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쾌(夬)
【傳】 夬는 序卦에 益而不已면 必決이라 故受之以夬하니 夬者는 決也라 하니라 益之極이면 必決而後止니 理无常益하여 益[一无下益字]而不已면 已乃決也니 夬所以次益也라 爲卦 兌上乾下하니 以二體言之하면 澤은 水之聚也어늘 乃上於至高之處하니 有潰決之象이요 以爻言之하면 五陽在下하여 長而將極하고 一陰在上하여 消而將盡하니 衆陽上進하여 決去一陰은 所以爲夬也니 夬者는 剛決之義라 衆陽進而決去一陰하니 君子道長하고 小人消衰將盡之時也라.
쾌괘(夬卦)는 〈서괘전(序卦傳)〉에 “더하고 그치지 않으면 반드시 터진다. 그러므로 쾌괘(夬卦)로 받았으니, 쾌(夬)는 터짐이다.” 하였다. 더함이 지극하면 반드시 터진 뒤에 그치니, 이치는 항상 더함이 없어서 더하고 그치지 않으면 끝내는 터지니, 쾌괘(夬卦)가 이 때문에 익괘(益卦)의 다음이 된 것이다. 괘(卦)됨이 태(兌)가 위에 있고 건(乾)이 아래에 있으니, 두 체(體)로써 말하면 못은 물이 모인 것인데 마침내 지극히 높은 곳에 올라가 있으니 터지는 상(象)이 있고, 효(爻)로써 말하면 다섯 양(陽)이 아래에 있어 자라나 장차 지극하게 되고 한 음(陰)이 위에 있어 사라져 장차 다하게 되었으니, 여러 양(陽)이 위로 나아가 한 음(陰)을 결단(決斷)하여 제거함은 쾌(夬)가 되는 것이니, 쾌(夬)는 강하게 결단하는 뜻이다. 여러 양(陽)이 나아가 한 음(陰)을 결단하여 제거하니, 군자(君子)의 도(道)가 자라나고 소인(小人)이 사라지고 쇠하여 장차 다하게 되는 때이다.
夬는 揚于王庭이니 孚號有厲니라.
쾌(夬)는 왕(王)의 조정(朝廷)에서 드러냄이니, 지성(至誠)으로 호령(號令)하여 위태롭게 여기는 마음이 있게 하여야 한다.
【本義】 揚于王庭하여 孚號나 有厲며,
【본의】 왕(王)의 조정(朝廷)에서 드러내어 정성으로 호소하여야 하나 위태롭게 여김이 있어야 하며
【傳】 小人方盛之時엔 君子之道未勝하니 安能顯然以正道決去之리오 故含晦俟時하여 漸圖消之之道어니와 今旣小人衰微하여 君子道盛이면 當顯行之於公朝하여 使人明知善惡이라 故로 云揚于王庭이라 孚는 信之在中이니 誠意也요 號者는 命衆之辭라 君子之道 雖長盛이나 而不敢忘戒備라 故至誠以命衆하여 使知尙有危道하니 雖以此之甚盛으로 決彼之甚衰나 若易而无備면 則有不虞之悔리니 是尙有危理니 必有戒懼之心則无患也라 聖人設戒之意 深矣로다.
소인(小人)이 막 성할 때에는 군자(君子)의 도(道)가 이기지 못하니, 어찌 드러내놓고 정도(正道)로써 결단(決斷)하여 제거하겠는가. 그러므로 감추고 드러내지 않아 때를 기다려서 점점 소인(小人)을 사라지게 할 방법을 도모하여야 하지만, 지금은 이미 소인(小人)들이 쇠미(衰微)하여 군자(君子)의 도(道)가 성(盛)하다면 마땅히 드러내놓고 공조(公朝)에서 행하여 사람이 선(善)과 악(惡)을 분명히 알게 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왕정(王庭)에서 드날린다’고 한 것이다. 부(孚)는 신(信)이 마음속에 있는 것이니 성의(誠意)이며, 호(號)는 사람들에게 명령하는 말이다. 군자(君子)의 도(道)가 비록 자라고 성(盛)하나 감히 경계(警戒)와 대비(對備)를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지성(至誠)으로 사람들에게 명하여 아직도 위태로운 길이 있음을 알게 하여야 하니, 비록 심히 성(盛)한 이것으로 심히 쇠(衰)한 저들을 결단(決斷)하나, 만일 쉽게 여기고 대비함이 없으면 예상하지 못한 뉘우침이 있을 것이니, 이는 아직도 위태로운 이치가 있는 것이니, 반드시 경계(警戒)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으면 화가 없다. 성인(聖人)이 경계(警戒)를 베푼 뜻이 깊도다.
告自邑이요 不利卽戎이며 利有攸往하니라.
사읍(私邑)부터 고(告)하고 병란(兵亂)에 나아감은 이롭지 않으며 가는 바를 둠은 이롭다.
【本義】 不利卽戎이면 利有攸往하리라
【본의】 병란(兵亂)에 나아감을 이롭게 여기지 않으면 가는 바를 둠이 이로우리라.
