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내는 참 활동적이다. 내가 어느날인가 이렇게 말했다.
"내가 제일 무서워하는 말이 뭐게요?"
아내 눈이 동그래지며 놀람 반, 호기심 반이었다. 내 말이,
"당신 입에서 '여보, 내가 생각해 봤는데에...'라는 말이 튀어나오는 거요." 했더니, 아내도 수긍이 가는지 씩 웃는다.
아내는 하고 싶은 것도 참 많았고, 지금도 많다. 소극적이고, 정적인 나를 만나 성격을 죽이고 살아오느라고 애도 많이 터졌을 거다. 예를 들면,
1. 어렸을 때는 버스 차장이 하고 싶었고,
2. 좀 자라서는 택시운전수가 하고 싶었고,
3. 차량정비사도 해 보고 싶었고,
4. 십여 년 전부터는 우리 시골집에 커피집을 해 보고 싶었고,
5. 온 세상을 갈고 다니는 여행도 실컷 해 보고 싶었고,
6. 지금은 차를 가지고 다니면서 쉬고 먹고 자고 쓰고 다니고 싶고
그밖에도 참 많을 거다.
1번은 결국 못해봤고, 2번은 대학시절에 대구에서 정말 택시를 사서 해 봤고, 3번은 물론 머릿속에만 있었고, 4번은 내가 싫다고 해서 그러고 있지만 아직도 단념한 것 같지 않고, 5번은 중국 일본 미국 캐나다 동남아 괌 등지를 다녀왔지만 정작 유럽은 아직 못갔다. 아마도 가고 싶을 것이다. 그래서 60이 넘어 국제관광과를 졸업했다. 6번은 지금 준비 중이다.
시골생활이라는 것이 차가 없으면 불편하기 짝이 없다. 둘이서 차 한 대. 한 사람이 나들이가면 한 사람은 손발 꽁꽁이다. 더구나 활동적인 아내는 답답하기 그지없어 한다. 그래서 궁리 끝에 이동수단 겸 짐차를 하나 사기로 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시티밴'이다. 아내는 그걸 받아놓고 참 행복해 한다. 생각 같아서는 캠핑카를 마련했으면 싶은데 형편이 안 되어서 말이다.
얼마전 우리마을에 들어오는 입구에 캠핑카가 마침 주차를 하고 있었다. 하향하는 아내를 마중 나갔다가 돌아오는 시간에도 그 차가 그대로 그 자리에 있어서 조심스럽게 구경하기를 청했다. 다행히 젊은 내외가 선선히 응해 주어 내부에 들어가 차도 한 잔 얻어 마시고 이거저거 구경도 하고 묻기도 하고 자문도 구했다. 참 친절히도 설명을 해 주는데, 들을수록 그 남자분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직접 제단도 하고 궁리도 해서 꾸몄단다. 부럽기도 하고 샘도 나고, 그 즉시 우리집에 가자고 청해서 처음 만난 이들과 우리 거실에서 마주앉았다.
그분들도, 우리도 처음 만나서 집에 초대하고 초대받고 하는 일이 난생 처음이라며 신기해 했다.
그분들은 막내아들을 마을앞에 있는 장성고등학교에 보내고 있었다. 주소지는 곡성군. 장성고등학교는 모든 학생이 기숙사에 묵으면서 밤 늦게까지 공부를 하는데 금요일 오후에 집에 갔다가 일요일 늦게 귀교하는 생활패턴으로 운영되고 있다. 그래서 그분들은 금요일 저녁에 와서 아이를 데려가서는 일요일 오후에 또 데려다주는 것이다. 일요일에 데려다주는 날 잠깐 마을 입구에 차를 세우고 쉬는 짬에 우리가 본 것이 인연이 된 거다.
이약이약하다가 내 아내가 쓴 '덧칠하지 말자'와 내가 시조를 연재하고 있는 <문학바탕> 한 권을 드리고 밴이 나오면 어떻게 하는 게 좋은 건지에 대한 자문을 많이도 받았다. 그분들은 그 밤에 돌아가시고. 아들 데려다주러 오는 날 우리집에 들려 차도 한 잔 하시고 필요한 물도 전기도 보충하시라고 당부를 드리고, 우리도 곡성엘 한 번 가기로 했다.
그러다가 내년에나 나온다던, 시티밴이 지난 11일 나와서 목요일 13일에 곡성엘 찾아갔다. 한 시간 남짓 걸리는 거리. 네비가 목적지라고 하고서는 제 할일을 다했다고 들어가 버리자 우리가 길가에 차를 대놓고 어리벙벙하자 누가 와서 차창문을 두드려서 보니 마중나온 여자 사장님이시다.
길가에 '멕시칸치킨' 가게. 그 앞에 그분들의 캠핌카가 짐칸만 따로 받쳐져 있었다. 일년에 한 번 하는 차량검사하러 본채는 갔단다.
반갑게 맞아주시는 내와분. 점심으로 치킨을 주문하고는 이약이약. 지킨집 내부.
지하작업실까지 구경을 시켜주고는 남자사장님께서 많이 도와주기로 했다. 거의 떼를 쓰다싶이 해서 얻어낸 결과다. 딱 한 번 본 사이에 그 여자 사장님께서 내 아내를 많이 좋아한다며 그래서 돕기로 하셨단다. 내 아내 복이고, 내복이다. 감사.
돌아오는 길에 가게 앞을 보니 탁트여 시원하다.
가벼운 마음으로 되돌아오면서 아무래도 승용차와는 다르게 짐차는 낯설다는 느낌은 어쩔 수 없었다. 많이 흔들리고 승차감도 거칠지만 그래도 운전석이 높아서 앞이 훤히 보여 시원하다.
사족 하나.
구체적으로 어떻게 무엇을 달 것인가를 얘기하기 시작하자 사장님이 내 아내에게 묻는다.
"호칭을 뭐라고 하면 좋을까요?"
"그냥 형수하고 부르세요. 이 양반 일흔셋, 저 예순넷." 주저없이 아내가 대답한다. 그분들 눈이 휘둥그레진다. 내 나이를 듣고 말이다.
그분들은 남편이 60년생, 부인이 65년생이란다. 그래서 졸지에 동생이 하나 생겼다.
어제 저녁에 아우내외(?)가 다녀갔다. 그렇게 자주 만나면 정말 정이 들거다. 그래서 새 아우는 차를 꾸미는 준비를 하는 중이고, 우리는 오늘 나주 산림조합엘 가서 책상용 판자를 사왔다. 예쁘게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우리 시티밴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