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 승(升)
【傳】 升은 序卦에 萃者는 聚也니 聚而上者를 謂之升이라 故受之以升이라 하니라 物之積聚而益高大는 聚而上也라 故爲升이니 所以次於萃也라 爲卦 坤上巽下하여 木在地下하니 爲地中生木이라 木生地中하여 長而益高는 爲升之象也라.
승괘(升卦)는 〈서괘전(序卦傳)〉에 “췌(萃)는 모임이니, 모여 올라가는 것을 승(升)이라 한다. 그러므로 승괘(升卦)로 받았다.” 하였다. 사물이 쌓이고 모여 더욱 높아지고 커짐은 모여서 올라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승(升)이라 한 것이니, 이 때문에 췌괘(萃卦)의 다음이 된 것이다. 괘(卦)됨이 곤(坤)이 위에 있고 손(巽)이 아래에 있어 나무가 땅 아래에 있으니, 땅 가운데 나무가 자람이 된다. 나무가 땅 가운데 생겨 자라서 더욱 높아짐은 승(升)의 상(象)이 된다.
升은 元亨하니 用見大人하되 勿恤하고 南征하면 吉하리라.
승(升)은 크게 선(善)하고 형통(亨通)하니 대인(大人)을 만나보되 근심하지 말고 남쪽으로 가면 길(吉)하리라.
【본의】 크게 형통하니,
【傳】 升者는 進而上也니 升進[一作進升]則有亨義요 而以卦才之善이라 故元亨也라 用此道하여 以見大人하되 不假憂恤하고 前進則吉也라 南征은 前進也라.
승(升)은 나아가 올라가는 것이니, 올라가면 형통(亨通)할 뜻이 있고, 괘재(卦才)가 선(善)하기 때문에 크게 선(善)하고 형통(亨通)한 것이다. 이 도(道)를 써서 대인(大人)을 만나보되 굳이 근심하지 말고 전진(前進)하면 길(吉)할 것이다. 남정(南征)은 전진(前進)함이다.
【本義】 升은 進而上也라 卦自解來하여 柔上居四하여 內巽外順하고 九二剛中而五應之라 是以其占如此라 南征은 前進也라.
승(升)은 나아가 올라가는 것이다. 괘(卦)가 해괘(解卦)[ ]로부터 와서 유(柔)가 위로 올라가 사(四)에 거하여 안이 공손하고 밖이 순하며, 구이(九二)가 강중(剛中)인데 오(五)가 응(應)한다. 이 때문에 그 점(占)이 이와 같은 것이다. 남정(南征)은 전진(前進)함이다.
彖曰 柔以時升하여,
〈단전(彖傳)〉에 말하였다. 유(柔)가 때에 따라 올라가서,
【本義】 以卦變으로 釋卦名이라.
괘변(卦變)으로 괘명(卦名)을 해석하였다.
巽而順하고 剛中而應이라 是以大亨하니라.
공손(恭巽)하고 순(順)하고 강중(剛中)으로 응(應)한다. 이 때문에 크게 형통(亨通)한 것이다.
【본의】 강중(剛中)에게 응(應)한다.
【傳】 以二體言이니 柔升은 謂坤上行也라 巽旣體卑而就下하고 坤乃順時而上은 升以時也니 謂時當升也라 柔旣上而成升이면 則下巽而上順이니 以巽順之道升이면 可謂時矣라 二以剛中之道應於五하고 五以中順之德應於二하여 能巽而順하고 其升以時라 是以元亨也라 彖文에 誤作大亨하니 解在大有卦하니라.
두 체(體)로 말하였으니, 유(柔)가 올라간다는 것은 곤(坤)이 위로 감을 말한 것이다. 손(巽)이 이미 체(體)가 낮아 아래로 나아가고, 곤(坤)이 마침내 때를 순히 하여 올라감은 오르기를 제때에 함이니, 때가 마땅히 올라갈 때임을 말한 것이다. 유(柔)가 이미 올라가 승(升)이 되면 아래는 공손하고 위는 순(順)하니, 손순(巽順)한 도(道)로써 올라가면 때에 맞는다고 이를 만하다. 이(二)가 강중(剛中)의 도(道)로 오(五)에 응(應)하고, 오(五)가 중순(中順)의 덕(德)으로 이(二)에 응(應)하여, 능히 공손하고 순하며, 오르기를 제때에 한다. 이 때문에 크게 선(善)하고 형통(亨通)한 것이다. 〈단전(彖傳)〉의 글에는 잘못 ‘대형(大亨)’으로 되어 있으니, 해석이 대유괘(大有卦)에 나와 있다.
