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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례헌

인간의 삶은 누구도 짐작할 수가 없는 일이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으면서도 마치 영원토록 살 것처럼 행동을 한다. 空則是色이요 色則是空이라 나불대지만 그건 말로만이고 그 요체를 아는지 모르는지, 알고도 행동은 못하는 건지 알 수 없지만 무사안일이다.

숨을 몰아쉬고 나면 뒤에 뭐가 남는다는 말인가!

아마도 한 달은 족히 되었을 거다. 우리집 뒷산에는 감나무가 여러 그루 서 있다. 근래에는 습기가 많아서 안개가 잦은 까닭에 감이 붉어지기도 전에 거의 빠지고 만다. 지난해에는 모두 따서 거두어 모아도 한 상자가 채 안 될 정도였다. 그래서 곱게곱게 포장을 해서 어느 호텔 사장님께 선물한 게 고작이었다.
그런데 올해에는 어쩐 일인지 몇 그루에 제법 감들이 빨갛게 살아남아서 매달려 있었다. 그 중 한 그루에는 말 그대로 주렁주렁 가지가늘어질 정도로 매달려 있었다. 반가운 김에 그걸 따서 아내에게 보내겠다고 덤볐다.(내 아내와 딸아이는 대봉시 홍시를 무척이나 좋아한다. 예를 들면 이렇다. 딸아이 왈, "엄마는 볼 때마다 감만 드시고 계셔!"라고 할 정도다.)

우선 감을 따려면 주변의 풀을 깎아야 한다. 여름내 우거진 풀들이, 가시들이 온통 뒤얽혀서 들어가기조차 곤란할 정도다. 예초기로 이틀을 깎았다. 그랬더니 좀 훤하게 주위가 트여보인다. 그리고는 상자를 지게에 짊어지고는 간짓대(가운데를 쪼갠 길다란 대나무 막대를 이른다)를 들고 나선다. 감은 높이도 매달려 있어서 여간 따는 게 어려운 게 아니다. 고개를 뒤로 젖히니 고개는 아프지, 간짓대 무게는 있어서 팔은 아프지, 감 하나를 가지에 매달리게 꺾어서 따고는 긴 간짓대를 눞혀서 땅에 떨어지지 않게 내려야 하니 말이다. 땅에 털퍼덕 떨어지고 말면 그만 그 감은 깨져서 홍시로는 먹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감을 따서 상자 가득 담아서 택배로 보낸다. 상자가 큼직했으니 감도 덩달아 많이도 담긴다. 그리고는 오늘은 그만.
 왜? 지쳤으니까.

껍질도 야실야실 자연산 대봉시를
그 님이 좋다기에 하나둘 꺾어 모아
다독여 차곡히 담아 한양엘랑 보냈네

그리고는 밤에 전화를 했다. 감을 보냈으니 받으시고. 이제 또 한 상자쯤 남았으니 다음날 따서 부산 동생네도 보내고 그러면 어떨까요 물었더니 안 된단다. 집에도 남기고 또 더 먹어야 한단다. 그러기로 하고............
다음날 산에 올라 감을 따기가 어려워 그만 나무에 올라 윗 가지를 싹뚝 잘라냈다. 나무는 우지끈 부러지고 덕분에 감을 손쉽게 따 담을 수 있었다. 그런데 다 따고 보니 세 상자는 됨직하다. 그래서 한 상자는 시골에 남기고, 한 상자는 처형네, 또 한 상자는 부산 동생네. 그렇게 맘을 먹었다.

밤에 미연이 혼인 때는 꼭 시간을 내서 하루쯤 같이 움직이자고 전화를 했더니, 동생 대뜸 전화를 받자마자 하는말,
"감 땄다고?"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속은 뜨끔하다. 이미 한 상자를 보내기로 마음 먹은 터지만 하마터면 못 보낼 뻔하지 않았는가? 사연인즉 이렇다. 지지난해에는 감을 한 상자 보냈더니, 마침 집에 어디선가 사온 대봉시가 한 상자 있었단다. 그런데 집안 식구들이 그 대봉시는 돌아보지도 않고 내가 보낸 대봉시만 서로 먹으려고 별렀단다. 무농약의 자연산과 과수원의 감이 그렇게 맛이 달랐던 거다. 그러니 따르릉을 받자마자 "감 땄다고?" 그런 거다.

