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돈(遯)
【傳】 遯은 序卦에 恒者는 久也니 物不可以久居其所라 故受之以遯하니 遯者는 退也라 하니라 夫久則有去는 相須之理也니 遯所以繼恒也라 遯은 退也요 避也니 去之之謂也라 爲卦 天下有山하니 天은 在上之物이요 陽性上進이며 山은 高起之物이요 形雖高起나 體乃止物이라 有上陵之象而止不進하고 天乃上進而去之하여 下陵而上去하니 是相違遯이라 故爲遯去之義라 二陰生於下하여 陰長將盛하고 陽消而退하니 小人漸盛에 君子退而避之[一作避而去之]라 故爲遯也라.
돈괘(遯卦)는 〈서괘전(序卦傳)〉에 “항(恒)은 오래함이니, 사물은 오랫동안 한 곳에 머물 수 없으므로 돈괘(遯卦)로 받았으니, 돈(遯)은 물러감이다.” 하였다. 오래되면 떠나감이 있음은 서로 기다리는 이치이니, 돈괘(遯卦)가 이 때문에 항괘(恒卦)를 이은 것이다. 돈(遯)은 물러감이요 피함이니, 떠나감을 이른다. 괘(卦)됨이 하늘 아래에 산(山)이 있으니, 하늘은 위에 있는 사물이고 양(陽)의 성질은 위로 나아가며, 산(山)은 높이 일어난 사물이고 형체가 비록 높이 일어났으나 체(體)는 멈추는 사물이다. 위로 능멸(陵蔑)하는 상(象)이 있고 멈추어 나가지 않으며 하늘은 위로 나아가 떠나가서, 아래는 능멸하고 위는 떠나가니, 이는 서로 떠나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돈거(遯去)의 뜻이 된 것이다. 두 음(陰)이 아래에서 생겨나 음(陰)은 자라나 장차 성하고 양(陽)은 사라져 물러가니, 소인(小人)이 점점 성함에 군자(君子)가 물러가 피한다. 그러므로 돈(遯)이라 한 것이다.
遯은 亨하니 小利貞하니라.
돈(遯)은 형통하니, 조금 바로잡음이 이롭다.
【本義】 小는 利貞하니라.
【본의】 소인(小人)은 정(貞)함이 이롭다.
【傳】 遯者는 陰長陽消하니 君子遯藏之時也라 君子退藏하여 以伸其道하니 道不屈則爲亨이라 故遯所以有亨也라 在事에 亦有由遯避而亨者라 雖小人道長之時에 君子知幾退避 固善也나 然事有不齊하여 與時消息하니 无必同也라 陰柔方長而未至於甚盛하여 君子尙有遲遲致力之道하니 不可大貞而尙利小貞也라.
돈(遯)은 음(陰)이 자라나고 양(陽)이 사라지니, 군자(君子)가 은둔하여 숨을 때이다. 군자(君子)가 물러가 숨어서 그 도(道)를 펴니, 도(道)가 굽혀지지 않으면 형통함이 된다. 그러므로 돈(遯)에 형통함이 있는 것이다. 일에 있어서도 역시 은둔하고 피함으로 말미암아 형통하는 경우가 있다. 비록 소인(小人)의 도(道)가 자라날 때에 군자(君子)가 기미를 알아 물러가 피함이 진실로 좋은 일이나 일이 똑같지 아니하여 때에 따라 소식(消息)하여야 하니, 반드시 같지는 않다. 음유(陰柔)가 막 자라나나 아직 매우 성함에는 이르지 아니하여 군자(君子)가 오히려 지지(遲遲)하게 머물러 힘을 다할 방도가 있으니, 크게 바로잡을 수는 없으나 오히려 조금 바로잡음이 이롭다.
【本義】 遯은 退避也라 爲卦二陰浸長하니 陽當退避라 故爲遯하니 六月之卦也라 陽雖當遯이나 然九五當位而下有六二之應하여 若猶可以有爲로되 但二陰이 浸長於下면 則其勢不可以不遯이라 故其占爲君子能遯則身雖退而道亨이요 小人則利於守正이니 不可以浸長之故而遂侵迫於陽也라 小는 謂陰柔小人也라 此卦之占은 與否之初二兩爻로 相類라.
