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 중부(中孚)
【傳】 中孚는 序卦에 節而信之라 故受之以中孚라 하니라 節者는 爲之制節하여 使不得過越也라 信而後能行이니 上能信守之면 下則信從之니 節而信之也니 中孚所以次節也라 爲卦 澤上有風하니 風行澤上而感于水中은 爲中孚之象이니 感은 謂感而動也라 內外皆實而中虛는 爲中孚之象이요 又二五皆陽[一有而字]中實이니 亦爲孚義라 在二體則中實이요 在全體則中虛니 中虛는 信之本이요 中實은 信之質이라.
중부괘(中孚卦)는 〈서괘전(序卦傳)〉에 “절제(節制)하여 믿게 한다. 그러므로 중부괘(中孚卦)로 받았다.” 하였다. 절(節)은 절제(節制)하여 지나치지 않게 하는 것이다. 믿은 뒤에 행할 수 있으니, 위에서 믿어 지키면 아래가 믿어 따르니, 절제(節制)하여 믿게 함이니, 중부괘(中孚卦)가 이 때문에 절괘(節卦)의 다음이 된 것이다. 괘(卦)됨이 못 위에 바람이 있으니, 바람이 못 위에 행하여 물속을 감동시킴은 중부(中孚)의 상(象)이 되니, 감(感)은 감촉하여 동함을 이른다. 안과 밖이 모두 실(實)하고 가운데가 비어 있음은 중부(中孚)의 상(象)이 되고, 또 이효(二爻)와 오효(五爻)가 모두 양(陽)이어서 중(中)이 실(實)하니, 역시 부신(孚信)의 뜻이 된다. 두 체(體)에 있으면 중(中)이 실(實)하고 전체(全體)에 있으면 중(中)이 허(虛)하니, 중(中)이 허(虛)함은 신(信)의 근본이요 중(中)이 실(實)함은 신(信)의 바탕이다.
中孚는 豚魚면 吉하니 利涉大川하고 利貞하니라.
중부(中孚)는 믿음이 돼지와 물고기에 미치면 길(吉)하니, 대천(大川)을 건넘이 이롭고 정(貞)함이 이롭다.
【傳】 豚躁魚冥하니 物之難感者也라 孚信이 能感於豚魚면 則无不至矣니 所以吉也라 忠信은 可以蹈水火하니 況涉川乎아 守信之道는 在乎堅正이라 故利於貞也라.
돼지는 조급하고 물고기는 어두우니 사물 중에 감동시키기 어려운 것이다. 부신(孚信)이 돼지와 물고기를 감동시키면 지극하지 않음이 없는 것이니, 이 때문에 길(吉)하다. 충신(忠信)은 물과 불 속에도 뛰어들 수 있으니, 하물며 냇물을 건넘에랴. 신(信)을 지키는 도(道)는 견고하고 바름에 있으므로 정(貞)함이 이로운 것이다.
【本義】 孚는 信也라 爲卦 二陰在內하고 四陽在外하며 而二五之陽이 皆得其中하니 以一卦言之하면 爲中虛요 以二體言之하면 爲中實이니 皆孚信之象也라 又下說以應上하고 上巽以順下하니 亦爲孚義라 豚魚는 无知之物이라 又木在澤上하고 外實內虛하니 皆舟楫之象이라 至信은 可感豚魚라 涉險難而不可以失其貞이라 故占者能致豚魚之應이면 則吉而利涉大川이요 又必利於貞也라.
부(孚)는 신(信)이다. 괘(卦)됨이 두 음효(陰爻)가 안에 있고 네 양효(陽爻)가 밖에 있으며, 이효(二爻)와 오효(五爻)의 양(陽)이 모두 중(中)을 얻었으니, 하나의 괘(卦)로 말하면 중허(中虛)가 되고 두 체(體)로 말하면 중실(中實)이 되니, 모두 부신(孚信)의 상(象)이다. 또 아래가 기뻐하여 위에 응(應)하고 위가 손순(巽順)하여 아래에 순하니, 역시 부신(孚信)의 뜻이 된다. 돼지와 물고기는 무지(無知)한 물건이다. 또 나무가 못 위에 있고, 밖이 실(實)하고 안이 허(虛)하니, 모두 주즙(舟楫)의 상(象)이다. 지극한 신(信)은 돼지와 물고기를 감동시킬 수 있다. 험난(險難)을 건널 때에 정(貞)함을 잃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점치는 이가 돼지와 물고기의 응(應)함을 이루면 길(吉)하고 대천(大川)을 건넘이 이로우며, 또 반드시 정(貞)함이 이로운 것이다.
