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사상전(繫辭上傳)
【本義】 繫辭는 本謂文王周公所作之辭 繫于卦爻之下者하니 卽今經文이요 此篇은 乃孔子所述繫辭之傳也라 以其通論一經之大體凡例라 故无經可附하여 而自分上下云이라.
계사(繫辭)는 본래 문왕(文王)과 주공(周公)이 지은 말씀으로 괘(卦)와 효(爻)의 아래에 단 것을 이르니 곧 지금의 경문(經文)이요, 이 편(篇)은 바로 공자(孔子)가 지으신 계사(繫辭)의 전(傳)이다. 한 경(經)의 대체(大體)와 범례(凡例)를 통론(通論)하였기 때문에 경문(經文)에 붙일 만한 곳이 없어서 별도로 상(上)·하(下)로 나눈 것이다.
天尊地卑하니 乾坤定矣요 卑高以陳하니 貴賤位矣요 動靜有常하니 剛柔斷矣요 方以類聚하고 物以群分하니 吉凶生矣요 在天成象하고 在地成形하니 變化見矣라.
하늘은 높고 땅은 낮으니 건(乾)·곤(坤)이 정해지고, 낮은 것과 높은 것이 진열되니 귀(貴)·천(賤)이 자리하고, 동(動)과 정(靜)이 떳떳함이 있으니 강(剛)·유(柔)가 결단되고, 방향은 유(類)로써 모아지고 사물(事物)은 무리로써 나누어지니 길(吉)·흉(凶)이 생기고, 하늘에 있어서는 상(象)이 이루어지고 땅에 있어서는 형체(形體)가 이루어지니 변(變)·화(化)가 나타난다.
【本義】 天地者는 陰陽形氣之實體요 乾坤者는 易中純陰純陽之卦名也라 卑高者는 天地萬物上下之位요 貴賤者는 易中卦爻上下之位也라 動者는 陽之常이요 靜者는 陰之常이며 剛柔者는 易中卦爻陰陽之稱也라 方은 謂事情所向이니 言事物善惡이 各以類分이요 而吉凶者는 易中卦爻占決之辭也라 象者는 日月星辰之屬이요 形者는 山川動植之屬이며 變化者는 易中蓍策卦爻가 陰變爲陽하고 陽化爲陰者也라 此는 言聖人作易에 因陰陽之實體하여 爲卦爻之法象하니 莊周所謂易以道陰陽이 此之謂也라.
천(天)과 지(地)는 음(陰)·양(陽)과 형(形)·기(氣)의 실체이고, 건(乾)과 곤(坤)은 역(易) 가운데 순양(純陽)과 순음(純陰)의 괘(卦)이름이다. 비(卑)와 고(高)는 천지만물(天地萬物)의 높고 낮은 자리이고, 귀(貴)와 천(賤)은 역(易) 가운데 괘효(卦爻)의 위·아래의 자리이다. 동(動)은 양(陽)의 떳떳함이요 정(靜)은 음(陰)의 떳떳함이며, 강(剛)과 유(柔)는 역(易) 가운데 괘효(卦爻)의 음(陰)·양(陽)의 명칭이다. 방향은 사정(事情)의 향하는 바를 이르니 사물의 선(善)·악(惡)이 각기 유(類)로써 나뉘어짐을 말한 것이요, 길(吉)과 흉(凶)은 역(易) 가운데 괘효(卦爻)의 점을 쳐서 결단한 말이다. 상(象)은 일(日)·월(月)·성신(星辰)의 등속이고 형(形)은 산(山)·천(川)·동(動)·식(植)의 등속이며, 변(變)과 화(化)는 역(易) 가운데 시책(蓍策)과 괘효(卦爻)가 음(陰)이 변하여 양(陽)이 되고 양(陽)이 화하여 음(陰)이 되는 것이다. 이는 성인(聖人)이 역(易)을 지을 적에 음양(陰陽)의 실체로 인하여 괘효(卦爻)의 법(法)과 상(象)을 만듦을 말한 것이니, 장주(莊周)가 이른바 “역(易)으로써 음양(陰陽)을 말했다.”는 것이 이것이다.
是故로 剛柔相摩하며 八卦相盪하여,
이러므로 강(剛)과 유(柔)가 서로 갈리며 팔괘(八卦)가 서로 섞여서
【本義】 此는 言易卦之變化也라 六十四卦之初는 剛柔兩畫而已니 兩相摩而爲四하고 四相摩而爲八하고 八相盪而爲六十四라.
이는 역괘(易卦)의 변화를 말한 것이다. 육십사괘(六十四卦)의 시초(始初)는 강(剛)과 유(柔) 두 획일 뿐이니, 둘이 서로 갈려 사(四)가 되고, 사(四)가 서로 갈려 팔(八)이 되고, 팔(八)이 서로 섞여서 육십사괘(六十四卦)가 되었다.
鼓之以雷霆하며 潤之以風雨하며 日月이 運行하며 一寒一暑하여,
우레로써 고동하며, 풍우(風雨)로써 적셔주며, 해와 달이 운행(運行)하며, 한 번 춥고 한 번 더워,
【本義】 此는 變化之成象者라.
이는 변화가 상(象)을 이룬 것이다.
乾道成男하고 坤道成女하니,
건(乾)의 도(道)가 남(男)이 되고 곤(坤)의 도(道)가 여(女)가 되었으니,
【本義】 此는 變化之成形者라 此兩節은 又明易之見於實體者하니 與上文相發明也라.
이는 변화가 형체를 이룬 것이다. 이 두 절(節)은 또 역(易)이 실체(實體)에 나타남을 밝혔으니, 상문(上文)과 서로 발명(發明)이 된다.
乾知大始요 坤作成物이라.
건(乾)은 큰 시작을 주장하고 곤(坤)은 물건을 만들어 완성한다.
【本義】 知는 猶主也라 乾主始物而坤作成之하니 承上文男女而言乾坤之理라 蓋凡物之屬乎陰陽者 莫不如此하니 大抵陽先陰後하고 陽施陰受하며 陽之輕淸은 未形하고 而陰之重濁은 有跡也니라.
지(知)는 주(主)와 같다. 건(乾)은 사물을 시작함을 주장하고 곤(坤)은 이를 만들어 완성하니, 상문(上文)의 남(男)·여(女)를 이어 건(乾)·곤(坤)의 이치를 말한 것이다. 무릇 사물 중에 음(陰)·양(陽)에 속하는 것은 이와 같지 않음이 없으니, 대저 양(陽)이 먼저이고 음(陰)이 뒤이며, 양(陽)은 베풀고 음(陰)은 받으며, 양(陽)의 가볍고 맑음은 나타나지 않고 음(陰)의 무겁고 탁함은 자취가 있다.
乾以易知요 坤以簡能이니,
건(乾)은 쉬움으로써 주장하고 곤(坤)은 간략함으로써 능하니,
【本義】 乾은 健而動하니 卽其所知가 便能始物而无所難이라 故爲以易而知大始요 坤은 順而靜하니 凡其所能이 皆從乎陽而不自作이라 故爲以簡而能成物이라.
건(乾)은 굳세고 동(動)하니 곧 주장하는 바가 사물을 시작하여 어려운 바가 없다. 그러므로 쉬움으로써 큰 시작을 주장함이 되는 것이다. 곤(坤)은 순(順)하고 정(靜)하니 무릇 그 능한 바가 모두 양(陽)을 따르고 스스로 만들지 않는다. 그러므로 간략함으로써 사물을 이룸이 되는 것이다.
易則易知요 簡則易從이요 易知則有親이요 易從則有功이요 有親則可久요 有功則可大요 可久則賢人之德이요 可大則賢人之業이니,
쉬우면 알기 쉽고 간략하면 따르기 쉬우며, 알기 쉬우면 친함이 있고 따르기 쉬우면 공(功)이 있으며, 친함이 있으면 오래할 수 있고 공(功)이 있으면 크게 할 수 있으며, 오래할 수 있으면 현인(賢人)의 덕(德)이요 크게 할 수 있으면 현인(賢人)의 업(業)이니,
【本義】 人之所爲가 如乾之易면 則其心明白而人易知하고 如坤之簡이면 則其事要約而人易從이니 易知則與之同心者多라 故有親이요 易從則與之協力者衆이라 故有功이라 有親則一於內라 故可久요 有功則兼於外라 故可大라 德은 謂得於己者요 業은 謂成於事者라 上言乾坤之德不同하고 此言人法乾坤之道하니 至此則可以爲賢矣라.
사람의 하는 바가 건(乾)의 쉬움과 같으면 그 마음이 명백(明白)하여 사람들이 알기 쉽고, 곤(坤)의 간략함과 같으면 그 일이 요약(要約)하여 사람들이 따르기 쉬우니, 알기 쉬우면 더불어 마음을 함께 하는 이가 많으므로 친함이 있고, 따르기 쉬우면 더불어 협력하는 이가 많으므로 공(功)이 있는 것이다. 친함이 있으면 안에 한결같으므로 오래할 수 있고, 공(功)이 있으면 밖을 겸하므로 크게 할 수 있는 것이다. 덕(德)은 자기에게 얻은 것을 말하고 업(業)은 일을 이루는 것을 말한다. 위에서는 건(乾)·곤(坤)의 덕(德)이 같지 않음을 말하였고, 여기서는 사람이 건(乾)·곤(坤)의 도(道)를 법받음을 말하였으니, 이에 이르면 현(賢)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易簡而天下之理得矣니 天下之理得而成位乎其中矣니라.
쉽고 간략함에 천하(天下)의 이치가 얻어지니, 천하(天下)의 이치가 얻어짐에 그 가운데에 자리를 이루는 것이다.
【本義】 成位는 謂成人之位요 其中은 謂天地之中이니 至此則體道之極功과 聖人之能事가 可以與天地參矣라.
성위(成位)는 사람의 자리를 이루는 것이요, 그 가운데는 천(天)·지(地)의 가운데이니, 이에 이르면 도(道)를 체행(體行)하는 지극한 공부와 성인(聖人)의 능사가 천지(天地)와 더불어 참여할 수 있는 것이다.
右는 第一章이라.
이상은 제1장이다.
【本義】 此章은 以造化之實로 明作經之理하고 又言乾坤之理가 分見於天地而人兼體之也라.
이 장(章)은 조화(造化)의 실제로써 역(易)을 지은 이치를 밝히고, 또 건(乾)·곤(坤)의 이치가 천(天)·지(地)에 나뉘어 나타나는데 사람이 겸하여 체행(體行)함을 말한 것이다.
聖人이 設卦하여 觀象繫辭焉하여 而明吉凶하며,
성인(聖人)이 괘(卦)를 만들어 상(象)을 보고 말을 달아 길(吉)·흉(凶)을 밝히며,
【本義】 象者는 物之似也라 此는 言聖人作易에 觀卦爻之象而繫以辭也라.
상(象)은 사물의 유사(類似)한 것이다. 이는 성인(聖人)이 역(易)을 지을 적에 괘효(卦爻)의 상(象)을 보고 말을 달았음을 말한 것이다.
剛柔相推하여 而生變化하니,
강(剛)과 유(柔)가 서로 미루어 변화를 낳으니,
【本義】 言卦爻陰陽이 迭相推盪하여 而陰或變陽하고 陽或化陰하니 聖人所以觀象而繫辭요 衆人所以因蓍而求卦者也라.