돈(遯)은 물러가 피함이다. 괘(卦)됨이 두 음(陰)이 점점 자라니, 양(陽)이 마땅히 물러가 피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돈(遯)이라 하였으니, 유월(六月)의 괘(卦)이다. 양(陽)이 비록 물러가야 하나 구오(九五)가 존위(尊位)를 당하였고 아래에 육이(六二)의 응(應)이 있어서 마치 오히려 일을 할 수 있을 듯하다. 다만 두 음(陰)이 아래에서 점점 자라나면 그 형세가 물러가지 않을 수 없으므로 그 점(占)이 군자(君子)가 능히 은둔하면 몸은 비록 물러가나 도(道)는 형통하고, 소인(小人)은 정도(正道)를 지킴이 이로움이 되니 점점 자라난다고 하여 마침내 양(陽)을 침해하고 핍박해서는 안 된다. 소(小)는 음유(陰柔)의 소인(小人)을 이른다. 이 괘(卦)의 점(占)은 비괘(否卦)의 초효(初爻)·이효(二爻) 두 효(爻)와 서로 유사하다.
彖曰 遯亨은 遯而亨也나,
〈단전(彖傳)〉에 말하였다. ‘돈형(遯亨)’은 은둔하여 형통하나,
【本義】 遯而亨也니,
【본의】 은둔하여 형통함이니,
【傳】 小人道長之時에 君子遯退는 乃其道之亨也니 君子遯藏은 所以伸道也라 此는 言處遯之道요 自剛當位而應以下는 則論時與卦才하니 尙有可爲之理也라.
소인(小人)의 도(道)가 자라날 때에 군자(君子)가 은둔하여 물러감은 바로 그 도(道)가 형통한 것이니, 군자(君子)가 은둔하여 숨음은 도(道)를 펴는 것이다. 이는 돈(遯)에 대처하는 도리를 말한 것이요, ‘강당위이응(剛當位而應)’으로부터 그 이하(以下)는 때와 괘(卦)의 재질을 논하였으니, 오히려 할 수 있는 이치가 있는 것이다.
剛當位而應이라 與時行也니라.
강(剛)이 존위(尊位)를 당하여 응하므로 때에 따라 행한다.
【本義】 與時行也요,
【본의】 때에 따라 행함이요,
【傳】 雖遯之時라도 君子處之면 未有必遯之義라 五以剛陽之德으로 處中正之位하고 又下與六二로 以中正相應하니 雖陰長之時라도 如卦之才면 尙當隨時消息이니 苟可以致其力이면 无不至誠自盡하여 以扶持其道요 未必於遯[一作退]藏而不爲라 故曰與時行也라 하니라.
비록 돈(遯)의 때라도 군자(君子)가 이에 처하면 반드시 은둔하는 의(義)가 있는 것은 아니다. 오(五)가 강양(剛陽)의 덕(德)으로 중정(中正)의 자리에 처하고 또 아래에 육이(六二)와 중정(中正)으로 서로 응하니, 비록 음(陰)이 자라날 때라도 괘(卦)의 재질과 같다면 오히려 때에 따라 소식(消息)하여야 한다. 만일 그 힘을 다할 수 있다면 지성(至誠)으로 스스로 극진하지 않음이 없게 하여 그 도(道)를 부지(扶持)할 것이요 반드시 은둔하고 숨어서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때에 따라 행한다’고 말한 것이다.
【本義】 以九五一爻로 釋亨義라.
구오(九五)의 한 효(爻)로 형(亨)의 뜻을 해석하였다.
小利貞은 浸而長也일새니,
‘소이정(小利貞)’은 음(陰)이 점점 자라기 때문이니,
【本義】 以下二陰으로 釋小利貞이라.
아래의 두 음(陰)으로써 ‘소이정(小利貞)’을 해석하였다.
遯之時義 大矣哉라.
돈(遯)의 때와 의(義)가 크다.
