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괜히 마음이 바쁘다. 뒷산에 밤이 벌써부터 빠진단다. 청솔모란 녀석이 땅에 빠지는 건 거의 다 주어가버렸다고 아버지 걱정이 대단하시다. 연만하셔서 이제 경사진 산에 잘 못오르시니 마음만 쓰이시나 보다. 그러니 아들인 내 눈치만 보신다. 하루에 아침 저녁으로 두 번은 가서 봐야 한단다. 그러나 나는 아홉 시 반이면 공부하러 필암서원에 가야 하니 마음이 바쁠 수밖에. 그것도 산 풀숲에는 헌혈하라고 덤비는 녀석이 많아서 장화 신어야지 긴 바지 입어야지, 긴소매 윗옷 입어야지, 날씨는 덥지. 거기다 오랫만이라고 찰칵할 준비에, 밤 주워담을 자루와 집게도 들어야지. 더워서 땀은 나지. 마음은 바쁘지.
한참을 주워담다 보니 자루가 묵직하다. 산위로 오르니 여기저기 낯선 꽃, 낯익은 꽃들이 웃는다. 이번에는 삼각대까지 휴대했으니 찰칵찰칵 그저 찍어댄다.
층층잔대란 녀석이 물방을 잔뜩 머금고 웃는다. 어제 내린 비와 이슬이 맺혀 우주를 담고 있는 이슬방울이 환상이다.
참취가 새하얀 자태를 뽐내고 있다

꿩의다리도 활짝 피었다
여기저기 이질풀이 곱게도 피어 있다
맥문동의 보랏빛 꽃망울들이 곱기도 하다
이거는 짚신나물
물기 한껏 머금은 무릇이 상그럽다
산박하
뚝갈
쥐꼬리망초
세팥
이 1, 2, 3, 4는 이름을 모른다. 두령님께 부탁드려야 한다. 부탁합니다.
내려오는 길에 부추가 활짝 피어서 벌레를 유혹하고 있다. 뭔가 단꿀을 빨아먹고 있나 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