彖曰 中孚는 柔在內而剛得中할새니,
〈단전(彖傳)〉에 말하였다. “중부(中孚)는 유(柔)가 안에 있고 강(剛)이 중(中)을 얻었기 때문이니,
【傳】 二柔在內하여 中虛는 爲誠之象이요 二剛得上下體之中하여 中實은 爲孚之象이니 卦所以爲中孚也라.
두 유효(柔爻)가 안에 있어 중(中)이 허(虛)함은 성신(誠信)의 상(象)이 되고, 두 강효(剛爻)가 상체(上體)와 하체(下體)의 중(中)을 얻어 중(中)이 실(實)함은 부신(孚信)의 상(象)이 되니, 괘(卦)가 이 때문에 중부(中孚)가 된 것이다.
說而巽할새 孚乃化邦也니라.
기뻐하고 공손하기에 부신(孚信)이 마침내 나라를 감화시킨다.
【傳】 以二體로 言卦之用也라 上巽下說은 爲上至誠以順巽於下요 下有孚以說從其上이니 如是면 其孚乃能化於邦國也라 若人不說從하고 或違拂事理면 豈能化天下乎아.
두 체(體)로 괘(卦)의 용(用)을 말하였다. 위가 손(巽)이고 아래가 열(說)인 것은 윗사람이 지성(至誠)으로 아랫사람에게 손순(巽順)하고 아랫사람이 부신(孚信)이 있어 윗사람을 기뻐하여 따름이 되니, 이와 같이 하면 부신(孚信)이 마침내 나라를 감화시킬 수 있다. 만약 사람이 기뻐하여 따르지 않고 혹 사리(事理)를 어긴다면 어찌 천하(天下)를 감화시키겠는가.
【本義】 以卦體卦德으로 釋卦名義라.
괘체(卦體)와 괘덕(卦德)으로 괘명(卦名)의 뜻을 해석하였다.
豚魚吉은 信及豚魚也요,
돈어(豚魚)에 미쳐 길(吉)함은 부신(孚信)이 돼지와 물고기에게 미친 것이요,
【傳】 信能及於豚魚면 信道至矣니 所以吉也라.
부신(孚信)이 돼지와 물고기에게 미치면 부신(孚信)의 도(道)가 지극하니, 이 때문에 길(吉)한 것이다.
利涉大川은 乘木하고 舟虛也요,
대천(大川)을 건넘이 이로움은 나무를 타고 배가 비어 있기 때문이요,
【傳】 以中孚[一作虛]涉險難이면 其利如乘木濟川而以虛舟也라 舟虛[一有中字]則无沈覆之患[一无之患二字]하니 卦虛中이 爲虛舟之象이라.
중부(中孚)로 험난(險難)을 건너면 그 이로움이 마치 나무를 타고 냇물을 건너는데 빈 배를 쓰는 것과 같은 것이다. 배가 비면 침몰하거나 전복하는 화가 없으니, 괘(卦)에 중(中)이 허(虛)함은 배가 비어 있는 상(象)이 된다.
【本義】 以卦象言이라.
괘상(卦象)으로 말하였다.
中孚하고 以利貞이면 乃應乎天也리라.
중심(中心)이 믿고 이정(利貞)으로 하면 마침내 하늘에 응(應)하리라.”
【傳】 中孚而貞이면 則應乎天矣니 天之道는 孚貞而已니라.
중심(中心)이 믿고 정(貞)하면 하늘에 응(應)하니, 하늘의 도(道)는 믿음과 바름뿐이다.
【本義】 信而正이면 則應乎天矣라.
믿고 바르면 하늘에 응(應)하리라.
