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한 시. 활빈당이 또 선동을 한다. 오후에 뭐할 거냐고? 그래서 나는 속으로는 큰일이다 싶으면서도 기냥 아무 일 없다고 대답하고는 머리를 굴리기 시작한다. 사실은 오늘 오후에 우리집 별채 옆 창고 미장을 하는 중이었기 때문에 어떻게 빠져 나갈까 궁리를 해야 한다. 영환 씨에게 면목이 없어서다. 에라 모르겠다 영환 씨가 없는 새에 기냥 도주. 부회장님 차를 중시기 군과 타고 줄행랑할 수 밖에. 가는 길에 정기 씨를 태우고 삼계행.
중간에 어찌 낯익은 곳에 차를 댄다 싶었더니 가산식물원 앞. 길을 건너 안에 들어가니 몇 분이 와 계신다. 내 눈에는 사람은 안 보이고 그저 꽃만 찾는다. 그래서 몇 컷 찰칵.
장수매
설란
은초롱
매발톱
마음씨 후하신 우리 총무님께 한 마디 물었더니, 기냥 주신다. 그래서 백양꽃 구근을 횡재하고는 곧바로 길건너 차로 가서 출발. 신호등 앞에 오니 정기 씨 하는 말씀.
빨리 좌회전하세요
부회장 대답.
빨간 불인디.
빨리 가란 소리여.
그래도 우리 부회장님 꿈쩍도 안 하신다. 그새 저쪽에서 큰 차가 돌진. 정기 씨 또 한 마디.
인자 가믄 안 되여.
녹색 불이 오자, 이제는 마음 놓고 가라는 거란다. 우리는 마음놓고 달려서 함평 경계에 다다른다. 정기 씨 왈,
인자 함평인디?
수해마을이라는 돌표지를 지나면서 우리 부회장님 말씀.
잘만 왔구만 왜 그런디야.
하시고는 우회전하니 그곳에 배꽃이 지천.
그야말로, 이화에 낮백하고 하늘은 쾌청이다. 농장에 들어서니 개어미와 새끼가 우리를 반긴다. 여기저기 온갖 잡풀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냉이꽃
배밭은 터널이다. 위는 온통 天白이고 아래는 온통 地錄이다.
섬세한 조물주의 솜씨가 빛난다.
주인댁 정성 담은 괴기는 노릿노릿
새하얀 배꽃 안주 온 몸이 두리둥실
아해야 여기가 바로 무릉도원 아니냐
저 선녀 어쩌다가 저기에 내려앉아
연분홍 꽃술 달고 새하얀 자리 펴서
누구를 맞아들이려 천의무봉 뽐내나
그곳엔 천 원하는 모델도 있었다. 그런데 모자 쓴 모델은 얼마 받을 수 있을까?
원두막(?)에 오르니 그곳에 주인 김정희 씨와 부군께서 우릴 위해 불을 피우시느라고 여념이 없으시다. 고개를 돌려 아래를 보니 이건 배꽃 천지다.
눈을 돌려 원두막 바닥을 보니 웬걸, 양푼 속에 벌건 괴기. 먹음직도 스럽다. 그야말로 자연산 생괴기. 구름을 타고 온 우리는 무슨 복으로 이런 괴기를 먹을 수 있는 것일까? 주인 내외께 감사.
생괴기는 땟깔도 좋더니만 구워 놓으니 먹음직스럽기 그지없다. 거기다 야생 상추까지 곁들여 토종 된장까지. 복분자, 맥주를 곁들이고는 포식의 큰 트림. ㅋㅋㅋㅋㅋ
실컷 먹고는 이제는 주인댁 본체로 이동. 전형적인 시골 가옥에 주인의 솜씨가 어려 있는 분들이 우리를 반긴다. 나는 또 여기서 횡재. 매발톱을 여러 뿌리 선물 받았다. 감사합니다. 잘 키우겠습니다. 내가 또 충동질한다. 이 소나무는 손질만 하면 전시회감인데요. 그럼 누가 손질할까? 보나마나 나는 아니다. 그럼 누구? 그야 물론 활빈당. 누가 실력 있으랬나? 팔자 소관이지.
문제의 소나무분. 손질은 활빈당께서 열심히 하셨으니 작품은 스무날 후에 직접 눈으로 확인하시길.............
또 내가 방정을 떤다. 숫기왓장에 앉힌 단풍나무들을 보고 한 마디.
이거도 전시회 출품감인데........
주인댁 가만 있을 리 없다. 녹아나는 건 누구? 그야 활빈당이지요.
활빈당 님 열심히 만드시는데 나는 모른 척 또 한 컷 찰칵. 그런데 이름을 모른다. 꽃의 양자는 기가 막힌다.(패모라는 약용식물이랍니다)
이화에 월백하고 은한은 삼경인 제
일지춘심을 자귀야 알랴마는
다정도 병인 야 하여 잠 못들어 하노라
배꽃은 달빛 아래서가 제격이라 했더니 주인댁 하시는 말씀. 맞단다. 그리고 덧붙이신다. 작은 열매를 속아내고 나서 종이로 싼 배밭도 엄청 예쁘단다. 그럼 그때도 우릴 초대해 주실른지? 차마 입이 안 떨어져 말씀을 못드렸다.
달빛 아래서 배밭.
봉지를 대롱대롱 매단 배밭.
이제까지는 관념상의 풍경이었다. 그게 실제 상황이 될 수 있을지?
감사의 인사를 뒤로 떠나는 우리를 주인댁 내외와 멍멍이 가족들이 배웅을 한다. 아마 시속 100은 넘었을까? 역 앞에 정기씨를 내려드리고, 우리는 구산으로.
우리집 앞에 차를 세우고는 활빈당 님 창희 씨를 찾는다. 하우스를 보자고 보챈다. 내가 2키로는 된댔더니 한 사람이 500미터씩만 걸으면 된단다. 우리 일행이 넷이니까. 무슨 셈법이 그런지? 창희씨 하우스에는 철쭉들이 가득하다. 참 많이도 손이 갔겠다 싶다. 이거저거 둘러보는 사이에 날이 저문다. 발길을 돌리니 어느새 창희씨 집이다. 총무님께서 전시회에 내놓으라신다는 거북이 가족을 보여 주시는데 참 좋다. 전시회에서 보시도록 하세요. 활빈당님께서 찰칵하셨으니 어쩌면 사진이 올라올지도 모르긴 하네요.
그렇게 오늘 하루도 행복.