【傳】 君子之治小人은 以其不善也니 必以己之善道로 勝革之라 故聖人誅亂에 必先修己하시니 舜之敷文德이 是也라 邑은 私邑이니 告自邑은 先自治也라 以衆陽之盛으로 決於一陰이면 力固有餘나 然不可極其剛하여 至於太過니 太過면 乃如蒙上九之爲寇也라 戎兵者는 强武之事니 不利卽戎은 謂不宜尙壯武也라 卽은 從也니 從戎은 尙武也라 利有攸往은 陽雖盛이나 未極乎上하고 陰雖微나 猶有未去하니 是小人尙有存者니 君子之道有未至也라 故宜進而往也라 不尙剛武而其道益進은 乃夬之善也라.
군자(君子)가 소인(小人)을 다스림은 소인(小人)이 불선(不善)하기 때문이니, 반드시 자기의 선(善)한 도(道)로써 이겨 고쳐야 한다. 그러므로 성인(聖人)이 난(亂)을 다스릴 때에는 반드시 먼저 자신을 닦는 것이니, 순(舜)임금이 문덕(文德)을 편 것이 이것이다. 읍(邑)은 사읍(私邑)이니, 자기 사읍(私邑)부터 고(告)한다는 것은 먼저 스스로 다스리는 것이다. 여러 양(陽)의 성(盛)함으로 한 음(陰)을 결단(決斷)하면 힘이 진실로 남음이 있으나 강(剛)함을 지극히 하여 너무 지나침에 이르러서는 안 되니, 너무 지나치면 마침내 몽괘(蒙卦)의 상구(上九)가 침략자가 되는 것과 같다. 융병(戎兵)은 강하고 굳센 일이니, 병란(兵亂)에 나아감이 이롭지 않다는 것은 건장(健壯)함과 무력을 숭상해서는 안 됨을 말한 것이다. 즉(卽)은 따름이니, 종융(從戎)은 무(武)를 숭상하는 것이다. 가는 바를 둠이 이롭다는 것은 비록 양(陽)이 성(盛)하나 아직 위에 지극하지 않고, 음(陰)이 비록 미약하나 아직 제거되지 않았으니, 이는 소인(小人)이 아직도 남아 있는 것이니, 군자(君子)의 도(道)가 지극하지 못함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땅히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강무(剛武)을 숭상하지 않고 그 도(道)가 더욱 나아감은 바로 쾌(夬 )의 선(善)이다.
【本義】 夬는 決也니 陽決陰也니 三月之卦也라 以五陽去一陰하니 決之而已나 然其決之也에 必正名其罪而盡誠以呼號其衆하여 相與合力이나 然亦尙有危厲하니 不可安肆요 又當先治其私요 而不可專尙威武니 則利有所往也니 皆戒之之辭라.
쾌(夬)는 결단(決斷)함이니, 양(陽)이 음(陰)을 결단(決斷)하는 것이니, 삼월(三月)의 괘(卦)이다. 다섯 양(陽)으로 한 음(陰)을 제거하니, 결단(決斷)할 뿐이다. 그러나 결단(決斷)할 때에 그 죄를 바로 이름하고, 지성을 다하여 무리들에게 호소하여 서로 힘을 합하여야 하나 역시 아직도 위태로움이 있으니 편안히 여기고 마음을 놓지 말 것이요, 또 마땅히 먼저 그 사사로움을 다스리며 오로지 위엄과 무력만 숭상해서는 안 되니, 이렇게 하면 가는 바를 둠이 이로운 바 이는 모두 경계(警戒)하는 말이다.
彖曰 夬는 決也니 剛決柔也니 健而說하고 決而和하니라.
〈단전(彖傳)〉에 말하였다. “쾌(夬)는 결단(決斷)함이니, 강(剛)이 유(柔)를 결단(決斷)하는 것이니, 굳세고 기뻐하며 결단(決斷)하고 화(和)하다.
【傳】 夬爲決義는 五陽이 決上之一陰也일새라 健而說, 決而和는 以二體로 言卦才也라 下健而上說은 是健而能說이요 決而能和니 決之至善也라 兌說이 爲和라.
쾌(夬)가 결(決)의 뜻이 됨은 다섯 양(陽)이 위의 한 음(陰)을 결단(決斷)하기 때문이다. 건이열(健而說), 결이화(決而和)는 두 체(體)로써 괘(卦)의 재질을 말한 것이다. 아래는 굳세고 위는 기뻐함은 이는 굳세고 기뻐하며, 결단(決斷)하고 화함이니, 결단(決斷)함의 지극히 좋은 것이다. 태(兌)의 열(說)이 화(和)가 된다.
【本義】 釋卦名義而贊其德이라.
괘명(卦名)의 뜻을 해석하고 그 덕(德)을 칭찬한 것이다.
揚于王庭은 柔乘五剛也요,
‘양우왕정(揚于王庭)’은 유(柔)가 다섯 강(剛)을 타고 있기 때문이요,
【傳】 柔雖消矣나 然居五剛之上하여 猶爲乘陵之象하니 陰而乘陽은 非理之甚이라 君子勢旣足以去之인댄 當顯揚其罪於王朝大庭하여 使衆知善惡也니라.
유(柔)가 비록 사라졌으나 다섯 강(剛)의 위에 거하여 아직도 타고 능멸하는 상(象)이 되니, 음(陰)이 양(陽)을 타고 있음은 도리가 아님이 심한 것이다. 군자(君子)의 세력이 이미 제거할 수 있다면 마땅히 그 죄를 왕조(王朝)의 큰 조정(朝庭)에서 드러내어 사람이 선(善)과 악(惡)을 알게 하여야 한다.