【本義】 以卦德卦體로 釋卦辭라.
괘덕(卦德)과 괘체(卦體)로 괘사(卦辭)를 해석하였다.
用見大人勿恤은 有慶也요,
대인(大人)을 만나보되 근심하지 말라는 것은 경사(慶事)가 있는 것이요,
【傳】 凡升之道는 必由大人이니 升於位則由王公이요 升於道則由聖賢이라 用巽順剛中之道하여 以見大人이면 必遂其升이니 勿恤은 不憂其不遂也라 遂其升이면 則己之[一作有]福慶이요 而福慶及物也라.
무릇 올라가는 도(道)는 대인(大人)을 말미암아야 하니, 지위에 오르려면 왕공(王公)을 말미암아야 하고, 도(道)에 오르려면 성현(聖賢)을 말미암아야 한다. 손순(巽順) 강중(剛中)의 도(道)를 써서 대인(大人)을 만나보면 반드시 그 오름을 이룰 것이니, ‘물휼(勿恤)’은 이루지 못함을 근심하지 않는 것이다. 그 오름을 이루면 자기의 복(福)과 경사(慶事)요, 복(福)과 경사(慶事)가 남에게 미치는 것이다.
南征吉은 志行也라.
남쪽으로 가면 길(吉)함은 뜻이 행해지는 것이다.
【傳】 南은 人之所向이니 南征은 謂前進也라 前進則遂其升而得行其志하니 是以吉也라.
남(南)은 사람이 향하는 곳이니, 남정(南征)은 전진(前進)함을 이른다. 전진하면 그 오름을 이루어 뜻을 행할 수 있으니, 이 때문에 길(吉)한 것이다.
象曰 地中生木이 升이니 君子以하여 順德하여 積小以高大하나니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땅 가운데 나무가 자람이 승(升)이니, 군자(君子)가 이로써 덕(德)을 순히 하여 작은 것을 쌓아 높고 크게 한다.”
【本義】 順(愼)德하여,
【본의】 덕(德)을 삼가,
【傳】 木生地中하여 長而上升이 爲升之象이라 君子觀升之象하여 以順修其德하여 積累微小하여 以至高大也라 順則可進이요 逆乃退也니 萬物之進이 皆以順道也라 善不積이면 不足以成名이요 學業之充實과 道德之崇高가 皆由積累而至라 積小하여 所以成高大는 升之義也라.
나무가 땅 가운데 나서 장성하여 올라감이 승(升)의 상(象)이 된다. 군자(君子)가 승(升)의 상(象)을 관찰하고 덕(德)을 순히 닦아서 작은 것을 쌓고 쌓아 고대(高大)함에 이른다. 순(順)이면 나아갈 수 있고 역(逆)이면 마침내 물러가니, 만물(萬物)의 나아감은 모두 순한 도(道)로써 한다. 선(善)을 쌓지 않으면 이름을 이루지 못하며, 학업(學業)의 충실함과 도덕(道德)의 높음이 모두 쌓고 쌓음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다. 작은 것을 쌓아 고대(高大)함을 이룸은 승(升)의 뜻이다.
【本義】 王肅本에 順作愼하고 今按他書컨대 引此에 亦多作愼하니 意尤明白하니 蓋古字通用也라 說見上篇蒙卦하니라.
왕숙본(王肅本)에는 ‘순(順)’이 ‘신(愼)’으로 되어 있으며, 지금 다른 책을 살펴보면 이 글을 인용할 적에 역시 많이 ‘신(愼)’으로 되어 있는 바, 뜻이 더욱 명백하니, 고자(古字)에 통용(通用)된 것이다. 해설이 상편(上篇) 몽괘(蒙卦)에 보인다.
初六은 允升이니 大吉하니라.
초육(初六)은 믿고 따라서 오름이니, 크게 길(吉)하다.
【本義】 大吉하리라.
【본의】 크게 길(吉)하리라.
【傳】 初以柔居巽體之下하고 又巽之主로 上承於九二之剛하니 巽之至者也요 二以剛中之德으로 上應於君하니 當升之任者也라 允者는 信從也라 初之柔巽으로 唯信從於二하니 信二而從之同升이면 乃大吉也라 二以德言則剛中이요 以力言則當任이니 初之陰柔로 又无應援하여 不能自升이요 從於剛中之賢以進이면 是由剛中之道也니 吉孰大焉이리오.
