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 췌(萃)
【傳】 萃는 序卦에 姤者는 遇也니 物相遇而后聚라 故受之以萃하니 萃者는 聚也라 하니라 物相會遇則成群하니 萃所以次姤也라 爲卦 兌上坤下하니 澤上於地는 水之聚也라 故爲萃라 不言澤在地上而云澤上於地는 言上於地면 則爲方聚之義也일새라.
췌괘(萃卦)는 〈서괘전(序卦傳)〉에 “구(姤)는 만남이니, 사물이 서로 만난 뒤에 모인다. 그러므로 췌괘(萃卦)로 받았으니, 췌(萃)는 모임이다.” 하였다. 사물이 서로 만나면 무리를 이루니, 췌괘(萃卦)가 이 때문에 구괘(姤卦)의 다음이 된 것이다. 괘(卦)됨이 태(兌)가 위에 있고 곤(坤)이 아래에 있으니, 못이 땅 위에 올라가 있으면 물이 모이므로 췌(萃)라 한 것이다. 못이 땅 위에 있다고 말하지 않고 못이 땅 위에 올라가 있다고 한 것은 땅 위로 올라가 있다고 말하면 모이는 뜻이 되기 때문이다.
萃는 (亨)王假(格)有廟니,
췌(萃)는 왕(王)이 사당(祠堂)을 둠에 지극한 것이니,
【본의】 왕(王)이 사당(祠堂)에 이른 것이니,
【傳】 王者萃聚天下之道 至於有廟면 極[一无極字]也라 群生至衆也로되 而可一其歸仰하며 人心莫知其鄕(向)也로되 而能致其誠敬하며 鬼神之不可度(탁)也로되 而能致其來格이라 天下萃合人心, 總攝衆志之道 非一이나 其至大莫過於宗廟라 故王者萃天下之道 至於有廟면 則萃道之至也라 祭祀之報는 本於人心하니 聖人制禮以成其德耳라 故豺獺能祭하니 其性然也라 萃下有亨字하니 羨文也라 亨字自在下하니 與渙不同이라 渙則先言卦才하고 萃乃先言卦義하니 彖辭에 甚明이라.
왕자(王者)가 천하(天下)를 모으는 도(道)가 사당(祠堂)을 둠에 이르면 지극한 것이다. 여러 생민(生民)이 지극히 많으나 귀의(歸依)하고 우러르는 마음을 통일할 수 있으며, 인심(人心)은 방향을 알 수 없으나 그 정성(精誠)과 공경(恭敬)을 지극히 할 수 있으며, 귀신(鬼神)은 예측할 수 없으나 와서 강림(降臨)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천하(天下)에 인심(人心)을 모으고 여러 사람의 마음을 총괄하는 방법이 한 가지가 아니나, 지극히 큰 것은 종묘(宗廟)보다 더한 것이 없다. 그러므로 왕자(王者)가 천하(天下)를 모으는 도(道)가 사당(祠堂)을 둠에 이르면 췌도(萃道)가 지극한 것이다. 제사(祭祀)의 보답(報答)은 인심(人心)에 근본한 것이니, 성인(聖人)이 예(禮)를 제정(制定)하여 그 덕(德)을 이루었다. 그러므로 승냥이와 수달도 제사(祭祀)를 지내니, 천성(天性)이 그러한 것이다. 췌자(萃字) 아래에 형자(亨字)가 있으니, 연문(衍文)이다. 형자(亨字)는 따로 아래에 있으니, 환괘(渙卦)와는 같지 않다. 환괘(渙卦)는 먼저 괘(卦)의 재질(才質)을 말하였고, 췌괘(萃卦)는 먼저 괘(卦)의 뜻을 말하였으니, 단사(彖辭)에 매우 분명하다.
利見大人하니 亨하니 利貞하니라.
대인(大人)을 봄이 이로우니 형통(亨通)하니, 정(貞)함이 이롭다.
【本義】 亨하고 利貞하니,
【본의】 형통하고 정(貞)함이 이로우니,
【傳】 天下之聚에 必得大人以治之니 人聚則亂하고 物聚則爭하고 事聚則紊하나니 非大人治之면 則萃所以致爭亂也라 萃以不正이면 則人聚爲苟合이요 財聚爲悖入이니 安得亨乎아 故利貞이니라.
천하(天下)가 모임에 반드시 대인(大人)을 얻어 다스려야 하니, 사람이 모이면 혼란(混亂)하고 사물이 모이면 다투고 일이 모이면 문란(紊亂)하니, 대인(大人)이 다스리지 않으면 모임은 쟁란(爭亂)을 이루는 것이다. 모임을 정도(正道)로 하지 않으면 사람이 모임은 구차히 합함이 되고, 재물이 모임은 도리에 어그러져 들어옴이 되니, 어찌 형통(亨通)하겠는가. 그러므로 정(貞)함이 이로운 것이다.
用大牲이 吉하니 利有攸往하니라.
큰 희생(犧牲)을 씀이 길(吉)하니, 가는 바를 둠이 이롭다.
【本義】 吉하고,
【본의】 길(吉)하고,
【傳】 萃者는 豊厚之時也니 其用宜稱이라 故用大牲吉이라 事莫重於祭라 故以祭享而言하니 上交鬼神하고 下接民物에 百用莫不皆[一作當]然이라 當萃之時하여 而交物以厚면 則是享豊富之吉也니 天下莫不同其富樂矣라 若時之[一无之字]厚而交物以薄이면 乃不享其豊美니 天下莫之與而悔吝生矣리라 蓋隨時之宜하여 順理而行이라 故彖云順天命也라 하니라 夫不能有爲者는 力之不足也어니와 當萃之時라 故利有攸往이라 大凡興工(功)立事는 貴得可爲之時하여 萃而後用이니 是動而有裕니 天理然也라.