괘효(卦爻)의 음양(陰陽)이 번갈아 서로 밀고 뒤섞여 음(陰)이 혹 양(陽)으로 변하고 양(陽)이 혹 음(陰)으로 변함을 말한 것이니, 성인(聖人)이 이 때문에 상(象)을 보고 말을 달았고, 중인(衆人)이 이 때문에 시초(蓍草)로 인하여 괘(卦)를 구하는 것이다.
是故로 吉凶者는 失得之象也요 悔吝者는 憂虞之象也요,
그러므로 길(吉)·흉(凶)은 실(失)과 득(得)의 상(象)이요, 뉘우침과 부끄러움은 근심과 헤아림의 상(象)이요,
【本義】 吉凶悔吝者는 易之辭也요 得失憂虞者는 事之變也니 得則吉이요 失則凶이며 憂虞는 雖未至凶이나 然已足以致悔而取羞矣라 蓋吉凶相對而悔吝居其中間하니 悔는 自凶而趨吉이요 吝은 自吉而向凶也라 故聖人觀卦爻之中에 或有此象이면 則繫之以此辭也라.
길(吉)·흉(凶)과 회(悔)·인(吝)은 역(易)의 말이요 득(得)·실(失)과 우(憂)·우(虞)는 일의 변(變)이니, 이치에 맞으면 길(吉)하고 이치를 잃으면 흉(凶)하며, 우(憂)와 우(虞)는 비록 흉함에는 이르지 않았으나 이미 뉘우침을 이루어 부끄러움을 취할 수 있는 것이다. 길(吉)과 흉(凶)은 상대가 되고 회(悔)와 인(吝)은 그 중간에 위치하니, 회(悔)는 흉(凶)함으로부터 길(吉)함으로 나아가는 것이요, 인(吝)은 길(吉)함으로부터 흉(凶)함으로 향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인(聖人)이 괘효(卦爻)의 가운데에 혹 이러한 상(象)이 있음을 보면 이러한 말씀을 다신 것이다.
變化者는 進退之象也요 剛柔者는 晝夜之象也요 六爻之動은 三極之道也라.
변(變)·화(化)는 나아감과 물러감의 상(象)이요, 강(剛)·유(柔)는 낮과 밤의 상(象)이요, 육효(六爻)의 동함은 삼극(三極)의 도(道)이다.
【本義】 柔 變而趨於剛者는 退極而進也요 剛化而趨於柔者는 進極而退也니 旣變而剛이면 則晝而陽矣요 旣化而柔면 則夜而陰矣라 六爻는 初二爲地요 三四爲人이요 五上爲天이라 動은 卽變化也라 極은 至也라 三極은 天地人之至理니 三才各一太極也라 此는 明剛柔相推以生變化하고 而變化之極이 復爲剛柔하여 流行於一卦六爻之間하니 而占者得因所値하여 以斷吉凶也라.
유(柔)가 변하여 강(剛)에 나아가는 것은 물러감이 지극하여 나아감이요, 강(剛)이 화(化)하여 유(柔)에 나아감은 나아감이 지극하여 물러감이니, 이미 변하여 강(剛)하면 낮이어서 양(陽)이고, 이미 화(化)하여 유(柔)하면 밤이어서 음(陰)인 것이다. 육효(六爻)는 초(初)와 이(二)는 지(地)가 되고 삼(三)과 사(四)는 인(人)이 되고 오(五)와 상(上)은 천(天)이 된다. 동(動)은 곧 변화이다. 극(極)은 지극함이니, 삼극(三極)은 천(天)·지(地)·인(人)의 지극한 이치이니, 삼재(三才)가 각기 한 태극(太極)을 갖고 있는 것이다. 이는 강(剛)·유(柔)가 서로 미루어 변(變)·화(化)를 생성하고 변(變)·화(化)의 극(極)이 다시 강(剛)·유(柔)가 되어서 한 괘(卦) 여섯 효(爻)의 사이에 유행하니, 점치는 이가 만난 바를 인하여 길(吉)·흉(凶)을 결단함을 밝힌 것이다.
是故로 君子所居而安者는 易之序也요 所樂而玩者는 爻之辭也니,
그러므로 군자(君子)가 거하여 편안히 여기는 것은 역(易)의 차례이고, 즐거워하여 구경하는 것은 효(爻)의 말이니,
【本義】 易之序는 謂卦爻所著事理當然之次第라 玩者는 觀之詳이라.
역(易)의 차례는 괘효(卦爻)에 드러난 바 사리의 당연한 차제(次第)를 이른다. 완(玩)은 보기를 상세히 하는 것이다.
是故로 君子居則觀其象而玩其辭하고 動則觀其變而玩其占하나니 是以自天祐之하여 吉无不利니라.
그러므로 군자(君子)는 거하면 그 상(象)을 보고 그 말을 살펴보며, 동하면 그 변화함을 보고 그 점(占)을 살펴본다. 이 때문에 하늘로부터 도와주어 길(吉)하여 이롭지 않음이 없는 것이다.
【本義】 象辭變은 已見上이라 凡單言變者는 化在其中이라 占은 謂其所値吉凶之決也라.
상(象)·사(辭)·변(變)은 이미 위에 보인다. 무릇 변(變)만을 말한 것은 화(化)가 그 가운데 들어 있다. 점(占)은 그 만난 바의 길(吉)·흉(凶)을 결단함을 말한 것이다.
右는 第二章이라.
이상은 제2장이다.
【本義】 此章은 言聖人作易, 君子學易之事하니라.
이 장(章)은 성인(聖人)이 역(易)을 짓고 군자(君子)가 역(易)을 배우는 일을 말하였다.
彖者는 言乎象者也요 爻者는 言乎變者也요.
단(彖)은 상(象)을 말함이요 효(爻)는 변(變)을 말함이요,
【本義】 彖은 謂卦辭니 文王所作者요 爻는 謂爻辭니 周公所作者라 象은 指全體而言이요 變은 指一節而言이라.
단(彖)은 괘사(卦辭)를 이르니 문왕(文王)이 지으신 것이요, 효(爻)는 효사(爻辭)를 이르니 주공(周公)이 지으신 것이다. 상(象)은 전체를 가리켜 말한 것이요, 변(變)은 일절(一節)을 가리켜 말한 것이다.
吉凶者는 言乎其失得也요 悔吝者는 言乎其小疵也요 无咎者는 善補過也라.
길(吉)과 흉(凶)은 득(得)·실(失)을 말한 것이요, 회(悔)와 인(吝)은 약간의 하자를 말한 것이요, 무구(无咎)는 과실을 잘 보충한 것이다.
【本義】 此는 卦爻辭之通例라.
이는 괘사(卦辭)와 효사(爻辭)의 통례(通例)이다.
是故로 列貴賤者는 存乎位하고 齊小大者는 存乎卦하고 辨吉凶者는 存乎辭하고,
그러므로 귀(貴)·천(賤)을 진열함은 위(位)에 있고, 소(小)·대(大)를 정함은 괘(卦)에 있고, 길(吉)·흉(凶)을 분변함은 사(辭)에 있고,
【本義】 位는 謂六爻之位라 齊는 猶定也라 小는 謂陰이요 大는 謂陽이라.
위(位)는 육효(六爻)의 자리를 이른다. 제(齊)는 정(定)과 같다. 소(小)는 음(陰)을 이르고 대(大)는 양(陽)을 이른다.
憂悔吝者는 存乎介하고 震无咎者는 存乎悔하니,
회(悔)·인(吝)을 근심함은 나뉨에 있고, 동(動)하여 허물이 없게 함은 뉘우침에 있으니,
【本義】 介는 謂辨別之端이니 蓋善惡已動而未形之時也니 於此憂之면 則不至於悔吝矣라 震은 動也니 知悔면 則有以動其補過之心而可以无咎矣라.
개(介)는 변별(辨別)의 단서를 이르니 선(善)·악(惡)이 이미 동하였으나 아직 나타나지 않은 때이니, 이때에 근심하면 회(悔)·인(吝)에 이르지 않는다. 진(震)은 동함이니, 뉘우칠 줄을 알면 허물을 보충하려는 마음을 동함이 있어 허물이 없게 할 수 있는 것이다.
是故로 卦有小大하며 辭有險易하니 辭也者는 各指其所之니라.
그러므로 괘(卦)에는 음(陰)·양(陽)이 있으며, 말에는 험하고 평탄함이 있으니, 말은 각기 그 향하는 바를 가리킨 것이다.
【本義】 小險大易가 各隨所向이라.
소(小)의 험함과 대(大)의 평탄함이 각기 향하는 바를 따른다.
右는 第三章이라.
이상은 제3장이다.
【本義】 此章은 釋卦爻辭之通例라.
이 장(章)은 괘사(卦辭)와 효사(爻辭)의 통례(通例)를 해석한 것이다.
易이 與天地準이라 故로 能彌綸天地之道하나니,
역(易)은 천지(天地)와 똑같다. 그러므로 천지(天地)의 도(道)를 미륜(彌綸)한다.
【本義】 易書卦爻가 具有天地之道하여 與之齊準이라 彌는 如彌縫之彌니 有終竟聯合之意요 綸은 有選擇條理之意라.
《주역(周易)》의 괘효(卦爻)는 천지(天地)의 도(道)를 모두 갖추고 있어 천지(天地)와 더불어 똑같다. 미(彌)는 미봉(彌縫)의 미(彌)와 같으니 끝내고 연합하는 뜻이 있고, 윤(綸)은 선택하고 조리하는 뜻이 있다.
仰以觀於天文하고 俯以察於地理라 是故로 知幽明之故하며 原始反終이라 故로 知死生之說하며 精氣爲物이요 游魂爲變이라 是故로 知鬼神之情狀하나니라.
위로는 천문(天文)을 관찰하고 아래로는 지리(地理)를 살핀다. 그러므로 유(幽)·명(明)의 원인을 알며, 시작을 근원하여 종(終)에 돌이켜 연구한다. 그러므로 사(死)·생(生)의 이론을 알며, 정(精)과 기(氣)가 사물이 되고, 혼(魂)이 돌아다녀 변(變)이 된다. 이 때문에 귀(鬼)·신(神)의 정상(情狀)을 아는 것이다.
【本義】 此는 窮理之事라 以者는 聖人以易之書也라 易者는 陰陽而已니 幽明死生鬼神은 皆陰陽之變이요 天地之道也라 天文則有晝夜上下하고 地理則有南北高深이라 原者는 推之於前이요 反者는 要之於後라 陰精陽氣가 聚而成物은 神之伸也요 魂游魄降하여 散而爲變은 鬼之歸也라.
이는 이치를 궁구하는 일이다. 이(以)는 성인(聖人)이 《주역(周易)》 책을 이용하는 것이다. 역(易)은 음(陰)·양(陽)일 뿐이니, 유(幽)·명(明), 사(死)·생(生), 귀(鬼)·신(神)은 모두 음(陰)·양(陽)의 변(變)이고 천(天)·지(地)의 도(道)이다. 천문(天文)은 주(晝)·야(夜)와 상(上)·하(下)가 있고, 지리(地理)는 남(南)·북(北)과 고(高)·심(深)이 있다. 원(原)은 앞에 미룸이요 반(反)은 뒤에 맞춰보는 것이다. 음(陰)의 정(精)과 양(陽)의 기(氣)가 모여서 사물을 이룸은 신(神)의 펴짐이요, 혼(魂)이 돌아다니고 백(魄)이 내려와서 흩어져 변(變)이 됨은 귀(鬼)의 돌아감이다.
與天地相似라 故로 不違하나니 知(智)周乎萬物而道濟天下라 故로 不過하며 旁行而不流하여 樂天知命이라 故로 不憂하며 安土하여 敦乎仁이라 故로 能愛하나니라.
