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내일은 군민버스를 타고 백양사엘 갈 건데 같이 갈래요?"
"그러지요."
의외라는 듯 아내는 나를 쳐다본다. 내가,
"가지요. 군민버스 타고 백양사 가 본 적 있어요. 온 동네 다 돌아다니며 쉬었다 가요."
"예, 그러고 싶어서요. 재미 있을 거예요."
그러고는 더이상 얘기를 아니하고 밤이 지나갔다.
그런데 아침에 혹시나 마음이 변한 건 아닐까 하고 아내의 얼굴을 밥상머리에서 바라보는데, 이따 출발하잔다. 그래서 아침을 먹고 나는 딸아이가 이번 생일 선물로 사준 완전 좋은 배낭에 이거저거 챙겨넣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물통 둘, 물휴지, 우산 둘, 색안경, 전화기, 열쇠를 챙겨 넣고.
손에는 카메라를 들고, 평소에는 잘 안 쓰는 모자도 챙겨 쓰고 9시 반쯤 대문을 나섰다. 순금이가 저도 데려가라는 듯이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난리굿이다.아내가 건너편 덕성형수께 다녀와서 할랑할랑 둘이서 출발.
둘이 다 우리옷 차림으로 등에다 나는 '그 배낭'을 매고, 아내는 섹소폰 가방을 매고 동네길을 관통해서 다리도 건너 보해길로 접어들었다. 4차선 보해길 한복판에 쓰레기 봉지 하나가 기지개를 켜고 널부러져 있어 그걸 손으로 치우려니 아내 왈,
"발로 차요."
발로 툭툭 차서 길가 한 쪽에 꼴잉!
그리고 바쁜 것도 없으니 느릿느릿 이 야그 저 야그 종알종알거리며 걷다 길에서 낯선 귀뚜라미란 녀석을 만났다. 귀뚜라미는 보통은 까만데 이 녀석을 밤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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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아내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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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1번국도에서 동네길로 강등되어 버린 큰 길에 이르러 군민버스 정거장에 들어가보니 버스시간표가 없다. 따르릉으로 물으니 한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고 알려준다. 어쩌나어쩌나 하면서도 혹시나 하고 기다리며 버스가 올까 요행을 바랬더니 아니나 다를까 10분도 채 안 되어 기다리던 백양사행 버스가 온다. 구세주 같다. 이 버스다. 24인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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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안에는 모든 승객이 어르신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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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을 거쳐서 상오리 삼거리에서 우회전, 덕진리 구산 마을에서 한 분이 내리시고, 대덕에서도 두 분이 내리시고, 솔룡골 주유소에서 한 분이 내리시고, 약수리를 거쳐 백양사 임시종점에 우리를 내려놓는다. 내리시는 어르신들 모두가 정확하게 내리실 곳을 알아 벨을 누르고 천천히 움직이신다. 기사님도 재촉하는 법이 없고, 승객도 서두르는 기색이 전혀 없다. 할 인사 다 하고 챙길 것 다 챙기고 세월아 네월아 하고 편안히 움직이신다.
우리 내외는 백양사 임시종점에 도착하자마자 버스 시간부터 확인한다. 나갈 차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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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햇볕이 많이도 따갑다. 그래야 곡식이 잘 익는다고 옛날에 어르신들이 하시던 말씀이 새삼스럽다. 우리 내외는 그늘을 찾아 걸어걸어 백양사 일주문 앞에서 좌회전 해서 다리를 건너 점심을 먹기로 했다.
메뉴는 이미 결정. 내 아내 왈,
"산채비빔밥에다가 막걸리도 한 잔 해야지이! (주먹을 불끈 쥐고서는) 아자아!"
내 말이,
"그렇게 좋아요?"
"고럼요, 당신이 사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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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운각식당 평상에 앉아 생막걸리 한 병, 산채비비밥 둘을 주문해 놓고 우리 내외는 마주앉아 이약이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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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을 사준 딸아이에게 고맙다고 문자 보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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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는 막걸리도 나오고 밥도 나오고 해서 먹고 마시기 바쁘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다 먹고 반도 아니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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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내 왈,
"산채비빔밥에 산채는 없넹!"
그렇거니 하고 그냥 먹었다. 주인아저씨에게 앉았다 가도 되냐니까 왈,
"노래 한 자리 해야 합니다."
내 아내 왈,
"섹소폰 불어도 되나요?"
"그럼요."