췌(萃)는 풍후(豊厚)한 때이니, 그 쓰임이 걸맞아야 한다. 그러므로 큰 희생을 씀이 길(吉)한 것이다. 일은 제사(祭祀)보다 더 중한 것이 없으므로 제향(祭享)으로써 말하였으니, 위로 귀신(鬼神)을 사귀고 아래로 백성(百姓)과 사물을 접함에 온갖 쓰임이 모두 그러하지 않음이 없다. 췌(萃)의 때를 당하여 사물 사귀기를 풍후(豊厚)하게 하면 이는 풍부(豊富)함의 길(吉)함을 누리는 것이니, 천하(天下)가 부(富)와 즐거움을 함께 하지 않음이 없을 것이다. 만일 때가 풍후(豊厚)한데 사물 사귀기를 박하게 하면 이것은 풍부하고 아름다움을 누리지 못하는 것이니, 천하(天下)가 친하지 아니하여 뉘우침과 부끄러움이 생길 것이다. 때의 마땅함에 따라 이치에 순응하여 행하기 때문에 〈단전(彖傳)〉에 “천명(天命)을 순히 한다.”고 한 것이다. 일을 할 수 없는 것은 힘이 부족해서이지만 췌(萃)의 때를 당하였으므로 가는 바를 둠이 이로운 것이다. 대체로 사공(事功)을 일으킴은 할 수 있는 때를 만나 모인 뒤에 씀을 귀하게 여기니, 동(動)하여 여유가 있는 것이니, 천리(天理)가 그러한 것이다.
【本義】 萃는 聚也라 坤順兌說하고 九五剛中而二應之하며 又爲澤上於地하여 萬物萃聚之象이라 故爲萃라 亨字는 衍文이라 王假有廟는 言王者可以至乎宗廟之中이니 王者卜祭之吉占也라 祭義曰 公假于太廟是也라 廟는 所以聚祖考之精神이요 又人必能聚己之精神이면 則可以至于廟而承祖考也라 物旣聚면 則必見大人而後可以得亨이라 然又必利於正이니 所聚不正이면 則亦不能亨也라 大牲必聚而後有요 聚則可以有所往이니 皆占吉而有戒之辭라.
췌(萃)는 모임이다. 곤(坤)은 순하고 태(兌)는 기뻐하며, 구오(九五)가 강중(剛中)인데 이(二)가 응(應)하고 또 못이 땅 위로 올라가 만물(萬物)이 모이는 상(象)이 된다. 그러므로 췌(萃)라 한 것이다. 형자(亨字)는 연문(衍文)이다. ‘왕격유묘(王假有廟)’는 왕자(王者)가 종묘의 가운데에 이름을 말한 것이니, 왕자(王者)가 제사(祭祀)를 점칠 때에 길(吉)한 점(占)이다. 《예기(禮記)》〈제의(祭義)〉에 “공(公)이 태묘(太廟)에 이르렀다.”는 것이 이것이다. 묘(廟)는 조고(祖考)의 정신(精神)을 모은 곳이요, 또 사람이 반드시 자기의 정신을 모으면 사당(祠堂)에 이르러 조고(祖考)를 받들 수 있는 것이다. 사물이 이미 모이면 반드시 대인(大人)을 만나본 뒤에 형통(亨通)할 수 있다. 그러나 또 반드시 바름이 이로우니, 모인 바가 바르지 못하면 역시 형통(亨通)하지 못한다. 큰 희생은 반드시 모은 뒤에 있고 모이면 가는 바가 있으니, 모두 점(占)이 길(吉)하면서도 경계함이 있는 말이다.
彖曰 萃는 聚也니 順以說하고 剛中而應이라 故로 聚也니라.
〈단전(彖傳)〉에 말하였다. “췌(萃)는 모임이니, 순하고 기뻐하며 강(剛)이 중(中)에 있고 응(應)한다. 이 때문에 모인 것이다.
【傳】 萃之義는 聚也니 順以[一作而]說은 以卦才言也라 上說而下順은 爲上以說道使民而順於人心하고 下說上之政令而順從於上이니 旣上下順說하며 又陽剛이 處中正之位而下有應助하니 如此故能聚也라 欲天下之萃인댄 才非如是면 不能也라.
췌(萃)의 뜻은 모임이니, 순하고 기뻐함은 괘재(卦才)로써 말한 것이다. 위가 기뻐하고 아래가 순함은 윗사람은 기뻐하는 방법으로 백성(百姓)을 부려 인심(人心)에 순응하고, 아랫사람은 윗사람의 정령(政令)을 좋아하여 윗사람에게 순종(順從)함이 되니, 이미 상하(上下)가 순하고 기뻐하며, 또 양강(陽剛)이 중정(中正)한 자리에 처하였고 아래에 응(應)하여 도와주는 이가 있으니, 이와 같으므로 모인 것이다. 천하(天下)를 모으고자 할진댄 이와 같은 재질이 아니면 불가능(不可能)하다.
【本義】 以卦德卦體로 釋卦名義라.
괘덕(卦德)과 괘체(卦體)로 괘명(卦名)의 뜻을 해석하였다.
王假有廟는 致孝享也요.
