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빗속에서 서울을 출발해서 열두점 반에 장성에 도착해 보니 이곳은 그냥 흐린 날씨. 한두 방울 빗방울이 들어 우산이 없어도 좋은 날씨. 성당 앞 주차장에 맡겨 둔 달구지를 타고 귀환. 아버지는 여전하시고 설기가 반갑다고 길길이 뛴다.
거실에 들어서니 그만 냇내가 진동이다.
"저 다녀왔습니다. 그런데 뭘 태우셨어요?"
"냄새가 그렇게 심하냐? 그 삼계탕 조금 남은 게 그만 탔다."
화요일에 출발하면서 닭을 한 마리 사다가 이거저거 넣고 삼계탕을 들통에 끓여 놓고서는상한다고 한 번쯤 끓여 두시라고 하고는 떠났었다. 불을 켜시면 꼭 지켜 계셨다가 끄시고 들어가시라는 말씀과 함께. 그런데 잠깐 들어가셨다는 게 그만 잊으신 거다. 다 타버린 음식을 보고 얼마나 놀라셨으며 얼마나 아까워하셨을까? 또 그릇 씻으시느라고 얼마나 힘드셨을까?
설기랑 4시에 출발해서 동네 한 바퀴. 유탕교에서 빵빵거리는 차가 있어 눈을 들어보니 유탕교회 오목사님이 반갑닫고 웃고 계신다. 참 오랫만이다. 그냥 서로 눈인사만 나누고 제 갈길로. 성산 뒷마을을 거쳐 유탕 황선생이 사는 마을에 이르러 보니 황선생 주차장에 차가 없다. 외출 중인가 보다. <예마당> 앞을 지나는데 설기가 다가간다. 한 참을 서성거리다가 내가 그냥 지나치니 섭섭한가 보다. 따라오면서 돌아보고 돌아보고 그런다.
비온 후의 날씨라 공기가 청정 말 그대로다. 우리동네 개울은 물이 거의 없다. 그냥 실개천 수준. 장마라지만 흐리기만 했지 비가 많이 내린 건 아니란 뜻이다.
5시 반 저녁을 차려 먹고. 설겆이 하고 이러저러하다가 7시. 보통 때보다 한 50분 이르다. 설기 밥을 주는 시간 말이다. 이것이 운명이란 것인가 보다. 정상 시간에 나왔으면 그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 쪽문을 열고 뜰에 내려서는데 뭔가가 내 정수리에 내려앉는 느낌이 온다. 그래서 손이 올라갔더니 뭐가 따끔하다. 그러더니 노란 나나리벌이 윙윙거리며 덤빈다. 손으로 치렸더니 피하는 내게 날아서 오른쪽 눈 옆을 쏘고는 달아난다. 또 따끔. 두 방을 쏘인 거다. 그래도 어쩔 것인가? 하려던 일, 설기밥을 주고 들어와 응급조치. 생각나는 게 목초액이다. 잔뜩 바르고 나도 화끈화끈 쑤신다. 약간 부어오르기도 했다. 그렇다고 그길로 병원행 할 수도 없고 해서 기다려보기로 했다. 믿는 데가 있어서다.
몇 해 전 아침. 부산 문규네가 와 있었지 싶다. 아침을 차리려고 야외탁자를 옮기려는 찰나. 처형왈,
"거기 벌집 있네요!"
순간 탁자를 들려던 그와 나는 주춤. 그리고는 살펴보니 탁자 아래에 그 나나리벌집이 주먹만하게 매달려서 벌들이 대여섯 마리 윙윙거리고 있는 게 아닌가! 그냥 그대로 탁자를 옮겼더라면 그 벌들이 우리를 가만두었을 리가 없지 않은가! 그래서 긴 옷으로 갈아입고 장갑도 끼고 모기약도 준비하고 뜰채도 준비하고 내딴에는 만반준비를 하고 덤볐다.
그런데 뜰채로 시원찮게 덥쳤던기 그 사이로 두세 마리가 빠져나와 나를 쏘고 만 것이다. 물론 뜰채 안에는 30여 마리 벌들이 모기약에 취해서 쓰러져 있었고. 허벅지에 한 방, 장갑낀 손에 한 방. 두 곳 다 벌겋게 부어올랐다. 화근거리고 따갑고 그랬었다. 그때도 목초액을 발랐었던 듯싶다.
그리고는 그 부기가 빠지는 데 보름이 걸렸었다. 그 동안 가렵기는 물론이고. 그때 남들이 내게 그랬다.
"자연 벌침 한 번 잘 맞았군요. 벌을 길러 보세요."
그 말은 내가 벌을 타지 않는다는 말이다.
내가 믿는 데가 있다는 건 이걸 두고 하는 말이다. 그때 벌침 면역이 생겼을 거라는 믿음이다. 지금은 따끔거리지만 자고 나면 괜찮을 거라는 거다. 아니나 다를까, 오늘 아침에 일어나니 정말 괜찮다.
"또 자연 벌침 두 방 맞은 것이로구먼!" 나 혼자 중얼거리는 말이다.
무심코 쪽문 열고 댓돌에 내려서니
나나리 벌이란 놈 정수리에 앉았네
손 가니 벌침이 오네 아이고매 따가와
쓰리고 화끈화끈 어쩔 줄 모르다가
목초액 바르고는 진정코 하는 말이
벌침 약 복받은 이나 늘상 맞는 거라네
내 아내가 이 글을 읽으면 또 걱정할 터인데 글을 올릴까 말까 망설여진다.
* 이 글을 올리고 나가보니 세상에나! 우리집 현관문에 이 녀석이 달려있지를 않은가!
크기는 주먹만하다. 나나리벌집이다. 20여 마리가 들러붙어 윙윙거리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까 어제밤에 내게 덤벼 벌침을 놓아준 녀석은 제 집을 지키려고 한 것이다. 내가 지들을 해꼬지할까 봐 덤빈 것이다. 손을 댈 수가 없어서 우선 모기 쫓는 스프레이를 뿌려놓았다. 저녁에 다 들어갔을 때 몽땅 벌과 함께 떼어내야 한다. 지금은 아이 주먹만 하지만 며칠만 지나면 아마도 어른 머리만 할 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