작은 상자에 나누어 담아서 포장을 하고는 택배로 보낼 준비를 마치고, 우리 것은 김치냉장고에 간직을 하고 나니 해가 저물었다. 씻고 저녁을 먹고 앉아 있는데 지금 생각하니 몸이 가려웠던 거다. 배와 엉치부분에 뭔가가 물어서 벌겋게 되었었다. 그냥 시골이니 벌레가 물었나 보다 하고 가렵다고 생각을 하고는 목초액을 발랐던 기억이 희미하다. 모기나 해충에 물리면 목초액을 바르면 금방 가려움증이 가라앉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시간이 흘렀다. 중간에 또 한 번이 뭐가 물어서 이렇게 가렵지 하는 생각을 한 기억이 있다.

그리고는 12일에 상경. 반가운 경기여고 재직시 선생님들 다섯 분을 만나 즐거운 밤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13일. 미연이 혼인날. 문규내외를 만나 안국동 전통거리를 구경하며, 걸어서걸어서 광화문 앞을 넘어 경복궁에도 들어가 보고 육조거리도 걸어보고, 그리고는 청계천의 세계등축제를 구경하고 그리고 삼청각에 들러 만난 저녁을 은선이에게서 대접받았다. 두 스승 내외와 제자 은선이. 이렇게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이약이약하다가 은선이가 밤늦게 우리를 집에까지 바래다 준다.

그런데 거리를 걷는 동안 몸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어도 아마도 몸살이겠지, 감기가 오려나? 이 정도였다. 저녁에는 문규내와 우리 내외 그리고 희선이까지 모여앉아 水井坊을 마시면서 희희낙낙하다가 2시에서야 잠이 들었고, 다음날 아침에는 사우나행. 그곳에 어른신 한 분의 목숨을 문규가 구해 드리고..........
아침은 설렁탕으로 때우고, 오전에 우리 넷이서 티나가 묵을 방을 구한답시고 여기 기웃, 저기 기웃 거렸으나 별무소득. 그냥 상황만 파악하는 정도.

어제부터 부산에 계시는 어머니 걱정으로 좌불안석. 결국 8시 차표를 4시로 앞당기고. 서운한 마음이야 이루 말할 수 없지만 어머님 걱정에 말릴 수도 없는 일. 점심은 원할머니 보쌈으로. 그리고 그들은 서울역에서 떠났다. 만 27시간의 즐거움.

그날 밤 나는 몸살이 오려나 했다. 생각해 보니 내가 상경한 것이 그날까지 세 번째였다. 2일에는 김준표여서 당일치기였고, 4일에는 서당 선생이었고, 13일에는 하객이었으니 말이다. 그때까지도 짐작도 못했다. 다만 몸이 지쳐 몸살이겠거니 했다. 내려가는 일요일 차 안에서도 몸이 편치가 않았다. 시골에 도착해서도 그렇게 미련스럽게도 몸살이겠거니 하고는 15일 16일 17일을 앓았다. 나는 몇 해만에 한 번씩 참 심하게도 몸살을 한다. 밤새 잠을 못 자고 거실을 뒹굴 정도다. 그런데 이번에도 밤에 잠을 잘 수가 없다. 온몸이 쑤시고 아프고 살이 아프고 기침이 나서 숨을 쉬기가 곤란할 정도다. 그래서 몸살감긴 줄만 알고 며칠 지나면 나아지려니 하고는 미련을 떤 거다. 17일에는 좀처럼 아프다는 얘기를 아니 하는 내가 아내에게 아프다고 했나 보다. 목소리도 이상했을 거고 예감이 이상했던지 아내가 2시반차로 출발을 했던 모양이다. 방안에 앉아 있는데 따르릉이 울린다.
"지금 어디예요?"
"방에요."
"문좀 열어줘요."
어이! 놀라 뛰어나가니 문밖에 아내가 서 있다.

그렇게 나타나서 아내는 나를 보고는 놀라서 잔소리(?)를 한다. 미련 좀 떨지 말고 병원에 가자고. 나는 그래도 몸살이니 곧 나을 거라고 고집을 피운다. 아내는 이거저거 해서 먹이려는데 내가 입맛마저 없으니 그저 대충 먹는 시늉이다. 속이 많이도 상했을 거다. 안 되겠던지 아내가 그냥 나가서 시장을 봐 온다더니 몸살 약을 지어다 먹인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걸 먹고는 좀 나아지는 듯했다. 잠도 좀 자고, 자고 일어나니 몸이 좀 가벼원진 듯도 하고, 숨 쉬기도 훨씬 수월하다. 이틀을 그렇게 정성껏 간호를 하고는 아내는 못잊어 못잊어 하면서 내 대신 일을 하러 떠나갔다. 그 심정이 오죽했으랴!