‘왕격유묘(王假有廟)’는 효도(孝道)로 제향(祭享)함을 지극히 함이요
【傳】 王者萃人心之道 至於建立宗廟는 所以致其孝享之誠也라 祭祀는 人心之所自盡也라 故萃天下之心者 无如孝享이니 王者萃天下之道 至於有廟則其極也라.
왕자(王者)가 인심(人心)을 모으는 도(道)가 종묘를 건립함에 이름은 효도로 제향하는 정성을 지극히 하는 것이다. 제사(祭祀)는 인심(人心)에 스스로 다하는 것이므로, 천하(天下)의 마음을 모음은 효향(孝享)만한 것이 없으니, 왕자(王者)가 천하(天下)를 모으는 도(道)가 사당(祠堂)을 둠에 이르면 극진한 것이다.
利見大人亨은 聚以正也일새요
‘이견대인형(利見大人亨)’은 바름으로써 모이기 때문이요
【傳】 萃之時에 見大人則能亨은 蓋聚以正道也라 見大人則其聚以正道니 得其正則亨矣라 萃不以正이면 其能亨乎아.
췌(萃)의 때에 대인(大人)을 만나보면 형통(亨通)한 것은 정도(正道)로써 모이기 때문이다. 대인(大人)을 만나면 정도(正道)로써 모이니, 정도(正道)를 얻으면 형통(亨通)하다. 정도(正道)로써 모이지 않으면 형통(亨通)할 수 있겠는가.
用大牲吉利有攸往은 順天命也니,
‘용대생길이유유왕(用大牲吉利有攸往)’은 천명(天命)을 순히 함이니,
【傳】 用大牲은 承上有廟之文하여 以享祀而言이니 凡事莫不如是라 豊聚之時에는 交於物者當厚니 稱其宜也라 物聚而力贍이면 乃可以有爲라 故利有攸往이니 皆天理然也라 故云順天命也라 하니라.
큰 희생을 쓴다는 것은 위의 ‘유묘(有廟)’의 글을 이어서 향사(享祀)로써 말한 것이니, 모든 일이 이와 같지 않음이 없다. 많이 모일 때에는 사물과 사귐을 마땅히 후하게 해야 하니, 그 마땅함에 맞추어야 한다. 사물이 모이고 힘이 넉넉하면 일을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가는 바를 둠이 이로운 것이니, 이는 모두 천리(天理)에 당연한 것이다. 그러므로 천명(天命)을 순히 한다고 말한 것이다.
【本義】 釋卦辭라.
괘사(卦辭)를 해석하였다.
觀其所聚而天地萬物之情을 可見矣리라.
모이는 바를 보면 천지(天地) 만물(萬物)의 정상(情狀)을 볼 수 있으리라.
【傳】 觀萃之理하면 可以見天地萬物之情也라 天地之化育과 萬物之生成이 凡有者皆聚也니 有无, 動靜, 終始之理 聚散而已라 故觀其所以聚하면 則天地萬物之情을 可見矣라.
모이는 이치를 보면 천지(天地) 만물(萬物)의 정(情)을 볼 수 있다. 천지(天地)의 화육(化育)과 만물(萬物)의 생성(生成)은 모든 있는 것은 다 모인 것이니, 유(有)·무(无), 동(動)·정(靜), 종(終)·시(始)의 이치가 모이고 흩어질 뿐이다. 그러므로 그 모이는 바를 보면 천지(天地) 만물(萬物)의 정(情)을 볼 수 있는 것이다.
【本義】 極言其理而贊之라.
그 이치를 극언(極言)하여 칭찬한 것이다.
象曰 澤上於地 萃니 君子以하여 除戎器하여 戒不虞하나니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못이 땅 위에 올라가 있는 것이 췌(萃)이니, 군자(君子)가 이로써 병기(兵器)를 소제(掃除)하여 예측하지 못한 비상사태를 경계한다.”
【傳】 澤上於地 爲萃聚之象이니 君子觀萃象하여 以除治戎器하여 用戒備於不虞라 凡物之萃면 則有不虞度(탁)之事라 故衆聚則有爭하고 物聚則有奪하니 大率旣聚則多故矣라 故觀萃象而戒也라 除는 謂簡治也요 去弊惡也니 除而聚之는 所以戒不虞也라.
못이 땅 위에 올라가 있음은 모이는 상(象)이 되니, 군자(君子)가 췌(萃)의 상(象)을 관찰하여 융기(戎器)를 소제(掃除)하고 다스려서 불우(不虞)를 경계하고 대비한다. 무릇 사물이 모이면 예측할 수 없는 일이 있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무리가 모이면 다툼이 있고 사물이 모이면 빼앗음이 있는 것이니, 대체로 모이면 사고가 많다. 그러므로 췌(萃)의 상(象)을 보고서 경계한 것이다. 제(除)는 간열(簡閱)하여 다스리고, 해지고 나쁜 것을 제거함을 이르니, 제거(除去)하고 모음은 불우(不虞)를 경계하는 것이다.
【本義】 除者는 修而聚之之謂라.
제(除)는 수리하고 모음을 이른다.
初六은 有孚나 不終이면 乃亂乃萃하릴새 若號하면 一握爲笑하리니 勿恤하고 往하면 无咎리라 .
초육(初六)은 믿음이 있으나 끝마치지 못하면 혼란하여 모일 것이니, 만일 부르짖면 한 집단이 비웃으리니, 근심하지 말고 가면 허물이 없으리라.
