구사(九四)가 있으니 마치 울타리가 있는 것과 같고, 사(四)의 앞에 있는 두 음(陰)은 울타리가 열린 것이다. 큰 수레의 바퀴살이 건장함은 역시 나아갈 수 있는 상(象)이니, 양효(陽爻)가 음위(陰位)에 거하여 그 강(剛)함을 지극히 하지 않기 때문에 그 상(象)과 점(占)이 이와 같은 것이다.
象曰 藩決不羸는 尙往也일새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울타리가 열려 곤궁하지 않음은 아직도 가기 때문이다.”
【傳】 剛陽之長이 必至於極하니 四雖已盛이나 然其往未止也라 以至盛之陽으로 用壯而進이라 故莫有當之하여 藩決開而不羸困其力也라 尙往은 其進不已也라.
강양(剛陽)의 자라남이 반드시 극(極)에 이르니, 사(四)가 비록 이미 성(盛)하나 그 감이 멈추지 않는다. 지극히 성(盛)한 양(陽)으로 장성함을 써서 나아가기 때문에 막는 것이 없어, 울타리가 터지고 열려 그 힘을 곤궁하게 하지 않는 것이다. ‘상왕(尙往)’은 그 나아감이 그치지 않는 것이다.
六五는 喪羊于易(이)면 无悔리라.
육오(六五)는 양(羊)[강(剛)]을 화이(和易)함에 잃게 하면 뉘우침이 없으리라.
【本義】 喪羊于易나,
【본의】 양(羊)을 쉽게 잃으나,
【傳】 羊은 群行而喜觸하니 以象諸陽竝進이라 四陽이 方長而竝進하니 五以柔居上하여 若以力制면 則難勝而有悔요 唯和易以待之면 則群陽이 无所用其剛하니 是喪其壯于和易也니 如此則可以无悔라 五以位言則正이요 以德言則中이라 故能用和易之道하여 使群陽雖壯이나 无所用也라.
양(羊)은 떼지어 다니고 떠받기를 좋아하니, 여러 양(陽)이 함께 나옴을 상징한 것이다. 네 양(陽)이 막 자라나 함께 나오니, 오(五)가 유(柔)로 위에 거하여 만일 힘으로써 제재하려 하면 이기기 어려워 뉘우침이 있을 것이요, 오직 화이(和易)로써 대하면 여러 양(陽)이 그 강(剛)함을 쓸 곳이 없으니, 이는 그 장성함을 화이(和易)함에 잃는 것이니, 이와 같이 하면 뉘우침이 없을 수 있다. 오(五)는 지위로 말하면 정(正)이고 덕(德)으로 말하면 중(中)이다. 그러므로 화이(和易)의 도(道)를 써서 여러 양(陽)이 비록 장성하나 쓸 곳이 없게 한 것이다.
【本義】 卦體似兌하여 有羊象焉하니 外柔而內剛者也라 獨六五以柔居中하여 不能抵觸하여 雖失其壯이나 然亦无所悔矣라 故其象如此而占亦與咸九五同이라 易는 容易之易니 言忽然不覺其亡也라 或作疆埸之埸하니 亦通이라 漢食貨志에 埸作易하니라.
괘(卦)의 체(體)가 태(兌)와 같아 양(羊)의 상(象)이 있으니, 밖은 유순하고 안은 강(剛)한 이이다. 홀로 육오(六五)가 유(柔)로서 중(中)에 거하여 떠받들지 못해서 비록 강장(强壯)함을 잃었으나 역시 뉘우침이 없다. 그러므로 그 상(象)이 이와 같고 점(占) 역시 함괘(咸卦)의 구오효(九五爻)와 같다. 이(易)는 용이(容易)하다는 이자(易字)이니, 갑작스러워 그 없어짐을 깨닫지 못함을 말한 것이다. 혹은 국경의 역자(埸字)로 쓰기도 하니, 또한 통한다. 《한서(漢書)》〈식화지(食貨志)〉에 역(埸)을 역(易)으로 썼다.
象曰 喪羊于易는 位不當也일새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상양우이(喪羊于易)’는 자리가 마땅하지 않기 때문이다.”
【傳】 所以必用柔和者는 以陰柔居尊位故也라 若以陽剛中正으로 得[一作居]尊位則下无壯矣로되 以六五位不當也라 故設喪羊于易之義라 然大率治壯은 不可用剛이라 夫君臣上下之勢 不相侔也니 苟君之權이 足以制乎下면 則雖有强壯跋扈之人이나 不足謂之壯也요 必人君之勢有所不足然後에 謂之治壯이라 故治壯之道 不可以剛也라.