천(天)·지(地)와 더불어 서로 같으므로 어기지 않으니, 지혜가 만물(萬物)에 두루하고 도(道)가 천하(天下)를 구제하기 때문에 지나치지 않으며, 사방으로 행하되 흐르지 아니하여 천리(天理)를 즐거워하고 천명(天命)을 알기 때문에 근심하지 않으며, 자리에 편안하여 인(仁)을 돈독히 하기 때문에 사랑할 수 있는 것이다.
【本義】 此는 聖人盡性之事也라 天地之道는 知(智)仁而已라 知周萬物者는 天也요 道濟天下者는 地也니 知且仁이면 則知而不過矣라 旁行者는 行權之知也요 不流者는 守正之仁也라 旣樂天理而又知天命이라 故能无憂而其知益深하고 隨處皆安而无一息之不仁이라 故能不忘其濟物之心而仁益篤하나니 蓋仁者는 愛之理요 愛者는 仁之用이라 故其相爲表裏 如此하니라.
이는 성인(聖人)이 성(性)을 다하는 일이다. 천(天)·지(地)의 도(道)는 지(智)와 인(仁)일 뿐이니, 지(智)가 만물(萬物)에 두루함은 하늘이요, 도(道)가 천하(天下)를 구제함은 땅이니, 지혜로우면서도 인(仁)하면 지혜롭되 지나치지 않은 것이다. 사방으로 행함은 권도(權道)를 행하는 지(智)이고, 흐르지 않음은 바름을 지키는 인(仁)이다. 이미 천리(天理)를 즐거워하고 또 천명(天命)을 알기 때문에 근심이 없어 그 지혜가 더욱 깊고, 있는 곳에 따라 모두 편안하여 한번 숨 쉴 때라도 인(仁)하지 않음이 없기 때문에 물건을 구제하려는 마음을 잊지 않아 인(仁)이 더욱 돈독하니, 인(仁)은 사랑의 이치이고 사랑은 인(仁)의 용(用)이다. 그러므로 서로 표(表)·이(裏)가 됨이 이와 같은 것이다.
範圍天地之化而不過하며 曲成萬物而不遺하며 通乎晝夜之道而知라 故로 神无方而易无體하니라.
천지(天地)의 조화를 범위(範圍)하여 지나치지 않으며, 만물(萬物)을 곡진히 이루어 빠뜨리지 않으며, 주(晝)·야(夜)의 도(道)를 겸하여 안다. 그러므로 신(神)은 일정한 방소가 없고 역(易)은 일정한 체(體)가 없는 것이다.
【本義】 此는 聖人至命之事也라 範은 如鑄金之有模範이요 圍는 匡郭也라 天地之化无窮이어늘 而聖人爲之範圍하여 不使過於中道하니 所謂裁成者也라 通은 猶兼也요 晝夜는 卽幽明生死鬼神之謂라 如此然後에 可見至神之妙无有方所하고 易之變化无有形體也라.
이는 성인(聖人)이 천명(天命)에 이르는 일이다. 범(範)은 금(金)을 주조(鑄造)할 때에 원형이 있는 것과 같고, 위(圍)는 틀이다. 천지(天地)의 조화가 무궁한데 성인(聖人)이 이것을 범위(範圍)하여 중도(中道)에 지나치지 않게 하니, 이른바 재성(裁成)한다는 것이다. 통(通)은 겸(兼)과 같고, 주(晝)·야(夜)는 곧 유(幽)·명(明)과 생(生)·사(死)와 귀(鬼)·신(神)을 이른 것이다. 이와 같이 한 뒤에야 지신(至神)의 묘함이 일정한 방소가 없고, 역(易)의 변화가 형체가 없음을 볼 수 있는 것이다.
右는 第四章이라.
이상은 제4장이다.
【本義】 此章은 言易道之大어늘 聖人用之如此라.
이 장(章)은 역(易)의 도(道)가 큰데, 성인(聖人)이 쓰기를 이와 같이 함을 말한 것이다.
一陰一陽之謂道니,
한 번 음(陰)하고 한 번 양(陽)하게 함을 도(道)라 이르니,
【本義】 陰陽迭運者는 氣也요 其理는 則所謂道라.
음(陰)·양(陽)이 번갈아 운행(運行)함은 기(氣)이고, 그 이치는 이른바 도(道)라는 것이다.
繼之者善也요 成之者性也라.
계속하여 함은 선(善)이요, 갖추어 있음은 성(性)이다.
【本義】 道具於陰而行乎陽하나니 繼는 言其發也요 善은 謂化育之功이니 陽之事也며 成은 言其具也요 性은 謂物之所受니 言物生則有性而各具是道也니 陰之事也라 周子程子之書에 言之備矣니라.
도(道)는 음(陰)에 갖추어져 있고 양(陽)에 행해지니, 계(繼)는 그 발함을 말한 것이요 선(善)은 화육(化育)의 공(功)을 이르니 양(陽)의 일이다. 성(成)은 갖추고 있음을 말한 것이요 성(性)은 사물이 받은 것을 이르니, 사물이 나면 성(性)을 간직하고 있어 각기 이 도(道)를 갖춤을 말한 것이니, 음(陰)의 일이다. 주자(周子)와 정자(程子)의 책에 말씀한 것이 자세하다.
仁者見之에 謂之仁하며 知者見之에 謂之知요 百姓은 日用而不知라 故로 君子之道鮮矣니라.
인자(仁者)는 이를 보고 인(仁)이라 이르고, 지자(智者)는 이를 보고 지(智)라 이르며, 백성들은 날마다 쓰면서도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군자(君子)의 도(道)가 드문 것이다.
【本義】 仁陽知陰은 各得是道之一隅라 故隨其所見而目爲全體也라 日用不知는 則莫不飮食이언마는 鮮能知味者니 又其每下者也라 然亦莫不有是道焉이라 或曰 上章은 以知屬乎天하고 仁屬乎地하여 與此不同은 何也오 曰 彼는 以淸濁言이요 此는 以動靜言이니라.
인(仁)의 양(陽)과 지(智)의 음(陰)은 각각 이 도(道)의 한 쪽만을 얻었다. 그러므로 그 보는 바에 따라 전체라고 지목하는 것이다. 날마다 쓰면서도 알지 못한다는 것은 음식을 먹고 마시지 않는 이가 없으나 맛을 아는 이가 적으니, 또 매번 낮은 것이다. 그러나 역시 이 도(道)가 있지 않음이 없다. 혹자는 말하기를 “상장(上章)에서는 지(智)를 하늘에 소속시키고 인(仁)을 땅에 소속시켜서 여기와 같지 않음은 어째서인가?” 하기에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저것은 청(淸)·탁(濁)으로 말하였고 이것은 동(動)·정(靜)으로 말한 것이다.”
顯諸仁하며 藏諸用하여 鼓萬物而不與聖人同憂하나니 盛德大業이 至矣哉라.
인(仁)에 드러나며 용(用)에 감추어져 만물(萬物)을 고무(鼓舞)하되 성인(聖人)과 함께 근심하지 않으니, 성한 덕(德)과 큰 업(業)이 지극하다.
【本義】 顯은 自內而外也요 仁은 謂造化之功이니 德之發也라 藏은 自外而內也요 用은 謂機緘之妙니 業之本也라 程子曰 天地는 无心而成化하고 聖人은 有心而无爲니라.
현(顯)은 안으로부터 밖에 나옴이요, 인(仁)은 조화의 공(功)을 이르니 덕(德)의 발로이다. 장(藏)은 밖으로부터 안으로 들어감이요, 용(用)은 기함(機緘)의 묘(妙)를 이르니, 업(業)의 근본이다.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천지(天地)는 마음이 없으나 조화(造化)를 이루고, 성인(聖人)은 마음이 있으나 위함이 없다.”
富有之謂大業이요 日新之謂盛德이요,
풍부히 소유함을 대업(大業)이라 이르고, 날로 새로워짐을 성덕(盛德)이라 이르고,
【本義】 張子曰 富有者는 大而无外요 日新者는 久而无窮이라.
장자(張子)가 말씀하였다. “‘부유(富有)’는 커서 밖이 없는 것이요, ‘일신(日新)’은 오래어 무궁(無窮)한 것이다.”
生生之謂易이요,
낳고 낳음을 역(易)이라 이르고,
【本義】 陰生陽하고 陽生陰하여 其變无窮하니 理與書皆然也라.
음(陰)은 양(陽)을 낳고 양(陽)은 음(陰)을 낳아 그 변화가 무궁(無窮)하니, 이치와 역(易)이 모두 그러하다.
成象之謂乾이요 效法之謂坤이요,
상(象)을 이룸을 건(乾)이라 하고 법(法)을 드러냄을 곤(坤)이라 하고,
【本義】 效는 呈也요 法은 謂造化之詳密而可見者라.
효(效)는 드러냄이요, 법(法)은 조화(造化)가 상세하고 치밀하여 볼 수 있음을 이른다.
極數知來之謂占이요 通變之謂事요,
수(數)를 지극히 하여 미래를 앎을 점(占)이라 하고, 변(變)을 통함을 일이라 하고,
【本義】 占은 筮也니 事之未定者는 屬乎陽也요 事는 行事也니 占之已決者는 屬乎陰也라 極數知來는 所以通事之變이라 張忠定公이 言公事有陰陽이라 하니 意蓋如此라.
점(占)은 시초점(蓍草占)이니 일이 아직 결정되지 않은 것은 양(陽)에 속하며, 일은 행하는 일이니 점(占)이 이미 결단된 것은 음(陰)에 속한다. 수(數)를 지극히 하여 미래를 앎은 일의 변(變)을 통하는 것이다. 장충정공(張忠定公)이 “공사(公事)에도 음양(陰陽)이 있다.” 하였으니, 뜻이 이와 같은 것이다.
陰陽不測之謂神이라.
음(陰)하고 양(陽)하여 측량할 수 없음을 신(神)이라 한다.
【本義】 張子曰 兩在라 故不測이니라.
장자(張子)가 말씀하였다. “두 가지가 있으므로 측량할 수 없는 것이다.”
右는 第五章이라.
이상은 제5장이다.
【本義】 此章은 言道之體用이 不外乎陰陽이로되 而其所以然者는 則未嘗倚於陰陽也라.
이 장(章)은 도(道)의 체(體)·용(用)은 음(陰)·양(陽)에서 벗어나지 않으나, 그 소이연(所以然)은 일찍이 음(陰)·양(陽)에 의지하지 않음을 말하였다.
夫易이 廣矣大矣라 以言乎遠則不禦하고 以言乎邇則靜而正하고 以言乎天地之間則備矣라.
역(易)이 넓고 크다. 멂을 말하면 다함이 없고, 가까움을 말하면 고요하여 바르고, 천(天)·지(地)의 사이를 말하면 구비되었다.
【本義】 不禦는 言无盡이라 靜而正은 言卽物而理存이라 備는 言无所不有라.
‘불어(不禦)’는 다함이 없음을 말한 것이다. 고요하여 바름은 일에 나아감에 이치가 있음을 말한 것이다. 비(備)는 있지 않은 바가 없음을 말한 것이다.
夫乾은 其靜也專하고 其動也直이라 是以大生焉하며 夫坤은 其靜也翕하고 其動也闢이라 是以廣生焉하나니,
건(乾)은 그 고요함이 전일(專一)하고 그 동함이 곧다. 이 때문에 큼이 생기며, 곤(坤)은 그 고요함이 합하고 그 동함이 열린다. 이 때문에 넓음이 생기니,
【本義】 乾坤이 各有動靜하니 於其四德에 見之면 靜體而動用이요 靜別而動交也라 乾은 一而實이라 故以質言而曰大요 坤은 二而虛라 故以量言而曰廣이라 蓋天之形이 雖包於地之外나 而其氣는 常行乎地之中也니 易之所以廣大者는 以此니라.