【本義】 有孚호되 不終이라 乃亂乃萃니 若號하면 一握爲笑어니와,
【본의】 믿음이 있으나 끝마치지 못하여 혼란하여 모이니, 만일 고함쳐 부르면 무리들이 비웃으나
【傳】 初與四爲正應하니 本有孚以相從者也라 然當萃時하여 三陰聚處하여 柔无守正之節하니 若捨正應而從其類면 乃有孚而不終也라 乃亂은 惑亂其心也요 乃萃는 與其同類聚也라 初若守正不從하고 號呼以求正應이면 則一握笑之矣리라 一握은 俗語一團也니 謂衆[一有聚字]以爲笑也라 若能勿恤而往從剛陽之正應이면 則无過咎요 不然則入小人之群矣리라.
초(初)는 사(四)와 정응(正應)이 되니, 본래 믿음이 있어 서로 따르는 것이다. 그러나 췌(萃)의 때를 당하여 세 음(陰)이 모여 처해서 유(柔)가 정(正)을 지키는 절개가 없으니, 만일 정응(正應)을 버리고 그 동류(同類)를 따르면 이는 믿음이 있으나 끝마치지 못하는 것이다. ‘내란(乃亂)’은 마음을 미혹시키고 어지럽힘이요, ‘내췌(乃萃)’는 그 동류(同類)들과 모이는 것이다. 초(初)가 만일 정도(正道)를 지켜 동류(同類)들을 따르지 않고 부르짖어 정응(正應)을 구하면 일악(一握)이 비웃을 것이다. 일악(一握)은 속어(俗語)에 일단(一團)이니, 여럿이 비웃음을 이른다. 만일 이것을 근심하지 말고 가서 강양(剛陽)의 정응(正應)을 따르면 허물이 없을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소인(小人)의 무리에 들어갈 것이다.
【本義】 初六이 上應九四而隔於二陰하고 當萃之時하여 不能自守하니 是有孚而不終이니 志亂而妄聚也라 若呼號正應이면 則衆以爲笑어니와 但勿恤而往從正應이면 則无咎矣니 戒占者當如是也라.
초육(初六)이 위로 구사(九四)와 응(應)하나 두 음(陰)에게 막혀 있고, 췌(萃)의 때를 당하여 스스로 지키지 못하니, 이는 믿음이 있으나 끝마치지 못하는 것이니, 마음이 혼란(混亂)하여 망령되이 모이는 것이다. 만일 정응(正應)을 고함쳐 부르면 여러 사람들이 비웃겠지만 다만 이것을 걱정하지 말고 가서 정응(正應)을 따르면 허물이 없을 것이니, 점치는 이에게 이와 같이 하라고 경계한 것이다.
象曰 乃亂乃萃는 其志亂也일새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내란내췌(乃亂乃萃)’는 심지(心志)가 혼란하기 때문이다.”
【傳】 其心志爲同類所惑亂이라 故乃萃於群陰也라 不能固其守면 則爲小人所惑亂而失其正矣리라.
심지(心志)가 동류(同類)들에게 미혹되고 어지럽혀졌기 때문에 여러 음(陰)과 모인 것이다. 지킴을 견고히 하지 못하면 소인(小人)들에게 미혹되고 어지럽혀져 그 바름을 잃을 것이다.
六二는 引하면 吉하여 无咎하리니 孚乃利用禴이리라.
육이(六二)는 끌어당기면 길(吉)하여 허물이 없으리니, 정성이 있어야 약(禴)을 씀이 이로우리라.
【傳】 初는 陰柔요 又非中正이니 恐不能終其孚라 故因其才而爲之戒요 二는 雖陰柔而得中正이라 故雖戒而微辭[一作其辭微]라 凡爻之辭에 關[一作開]得失二端者는 爲法爲戒하니 亦各隨其才而設也라 引吉无咎는 引者는 相牽也니 人之交相求則合하고 相待[一作持]則離하나니 二與五爲正應하여 當萃者也而相遠하고 又在群陰之間하니 必相牽引則得其萃矣리라 五居尊位하고 有中正之德이어늘 二亦以中正之道로 往與之萃면 乃君臣和合也니 其所共致를 豈可量也리오 是以吉而无咎也라 无咎者는 善補過也니 二與五不相引則過矣라 孚乃利用禴은 孚는 信之在中이니 誠之謂也요 禴은 祭之簡薄者也라 菲薄而祭하여 不尙備物하고 直以誠意交於神明也라 孚乃者는 謂有其[一作其有]孚則可不用文飾하고 專以至誠交於上[一有下字]也라 以禴言者는 謂薦其誠而已니 上下相聚而尙飾焉이면 是未誠也라 蓋其中實者는 不假飾於外니 用禴之義也라 孚信者는 萃之本也니 不獨君臣之聚라 凡天下之聚 在誠而已니라.