象曰 澤上有風이 中孚니 君子以하여 議獄하며 緩死하나니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못 위에 바람이 있음이 중부(中孚)이니, 군자(君子)가 이로써 옥사(獄事)를 의논하며 죽임을 늦춘다.”
【傳】 澤上有風이면 感于澤中이니 水體虛故로 風能入之하고 人心虛故로 物能感之니 風之動乎澤은 猶物之感于中이라 故爲中孚之象이라 君子觀其象하여 以議獄與緩死하나니 君子之於議獄에 盡其忠而已이요 於決死에 極於惻而已라 故誠意常求於緩하나니 緩은 寬也라 於天下之事에 无所不盡其忠이로되 而議獄緩死 最其大者也라.
못 위에 바람이 있으면 못 가운데를 감동시키니, 물의 체(體)가 비어 있기 때문에 바람이 들어가고 사람의 마음이 비어 있기 때문에 사물이 감동시키는 것이니, 바람이 못을 감동시킴은 사물이 사람의 심중(心中)을 감동시킴과 같다. 그러므로 중부(中孚)의 상(象)이 된 것이다. 군자(君子)가 그 상(象)을 관찰하여 옥사(獄事)를 의논하고 죽임을 늦추니, 군자(君子)가 옥사(獄事)를 의논함에는 충성을 다할 뿐이요, 사형을 결단함에는 측은한 마음을 지극히 할 뿐이다. 그러므로 성의(誠意)로 항상 늦추어 관대히 하기를 구하니, 완(緩)은 관대함이다. 천하(天下)의 일에 있어 충성(忠誠)을 다하지 않을 것이 없으나 옥사(獄事)를 의논함과 죽임을 늦춤은 그 중에 가장 큰 것이다.
【本義】 風感水受는 中孚之象이요 議獄緩死는 中孚之意라.
바람이 감동시킴에 물이 받아들임은 중부(中孚)의 상(象)이요, 옥사(獄事)를 의논하고 죽임을 늦춤은 중부(中孚)의 뜻이다.
初九는 虞하면 吉하니 有他면 不燕하리라.
초구(初九)는 헤아리면 길(吉)하니, 다른 마음을 두면 편안하지 못하리라.
【傳】 九當中孚之初라 故戒在審其所信이라 虞는 度(탁)也니 度其可信而後從也라 雖有至信이나 若不得其所면 則有悔咎라 故虞度而後信則吉也라 旣得所信이면 則當誠一이니 若有他면 則不得其燕安矣라 燕은 安裕也요 有他는 志不定也니 人志不定이면 則惑而不安이라 初與四爲正應이니 四巽體而居正하여 无不善也로되 爻以謀始之義大라 故不取相應之義하니 若用應이면 則非虞也라.
구(九)가 중부(中孚)의 초(初)를 당하였으므로 경계함이 믿을 바를 살핌에 있다. 우(虞)는 헤아림이니, 믿을 만한 사람을 헤아린 뒤에 따르는 것이다. 비록 지극한 믿음이 있으나 만약 제자리를 얻지 못하면 뉘우침과 허물이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헤아린 뒤에 믿으면 길(吉)한 것이다. 이미 믿을 바를 얻었으면 마땅히 정성스럽게 하고 한결같이 하여야 하니, 만약 다른 마음을 두면 편안함을 얻지 못할 것이다. 연(燕)은 안유(安裕)함이요 유타(有他)는 마음이 정(定)해지지 못한 것이니, 사람의 마음이 정(定)해지지 못하면 의혹하여 편안하지 못하다. 초(初)는 사(四)와 정응(正應)이니, 사(四)는 손체(巽體)로서 정(正)에 거하여 불선(不善)함이 없으나 효(爻)가 시작을 도모하는 뜻이 크므로 서로 응(應)하는 뜻을 취하지 않았으니, 만약 응(應)을 쓴다면 헤아림이 아니다.
【本義】 當中孚之初하여 上應六四하니 能度其可信而信之면 則吉이요 復有他焉이면 則失其所以度之之正而不得其所安矣니 戒占者之辭也라.
