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 익(益)
【傳】 益은 序卦에 損而不已면 必益이라 故受之以益이라 하니라 盛衰損益은 如循環하여 損極必益은 理之自然이니 益所以繼損也라 爲卦 巽上震下하니 雷風二物은 相益者也라 風烈則雷迅하고 雷激則風怒하여 兩相助益하니 所以爲益이니 此는 以象言也라 巽震二卦 皆由下變而成하니 陽變而爲陰者는 損也요 陰變而爲陽者는 益也라 上卦損而下卦益하니 損上益下는 損以爲益이니 此는 以義言也라 下厚則上安이라 故益下爲益이라.
익괘(益卦)는 〈서괘전(序卦傳)〉에 “덜어내기를 그치지 않으면 반드시 더해준다. 그러므로 익괘(益卦)로 받았다.” 하였다. 성쇠(盛衰)와 손익(損益)은 고리를 도는 것과 같아 손(損)이 극(極)에 이르면 반드시 더해줌은 이치의 자연이니, 익괘(益卦)가 이 때문에 손괘(損卦)를 이은 것이다. 괘(卦)됨이 손(巽)이 위에 있고 진(震)이 아래에 있으니, 우레와 바람 두 사물은 서로 더해주는 것이다. 바람이 맹렬하면 우레가 빠르고 우레가 격렬하면 바람이 거세어져 둘이 서로 돕고 더해주니, 이 때문에 익(益)이라 한 것이니, 이는 상(象)으로써 말한 것이다. 손(巽)과 진(震) 두 괘(卦)는 모두 아래가 변함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졌으니, 양(陽)이 변하여 음(陰)이 된 것은 손(損)이요 음(陰)이 변하여 양(陽)이 된 것은 익(益)이다. 위의 괘(卦)가 덜려 아래 괘(卦)에 더해졌으니, 위를 덜어 아래에 더해줌은 덜어서 유익함이 되는 것이니, 이는 의(義)로써 말한 것이다. 아래가 후하면 위가 편안해진다. 그러므로 아래를 더해줌이 익(益)이 되는 것이다
益은 利有攸往하며 利涉大川하니라.
익(益)은 가는 바를 둠이 이로우며 대천(大川)을 건넘이 이롭다.
【傳】 益者는 益於天下之道也라 故利有攸往이요 益之道는 可以濟險難하니 利涉大川也라.
익(益)은 천하(天下)를 유익(有益)하게 하는 도(道)이다. 그러므로 가는 바를 둠이 이로운 것이요, 익(益)의 도(道)는 험난함을 구제할 수 있으니, 대천(大川)을 건넘이 이로운 것이다.
【本義】 益은 增益也라 爲卦損上卦初畫之陽하여 益下卦初畫之陰하니 自上卦而下於下卦之下라 故爲益이라 卦之九五六二 皆得中正하고 下震上巽이 皆木之象이라 故其占이 利有所往而利涉大川也라.
익(益)은 더함이다. 괘(卦)됨이 상괘(上卦) 초획(初畫)의 양(陽)을 덜어서 하괘(下卦) 초획(初畫)의 음(陰)에 더해주었으니, 상괘(上卦)로부터 하괘(下卦)의 아래로 내려왔다. 그러므로 익(益)이라 한 것이다. 괘(卦)의 구오(九五)와 육이(六二)가 모두 중정(中正)을 얻었고, 아래의 진(震)과 위의 손(巽)이 모두 나무의 상(象)이다. 그러므로 그 점(占)이 가는 바를 둠이 이롭고 대천(大川)을 건넘이 이로운 것이다.
彖曰 益은 損上益下하니 民說(悅)无疆이요 自上下下하니 其道大光이라.
〈단전(彖傳)〉에 말하였다. “익(益)은 위를 덜어 아래에 더해주니 백성의 기뻐함이 무궁(無窮)하고, 위로부터 아래에 낮추니 그 도(道)가 크게 빛난다.
【傳】 以卦義與卦才로 言也라 卦之爲益은 以其損上益下也일새니 損於上而益下면 則民說之无疆이니 謂无窮極也라 自上而降己以下下하면 其道之大光顯也라 陽下居初하고 陰上居四하니 爲自上下下之義라.
괘의(卦義)와 괘재(卦才)로 말한 것이다. 괘(卦)가 익(益)이 됨은 위를 덜어 아래에 더해주기 때문이니, 위를 덜어 아래에 더해주면 백성의 기뻐함이 무강(無疆)하니, 궁극함이 없음을 이른다. 위로부터 자신을 낮추어 아래에게 낮추면 그 도(道)가 크게 광현(光顯)하다. 양(陽)이 내려와 초(初)에 거하고 음(陰)이 올라가 사(四)에 거하니, 위로부터 아래에 낮추는 뜻이 된다.
【本義】 以卦體로 釋卦名義라.
괘체(卦體)로 괘명(卦名)의 뜻을 해석하였다.
利有攸往은 中正하여 有慶이요.
가는 바를 둠이 이로움은 중정(中正)하여 경사(慶事)가 있는 것이요.
【傳】 五以剛陽中正으로 居尊位하고 二復以中正應之하니 是는 以中正之道益天下하여 天下受其福慶也라.
오(五)가 강양중정(剛陽中正)으로 존위(尊位)에 거하였고 이(二)가 다시 중정(中正)으로 응(應)하니, 이는 중정(中正)의 도(道)로써 천하(天下)를 유익(有益)하게 하여 천하(天下)가 그 복경(福慶)을 받는 것이다.
利涉大川은 木[益]道乃行이라.
대천(大川)을 건넘이 이로움은 익(益)의 도(道)가 이에 행해진 것이다.
【本義】 木道乃行이라.
【본의】 나무의 도(道)가 이에 행해지다.