초(初)는 음유(陰柔)이고 또 중정(中正)이 아니니, 믿음을 끝마치지 못할까 염려하여 재질(才質)을 인하여 경계한 것이요, 이(二)는 비록 음유(陰柔)이나 중정(中正)을 얻었으므로 비록 경계하였으나 말을 은미하게 한 것이다. 무릇 효사(爻辭)에서 득(得)·실(失) 두 가지에 관계되는 것은 법(法)이 되고 경계가 되니, 또한 각기 재질에 따라 베푼 것이다. ‘인길무구(引吉无咎)’는 인(引)은 서로 끌어당김이니, 사람의 사귐은 서로 찾으면 합하고 서로 버티면 헤어진다. 이(二)와 오(五)는 정응(正應)이 되어 마땅히 모일 것이나 서로 멀리 떨어져 있고 또 여러 음(陰)의 사이에 있으니, 반드시 서로 끌어당기면 모임을 얻을 것이다. 오(五)가 존위(尊位)에 거하고 중정(中正)의 덕(德)이 있는데, 이(二) 역시 중정(中正)의 도(道)로 가서 오(五)와 모이면 이는 군(君)·신(臣)이 화합하는 것이니, 함께 이루는 것을 어찌 측량하겠는가. 이 때문에 길(吉)하여 허물이 없는 것이다. 무구(无咎)는 허물을 잘 보충함이니, 이(二)가 오(五)와 서로 끌어당기지 않으면 허물이다. ‘부내이용약(孚乃利用禴)’은, 부(孚)는 신(信)이 마음 속에 있는 것이니 정성을 이르고, 약(禴)은 제사(祭祀)함에 간략하고 박하게 하는 것이니 박하게 제사(祭祀)하여 물건을 갖춤을 숭상(崇尙)하지 않고 다만 성의(誠意)로써 신명(神明)과 사귀는 것이다. ‘부내(孚乃)’는 정성(精誠)이 있으면 문식(文飾)을 쓰지 않고 오로지 지성(至誠)으로 위와 사귈 수 있음을 말한 것이다. 약(禴)으로써 말한 것은 정성을 올림을 이를 뿐이니, 상(上)·하(下)가 서로 모여 꾸밈을 숭상한다면 이는 정성이 아니다. 마음이 성실한 이는 밖에 꾸밀 것이 없으니, 이것이 약(禴)을 쓰는 뜻이다. 부신(孚信)은 모임의 근본이니, 다만 군신(君臣)의 모임뿐만이 아니라 모든 천하(天下)의 모임이 정성에 달려있을 뿐이다.
【本義】 二應五而雜於二陰之間하니 必牽引以萃라야 乃吉而无咎요 又二中正柔順으로 虛中以上應하고 九五剛健中正으로 誠實而下交라 故卜祭者有其孚誠이면 則雖薄物이라도 亦可以祭矣라.
이(二)는 오(五)와 응(應)하는데 두 음(陰)의 사이에 섞여 있으니, 반드시 끌어당겨 모여야 비로소 길(吉)하여 허물이 없을 것이요, 또 이(二)는 중정유순(中正柔順)으로 마음을 비우고 위에 응(應)하며, 구오(九五)는 강건중정(剛健中正)으로 성실하여 아래와 사귄다. 그러므로 제사(祭祀)를 점치는 이가 부성(孚誠)이 있으면 비록 박한 물건이라도 역시 제사(祭祀)할 수 있는 것이다.
象曰 引吉无咎는 中하여 未變也일새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인길무구(引吉无咎)’는 중(中)에 있어서 변치 않기 때문이다.”
【傳】 萃之時는 以得聚爲吉이라 故九四爲得上下之萃라 二與五雖正應이나 然異處有間하니 乃當萃而未合者也라 故能相引而萃면 則吉而无咎리니 以其有中正之德하여 未遽至改變也일새니 變則不相引矣리라 或曰 二旣有中正之德이어늘 而象云未變하여 辭若不足은 何也오 曰 群陰比處는 乃其類聚니 方萃之時하여 居其間하여 能自守不變하고 遠須正應은 剛立者能之라 二는 陰柔之才나 以其有中正之德하여 可覬其未至於變耳라 故象含其意以存戒也라.
췌(萃)의 때는 모임을 얻음을 길(吉)함으로 여긴다. 그러므로 구사(九四)가 상(上)·하(下)의 모임을 얻음이 된다. 이(二)는 오(五)와 비록 정응(正應)이나 달리 처하여 간격이 있으니, 마땅히 모여야 하나 합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므로 서로 이끌어 모이면 길(吉)하여 허물이 없는 것이다. 이는 중정(中正)한 덕(德)이 있어 대번에 고치고 변함에 이르지 않기 때문이니, 변하면 서로 이끌지 않을 것이다. 혹자는 말하기를 “이(二)가 이미 중정(中正)의 덕(德)이 있는데 〈상전(象傳)〉에는 변치 않았다고 하여 말이 부족한 듯함은 어째서인가?” 하기에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여러 음(陰)이 가까이 처함은 바로 그 유(類)가 모인 것이니, 췌(萃)의 때를 당하여 동류(同類)들 사이에 있으면서 스스로 지켜 변치 않고 멀리 정응(正應)을 기다림은 강하게 지키는 이만이 가능하다. 이(二)는 음유(陰柔)의 재질(才質)이나 중정(中正)의 덕(德)이 있어 변함에 이르지 않음을 기대할 수 있다. 그러므로 상(象)에 그 뜻을 함축하여 경계를 둔 것이다.”
六三은 萃如嗟如라 无攸利하니 往하면 无咎어니와 小吝하니라.
육삼(六三)은 모이려 하다가 이로운 바가 없으니, 가면 허물이 없거니와 다소 부끄럽다.
【傳】 三은 陰柔不中正之人也니 求萃於人而人莫與라 求四則非其正應이요 又非其類니 是는 以不正으로 爲四所棄也요 與二則二自以中正應五하니 是는 以不正으로 爲二所不與也라 故欲[一无欲字]萃如면 則爲人棄絶而嗟如하니 不獲萃而嗟恨也라 上下皆不與하여 无所利也로되 唯往而從上六이면 則得其萃하니 爲无咎也라 三與上은 雖非陰陽正應이나 然萃之時에 以類相從하나니 皆以柔居一體之上하며 又皆无與하고 居相應之地하며 上復處說順之極이라 故得其萃而无咎也라 易道變動无常하니 在人識之라 然而小吝은 何也오 三始求萃於四與二라가 不獲而後에 往從上六하니 人之動爲如此면 雖得所求나 亦可小羞吝也라.
