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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른한 오전 10시 반. 집안 일을 대충 마친 나는 찰칵을 들고서는 삼각대와 함께 뒷산에 오른다. 오늘은 저 건너 뫼등성이에 있다는 으아리를 보러가고파 온몸이 근질근질하다. 며칠 전에 지인이 우리집 건너편 뫼등성이에 으아리가 지천이라 해서, 지척에 보물을 두고서도 몰랐다는 자괴감과 함께 마음이 들떠 기대감이 가득하다.
우선 내집 뒷산으로 길을 잡고 오른다. 길목을 지키는 녀석은 어디에나 눈만 돌리면 잡히는 봄까치꽃이다. 일명 큰개불알풀이다. 앙징맞은 저 자태가 얼마나 깜찍한가!
![]() 큰까치꽃
그 모진 북풍한설 아랑곳 저리가라 길가에 새봄이라 둔덕을 수놓더니 이름도 큰개불알풀 새봄 소식 전하네
뫼길을 오르는 길목을 또 이 녀석이 지키고서는 눈인사를 곱게도 한다. "저는 앵초올시다. 반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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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초송
보랏빛 사연일랑 겨우내 간직타가 새 봄에 음지에서 자랑홉게 피어나 나들이 오가는 길손 눈 호강에 즐겁네
오늘의 주제인 으아리가 우리 산에 몇 그루 피었다가 이제는 져가는 중이다. 내가 무심해서 때를 놓친 것이다. 꽃잎이 벌써 늘어져 내리고 있다. 꽃아, 미안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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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꽃으아리
지난해 이 꽃 보러 화순까지 갔더니만 오늘은 게을러서 피는 줄도 몰랐네 순백의 꽃 요정이여 노여움을 푸시게
제 세상이라 돋아난 잡풀 사이를 미끌미끌 더듬어 오르니, 멧돼지란 놈이 온 땅을 다 헤집어 놓았네. 아마도 땅 속의 무슨 뿌린가를 캐 먹었으리라. 그런데 먹고 남은 흔적이 없어 뭘 먹었는지 상상 불허다. 멧돼지가 제일 좋아하는 건 분명 고구마인데, 지금은 고구마철도 아니잖은가!
매실밭을 더듬어 가니, 그곳에 큰구슬붕이가 한 형제라며 다섯이서 벌어져 있다. 제일 큰형은 벌써 만개를 지나 꽃잎을 다물고 열매를 만드려나 보다. 그게 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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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구슬붕이
조그만 나발 속에 무엇을 담았기에 형제들 무리지어 어깨도 나란나란 보랏빛 소우주 안에 누리 야그 흘리나
뫼등성이를 넘으면 그곳에는 이웃마을의 어느 집 선영이 자리잡고 있다. 그곳에는 싸리꽃, 제일 흔한 노란 양지꽃, 곳곳에 고사리도 삐죽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그런데 그 시절 그렇게도 흔하던 할미꽃은 자취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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솜방망이
잎에는 보송보송 새하얀 털이 많아 그 이름도 솜방망이 곱사론 자태로다 한 세월 지나고 보면 새 봄일랑 갔을라?
되돌아 내 뫼에 접어드니, 소나무 사이사이로 삐죽삐죽 올라와 지천으로 뒤덮은 애기나리가 귀엽다. 이 녀석들은 뭐가 그리도 부끄러운지 모두가 고개를 숙이고 하늘을 보려 않는다. 오직 땅귀신만 들렸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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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기나리
산엘랑 올라오면 수줍은 애기나리 온 숲을 뒤덮고는 살짝이 하는 말이 나는야 열아홉 처자 가시버시 되었네
한 쪽 길섶에는 옥녀꽃대가 의연히도 버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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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녀꽃대
산너머 구절양장 가신 님 보고파서 옥녀는 이슬 담아 올올이 새하얗도록 밤마다 홀아비꽃대 정성으로 빚었네
각시붓꽃이 색감도 요사스럽게 저 혼자서 교태를 부린다. 각시여서 저렇게 당당한 모습일까? 아마도 서방님은 저 각시를 한 시도 놓으려 아니했으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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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시붓꽃
대궁은 꼬여꼬여 피어난 꽃잎바탕 정갈한 이슬받아 한 모금 마시고는 저렇게 보랏빛 담아 서방님을 그리네
땅만을 더듬다가 더워서, 땀이 줄줄 흘러서 하늘 한 번 보려고 눈을 드니, 아니 그곳에 새하얀 나무꽃이 귀엽기도 하다. 이름하여 덜꿩나무. 지난 해에는 이름을 몰라 애면글면하다가 우리 두령님 신세을 졌는데 한 해 공부했다고 그냥 이름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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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꿩나무