【傳】 當陰長之時하여 不可大貞而尙小利貞者는 蓋陰長이 必以浸漸이요 未能遽盛하여 君子尙可小貞其道니 所謂小利貞은 扶持하여 使未遂亡也라 遯者는 陰之始長이니 君子는 知微라 故當深戒나 而聖人之意는 未便[一作使]遽已也라 故有與時行小利貞之敎라 聖賢之於天下에 雖知道之將廢나 豈肯坐視其亂而不救리오 必區區致力於未極之間하여 强此之衰하고 艱彼之進하여 圖其暫安하여 苟得爲之면 孔孟之所屑爲也니 王允謝安之於漢晉이 是也라 若有可變之道, 可亨之理면 更(갱)不假言也니 此는 處遯時之道也라 故로 聖人이 贊其時義大矣哉하시니 或久, 或速이 其義皆大也라.
음(陰)이 자라날 때를 당하여 크게 바로잡을 수는 없으나 오히려 조금 바로잡음이 이로운 것은, 음(陰)의 자람이 반드시 점점하고 대번에 성하지는 못하여 군자(君子)가 오히려 그 도(道)를 조금 바로잡을 수 있으니, 이른바 ‘소이정(小利貞)’은 도(道)를 부지하여 마침내 망하지 않게 하는 것이다. 돈(遯)은 음(陰)이 처음 자라는 것이니, 군자(君子)는 기미를 알기 때문에 마땅히 깊이 경계하였으나 성인(聖人)의 뜻은 대번에 그만두지 않으므로 때에 따라 행하고 조금 바로잡음이 이롭다는 가르침이 있는 것이다. 성현(聖賢)이 천하에 대하여 비록 도(道)가 장차 폐해질 줄을 알지만, 어찌 그 혼란함을 그대로 앉아서 보기만 하고 구원하지 않겠는가. 반드시 구구하게 아직 지극하지 않을 때에 힘을 다하여 이것의 쇠함을 강하게 하고 저것의 나옴을 어렵게 하여 잠시의 편안함을 도모한다. 그리하여 만일 할 수 있으면 공자(孔子)와 맹자(孟子)께서 기꺼이 하신 것이니, 왕윤(王允)과 사안(謝安)이 한(漢)나라와 진(晉)나라에 있어서가 이것이다. 만일 변할 수 있는 방도와 형통할 수 있는 이치가 있다면 다시 말할 필요가 없으니, 이는 돈(遯)의 때에 대처하는 도(道)이다. 그러므로 성인(聖人)이 때와 의(義)가 크다고 칭찬하신 것이니, 혹 오래 머물거나 혹 속히 떠나감이 그 의(義)가 모두 큰 것이다.
【本義】 陰方浸長하여 處之爲難이라 故其時義爲尤大也라.
음(陰)이 막 점점 자라서 처하기가 어렵다. 그러므로 그 때와 의(義)가 더욱 큰 것이다.
象曰 天下有山이 遯이니 君子以하여 遠小人호되 不惡而嚴하나니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하늘 아래에 산(山)이 있는 것이 돈(遯)이니, 군자(君子)가 이로써 소인(小人)을 멀리하되 나쁜 말로 대하지 않고 위엄(威嚴)이 있게 한다.”
【傳】 天下有山하니 山下[一作上]起而乃止하고 天上進而相違하니 是遯避之象也라 君子觀其象하여 以避遠乎小人하나니 遠小人之道는 若以惡聲厲色이면 適足以致其怨忿이니 唯在乎矜莊威嚴하여 使知敬畏면 則自然遠矣리라.
하늘 아래에 산(山)이 있으니 산(山)은 아래에서 일어나 멈추고 하늘은 위로 나아가 서로 어긋나니, 이는 돈피(遯避)의 상(象)이다. 군자(君子)가 이 상(象)을 관찰하여 소인(小人)을 피하고 멀리하니, 소인(小人)을 멀리하는 도(道)는 만약 나쁜 말과 사나운 빛으로 대하면 다만 원망과 분노를 이룰 뿐이다. 오직 긍장(矜莊)하고 위엄(威嚴)이 있어서 공경하고 두려워할 줄을 알게 하면 자연히 멀어질 것이다.
【本義】 天體无窮하고 山高有限하니 遯之象也라 嚴者는 君子自守之常而小人自不能近이라.
하늘의 체(體)는 무궁(無窮)하고 산의 높음은 유한(有限)하니, 돈(遯)의 상(象)이다. 엄(嚴)은 군자(君子)가 스스로 지키는 떳떳한 도리인데 소인(小人)이 저절로 가까이 하지 못한다.