孚號有厲는 其危乃光也요,
‘부호유려(孚號有厲)’는 그 위태로움이 마침내 광대(光大)해짐이요,
【傳】 盡誠信以命其衆하여 而知有危懼면 則君子之道乃无虞而光大也라.
성신(誠信)을 다하여 무리들에게 호령(號令)해서 위태로움과 두려움이 있음을 알게 하면 군자(君子)의 도(道)가 마침내 근심이 없어 광대(光大)해지는 것이다.
告自邑不利卽戎은 所尙이 乃窮也요,
‘고자읍불리즉융(告自邑不利卽戎)’은 숭상하는 바가 마침내 궁극함이요,
【傳】 當先自治요 不宜專尙剛武니 卽戎則所尙이 乃至窮極矣라 夬之時所尙은 謂剛武也라.
마땅히 먼저 스스로 다스릴 것이요, 오로지 강무(剛武)만 숭상(崇尙)해서는 안 되니, 병란(兵亂)에 나아가면 숭상(崇尙)하는 바가 마침내 궁극함에 이르게 된다. 쾌(夬)의 때에 숭상하는 바는 강무(剛武)를 이른 것이다.
利有攸往은 剛長이 乃終也리라.
가는 바를 둠이 이로움은 강(剛)의 자람이 이에 종극(終極)하리라.
【傳】 陽剛雖盛이나 長猶未終하여 尙有一陰하니 更當決去면 則君子之道純一而无害之者矣리니 乃剛長之終也라.
양강(陽剛)이 비록 성(盛)하나 자람이 아직 끝나지 않아 아직도 한 음(陰)이 있으니, 다시 결단(決斷)하여 제거하면 군자(君子)의 도(道)가 순일(純一)하여 해치는 이가 없을 것이니, 바로 강(剛)의 자람이 끝나는 것이다.
【本義】 此釋卦辭라 柔乘五剛은 以卦體言이니 謂以一小人加于衆君子之上이니 是其罪也라 剛長乃終은 謂一變則爲純乾也라.
이는 괘사(卦辭)를 해석한 것이다. 유(柔)가 다섯 강(剛)을 타고 있다는 것은 괘체(卦體)로써 말한 것이니, 한 소인(小人)이 여러 군자(君子)의 위에 가함을 이르는 바, 이것이 그 죄이다. 강(剛)의 자람이 이에 끝난다는 것은 한 번 변하면 순건(純乾)이 됨을 이른다.
象曰 澤上於天이 夬니 君子以하여 施祿及下하며 居德하여 則(칙)忌하나니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못이 하늘에 올라감이 쾌(夬)이니, 군자(君子)가 이로써 녹(祿)을 베풀어 아래에 미치며, 덕(德)에 거하여 금기(禁忌)사항을 법제화한다.”
【傳】 澤은 水之聚也어늘 而上於天至高之處라 故爲夬象이라 君子觀澤決於上而注漑於下之象이면 則以施祿及下하니 謂施其祿澤하여 以及於下也라 觀其決潰之象이면 則以居德則忌하나니 居德은 謂安處其德이요 則은 約也요 忌는 防也니 謂約立防禁이니 有防禁則无潰散也라 王弼은 作明忌하니 亦通이라 不云澤在天上而云澤上於天은 上於天則意不安而有決潰之勢요 云在天上이면 乃安辭也라.
못은 물이 모인 것인데 하늘의 지극히 높은 곳에 올라가 있다. 그러므로 터짐의 상(象)이 된 것이다. 군자(君子)가 못이 위에서 터져 아래로 대주는 상(象)을 관찰하면 녹(祿)을 베풀어 아래에 미치니, 녹(祿)과 은택(恩澤)을 베풀어 아래에 미침을 이른다. 그 터지는 상(象)을 보면 덕(德)에 거하여 칙기하나니, 거덕(居德)은 덕(德)에 편안히 처함이고 칙(則)은 약조(約條)를 만드는 것이고 기(忌)는 방지함이니, 방금(防禁)을 약조(約條)로 만들어 세움을 이르니, 방금(防禁)이 있으면 터져 흩어짐이 없게 된다. 왕필(王弼)은 ‘명기(明忌)’로 썼으니, 역시 통한다. 못이 하늘 위에 있다고 말하지 않고 못이 하늘에 올라간다고 한 것은 하늘에 올라간다고 말하면 뜻이 불안하여 터지는 세(勢)가 있고, 하늘 위에 있다고 말하면 바로 편안한 말이기 때문이다.
【本義】 澤上於天은 潰決之勢也요 施祿及下는 潰決之意也라 居德則忌는 未詳이라.
못이 하늘에 올라감은 터지는 세(勢)요, 녹(祿)을 베풀어 아래에 미침은 터지는 뜻이다. ‘거덕칙기(居德則忌)’는 미상(未詳)이다.
初九는 壯于前趾니 往하여 不勝이면 爲咎리라.
초구(初九)는 앞발에 건장(健壯)함이니, 가서 이기지 못하면 허물이 되리라.
【本義】 往하여 不勝하여,
【본의】 가서 이기지 못하여,
【傳】 九는 陽爻而乾體니 剛健在上之物이어늘 乃在下而居決時하니 壯于前進者也라 前趾는 謂進行이라 人之決於行也에 行而宜則其決爲是요 往而不宜則決之過也라 故往而不勝則爲咎也라 夬之時而往은 往決也라 故以勝負言이라 九居初而壯於進하니 躁於動者也라 故有不勝之戒라 陰雖將盡이나 而己之躁動이 自宜有不勝之咎하니 不計彼也라.