건(乾)·곤(坤)이 각기 동(動)·정(靜)이 있으니, 사덕(四德)에서 보면 정(靜)은 체(體)이고 동(動)은 용(用)이며, 정(靜)은 따로이고 동(動)은 서로 사귄다. 건(乾)은 일(一)이어서 실(實)하므로 질(質)로써 말하여 대(大)라 하였고, 곤(坤)은 이(二)여서 허(虛)하므로 양(量)으로써 말하여 광(廣)이라 한 것이다. 하늘의 형체가 비록 땅의 밖을 포함하고 있으나 그 기(氣)는 항상 땅의 가운데에 행하니, 역(易)이 광대(廣大)한 까닭은 이 때문이다.
廣大는 配天地하고 變通은 配四時하고 陰陽之義는 配日月하고 易簡之善은 配至德하니라.
광대(廣大)는 천지(天地)에 배합하고, 변통(變通)은 사시(四時)에 배합하고, 음양(陰陽)의 뜻은 일월(日月)에 배합하고, 이간(易簡)의 선(善)은 지덕(至德)에 배합한다.
【本義】 易之廣大變通과 與其所言陰陽之說, 易簡之德을 配之天道人事면 則如此라.
역(易)의 광대(廣大)·변통(變通)과 그 말한 바의 음양(陰陽)의 말과 이간(易簡)의 덕(德)을 천도(天道)와 인사(人事)에 배합하면 이와 같다.
右는 第六章이라
이상은 제6장이다.
子曰 易이 其至矣乎인저 夫易은 聖人所以崇德而廣業也라 知(智)는 崇하고 禮는 卑하니 崇은 效天하고 卑는 法地하니라.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였다. “역(易)은 지극하다 할 것이다. 역(易)은 성인(聖人)이 덕(德)을 높이고 업(業)을 넓힌 것이다. 지(智)는 높고 예(禮)는 낮으니, 높음은 하늘을 본받고 낮음은 땅을 본받은 것이다.
【本義】 十翼은 皆夫子所作이니 不應自著(착)子曰字니 疑皆後人所加也라 窮理則知崇如天而德崇이요 循理則禮卑如地而業廣이라 此其取類는 又以淸濁言也라.
십익(十翼)은 모두 부자(夫子)가 지은 것이니, 스스로 ‘자왈(子曰)’이라는 글자를 놓을 수 없으니, 의심컨대 모두 후인(後人)이 붙인 것인 듯하다. 이치를 궁구하면 지혜의 높음이 하늘과 같아 덕(德)이 높아지고, 이치를 따르면 예(禮)로 낮춤이 땅과 같아 업(業)이 넓어진다. 여기에 유(類)를 취함은 또 청(淸)·탁(濁)으로써 말한 것이다.
天地設位어든 而易이 行乎其中矣니 成性存存이 道義之門이니라.
천지(天地)가 자리를 베풀면 역(易)이 그 가운데 행해지니, 이루어진 성(性)에 보존하고 보존함이 도의(道義)의 문(門)이다.”
【本義】 天地設位而變化行은 猶知禮存性而道義出也라 成性은 本成之性也요 存存은 謂存而又存이니 不已之意也라.
천지(天地)가 자리를 베풀면 변화가 행해짐은 지(智)와 예(禮)가 성(性)에 보존되어 도의(道義)가 나오는 것과 같은 것이다. ‘성성(成性)’은 본래 이루어진 성(性)이요 ‘존존(存存)’은 보존하고 또 보존함을 이르니, 그치지 않는 뜻이다.
右는 第七章이라
이상은 제7장이다.
聖人이 有以見天下之賾하여 而擬諸其形容하며 象其物宜라 是故謂之象이요,
성인(聖人)이 천하(天下)의 잡란(雜亂)함을 보고서 그 형용(形容)에 모의(模擬)하고 그 물건에 마땅함을 형상하였다. 이러므로 상(象)이라 일렀고,
【本義】 賾은 雜亂也라 象은 卦之象이니 如說卦所列者라.
색(賾)는 잡란(雜亂)함이다. 상(象)은 괘(卦)의 상(象)이니, 〈설괘전(說卦傳)〉에 나열한 것과 같은 것이다.
聖人이 有以見天下之動하여 而觀其會通하여 以行其典禮하며 繫辭焉하여 以斷其吉凶이라 是故謂之爻니,
성인(聖人)이 천하(天下)의 동함을 보고서 그 회통(會通)함을 관찰(觀察)하여 떳떳한 예(禮)를 행하며, 말을 달아 길(吉)·흉(凶)을 결단하였다. 이 때문에 효(爻)라 이르니,
【本義】 會는 謂理之所聚而不可遺處요 通은 謂理之可行而无所礙處니 如庖丁解牛에 會則其族而通則其虛也라.
회(會)는 이치가 모여 있어 빠뜨릴 수 없는 부분을 이르고, 통(通)은 이치가 행할 수 있어 막힘이 없는 부분을 이르니, 포정(庖丁)이 소를 해체(解體)할 때에 회(會)는 힘줄과 뼈가 모인 곳이요, 통(通)은 그 빈 곳인 것과 같다.
言天下之至賾하되 而不可惡(오)也며 言天下之至動하되 而不可亂也니,
천하(天下)의 지극히 잡란(雜亂)함을 말하되 싫어할 수 없으며, 천하(天下)의 지극히 동함을 말하되 어지럽힐 수 없으니,
【本義】 惡는 猶厭也라.
오(惡)는 염(厭)과 같다.
擬之而後言하고 議之而後動이니 擬議하여 以成其變化하니라.
모의한 뒤에 말하고 의논한 뒤에 동(動)하니, 모의하고 의논하여 그 변화를 이룬다.
【本義】 觀象玩辭, 觀變玩占而法行之니 此下七爻는 則其例也라.
상(象)을 보고 글을 살펴보며 변(變)을 보고 점(占)을 살펴보아 법받아 행하니, 이 아래 일곱 효(爻)는 바로 그 예(例)이다.
鳴鶴이 在陰이어늘 其子和之로다 我有好爵하여 吾與爾靡之라 하니 子曰 君子居其室하여 出其言善이면 則千里之外應之하나니 況其邇者乎아 居其室하여 出其言不善이면 則千里之外違之하나니 況其邇者乎아 言出乎身하여 加乎民하며 行發乎邇하여 見(현)乎遠하나니 言行은 君子之樞機니 樞機之發이 榮辱之主也라 言行은 君子之所以動天地也니 可不愼乎아.
“우는 학이 음지(陰地)에 있으니 그 새끼가 화답하도다. 내 좋은 벼슬을 소유하여 내 너와 함께 연연해 한다.” 하니, 공자(孔子)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다. “군자(君子)가 집에 거하여 말을 냄이 선(善)하면 천리(千里)의 밖에서도 응하니, 하물며 가까운 이에 있어서랴. 집에 거하여 말을 냄이 선(善)하지 못하면 천리(千里) 밖에서도 떠나가니, 하물며 가까운 이에 있어서랴. 말은 몸에서 나와 백성에게 가(加)해지며, 행실은 가까운 곳에서 발하여 먼 곳에 나타나니, 말과 행실은 군자(君子)의 추기(樞機)이니, 추기(樞機)의 발함이 영(榮)·욕(辱)의 주체이다. 말과 행실은 군자(君子)가 천지(天地)를 동하는 것이니, 삼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
【本義】 釋中孚九二爻義라.
중부괘(中孚卦) 구이효(九二爻)의 뜻을 해석한 것이다.
同人이 先號咷而後笑라 하니 子曰 君子之道 或出或處或默或語나 二人同心하니 其利斷金이로다 同心之言이 其臭如蘭이로다.
“남과 함께 하되 먼저는 울부짖다가 뒤에는 웃는다.” 하니, 공자(孔子)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다. “군자(君子)의 도(道)가 혹은 나아가고 혹은 처하며, 혹은 침묵하고 혹은 말하나 두 사람이 마음을 함께 하니, 그 날카로움이 금(金)을 절단한다. 마음을 함께 하는 말은 그 향기로움이 난초와 같다.”
【本義】 釋同人九五爻義라 言君子之道 初若不同이나 而後實无間이라 斷金, 如蘭은 言物莫能間而其言有味也라.
동인괘(同人卦) 구오효(九五爻)의 뜻을 해석한 것이다. 군자(君子)의 도(道)가 처음에는 같지 않은 듯하나 뒤에는 실로 간격이 없음을 말한 것이다. 금(金)을 절단함과 난초와 같다는 것은 다른 물건이 능히 끼지 못하여 그 말이 맛이 있음을 말한 것이다.
初六은 藉用白茅니 无咎라 하니 子曰 苟錯諸地라도 而可矣어늘 藉之用茅하니 何咎之有리오 愼之至也라 夫茅之爲物이 薄이나 而用은 可重也니 愼斯術也하여 以往이면 其无所失矣리라.
“초육(初六)은 깔되 흰 띠풀을 사용함이니 허물이 없다.” 하니, 공자(孔子)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다. “진실로 그대로 땅에 놓더라도 가(可)하거늘 깔되 띠풀을 사용하니 무슨 허물이 있겠는가. 삼감이 지극한 것이다. 띠풀이란 물건은 하찮으나 쓰임은 소중히 여길 만하니, 이 방법을 삼가서 가면 잘못되는 바가 없으리라.”
【本義】 釋大過初六爻義라.
대과괘(大過卦) 초육효(初六爻)의 뜻을 해석한 것이다.
勞謙이니 君子有終이니 吉이라 하니 子曰 勞而不伐하며 有功而不德이 厚之至也니 語以其功下人者也라 德言盛이요 禮言恭이니 謙也者는 致恭하여 以存其位者也라.
“공로가 있으면서도 겸손하니 군자(君子)가 종(終)이 있으니 길(吉)하다.” 하니, 공자(孔子)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다. “공로가 있어도 자랑하지 않으며 공(功)이 있어도 덕(德)으로 여기지 않음은 후함의 지극함이니, 공(功)이 있으면서도 남에게 몸을 낮춤을 말한 것이다. 덕(德)으로 말하면 성대(盛大)하고 예(禮)로 말하면 공손하니, 겸(謙)은 공손함을 지극히 하여 그 지위를 보존하는 것이다.”
【本義】 釋謙九三爻義라 德言盛, 禮言恭은 言德欲其盛이요 禮欲其恭也라.
겸괘(謙卦) 구삼효(九三爻)의 뜻을 해석한 것이다. 덕(德)으로 말하면 성대(盛大)하고 예(禮)로 말하면 공손하다는 것은 덕(德)은 성하고자 하고 예(禮)는 공손하고자 함을 말한 것이다.
亢龍이니 有悔라 하니 子曰 貴而无位하며 高而无民하며 賢人이 在下位而无輔라 是以動而有悔也니라.
“항룡(亢龍)이니 뉘우침이 있다.” 하니, 공자(孔子)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다. “귀하나 지위가 없고 높으나 백성이 없으며, 현인(賢人)이 하위(下位)에 있어 도와주는 이가 없다. 이 때문에 동하면 뉘우침이 있는 것이다.”
【本義】 釋乾上九爻義라 當屬文言이니 此蓋重出이라.