初六은 遯尾라 厲하니 勿用有攸往이니라.
초육(初六)은 돈(遯)의 꼬리라 위태로우니, 가는 바를 두지 말아야 한다.
【傳】 他卦는 以下爲初로되 遯者는 往遯也니 在前者先進이라 故初乃爲尾니 尾는 在後之物也라 遯而在後면 不及者也니 是以危也라 初以柔處微하여 旣已後矣면 不可往也니 往則危矣라 微者는 易於晦藏하니 往旣有危면 不若不往之无災也라.
다른 괘(卦)는 아래를 시초(始初)로 삼으나 돈(遯)은 가서 은둔함이니, 앞에 있는 것이 먼저 나아가기 때문에 초(初)가 바로 꼬리가 되니, 꼬리는 뒤에 있는 물건이다. 은둔하면서 뒤에 있으면 미치지 못하는 것이니, 이 때문에 위태로운 것이다. 초(初)가 유(柔)로서 미약(微弱)함에 처하여 이미 뒤쳐졌다면 갈 수가 없는 것이니, 가면 위태롭다. 미약한 것은 숨어 감추기가 쉬우니, 감에 이미 위태로움이 있다면 가지 않음이 재앙이 없는 것만 못하다.
【本義】 遯而在後는 尾之象이니 危之道也라 占者不可以有所往이요 但晦處靜俟하여 可免災耳라.
은둔하면서 뒤에 있음은 꼬리의 상(象)이니, 위험한 길이다. 점치는 이는 가는 바를 두어서는 안 되고 다만 숨어 처하고 고요히 기다려 재앙을 면할 뿐이다.
象曰 遯尾之厲는 不往이면 何災也리오.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돈미(遯尾)의 위태로움은 가지 않으면 무슨 재앙이 있겠는가.”
【傳】 見幾先遯이면 固爲善也어늘 遯而爲尾는 危之道也라 往旣有危면 不若不往而晦藏하여 可免於災니 處微故也라 古人處微下하여 隱亂世而不去者多矣니라.
기미를 보고 먼저 은둔하면 진실로 좋은데 은둔하면서 꼬리가 됨은 위험한 길이다. 감에 이미 위험이 있으면 가지 않고 숨어 감추는 것만 못하여 재앙을 면할 수 있으니 미약함에 처했기 때문이다. 고인(古人)이 미천하고 낮은 지위에 처하여 난세(亂世)에 은둔하여 떠나가지 않은 이가 많았다.
六二는 執之用黃牛之革이라 莫之勝說이니라.
육이(六二)는 황소 가죽으로써 잡아매니 견고함을 이루 말할 수 없다.
【本義】 莫之勝說(脫)이니라.
【본의】 벗길 수 없다.
【傳】 二與五爲正應하니 雖在相違遯之時나 二以中正으로 順應於五하고 五以中正으로 親合於二하여 其交自固라 黃은 中色이요 牛는 順物이요 革은 堅固之物이라 二五以中正順道로 相與하니 其固如執係之以牛革也라 莫之勝說은 謂其交之固하여 不可勝言也라 在遯之時라 故極言之하니라.
이(二)는 오(五)와 정응(正應)이 되니, 비록 서로 떠나 은둔하는 때에 있으나 이(二)가 중정(中正)으로 오(五)에 순히 응하고 오(五)가 중정(中正)으로 이(二)에 친히 합하여 그 사귐이 저절로 견고하다. 황(黃)은 중앙의 색이요 소는 순한 물건이요 가죽은 견고한 물건이다. 이(二)와 오(五)가 중정(中正)하고 순한 도리로 서로 더부니, 그 견고함이 마치 소가죽으로 잡아맨 것과 같다. ‘막지승설(莫之勝說)’은 그 사귐이 견고하여 이루 말할 수 없음을 이른 것이다. 돈(遯)의 때에 있기 때문에 극언(極言)한 것이다.
【本義】 以中順自守하여 人莫能解必遯之志也라 占者固守를 亦當如是니라.
중정(中正)하고 순(順)함으로 스스로 지켜서 사람들이 반드시 은둔하려는 뜻을 풀지 못한다. 점치는 이가 굳게 지키기를 마땅히 이와 같이 하여야 한다.