삼(三)은 음유(陰柔)로 중정(中正)하지 못한 사람이니, 사람들에게 모이기를 구하나 사람들이 상대해주지 않는다. 사(四)에게 구하면 정응(正應)이 아니고 또 같은 유(類)가 아니니 이는 부정(不正)함으로 사(四)에게 버림을 받는 것이요, 이(二)와 상대하려 하면 이(二)는 별도로 중정(中正)으로 오(五)에 응(應)하니 이는 부정(不正)함으로 이(二)에게 상대해주지 않는 바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이고자 하면 사람들에게 버림받고 거절당하여 한탄하니, 모임을 얻지 못하여 한탄하는 것이다. 상(上)·하(下)가 모두 상대해주지 아니하여 이로운 바가 없으나 오직 가서 상육(上六)을 따르면 그 모임을 얻을 것이니 무구(无咎)가 된다. 삼(三)과 상(上)은 비록 음양(陰陽)의 정응(正應)이 아니나 췌(萃)의 때에 같은 유(類)로써 서로 따르니, 모두 유(柔)로서 하나의 체(體) 위에 거했으며, 또 모두 응여(應與)가 없고 서로 응(應)하는 자리에 거했으며, 상(上)은 다시 열순(說順)의 극에 처하였다. 그러므로 모임을 얻어 허물이 없는 것이다. 역(易)의 도(道)는 변동(變動)하여 일정함이 없으니, 사람이 이것을 앎에 달려 있다. 그러나 다소 부끄러움은 어째서인가? 삼(三)이 처음에 사(四)와 이(二)에게 모이기를 구하다가 얻지 못한 뒤에 가서 상육(上六)을 따랐으니, 사람의 행위가 이와 같으면 비록 구하는 바를 얻더라도 역시 다소 부끄러운 것이다.
【本義】 六三이 陰柔不中不正하고 上无應與하여 欲求萃於近而不得이라 故嗟如而无所利라 唯往從於上이면 可以无咎나 然不得其萃하여 困然後往하고 復得陰極无位之爻하니 亦可小羞矣라 戒占者當近捨不正之强援하고 而遠結正應之窮交면 則无咎也라.
육삼(六三)이 음유(陰柔)로 중정(中正)하지 못하고 위에 응여(應與)가 없어서 가까운 곳에 모이기를 구하나 얻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한탄하여 이로운 바가 없는 것이다. 오직 가서 상육(上六)을 따르면 허물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모임을 얻지 못하여 곤궁한 뒤에 가고, 다시 음(陰)이 극(極)에 있어 지위가 없는 효(爻)를 얻었으니, 역시 다소 부끄러운 것이다. 점치는 이는 마땅히 가까운 곳에 있는 바르지 않은 강한 원조(援助)를 버리고, 멀리 정응(正應)의 궁한 사귐을 맺으면 허물이 없다고 경계한 것이다.
象曰 往无咎는 上이 巽也일새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가서 허물이 없음은 상(上)이 공손하기 때문이다.”
【傳】 上居柔說之極하니 三往而无咎者는 上六이 巽順而受之也일새라.
상(上)이 유열(柔說)의 극(極)에 처했으니, 삼(三)이 가서 허물이 없는 것은 상육(上六)이 손순(巽順)하여 받아주기 때문이다.
九四는 大吉이라야 无咎리라.
구사(九四)는 대길(大吉)하여야 허물이 없으리라.
【傳】 四當萃之時하여 上比九五之君하니 得君臣之聚也요 下比下體群陰하니 得下民之聚也라 得上下之聚면 可謂善矣라 然四以陽居陰하여 非正也니 雖得上下之聚나 必得大吉然後爲无咎也라 大爲周遍之義하니 无所不周然後爲大니 无所不正則爲大吉이요 大吉則无咎也[一作矣]라 夫上下之聚 固有不由正道而得者하니 非理枉道而得君者自古多矣요 非理枉道而得民者蓋亦有焉이니 如齊之陳恒과 魯之季氏是也라 然得爲大吉乎아 得爲无咎乎아 故九四必能大吉然後爲[一作能]无咎也라.
사(四)가 췌(萃)의 때를 당하여 위로 구오(九五)의 군주(君主)와 가까이 있으니 군(君)·신(臣)의 모임을 얻은 것이요, 아래로 하체(下體)의 여러 음(陰)과 가까이 있으니 하민(下民)의 모임을 얻은 것이다. 상(上)·하(下)의 모임을 얻으면 선(善)하다고 이를 만하다. 그러나 사(四)는 양(陽)으로 음위(陰位)에 거하여 정(正)이 아니니, 비록 상(上)·하(下)의 모임을 얻었으나 반드시 대길(大吉)을 얻은 뒤에야 무구(无咎)가 되는 것이다. 대(大)는 두루하는 뜻이 되니, 두루하지 않는 바가 없은 뒤에야 대(大)가 되니, 바르지 않음이 없으면 대길(大吉)이 되고, 대길(大吉)이 되면 무구(无咎)인 것이다. 상(上)·하(下)의 모임은 진실로 정도(正道)를 따르지 않고 얻는 경우가 있으니, 비리(非理)로 도(道)를 굽혀 군주(君主)의 신임(信任)을 얻은 이가 예로부터 많았고, 비리(非理)로 도(道)를 굽혀 인심(人心)을 얻은 이도 역시 있었으니, 제(齊)나라의 진항(陳恒)과 노(魯)나라의 계씨(季氏)가 이들이다. 그러나 이들을 대길(大吉)이라 할 수 있겠는가. 무구(无咎)라 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구사(九四)가 반드시 대길(大吉)한 뒤에야 무구(无咎)가 되는 것이다.