【傳】 益之爲[一无爲字 一作於]道 於平常无事之際엔 其益猶小요 當艱危險難이면 則所益至大라 故利涉大川也니 於濟艱險은 乃益道大行之時也라 益을 誤作木하니 或以爲上巽下震이라 故云木道라 하나 非也라.
익(益)의 도(道)는 평소 일이 없을 때에는 그 유익(有益)함이 오히려 작고, 어려움과 험난함을 당하면 유익(有益)한 바가 지극히 크다. 그러므로 대천(大川)을 건넘이 이로운 것이니, 어려움과 험난함을 구제함은 바로 익(益)의 도(道)가 크게 행해지는 때이다. 익(益)을 잘못 목(木)으로 썼으니, 혹자는 이르기를 “위는 손(巽)이고 아래는 진(震)이다. 그러므로 목도(木道)라고 한 것이다.” 하나 옳지 않다.
【本義】 以卦體卦象으로 釋卦辭라.
괘체(卦體)와 괘상(卦象)으로 괘사(卦辭)를 해석하였다.
益은 動而巽하여 日進无疆하며,
익(益)은 동(動)함에 공손(恭遜)하여 날로 나아감이 무궁하며,
【傳】 又以二體言卦才라 下動而上巽은 動而巽也라 爲益之道 其動巽順於理면 則其益日進[一本益字在日進下]하여 廣大无有疆限也라 動而不順於理면 豈能成大益也리오.
또 두 체(體)로 괘재(卦才)를 말하였다. 아래가 동(動)하고 위가 공손함은 동(動)함에 공손한 것이다. 유익하게 하는 도(道)는 그 동(動)함이 도리에 손순(巽順)하면 그 유익(有益)함이 날로 진전(進展)되어 광대(廣大)하여 한계(限界)가 없게 된다. 동(動)하나 도리에 순(順)하지 않으면 어찌 큰 유익(有益)함을 이루겠는가.
天施地生하여 其益이 无方하니,
하늘이 베풀고 땅이 낳아 그 유익(有益)함이 일정한 방소(方所)가 없으니,
【傳】 以天地之功으로 言益道之大하니 聖人體之하여 以益天下也라 天道資始하고 地道生物하니 天施地生하여 化育萬物하여 各正性命하니 其益이 可謂无方矣라 方은 所也니 有方所[一无所字]則有限量이니 无方은 謂廣大无窮極也라 天地之益萬物이 豈有窮際乎아.
천지(天地)의 공(功)으로써 익도(益道)의 큼을 말하였으니, 성인(聖人)이 이것을 체행(體行)하여 천하(天下)에 유익(有益)하게 한다. 하늘의 도(道)는 의뢰하여 시작하고 땅의 도(道)는 만물을 내니, 하늘이 베풀고 땅이 낳아 만물을 화육(化育)해서 각기 성명(性命)을 바루니, 그 유익(有益)함이 일정한 방소(方所)가 없다고 이를 만하다. 방(方)은 방소(方所)이니, 방소(方所)가 있으면 한량이 있으니, 방소(方所)가 없다는 것은 광대(廣大)하여 궁극함이 없음을 이른다. 천지(天地)가 만물(萬物)을 유익(有益)하게 함이 어찌 끝이 있겠는가.
凡益之道 與時偕行하나니라.
무릇 익(益)의 도(道)는 때에 따라 함께 행하는 것이다.
【傳】 天地之益无窮者는 理而已矣요 聖人利益天下之道 應時順理하여 與天地合하니 與時偕行也라.
천지(天地)의 유익함이 무궁(無窮)한 것은 이치일 뿐이요, 성인(聖人)이 천하(天下)를 유익(有益)하게 하는 도(道)는 때에 응(應)하고 이치에 순응하여 천지(天地)와 더불어 합하니, 이는 때에 따라 함께 행하는 것이다.
【本義】 動巽은 二卦之德이요 乾下施, 坤上生은 亦上文卦體之義니 又以此極言하여 贊益之大하니라.
동(動)과 손(巽)은 두 괘(卦)의 덕(德)이요, 건(乾)이 아래로 베풀고 곤(坤)이 위로 낳음은 역시 상문(上文) 괘체(卦體)의 뜻이니, 또 이것으로 극언(極言)하여 익(益)의 큼을 칭찬한 것이다.
象曰 風雷益이니 君子以하여 見善則遷하고 有過則改하나니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바람과 우레가 익(益)이니, 군자(君子)가 이로써 선(善)을 보면 옮겨가고 허물이 있으면 고친다.”
【傳】 風烈則雷迅하고 雷激則風怒하니 二物相益者也라 君子觀風雷相益之象而求益於己하나니 爲益之道는 无若見善則遷하고 有過則改也라 見善能遷이면 則可以盡天下之善이요 有過能改면 則无過矣니 益於人者 无大於是니라.
바람이 맹렬하면 우레가 빠르고 우레가 격렬하면 바람이 거세어지니, 두 물건은 서로 더해주는 것이다. 군자가 바람과 우레가 서로 더해주는 상(象)을 보고서 자신에게 유익(有益)함을 구하니, 유익(有益)하게 하는 도(道)는 선(善)을 보면 옮겨가고 허물이 있으면 고치는 것보다 더함이 없다. 선(善)을 보고 옮겨가면 천하(天下)의 선(善)을 다할 수 있고, 허물이 있음에 고치면 허물이 없게 되니, 사람에게 유익(有益)함이 이보다 큰 것이 없다.
【本義】 風雷之勢 交相助益하니 遷善改過는 益之大者而其相益이 亦猶是也라.
바람과 우레의 세가 서로 도와주고 더해주니, 선(善)에 옮겨가고 허물을 고침은 유익(有益)함이 큰 것인데, 서로 유익(有益)하게 함이 역시 이와 같은 것이다.