象曰 執用黃牛는 固志也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황소 가죽으로써 잡아맴은 뜻이 견고한 것이다.”
【傳】 上下以中順之道相固結하여 其心志甚[一作其]堅하니 如執之以牛革也라.
위와 아래가 중정(中正)하고 순(順)한 도(道)로 서로 굳게 맺어서 그 마음과 뜻이 매우 견고하니, 소가죽으로써 잡아맨 것과 같다.
九三은 係遯이라 有疾하여 厲하니 畜(휵)臣妾에는 吉하니라.
구삼(九三)은 매어 있는 은둔이다. 병이 있어 위태로우니, 신첩(臣妾)을 기름에는 길(吉)하다.
【傳】 陽志說陰하니 三與二切比하여 係乎二者也라 遯은 貴速而遠이니 有所係累면 則安能速且遠也리오 害於遯矣라 故爲有疾也요 遯而不速이라 是以危也라 臣妾은 小人女子이니 懷恩而不知義하여 親愛之則忠其上하나니 係戀之私恩은 懷小人女子之道也라 故以畜養臣妾이면 則得其心爲吉也라 然君子之待小人은 亦不如是也라 三與二非正應이어늘 以暱比相親이면 非待君子之道라 若以正則雖係나 不得爲有疾이니 蜀先主之不忍棄士民이 是也니 雖危나 爲无咎矣라.
양(陽)의 뜻은 음(陰)을 좋아하니, 삼(三)은 이(二)와 매우 가까워 이(二)에 매어 있는 것이다. 돈(遯)은 속히 하고 멀리함을 귀히 여기니, 매인 바가 있으면 어찌 속히 하고 또 멀리하겠는가. 은둔에 해가 되기 때문에 병이 있는 것이요, 은둔하면서 속히 하지 않기 때문에 위태로운 것이다. 신첩(臣妾)은 소인(小人)과 여자이니, 은혜를 그리워하고 의(義)를 알지 못하여 친애(親愛)하면 윗사람에게 충성하니, 사사로운 은혜로 얽어매어 사랑함은 소인(小人)과 여자를 감싸주는 도(道)이다. 그러므로 이것으로써 신첩(臣妾)을 기르면 그 마음을 얻어 길(吉)함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군자(君子)가 소인(小人)을 대함은 또한 이와 같이 하지 않는다. 삼(三)은 이(二)와 정응(正應)이 아닌데 가까이 있다 하여 서로 친하면 군자(君子)를 대하는 도(道)가 아니다. 만일 정도(正道)로써 하면 비록 매어 있더라도 병이 있음이 되지 않으니, 촉한(蜀漢)의 선주(先主)가 차마 선비와 백성을 버리지 못한 것이 이것이니, 비록 위태롭더라도 허물이 없음이 된다.
【本義】 下比二陰하여 當遯而有所係之象이니 有疾而危之道也라 然以畜臣妾則吉이라 蓋君子之於小人에 惟臣妾則不必其賢而可畜耳라 故其占如此하니라.
아래로 두 음(陰)을 가까이 하여 마땅히 은둔하여야 하는데 매인 바가 있는 상(象)이니, 병이 있어 위험한 도(道)이다. 그러나 이것으로 신첩(臣妾)을 기르면 길(吉)하다. 군자(君子)가 소인(小人)에 대해서 오직 신첩(臣妾)은 굳이 어진 이여야만 기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그 점(占)이 이와 같은 것이다.
象曰 係遯之厲는 有疾하여 憊也요 畜臣妾吉은 不可大事也니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계돈(係遯)이 위태로움은 병이 있어 곤(困)함이요, 신첩(臣妾)을 기름이 길(吉)함은 큰 일은 할 수 없는 것이다.”
【傳】 遯而有係累면 必以困憊致危하리니 其有疾은 乃憊也니 蓋力亦不足矣라 以此暱愛之心으로 畜養臣妾則吉이어니와 豈可以當大事乎아.
은둔하면서 매임이 있으면 반드시 곤(困)하여 위태로움을 이룰 것이니, 병이 있음이 바로 곤함이니, 힘도 부족하다. 이처럼 친압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신첩(臣妾)을 기르면 길(吉)하나, 어찌 큰 일에 마땅하겠는가.
九四는 好遯이니 君子는 吉하고 小人은 否(비)하니라.