하늘을 보더니만 웬 하얀 진주랄까 두 이불 깔고서는 저렇게 또람또람 올해도 내눈에 들어 두근두근 가슴을
그렇게도 며칠을 헤매며 더듬으며 찾았던 반디지치. 풀숲에 얌전히도 숨어 있었다. 세월이 가면 이 진한 청색이 바래서는 붉으스레한 꽃잎으로 바뀌어 새맛을 준다. 왜 이름이 반디지치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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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디지치
둘이서 나란나란 얼마나 다정한가 우리네 사람이란 서로가 아웅다웅 참말로 반디지치도 욕심일랑 맺을까
멀리서 지난 주에 두령을 따라갔다가 봤던 이 녀석이 내려오는 절벽 아래 무더기로 펴 있었다. 우리는 이름을 몰라서, 그런데 찰칵을 휴대하지를 않아서 찍을 방법이 없었다. 할 수 없이 궁여지책으로 가지 하나를 슬쩍 실례. 저 아래 차에는 찰칵이 있었으니까. 그렇게 해서 곡절 끝에 인터넷에 올려 알아낸 이름. 는쟁이냉이란다. 그런데 미나리냉이도 이쯤해서 피니, 잎으로 가려야 한단다. 꽃은 구별이 어려울 정도로 이슷하다는 얘기. 그래서 나는 여기 저기 수소문해서 알아보고는 내나름대로 내린 결론. 이건 는쟁이냉이가 아니라 미나리냉이다다. 그래서 미나리냉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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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리냉이
우리는 산엘 가면 저절로 겸손해진다 이 풀은 이름 뭐니, 저 꽃은 이름 뭐야 그래서 는쟁이냉이, 미나리냉이 되었네
이제는 절벽을 내려왔으니, 바위가 물을 머금었다가 내주니 그곳에도 수생식물이 있으려니 했다. 그게 바로 미나리냉이다. 그 미나리냉이 아랫턱에 저 녀석들이 떡 버티고들 앉았다. 이제까지 내가 구경한 저 녀석들 종족들 중에서 저렇게 깔끔하게 단장한 녀석을 본 적이 없다. 이름하여 벌깨덩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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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깨덩쿨
자줏빛 저 점일랑 어제도 멍든 가슴 안으로 곰삭이다 비느니 하느님전 풀어줄 비 한 줄기를 한 소금만 주소서
내 뫼를 내려오고 나니, 온 몸에 땀투성이다. 곳곳에 가시덩쿨, 죽은 삭정이. 제일 귀찮은 녀석이 청미레덩쿨이고, 야생 복분자덩쿨이다. 고놈들은 무성하기도 하다. 어디 가느냐고 붙잡고는 꼭 확인하겠다며 그냥 보내주는 법이 없다. 얄미운 녀석들이다. 그런다고 내가 어쩌겠나? 조물주도 아닌 것을.............. 벙어리 냉가슴.
고샅을 돌아 큰 길에 나서니 바람은 불어 시원하다. 그런데 어줍잖게 눌러쓴 밀집모자를 가져가려 한다. 바람이란 놈은 참 욕심도 많다. 주인이 쓰고 있는 것마저 달란다. 안 된다고 버티려니 여간 힘이 드는 게 아니다. 하늘에는 땡볕이 이글거리니 그냥 주고 갈 수도 없다. 그러니 바람과, 그것도 늦봄바람과 전쟁(?)을 해야 했다. 전쟁 중에도 발걸음 내디뎌 건너편 뫼에 오른다. 그곳에는 황씨 집안의 제각 위에 선영 벌안이 있다. 처음으로 올라가 본다. 그 주위 어딘가에 오늘의 주제로 삼았던 으아리가 있단다.
넓은 벌안에 들어서니 잘 가꾸어진 봉분 앞에는 비석들이 거멓게 떡 버티고 서 있다. 그곳에 그 봉분의 주인이 했음직한 훌릉한(?) 업적들이 빽빽하게 기록되어 있겠지. 내 관심은 오직 야생화다. 눈은 오직 땅이다. 잔디 사이사이에 벌써 작은 주인들이 빼꼼히 얼굴을 내밀고 있다. 작고 앙징스럽다. 애기구슬붕이다. 이 녀석들은 가족이 여섯이다. 그리고 사이도 좋아 보인다. 골고루 나누어 먹었나 보다. 놀부도 흥부도 없어 보인다. 하기는 탁 트인 벌안이니 햇볕이 넉넉하기는 하다. 다툴 이유가 전혀 없다. 그러니 우애도 좋을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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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기구슬붕이
구슬을 만들다가 애기가 되었나 봐 애기들 야그에도 나오는 우렁각시 새도록 만든 구슬이 애기구슬 되었네
눈을 이리저리 번쩍거리니 들어오는 게 있기는 있다. 그런데 꽃일 거라는 거 외는 알 수가 없다. 처음 보는 요상한 놈이라서. 또 누구 신센가를 지기는 져야 한다. 그런데 아마도 저건 쉽지가 않을 거 같다. 잎을 제대로 담지를 않았으니 말이다. 꽃과 잎이 다 있어야 감정사도 쉽게 알아낸다고 하니 말이다. 심한 경우에는 잎이 없으면 그냥 지워 버리기도 한다. 그럴 법도 하지. 그들이 뭐 신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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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꽃을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인 이 녀석을 범인인 지누랑이 어떻게 안단 말가 그러니 고수들이여 푸념말고 답달아요
눈을 들어 옮기려니 땀이란 놈이 나를 또 괴롭힌다. 그래야 맞기는 하지. 오늘 날씨가 보통 날씬가? 한여름 저리 가라다. 안경 사이로 흐르는 땀이라서 더 짜증이다. 나이 탓인가? 어떤 때는 지가 무슨 안경 없이 살았다고 안경을 낀 채 얼굴을 닦고 만다. 얼굴의 땀이 닦아질 리 만무. 요새는 그게 한두 번이 아니다. 늙으면 죽어야 하나? 죽으면 늙어야 하나? 그게 그거 아닌가? 이쯤 되면 글을 쓰는 건지, 푸념을 늘어놓는 건지 모른다.
