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도 나의 슬슬이(자전거이름)를 타고 유탕교를 지나오고 있었다. 그때 내 따르릉이 주머니안에서 울린다. 잠깐 멈추고 따르릉을 꺼내 드니, 자한당 목소리가 나를 찾는다. 어디냔다.
"자전거를 타는 중인데요." 했더니, 집에 뻐꾹나리가 피었단다. 그리고 물달개비도 피었단다. 와 보지 않겠냐는 전화다. 사정이 되면 전화를 먼저 하고 가겠노라고 약속을 미루었다. 슬슬이도 제 주행로를 반쯤은 주파한 때다. 다시 출발. 집에 오니 땀투성이다. 부랴부랴 씻고는 어제 찰칵한 계요등, 부추꽃 사진을 손질하고 나니 시간이 벌써 정오가 가까와 온다.
그때 또 따르릉이 울린다. 받아보니 또 자한당이시다. 아니 오냐는 거다. 지금은 뭔가 할 일이 있어서 그런댔더니 실망하는 기색이 짜르릉 저쪽 목소리에 그대로 묻어난다. 그때부터 내 마음은 바쁘다. 가고 싶어 어서 일을 끝내야 하기 때문이다. 벌써 내 머릿속에서는 이후의 할일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점심을 차려드리고, 매화동 꽃집 앞에서 봤던 관음죽 꽃을 찰칵하고, 곧바로 황룡에 가서 쌀을 사고 그리고 자한당 댁엘 가면 되겠지다.
관음죽의 사진은 생각만큼 구도가 잡히지를 않는다. 아직 만개는 아닌 상태다. 처음 보는 꽃이라 자료적인 성격이 짙다. 관음죽 잎이 무성한 것을 본 이는 많으나 꽃을 본 이는 드물다. 나도 그 중의 하나다. 꽃이 화려하지는 않다. 공해를 해소한다고 알려져서 실내에서 많이들 기르는 식물이다.
<관음죽꽃>
20키로그램들이 쌀을 한 푸대 사고는 곧장 삼계의 자한당 댁으로 향했다. 한 번 와 봤는데도 진입로를 몰라 멀리 우회해서 겨우 찾아간다. 자한당 댁은 언덕 위에 자리잡고 있어서 앞이 훤히 트여 시원하다. 그 시원한 나무 그늘 아래 황고가 벌써 와 있다. 주인과 객이 나를 반갑게 맞아 준다. 내 관심은 꽃인 만큼 인사를 나누는 둥 마는 둥 꽃을 찾는다. 자한당 왈,
"아침에 전화 드릴 때는 물달개비가 활짝 피었었는데, 오후가 되니 모두 입을 다물어 버렸습니다. 어쩌지요?"
나는 그냥 체념. 뻐꾹나리를 찾는다. 언덕 바로 위에 <꿩의다리>와 동무 삼아 두 송이가 곱게도 피어 있다.
<꿩의다리>
<뻐꾹나리>
꽃술의 투명함이 기가 막힐 정도다. 점점이 찍힌 보라색이 상그럽다.
안쪽으로 들어가니 소나무숲 사이에 <하국(夏菊)>이 노란 자태를 뽐낸다.
<꽃범의꼬리>
언덕 한 쪽 대추나무 곁에는 <오이풀> 이 빨갛게 곱기도 하다.
그 곁 고추밭에는 댓그루 심어놓은 도마도가 먹음직스럽게 익어가고 있었다. 물론 무공해 도마도리라.
나뭇그늘 탁자로 돌아오니 그곳 연못에는 주인이 떡 버티고 있다. 올 때마다 그곳에 있었다. 움직이지도 않는다. 황고 왈,
"쟤는 찰칵이 끝날 때까지 기라려 줍니다. 의리가 있어요."
아니나 다를까, 내가 찰칵을 자리를 옮겨 가면서 진행하다가 끝을 낼 때까지 그대로다. 황고 말을 들은 건지, 아니면 황고 말대로 모델 역할을 충실히 해내는 건지?