건괘(乾卦) 상구효(上九爻)의 뜻을 해석한 것이다. 마땅히 〈문언전(文言傳)〉에 속해야 하니, 이는 거듭 나온 것이다.
不出戶庭이면 无咎라 하니 子曰 亂之所生也 則言語以爲階니 君不密則失臣하며 臣不密則失身하며 幾事不密則害成하나니 是以君子愼密而不出也하나니라.
“호정(戶庭)을 나가지 않으면 허물이 없다.” 하니, 공자(孔子)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다. “난(亂)이 생기는 것은 언어(言語)가 계제(階梯)가 되니, 군주(君主)가 신밀(愼密)하지 않으면 신하(臣下)를 잃고 신하(臣下)가 신밀(愼密)하지 않으면 몸을 잃으며, 기미(幾微)의 일이 신밀(愼密)하지 않으면 해로움이 이루어지니, 이 때문에 군자(君子)는 신밀(愼密)하여 말을 함부로 내지 않는 것이다.”
【本義】 釋節初九爻義라.
절괘(節卦) 초구효(初九爻)의 뜻을 해석한 것이다.
子曰 作易者其知盜乎인저 易曰 負且乘이라 致寇至라 하니 負也者는 小人之事也요 乘也者는 君子之器也니 小人而乘君子之器라 盜思奪之矣며 上을 慢하고 下를 暴라 盜思伐之矣니 慢藏이 誨盜며 冶容이 誨淫이니 易曰 負且乘致寇至라 하니 盜之招也라.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였다. “역(易)을 지은 이는 도적이 생기는 이유를 알았을 것이다. 역(易)에 이르기를 ‘질 것이면서 또 타고 있는지라 도적이 옴을 이룬다’ 하였으니, 지는 것은 소인(小人)의 일이요 타는 것은 군자(君子)의 기물(器物)이니, 소인(小人)으로서 군자(君子)의 기물(器物)을 타고 있다. 이 때문에 도적이 빼앗을 것을 생각하며, 윗사람을 소홀히 하고 아랫사람을 사납게 대한다. 이 때문에 도적이 칠 것을 생각하는 것이다. 보관을 허술하게 함이 도적을 가르치며, 모양을 치장함이 간음을 가르치는 것이니, 역(易)에 ‘질 것이 또 타고 있는지라 도적이 옴을 이룬다’ 하였으니, 도적을 불러들이는 것이다.”
【本義】 釋解六三爻義라.
해괘(解卦) 육삼효(六三爻)의 뜻을 해석한 것이다.
右는 第八章이라.
이상은 제8장이다.
【本義】 此章은 言卦爻之用이라.
이 장(章)은 괘효(卦爻)의 용(用)을 말하였다.
天一地二天三地四天五地六天七地八天九地十이니,
천(天)이 1이고 지(地)가 2이며, 천(天)이 3이고 지(地)가 4이며, 천(天)이 5이고 지(地)가 6이며, 천(天)이 7이고 지(地)가 8이며, 천(天)이 9이고 지(地)가 10이니,
【本義】 此簡은 本在第十章之首어늘 程子曰 宜在此라 하시니 今從之하노라 此는 言天地之數 陽奇陰偶니 卽所謂河圖者也라 其位가 一六居下, 二七居上, 三八居左, 四九居右, 五十居中하니 就此章而言之면 則中五爲衍母요 次十爲衍子며 次一二三四 爲四象之位하고 次六七八九 爲四象之數라 二老는 位於西北하고 二少는 位於東南하며 其數則各以其類로 交錯於外也라.
이 죽간(竹簡)은 본래 제10장의 처음에 있었는데, 정자(程子)가 “마땅히 여기에 있어야 한다.” 하였으니, 이제 그 말씀을 따른다. 이는 천지(天地)의 수(數)에 양(陽)의 기수(奇數)와 음(陰)의 우수(偶數)를 말한 것이니, 곧 이른바 하도(河圖)라는 것이다. 그 위치가 1·6은 아래에 있고 2·7은 위에 있고 3·8은 좌(左)에 있고 4·9는 우(右)에 있고 5·10은 중앙에 있으니, 이 장(章)을 가지고 말하면 중앙의 5는 대연(大衍)의 어머니가 되고 다음의 10은 대연(大衍)의 자식이 되며, 다음의 1·2·3·4는 사상(四象)의 자리가 되고 다음의 6·7·8·9는 사상(四象)의 수(數)가 된다. 노양(老陽)·노음(老陰)은 서(西)·북(北)에 위치하고, 소양(少陽)·소음(少陰)은 동(東)·남(南)에 위치하며, 그 수(數)는 각기 그 유(類)에 따라 밖에 교차한다.
天數五요 地數五니 五位相得하며 而各有合하니 天數二十有五요 地數三十이라 凡天地之數五十有五니 此所以成變化而行鬼神也라.
천(天)의 수(數)가 다섯이고 지(地)의 수(數)가 다섯이니, 다섯의 자리가 서로 맞으며 각기 합함이 있으니, 천(天)의 수(數)가 25이고 지(地)의 수(數)가 30이다. 무릇 천지(天地)의 수(數)가 55이니, 이것이 변화(變化)를 이루며 귀신(鬼神)을 행하는 것이다.
【本義】 此簡은 本在大衍之後어늘 今按宜在此라 天數五者는 一三五七九皆奇也요 地數五者는 二四六八十이 皆偶也라 相得은 謂一與二, 三與四, 五與六, 七與八, 九與十이 各以奇偶爲類而自相得이요 有合은 謂一與六, 二與七, 三與八, 四與九, 五與十이 皆兩相合이라 二十有五者는 五奇之積也요 三十者는 五偶之積也라 變化는 謂一變生水而六化成之하고 二化生火而七變成之하고 三變生木而八化成之하고 四化生金而九變成之하고 五變生土而十化成之라 鬼神은 謂凡奇偶生成之屈伸往來者라.
이 쪽은 본래 대연(大衍)의 뒤에 있었는데 이제 살펴보건대 마땅히 여기에 있어야 한다. 천(天)의 수(數)가 다섯이라는 것은 1·3·5·7·9가 모두 기수(奇數)인 것이고, 지(地)의 수(數)가 다섯이라는 것은 2·4·6·8·10이 모두 우수(偶數)인 것이다. 서로 맞는다는 것은 1과 2, 3과 4, 5와 6, 7과 8, 9와 10이 각기 기수(奇數)와 우수(偶數)로서 유(類)가 되어 스스로 서로 맞음을 이르고, 합함이 있다는 것은 1과 6, 2와 7, 3과 8, 4와 9, 5와 10이 모두 서로 합함을 이른다. 25는 다섯 기수(奇數)를 모은 것이고 30은 다섯 우수(偶數)를 모은 것이다. 변화(變化)는 1이 변하여 수(水)를 낳으면 6이 화(化)하여 이루고, 2가 화(化)하여 화(火)를 낳으면 7이 변(變)하여 이루고, 3이 변(變)하여 목(木)을 낳으면 8이 화(化)하여 이루고, 4가 화(化)하여 금(金)을 낳으면 9가 변(變)하여 이루고, 5가 변(變)하여 토(土)를 낳으면 10이 화(化)하여 이룸을 이른다. 귀신(鬼神)은 모든 기(奇)·우(偶), 생(生)·성(成)의 굴신(屈伸)과 왕래(往來)를 이른다.
大衍之數五十이니 其用은 四十有九라 分而爲二하여 以象兩하고 掛一하여 以象三하고 揲之以四하여 以象四時하고 歸奇於扐하여 以象閏하나니 五歲再閏이라 故로 再扐而後掛하나니라.
대연(大衍)의 수(數)가 50이니, 그 씀은 49이다. 나누어 둘로 만들어 양의(兩儀)를 상징하고, 하나를 걸어서 삼재(三才)를 상징하고, 넷으로 세어 사시(四時)를 상징하고, 남는 것을 늑(扐)에 돌려 윤달을 상징하니, 5연(年)에 윤달이 두 번이므로 두 번 늑(扐)한 뒤에 거는 것이다.
【本義】 大衍之數五十은 蓋以河圖中宮天五로 乘地十而得之요 至用以筮하여는 則又止用四十有九하니 蓋皆出於理勢之自然而非人之知(智)力所能損益也라 兩은 謂天地也라 掛는 懸其一於左手小指之間也라 三은 三才也라 揲은 間而數之也라 奇는 所揲四數之餘也라 扐은 勒於左手中三指之兩間也라 閏은 積月之餘日而成月者也니 五歲之間에 再積日而再成月이라 故五歲之中에 凡有再閏然後別起積分하니 如一掛之後에 左右各一 揲而一扐이라 故五者之中에 凡有再扐然後別起一掛也라.
대연(大衍)의 수(數)가 50이라는 것은 하도(河圖)의 중궁(中宮)에 있는 천수(天數) 5를 가지고 지수(地數) 10을 곱하여 얻은 것이요, 점(占)을 치는 데에 사용함에 이르러는 또 다만 49를 쓰니, 이는 모두 이치와 형세의 자연스러움에서 나온 것이요, 사람이 지혜와 힘으로 가감(加減)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양(兩)은 천지(天地)를 이른다. 괘(掛)는 그 시초 하나를 왼손의 작은 손가락 사이에 다는 것이다. 삼(三)은 삼재(三才)이다. 설(揲)은 사이를 띄워 셈이다. 기(奇)는 넷으로 세고 남은 것이다. 늑(扐)은 왼손의 가운데 셋째 손가락의 두 사이에 끼는 것이다. 윤(閏)은 달의 남은 날을 모아 달을 이룬 것이니, 5년 사이에 두 번 날을 모아 두 번 달을 이루므로 5년 가운데 무릇 두 번 윤달이 있은 뒤에야 별도로 여분을 일으키니, 마치 한 번 건 뒤에 좌(左)·우(右)의 시초를 각기 한 번씩 세고, 한 번 늑(扐)하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다섯 번 가운데 무릇 두 번 늑(扐)함이 있은 뒤에 별도로 한 번 걺을 일으키는 것이다.
乾之策이 二百一十有六이요 坤之策이 百四十有四라 凡三百有六十이니 當期之日하고,
건(乾)의 책수(策數)가 216이요 곤(坤)의 책수(策數)가 144이다. 그러므로 모두 360이니, 기년(期年)의 일수(日數)에 해당하고,
【本義】 凡此策數는 生於四象하니 蓋河圖四面에 太陽居一而連九하고 少陰居二而連八하고 少陽居三而連七하고 太陰居四而連六이라 揲蓍之法은 則通計三變之餘하되 去其初掛之一하여 凡四爲奇요 凡八爲偶니 奇圓圍三이요 偶方圍四니 三用其全하고 四用其半하나니 積而數之면 則爲六七八九而第三變揲數策數 亦皆符會라 蓋餘三奇則九而其揲亦九니 策亦四九三十六이니 是爲居一之太陽이요 餘二奇一偶則八而其揲亦八이니 策亦四八三十二니 是爲居二之少陰이요 二偶一奇則七而其揲亦七이니 策亦四七二十八이니 是爲居三之少陽이요 三偶則六而其揲亦六이니 策亦四六二十四니 是爲居四之老陰이니 是其變化往來進退離合之妙가 皆出自然이요 非人之所能爲也라 少陰은 退而未極乎虛하고 少陽은 進而未極乎盈이라 故此獨以老陽老陰으로 計乾坤六爻之策數니 餘可推而知也라 期는 周一歲也니 凡三百六十五日四分日之一이어늘 此는 特擧成數而槪言之耳라.