初九는 利用爲大作이니 元吉이라야 无咎리라.
초구(初九)는 〈유익(有益)한 일을〉 크게 일으킴이 이로우니, 크게 선(善)하여 길(吉)하여야 허물이 없으리라.
【傳】 初九는 震動之主니 剛陽之盛也라 居益之時하여 其才足以益物이요 雖居至[一无至字]下나 而上有六四之大臣이 應於己하니 四는 巽順之主로 上能巽於君하고 下能順[一作巽]於賢才也라 在下者는 不能有爲也어니와 得在上者應從之면 則宜以其道輔於上하여 作大益天下之事하니 利用爲大作也라 居下而得上之用하여 以行其志인댄 必須所爲大善而吉이면 則无過咎요 不能元吉이면 則不唯在己有咎라 乃累乎上이니 爲上之咎也라 在至下而當大任이면 小善은 不足以稱也라 故必元吉然後得无咎라.
초구(初九)는 진동(震動)의 주체이니, 강양(剛陽)이 성한 것이다. 익(益)의 때에 거하여 그 재주가 남을 유익(有益)하게 할 수 있고 비록 지극히 낮은 곳에 있으나 위에 육사(六四)의 대신(大臣)이 자기에게 응(應)하니, 사(四)는 손순(巽順)의 주체로 위로는 군주(君主)에게 공손(恭遜)하고 아래로는 현재(賢才)에게 순(順)하다. 아래에 있는 이는 훌륭한 일을 할 수 없으나 위에 있는 이가 응(應)하고 따른다면 마땅히 그 도(道)로써 윗사람을 보필하여 천하(天下)에 크게 유익(有益)한 일을 하여야 하니, 큰 일을 일으킴이 이롭다는 것이다. 아래에 거하여 윗사람에게 쓰여져 그 뜻을 행할진댄 반드시 모름지기 하는 바가 크게 선(善)하여 길(吉)하면 허물이 없을 것이요, 크게 선(善)하여 길(吉)하지 못하면 다만 자기에게 허물이 있을 뿐만 아니라 바로 윗사람에게 누(累)가 되니, 이는 윗사람의 허물이 되는 것이다. 지극히 낮은 곳에 있으면서 큰 임무를 담당하면 작은 선(善)은 칭할 것이 못된다. 그러므로 반드시 크게 선(善)하여 길(吉)한 뒤에야 허물이 없을 수 있는 것이다.
【本義】初雖居下나 然當益下之時하여 受上之益者也니 不可徒然无所報效라 故利用爲大作이요 必元吉然後得无咎라
초(初)가 비록 아래에 거하였으나 아래를 더해주는 때를 당하여 위의 더해줌을 받는 자이니, 도연(徒然)[공연(空然)]히 보답하고 바치는 바가 없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큰 일을 일으킴이 이로운 것이요, 반드시 크게 선(善)하여 길(吉)한 뒤에야 허물이 없을 수 있는 것이다.
象曰 元吉无咎는 下不厚事也일새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원길무구(元吉无咎)’는 아래에 있는 이는 후한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傳】 在下者는 本不當處厚事니 厚事는 重大之事也라 以爲在上所任하여 所以當大事하니 必能濟大事而致元吉이라야 乃爲无咎라 能致元吉이면 則在上者任之爲知人이요 己當之爲勝任이며 不然則上下皆有咎也라.
아래에 있는 이는 본래 후한 일에 처해서는 안 되니, 후한 일은 중대(重大)한 일이다. 위에 있는 이에게 신임(信任)을 받아 대사(大事)를 담당하였으니, 반드시 대사(大事)를 이루어 원길(元吉)을 이룩하여야 이에 허물이 없음이 된다. 원길(元吉)을 이루면 위에 있는 이가 맡긴 것은 인물(人物)을 앎이 되고, 자기가 담당한 것은 임무를 감당함이 되며, 그렇지 못하면 위와 아래가 모두 허물이 있는 것이다.
【本義】 下本不當任厚事라 故不如是면 不足以塞咎也라.
아래에 있는 이는 본래 후한 일을 맡아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이와 같지 않으면 허물을 막을 수 없는 것이다.
六二는 或益之면 十朋之라 龜도 弗克違나 永貞이면 吉하니 王用享于帝라도 吉하리라.
육이(六二)는 혹 더해주게 되면 열 벗이 도와주는지라 거북점도 능히 어기지 못할 것이나, 영구히 하고 정고(貞固)하게 하면 길(吉)하니, 왕(王)이 상제(上帝)에게 제향(祭享)하더라도 길(吉)하리라.
【本義】 或이 益之十朋之龜어든,
【본의】 혹자가 십붕(十朋)의 거북을 더해 주거든,
【傳】 六二處中正而體柔順하여 有虛中之象하니 人處中正之道하여 虛其中하여 以求益而能順從이면 天下孰不願告而益之리오 孟子曰 夫苟好善이면 則四海之內皆將輕千里而來하여 告之以善이라 하시니라 夫滿則不受하고 虛則來物은 理自然也라 故或有可益之事면 則衆朋이 助而益之라 十者는 衆辭니 衆人所是는 理之至當也라 龜者는 占吉凶, 辨是非之物이니 言其至是하여 龜不能違也라 永貞吉은 就六二之才而言이라 二中正虛中하여 能得衆人之益者也나 然而質本陰柔라 故戒在常永貞固則吉也니 求益之道 非永貞則安能守也[一作之]리오.