<문제의 그 개구리다>
자한당 안주인께서 불편한 몸으로 애써 만들어 주신 부침개를 만나게 먹고, 포도도 먹고, 자한당께서 손수 끓여 주시는 목련꽃차가 입안에 향그럽다. 거푸 서너 잔을 마시니 그만 배가 부르다. 돌아올 때쯤 해서 환경보호국민운동본부의 장성지부장 류종성님을 만나다. 인사를 나누고는 자한당 내외와 작별, 내 애마 마티즈에 몸을 얹고 부르릉 떠나는 발길이 잘 떨어지질 않는다. 언제나 깔끔한 자한당 부부의 삶에 경탄을 보내게 된다. 그 작지 않은 마당에 풀 한 포기 없다. 경탄이다.
驚異 하나.
개구리집인 연못 이야기. 이 연못은 긴쪽도 2미터가 채 안 되고 짧은 쪽은 1미터를 약간 상회할 정도의 타원형 못이다. 그런데 이 연못을 두 부부가 손수 만드셨단다. 땅을 파는 것만 남의 도움을 받았고 나머지는 두 부부가 돌을 나르고 쌓고 해서 만들었단다. 독자는 의아해 할 것이다. 남이 파 준 땅에 돌을 그냥 쌓는 건데 뭐가 힘드냐는 생각이실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이런 사연이 있다.
이런 내용을 쓰는 게 어쩌면 자한당 내외께 누가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주저 주저하다가 이해해 주시겠지 하고 내 멋대로 생각하고는 그냥 쓴다. 자한당 내외는 장애우다. 그것도 두 분 다 하체가 불편하시다. 자한당께서는 휠체어에 늘상 앉아서 활동하신다. 안주인께서는 목발에 의지하신다. 그러면서도 차량으로 못 가시는 데가 없다. 그런 처지의 두 분께서 돌을 나르고 쌓고 해서 그 연못을 만드셨다니 경이 그 자체라서 나는 그 사연을 듣고는 말을 잊었었다. 의지의 표상이 아닌가? 그때 나는 내 자신이 참 부끄러웠다. 자신의 처지에 감사할 줄 모르고 살아가는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어 두 분께 마음 속으로 감사했었던 기억이 새롭다. 그 연못에 대한 황고의 해석.
"집이 앉은 곳이 절개지인데 그 약점을 저 연못이 상쇄하고 있습니다. 저 연못이 보물입니다."
두 분이시여! 지금처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편안하고 행복한 삶을 누리시라. 오늘의 초대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자전거를 타는 중인데요." 했더니, 집에 뻐꾹나리가 피었단다. 그리고 물달개비도 피었단다. 와 보지 않겠냐는 전화다. 사정이 되면 전화를 먼저 하고 가겠노라고 약속을 미루었다. 슬슬이도 제 주행로를 반쯤은 주파한 때다. 다시 출발. 집에 오니 땀투성이다. 부랴부랴 씻고는 어제 찰칵한 계요등, 부추꽃 사진을 손질하고 나니 시간이 벌써 정오가 가까와 온다.
그때 또 따르릉이 울린다. 받아보니 또 자한당이시다. 아니 오냐는 거다. 지금은 뭔가 할 일이 있어서 그런댔더니 실망하는 기색이 짜르릉 저쪽 목소리에 그대로 묻어난다. 그때부터 내 마음은 바쁘다. 가고 싶어 어서 일을 끝내야 하기 때문이다. 벌써 내 머릿속에서는 이후의 할일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점심을 차려드리고, 매화동 꽃집 앞에서 봤던 관음죽 꽃을 찰칵하고, 곧바로 황룡에 가서 쌀을 사고 그리고 자한당 댁엘 가면 되겠지다.
관음죽의 사진은 생각만큼 구도가 잡히지를 않는다. 아직 만개는 아닌 상태다. 처음 보는 꽃이라 자료적인 성격이 짙다. 관음죽 잎이 무성한 것을 본 이는 많으나 꽃을 본 이는 드물다. 나도 그 중의 하나다. 꽃이 화려하지는 않다. 공해를 해소한다고 알려져서 실내에서 많이들 기르는 식물이다.