그 뒤를 딸이 이어받았다. 여행가려고 회사에서 휴가를 내놓고는 가방까지 다 싸놓고도 팽개치고 득달같이 내려온 거다. 딸아이의 잔소리(?)는 지 엄마는 저리 가라다. 저 아이가 뭘 할 줄 알까 했더니 아니다. 이거저거 아무지게 잘도 한다. 젤 잘 하는 게 날 먹이는 거다. 딱 지키고 앉아서 이건 다 먹어라, 더 먹어야 한다, 약도 지어와서는 억지로 먹인다. 그런데 이상한 건 아내와 딸아이가 지어온 감기몸살 약이 잠깐이기는 했지만 대충 효과 있었다는 거다. 그게 문제인 거다. 대추+생강+배+도라지 이렇게 손질을 해서 한 단지를 끓여서 식히고, 두 벌째까지 끓여 놓고는 이런다.
"첫벌은 그냥 드시고, 두 벌째는 냉장고에 넣었다가 데워서 드세요."
앞으로 2,3일은 아무 일도 하지 마라, 귤은 생각날 때마다 하나씩 드시라, 죽도 쑤어 놓았으니 제때에 드시라, 신신당부를 하고는 이틀의 정성을 두고 딸아이도 못잊어못잊어 하면서 떠나갔다.

월요일 22일. 나아지는 기미가 전혀 없다. 잠을 잘 수가 없다. 온몸이 아프고 숨이 막히는 거다. 상경한 딸아이가 전화를 해서 그런다. 갑상선을 비롯한 면역체계가 약해져서 회복이 안 되는 거니 병원에 가서 링거를 맞으란다. 그러마고 약속을 하고 잠을 청해도 별무소득이다.어렵사리 잠이 깜박 들었는데 아내가 전화를 한 거다. 내일 내려오겠단다. 아무래도 이상했던가 보다. 내일 아침에 병원에 가서 링거를 한 대 맞고 그길로 서울로 가야지 하던 차라 내가 올라가겠다고 했다. 다짐다짐을 하고는 아내는 전화를 놓는다.

아버지께 말씀드리고 택시를 불러 출발. 중앙내과에 가니 아마도 감염된 것 같으니 서울에 가서 피검사를 해 보라며 항생처방을 해 준다. 알고 하는 처방인지 그냥 처방인지 그렇다. 차를 타고오는 3시간 반이 고통일 수밖에. 집에 오자마자 침대에서 한 잠. 밖에서 들어온 아내가 나를 보고는 놀랜다. 그 길로 e편한내과엘 갔더니 의사가 겁을 준다. 그 의사는 병명을 안다. 쯔쯔가무시병. 자기네는 감염내과가 없으니 빨리 큰 병원으로 가란다. 그러면서 참 어렵단다. 경솔한 의사다. 아내는 그때 절망했단다. 그런데 나는 그냥 몸이 아프다는 생각뿐 그저 덤덤.