육이(六二)가 중정(中正)에 처하고 체(體)가 유순(柔順)하여 허중(虛中)의 상(象)이 있으니, 사람이 중정(中正)의 도(道)에 처하여 마음을 비워 유익(有益)하기를 구하고 순종(順從)하면 천하(天下)에 누가 말해주어 유익(有益)하게 하기를 원하지 않겠는가. 맹자(孟子)가 말씀하기를 “진실로 선(善)을 좋아하면 사해(四海)의 안이 다 장차 천리(千里)를 가벼이 여기고 와서 선(善)을 말해 줄 것이다.” 하였다. 자만(自滿)하면 받아들이지 못하고 겸허하면 물건을 오게 함은 이치의 자연함이다. 그러므로 혹 유익(有益)하게 할 만한 일이 있으면 여러 벗이 도와주어 유익(有益)하게 하는 것이다. 십(十)은 많다는 말이니, 여러 사람이 옳게 여기는 바는 이치의 지당(至當)한 것이다. 구(龜)는 길흉(吉凶)을 점치고 시비(是非)를 분별하는 물건이니, 지극히 옳아서 거북점도 어길 수 없음을 말한 것이다. ‘영정길(永貞吉)’은 육이(六二)의 재질(才質)을 가지고 말한 것이다. 이(二)가 중정(中正)하고 마음을 비워 사람들의 더해줌을 얻을 수 있는 것이나 질(質)이 본래 음유(陰柔)이므로 영구히 하고 정고(貞固)함에 있으면 길(吉)하다고 경계한 것이니, 유익(有益)함을 구하는 도(道)는 영정(永貞)이 아니면 어찌 지킬 수 있겠는가.
損之六五十朋之則元吉者는 蓋居尊自損하여 應下之剛하고 以柔而居剛하니 柔爲虛受요 剛爲固守하니 求益之至善이라 故元吉也요 六二는 虛中求益하고 亦有剛陽之應이로되 而以柔居柔하여 疑益之未固也라 故戒能常永貞固則吉也라 王用享于帝吉은 如二之虛中而能永貞이면 用以享上帝라도 猶當獲吉이어든 況與人接物에 其意有不通乎아 求益於人에 有不應乎아 祭天은 天子之事라 故云王用也라.
손괘(損卦)의 육오(六五)가 열 벗이 도와주어 크게 선(善)하여 길(吉)한 것은 존위(尊位)에 거하여 스스로 겸손해서 아래의 강(剛)에 응(應)하고 유(柔)로서 강(剛)에 거했기 때문이니, 유(柔)는 겸허히 받아들임이 되고 강(剛)은 굳게 지킴이 되니, 유익(有益)함을 구함에 지극히 선(善)하다. 그러므로 원길(元吉)한 것이요, 육이(六二)는 마음을 비워 유익(有益)함을 구하고 역시 강양(剛陽)의 응(應)이 있으나 유(柔)로서 유(柔)에 거하여 유익(有益)함이 견고하지 못할까 의심스러우므로 영구히 하고 정고(貞固)하면 길(吉)하다고 경계한 것이다. ‘왕용향우제길(王用享于帝吉)’은 이(二)가 마음을 비우고 영정(永貞)하듯이 하면 상제(上帝)에게 제향(祭享)하더라도 오히려 마땅히 길(吉)함을 얻을 터인데, 하물며 사람과 상대하고 사물을 접함에 그 뜻이 통하지 않음이 있겠는가. 남에게 더해주기를 구함에 응(應)하지 않는 이가 있겠는가. 하늘에 제사(祭祀)함은 천자(天子)의 일이므로 ‘왕용(王用)’이라고 말한 것이다.
【本義】 六二當益下之時하여 虛中處下라 故其象占이 與損六五同이라 然爻位皆陰이라 故以永貞爲戒하고 以其居下而受上之益이라 故又爲卜郊之吉占이라.
육이(六二)는 아래를 더해주는 때를 당하여 마음을 비우고 아래에 처하였므로 그 상(象)과 점(占)이 손괘(損卦)의 육오(六五)와 같은 것이다. 그러나 효(爻)와 위(位)가 모두 음(陰)이기 때문에 영정(永貞)하라고 경계하였고, 아래에 거하여 위가 더해줌을 받아들이기 때문에 또 교제(郊祭)를 점치는 길점(吉占)이 되는 것이다.
象曰 或益之는 自外來也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혹 유익(有益)하게 한다는 것은 밖으로부터 오는 것이다.”
【傳】 旣中正虛中하여 能受天下之善而固守면 則有有益之事에 衆人自外來益之矣라 或曰 自外來는 豈非謂五乎아 曰 如二之中正虛中이면 天下孰不願益之리오 五爲正應하니 固在其中矣니라.
이미 중정(中正)하고 마음을 비워 천하(天下)의 선(善)을 받아들여 굳게 지킨다면 유익(有益)한 일이 있음에 중인(衆人)들이 밖으로부터 와서 유익(有益)하게 할 것이다. 혹자는 “밖으로부터 왔다는 것은 어찌 오(五)를 말함이 아니겠는가?” 하기에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이(二)와 같이 중정(中正)하고 허중(虛中)하다면 천하(天下)에 누가 유익(有益)하게 해주기를 원하지 않겠는가. 오(五)는 정응(正應)이 되니, 오(五)에 대한 말도 진실로 이 가운데 들어 있는 것이다.”
【本義】 或者는 衆无定主之辭라.
혹(或)이란 여러 사람이어서 일정한 주체(主體)가 없는 말이다.
六三은 益之用凶事엔 无咎어니와 有孚中行이라야 告公用圭리라.
육삼(六三)은 더함을 흉(凶)한 일에 쓰면 허물이 없으나 부성(孚誠)이 있고 중도(中道)를 하여야 공(公)에게 아뢸 때에 규(圭)를 쓰듯 하리라.
【本義】 益之用凶事라 无咎니 有孚하고 中行하여 告公用圭니라.
【본의】 흉(凶)한 일로 더해주는 것이니 허물이 없다. 성실(誠實)함을 두고 중행(中行)으로 하여 공(公)에게 고(告)하되 신(信)으로써 하여야 한다.