【本義】 上比九五하고 下比衆陰하여 得其萃矣나 然以陽居陰하여 不正이라 故戒占者必大吉然後得无咎也라.
위로 구오(九五)와 가깝고 아래로 여러 음(陰)과 가까워 그 모임을 얻으나 양(陽)이 음위(陰位)에 거하여 바르지 못하므로 점치는 이에게 반드시 대길(大吉)한 뒤에야 무구(无咎)하다고 경계한 것이다.
象曰 大吉无咎는 位不當也일새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대길무구(大吉无咎)’는 자리가 마땅하지 않기 때문이다.”
【傳】 以其位之不當으로 疑其所爲未能盡善이라 故云必得大吉然後爲[一作能]无咎也라 非盡善이면 安得爲大吉乎아.
자리가 마땅하지 않으므로 하는 바가 진선(盡善)하지 못할까 의심하였다. 그러므로 반드시 대길(大吉)을 얻은 뒤에야 무구(无咎)하다고 말한 것이다. 진선(盡善)이 아니면 어찌 대길(大吉)이 되겠는가.
九五는 萃有位하고 无咎하나 匪孚어든 元永貞이면 悔亡하리라.
구오(九五)는 모임에 지위를 소유하고 허물이 없으나 믿지 않거든 원영정(元永貞)하면 뉘우침이 없으리라.
【本義】 萃有位라 无咎니,
【본의】 모임에 지위를 소유하여 허물이 없으니,
【傳】 九五居天下之尊하여 萃天下之衆而君臨之하니 當正其位,修其德이라 以陽剛으로 居尊位하여 稱其位矣하니 爲有其位矣[一作也]요 得中正之道하니 无過咎也라 如是而有不信而未歸者어든 則當自反하여 以修其元永貞之德이면 則无思不服而悔亡矣리라 元永貞者는 君之德이니 民所歸也라 故比天下之道와 與萃天下之道 皆在此三者라 王者旣有其位하고 又有其德하여 中正无過咎로되 而天下尙有未信服歸附者는 蓋其道未光大也일새니 元永貞之道 未至也니 在修德以來之라 如苗民逆命에 帝乃誕敷文德하시니 舜德이 非不至也나 蓋有遠近昏明之異라 故其歸有先後하니 旣有未歸면 則當修德也니 所謂德은 元永貞之道也라 元은 首也요 長也니 爲君德이 首出庶物하여 君長群生하여 有尊大之義焉하고 有主統之義焉하며 而又恒永貞固면 則通於神明하고 光於四海하여 无思不服矣리니 乃无匪孚而其悔亡也라 所謂悔는 志之未光과 心之未慊也라.
구오(九五)가 천하(天下)의 존위(尊位)에 거하여 천하(天下)의 무리를 모아 군림(君臨)하니, 마땅히 자리를 바루고 덕(德)을 닦아야 한다. 양강(陽剛)으로 존위(尊位)에 거하여 그 지위에 걸맞으니 지위를 소유함이 되고, 중정(中正)의 도(道)를 얻었으니 과구(過咎)가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은데도 믿지 아니하여 돌아오지 않는 이가 있거든 마땅히 스스로 반성하여 원영정(元永貞)의 덕(德)을 닦으면 복종하지 않는 이가 없어 뉘우침이 없을 것이다. 원영정(元永貞)은 군주(君主)의 덕(德)이니, 백성(百姓)들이 돌아오는 바이다. 그러므로 천하(天下)를 친히 하는 도(道)와 천하(天下)를 모으는 도(道)가 모두 이 세 가지에 있는 것이다. 왕자(王者)가 이미 지위를 소유하고 또 덕(德)을 보유하여 중정(中正)하고 과구(過咎)가 없는데도 천하(天下)에 아직도 신복(信服)하고 귀부(歸附)하지 않는 이가 있는 것은 그 도(道)가 광대(光大)하지 못하기 때문이니, 원영정(元永貞)의 도(道)가 지극하지 못한 것이니, 덕(德)을 닦아 오게 함에 달려 있다. 유묘(有苗)의 백성(百姓)들이 명(命)을 거역하자 순제(舜帝)가 크게 문덕(文德)을 펴셨으니, 순제(舜帝)의 덕(德)이 지극하지 않은 것이 아니었으나 원근(遠近)과 혼명(昏明)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그 돌아옴이 선후(先後)의 차이가 있는 것이다. 이미 돌아오지 않는 이가 있으면 마땅히 덕(德)을 닦아야 하니, 이른바 덕(德)은 원영정(元永貞)의 도(道)이다. 원(元)은 우두머리이고 으뜸이니, 군주(君主)의 덕(德)이 첫 번째로 서물(庶物)에 나와 군생(群生)에게 군장(君長)이 되어 존대(尊大)한 뜻이 있고 주관·통솔하는 뜻이 있으며, 또 항영(恒永)하고 정고(貞固)하면 신명(神明)을 통하고 사해(四海)에 빛나서 복종(服從)하지 않는 이가 없을 것이니, 이는 믿지 않는 이가 없어서 뉘우침이 없는 것이다. 이른바 회(悔)는 뜻이 광대(光大)하지 못함과 마음이 만족하지 못한 것이다.