초(初)는 유(柔)로서 손체(巽體)의 아래에 있고 또 손(巽)의 주체(主體)로 위로 구이(九二)의 강(剛)을 받드니 공손(恭巽)함이 지극한 것이며, 이(二)는 강중(剛中)의 덕(德)으로 위로 군주(君主)에 응(應)하니, 승(升)의 임무를 담당한 이이다. 윤(允)은 믿고 따름이다. 초(初)의 유손(柔巽)함으로 오직 이(二)를 믿고 따르니, 이(二)를 믿고 따라서 함께 올라가면 대길(大吉)인 것이다. 이(二)는 덕(德)으로 말하면 강중(剛中)이요 힘으로 말하면 임무를 담당하였으니, 초(初)의 음유(陰柔)로 또 응원(應援)이 없어 스스로 오르지 못하고, 강중(剛中)의 현자(賢者)를 따라 나아가면 이는 강중(剛中)의 도(道)를 따르는 것이니, 길(吉)함이 무엇이 이보다 크겠는가.
【本義】 初以柔順居下하니 巽之主也어늘 當升之時하여 巽於二陽하니 占者如之면 則信能升而大吉矣리라.
초(初)는 유순(柔順)함으로 아래에 거하였으니, 손(巽)의 주체인데 승(升)의 때를 당하여 두 양(陽)에게 공손하니, 점치는 이가 이와 같이 하면 진실로 올라가 대길(大吉)할 것이다.
象曰 允升大吉은 上合志也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윤승대길(允升大吉)’은 위와 뜻이 합하는 것이다.”
【傳】 與在上者로 合志同升也니 上은 謂九二라 從二而升이면 乃與二同志也니 能信從剛中之賢[一作道]이라 所以大吉이니라.
위에 있는 이와 뜻이 합하여 함께 올라가니, 상(上)은 구이(九二)를 이른다. 이(二)를 따라 올라가면 바로 이(二)와 뜻을 함께 하는 것이니, 강중(剛中)의 현자(賢者)를 믿고 따르기 때문에 대길(大吉)한 것이다.
九二는 孚乃利用禴이니 无咎리라.
구이(九二)는 정성이 있어야 비로소 약(禴)을 씀이 이로우니, 허물이 없으리라.
【傳】 二陽剛而在下하고 五陰柔而居上하니 夫以剛而事柔하고 以陽而從陰은 雖有時而然이나 非順道也며 以暗而臨明하고 以剛而事弱하여 若黽勉於事勢면 非誠服也니 上下之交不以誠이면 其可以[一无以字]久乎아 其可以有爲乎아 五雖陰柔나 然居尊位하고 二雖剛陽이나 事上者也니 當內存至誠하여 不假文飾於外니 誠積於中이면 則自不事外飾이라 故曰利用禴이라 하니 謂尙誠敬也라 自古로 剛强之臣이 事柔弱之君에 未有不爲矯飾者也라 禴은 祭之簡質者也라 云孚乃는 謂旣孚라야 乃宜不用文飾하고 專以其誠感通於上也니 如是則得无咎라 以剛强之臣而事柔弱之君하고 又當升之時하니 非誠意相交면 其能免於咎乎아.
이(二)는 양강(陽剛)인데 아래에 있고 오(五)는 음유(陰柔)인데 위에 거하였으니, 강(剛)으로서 유(柔)를 섬기고 양(陽)으로서 음(陰)을 따름은 비록 그러할 때가 있으나 순(順)한 도(道)가 아니며, 어둠으로 밝음에 임하고 강함으로 약함을 섬겨서 만약 사세(事勢)에 억지로 힘쓴다면 진실로 복종함이 아니니, 상하(上下)가 사귐에 정성으로써 하지 않으면 어찌 오래가겠는가. 또 어떻게 일을 할 수 있겠는가. 오(五)가 비록 음유(陰柔)이나 존위(尊位)에 거하였고, 이(二)가 비록 강양(剛陽)이나 위를 섬기는 것이니, 마땅히 안에 지성(至誠)을 두어 밖에 문식(文飾)을 빌리지 않아야 하니, 정성이 가운데에 쌓이면 스스로 외식(外飾)을 일삼지 않는다. 그러므로 약(禴)을 씀이 이롭다고 말하였으니, 정성과 공경(恭敬)을 숭상함을 이른다. 예로부터 강강(剛强)한 신하(臣下)가 유약(柔弱)한 군주(君主)를 섬길 적에 꾸밈을 행하지 않은 이가 있지 않았다. 약(禴)은 제사(祭祀) 중에 간략하고 질박한 것이다. ‘부내(孚乃)’라고 말한 것은 이미 정성이 있어야 비로소 문식(文飾)을 쓰지 않고 오로지 정성으로 위를 감통(感通)시킴을 이르니, 이와 같이 하면 허물이 없을 수 있다. 강강(剛强)한 신하(臣下)로 유약(柔弱)한 군주(君主)를 섬기고 또 승(升)의 때를 당하였으니, 성의(誠意)로 서로 사귐이 아니면 어찌 허물을 면할 수 있겠는가.