【傳】 三居下體之上하니 在民上者也니 乃守令也라 居陽應剛하고 處動之極하니 居民上而剛決하여 果於爲益者[一无者字]也라 果於爲益은 用之凶事則无咎니 凶事는 謂患難非常之事라 三居下之上하니 在下에 當承禀於上이니 安得自任하여 擅爲益乎아 唯於患難非常之事엔 則可量宜應卒하여 奮不顧身하여 力庇其民이라 故无咎也라 下專自任이면 上必忌疾하리니 雖當凶難하여 以[一无以字] 義在可爲나 然必有其孚誠하고 而所爲合於中道면 則誠意通於上而上信與之矣요 專爲而无爲上愛民之至誠이면 固不可也며 雖有誠意라도 而所爲不合中行이면 亦不可也라.
삼(三)은 하체(下體)의 위에 거하였으니, 백성(百姓)의 위에 있는 이이니 바로 수령(守令)이다. 양위(陽位)에 거하여 강(剛)과 응(應)하고 동(動)의 극(極)에 처하였으니, 백성의 위에 있으면서 강(剛)하고 과단(果斷)하여 유익(有益)한 일을 함에 과감한 이이다. 유익(有益)한 일을 함에 과감함은 흉(凶)한 일에 쓰면 허물이 없으니, 흉(凶)한 일이란 환난(患難)과 비상(非常)한 일을 이른다. 삼(三)은 하체(下體)의 위에 거하였으니, 아래에 있을 때에는 마땅히 윗사람에게 명령을 받아 따라야 하니, 어찌 스스로 맡아서 제멋대로 유익(有益)한 일을 할 수 있겠는가. 오직 환난(患難)과 비상(非常)한 일에 있어서는 마땅함을 헤아려 갑작스런 상황에 대응해서 분발하여 몸을 돌보지 않고 힘써 백성을 비호(庇護)할 수 있다. 그러므로 허물이 없는 것이다. 아래에 있는 이가 오로지 자임(自任)하면 위는 반드시 시기(猜忌)하고 미워할 것이니, 비록 흉(凶)함과 어려운 일을 당하여 의리(義理)에 할 만한 입장에 있으나, 반드시 부성(孚誠)이 있고 하는 바가 중도(中道)에 합하면 성의(誠意)가 위에 통하여 윗사람이 신임(信任)하고 친할 것이요, 제멋대로 하면서 윗사람을 위하고 백성(百姓)을 사랑하는 지극한 정성(精誠)이 없으면 진실로 불가하며, 비록 성의(誠意)가 있더라도 하는 바가 중행(中行)에 합하지 않으면 또한 불가(不可)하다.
圭者는 通信之物이라 禮云 大夫執圭而使는 所以申信也라 하니 凡祭祀朝聘에 用圭玉은 所以通達誠信也라 有誠孚而得中道면 則能使上信之하니 是猶告公上에 用圭玉也니 其孚能通達於上矣라 在下而有爲之道는 固當有孚中行이요 又三陰爻而不中이라 故發此義라 或曰 三乃陰柔어늘 何得反以剛果任事爲義오 曰 三이 質雖本陰이나 然其居陽은 乃自處以剛也요 應剛은 乃志在乎剛也며 居動之極은 剛果於行也니 以此行益이면 非剛果而何오 易은 以所勝爲義라 故不論其本質也라.
규(圭)는 신(信)을 통하는 물건이다. 예(禮)에 이르기를 “대부(大夫)가 규(圭)를 잡고 사신(使臣)가는 것은 신(信)을 펴는 것이다.” 하였으니, 무릇 제사(祭祀)와 조빙(朝聘)에 규옥(圭玉)을 쓰는 것은 성신(誠信)을 통(通)하기 위해서이다. 부성(孚誠)이 있고 중도(中道)를 얻으면 윗사람이 신임(信任)하게 할 수 있으니, 이는 공상(公上)에게 고(告)할 때에 규옥(圭玉)을 쓰는 것과 같으니, 그 부성(孚誠)이 윗사람에게 통할 수 있을 것이다. 아래에 있으면서 훌륭한 일을 할 수 있는 도(道)는 진실로 마땅히 부성(孚誠)이 있고 중행(中行)을 하여야 하며, 또 삼(三)이 음효(陰爻)로 중(中)하지 못하므로 이 뜻을 발한 것이다. 혹자는 “삼(三)은 바로 음유(陰柔)인데 어떻게 도리어 강(剛)하고 과단성있게 일을 맡는 것으로 뜻을 삼는가?” 하기에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삼(三)은 질(質)이 본래 음(陰)이나 양위(陽位)에 거함은 바로 강(剛)함으로써 자처하는 것이요, 강(剛)에 응(應)함은 뜻이 강(剛)함에 있는 것이며, 동(動)의 극(極)에 거함은 행실(行實)을 강(剛)하고 과단성 있게 하는 것이니, 이것으로 유익(有益)한 일을 행한다면 강(剛)하고 과단성 있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역(易)은 우세(優勢)한 것을 뜻으로 삼기 때문에 그 본질을 논하지 않는 것이다.”
【本義】 六三은 陰柔不中不正하니 不當得益者也라 然當益下之時하여 居下之上이라 故有益之以凶事者니 蓋警戒震動은 乃所以益之也라 占者如此然後可以无咎요 又戒以有孚中行而告公用圭也니 用圭는 所以通信이라.
육삼(六三)은 음유(陰柔)로 중정(中正)하지 못하니, 유익(有益)함을 얻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아래에 더하는 때를 당하여 하체(下體)의 위에 거하였므로 유익(有益)하게 하기를 흉(凶)한 일로써 하는 것이니, 경계(警戒)하고 진동(震動)함이 바로 유익(有益)하게 하는 것이다. 점치는 이가 이와 같이 한 뒤에야 허물이 없을 것이요, 또 성실함을 두고 중행(中行)을 하여 공(公)에게 고하되 규(圭)로써 하라고 경계(警戒)하였으니, 규(圭)를 씀은 신(信)을 통하는 것이다.