밥을 다 먹고 막걸리도 다 마시고, 식탁을 깨끗이 치우고 가져간 커피를 꺼내서 잘 마시고 입까지 맹물로 헹구고 나서 다음 일을 시작하려다 아내가 '아이구머니나!' 그런다. 악기는 가져오고 중요한 피스를 안 가져온 거다. 할 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서면서 한 마디 사과 말씀을 드리고 돌아서니, 주인아저씨 왈
"다음 번에 와서 불어주세요."
"네!"
대답을 공손히 하고 귀가길에 오른다. 걸어서 걸어서 버스종점에 오니 텅텅 비어 있다. 한 십분 기다렸을까. 버스 두 대가 나란히 들어온다.
몇 시에 출발하냐니까 15분 있으면 간단다. 기다려 무심코 (?) 승차후 출발.
약수리를 거쳐서 장성호 상류를 거쳐서 남창계곡 입구를 지나 곰재정상을 넘어 사거리정류장에 오니 기사가 내리란다. 우리는 장성 간다니까 이 차는 사거리가 종점이고 아까 백양사에서 다음 차를 탔어야 한단다. 왜 묻지 않았냐고 타박이다. 내려서는 할 수 없이 매표소에 물으니 장성행은 한 시간 후에 온단다. 내 아내 하는 말이, "택시 타요." 하고서는 택시기사에게 뭔가 묻고 그냥 온다. 물은 요금이 너무 비쌌던가 보다. 그냥 버스를 타잔다. 한 시간을 보낼 궁리.
"도서관에 가서 커피도 한 잔 얻어 마시고 있다 옵시다."
그래서 북이도서관에 가니 갑자기 나타난 나를 보더니만 직원이 많이 놀래며 반긴다. 냉커피 두 잔을 얻어 둘이 나누어 마시고 잘 쉬다가 시간이 되어 출발. 덕분에 하운의 최우수상, 완월당의 우수상 수상 소식을 전할 수 있었다.
사거리 매표소에 도착해서 혹시나 해서 다시 물었다.
"장성행 군민버스는 몇 시에 오나요?"
"세 시요."
그럼 우리가 타려던 버스보다 10분 늦다. 그런데 시오버스는 보해 앞에 아니서고, 군민버스는 보해 앞에 선다. 당근 군민버스 선호. 기다리니 군민버스가 들어오는데 기사아저씨가 아침에 우리를 태웠던 그 기사아저씨다. 그리고는 한 말씀 하신다.
"왜 사거리까지 오셨습니까?"
"묻지 않아 버스를 잘못 탔어요."
3시에 사거리를 출발. 돌아오는 차안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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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행이라니까 안심하고 탔는데 아내가 곁에서 한 마디.
"어쩐지 백양사로 갈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드네요."
"아마도..."
아니나 다를까 약수리 <미경이네집> 앞에서 좌회전을 하고 만다. 아내 왈,
"불길한 예감은 꼭 적중한다니까요!"
"그러게요."
버스는 백양사 임시종점에 도착해서 무려 15분을 쉬었다가 간댄다. 정확히 15분이 지나니 기사아저씨 승객의 애를 번쩍 안아들고 버스에 오른다. 그리고는 출발. 약수리를 거쳐서, 면사무소 쪽으로 좌회전하여 장성으로 고고. 구길을 돌아돌아 아침에 왔던 길을 되짚어 보해 앞 정거장에 하차. 도착 시간 4시.
우리 내외는 서로 마주보며 참 재밌는 여행이었다고 씩 웃었다. 집에 들어오니 역시 순금이가 반갑다고 길길이 뛴다.
시원한 가을. 자주 길을 나서야겠다. 기분 좋은 하루. 감사감사 색시께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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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공기 속 백양계곡물과 산이 눈앞에 선하다.
장성관광지 안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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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을 짊어지고
한 세월 지나다가 넌지시 던진 말씀
내일은 버스타고 백양엘 가시려오?
내 말이 그럽시다요 재밌겠네 하루가
아침에 득달같이 배낭을 꾸려서는
등에다 걸머지고 대문을 박차면서
순금아 우리내외가 백양사엘 간단다
군민버스 탈 생각에 가슴이 통게통게
오르고 보니나는 어르신들 뿐이라네
우리도 한 자리 골라 섞여서도 눈인사
시골길 돌고돌아 솔룡골도 지나고
북하면 사무소를 왼쪽에 두고서는
곧바로 미경이네서 돌아드니 백양사
백운각 평상에서 색시와 이약이약
먼 발치 학바위가 맑은 공기 실어내니
생탁주 산채비빔밥 살이 되고 피 되고
보해 앞 내려보니 하루가 꿈결인 양
어쩌다 허송세월 이제사 나섰는가
또 가고 또 가고 싶어 나서야지 무작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