구사(九四)는 좋아하면서도 은둔함이니, 군자(君子)는 길(吉)하고 소인(小人)은 나쁘다.
【本義】 否(비)하리라.
【본의】 그렇지 못하리라.
【傳】 四與初爲正應하니 是所好愛者也라 君子雖有所好愛나 義苟當遯이면 則去而不疑하니 所謂克己復禮, 以道制欲이니 是以吉也라 小人則不能以義處하여 暱於所好하고 牽於所私하여 至於陷辱其身而不能已라 故在小人則否也니 否는 不善也라 四는 乾體이니 能剛斷者로되 聖人以其處陰而有係라 故設小人之戒하시니 恐其失於正也라.
사(四)는 초(初)와 정응(正應)이 되니, 이는 좋아하고 사랑하는 바이다. 군자(君子)는 비록 좋아하고 사랑하는 바가 있으나 의리(義理)에 진실로 떠나가야 하면 떠나가고 의심하지 않으니, 이른바 ‘사욕(私慾)을 이겨 예(禮)로 돌아감’과 ‘도(道)로써 욕심을 제재한다’는 것이니, 이 때문에 길(吉)한 것이다. 소인(小人)은 의(義)로써 대처하지 못하여 좋아하는 바에 빠지고 사사로운 바에 끌려서 그 몸을 빠뜨리고 욕되게 함에 이르러도 그치지 않는다. 그러므로 소인(小人)에 있어서는 나쁜 것이니, 비(否)는 불선(不善)이다. 사(四)는 건(乾)의 체(體)이니, 강(剛)하고 결단할 수 있는 이이나, 음위(陰位)에 처하고 매임이 있기 때문에 성인(聖人)이 소인(小人)의 경계를 두신 것이니, 정(正)을 잃을까 저어한 것이다.
【本義】 下應初六而乾體剛健하니 有所好而能絶之以遯之象也라 惟自克之君子能之요 而小人不能이라 故로 占者君子則吉而小人否也라.
아래로 초육(初六)과 응하나 건(乾)의 체(體)로 강건(剛健)하니, 좋아하는 바가 있으면서도 능히 끊고서 은둔하는 상(象)이다. 오직 스스로 이기는 군자(君子)만이 이에 능하고 소인(小人)은 능하지 못하다. 이 때문에 점치는 이가 군자(君子)이면 길(吉)하고 소인(小人)은 그렇지 못한 것이다.
象曰 君子는 好遯하고 小人은 否也니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 “군자(君子)는 좋아하면서도 은둔하고 소인(小人)은 나쁘다.”
【傳】 君子는 雖有好而能遯하여 不失於義요 小人則不能勝其私意而至於不善也라.
군자(君子)는 비록 좋아함이 있으나 능히 은둔하여 의(義)를 잃지 않고, 소인(小人)은 사사로운 뜻을 이기지 못하여 불선(不善)함에 이른다.
九五는 嘉遯이니 貞하여 吉하니라.
구오(九五)는 아름다운 은둔이니, 정(貞)하여 길(吉)하다.
【本義】 貞하면 吉하리라.
【본의】정(貞)하면 길(吉)하리라.
【傳】 九五는 中正이니 遯之嘉美者也라 處得中正之道하여 時止時行이 乃所謂嘉美也라 故爲貞正而吉이라 九五非无係應이나 然與二皆以中正自處하니 是其心志及乎動止 莫非中正而无私係之失하니 所以爲嘉也라 在彖則槪言遯時라 故云與時行小利貞이라 하니 尙有濟遯之意요 於爻에 至五면 遯將極矣라 故唯以中正處遯言之라 遯[一无遯字]은 非人君之事라 故不主君位言이라 然人君之所避遠은 乃遯也니 亦在中正而已라.