중부(中孚)의 초기를 당하여 위로 육사(六四)와 응(應)하니, 믿을 만한 사람을 헤아려 믿으면 길(吉)할 것이요, 다시 다른 마음을 두면 헤아림의 바름을 잃어 편안한 바를 얻지 못할 것이니, 점치는 이를 경계한 말이다.
象曰 初九虞吉은 志未變也일새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초구(初九)가 헤아리면 길(吉)함은 뜻이 변치 않았기 때문이다.”
【傳】 當信之始하여 志[一无之字]未有所存而虞度所信이면 則得其正이라 是以吉也니 盖其志未有變動이라 志有所從이면 則是變動이니 虞之不得其正矣라 在初라 言求所信之道也니라.
믿는 초기를 당하여 뜻을 둔 바가 없이 믿을 바를 헤아리면 바름을 얻는다. 이 때문에 길(吉)하니, 그 뜻이 아직 변동함이 있지 않는 것이다. 뜻이 따르는 바가 있으면 이는 변동하는 것이니, 헤아림에 바름을 얻지 못한다. 초(初)에 있기 때문에 믿을 바를 구하는 도리를 말한 것이다.
九二는 鳴鶴이 在陰이어늘 其子和之로다 我有好爵하여 吾與爾靡之하노라.
구이(九二)는 우는 학(鶴)이 음지(陰地)에 있는데 그 새끼가 화답하도다. 내가 좋은 벼슬을 두어 내 그대와 함께 이에 매어 있노라.
【傳】 二剛實於中하니 孚之至者也니 孚至則能感通이라 鶴鳴於幽隱之處면 不聞也로되 而其子相應和하나니 中心之願이 相通也라 好爵我有而彼亦係慕는 說好爵之意同也요 有孚於中에 物无不應은 誠同故也라 至誠은 无遠近幽深之間이라 故繫辭云 善則千里之外應之요 不善則千里違之라 하니 言誠通也라 至誠感通之理는 知道者爲能識之니라.
이(二)는 강(剛)으로 중(中)에 실(實)하니 부신(孚信)이 지극한 것이니, 부신(孚信)이 지극하면 감통(感通)한다. 학(鶴)이 유은(幽隱)한 곳에서 울면 소리가 들리지 않으나 그 새끼는 서로 응(應)하여 화답하니, 중심(中心)의 원함이 서로 통해서이다. 좋은 벼슬을 내가 가지고 있으면 저 역시 연모함은 좋은 벼슬을 좋아하는 뜻이 같기 때문이요, 마음 속에 부신(孚信)이 있음에 사물이 응(應)하지 않음이 없음은 정성이 같기 때문이다. 지성(至誠)은 원근(遠近)과 유심(幽深)의 간격이 없다. 그러므로 〈계사전(繫辭傳)〉에 이르기를 “선(善)하면 천리(千里) 밖에서도 응(應)하고, 선(善)하지 못하면 천리(千里) 밖에서도 떠나간다.” 하였으니, 정성이 통함을 말한 것이다. 지성(至誠)으로 감통(感通)하는 이치는 도(道)를 아는 이만이 알 수 있는 것이다.
【本義】 九二는 中孚之實이어늘 而九五亦以中孚之實應之라 故有鶴鳴子和, 我爵爾靡之象이라 鶴在陰은 謂九居二요 好爵은 謂得中이요 靡는 與縻同이라 言懿德은 人之所好라 故好爵이 雖我之所獨有나 而彼亦繫戀之也라.
구이(九二)는 중부(中孚)의 실(實)인데 구오(九五)도 중부(中孚)의 실(實)로 응(應)한다. 그러므로 학이 욺에 새끼가 화답하고 나의 벼슬을 그대가 연모하는 상(象)이 있는 것이다. 학이 음지(陰地)에 있다는 것은 구(九)가 이(二)에 거함을 이르고, 좋은 벼슬은 중(中)을 얻음을 이르고, 미(靡)는 미(縻)와 같다. 아름다운 덕(德)은 사람이 좋아하는 바이므로 좋은 벼슬이 비록 내가 홀로 가지고 있는 것이나 저 역시 연모함을 말한 것이다.
象曰 其子和之는 中心願也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새끼가 화답함은 중심(中心)에 원해서이다.”
【傳】 中心願은 謂誠意所願也라 故通而相應이라.