【本義】 義見萃卦하니라.
뜻이 췌괘(萃卦)에 보인다.
象曰 九二之孚는 有喜也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구이(九二)의 부성(孚誠)은 기쁨이 있는 것이다.”
【傳】 二能以孚誠事上이면 則不唯爲臣之道无咎而已라 可以行剛中之道하여 澤及天下하니 是有喜也라 凡象에 言有慶者는 如是則有福慶及於物也요 言有喜者는 事旣善而又[一无又字]有可喜也라 如大畜童牛之牿元吉을 象云有喜라 하니 蓋牿於童則易하고 又免强制之難하니 是有可喜也라.
이(二)가 부성(孚誠)으로 위를 섬기면 오직 신하(臣下)된 도리에 허물이 없을 뿐만 아니라, 강중(剛中)의 도(道)를 행하여 은택(恩澤)이 천하(天下)에 미칠 수 있으니, 이는 기쁨이 있는 것이다. 무릇 상(象)에 ‘유경(有慶)’이라고 말한 것은 이와 같이 하면 복(福)과 경사(慶事)가 남에게 미친다는 것이요, ‘유희(有喜)’라고 말한 것은 일이 이미 선(善)하고 또 기뻐할 만한 일이 있는 것이다. 대축괘(大畜卦)의 동우지곡(童牛之牿)이 크게 길(吉)함을 〈상전(象傳)〉에서 ‘유희(有喜)’라고 하였으니, 어릴 때에 뿔을 얽어매면 쉽고 또 억지로 제재하는 어려움을 면하니, 이는 기뻐할 만함이 있는 것이다.
九三은 升虛邑이로다.
구삼(九三)은 빈 고을에 올라가는 것이다.
【傳】 三以陽剛之才로 正而且巽하고 上皆順之하며 復有援應[一作者]하니 以是而升이면 如入无人之邑이니 孰禦哉리오.
삼(三)은 양강(陽剛)의 재질로 바르고 또 공손하며 위가 모두 순하고 다시 응원(應援)이 있으니, 이로써 올라가면 사람이 없는 고을에 들어감과 같으니, 누가 막겠는가.
【本義】 陽實陰虛而坤有國邑之象이라 九三이 以陽剛으로 當升時而進臨於坤이라 故其象占如此하니라.
양(陽)은 실(實)하고 음(陰)은 허(虛)하며, 곤(坤)은 국읍(國邑)의 상(象)이 있다. 구삼(九三)이 양강(陽剛)으로 승(升)의 때를 당하여 나아가 곤(坤)에 임하므로 그 상(象)과 점(占)이 이와 같은 것이다.
象曰 升虛邑은 无所疑也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빈 고을에 올라감은 의심할 바가 없는 것이다.”
【傳】 入无人之邑하여 其進이 无疑阻也라.
사람이 없는 고을에 들어가서 그 나아감이 의심과 막힘이 없는 것이다.
六四는 王用亨于岐山이면 吉하고 无咎하리라.
육사(六四)는 왕(王)이 기산(岐山)에서 형통(亨通)하듯이 하면 길(吉)하고 허물이 없으리라.
【本義】 王用亨(享)于岐山이니,
【본의】 왕(王)이 써 기산(岐山)에 제향함이니,
【傳】 四柔順之才로 上順君之升하고 下順下之進하며 己則止其所焉하니 以陰居柔하고 陰而在下는 止其所也라 昔者文王之居岐山之下에 上順天子而欲致之有道하고 下順天下之賢而使之升進하며 己則柔順謙恭하여 不出其位하여 至德如此하니 周之王業이 用是而亨也라 四能如是면 則亨而吉하고 且无咎矣리라 四之才固自善矣어늘 復有无咎之辭는 何也오 曰 四之才雖善이나 而其位當戒也일새라 居近君之位하고 在升之時하여 不可復升하니 升則凶咎可知라 故云如文王則吉而无咎也라 然處大臣之位하여 不得无事於升하니 當上升其君之道하고 下升天下之賢하며 己則止其分焉이니 分雖當止나 而德則當升也요 道則當亨也라 盡斯道者는 其唯文王乎인저.