땀투정이 길어졌다. 신통하게도 두 녀석이 동거를 한다. 그 이름도 이꼬들배기. 흰종과 노란종. 벌인지 큰 개민지 하는 녀석이 꿀을 따느라 여념이 없다. 하기사 지도 먹고 살아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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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꼬들배기
옛날에 꼬들배기 씀바귀 구별 못해 누군가 물을까 봐 시선을 피하더니 하기사 이꼬들배기 저렇게도 이쁜데
어디를 가나 빠지지 않는 것이 제비꽃이다. 가지 수도 많은 정도가 아니다. 한 50여 가지는 되지 싶다. 그것도 줄여서 얘기한 거다.그 중에서 떠오르는 거 하나. 흰색인데 젖제비꽃이라고 있다. 왜 이름을, 누가 그렇게 붙였을까? 그래도 빼놓을 수가 없어서 날렵한 거로 한 컷 찰칵했다. 이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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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꽃
제비꽃 흰제비꽃 제비꽃 고깔제비 제비꽃 남산제비 제비꽃 털제비꽃 제비꽃 졸방제비꽃 콩제비꽃 제비꽃
산을 돌아돌아 보아도 오늘의 주제로 삼았던 으아리는 코빼기도 보여 주지를 않는다. 날씨는 여름 거지, 땀은 비오듯 하지, 허기는 지지, 그래서 다리는 후들거리지, 그래도 혹시나 하고 주위를 한 번 더 돌아 본다. 그래도 오늘의 주제인 으아리는 종무소식이다. 그럼 어쩌야 하나? 별 수 없지 뭐. 단념.
의기소침. 다리 후들후들. 겨우겨우 돌아오는데 논두룩도 힘겹다. 그렇다고 주저앉을 수는 없고. 눈앞에 빤히 내집 오지기와가 보이는데............... 나더러 어쩌란 말이냐? 주저앉고 싶은데 어쩌란 말이냐? 참고참고 돌아나오는데 멍멍이란 놈이 컹컹컹 하는 양이 나를 물어 죽일 듯 싶다. 묶여 있어서 천만다행.
돌아돌아 재종 형댁 비닐하우스에 오니 복분자가 벌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곁에는 오디가 다닥다닥. 아마도 저 오디 중 어느 것은 내 입으로 들거갈 거 같은데............. 오디도 꽃을 피우고 있었다. 그런데 이미 지고 있는 것을. 내년에는 때를 맞추어 오디꽃을, 찰칵을 해서 올려야겠다. 오늘은 곁에 있는 복분자 찰칵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왼쪽 붉은 것은 꽃은 지고 난 다음 열매로 가는 과정이고, 오른쪽 흰 것이 진짜 복분자꽃이다. 복분자 열매로 술을 담아서 복분자주라고 하는데, 색깔은 좋은데 별무효과 아닌가 싶기도 하다. 허명무실이라고나 할까? 내가 옛날, 어느곳에서 복분자주라고 하는 걸 마시는데 요즘의 복분자주처럼 보라색이 아니었다. 왜 그러냐 했더니 그건 복분자 뿌리로 담근 술이란다. 그건 말 그대로 覆盆子酒였다. 요즘 세태를 닮은 것일까? 겉만 화려하고 내실은 없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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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분자
사람이 거짓말을 자주도 해대면은 그것이 거짓인 줄 어느새 모른다네 복분자 과장이언정 어느 누가 속을까
지금은 11시 하고도 47분. 사진 정리하는데 2시간. 글을 쓰는 데는 9시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니까 2시간 48분. 그렇게 많은 시간을 퍼넣고도 이것이 글이 되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어쨌든 열심히 찰칵하고 썼으니 즐겁다. 끝까지 읽어 주시는 분께 감사드린다. 감사합니다. 행복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