【本義】 九五剛陽中正으로 當萃之時而居尊하니 固无咎矣나 若有未信이면 則亦修其元永貞之德而悔亡矣니 戒占者當如是也라.
구오(九五)가 강양중정(剛陽中正)으로 췌(萃)의 때를 당하여 존위(尊位)에 거 하였으니, 진실로 허물이 없을 것이나 만약 믿지 않는 이가 있으면 역시 원영정(元永貞)의 덕(德)을 닦아 뉘우침이 없을 것이니, 점치는 이에게 마땅히 이와 같이 하라고 경계한 것이다.
象曰 萃有位는 志未光也일새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췌유위(萃有位)’는 뜻이 광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傳】 象擧爻上句라 王者之志는 必欲誠信著於天下하여 有感必通하여 含生之類 莫不懷歸하나니 若尙有匪孚면 是其志之未光大也라.
〈상전(象傳)〉은 효사(爻辭)의 윗구만 들었다. 왕자(王者)의 뜻은 반드시 성신(誠信)이 천하(天下)에 드러나서 감동함이 있으면 반드시 통하여 생명을 머금은 종류가 모두 은혜롭게 여겨 돌아오기를 바라니, 만일 아직도 믿지 않는 이가 있으면 이는 그 뜻이 광대(光大)하지 못한 것이다.
【本義】 未光은 謂匪孚라.
미광(未光)은 믿지 않음을 이른다.
上六은 齎咨涕洟니 无咎니라.
상육(上六)은 한탄하며 눈물콧물을 흘림이니, 허물할 데가 없다.
【本義】 齎咨涕洟라야 无咎리라.
【본의】 한탄하며 눈물콧물을 흘려야 허물이 없으리라.
【傳】 六은 說之主니 陰柔小人이 說高位而處之면 天下孰肯與也리오 求萃而人莫之與하여 其窮이 至於齎咨而涕洟也니 齎咨는 咨嗟也라 人之絶之 由己自取어니 又將誰咎리오 爲人惡(오)絶하여 不知所爲하여 則隕穫而至嗟涕하니 眞小人之情狀也라.
육(六)은 열(說)의 주체이니, 음유소인(陰柔小人)이 높은 지위를 좋아하여 처하면 천하(天下)에 누가 즐겨 상대해 주겠는가. 모이기를 구하나 사람들이 상대해주는 이가 없어서 그 곤궁함이 한탄하고 눈물콧물을 흘림에 이른 것이니, 재자(齎咨)는 한탄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절교하는 것은 자신이 자취(自取)함에 연유하니, 또 장차 누구를 허물하겠는가. 사람들에게 증오와 절교를 당하여 어찌할 바를 몰라 뜻을 상실하여 슬퍼하고 불안하여 한탄하고 눈물흘림에 이르니, 참으로 소인(小人)의 정상(情狀)이다.
【本義】 處萃之終하여 陰柔无位하여 求萃不得이라 故戒占者必如此而後可以无咎也라.
췌(萃)의 종(終)에 처하여 음유(陰柔)로 지위가 없어서 모이기를 구하나 얻지 못한다. 그러므로 점치는 이에게 반드시 이와 같이 한 뒤에야 허물이 없을 수 있다고 경계한 것이다.
象曰 齎咨涕洟는 未安上也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한탄하고 눈물콧물을 흘리는 것은 아직 위에 편안하지 못해서이다.”
【傳】 小人所處 常失其宜하니 旣貪而從欲하여 不能自擇安地하여 至於困窮이면 則顚沛不知所爲하나니 六之涕洟는 蓋不安於處上也라 君子愼其所處하여 非義不居하며 不幸而有危困이면 則泰然自安하여 不以累其心하나니 小人은 居不擇安하여 常履非據하고 及其窮迫이면 則隕穫躁橈하여 甚至涕洟하니 爲可羞也라 未者는 非遽之辭니 猶俗云未便也니 未便能安於上也라 陰而居上하여 孤處无與하고 旣非其據니 豈能安乎아.
소인(小人)이 처하는 바는 항상 그 마땅함을 잃으니, 이미 탐하여 욕심을 따라 스스로 편안한 곳을 가리지 못해서 곤궁함에 이르면 전패(顚沛)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니, 상육(上六)이 눈물콧물을 흘림은 위에 처함에 편안하지 못해서이다. 군자(君子)는 거처하는 바를 삼가 의(義)가 아니면 거하지 않으며, 불행히 위험과 곤궁이 있으면 태연히 스스로 편안하여 그 마음에 누를 끼치지 않는다. 소인(小人)은 거함에 편안한 곳을 가리지 아니하여 항상 차지할 자리가 아닌 데를 밟고, 곤궁하고 절박함에 미치면 운확(隕穫)하고 조급(躁急)하고 꺾여서 심지어는 눈물콧물을 흘림에 이르니, 수치스러운 일이다. 미(未)는 대번이 아니란 말이니, 세속의 미변(未便)이란 말과 같은 바, 위에서 편안하지 못한 것이다. 음(陰)으로 위에 거하여 외롭게 처하고 상대해주는 이가 없으며 이미 그 차지할 자리가 아니니, 어찌 편안하겠는가.

45. 췌(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