구(九)는 양효(陽爻)이고 건체(乾體)이니, 강건함은 위에 있는 사물인데 마침내 아래에 있고 결단하는 때에 처했으니, 앞으로 나아감에 건장(健壯)한 것이다. 앞발은 진행(進行)함을 이른다. 사람이 가기를 결단(決斷)할 때에는 가서 마땅하면 그 결단(決斷)함이 옳은 것이요 가서 마땅하지 않으면 결단(決斷)함이 잘못된 것이다. 그러므로 가서 이기지 못하면 허물이 되는 것이다. 쾌( )의 때에 감은 가기를 결단(決斷)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승부(勝負)로써 말한 것이다. 구(九)가 초(初)에 거하여 나아감에 건장(健壯)하니, 동(動)하기를 조급히 하는 것이므로 이기지 못하는 경계(警戒)가 있는 것이다. 음(陰)이 비록 장차 다하게 되었으나 자기의 조급한 행동이 스스로 이기지 못하는 허물이 있는 것이니, 음(陰)을 따지지 않는다.
【本義】 前은 猶進也라 當決之時하여 居下任壯하니 不勝이 宜矣라 故其象占如此하니라.
전(前)은 진(進)과 같다. 결단(決斷)할 때를 당해서 아래에 거하여 건장(健壯)함을 맡았으니, 이기지 못함이 당연하다. 그러므로 그 상(象)과 점(占)이 이와 같은 것이다.
象曰 不勝而往이 咎也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이길 수 없는데도 가는 것이 허물이다.”
【傳】 人之行에 必度(탁)其事하여 可爲然後決之則无過矣어늘 理不能勝而且往이면 其咎可知라 凡行而有咎者는 皆決之過也라.
사람이 갈 때에는 반드시 그 일을 헤아려 할 만한 연후에 결단(決斷)하면 허물이 없는데, 이치가 이길 수 없는데도 간다면 그 허물을 알 만하다. 무릇 감에 허물이 있는 것은 모두 결단(決斷)함의 잘못인 것이다.
九二는 惕號니 莫(暮)夜에 有戎이라도 勿恤이로다.
구이(九二)는 두려워하고 호령함이니, 늦은 밤에 적병(敵兵)이 있더라도 걱정할 것이 없도다.
【傳】 夬者는 陽決陰이니 君子決小人之時에 不可忘戒備也라 陽長將極之時而二處中居柔하여 不爲過剛하고 能知戒備하니 處夬之至善也라 內懷兢惕而外嚴誡號하니 雖莫夜有兵戎이라도 亦可勿恤矣라.
쾌(夬)는 양(陽)이 음(陰)을 결단(決斷)함이니, 군자(君子)가 소인(小人)을 결단(決斷)하는 때에 경계(警戒)와 대비를 잊어서는 안 된다. 양(陽)이 자라나 장차 지극할 때인데, 이(二)가 중(中)에 처하고 유(柔)에 거하여 지나치게 강(剛)하지 않고 경계(警戒)하고 대비할 줄을 아니, 쾌(夬)에 처하기를 지극히 선(善)하게 하는 것이다. 안에 두려워하는 마음을 품고 밖으로 경계(警戒)와 호령을 엄하게 하니, 비록 늦은 밤에 병융(兵戎)이 있더라도 역시 걱정할 것이 없는 것이다.
【本義】 九二當決之時하여 剛而居柔하고 又得中道라 故能憂惕號呼하여 以自戒備하여 而莫夜有戎이라도 亦可无患也라.
구이(九二)는 결단(決斷)할 때를 당하여 강(剛)으로 유(柔)에 거하고 또 중도(中道)를 얻었다. 그러므로 근심하고 불러 모아 스스로 경계(警戒)하고 대비(對備)해서 늦은 밤에 적병(敵兵)이 있더라도 역시 걱정이 없을 수 있는 것이다.
象曰 有戎勿恤은 得中道也일새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적병(敵兵)이 있더라도 근심할 것이 없음은 중도(中道)를 얻었기 때문이다.”
【傳】 莫夜有兵戎은 可懼之甚也나 然可勿恤者는 以自處之善也일새라 旣得中道하고 又知惕懼하며 且有戒備하니 何事之足恤也리오 九居二하니 雖得中이나 然非正이어늘 其爲至善은 何也오 曰 陽決陰은 君子決小人이어늘 而得中하니 豈有不正也리오 知時識勢는 學易之大方也니라.
늦은 밤에 병융(兵戎)이 있음은 두려워할 만함이 심하나 걱정할 것이 없는 것은 자처하기를 선(善)하게 하기 때문이다. 이미 중도를 얻었고 또 두려워할 줄을 알며 또 경계(警戒)와 대비가 있으니, 무슨 일을 걱정하겠는가. 구(九)가 이(二)에 거하였으니, 비록 중(中)을 얻었으나 정(正)이 아닌데 지선(至善)이 됨은 어째서인가? 양(陽)이 음(陰)을 결단(決斷)함은 군자(君子)가 소인(小人)을 결단(決斷)하는 것인데 중(中)을 얻었으니, 어찌 바르지 않음이 있겠는가. 때를 알고 세(勢)를 아는 것은 역(易)을 배우는 큰 방법이다.