무릇 이 책수(策數)는 사상(四象)에서 생겼으니, 하도(河圖)의 사면(四面)에 태양(太陽)은 1에 거하여 9를 연하고 소음(少陰)은 2에 거하여 8을 연하고, 소양(少陽)은 3에 거하여 7을 연하고 태음(太陰)은 4에 거하여 6을 연한다. 시초(蓍草)를 세는 법은 세 번 변한 나머지를 통틀어 계산하되 처음 걸었던 1을 제거하여 무릇 4를 기(奇)라 하고 8을 우(偶)라 하니, 기(奇)는 둥근 바 둘레가 3이요, 우(偶)는 네모진 바 둘레가 4이니, 3은 그 완전한 수(數)를 사용하고 4는 그 반만 쓴다. 이것을 모아 세면 6·7·8·9가 되어 세 번 변한 설수(揲數)와 책수(策數)가 역시 모두 들어맞는다. 세 기수(奇數)가 남으면 3×3은 9인데 그 셈 역시 9이니 책수(策數) 역시 4×9는 36인 바 이것이 1에 위치한 태양(太陽)이 되고, 두 기수(奇數)와 한 우수(偶數)가 남으면 8인데 그 셈 역시 8이니 책수(策數) 역시 4×8은 32인 바 이것이 2에 위치한 소음(少陰)이 되며, 두 우수(偶數)와 한 기수(奇數)가 남으면 7인데 그 셈 역시 7이니 책수(策數) 역시 4×7은 28인 바 이것이 3에 위치한 소양(少陽)이 되며, 세 우수(偶數)이면 6인데 그 셈 역시 6이니 책수(策數) 역시 4×6은 24인 바 이것이 4에 위치한 노음(老陰)이 된다. 이는 변화하고 왕래하여 나아가고 물러가며 떠나고 합하는 묘리(妙理)가 모두 자연에서 나온 것이요, 사람이 할 수 있는 바가 아니다. 소음(少陰)은 물러가나 아직 허(虛)에 지극하지 않고, 소양(少陽)은 나아가나 가득참에 지극하지 않다. 그러므로 이는 다만 노양(老陽)과 노음(老陰)으로 건(乾)·곤(坤) 여섯 효(爻)의 책수(策數)를 계산한 것이니, 나머지를 미루어 알 수 있다. 기(期)는 1년을 돈 것이니, 무릇 365일과 4분의 1일인데, 이는 다만 성수(成數)를 들어 대략 말했을 뿐이다.
二篇之策이 萬有一千五百二十이니 當萬物之數也하니,
상(上)·하(下) 두 편(篇)의 책수(策數)가 1만 1천 520이니, 만물(萬物)의 수(數)에 해당하니,
【本義】 二篇은 謂上下經이라 凡陽爻百九十二에 得六千九百一十二策이요 陰爻百九十二에 得四千六百八策이니 合之면 得此數라.
이편(二篇)은 상경(上經)과 하경(下經)을 이른다. 무릇 양효(陽爻) 192에 6천 912을 얻고 음효(陰爻) 192에 4천 608을 얻어 합하면 이 수(數)를 얻게 된다.
是故로 四營而成易하고 十有八變而成卦하니,
이러므로 네 번 경영하여 역(易)을 이루고 18번 변하여 괘(卦)를 이루니,
【本義】 四營은 謂分二, 掛一, 揲四, 歸奇也라 易은 變易也니 謂一變也라 三變成爻하니 十八變則成六爻也라.
네 번 경영한다는 것은 둘로 나누고 하나를 걸고 넷으로 세고 나머지 수를 돌리는 것이다. 역(易)은 변역(變易)이니 한 번 변(變)함을 이른다. 세 번 변하여 효(爻)를 이루니, 18번 변하면 육효(六爻)를 이룬다.
八卦而小成하여,
팔괘(八卦)에 조금 이루어
【本義】 謂九變而成三畫하여 得內卦也라.
아홉 번 변하여 세 획을 이루어 내괘(內卦)를 얻음을 이른 것이다.
引而伸之하며 觸類而長之하면 天下之能事畢矣리니,
이끌어 펴며 유(類)에 따라 확장하면 천하(天下)의 능사(能事)가 다할 것이니,
【本義】 謂已成六爻而視其爻之變與不變하여 以爲動靜이면 則一卦可變而爲六十四卦하여 以定吉凶하니 凡四千九十六卦也라.
이미 육효(六爻)를 이루고 그 효(爻)의 변함과 변하지 않음을 보아 동정(動靜)을 삼으면 한 괘(卦)가 변하여 육십사괘(六十四卦)가 되어 길흉(吉凶)을 정함을 이르니, 무릇 4천 96괘(卦)인 것이다.
顯道하고 神德行이라 是故로 可與酬酢이며 可與祐神矣니,
도(道)를 드러내고 덕행(德行)을 신묘(神妙)하게 한다. 이 때문에 더불어 수작(酬酢)할 수 있으며 더불어 신(神)을 도울 수 있는 것이다.
【本義】 道는 因辭顯하고 行은 以數神이라 酬酢은 謂應對요 祐神은 謂助神化之功이라.
도(道)는 말로 인하여 드러나고 행(行)은 수(數)로써 신묘(神妙)해진다. 수작(酬酢)은 응대(應對)함을 이르고, 우신(祐神)은 신묘(神妙)한 조화(造化)의 공(功)을 도움을 이른다.
子曰 知變化之道者 其知神之所爲乎인저.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였다. “변화(變化)의 도(道)를 아는 이는 신(神)의 하는 바를 알 것이다.”
【本義】 變化之道는 卽上文數法이 是也니 皆非人之所能爲라 故夫子歎之而門人加子曰하여 以別上文也라.
변화(變化)의 도(道)는 곧 상문(上文)과 수법(數法)이 이것이니, 이는 모두 사람이 인위(人爲)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부자(夫子)께서 감탄하시자, 문인(門人)들이 ‘자왈(子曰)’을 가(加)하여 상문(上文)과 구별한 것이다.
右는 第九章이라.
이상은 제9장이다.
【本義】 此章은 言天地大衍之數, 揲蓍求卦之法이라 然亦略矣니 意其詳이 具於大(太)卜筮人之官이어늘 而今不可考耳요 其可推者는 啓蒙에 備言之하니라.
이 장(章)은 천지(天地) 대연(大衍)의 수(數)와 시초(蓍草)를 세어 괘(卦)를 구하는 법을 말한 것이다. 그러나 또한 간략하니, 짐작컨대 그 상세한 내용이 태복(太卜) 서인(筮人)의 관직(官職)에 갖추어져 있었는데 지금은 상고할 수 없고, 미룰 수 있는 것은 《계몽(啓蒙)》에 자세히 말하였다.
易有聖人之道四焉하니 以言者는 尙其辭하고 以動者는 尙其變하고 以制器者는 尙其象하고 以卜筮者는 尙其占하나니,
역(易)에 성인(聖人)의 도(道)가 네 가지 있으니, 〈역(易)으로써〉 말하는 이는 그 말을 숭상하고, 동(動)하는 이는 그 변(變)을 숭상하고, 기물(器物)을 만드는 이는 그 상(象)을 숭상하고, 복서(卜筮)하는 자는 그 점(占)을 숭상한다.
【本義】 四者는 皆變化之道니 神之所爲者也라.
네 가지는 모두 변화의 도(道)이니, 신(神)이 하는 것이다.
是以君子將有爲也하며 將有行也에 問焉而以言하거든 其受命也如嚮(響)하여 无有遠近幽深히 遂知來物하나니 非天下之至精이면 其孰能與於此리오.
그러므로 군자(君子)가 장차 일을 함이 있거나, 장차 행함이 있어 물어서 말하려 하면 그 명령을 받음이 메아리와 같아 원근(遠近)과 유심(幽深)이 없이 마침내 미래의 일을 아니, 천하(天下)의 지극히 정(精)한 이가 아니면 그 누가 이에 참여하겠는가.
【本義】 此는 尙辭尙占之事라 言人以蓍問易하여 求其卦爻之辭하여 而以之發言處事하면 則易受人之命而有以告之를 如嚮之應聲하여 以決其未來之吉凶也라 以言은 與以言者尙其辭之以言으로 義同이라 命은 則將筮而告蓍之語니 冠禮筮日에 宰自右贊命이 是也라.
이는 말을 숭상하고 점(占)을 숭상하는 일이다. 사람이 시초(蓍草)로써 역(易)을 물어 괘사(卦辭)와 효사(爻辭)를 구하여 이것으로써 말을 하고 일에 처하면 역(易)이 사람의 명령을 받아 고(告)해주기를 마치 메아리가 목소리에 응하듯이 하여 미래의 길(吉)·흉(凶)을 결단함을 말한 것이다. 이언(以言)은 ‘말하는 자는 그 말을 숭상함’의 이언(以言)과 뜻이 같다. 명(命)은 장차 점(占)을 치려 하면서 시초(蓍草)에게 고하는 말이니, 관례(冠禮)에 ‘날짜를 점칠 적에 재(宰)가 오른쪽에서 명령을 돕는다’ 함이 이것이다.
參伍以變하며 錯綜其數하여 通其變하여 遂成天地之文하며 極其數하여 遂定天下之象하니 非天下之至變이면 其孰能與於此리오.
삼(參)으로 세고 오(伍)로 세어 변(變)하며 그 수(數)를 교착(交錯)하고 종합(綜合)하여 그 변(變)을 통하여 마침내 천지(天地)의 문(文)을 이루며, 그 수(數)를 지극히 하여 마침내 천하(天下)의 상(象)을 정하니, 천하(天下)의 지극히 변화하는 이가 아니면 그 누가 이에 참여하겠는가.
【本義】 此는 尙象之事니 變則象之未定者也라 參者는 三數之也요 伍者는 五數之也니 旣參以變하고 又伍以變하여 一先一後하여 更相考覈하여 以審其多寡之實也라 錯者는 交而互之니 一左一右之謂也요 綜者는 總而挈之니 一低一昻之謂也니 此亦皆謂揲蓍求卦之事라 蓋通三揲兩手之策하여 以成陰陽老少之畫하고 究七八九六之數하여 以定卦爻動靜之象也라 參伍錯綜은 皆古語而參伍尤難曉라 按荀子云 窺敵制變엔 欲伍以參이라 하고 韓非曰 省同異之言하여 以知朋黨之分하고 偶參伍之驗하여 以責陳言之實이라 하고 又曰 參之以此物하고 伍之以合參이라 하며 史記曰 必參而伍之라 하고 又曰 參伍不失이라 하며 漢書曰 參伍其賈(價)하여 以類相準이라 하니 此足以相發明矣니라.