象曰 益用凶事는 固有之也일새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익용흉사(益用凶事)’는 진실로 자신이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本義】 固有之也라.
【본의】 견고히 간직하기 위한 것이다.
【傳】 六三益之獨可用於凶事者는 以其固有之也일새니 謂專固自任其事也라 居下엔 當禀承於上이어늘 乃專任其事는 唯救民之凶災와 拯時之艱急則可也니 乃處急難變故之權宜라 故得无咎요 若平時則不可也라.
육삼(六三)의 유익(有益)함을 홀로 흉(凶)한 일에 쓸 수 있는 것은 진실로 가지고 있기 때문이니, 오로지하고 굳게 그 일을 자임함을 이른다. 아래에 거했으면 마땅히 윗사람에게 여쭈어 받들어야 하는데, 그 일을 오로지 맡음은 오직 백성(百姓)의 흉(凶)한 재앙을 구제함과 때의 어려움을 구원하는 일에 있어서만 가(可)하니, 이는 바로 급난(急難)과 변고(變故)에 대처하는 권도(權道)이다. 그러므로 허물이 없을 수 있는 것이요, 만일 평상시라면 불가(不可)한 것이다.
【本義】 益用凶事는 欲其困心衡(橫)慮而固有之也라.
‘익용흉사(益用凶事)’는 마음을 곤궁하게 하고 생각을 거슬리게 하여 견고히 간직하고자 함이다.
六四는 中行이면 告公從하리니 利用爲依며 遷國이니라.
육사(六四)는 중도(中道)로 하면 공(公)에게 고(告)함에 따르리니, 의지하며 국도(國都)를 옮김이 이롭다.
【本義】 利用爲依遷國이니라.
【본의】 의지하여 국도(國都)를 옮김이 이롭다.
【傳】 四當益時하여 處近君之位하고 居得其正하여 以柔巽輔上而下順應於初之剛陽하니 如是면 可以益於上也라 唯處不得其中而所應又不中하니 是는 不足於中也라 故云若行得中道면 則可以益於君上이니 告於上而獲信從矣라 以柔巽之體로 非有剛特之操라 故利用爲依, 遷國이니 爲依는 依附於上也요 遷國은 順下而動也라 上依剛中之君而致其益하고 下順剛陽之才以行其事하니 利用如是也라 自古로 國邑이 民不安其居則遷하니 遷國者는 順下而動也라.
사(四)는 익(益)의 때를 당하여 군주(君主)와 가까운 자리에 처하였고 거함이 바름을 얻어 유손(柔巽)으로 윗사람을 보필(輔弼)하고 아래로 초(初)의 강양(剛陽)에 응(應)하니, 이와 같으면 윗사람에게 유익(有益)할 수 있다. 오직 처함이 중(中)을 얻지 못하였고 응(應)한 바가 또 중(中)이 아니니, 이는 중(中)이 부족한 것이다. 그러므로 만일 행함이 중도(中道)를 얻으면 군상(君上)에게 유익(有益)할 수 있으니, 위에 고(告)함에 믿고 따라줌을 얻는다고 말한 것이다. 유손(柔巽)의 체(體)로 강특(剛特)한 지조(志操)가 있지 않으므로 의지하며 국도(國都)를 옮김이 이로운 것이니, ‘위의(爲依)’는 윗사람에게 의지하여 붙는 것이요, ‘천국(遷國)’은 아래에 순종하여 동(動)하는 것이다. 위로 강중(剛中)의 군주(君主)에 의지하여 유익(有益)함을 이루고 아래로 강양(剛陽)의 재주가 있는 이에게 순종하여 일을 행하니, 이용(利用)함이 이와 같다. 예로부터 국읍(國邑)은 백성들이 거처를 편안히 여기지 못하면 옮겼으니, 국도(國都)를 옮기는 것은 아래에 순종하여 동(動)하는 것이다.
【本義】 三四皆不得中이라 故皆以中行爲戒라 此는 言以益下爲心而合於中行이면 則告公而見從矣라 傳曰 周之東遷에 晉鄭焉依라 하니 蓋古者에 遷國以益下에 必有所依然後能立이요 此爻又爲遷國之吉占也라.
삼(三)과 사(四)가 모두 중(中)을 얻지 못하였으므로 모두 중행(中行)을 하라고 경계(警戒)한 것이다. 이는 아래를 유익(有益)하게 함으로 마음을 삼고 중도(中道)에 합하면 공(公)에게 아룀에 따라줌을 말한 것이다. 전(傳)에 이르기를 “주(周)나라가 동쪽으로 천도(遷都)할 때에 진(晉)나라와 정(鄭)나라에 의지했다.” 하였으니, 옛날 국도(國都)를 옮겨 아랫사람들에게 유익(有益)하게 할 때에는 반드시 의지하는 바가 있은 뒤에 설 수 있었으며, 이 효(爻)는 또 국도(國都)를 옮기는 길점(吉占)이 된다.
象曰 告公從은 以益志也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공(公)에게 아뢰어 따라주는 것은 유익(有益)하게 하려는 뜻 때문이다.”
【傳】 爻辭에 但云 得中行則告公而獲從이어늘 象復明之曰 告公而獲從者는 告之以益天下之志也라 志苟在於益天下면 上必信而從之리니 事君者는 不患上之不從이요 患其志之不誠也니라.