九三은 壯于頄니 有凶이나 君子夬夬하면 獨行遇雨하여 若濡有慍이면 无咎리라.
구삼은 광대뼈에 건장하게 나타나 흉함이 있으나 군자가 결단을 쾌하게 하면 홀로 행함에 젖은 듯하여 성내면 허물이 없으리라.
【傳】九三은 壯于頄하여 有凶하고 獨行遇雨니 君子는 夬夬라 若濡有慍이면 无咎리라
【정전】 구삼(九三)은 광대뼈에 건장(健壯)하여 흉(凶)함이 있고, 홀로 가 비를 만나니, 군자(君子)는 결단(決斷)함을 쾌하게 한다. 젖는 듯이 여겨 노여워함이 있으면 허물이 없으리라.
【本義】 壯于頄니 有凶이나 君子 夬夬면 獨行遇雨하여 若濡有慍이나 无咎리라.
【본의】 광대뼈에 건장하게 나타남이니 흉(凶)함이 있으나 군자(君子)가 결단을 쾌하게 하면 홀로 행함에 비에 젖는 듯하여 성냄을 당하나 허물이 없으리라.
【傳】 爻辭差錯이라 安定胡公이 移其文曰 壯于頄하여 有凶하고 獨行遇雨니 若濡有慍이면 君子夬夬하여 无咎라 하니 亦未安也라 當云壯于頄하여 有凶하고 獨行遇雨니 君子夬夬라 若濡有慍이면 无咎리라 夬決은 尙剛健之時니 三居下體之上하고 又處健體之極하여 剛果於決者也라 頄는 顴骨也니 在上而未極於上者也라 三居下體之上하여 雖在上而未爲最上하니 上有君而自任其剛決이면 壯于頄者也니 有凶之道也라 獨行遇雨는 三與上六으로 爲正應하니 方群陽共決一陰之時하여 己若以私應之故로 不與衆同而獨行이면 則與上六陰陽和合이라 故云遇雨라 하니 易中言雨者는 皆謂陰陽和也라 君子道長하여 決去小人之時어늘 而己獨與之和면 其非可知라.
효사(爻辭)가 착오(錯誤)되었다. 안정호공(安定胡公)은 그 글을 옮겨 “광대뼈에 건장(健壯)하여 흉(凶)함이 있고 홀로 가 비를 만나니, 젖는 듯이 여기어 노여워함이 있으면 군자(君子)가 결단(決斷)함을 쾌하게 하여 허물이 없다.” 하였으니, 또한 온당치 못하다. 마땅히 이르기를 “광대뼈에 건장(健壯)하여 흉함이 있고, 홀로 가 비를 만나니 군자(君子)는 결단(決斷)함을 쾌하게 한다. 젖는 듯이 여겨 노여워함이 있으면 허물이 없으리라.” 하여야 할 것이다. 쾌결(夬決)은 강건(剛健)을 숭상하는 때이니, 삼(三)은 하체(下體)의 위에 거하고 또 건체(健體)의 극(極)에 처하여 결단(決斷)하기를 강과(剛果)하게 하는 것이다. 귀(頄)는 광대뼈이니, 위에 있으나 위에 지극하지 않은 것이다. 삼(三)이 하체(下體)의 위에 거하여 비록 위에 있으나 최상(最上)은 아니니, 위에 군주가 있는데 스스로 강결(剛決)을 자임(自任)하면 광대뼈에 건장(健壯)한 것이니, 흉함이 있는 도(道)이다. ‘독행우우(獨行遇雨)’는 삼(三)이 상육(上六)과 정응(正應)이 되니, 여러 양(陽)이 함께 한 음(陰)을 결단(決斷)하는 때를 당하여 자기가 만일 사사로이 응(應)하는 연고로 여럿과 함께 행동하지 않고 홀로 가면 상육(上六)과 더불어 음양(陰陽)이 화합하게 된다. 그러므로 비를 만난다고 말한 것이니, 역(易) 가운데 비라고 말한 것은 모두 음양(陰陽)이 화합함을 이른다. 군자(君子)의 도(道)가 자라나 소인(小人)을 결단(決斷)하여 제거할 때인데 자기만 홀로 소인(小人)과 화합한다면 그 나쁨을 알 수 있다.
唯君子處斯時면 則能夬夬리니 謂夬其夬하여 果決其斷也라 雖其私與나 當遠絶之하여 若見濡汚하여 有慍惡之色이니 如此則无過咎也라 三은 健體而處正하니 非必有是失也로되 因此義하여 以爲敎耳라 爻文所以交錯者는 由有遇雨字하고 又有濡字라 故誤以爲連也라.
군자(君子)는 이러한 때에 처하면 능히 결단(決斷)을 쾌하게 할 것이니, 그 결단(決斷)을 쾌하게 하여 그 결단(決斷)을 과결(果決)히 함을 이른다. 비록 사사로이 친하나 마땅히 멀리하고 끊어서 마치 더러움에 젖는 듯이 여겨 노여워하고 미워하는 기색이 있어야 하니, 이와 같이 하면 허물이 없을 것이다. 삼(三)은 건체(健體)로서 정(正)에 처하니 반드시 이러한 잘못이 있는 것은 아니나, 이 뜻을 인하여 가르침을 삼았을 뿐이다. 효(爻)의 글이 서로 착오(錯誤)된 까닭은 우자(遇字)와 우자(雨字)가 있고 또 유자(濡字)가 있으므로 잘못 연결했기 때문이다.