중심(中心)에 원함은 정성스러운 뜻으로 원함을 이른다. 그러므로 통하여 서로 응(應)하는 것이다.
六三은 得敵하여 或鼓, 或罷, 或泣, 或歌로다.
육삼(六三)은 적(敵)[상대방]을 얻어서 혹 북치고 혹 그만두며, 혹 울고 혹 노래하도다.
【傳】 敵은 對敵也니 謂所交孚者니 正應上九是也라 三四皆以虛中爲成孚之主나 然所處則異라 四는 得位居正이라 故亡匹以從上하고 三은 不中失正이라 故得敵以累志[一作心]라 以柔說之質로 旣有所係하니 唯所信是從하여 或鼓張, 或罷廢, 或悲泣, 或歌樂하니 動息憂樂이 皆係乎所信也라 唯係所信이라 故未知吉凶이라 然非明達君子之所爲也니라.
적(敵)은 대적(對敵)함이니, 서로 믿는 이를 이르는 바, 정응(正應)인 상구(上九)가 이것이다. 삼효(三爻)와 사효(四爻)가 다 허중(虛中)으로 부신(孚信)을 이룬 주체가 되었으나 처한 바가 다르다. 사(四)는 제자리를 얻고 정(正)에 거하였으므로 짝을 잃어 위를 따르고, 삼(三)은 중(中)하지 못하고 정(正)을 잃었으므로 짝을 얻어 뜻을 매어둔다. 유열(柔說)의 자질로 이미 매어 있는 바가 있으니, 오직 믿는 바를 따라서 혹 북을 쳐 음악을 베풀기도 하고 혹 그만두기도 하며 혹 슬피 울기도 하고 혹 노래하며 즐거워하기도 하니, 동하고 쉬며 근심하고 즐거워함이 모두 믿는 바에 매어 있는 것이다. 오직 믿는 바에 매어 있으므로 길흉(吉凶)을 알지 못한다. 그러나 밝고 통달한 군자(君子)의 소행은 아니다.
【本義】 敵은 謂上九니 信之窮者라 六三은 陰柔不中正하여 以居說極而與之爲應이라 故不能自主而其象如此하니라.
적(敵)은 상구(上九)를 이르니, 믿기를 궁극히 하는 것이다. 육삼(六三)은 음유(陰柔)로 중정(中正)하지 못하면서 열(說)의 극(極)에 거하여 상구(上九)와 응(應)이 되기 때문에 스스로 주장하지 못하여 그 상(象)이 이와 같은 것이다.
象曰 或鼓, 或罷는 位不當也일새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혹 북치고, 혹 그만둠은 자리가 마땅하지 않기 때문이다.”
【傳】 居不當位라 故无所主하고 唯所信是從하니 所處得正이면 則所信有方矣리라.
거함이 자리에 마땅하지 않기 때문에 주장하는 바가 없고 오직 믿는 바를 따르니, 처한 바가 정(正)을 얻었으면 믿는 것이 법이 있을 것이다.
六四는 月幾望이니 馬匹이 亡하면 无咎리라.
육사(六四)는 달이 기망(旣望)이니, 말의 짝이 없어지면 허물이 없으리라.
【本義】 月幾望이요 馬匹이 亡이니,
【본의】 달이 기망(旣望)이고 마필(馬匹)이 없어짐이니,
【傳】 四爲成孚之主하고 居近君之位하여 處得其正而上信之至[一作位]니 當孚之任者也라 如月之幾望은 盛之至也라 已望則敵矣니 臣而敵君이면 禍敗必至라 故以幾望爲至盛이라 馬匹亡은 四與初爲正應하니 匹也라 古者에 駕車用四馬하니 不能備純色이면 則兩服兩驂이 各一色이요 又小大必相稱이라 故兩馬爲匹이니 謂對也라 馬者는 行物也니 初上應四而四亦進從五하여 皆上行이라 故以馬爲象이라 孚道在一하니 四旣從五하고 若復下係於初면 則不一而害於孚니 爲有咎矣라 故馬匹亡則无咎也니 上從五而不係於初는 是亡其匹也라 係初則不進하여 不能成孚之功也라.