반드시 유화(柔和)를 쓰는 까닭은 음유(陰柔)가 존위(尊位)에 거했기 때문이다. 만일 양강중정(陽剛中正)으로 존위(尊位)를 얻었다면 아래에 강장(强壯)한 이가 없을 것이나, 육오(六五)의 자리가 마땅하지 않기 때문에 양(羊)을 화이(和易)함에 잃는 뜻을 베푼 것이다. 그러나 대체로 강장(强壯)을 다스림은 강(剛)을 써서는 안 된다. 군신(君臣)과 상하(上下)의 세(勢)가 서로 대등하지 못하니, 만일 군주(君主)의 권세(權勢)가 아랫사람을 제재할 만하다면 비록 강장(强壯)하고 발호(跋扈)하는 사람이 있더라도 강장(强壯)하다고 이를 수 없고, 반드시 인군(人君)의 세(勢)가 부족(不足)한 바가 있은 뒤에야 강장(强壯)을 다스린다고 이른다. 그러므로 강장(强壯)을 다스리는 도(道)는 강(剛)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上六은 羝羊이 觸藩하여 不能退하며 不能遂하여 无攸利하니 艱則吉하리라.
상육(上六)은 숫양이 울타리를 떠받아 물러가지도 못하고 나아가지도 못하여 이로운 바가 없으니, 어려우면 길(吉)하리라
【본의】 어렵게 여기면,
【傳】 羝羊은 但取其用[一无用字]壯이라 故陰爻亦稱之라 六은 以陰處震終而當壯極하니 其過可知니 如羝羊之觸藩籬하여 進則礙身하고 退則妨角하여 進退皆不可也라 才本陰柔라 故不能勝己以就義하니 是不能退也요 陰柔之人은 雖極用壯之心이나 然必不能終其壯하여 有摧必縮하니 是不能遂也라 其所爲如此하니 无所往而利也라 陰柔處壯하여 不能固其守하니 若遇艱困이면 必失其壯이니 失其壯則反得[一有其字]柔弱之分矣니 是艱則得吉也라 用壯則不利요 知艱而處柔則吉也니 居壯之終하여 有變之義也라.
숫양은 다만 강장(强壯)을 씀을 취하였다. 그러므로 음효(陰爻) 역시 칭한 것이다. 육(六)은 음(陰)으로 진(震)의 종(終)에 처하고 장(壯)의 극(極)에 당하였으니, 그 지나침을 알 수 있으니, 숫양이 울타리를 떠받고 나아가면 몸이 막히고 물러가면 뿔이 방해되어 진퇴(進退)가 모두 불가능한 것과 같다. 재질이 본래 음유(陰柔)이기 때문에 자신을 이겨 의리에 나아가지 못하니 이는 물러가지 못하는 것이요, 음유(陰柔)의 사람은 비록 강장(强壯)을 쓰려는 마음은 지극하나 반드시 강장(强壯)함을 끝까지 마치지 못하여 꺾임이 있으면 반드시 위축되니 이는 나아가지 못하는 것이다. 그 하는 바가 이와 같으니, 가는 곳마다 이로움이 없는 것이다. 음유(陰柔)가 강장(强壯)에 처하여 그 지킴을 굳게 하지 못하니, 만일 어려움과 곤궁함을 만나면 반드시 그 강장(强壯)함을 잃을 것이다. 강장(强壯)함을 잃으면 도리어 유약한 분수에 맞으니, 이는 어려우면 길함을 얻는 것이다. 강장(强壯)을 쓰면 불리(不利)하고 어려움을 알아 유(柔)에 처하면 길(吉)하니, 장(壯)의 종(終)에 거하여 변하는 뜻이 있다.
【本義】 壯終動極이라 故觸藩而不能退라 然其質本柔라 故又不能遂其進也라 其象如此하니 其占可知나 然猶幸其不剛이라 故能艱以處則尙可以得吉也라.
장(壯)의 종(終)이고 동(動)의 극(極)이기 때문에 울타리를 떠받고 물러가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재질(才質)이 본래 음유(陰柔)이기 때문에 또 그 나아감을 이루지 못하는 것이다. 그 상(象)이 이와 같으니 그 점(占)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오히려 다행히 강(剛)하지 않기 때문에 능히 어렵게 여겨 처하면 오히려 길함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象曰 不能退, 不能遂는 不詳也요 艱則吉은 咎不長也일새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물러가지 못하고 나아가지 못함은 살피지 않았기 때문이요, 어려우면 길함은 허물이 커지지 않기 때문이다.”
【傳】 非其處而處라 故進退不能이니 是其自處之不詳愼也라 艱則吉은 柔遇艱難하고 又居壯終하니 自當變矣라 變則得其分하여 過咎不長하리니 乃吉也라.
처할 곳이 아닌데 처했기 때문에 진(進)·퇴(退)가 불가능한 것이니, 이는 자처(自處)하기를 자세히 하고 삼가지 못한 것이다. 어려우면 길(吉)하다는 것은 유(柔)가 어려움을 만나고 또 장(壯)의 종(終)에 처하였으니, 스스로 마땅히 변하여야 한다. 변하면 그 분수에 맞아 허물이 커지지 않을 것이니, 이것이 바로 길한 것이다.

34. 대장(大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