【本義】 頄는 顴也라 九三이 當決之時하여 以剛而過乎中하니 是欲決小人而剛壯이 見(현)于面目也니 如是則有凶道矣라 然在衆陽之中하여 獨與上六爲應하니 若能果決其決하여 不係私愛면 則雖合於上六하여 如獨行遇雨하여 至於若濡而爲君子所慍이나 然終必能決去小人而无所咎也라 溫嶠之於王敦에 其事類此하니라.
귀(頄)는 광대뼈이다. 구삼(九三)은 결단(決斷)할 때를 당하여 강(剛)으로 중(中)을 지났으니, 이는 소인(小人)을 결단(決斷)하고자 하여 강장(剛壯)함이 면목(面目)에 나타난 것이니, 이와 같으면 흉(凶)한 도(道)가 있다. 그러나 여러 양(陽)의 가운데에 있으면서 홀로 상육(上六)과 응(應)하니, 만약 그 결단(決斷)을 과결(果決)하게 하여 사사로운 사랑에 얽매이지 않는다면 비록 상육(上六)과 합하여 홀로 감에 비를 만나서 젖는 듯하여 군자(君子)에게 노여움을 받음에 이르나 끝내는 반드시 소인(小人)을 결단(決斷)하여 제거해서 허물이 없을 것이다. 온교(溫嶠)가 왕돈(王敦)에 있어서 그 일이 이와 유사(類似)하다.
象曰 君子는 夬夬라 終无咎也니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군자(君子)는 결단(決斷)을 쾌하게 하는지라, 끝내 허물이 없는 것이다.”
【傳】 牽梏於私好는 由无決也니 君子는 義之與比하여 決於當決이라 故終不至於有咎也라.
사사로이 좋아함에 끌리고 질곡(桎梏)됨은 결단(決斷)함이 없기 때문이니, 군자(君子)는 의(義)에 따라 마땅히 결단할 때에 결단(決斷)한다. 그러므로 끝내 허물이 있음에 이르지 않는 것이다.
九四는 臀无膚며 其行次且(저)니 牽羊하면 悔亡하련마는 聞言하여도 不信하리로다.
구사(九四)는 볼기짝에 살이 없으며 그 감을 머뭇거리니, 양을 끌듯 하면 뉘우침이 없겠으나 말을 들어도 믿지 않으리라.
【傳】 臀无膚는 居不安也요 行次且는 進不前也니 次且는 進難之狀이라 九四以陽居陰하여 剛決不足하니 欲止則衆陽並進於下하여 勢不得安하여 猶臀傷而居不能安也요 欲行則居柔하여 失其剛壯하여 不能强進이라 故其行次且也라 牽羊悔亡는 羊者는 群行之物이요 牽者는 挽拽之義니 言若能自强而牽挽하여 以從群行이면 則可以亡其悔라 然旣處柔하니 必不能也요 雖使聞是言이라도 亦必不能信用也리니 夫過而能改와 聞善而能用과 克己以從義는 唯剛明者能之라 在他卦엔 九居四 其失이 未至如此之甚이로되 在夬而居柔일새 其害大矣니라.
볼기짝에 살이 없음은 거함이 불안한 것이요, 감을 머뭇거림은 나아감에 전진(前進)하지 못하는 것이니, 차저(次且)는 나아감을 어렵게 여기는 모양이다. 구사(九四)는 양(陽)으로 음위(陰位)에 거하여 강결(剛決)함이 부족하니, 머물고자 하면 여러 양(陽)이 아래에서 함께 올라와 세(勢)가 편안할 수 없어서 마치 볼기짝이 상(傷)하여 거함이 편안할 수 없는 것과 같고, 가고자 하면 유(柔)에 거하여 강장(剛壯)함을 잃어서 강(强)하게 나아가지 못한다. 그러므로 그 감을 머뭇거리는 것이다. ‘견양회망(牽羊悔亡)’은 양(羊)은 떼지어 다니는 사물이요 견(牽)은 당기고 끄는 뜻이니, 만일 스스로 강(强)하게 끌어당겨서 여럿을 따라 가면 뉘우침이 없을 것임을 말한 것이다. 그러나 이미 유(柔)에 처하여 반드시 능하지 못할 것이요, 비록 이러한 말을 듣더라도 역시 반드시 신용(信用)하지 않을 것이니, 허물이 있음에 능히 고침과 선(善)을 듣고서 씀과 사사로움을 이겨 의(義)를 따름은 오직 강명(剛明)한 이만이 능하다. 다른 괘(卦)에 있어서는 구(九)가 사(四)에 거한 잘못이 이와 같이 심함에 이르지 않는데, 쾌(夬)에 있어 유(柔)에 거했으므로, 그 해로움이 큰 것이다.
【本義】 以陽居陰하여 不中不正하여 居則不安하고 行則不進하니 若不與衆陽競進而安出其後면 則可以亡其悔라 然當決之時하여 志在上進하여 必不能也니 占者聞其言而信이면 則轉凶而吉矣리라 牽羊者는 當其前則不進이요 縱之使前而隨其後면 則可以行矣라.