이는 상(象)을 숭상하는 일이니, 변(變)은 상(象)이 아직 정해지지 않은 것이다. 삼(參)은 삼(三)으로 셈이요 오(伍)는 오(五)로 셈이니, 이미 삼(三)으로 세어 변하고 또 오(五)로 세어 변하여 한 번 먼저하고 한 번 뒤에 하여 번갈아 서로 상고해서 많고 적음의 실제를 살피는 것이다. 착(錯)은 사귀어 서로 함이니 한 번 왼쪽으로 하고 한 번 오른쪽으로 함을 이르며, 종(綜)은 총괄하여 셈이니 한 번 낮추고 한 번 높임을 이르니, 이 또한 모두 시초(蓍草)를 세어 괘(卦)를 구하는 일을 말한 것이다. 두 손의 책(策)을 통틀어 세 번 설(揲)하여 음양(陰陽) 노소(老少)의 획을 이루고, 칠(七)·팔(八)·구(九)·육(六)의 수(數)를 연구하여 괘효(卦爻)와 동정(動靜)의 상(象)을 정한다. 삼오착종(參伍錯綜)은 모두 옛말인데, 삼오(參伍)가 더욱 알기 어렵다. 살펴보건대 《순자(荀子)》〈의병(義兵)〉에 “적을 엿보고 변화에 대처함에는 오(伍)하고 삼(參)하고자 한다.” 하였고, 《한비자(韓非子)》〈비내(備內)〉에 “같고 다른 말을 살펴 붕당(朋黨)의 나눠짐을 알고 삼오(參伍)의 징험을 맞추어 진언(陳言)의 실제를 책한다.” 하였으며, 또 〈양권(揚權)〉에 이르기를 “이 일로써 참고하고, 다섯으로 맞추어 삼(參)에 합한다.” 하였으며, 《사기(史記)》〈태사공자서(太史公自序)〉에 “반드시 삼(參)으로 세고 오(伍)로 센다.” 하였고, 또 이르기를 “삼오(參伍)함이 실수하지 않는다.” 하였으며, 《한서(漢書)》에 “그 값을 삼오(參伍)하여 유(類)로써 서로 기준한다.” 하였으니, 이것을 보면 충분히 서로 발명될 것이다.
易은 无思也하며 无爲也하여 寂然不動이라가 感而遂通天下之故하나니 非天下之至神이면 其孰能與於此리오.
역(易)은 생각이 없고 함이 없어 적연(寂然)히 동(動)하지 않다가 감동하여 마침내 천하(天下)의 원인을 통하니, 천하(天下)의 지극히 신묘(神妙)한 이가 아니면 그 누가 이에 참여하겠는가.
【本義】 此는 四者之體所以立而用所以行者也라 易은 指蓍卦라 无思, 无爲는 言其无心也라 寂然者는 感之體요 感通者는 寂之用이니 人心之妙가 其動靜亦如此라.
이는 네 가지의 체(體)가 서서 용(用)이 행해지는 것이다. 역(易)은 시초(蓍草)와 괘(卦)를 가리킨다. 무사(无思), 무위(无爲)는 마음이 없음을 이른다. 적연(寂然)은 감(感)의 체(體)이고 감통(感通)은 적(寂)의 용(用)이니, 사람 마음의 묘(妙)함이 그 동(動)·정(靜)이 또한 이와 같다.
夫易은 聖人之所以極深而硏幾也니,
역(易)은 성인(聖人)이 깊음을 다하고 기미를 살피는 것이니,
【本義】 硏은 猶審也요 幾는 微也라 所以極深者는 至精也요 所以硏幾者는 至變也라.
연(硏)은 살핌과 같고 기(幾)는 기미이다. 깊음을 다함은 지극히 정(精)함이요, 기미를 살핌은 지극히 변함이다.
唯深也故로 能通天下之志하며 唯幾也故로 能成天下之務하며 唯神也故로 不疾而速하며 不行而至하나니,
깊기 때문에 천하(天下)의 뜻을 통하며, 기미이기 때문에 천하(天下)의 일을 이루며, 신묘(神妙)하기 때문에 빠르지 않으면서도 속하며 행하지 않으면서도 이르나니,
【本義】 所以通志而成務者는 神之所爲也라.
뜻을 통하고 일을 이루는 것은 신(神)이 하는 것이다.
子曰 易有聖人之道四焉者 此之謂也니라.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였다. “역(易)에 성인(聖人)의 도(道)가 네 가지가 있다는 것은 이것을 말한 것이다.”
右는 第十章이라.
이상은 제10장이다.
【本義】 此章은 承上章之意하여 言易之用이 有此四者하니라.
이 장(章)은 상장(上章)의 뜻을 이어 역(易)의 쓰임이 이 네 가지가 있음을 말한 것이다.
子曰 夫易은 何爲者也오 夫易은 開物成務하여 冒天下之道하나니 如斯而已者也라 是故로 聖人이 以通天下之志하며 以定天下之業하며 以斷天下之疑하나니라.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였다. “역(易)은 어찌하여 만든 것인가? 역(易)은 사물을 열어주고 일을 이루어 천하(天下)의 도(道)를 포괄하니, 이와 같을 뿐이다. 이러므로 성인(聖人)이 이로써 천하(天下)의 뜻을 통(通)하며 천하(天下)의 업(業)을 정하며 천하(天下)의 의심을 결단한 것이다.
【本義】 開物成務는 謂使人卜筮하여 以知吉凶而成事業이라 冒天下之道는 謂卦爻旣設而天下之道皆在其中이라.
‘개물성무(開物成務)’는 사람이 복서(卜筮)하게 하여 길흉(吉凶)을 알아서 사업(事業)을 이루게 함을 이른다. 천하(天下)의 도(道)를 포괄했다는 것은 괘효(卦爻)가 이미 설치됨에 천하(天下)의 도(道)가 모두 그 가운데에 들어 있음을 이른다.
是故로 蓍之德은 圓而神이요 卦之德은 方以知(智)요 六爻之義는 易(역)以貢이니 聖人이 以此洗心하여 退藏於密하며 吉凶에 與民同患하여 神以知來하고 知以藏往하나니 其孰能與於此哉리오 古之聰明叡知神武而不殺者夫인저.
그러므로 시초(蓍草)의 덕(德)은 둥글어 신묘(神妙)하고 괘(卦)의 덕(德)은 네모져 지혜로우며, 육효(六爻)의 뜻은 변역(變易)하여 길흉(吉凶)을 알려준다. 성인(聖人)이 이로써 마음을 깨끗이 씻어 은밀함에 물러가 감추며, 길흉간(吉凶間)에 백성과 더불어 근심을 함께 하여 신(神)으로써 미래를 알고 지혜로써 지나간 일을 보관하니, 그 누가 이에 참여하겠는가. 옛날에 총명(聰明)하고 예지(叡智)하며 신무(神武)하고 죽이지 않는 이일 것이다.
【本義】 圓神은 謂變化无方이요 方知는 謂事有定理라 易以貢은 謂變易以告人이라 聖人은 體具三者之德하여 而无一塵之累하니 无事則其心寂然하여 人莫能窺하고 有事則神知之用이 隨感而應하나니 所謂无卜筮而知吉凶也라 神武不殺은 得其理而不假其物之謂라.
원신(圓神)은 변화가 일정한 방소가 없음을 이르고, 방지(方智)는 일에 정해진 이치가 있음을 이른다. ‘역이공(易以貢)’은 변역(變易)하여 사람에게 고해줌을 이른다. 성인(聖人)은 체(體)에 세 가지의 덕(德)을 구비하여 한 티끌의 누(累)가 없으니, 일이 없으면 그 마음이 조용하여 사람들이 엿보지 못하고, 일이 있으면 신지(神智)의 씀이 감동함에 따라 응하니, 이른바 복서(卜筮)함이 없이도 길흉(吉凶)을 안다는 것이다. 신무불살(神武不殺)은 그 이치만 얻고 그 물건을 빌리지 않음을 이른다.
是以明於天之道而察於民之故하여 是興神物하여 以前民用하니 聖人이 以此齋戒하여 以神明其德夫인저.
그러므로 하늘의 도(道)에 밝고 백성의 연고를 살펴서 이에 신물(神物)을 일으켜 백성들의 씀을 앞서서 개발하니, 성인(聖人)이 이로써 재계(齋戒)하여 그 덕(德)을 신명(神明)하게 한 것이다.
【本義】 神物은 謂蓍龜라 湛然純一之謂齋요 肅然警惕之謂戒라 明天道라 故知神物之可興이요 察民故라 故知其用之不可不有以開其先이라 是以로 作爲卜筮以敎人하고 而於此焉齋戒하여 以考其占하여 使其心神明不測하여 如鬼神之能知來也라.
신물(神物)은 시초(蓍草)와 거북점을 이른다. 잠연(湛然)하여 순일(純一)함을 재(齋)라 하고, 숙연(肅然)하여 경계하고 조심함을 계(戒)라 이른다. 천도(天道)에 밝기 때문에 신물(神物)을 일으킬 수 있음을 알고, 백성의 연고를 살피기 때문에 그 씀을 앞서서 개발하지 않으면 안 됨을 안 것이다. 이 때문에 복서(卜筮)를 만들어 사람을 가르치고, 이에 재계(齋戒)하여 그 점(占)을 상고해서 그 마음에 신명(神明)하고 측량할 수 없게 하여 귀신이 미래를 아는 것과 같은 것이다.
是故로 闔戶를 謂之坤이요 闢戶를 謂之乾이요 一闔一闢을 謂之變이요 往來不窮을 謂之通이요 見(현)을 乃謂之象이요 形을 乃謂之器요 制而用之를 謂之法이요 利用出入하여 民咸用之를 謂之神이라.
그러므로 문을 닫음을 곤(坤)이라 이르고 문을 엶을 건(乾)이라 이르고, 한 번 닫고 한 번 엶을 변(變)이라 이르고, 왕래(往來)하여 다하지 않음을 통(通)이라 이르고, 드러남을 상(象)이라 이르고, 나타남을 기(器)라 이르고, 만들어 씀을 법(法)이라 이르고, 씀을 이롭게 하여 나가고 들어와서 백성들이 모두 사용함을 신(神)이라 이른다.
【本義】 闔闢은 動靜之機也니 先言坤者는 由靜而動也일새라 乾坤變通者는 化育之功也요 見象形器者는 生物之序也라 法者는 聖人修道之所爲요 而神者는 百姓自然之日用也라.
합(闔)·벽(闢)은 동(動)·정(靜)의 기틀이니, 먼저 곤(坤)을 말한 것은 정(靜)으로 말미암아 동(動)하기 때문이다. 건(乾)·곤(坤)과 변(變)·통(通)은 화육(化育)의 공(功)이요, 현상(見象)과 형기(形器)는 물건을 생성하는 차례이다. 법(法)은 성인(聖人)이 도(道)를 닦아 하는 것이요, 신(神)은 백성이 자연히 날로 쓰는 것이다.
是故로 易有太極하니 是生兩儀하고 兩儀生四象하고 四象이 生八卦하니,
그러므로 역(易)에 태극(太極)이 있으니, 태극(太極)이 양의(兩儀)를 낳고 양의(兩儀)가 사상(四象)을 낳고 사상(四象)이 팔괘(八卦)를 낳으니,
【本義】 一每生二는 自然之理也라 易者는 陰陽之變이요 太極者는 其理也라 兩儀者는 始爲一畫以分陰陽하고 四象者는 次爲二畫以分太少하고 八卦者는 次爲三畫而三才之象始備라 此數言者는 實聖人作易自然之次第니 有不假絲毫智力而成者라 畫卦揲蓍는 其序皆然하니 詳見序例啓蒙하니라.
하나가 매양 둘을 낳음은 자연의 이치이다. 역(易)은 음양(陰陽)의 변(變)이요, 태극(太極)은 그 이치이다. 양의(兩儀)는 처음 한 획을 그어 음(陰)·양(陽)을 나눈 것이요, 사상(四象)은 다음 두 획을 그어 태(太)·소(少)를 나눈 것이요, 팔괘(八卦)는 다음 세 획을 그어 삼재(三才)의 상(象)이 비로소 갖춰진 것이다. 이 몇 말씀은 실로 성인(聖人)이 역(易)을 지은 자연(自然)의 차례이니, 털끝만큼의 지혜와 힘을 빌리지 않고 이루어진 것이다. 괘(卦)를 긋고, 시초(蓍草)를 셈은 그 차례가 모두 그러하니, 서례(序例)와 《계몽(啓蒙)》에 자세히 보인다.