구오(九五)는 중정(中正)이니, 은둔하기를 아름답게 한 이이다. 처함이 중정(中正)의 도(道)를 얻어서 때에 맞게 멈추고 행함이 이른바 아름다움이란 것이다. 그러므로 정정(貞正)하여 길(吉)함이 된다. 구오(九五)는 매이고 응한 바가 없는 것은 아니나 이(二)와 더불어 모두 중정(中正)으로 자처하니, 이는 마음과 뜻이 움직이고 멈춤에 미쳐서 중정(中正)이 아님이 없어서 사사로이 매이는 잘못이 없으니, 이 때문에 아름다움이 된 것이다. 〈단전(彖傳)〉에 있어서는 돈(遯)의 때를 개략적으로 말했기 때문에 ‘때에 따라 행하고 조금 정(貞)함이 이롭다’고 말하였으니, 오히려 은둔을 구제할 뜻이 있는 것이요, 효(爻)에서는 오(五)에 이르면 은둔할 시기가 장차 극(極)에 이르렀으므로 오직 중정(中正)한 도리로 은둔함에 처함을 가지고 말한 것이다. 돈(遯)은 인군(人君)의 일이 아니기 때문에 군위(君位)를 주장하여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인군(人君)이 피하여 멀리하는 것은 바로 은둔함이니, 역시 중정(中正)에 있을 뿐이다.
【本義】 剛陽中正으로 下應六二하니 亦柔順而中正하여 遯之嘉美者也라 占者如是而正則吉矣리라.
강양(剛陽) 중정(中正)으로 아래 육이(六二)와 응하니, 육이(六二) 또한 유순하고 중정(中正)하여 은둔하기를 아름답게 하는 것이다. 점치는 이가 이와 같이 하여 바르면 길(吉)하리라.
象曰 嘉遯貞吉은 以正志也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가돈정길(嘉遯貞吉)’은 뜻을 바르게 하기 때문이다.”
【傳】 志正則動必由正이니 所以爲遯之嘉也라 居中得正而應中正이면 是其志正也니 所以爲吉이라 人之遯也止也는 唯在正其志而已矣니라.
뜻이 바르면 동함에 반드시 바름을 따를 것이니, 이 때문에 은둔하기를 아름답게 함이 되는 것이다. 중(中)에 거하고 정(正)을 얻었고 중정(中正)에 응한다면 이는 그 뜻이 바른 것이니, 이 때문에 길(吉)하다. 사람이 은둔하고 그침은 오직 그 뜻을 바르게 함에 있을 뿐이다.
上九는 肥遯이니 无不利하니라.
상구(上九)는 여유있는 은둔이니, 이롭지 않음이 없다.
【傳】 肥者는 充大寬裕之意니 遯者唯飄然遠逝하여 无所係滯之爲善이라 上九乾體剛斷으로 在卦之外矣요 又下无所係하니 是遯之遠而无累니 可謂寬綽有餘裕也라 遯者는 窮困之時也니 善處則爲肥矣라 其遯如此면 何所不利리오.
비(肥)는 충대(充大)하고 관유(寬裕)한 뜻이니, 은둔하는 이는 오직 표연(飄然)히 멀리 떠나가서 매이고 지체하는 바가 없는 것이 선(善)하다. 상구(上九)는 건체(乾體)의 강단(剛斷)으로 괘(卦)의 밖에 있고 또 아래에 매인 바가 없으니, 이는 은둔하기를 멀리하여 얽매임이 없는 것이니, 너그러워 여유가 있다고 이를 만하다. 은둔하는 것은 곤궁(困窮)한 때이니, 잘 대처하면 비(肥)가 된다. 그 은둔함이 이와 같으면 어느 것인들 이롭지 않겠는가.
【本義】 以剛陽居卦外하고 下无係應하니 遯之遠而處之裕者也라 故其象占如此하니라 肥者는 寬裕自得之意라.
강양(剛陽)으로 괘(卦)의 밖에 있고 아래에 계응(係應)이 없으니, 은둔하기를 멀리하여 처하기를 여유있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상(象)과 점(占)이 이와 같은 것이다. 비(肥)는 관유(寬裕)하여 자득(自得)해 하는 뜻이다.
象曰 肥遯无不利는 无所疑也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여유있는 은둔이니 이롭지 않음이 없음은 의심하는 바가 없는 것이다.”
【傳】 其遯之遠은 无所疑滯也니 蓋在外則已遠이요 无應則无累라 故爲剛決无疑也라.
은둔하기를 멀리함은 의심하여 지체하는 바가 없는 것이니, 밖에 있으면 이미 멀고 응(應)이 없으면 얽매임이 없다. 그러므로 강하게 결단하여 의심함이 없는 것이 된다.

33. 돈(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