양(陽)이 음위(陰位)에 거하여 중정(中正)하지 못해서 거하면 불안(不安)하고 가면 나아가지 못하니, 만일 여러 양(陽)과 다투어 나아가지 않고 편안히 그 뒤에 나오면 뉘우침이 없을 수 있다. 그러나 결단(決斷)할 때를 당하여 뜻이 위로 나아감에 있어 반드시 능하지 못할 것이니, 점치는 이가 이 말을 듣고서 믿으면 흉(凶)함을 바꾸어 길(吉)하게 할 것이다. 양(羊)을 끌고가는 이는 그 앞을 가로 막으면 나아가지 않고, 풀어놓아 앞으로 가게 하고 그 뒤를 따라가면 갈 수 있다.
象曰 其行次且는 位不當也요 聞言不信은 聰不明也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그 감을 머뭇거림은 자리가 마땅하지 않기 때문이요, 말을 듣고서도 믿지 않음은 귀가 밝지 못해서이다.”
【傳】 九處陰은 位不當也라 以陽居柔하여 失其剛決이라 故不能强進하여 其行次且라 剛然後能明이니 處柔則遷하여 失其正性이니 豈復有明也리오 故聞言而不能信者는 蓋其聰聽之不明也라.
구(九)가 음위(陰位)에 처함은 자리가 마땅하지 않은 것이다. 양(陽)으로 유위(柔位)에 거하여 강결(剛決)함을 잃었기 때문에 강(强)하게 나아가지 못하여 그 감을 머뭇거리는 것이다. 강(剛)한 뒤에 밝을 수 있으니, 유(柔)에 처하면 옮겨가서 바른 성(性)을 잃는다. 어찌 다시 밝음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말을 듣고서도 믿지 않음은 그 들음이 밝지 못해서이다.
九五는 莧陸夬夬면 中行에 无咎니라.
구오(九五)는 비름나물을 쾌하게 끊듯이 하면 중도(中道)에 허물이 없다.
【本義】 莧陸이니 夬夬호되 中行이면 无咎리라.
【본의】 비름나물의 상(象)이니 결단하고 결단하되 중행(中行)에 하면 허물이 없으리라.
【傳】 五雖剛陽中正으로 居尊位나 然切近於上六하니 上六은 說體而卦獨一陰이니 陽之所比也라 五爲決陰之主而反比之면 其咎大矣라 故必決其決을 如莧陸然이면 則於其中行之德에 爲无咎也니 中行은 中道也라 莧陸은 今所謂馬齒莧이 是也라 曝之難乾하여 感陰氣之多者也요 而脆易折하니 五若如莧陸雖感於陰而決斷之易면 則於中行에 无過咎矣요 不然則失其中正也라 感陰多之物에 莧陸이 爲易斷이라 故取爲象하니라.
오(五)가 비록 강양중정(剛陽中正)으로 존위(尊位)에 거했으나 상육(上六)과 매우 가까우니, 상육(上六)은 열(說)의 체(體)이고 괘(卦)에 홀로 음(陰)이 하나이니 양(陽)이 친하는 바이다. 오(五)는 음(陰)을 결단(決斷)하는 주체가 되어 도리어 음(陰)을 가까이 하면 그 허물이 크다. 그러므로 반드시 결단(決斷)을 과결(果決)하게 하기를 현륙(莧陸)과 같이 하면 중행(中行)의 덕(德)에 허물이 없음이 되니, 중행(中行)은 정도(正道)이다. 현륙(莧陸)은 지금의 이른바 마치현(馬齒莧)이 이것이다. 햇볕에 말려도 말리기 어려워서 음기(陰氣)에 감동(感動)됨이 많은 것인데 취약하여 끊기가 쉬우니, 오(五)가 만일 현륙( 陸)이 비록 음(陰)에 감동하였으나 결단(決斷)하기 쉬운 것과 같이 하면 중행(中行)에 있어 허물이 없을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중정(中正)을 잃을 것이다. 음(陰)에 감동(感動)됨이 많은 물건 중에 현륙(莧陸)이 끊기가 쉬우므로 취하여 상(象)을 삼은 것이다.
【本義】 莧陸은 今馬齒莧이니 感陰氣之多者라 九五當決之時하여 爲決之主어늘 而切近上六之陰하니 如莧陸然하여 若決而決之호되 而又不爲過暴하여 合於中行이면 則无咎矣니 戒占者當如是也라.
현륙(莧陸)은 지금의 마치현(馬齒莧)이니, 음기(陰氣)에 감동됨이 많은 것이다. 구오(九五)가 결단(決斷)할 때를 당하여 결단(決斷)하는 주체가 되었는데, 상육(上六)의 음(陰)과 매우 가까우니, 현륙(莧陸)과 같이 하여 만약 결단(決斷)하고 결단(決斷)하되 또 지나치게 포악하게 하지 아니하여 중행(中行)에 합하면 허물이 없을 것이니, 점치는 이에게 마땅히 이와 같이 하라고 경계(警戒)한 것이다.
象曰 中行无咎나 中未光也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중행(中行)에 허물이 없으나 중(中)이 광대(光大)하지 못하다.”
【傳】 (卦)[爻]辭에 言夬夬則於中行爲无咎矣어늘 象復盡其義하여 云中未光也라 하니라 夫人心正意誠이라야 乃能極中正之道而充實光輝어늘 五心有所比하니 以義之不可而決之하여 雖行於外엔 不失中正之義하여 可以无咎나 然於中道에 未得爲光大也라 蓋人心一有所欲이면 則離道矣니 夫子於此에 示人之意 深矣로다.