<관음죽꽃>
20키로그램들이 쌀을 한 푸대 사고는 곧장 삼계의 자한당 댁으로 향했다. 한 번 와 봤는데도 진입로를 몰라 멀리 우회해서 겨우 찾아간다. 자한당 댁은 언덕 위에 자리잡고 있어서 앞이 훤히 트여 시원하다. 그 시원한 나무 그늘 아래 황고가 벌써 와 있다. 주인과 객이 나를 반갑게 맞아 준다. 내 관심은 꽃인 만큼 인사를 나누는 둥 마는 둥 꽃을 찾는다. 자한당 왈,
"아침에 전화 드릴 때는 물달개비가 활짝 피었었는데, 오후가 되니 모두 입을 다물어 버렸습니다. 어쩌지요?"
나는 그냥 체념. 뻐꾹나리를 찾는다. 언덕 바로 위에 <꿩의다리>와 동무 삼아 두 송이가 곱게도 피어 있다.
<꿩의다리>
<뻐꾹나리>
꽃술의 투명함이 기가 막힐 정도다. 점점이 찍힌 보라색이 상그럽다.
안쪽으로 들어가니 소나무숲 사이에 <하국(夏菊)>이 노란 자태를 뽐낸다.
<꽃범의꼬리>
언덕 한 쪽 대추나무 곁에는 <오이풀> 이 빨갛게 곱기도 하다.
그 곁 고추밭에는 댓그루 심어놓은 도마도가 먹음직스럽게 익어가고 있었다. 물론 무공해 도마도리라.
나뭇그늘 탁자로 돌아오니 그곳 연못에는 주인이 떡 버티고 있다. 올 때마다 그곳에 있었다. 움직이지도 않는다. 황고 왈,
"쟤는 찰칵이 끝날 때까지 기라려 줍니다. 의리가 있어요."
아니나 다를까, 내가 찰칵을 자리를 옮겨 가면서 진행하다가 끝을 낼 때까지 그대로다. 황고 말을 들은 건지, 아니면 황고 말대로 모델 역할을 충실히 해내는 건지?
<문제의 그 개구리다>
자한당 안주인께서 불편한 몸으로 애써 만들어 주신 부침개를 만나게 먹고, 포도도 먹고, 자한당께서 손수 끓여 주시는 목련꽃차가 입안에 향그럽다. 거푸 서너 잔을 마시니 그만 배가 부르다. 돌아올 때쯤 해서 환경보호국민운동본부의 장성지부장 류종성님을 만나다. 인사를 나누고는 자한당 내외와 작별, 내 애마 마티즈에 몸을 얹고 부르릉 떠나는 발길이 잘 떨어지질 않는다. 언제나 깔끔한 자한당 부부의 삶에 경탄을 보내게 된다. 그 작지 않은 마당에 풀 한 포기 없다. 경탄이다.
驚異 하나.
개구리집인 연못 이야기. 이 연못은 긴쪽도 2미터가 채 안 되고 짧은 쪽은 1미터를 약간 상회할 정도의 타원형 못이다. 그런데 이 연못을 두 부부가 손수 만드셨단다. 땅을 파는 것만 남의 도움을 받았고 나머지는 두 부부가 돌을 나르고 쌓고 해서 만들었단다. 독자는 의아해 할 것이다. 남이 파 준 땅에 돌을 그냥 쌓는 건데 뭐가 힘드냐는 생각이실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이런 사연이 있다.
이런 내용을 쓰는 게 어쩌면 자한당 내외께 누가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주저 주저하다가 이해해 주시겠지 하고 내 멋대로 생각하고는 그냥 쓴다. 자한당 내외는 장애우다. 그것도 두 분 다 하체가 불편하시다. 자한당께서는 휠체어에 늘상 앉아서 활동하신다. 안주인께서는 목발에 의지하신다. 그러면서도 차량으로 못 가시는 데가 없다. 그런 처지의 두 분께서 돌을 나르고 쌓고 해서 그 연못을 만드셨다니 경이 그 자체라서 나는 그 사연을 듣고는 말을 잊었었다. 의지의 표상이 아닌가? 그때 나는 내 자신이 참 부끄러웠다. 자신의 처지에 감사할 줄 모르고 살아가는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어 두 분께 마음 속으로 감사했었던 기억이 새롭다. 그 연못에 대한 황고의 해석.
"집이 앉은 곳이 절개지인데 그 약점을 저 연못이 상쇄하고 있습니다. 저 연못이 보물입니다."
두 분이시여! 지금처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편안하고 행복한 삶을 누리시라. 오늘의 초대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