사(四)는 부(孚)를 이룬 주체가 되고 군주(君主)와 가까운 자리에 거하여 처함이 바름을 얻고 위가 믿기를 지극히 하니, 부신(孚信)의 임무를 담당한 이이다. 달이 보름에 가까움과 같은 것은 성함이 지극한 것이다. 이미 보름이 되면 맞서니, 신하(臣下)로서 군주(君主)에게 맞서면 화패(禍敗)가 반드시 이른다. 그러므로 기망(旣望)을 지극히 성함으로 삼는다. ‘마필망(馬匹亡)’은 사(四)가 초(初)와 정응(正應)이 되니 짝이다. 옛날에 수레를 멍에할 때에 말 네 마리를 썼으니, 순수한 색깔을 구비하지 못하면 중앙(中央)에 있는 두 말과 양곁에 있는 두 말을 각기 한 색깔로 하고, 또 크기를 반드시 서로 맞추었다. 그러므로 말 두 마리를 필(匹)이라 하니, 대(對)를 이른다. 마(馬)는 가는 사물이니, 초(初)가 위로 사(四)에 응(應)하고 사(四) 역시 나아가 오(五)를 따라 모두 위로 가기 때문에 말을 상(象)으로 삼은 것이다. 부신(孚信)의 도(道)는 전일(專一)함에 있으니, 사(四)가 이미 오(五)를 따르고 만약 다시 아래로 초(初)에 매어 있으면 전일(專一)하지 못하여 부신(孚信)을 해치니, 허물이 있음이 된다. 그러므로 말의 짝이 없어지면 허물이 없는 것이니, 위로 오(五)를 따르고 초(初)에 얽매이지 않으면 이는 그 짝을 잃는 것이다. 초(初)에 매어 있으면 나아가지 못하여 부신(孚信)의 공(功)을 이루지 못한다.
【本義】 六四居陰得正하고 位近於君하여 爲月幾望之象이라 馬匹은 謂初與己爲匹이니 四乃絶之而上하여 以信於五라 故爲馬匹亡之象이니 占者如是면 則无咎也라.
육사(六四)가 음위(陰位)에 거하여 정(正)을 얻고 자리가 군주(君主)와 가까워 ‘월기망(月幾望)’의 상(象)이 된다. 마필(馬匹)은 초(初)가 자기와 짝이 됨을 이르니, 사(四)가 마침내 초(初)를 끊고 올라가서 오(五)를 믿기 때문에 ‘마필망(馬匹亡)’의 상(象)이 된 것이니, 점치는 이가 이와 같이 하면 허물이 없다.
象曰 馬匹亡은 絶類하여 上也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마필망(馬匹亡)’은 동류(同類)를 끊고서 위로 올라가는 것이다.”
【傳】 絶其類而上從五也니 類는 謂[一作相]應也라.
동류를 끊고 위로 오(五)를 따름이니, 유(類)는 응(應)을 이른다.
九五는 有孚攣如면 无咎리라.
구오(九五)는 믿음이 있음이 잡아당기듯 하면 허물이 없으리라.
【本義】 有孚攣如니 无咎니라.
【본의】 믿음이 있음이 잡아당기듯 함이니 허물이 없다.
【傳】 五居君位하니 人君之道는 當以至誠感通天下하여 使天下之心信之하여 固結이 如拘攣然이면 則爲无咎也라 人君之孚 不能使天下固結如是면 則億兆之心이 安能保其不離乎아.
오(五)가 군위(君位)에 거하였으니, 인군(人君)의 도리는 마땅히 지성(至誠)으로 천하(天下)를 감통(感通)시켜 천하(天下)의 마음이 믿게 하여 굳게 맺혀 있음이 잡아당기듯이 하면 허물이 없는 것이다. 인군(人君)의 부신(孚信)이 천하(天下)의 사람들이 굳게 맺음이 이와 같게 하지 못한다면 억조(億兆)의 마음이 떠나지 않음을 어찌 보장하겠는가.
【本義】 九五剛健中正하여 中孚之實而居尊位하니 爲孚之主者也요 下應九二하여 與之同德이라 故其象占如此하니라.