괘사(卦辭)에 “쾌쾌(夬夬)하면 중행(中行)에 허물이 없다.”고 말하였는데, 〈상전(象傳)〉에는 다시 그 뜻을 다하여 말하기를 “중(中)이 광대(光大)하지 못하다.”고 하였다. 사람은 마음이 바르고 뜻이 성실(誠實)하여야 중정(中正)한 도(道)를 극진히 해서 충실(充實)하여 광휘(光輝)한 것인데, 오(五)는 마음에 친한 바가 있으니, 의(義)에 불가(不可)하므로 결단(決斷)하여 비록 밖에 행함에 있어서는 중정(中正)의 뜻을 잃지 아니하여 허물이 없을 수 있으나 중도(中道)에 있어서는 광대(光大)함이 되지 못한다. 사람의 마음은 한번이라도 하고자 하는 바가 있으면 도(道)를 떠나게 되니, 부자(夫子)가 여기에서 사람에게 보여준 뜻이 깊도다.
【本義】 程傳備矣로다.
정전(程傳)에 구비하였다.
上六은 无號니 終有凶하니라.
상육(上六)은 울부짖을 필요가 없으니, 끝내 흉함이 있다.
【本義】 无號니 終有凶하리라.
【본의】 불러 모을 것이 없으니 끝내 흉함이 있으리라.
【傳】 陽長將極하고 陰消將盡하여 獨一陰이 處窮極之地하니 是衆君子得時하여 決去危極之小人也니 其勢必須消盡이라 故云无用號咷畏懼니 終必有凶也라 하니라.
양(陽)의 자라남이 장차 지극하고 음(陰)의 사라짐이 장차 다하게 되었는데 홀로 한 음(陰)이 궁극(窮極)의 자리에 처했으니, 이는 여러 군자(君子)가 때를 얻어 위험(危險)이 지극한 소인(小人)을 결단(決斷)하여 제거하는 것이니, 그 형세가 반드시 소진하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울부짖고 두려워할 필요가 없으니, 끝내 반드시 흉함이 있다고 한 것이다.
【本義】 陰柔小人이 居窮極之時하여 黨類已盡하여 无所號呼하니 終必有凶也라 占者有君子之德이면 則其敵當之요 不然이면 反是니라.
음유(陰柔) 소인(小人)이 궁극(窮極)한 때에 거하여 당류(黨類)가 이미 없어져서 불러 모을 것이 없으니, 끝내 반드시 흉함이 있을 것이다. 점치는 이가 군자(君子)의 덕(德)이 있으면 상대방이 이에 해당될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이와 반대일 것이다.
象曰 无號之凶은 終不可長也니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무호(无號)의 흉함은 끝내 장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
【傳】 陽剛君子之道 進而益盛하고 小人之道 旣已窮極하여 自然消亡하니 豈復能長久乎아 雖號咷나 无以爲也라 故云終不可長也라 하니라 先儒以卦中有孚號, 惕號라 하여 欲以无號爲无號하여 作去聲하여 謂无用更加號令이라 하니 非也라 一卦中에 適有兩去聲字, 一平聲字가 何害리오마는 而讀易者率皆疑之라 或曰 聖人之於天下에 雖大惡이나 未嘗必絶之也어늘 今直使之无號하고 謂必有凶이 可乎아 曰 夬者는 小人之道 消亡之時也니 決去小人之道 豈必盡誅之乎아 使之變革이면 乃小人之道亡也니 道亡은 乃其凶也니라.
양강군자(陽剛君子)의 도(道)는 나아가 더욱 성(盛)하고 소인(小人)의 도(道)는 이미 궁극(窮極)하여 자연히 소망(消亡)하게 되었으니, 어찌 다시 장구(長久)하겠는가. 비록 울부짖으나 그럴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끝내 장구(長久)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고 한 것이다. 선유(先儒)들은 괘(卦) 가운데 ‘부호(孚號)’와 ‘척호(惕號)’가 있다고 하여 ‘울부짖을 필요가 없음’을 ‘호령하지 않음’으로 해석하여 거성(去聲)으로 읽어서 ‘다시 호령(號令)을 가할 필요가 없다.’고 이르니, 잘못이다. 한 괘(卦) 안에 마침 두 거성(去聲)의 글자와 한 평성(平聲)의 글자가 있는 것이 어찌 해롭겠는가. 그러나 역(易)을 읽는 이들이 모두 이것을 의심한다. 혹자는 말하기를 “성인(聖人)이 천하(天下)에 있어 비록 대악(大惡)이라도 일찍이 반드시 끊지는 않는데, 이제 곧바로 울부짖을 필요가 없다 하고 반드시 흉함이 있다고 하는 것이 가(可)한가?” 하기에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쾌(夬)는 소인(小人)의 도(道)가 소망(消亡)하는 때이니, 소인(小人)을 결단(決斷)하여 제거하는 도(道)가 어찌 반드시 다 주벌하는 것이겠는가. 변혁(變革)하게 하면 이는 바로 소인(小人)의 도(道)가 망하는 것이니, 도(道)가 망하는 것이 바로 흉한 것이다.”

43. 쾌(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