서울대응급실엘 가니 이거저거 묻더니 전형적인 쯔쯔가무시란다. 까만 딱지가 있냔다. 한 군데 있다. 그게 가장 확실한 쯔쯔가무시병의 징표란다. 응급실에 사람이 넘쳐 침대도 없다. 그냥 의자에 앉아 견뎌야 한다. 아내가 연락을 했는지 택암신부님께서 득달같이 달려오셔서 걱정이 태산이시다. 그때 아마도 내 얼굴은 몰골이 말이 아니었을 거다. 거의 정신마저 혼몽할 때였으니 말이다. 신부님께서 뭐라고 말씀을 하시기는 했는데 기억에 지금은 없다. 속상해 하시는 모습만 기억에 새롭다. 환자는 아파서 죽을 지경인데 병원은 뭐가 그리 절차도 복잡한지 원........... 그때까지도 약 하나 먹여 주지를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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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수소문을 해서 석구(내 제자 의사다)를 찾은 모양이다. 석구 아버님께서 석구를 시켜 준비를 다 해 놓으신 모양이다. 그 밤에 서울성모병원응급실로 옮겼다. 물론 서울대에서 처방받은 약을 타오기로 하고.
도착해서 조금 있으니 석구가 걱정스레 다가온다. 모은실 주치의가 보고는 금방 서울대에서 가져온 약을 급히 먹으랜다. 급해서인지 배로 먹으랜다. 약을 먹고 나니 좀 나은 거 같다. 아마 심리적인 효과이지 싶다.
한참을 기다려서 중환자실로 옮겨 치료를 받는다. 고통스럽기가 말이 아니다. 숨을 쉬기도 힘들고, 살은 아프고 온몸에 땀은 비오듯 나고 잠은 잘 수도 없고...........
그럭저럭 견디다 아침이 오니 다시 약을 한 번 더 먹고 얼마 있으니 많이 수월해진다. 숨쉬기도 머리 아픈 것도 땀 흘리는 것도, 얼굴에 나타났던 반점도 색깔이 연해졌단다. Bibramycln-N 하루에 두 번 12시간 간격으로 먹는 이 약이 이렇게 효과가 좋을 줄이야. 하루 밤을 중환자실 신세를 지고 오후에 병실로 나오니 좀 살 거 같다. 숨통이 트인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말인가 싶다. 아내의 걱정스런 얼굴이 풀리는 게 눈에 보인다. 얼마나 가슴 졸였을까?
석구 선생은 하루에도 두 번씩이나 들여다본다. 금방 나갈 수 있을 거니 걱정하지 말란다. 이덕건 주치의는 상세히도 설명을 해 주신다. 왜 강원도를 갔냔다. 강원도가 아니고 전라도라니 그러신다. 중부지방보다 남부지방의 쯔쯔가무시균이 덜 세단다. 중부지방 균에 감염이 되면 의식을 잃을 수도 있고 사람도 못 알아 본단다. 다행이 남부지방 균은 그렇지는 않은데 내가 무식해서 병을 모르고 키워서 고생을 하는 거란다. 주말에는 퇴원이 가능하리라신다. 감사합니다.
입원실은 5인실. 엄살 어르신 한 분이 있어 자다가도 놀라 깨기도 하고 어쨌든 병실은 병실이다. 사흘씩이나 그 불편한 침대 아닌 침대에서 쭈그려 자느라고 아내가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래도 불평 한 마디 없다. 서방이 뭐라고?
내 침대 건너편에 입원하신 어르신은 검사만 10가지를 하셨단다. 신장투석을 위해서 혈관 확장을 해야 하는데 만일을 위해 그렇게 검사를 철저히 하는 거란다. 수술하러 가시는 침대에 가서 손을 잡아드리며 수술 잘 하고 오시라 했더니 그걸 또 그렇게 고마와하신다. 작은 일에도 몸이 아프면 감동을 하나 보다. 3시간 수수을 하시고 돌아와 하루 밤을 지내시고 나랑 함께 퇴원을 했다. 부디 건강하게 지내시라. 인상이 참 편안해 보이는 어르신이시었다.
성대가 왔다 가고, 처형내외가 왔다 가고, 경기여고팀이 왔다 가고, 모두 한결같이 놀란 눈이다.
딸아이는 또 와서 병원비까지 계산을 하고 퇴원하는 제 아빠를 보고는 이제는안심이 되는 모양이다. 생각다가 아내와 딸아이에게 립스틱을 하나씩 사 주는 것으로 고마움을 넘겼다. 아내야, 딸아 고맙다. 이제 몸조심하며 나를 좀 아껴야겠다.

11시반. 따르릉을 받으니 양선생이다.
"형, 아프다며?"
"어떻게 알았어?"
"결혼식에 와서 알았지."
"결혼식? 1시 아니야?"
"한 시는? 11시반이야."
저런 내가 정신이 없기는 정말 없었나 보다. 종휘군의 아들 혼인식이 11시반인데 1시로 알고 느긋했으니 말이다. 불이야불이야 아내를 재촉해서 세검정 <하림각>에 도착해 보니 혼례가 끝나간다. 입구에서 그래도 동일이 형, 승립군, 태화군을 만나 인사를 하고 자리가 없어 2층행.
조금 있으니 뒤에서 들리는 소리.
"형, 쯔쯔가무시 걸렸다며?"
혼주 종휘군 내외가 웃고 있다.

아내는 나를 집에 데려다놓고서야 좀 안심이 되나 보다. 이제 밥도 먹을 수 있고 잠도 잘 수 있고, 몸에 반점도 거의 사라지고 비로소 산 거 같다. 방웅이랑, 광서랑, 승이랑 함께 위로차 와서 <옛골>집에서 저녁을 먹고 이약이약하다가 돌아갔다. 고마운 친구들이다.

오늘은 화요일. 필암에 결강 통보를 하고. 어제에 이어 90분 정도를 걷고 들어왔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성동구 보건소에서 전화를 해 왔다. 쯔쯔가무시가 법정전염병이라서 확인을 해야 한다며, 이거저거 많이도 물었다. 그 대답으로 이제는 완치가 된 건가? 아니면 토요일에 외래에 가서 검사를 받고 확인을 해야 하는 걸까?
"법정전염병이라면 사람과 사람 사이에 전염이 되나요?"
보건소 직원왈,
"아니요, 사람과 사람으로는 전염이 안 됩니다."

참으로 긴 여정이었다. 2010년 11월 한 달이여!

한 세월 산다기에 그냥인 줄 알았더니 
모든 이 정성 모아 한 곳에 응어리진
소중한 목숨인 것을 잊고서는 살다니

 마치 영원토록 살 것처럼 행동을 한다. 그게 바로 내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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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30
17:50:31 (*.152.16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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