구오(九五)는 강건하고 중정(中正)하여 중부(中孚)의 실(實)함으로 존위(尊位)에 거하였으니 부신(孚信)의 주체가 된 이이며, 아래로 구이(九二)에 응(應)하여 더불어 덕(德)이 같기 때문에 그 상(象)과 점(占)이 이와 같은 것이다.
象曰 有孚攣如는 位正當也일새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유부연여(有孚攣如)’는 자리가 정당(正當)하기 때문이다.”
【傳】 五居君位之尊하고 由中正之道하여 能使天下信之를 如拘攣之固라야 乃稱其位니 人君之道 當如是也라.
오(五)가 군위(君位)의 높음에 거하고 중정(中正)의 도(道)를 행하여 천하(天下)가 믿게 하기를 잡아당기듯이 굳게 하여야 이에 지위에 걸맞으니, 인군(人君)의 도리가 마땅히 이와 같아야 한다.
上九는 翰音이 登于天이니 貞하여 凶하도다.
상구(上九)는 한음(翰音)이 하늘로 올라가니, 정고(貞固)하여 흉하도다.
【本義】 貞이라도 凶하니라.
【본의】 바르더라도 흉(凶)하다.
【傳】 翰音者는 音飛而實不從이라 處信之終하니 信終則衰하나니 忠篤內喪하고 華美外颺이라 故云翰音登天하니 正亦滅矣라 陽性上進하고 風體飛颺이라 九居中孚之時하여 處於最上하니 孚於上進而不知止者也라 其極이 至於羽翰之音이 登聞于天하니 貞固於此而不知變이면 凶可知矣라 夫子曰 好信不好學이면 其蔽也賊이라 하시니 固守而不通之謂也라.
한음(翰音)은 소리만 날고 실제는 따르지 않는 것이다. 신(信)의 종(終)에 처하였으니, 신(信)이 끝나면 쇠하니, 충신(忠信)함이 안에 상실되고 화려함과 아름다움이 밖에 드날리므로 한음(翰音)이 하늘로 올라간다고 말하였으니, 정(正)이 또한 멸한 것이다. 양(陽)의 성질은 위로 나아가고 바람의 체(體)는 비양(飛揚)한다. 구(九)가 중부(中孚)의 때에 거하여 가장 윗자리에 처하였으니, 위로 나아감에 성실하여 그칠 줄을 모르는 것이다. 그 지극함이 우한(羽翰)의 소리가 하늘에 올라가 들림에 이르니, 이에 정고(貞固)하여 변통할 줄 모르면 흉함을 알 수 있다. 부자(夫子)가 말씀하기를 “신(信)만 좋아하고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그 가리움이 해치게 된다.” 하였으니, 굳게 지키기만 하고 변통하지 못함을 이른 것이다.
【本義】 居信之極而不知變하니 雖得其貞이나 亦凶道也라 故其象占如此하니라 鷄曰翰音이니 乃巽之象이요 居巽之極하니 爲登于天이라 鷄非登天之物而欲登天하니 信非所信而不知變이 亦猶是也라.
신(信)의 극(極)에 거하여 변통할 줄을 모르니, 비록 정(貞)을 얻더라도 흉한 도(道)이다. 그러므로 그 상(象)과 점(占)이 이와 같은 것이다. 닭을 한음(翰音)이라고 하니 바로 손(巽)의 상(象)이요, 손(巽)의 극(極)에 처하였으니 하늘에 오름이 된다. 닭은 하늘에 오르는 물건이 아닌데 하늘에 오르고자 하니, 믿을 바가 아닌 것을 믿어 변통할 줄을 모름이 역시 이와 같은 것이다.
象曰 翰音登于天이니 何可長也리오.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한음(翰音)이 하늘에 오르니, 어찌 장구(長久)하리오.”
【傳】 守孚하여 至於窮極而不知變하니 豈可長久也리오 固守而[一无而字]不通하니 如是則凶也라.
부신(孚信)을 지켜 궁극함에 이르러도 변통할 줄 모르니, 어찌 장구(長久)하겠는가. 굳게 지켜 변통하지 못하니, 이와 같이 하면 흉하다.

61. 중부(中孚)