사(四)가 유순(柔順)한 재질로 위로는 군주(君主)의 오름을 순히 하고 아래로는 아래의 나옴을 순히 하며, 자기는 제자리에 멈춰 있으니, 음(陰)이 유위(柔位)에 거하고 음(陰)이 아래에 있음은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옛날 문왕(文王)이 기산(岐山) 아래에 거할 적에 위로는 천자(天子)에게 순응하여 도(道)가 있는 데에 이루고자 하고 아래로는 천하(天下)의 현자(賢者)를 순응하여 올라오게 하였으며, 자신은 유순(柔順)하고 겸공(謙恭)하여 그 지위를 벗어나지 않아 지극한 덕(德)이 이와 같았으니, 주(周)나라의 왕업(王業)이 이 때문에 형통(亨通)한 것이다. 사(四)가 이와 같이 하면 형통(亨通)하여 길(吉)하고 또 허물이 없을 것이다. 사(四)의 재질이 진실로 스스로 선(善)한데 다시 ‘허물이 없다’는 말이 있는 것은 어째서인가? 사(四)의 재질이 비록 선(善)하나 그 자리가 마땅히 경계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군주(君主)와 가까운 자리에 거하고 승(升)의 때에 있어 다시 올라갈 수가 없으니, 올라가면 흉구(凶咎)함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문왕(文王)과 같이 하면 길(吉)하여 허물이 없다고 말한 것이다. 그러나 대신(大臣)의 지위에 처하여 올림을 일삼지 않을 수 없으니, 위로는 군주(君主)의 도(道)를 올리고 아래로는 천하(天下)의 현재(賢才)를 올리며, 자신은 분수에 머물러 있어야 하니, 분수는 마땅히 머물러 있어야 하나 덕(德)은 마땅히 올라가고 도(道)는 마땅히 형통(亨通)해야 할 것이다. 이 도리를 다한 사람은 아마도 오직 문왕(文王)일 것이다.
【本義】 義見隨卦하니라.
뜻이 수괘(隨卦)에 보인다.
象曰 王用亨于岐山은 順事也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왕용형우기산(王用亨于岐山)’은 순한 일이다.”
【傳】 四居近君之位而當升時하여 得吉而无咎者는 以其有順德也일새라 以柔居坤은 順之至也니 文王之亨于岐山은 亦以順時而已라 上順於上하고 下順乎下하며 己順處其義라 故云順事也라.
사(四)가 군주(君主)와 가까운 자리에 거하고 승(升)의 때를 당하여 길(吉)하고 허물이 없을 수 있는 것은 순한 덕(德)이 있기 때문이다. 유(柔)로서 곤(坤)에 거함은 지극히 순함이니, 문왕(文王)이 기산(岐山)에서 형통(亨通)함은 역시 때에 순응하였기 때문일 뿐이다. 위로는 윗사람에게 순하고 아래로는 아랫사람에게 순하며, 자신은 순히 의(義)에 처하였으므로 순한 일이라고 말한 것이다.
【本義】 以順而升은 登祭于山之象이라.
순함으로써 올라감은 산(山)에 올라가 제사(祭祀)하는 상(象)이다.
六五는 貞이라야 吉하리니 升階로다.
육오(六五)는 정(貞)하여야 길(吉)하리니, 계단을 오르듯 하리로다.
【本義】 貞하면 吉하여 升階리라.
【본의】 정(貞)하면 길(吉)하여 계단에 오르리라.
【傳】 五以下有剛中之應이라 故能居尊位而吉이라 然質本陰柔하니 必守貞固라야 乃得其吉也라 若不能貞固면 則信賢不篤하고 任賢不終하리니 安能吉也리오 階는 所由而升也라 任剛中之賢하여 輔之而升이 猶登進自階니 言有由而易也라 指言九二正應이나 然在下之賢이 皆用升之階也니 能用賢則彙升矣리라.