효사(爻辭)에는 다만 “중행(中行)을 얻으면 공(公)에게 아룀에 따라줌을 얻는다.”고 말하였는데, 〈상전(象傳)〉에 다시 밝히기를 “공(公)에게 아룀에 따라줌을 얻는 것은 천하(天下)를 유익(有益)하게 할 뜻으로써 고(告)하기 때문이다.” 하였다. 뜻이 진실로 천하(天下)를 유익(有益)하게 함에 있다면 윗사람이 반드시 믿고서 따를 것이니, 군주(君主)를 섬기는 이는 윗사람이 따라주지 않음을 걱정하지 말고 자신의 뜻이 성실(誠實)하지 못함을 걱정하여야 한다.
九五는 有孚惠心이라 勿問하여도 元吉하니 有孚하여 惠我德하리라.
구오(九五)는 은혜로운 마음에 정성을 두고 있다. 묻지 않아도 크게 선(善)하여 길(吉)하니, 정성을 두어 나의 덕(德)을 은혜롭게 여기리라.
【傳】 五剛陽中正으로 居尊位하고 又得六二之[一无之字]中正相應하여 以行其益하니 何所不利리오 以陽實在中은 有孚之象也라 以九五之德, 之才, 之位로 而中心至誠이 在惠益於物이면 其至善大吉을 不問可知라 故云勿問元吉이라 하니라 人君이 居得致之位하고 操可致之權하여 苟至誠益於[一作於益]天下면 天下受其大福하리니 其元吉을 不假言也라 有孚惠我德은 人君이 至誠益於[一作於益]天下면 天下之人이 无不至誠愛戴하여 以君之德澤으로 爲恩惠也라.
오(五)는 강양중정(剛陽中正)으로 존위(尊位)에 거하였고, 또 육이(六二)의 중정(中正)이 서로 응함을 얻어 그 유익(有益)함을 행하니, 어느 것인들 이롭지 않겠는가. 양실(陽實)로서 중(中)에 있음은 유부(有孚)의 상(象)이다. 구오(九五)의 덕(德)과 재주와 지위로 중심(中心)의 지성(至誠)이 남에게 은혜를 베풀고 유익(有益)하게 하는 데 있다면 지극히 선(善)하고 대길(大吉)함을 묻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물문원길(勿問元吉)’이라고 말한 것이다. 인군(人君)이 이룩할 수 있는 지위에 처하고 이룩할 수 있는 권세를 잡고서 지성(至誠)으로 천하(天下)에 유익(有益)하게 하려고 하면 천하(天下)가 큰 복(福)을 받을 것이니, 그 원길(元吉)함을 굳이 말할 것이 없다. ‘유부혜아덕(有孚惠我德)’은 인군(人君)이 지성(至誠)으로 천하(天下)를 유익(有益)하게 하려고 하면 천하(天下)의 사람들이 지성(至誠)으로 사랑하고 떠받들어 군주(君主)의 덕택(德澤)을 은혜롭게 여기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本義】 上有信以惠于下면 則下亦有信以惠於上矣리니 不問而元吉을 可知라.
윗사람이 신(信)을 두어 아랫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풀면 아랫 사람 역시 신(信)을 두어 윗사람을 은혜롭게 여길 것이니, 묻지 않아도 원길(元吉)함을 알 수 있다.
象曰 有孚惠心이라 勿問之矣며 惠我德이 大得志也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은혜로운 마음에 정성이 있으니 물을 것이 없으며, 나의 덕(德)을 은혜롭게 여김은 크게 뜻을 얻는 것이다.”
【傳】 人君이 有至誠惠益天下之心이면 其元吉을 不假言也라 故로 云勿問之矣라 天下至誠懷吾德하여 以爲惠면 是其道大行이니 人君之志得矣라.
인군(人君)이 지성(至誠)으로 천하(天下)에 은혜롭고 유익(有益)하게 하려는 마음이 있으면 그 원길(元吉)함을 굳이 말할 것이 없다. 그러므로 물을 것이 없다고 한 것이다. 천하(天下)가 지성(至誠)으로 나의 덕(德)을 그리워하여 은혜롭게 여기면 이는 그 도(道)가 크게 행해지는 것이니, 인군(人君)의 뜻이 얻어지는 것이다.
上九는 莫益之라 或擊之리니 立心勿恒이니 凶하니라.
상구(上九)는 유익(有益)하게 해주는 이가 없다. 혹 공격하리니, 마음을 세우되 항상하지 말아야 하니, 흉(凶)하다.
【傳】 上居无位之地하니 非行益於人者也요 以剛處益之極하니 求益之甚者也요 所應者陰이니 非取善自益者也라 利者는 衆人所同欲也니 專欲益己면 其害大矣라 欲之甚則昏蔽而忘義理요 求之極則侵奪而致仇怨이라 故夫子曰 放於利而行이면 多怨이라 하시고 孟子謂先利則不奪不饜 이라 하시니 聖賢之深戒也라 九以剛而求益之極하니 衆人所共惡라 故无益之者하고 而或攻擊之矣라 立心勿恒凶은 聖人이 戒人存心不可專利하여 云勿恒이니 如是면 凶之道也라 하시니 所[一作謂]當速改也라.