八卦定吉凶하고 吉凶이 生大業하나니라.
팔괘(八卦)가 길흉(吉凶)을 정하고 길흉(吉凶)이 큰 사업(事業)을 낳는다.
【本義】 有吉有凶하여 是生大業이라.
길(吉)과 흉(凶)이 있어 이것이 큰 사업을 낳는다.
是故로 法象이 莫大乎天地하고 變通이 莫大乎四時하고 縣(懸)象著明이 莫大乎日月하고 崇高莫大乎富貴하고 備物하며 致用하며 立成器하여 以爲天下利 莫大乎聖人하고 探賾索隱하며 鉤深致遠하여 以定天下之吉凶하며 成天下之亹亹者 莫大乎蓍龜하니라.
그러므로 법(法)과 상(象)은 천지(天地)보다 더 큼이 없고, 변(變)과 통(通)은 사시(四時)보다 더 큼이 없고, 상(象)을 달아 드러남은 일월(日月)보다 더 큼이 없고, 숭고(崇高)함은 부귀(富貴)보다 더 큼이 없고, 물건을 구비하며 씀을 지극히 하며, 기물을 이루어 천하(天下)의 이로움을 삼음은 성인(聖人)보다 더 큼이 없고, 잡란(雜亂)한 것을 상고하고 숨은 것을 찾으며 깊은 것을 찾아내고 먼 것을 이루어 천하(天下)의 길(吉)·흉(凶)을 정하며 천하(天下)의 힘써야 할 일을 이룸은 시(蓍)·구(龜)보다 더 큼이 없다.
【本義】 富貴는 謂有天下, 履帝位라 立下에 疑有闕文이라 亹亹는 猶勉勉也니 疑則怠하나니 決故로 勉이라.
부귀(富貴)는 천하(天下)를 소유하고 황제(皇帝)의 지위에 오름을 이른다. 입자(立字) 아래에 의심컨대 빠진 글이 있는 듯하다. 미미(亹亹)는 면면(勉勉)과 같으니, 의심하면 게을러지나니, 결단하기 때문에 힘쓰는 것이다.
是故로 天生神物이어늘 聖人則之하며 天地變化어늘 聖人效之하며 天垂象하여 見(현)吉凶이어늘 聖人象之하며 河出圖하고 洛出書어늘 聖人則之하니,
그러므로 하늘이 신묘(神妙)한 물건을 내자 성인(聖人)이 법받으며, 천지(天地)가 변화하자 성인(聖人)이 본받으며, 하늘이 상(象)을 드리워 길흉(吉凶)을 나타내자 성인(聖人)이 형상하며, 하수(河水)에서 도(圖)가 나오고 낙수(洛水)에서 서(書)가 나오자 성인(聖人)이 법받았으니,
【本義】 此四者는 聖人作易之所由也라 河圖, 洛書는 詳見啓蒙하니라.
이 네 가지는 성인(聖人)이 역(易)을 지은 이유이다. 하도(河圖)와 낙서(洛書)는 《계몽(啓蒙)》에 자세히 보인다.
易有四象은 所以示也요 繫辭焉은 所以告也요 定之以吉凶은 所以斷也라.
역(易)에 사상(四象)이 있음은 보여준 것이요, 말을 닮은 고해준 것이요, 길흉(吉凶)을 정함은 결단한 것이다.”
【本義】 四象은 謂陰陽老少라 示는 謂示人以所値之卦爻라.
사상(四象)은 음(陰)·양(陽)의 노(老)·소(少)를 이른다. 시(示)는 사람에게 만난 바의 괘효(卦爻)를 보여줌을 이른다.
右는 第十一章이라.
이상은 제11장이다.
【本義】 此章은 專言卜筮하니라.
이 장(章)은 오로지 복서(卜筮)만을 말하였다.
易曰 自天祐之라 吉无不利라 하니 子曰 祐者는 助也니 天之所助者順也요 人之所助者信也니 履信思乎順하고 又以尙賢也라 是以自天祐之吉无不利也니라.
역(易)에 이르기를 “하늘로부터 돕는지라 길(吉)하여 이롭지 않음이 없다.” 하니, 공자(孔子)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다. “우(祐)는 도움이니, 하늘이 돕는 것은 순(順)함이요, 사람이 돕는 것은 신(信)이니, 신(信)을 행하여 순(順)함을 생각하고 또 어진 이를 높인다. 이 때문에 하늘로부터 도와서 길(吉)하여 이롭지 않음이 없는 것이다.”
【本義】 釋大有上九爻義라 然在此는 无所屬하니 或恐是錯簡이니 宜在第八章之末이라.
대유괘(大有卦) 상구효(上九爻)의 뜻을 해석하였다. 그러나 여기에 있음은 소속될 곳이 없으니, 혹 착간(錯簡)인 듯하니, 마땅히 제8장의 끝에 있어야 할 것이다.
子曰 書不盡言하며 言不盡意하니 然則聖人之意를 其不可見乎아 (子曰) 聖人이 立象하여 以盡意하며 設卦하여 以盡情僞하며 繫辭焉하여 以盡其言하며 變而通之하여 以盡利하며 鼓之舞之하여 以盡神하니라.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였다. “글로는 말을 다하지 못하고 말로는 뜻을 다하지 못하니, 그렇다면 성인(聖人)의 뜻을 볼 수 없단 말인가. 성인(聖人)이 상(象)을 세워 뜻을 다하며, 괘(卦)를 베풀어 정위(情僞)를 다하며, 말을 달아 그 말을 다하며, 변통(變通)해서 이로움을 다하며, 고무(鼓舞)하여 신묘(神妙)함을 다하였다.
【本義】 言之所傳者는 淺이요 象之所示者는 深이니 觀奇耦二畫이 包含變化하여 无有窮盡이면 則可見矣라 變通鼓舞는 以事而言이라 兩子曰字는 疑衍其一이라 蓋子曰字는 皆後人所加라 故有此誤하니 如近世通書는 乃周子所自作이어늘 亦爲後人每章加以周子曰字하니 其設問答處가 正如此也라.
말로 전하는 것은 얕고 상(象)으로 보여주는 것은 깊으니, 기(奇)·우(耦) 두 획이 변화를 포함하여 다함이 없음을 보면 알 수 있다. 변통(變通)과 고무(鼓舞)는 일로써 말한 것이다. 두 ‘자왈(子曰)’자(字)는 의심컨대 그 하나는 연문(衍文)인 듯하니, 자왈(子曰)이란 글자는 모두 후인(後人)이 붙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오류(誤謬)가 있으니, 근세(近世)에 《통서(通書)》는 바로 주자(周子)가 스스로 지은 것인데, 또한 후인(後人)들이 매 장(章)마다 ‘주자왈(周子曰)’이라는 글자를 가(加)한 것과 같으니, 그 문답(問答)을 가설(假設)한 부분이 바로 이와 같다.
乾坤은 其易之縕耶인저 乾坤成列에 而易立乎其中矣니 乾坤毁면 則无以見易이요 易不可見이면 則乾坤이 或幾乎息矣리라.
건(乾)·곤(坤)은 그 역(易)에 쌓여 있는 진리일 것이다. 건(乾)·곤(坤)이 열(列)을 이룸에 역(易)이 그 가운데 서 있으니, 건(乾)·곤(坤)이 무너지면 역(易)을 볼 수 없고, 역(易)을 볼 수 없으면 건(乾)·곤(坤)이 혹 거의 종식(終息)될 것이다.
【本義】 縕은 所包蓄者니 猶衣之著也라 易之所有는 陰陽而已니 凡陽은 皆乾이요 凡陰은 皆坤이라 畫卦定位하면 則二者成列而易之體立矣라 乾坤毁는 謂卦畫不立이요 乾坤息은 謂變化不行이라.
온(縕)은 싸고 있는 것이니, 옷의 솜과 같다. 역(易)에 들어있는 것은 음(陰)·양(陽)일 뿐이니, 무릇 양(陽)은 모두 건(乾)이고 무릇 음(陰)은 모두 곤(坤)이다. 괘(卦)를 그어 자리를 정하면 건(乾)·곤(坤) 두 가지가 열(列)을 이루어 역(易)의 체(體)가 확립된다. 건(乾)·곤(坤)이 무너진다는 것은 괘획(卦畫)이 서지 못함을 이르고, 건(乾)·곤(坤)이 종식(終息)된다는 것은 변화(變化)가 행해지지 못함을 이른다.
是故로 形而上者를 謂之道요 形而下者를 謂之器요 化而裁之를 謂之變이요 推而行之를 謂之通이요 擧而措之天下之民을 謂之事業이라.
그러므로 형(形)으로부터 그 이상을 도(道)라 이르고 형(形)으로부터 그 이하를 기(器)라 이르고 화(化)하여 재제(裁制)함을 변(變)이라 이르고 미루어 행함을 통(通)이라 이르고 들어 천하(天下)의 백성에게 둠을 사업(事業)이라 이른다.
【本義】 卦爻陰陽은 皆形而下者요 其理則道也라 因其自然之化而裁制之는 變之義也라 變通二字는 上章은 以天言이요 此章은 以人言이라.
괘효(卦爻)의 음(陰)·양(陽)은 모두 형이하(形而下)이고, 그 이치는 도(道)이다. 그 자연의 조화로 인하여 재제(裁制)함은 변(變)의 뜻이다. 변통(變通) 두 글자는 상장(上章)에서는 하늘로 말하였고, 이 장(章)에서는 사람으로 말하였다.
是故로 夫象은 聖人이 有以見天下之賾하여 而擬諸其形容하며 象其物宜라 是故謂之象이요 聖人이 有以見天下之動하여 而觀其會通하여 以行其典禮하며 繫辭焉하여 以斷其吉凶이라 是故謂之爻니,
그러므로 상(象)은 성인(聖人)이 천하(天下)의 잡란(雜亂)함을 보고서 그 형용(形容)에 모의하며 그 사물에 마땅함을 형상한 것이다. 이 때문에 상(象)이라 일렀고, 성인(聖人)이 천하(天下)의 동(動)함을 보고서 그 회통(會通)을 관찰하여 떳떳한 예(禮)를 행하며 말을 달아 길흉(吉凶)을 결단한 것이다. 이 때문에 효(爻)라 이른 것이니,
【本義】 重出하여 以起下文이라.
거듭 나와 하문(下文)을 일으켰다.
極天下之賾者는 存乎卦하고 鼓天下之動者는 存乎辭하고,
천하(天下)의 잡란(雜亂)함을 지극히 함은 괘상(卦象)에 있고, 천하(天下)의 동함을 고무함은 효사(爻辭)에 있고,
【本義】 卦는 卽象也요 辭는 卽爻也라.
괘(卦)는 곧 상(象)이고, 사(辭)는 곧 효(爻)이다.
化而裁之는 存乎變하고 推而行之는 存乎通하고 神而明之는 存乎其人하고 默而成之하며 不言而信은 存乎德行하니라.
화(化)하여 재제(裁制)함은 변(變)에 있고 미루어 행(行)함은 통(通)에 있고 신묘(神妙)하게 하여 밝힘은 사람에 있고 묵묵히 이루며 말하지 않아도 믿음은 덕행(德行)에 있다.
【本義】 卦爻所以變通者는 在人이요 人之所以能神而明之者는 在德이니라.
괘효(卦爻)가 변통(變通)하는 것은 사람에게 있고, 사람이 신묘(神妙)하게 하여 밝히는 것은 덕(德)에 있다.
右는 第十二章이라.
이상은 제12장이다.

계사상전(繫辭上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