오(五)는 아래에 강중(剛中)의 응(應)이 있으므로 존위(尊位)에 거하여 길(吉)하다. 그러나 자질이 본래 음유(陰柔)이니, 반드시 정고(貞固)함을 지켜야 길(吉)함을 얻을 것이다. 만일 정고(貞固)하지 못하면 현자(賢者)를 믿음이 돈독하지 못하고 현자(賢者)에게 맡김에 끝마치지 못할 것이니, 어찌 길(吉)하겠는가. 계단은 말미암아 올라가는 것이다. 강중(剛中)의 현자(賢者)에게 맡겨 보필해서 올라감이 계단을 말미암아 올라가는 것과 같으니, 말미암음이 있어 쉬움을 말한 것이다. 구이(九二)의 정응(正應)을 가리켜 말한 것이나 아래에 있는 현자(賢者)가 모두 계단을 사용하여 올라올 것이니, 현자(賢者)를 등용하면 떼지어 오를 것이다.
【本義】 以陰居陽하여 當升而居尊位하니 必能正固면 則可以得吉而升階矣리라 階는 升之易者라.
음(陰)이 양위(陽位)에 거하여 올라갈 때를 당해서 존위(尊位)에 거하니, 반드시 정고(正固)하면 길(吉)하여 계단을 올라가는 것과 같을 것이다. 계단은 오름에 쉬운 것이다.
象曰 貞吉升階는 大得志也리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정길승계(貞吉升階)’는 크게 뜻을 얻으리라.”
【傳】 倚任賢才而能貞固하니 如是而升이면 可以致天下之大治하리니 其志可大得也라 君道之升[一作興]은 患无賢才之助爾니 有助則猶自階而升也라.
현재(賢才)에게 의지하고 맡기며 정고(貞固)하니, 이와 같이 하여 올라가면 천하(天下)의 큰 다스림을 이룩할 것이니, 그 뜻이 크게 얻어지는 것이다. 군주(君主)의 도(道)가 올라감은 현재(賢才)의 도움이 없음을 근심할 뿐이니, 도와주는 이가 있다면 계단을 말미암아 올라가는 것과 같을 것이다.
上六은 冥升이니 利于不息之貞하니라.
상육(上六)은 올라감에 어두우니, 쉬지 않는 정도(貞道)에 이롭다.
【傳】 六以陰居升之極하니 昏冥於升하여 知進而不知止者也니 其爲不明이 甚矣라 然求升不已之心을 有時而用於貞正而當不息之事면 則爲宜矣라 君子於貞正之德에 終日乾乾하여 自强不息하니 如[一作以]上六不已之心을 用之於此則利也라 以小人貪求无已之心으로 移於進德이면 則何善如之리오.
육(六)은 음(陰)으로서 승(升)의 극(極)에 거하였으니, 올라감에 어두워서 나아갈 줄만 알고 멈출 줄을 알지 못하는 이이니, 밝지 못함이 심하다. 그러나 올라가기를 구하여 그치지 않는 마음을 때로 정정(貞正)하여 마땅히 쉬지 않아야 하는 일에 사용하면 마땅함이 된다. 군자(君子)는 정정(貞正)한 덕(德)에 있어 종일토록 힘쓰고 힘써 스스로 힘쓰고 쉬지 않으니, 만일 상육(上六)의 그치지 않는 마음을 여기에 쓰면 이로울 것이다. 소인(小人)이 탐하고 구하기를 그치지 않는 마음을 덕(德)에 나아감에 옮겨 쓴다면 어떤 선(善)이 이와 같겠는가.
【本義】 以陰居升極하여 昏冥不已者也니 占者遇此면 无適而利요 但可反其不已於外之心하여 施之於不息之正而已니라.
음(陰)으로 승(升)의 극(極)에 거하여 어두워 그치지 않는 것이니, 점치는 이가 이것을 만나면 가는 곳마다 이로움이 없을 것이요, 다만 밖에 그치지 않는 마음을 돌이켜서 쉬지 않는 정도(正道)에 시행할 뿐이다.
象曰 冥升在上하니 消不富也로다.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명승(冥升)으로 위에 있으니, 사라져 부(富)하지 못하도다.”
【傳】 昏冥於升하여 極上而不知已하니 唯有消亡이니 豈復有加益也리오 不富는 无復增益也라 升旣極이면 則有退而无進也니라.
올라감에 어두워서 위로 지극히 올라가고 그칠 줄을 모르니 오직 소망(消亡)함이 있을 뿐이다. 어찌 다시 더함이 있겠는가. 불부(不富)는 다시 증익(增益)함이 없는 것이다. 올라감이 이미 극(極)에 이르면 물러감만 있고 나아감은 없다.

46. 승(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