상(上)은 지위가 없는 자리에 처했으니 남에게 유익(有益)함을 행할 수 있는 이가 아니요, 강(剛)으로 익(益)의 극(極)에 처했으니 유익(有益)함을 구하기를 심하게 하는 이이며, 응(應)하는 바가 음(陰)이니 선(善)을 취하여 스스로 유익(有益)하게 할 수 있는 이가 아니다. 이(利)는 여러 사람이 함께 원하는 바이니, 오로지 자신에게만 유익(有益)하게 하고자 하면 그 해(害)가 크다. 원하기를 심히 하면 어둡고 가리워져 의리(義理)를 잊고, 구(求)하기를 지극히 하면 침탈하여 원수를 이루게 된다. 그러므로 부자(夫子)는 “이(利)에 따라 행하면 원망이 많다.” 하셨고, 맹자(孟子)는 “이익(利益)을 먼저 하면 빼앗지 않으면 만족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신 것이니, 성현(聖賢)의 깊은 경계(警戒)이다. 상구(上九)가 강(剛)으로 유익(有益)함을 구하기를 지극히 하니, 사람들이 함께 미워하는 바이다. 그러므로 유익(有益)하게 해주는 이가 없고 혹 공격하는 것이다. ‘입심물항흉(立心勿恒凶)’은 성인(聖人)이 사람들이 마음을 둘 적에 이익을 오로지 해서는 안 됨을 경계하여 “항상하지 말아야 하니, 이와 같이 하면 흉(凶)한 도(道)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니, 마땅히 속히 고쳐야 할 것이다.
【本義】 以陽居益之極하여 求益不已라 故莫益而或擊之라 立心勿恒은 戒之也라.
양(陽)으로 익(益)의 극(極)에 거하여 유익(有益)함을 구하기를 그치지 않는다. 그러므로 유익(有益)하게 해주는 이가 없고 혹 공격하는 것이다. 마음을 세움에 항상하지 말라는 것은 경계(警戒)한 것이다.
象曰 莫益之는 偏辭也요 或擊之는 自外來也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유익(有益)하게 해주는 이가 없다는 것은 편벽되다는 말이요, 혹 공격한다는 것은 밖으로부터 오는 것이다.”
【본의】 유익하게 해주는 이가 없다는 것은 한쪽만 말한 것이요,
【傳】 理者는 天下之至公이요 利者는 衆人所同欲이니 苟公其心하여 不失其正理면 則與衆同利하여 无侵於人하여 人亦欲與之요 若切於好利하여 蔽於自私하여 求自益以損於人이면 則人亦與之力爭이라 故莫肯益之하고 而有擊奪之者矣니 云莫益之者는 非有偏己之辭也라 苟不偏己하여 合於公道면 則人亦益之리니 何爲擊之乎아 旣求益於人하여 至於甚極이면 則人皆惡而欲攻之라 故擊之者自外來也라.
이(理)는 천하(天下)에 지극히 공정(公正)함이요 이(利)는 여러 사람이 함께 원하는 바이니, 만일 그 마음을 공정하게 하여 정리(正理)를 잃지 않는다면 사람들과 더불어 이익을 함께 하여 남을 침해(侵害)함이 없으므로 남들도 그와 친하고자 할 것이요, 만일 이익을 좋아함에 간절해서 스스로 사사로움에 가려 자신의 유익(有益)을 구하여 남에게 손해(損害)를 끼친다면 남들도 그와 더불어 힘써 다툴 것이다. 그러므로 즐겨 유익(有益)하게 해주는 이가 없고 공격하여 빼앗는 이가 있는 것이니, 유익(有益)하게 해 주는 이가 없다고 말한 것은 자신에게 치우침이 있음을 그르다고 여긴 말이다. 만일 자신에게 치우치지 않아 공도(公道)에 합한다면 남들이 또한 유익(有益)하게 해줄 것이니, 어찌 공격하겠는가. 이미 남에게서 유익(有益)함을 구하여 극도로 심한 데에 이르면 남들이 모두 미워하여 공격하고자 할 것이다. 그러므로 공격하는 이가 밖으로부터 오는 것이다.
人爲善則千里之外應之하나니 六二中正虛己에 益之者自外而至 是也요 苟爲不善則千里之外違之하나니 上九求益之極에 擊之者自外而至 是也라 繫辭曰 君子安其身而後動하며 易(이)其心而後語하며 定其交而後求하나니 君子修此三者라 故全也하나니 危以動則民不與也요 懼以語則民不應也요 无交而求則民不與也하나니 莫之與則傷之者至矣라 易曰 莫益之라 或擊之리니 立心勿恒이니 凶이라 하니 君子言動與求를 皆以其道 乃完善也라 不然則取傷而凶矣니라.
사람이 선행(善行)을 하면 천리(千里)의 밖에서도 응(應)하니, 육이(六二)가 중정(中正)하고 자신을 겸허히 함에 유익(有益)하게 해주는 이가 밖으로부터 이르는 것이 이것이요, 만일 불선(不善)한 짓을 하면 천리(千里) 밖에서 떠나가니, 상구(上九)가 유익(有益)함을 구하기를 지극히 함에 공격하는 이가 밖으로부터 오는 것이 이것이다. 〈계사전(繫辭傳)〉에 이르기를 “군자는 몸을 편안히 한 뒤에 동(動)하며, 마음을 화평(和平)하게 한 뒤에 말하며, 사귐을 정(定)한 뒤에 구하니, 군자는 이 세 가지를 닦기 때문에 온전한 것이다. 위태로우면서 동(動)하면 백성들이 더불지 않고, 두려워하면서 말하면 백성들이 응(應)하지 않고, 사귐이 없으면서 구하면 백성들이 친하지 않으니, 친하지 않으면 해롭게 하는 이가 이를 것이다. 역(易)에 이르기를 ‘유익(有益)하게 해주는 이가 없다. 혹 공격할 것이니, 마음을 세우되 항상하지 말아야 하니, 흉하다.’ 하였다.” 하였으니, 군자는 말하고 동(動)하고 구(求)함을 모두 그 도(道)로써 함이 완전히 선(善)한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상(傷)함을 취하여 흉하다.
【本義】 莫益之者는 猶從其求益之偏辭而言也요 若究而言之면 則又有擊之者矣리라.
‘막익지(莫益之)’라는 것은 유익(有益)함을 구하는 한쪽 말만 따라 말한 것이요, 만일 끝까지 다하여 말한다면 또 공격하는 이가 있다는 것이다.

42. 익(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